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만담 - 책에 미친 한 남자의 요절복통 일상 이야기
박균호 지음 / 북바이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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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 뚜 둥 뚱 띵 띠 딩 띵~ 그 곡을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피아노 밖에 없는 줄 알던 내게 가야금으로 울려 퍼지던 <Canon>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곰곰 생각하면 얼마나 고지식했던가. 느낌이야 비루하겠지만 첫눈처럼 그 놈에게 가겠다며 나도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을. 어떤 악기로든 그 음악을 연주하면 그만인 거다. 집요하게 인터넷을 뒤졌다. 단순한 주제에 입혀진 변화 자체로도 매력적인 곡이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색소폰에 이르기까지 여러 악기로 울리면서 미술에서의 20색상환을 보는 듯 달라졌다. 이토록 많은 악기로 연주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놀라웠던 건 각각의 연주가 갖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캐논변주곡을 떠올렸다. 조금씩 변주되는 일상은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연결고리가 되어 통통 튀는 음악처럼 마음을 두드렸다.

 

1장은 책 수집과 서재에 관한 이야기이다.

나의 책꽂이는 매혹적인 굿즈에 부록으로 딸려오는 책으로 주로 채워진다. 알라딘 중고 매장의 경이로운 가격을 직접 확인한 후로는 중고 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희귀본을 향한 열정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학창시절 희귀한 껌 종이 수집을 위해 엄청나게 껌을 씹어댔던 마음과 비슷할까. 절판본 확보를 위해 고군분투한 이야기 속에서 생소한 책들과 그에 얽힌 일화를 많이 알게 되었다.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 걸맞게 삼면이 책꽂이인 서재라니! 안방의 한 면만 겨우 점령한 나는 거실 TV 주변으로의 영역 확장을 도모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나버린 과거가 있다. 집안 곳곳에는 나의 책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명당이 이토록 많건만. 붙박이 신발장도 그렇고, TV를 보기 위해 앉아있는 자리 주변이 책으로 둘러싸여 있다면 얼마나 아늑할 건가 말이다. 이중으로 주차된 안방의 책꽂이를 올려다보며 그림의 떡을 보듯 저자의 서재 이야기에 입맛을 다신다.

 

2장에는 주로 아내와의 일상이, 3장에는 친구들, 딸아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담겨있다.

아내와 연결된 애정 어린 일화가 인상적이다. 자칫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풀어가는 방식이 경쾌하다. 침침한 장면은 저자를 통과하면서 가벼운 탁구공으로 변신하여 또르르 책을 향해 달려간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 이런 책 이야기를 끌어낼까 싶을 정도로 엉뚱한 방향이다. 아내와 고기의 결합에서는 어머니, 야구, 부탄, 세계사 이야기가 담긴 책이 흘러나오는가 하면, 아내와 밥이 결합되니 위대한 패배자, 마사지법, 지위다툼에 관한 책이 등장한다. 날마다 먹는 밥이지만 그날의 기분에 따라 맛이 달라지듯이 밥과 얽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면서 책과 연결 짓는 저자의 사유가 유쾌하다.

 

일상과 책 소개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글이다. 책을 소개하는 책들이 시중에 많이 출간되지만 완전히 객관적일 수 있는 책은 단 한 권도 없다. 어차피 기술하는 자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펼쳐지듯이, 누가 소개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책으로 소개되기 마련이다. 엄청난 책이라며 각종 언론의 찬사가 쏟아진 책이라도 정작 읽으면 배신감을 느낀 적도, 별로 라는 평에 기대 없이 읽었다가 보물섬을 찾은 경우도 있다. 책 소개에 관한 책은 읽는 이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거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충분히 그 역할을 다했다. 성석제, 천명관,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뇌내혁명,최성애 박사의 행복수업,자식이 뭐라고,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행복한 책읽기,나의 레종 테트르등 읽고 싶은 생각이 들어 메모한 책이 10여 권이나 되니까.

 

책을 깨끗하게 보는 편이다. 읽고 나서 괜히 샀다 싶으면 중고 매장으로 냉큼 달려가기 위한 심산이다. 그래서 읽을 때마다 펜과 연습장을 옆에 둔다. 좋은 문장이나 연상되는 생각을 메모하여 독후감을 쓸 때 정리하기 위해서이다. 다 읽고 보니 책 제목과 작가 이름만 잔뜩 적혀 있다. 소설이나 시를 읽을 때 좋은 문장이 있으면 종종 적곤 하는데, 이번에는 단 한 문장도 적지 않았다. 기발한 생각이 무더기로 많았는데, 문장이 괜찮았는데 왜 적지 않았을까?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 이유를 알고는 피식 웃는다. 너무 많았던 거다. 적어도 이 책을 팔지는 않겠구나. 유려한 문장과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 보통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로 결합된 그의 문장은 본인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하면서 빛을 발한다. 흔히 일어나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적은 글은 그 상황에서 누구나 생각할 법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생각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표현한다. 점진적인 감정의 변화를 세밀하고 유머러스하게 드러낸 글이 모여 지문과도 같은 저자만의 문체가 된다. 단편 소설을 써도 어울릴 듯싶다.

 

얼핏 지질하게 보일 수 있는 축축한 생각들을 따스한 양지로 끌어올려 봄날 햇살을 받은 것처럼 뽀송뽀송하게 만드는 것. 저자의 글이 가진 힘이다. 독서만담이라는 제목과 어울리게 수필의 향기가 나는 이야기였다. 미소를 지으며 그 향기를 따라가다 내용이 어떨까 궁금해지는 책을 여러 권 만났다. 이야기 자체로도 유쾌한데 좋아하는 책까지 잔뜩 담겨있는 책이라니! 즐거운 음악을 편안하게 감상하고 난 느낌에 행복해졌다.

 

 

p40, 밑에서 두 번째 줄, ” 빠짐

p144, 세 번째 단락, 티켓 사자의 서』→『 티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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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7-03-05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앞뒤 맥락을 이해하지 않았거나, 문해력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쓴 것이 느껴지는 호평과 악평은 모두 ‘저런 분도 있구나‘라는 정도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나비종님의 글은 따뜻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습니다. 제 책을 칭찬해 주시기도 했지만 이 정도로 제 책을 철저하게 읽었고 사려가 깊은 분이라면 그 어떤 지적이라도 달콤할 것 같아서요.

오타를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판을 찍게 되면 반영토록 하겠습니다. 특히 책 제목 오타를 냈군요. 고맙습니다.

리뷰를 읽다보면 대체 이 분들은 왜 책을 안 쓰는거야?라는 감탄이 나올 때가 있어요. 나비종님의 글이 딱 그렇네요. 제목에 변주곡이라는 말이 나와서 내 책이랑 변주곡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궁금했는데요.

아귀가 딱 맞는 비유이시네요. 다만 과찬이라서 제가 좀 민망합니다. 언급하신 책 모두 좋아요. 적어도 저는 그랬어요. <뇌내혁명>은 당시 베스트셀러였어요. 오래된 베스트셀러라서 ‘이게 뭐야‘라고 지적하는 독자들이 있을 수 있지만(놀랍게도 실제로 있습니다) 좋은 책은 시기의 장단기, 판매여부와는 상관이 없다고 봐요

천년전의 책이건 오늘 나온 책이건 , 1천만권이 팔린 책이건, 수십권이 팔린 책이건 독자에 따라서 명저가 될 수 도 있죠. 읽은 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저에게 <긍정 마인드>의 중요성을 알려준 인생의 책 중의 하나에요. 리뷰 감동적으로 잘 읽었고 과찬은 질책으로 여기겠습니다. 저보다 글을 잘 쓰시는 것이 확실하니 기회를 봐서 출간하시길....

나비종 2017-03-05 12:09   좋아요 0 | URL
댓글이 거의 없는 황량한 이 공간에 이토록 성의있게 댓글을 달아주시다니요. 댓글을 쓰신 분이 무려 헉! 작가님이라 한 번 놀라고, 리뷰에 대한 리뷰를 쓰신 듯 막대한 분량에 두 번 놀란 일요일 아침이었습니다.ㅎㅎ

함무라비 법전의 원칙을 일상 뿐아니라 글에도 적용하는 편이라 댓글에 대한 댓글도 거의 비슷한 분량으로 달아왔습니다. 가령 ‘잘 읽었습니다.‘란 글이 달리면, ‘감사합니다.‘라 적었다가 음, 한 글자가 모자라는군! 하며 ‘감사합니다, 훗!‘이런 식으로요. 어제 저녁, 책에 대한 리뷰를 쓰다 필이 꽂혀서 새벽녁까지 두 눈 시뻘겋게 뜨고 써대는 바람이 이제 겨우 멀쩡한 두 눈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좋은 느낌으로 리뷰를 읽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책읽는 속도가 느려터져서 읽다보면 다소 세밀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직업의 특성상 앞에 주어진 테이터를 분석하고, 특징을 파악하고, 비슷한 성질을 가진 것들끼리 분류하고, 오타를 발견하는 일에 익숙해져있다보니 저도 모르게 치밀해지곤 합니다.^^; 책 제목에 대한 오타 앞에서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사후 세상으로 가는 내용을 소개하신 책이라 티켓으로 입장하는 것처럼 일부러 중간에는 제목을 바꿔쓰신 게 아닌가 하구요. 궁금한 마음에 적어놓았더니 답변을 주시네요.

캐논을 떠올린 이유는 전체적인 느낌 때문입니다. 정황상 분명 같은 사건이었을 것 같은데 조금씩 변화되는 내용과 문장들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거든요.

요즘에는 고전에 관심이 가서 책을 구입할 때 학창시절에 읽지 못했거나 허술하게 읽었던 도서도 함께 구입하고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직 읽지는 못했지만, <데미안>,<노인과 바다>등 다시 읽고 새로운 느낌을 받고 싶어서요. 좋은 책에 대한 생각이 저와 일치하시네요. <뇌내혁명>도 구입해서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사려가 깊다거나 작가님보다 글을 잘 쓴다하신 표현은 과찬이십니다. 이 공간에서 독서의 고수, 생각의 고수님들의 글을 접하다보니 제 생각이 습자지처럼 얇아서 깊이를 논하기 어려운 지경이고, 제 글 역시 비루하고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거든요. 더욱 많이 생각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라는 질책으로 담아두겠습니다.ㅎㅎ(민망해하면서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나오는 나비종은 따라쟁이~~)

박균호 2017-03-05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맙습니다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나비종 2017-03-05 13: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박균호님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