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마지막으로 그 아이를 힘껏 안았다. 등을 두드려주었다. 잘 지내. 쌤 두요.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중앙 현관에서 배웅을 했는데 아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손을 흔들었다.

다른 지역에서 전학을 왔다가 적응을 못하고 있던 곳으로 다시 간 아이. 곁에 머문 기간이 석 달 남짓 되었을까. 일당백을 했기에 상담일지도 꽤 두툼했다. 다행스러웠던 것은 담임에 대한 신뢰가 돈독했다는 사실이었다.

 

전학을 결정하기 일주일 전쯤부터 아이의 등교 장소는 위클래스였다. 자체 프로그램도 있었지만 6,7시간이 되는 일과시간동안 심심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옆자리 국어 쌤 책상 위에 놓인 학교도서관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즈음 나도 구입을 했지만 아직 안 읽어본 책이었다. 저 정도 두께면 1주일 동안 천천히 읽을 만하겠다 싶었다. 양해를 구하고 빌린 후 아이에게 건넸다. 짧게나마 독후감도 써보라고 했다.

그 때는 몰랐다. 그 책을 사흘도 안 되어 완독했던 아이의 마음을. 독후감이 왜 편지글 형식이었는지. 왜 내 생각보다 그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본 아이의 표정이 편안해보였던 이유를.

 

읽지도 않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권한다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다. 사실 그 아이에게 내가 읽지도 않은 이 책을 건넸던 이유는 매우 일차원적이었다. 두꺼워서, 베스트셀러라서. 살짝 찜찜하기는 했다. 베스트셀러가 모든 사람에게 베스트 북이 되는 것은 아니므로. 다만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이유 하나쯤은 존재할 것이기에 그것이 아이와의 접점이 되는 행운을 바랬다.

 

정작 내가 이 책을 펼친 것은 구입한 지 2년만이었다. 책표지를 보며 희미하게 남아있는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456쪽을 단숨에 읽어가는 내내 아이는 나를 따라다녔다.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직감했다. 그 아이에게 이 책은 틀림없이 행운이 되었으리라는 것을.

당시 아이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하는 확고한 꿈이 있었다. 유명하지 않은 기획사였지만 여기로 전학 오기 전에 보컬트레이닝을 받은 경험도 있었고, 유명 오디션 예선을 통과한 이력도 있었다. 집안 사정으로 전학을 오기는 했지만 아이의 시선은 늘 서울 쪽을 향해 있었다. 더듬어보면 상담 내용 중 절반 이상은 진로에 관한 것이었다. 진로에 대한 고민과 환경과 사춘기가 맞물려 그렇게 방황을 했나 싶다.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연결해주는 나미야 잡화점에서 삼인조 도둑이 경험하는 특별한 하룻밤은 네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과거의 나미야 잡화점은 우연찮은 계기로 주인 할아버지가 손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크고 작은 고민들을 해결해주던 공간이다. 30여 년 뒤 얼떨결에 그곳으로 숨어들어간 도둑들은 건물 앞에 있는 우편함 투입구를 통해 과거로부터 온 고민편지를 받게 되고, 이들이 쓴 답장을 건물 뒤편의 우유 배달 상자에 넣으면 과거의 내담자에게 전달된다.

 

그 아이를 연상시키는 책이어서 그런지 내용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은 처음부터 이라는 한 방향으로 맞춰져있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옴니버스 식으로 바라본다면 주인공들은 모두 꿈을 가지고 있다. ‘달토끼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는 올림픽에 출전하는 펜싱선수가 되기를, ‘생선 가게 뮤지션은 싱어 송 라이터를, ‘폴 레논은 목각조각가를, ‘길 잃은 강아지는 돈을 많이 벌어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은 잡화점 할아버지가 아닌 도둑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꿈과 삶에서 떠안고 있는 고민들을 해결해나간다.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p167)’ 나미야 할아버지의 말처럼 결론적으로 그들은 스스로 답을 찾는다.

 

굳이 옴니버스 식의 관점에서 바라봐도 공통적으로 꿰어지는 연결고리가 있지만, 이 책의 결정적인 매력은 연작 소설을 연상시키는 피카레스크식 구성에 있다. 괜히 추리 소설 작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 느낌은 점점 짙어진다. 나미야 할아버지, 세 명의 도둑들, 에피소드 속 등장인물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아동복지시설 환광원과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연결되어있다. 단 한 장면도 허투루 등장하지 않는다. 탄탄하고 촘촘한 구성에 탄성이 나온다. 실에 꿰어 움직이는 목각 인형을 조종하듯이 작가는 모든 동작들을 치밀하게 계산해서 구현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p447)’ 내용과 구성면에서 화룡점정으로 꼽고 싶은 장면이다. 도둑들은 과거와 연결된 공간을 확인할 목적으로 백지 편지를 우편함에 넣는다. 그 편지를 받은 나미야 잡화점 주인은 장문의 답장을 정성껏 써 보낸다. 전율이 이는 발상이다. 어떻게 할아버지와 도둑들을 연결할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타임 슬립이 특별해지는 이유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설정만으로도 감동적인데 답장의 내용 역시 방황하는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코스 요리 끝에 나온 디저트의 맛이 입안에 계속 맴도는 것처럼 마음속 여운이 길다.

 

언뜻 스치는 향기처럼 삶의 장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 ‘세상 어떤 일이든 도전해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거 아닙니까.(p130)’ 이 문장이 그 아이를 조금이라도 붙들었을까. 전학 간 후 소식은 끊어졌다. 아이와 주고받던 카카오 톡 창은 1년 반 정도 계속 남아 있다가 올해 초, 메시지를 정리하면서 내가 먼저 나와 버렸다. 원하던 예술 고등학교에 갔으면 지금쯤 고등학교 2학년일 텐데. 그곳에 진학하지 못했더라도 그리 걱정되지는 않는다. 그날 미처 다 보지 못했던,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만 같은, 마지막으로 본 아이의 표정을 믿기 때문이다.

이 책을 그 아이에게 가져다준 나의 행동은 우연이었을까. 내 삶과 그 아이의 삶과 이 책이 연결된 과정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소설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다양한 삶의 문제가 풀려나가는 과정도 기적이지만, 일상에서 간혹 일어나는 이러한 연결 역시 작은 기적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겉표지에 그려진 달 모양이 이왕이면 보름달이었더라면..^^;

-소설이 시작되는 시간적 배경은 새벽 2시 경, 내용에는 '머리 위쪽 한가운데 둥근 달(p13)'이라는 문장이 있다. 도둑들이 시간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계기도 달의 위치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통상 둥근 달은 보름달을 의미한다. 보름달은 해질 무렵 동쪽에서 떠서 자정 즈음 남쪽에 가장 높이 떠 있다가 새벽에 서쪽으로 진다. 자정으로부터 2시간가량 지나 고도가 다소 낮아졌다고 해도 30도 정도일 것이므로 소설에서 묘사되었듯이 둥글게 그려야 옳다. 

표지에 그려진 달은 왼쪽이 손톱 모양으로 밝은 그믐달이다. 달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빛을 내므로 그림에서 태양은 달의 왼쪽에 있다. 그믐달은 해뜨기 전 새벽, 동쪽에서 뜬 후 해가 뜨면 보이지 않는다. 천구 상에서 태양으로부터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므로 낮게 뜬다. 표지에서처럼 고도가 높을 수 없다. 뭐, 과학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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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9-05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청년문화허브입니다.
저희 단체에서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소설에서처럼, 실제로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편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드리고자 글을 남깁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을 하면 실제로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답니다.
namiya114@daum.net 여기로 이메일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 할아버지로 손편지를 보내시면 손편지로 답장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이야기든 들려주세요! 여러분의 나미야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