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 써도 되나요? 어린이 나무생각 문학숲 8
송아주 지음, 현숙희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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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코 입 비율도 안 맞고 뺨이 두상의 대부분을 차지한 데생이었다. 이토록 괴팍한 아그리파라니! 중학교 2학년 미술 시간에 어처구니없는 소묘를 본 순간,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 아이의 평가 결과가 A였다는 사실은 그래서 내겐 놀라운 사건이었다. 아니, ? 며칠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 자리에서는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을. 입체로 된 석고상의 모습은 모든 방향에서 제각각이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 언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 그 방향과 그 순간에는 맞는 그림이겠지만, 부분이 전체의 모습을 반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역사는 강한 자들의 기록이다. 한 방향에서만 바라본 석고상의 모습이랄까. 약한 이들의 자리에서 바라본 기록은 보기 드물다. 그런 이유로 객관적이어야 할 역사는 온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언론 역시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언론에 관한 동화이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교내 신문 수습기자로 들어가면서 겪는 사건들을 통해 작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언론이 해야 할 역할을 말한다. 기자가 지녀야 할 자세와 기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여론의 힘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게 한다.

 

기자는 사건과 독자를 이어주는 다리이다. 독자는 기자의 관점에서 어떤 사건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므로 기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기자에게는 사건의 본질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진실의 모습에 근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떤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까. 일단은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화 <택시운전사>가 개봉 9일 만에 관람객수 600만 명을 돌파했다고 한다. 나에게 1980년 5월 18일을 처음으로 알려준 영화는 <화려한 휴가>였다. <화려한 휴가>가 내부에서 바라본 5.18이라면, <택시운전사>는 외부에서 바라본 5.18이다. 이 영화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최종 판단은 관객이나 독자의 몫이지만 나는 약자의 입장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강한 사람은 목소리를 낼 기회가 약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다. 언론은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기회가 적거나 그럴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이들의 눈과 귀와 목소리가 되어야 맞다.

안타깝게도 모든 언론이 그런 노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장소에서 밝힌 촛불의 숫자. 경찰 추산의 집계와 집회 주최 측의 집계가 다른 것은 입장 차이라 쳐도 신문사에 따라 천차만별로 보도되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고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이 우리에게 절실한 이유이다.

 

이 동화의 백미는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풀어나가는 데에 있다. 잘못된 회장 선거를 바로 잡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정필의 열정과 편집장 서진의 용기, 공백으로 발행된 신문 1면에 아이들의 의견이 적혀 한 부씩 다시 되돌아오는 장면은 지난겨울 우리가 들었던 촛불과 겹쳐진다.

아빠, 기자에게 가장 큰 힘이 뭔지 알아?”(중략) “바로 독자야.”(p144) 주인공 정필의 깨달음은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어둠 속에 점점이 박혀 타오르는 촛불들은 볼 때마다 뭉클함을 안겨준다. 홀로 주위를 밝히는 촛불도 매력적이지만, 밤하늘에 흐드러진 별들과 같은 촛불의 모임은 언제나 감동이다. 한 사람 한 사람 촛불을 든 사람의 심장이 뛰는 것 같아서 내 심장도 덩달아 쿵쿵 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이 슬그머니 흘러나와 촛불로 빛나는 장면이 연상된다.

언론은 맨 처음 드는 촛불이다. 이미 밝은 곳에서 촛불의 역할은 미미하지만 어두운 장소에서의 촛불은 단 한 개라도 의미가 깊다. 나머지 촛불을 드는 것은 그 언론을 접하는 우리의 몫이다. 함께 밝힌 촛불이 우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듯이 언론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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