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중고서점 대전 시청역점 오픈

<2,000원의 유혹>

때문이었다. 3 미니의 국어 수행평가. 독후감을 써야 할 도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인터넷 주문하면 10,800원인데, 시청역점에서는 중고가가 2,000원이란다. 얼마 차이가 안 났으면, 귀찮아서라도 그냥 새 책을 주문했을 텐데 이건 싸도 너무 쌌다. 20% 세일도 아니고, 20%의 가격이라니!

갈등이 일었다. , 분명 허접하고 저질일 거야~ 자기 암시를 걸었지만, 어느새 나는 가지 말아야 할 이유보다 가야 할 이유를 더 많이 찾고 있었다. 집에서 거리가 먼 은행점도 아니고 걸어서 30, 버스로 20분이잖아? 다른 책도 거기서 보고, 방문 후기 이벤트도 한다니까. 아참! 팔 것도 있잖아.

2016661350분은 나와 시청역점이 만난 시간. 시청역점은 나의 운명이 되었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다는 것. 품절 절판 도서를 지칭하는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곤 한다. 은행점에도 있고, 알라딘의 다른 중고 서점에도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문구. 우주를 연상하게 하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는 장엄한 사명감조차 가져다준다. 꼭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이미 사라진 책을 읽는 내가 특별한 인간이 될 것만 같은.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책이 탄생과 소멸을 계속 하는가. 그 중 내가 읽게 되는 얼마 안 되는 책들은 차라리 운명으로 연결되었다 해도 과장은 아니리라. 많고 많은 책들 중에 하필 그 책이라는 것은. 그 안에 담겨진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 하필 내 영혼을 울리는 문장을 만난다는 것은.   

 

<그 옆에 펼쳐진 광경이>

사실은 더 좋았다. 아저씨, 아주머니부터 젊은 사람들, 아이,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테이블을 공유한 채 진진하게 펼쳐지는 독서 모드. 중학교 때 시험공부를 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생각이 났다. 책만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자유롭게 읽고 싶은 책을 꺼내어 읽고, 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았던 책들이라는 점에 더욱 정감이 갔다. 이 공간에 있는 책들은 누군가에게 한 번은 읽혀졌던 것이니, 내가 그 책을 집어 드는 순간, 원래 주인과의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니. 비록 오프라인으로 소통까지는 못하더라도 예전 시골에서 함께 일을 도왔던 두레처럼 알라딘이라는 커다란 마을 안에 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읽었던 책은 누군가에게 내어놓고, 누군가 내어놓은 책을 내가 읽게 되는. 책을 매개로 하는 공동체인 듯이.

 

<마법의 시간 여행이네?>

미니를 데리고 간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혹시 다른 책도 필요할까 물어보려 데려갔던 것인데, 나를 따라 공간을 둘러보던 미니가 G58 앞에 멈추어 선다.

이거, 나 초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많이 빌렸던 건데. 재미있어? . 재미있었어. ! 옛날 생각난다.

한 때는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약까지 하며 시리즈로 구비하게 하더니, 이건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았던가보다. 잠시 생각에 잠긴 아이. 이제 중3이 되어 슬금슬금 내 키를 앞지르기 시작한 영혼은 과거를 회상하며 시간 여행을 떠난다.

A에서 G에 도달하기까지 둘레둘레 둘러보면서 내 학창시절로 잠깐잠깐 거슬러 갔다 왔더랬다. ! 이거 엄마 중학교 때 나왔던 책인데. 눈을 반짝이며 엄마의 어린 시절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아이가 드디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발견한 거다. 최종 학력 초등학교 졸업인 아이에게도 이런 시간을 가져다주는 공간이라니.

광활하게 펼쳐진 책들을 앞에 두고 각각 자신의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하고 온 엄마와 딸. 서로의 어린 시절을 공유하며 뜻 깊은 추억을 만들어낸다.

   

<우와! 저 종이 고양이 이쁘다!>

핸드폰 셔터를 눌러대는 엄마를 한심한 듯이 바라보는 아이. 엄마! 저건 종이 고양이가 아니라, **이야. 그 때 분명 이름을 들었는데, 금방 리셋 되어버린 저질 기억력 같으니라고.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읽는 공간에는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동심을 부르는 문양이 시선을 끌었다. 은은한 조명을 받아 파스텔 느낌을 주는 화한 느낌이.

  

<19세 미만 구입 불가!>

우왓~ 어디 보자. 화색이 만연하여 달려드는 엄마를 저질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미니. 어라? 볼 수가 없네. 금새 실망한 엄마를 보고, 당연한 거 아니야? 아이들도 오는데 라며 짐짓 어른스럽게 말하는 바람직한 청소년이다. 다른 책들과는 달리 정성스럽게 개별 비닐 포장으로 싸여있다. ! 그 순간 눈에 들어오던 코너 번호 A18. 왠지 찔렸다.

   

<음료를 여기에>

놓은 커플이 아래에 있는 장바구니를 든다. 한두 번 와본 포스가 아니다. 그래, 국물을 흘리면 매입불가등급으로 난감해지는 상황이 올 것이니. 주저리주저리 다른 설명 없이 단 2개의 그림만으로 음료는 여기에, 책은 여기에를 설명하는 심플함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기다리지 않을 거예요~>

속으로 외치고 당당하게 골랐던 책 2권을 내밀었다. 이건 어디서 계산하지? 입구 쪽을 둘러보던 우리는 번호표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되는 전광판을 보고 움찔 당황한다. ! 번호표를 뽑는 거였어? 두리번거리다 아하! 깨달음을 얻는다. 팔러오는 사람들은 책 바구니 옆에 마련된 번호표를 뽑아서 대기 순으로 책을 팔고, 구입하는 사람들은 번호표 따위 필요 없단다.

5,400원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씁쓸한 초콜릿, 무려 2권을 구입했다. 중간 중간에 마련된 컴퓨터로도, 모바일로도 원하는 도서의 제목만 치면 가격과 재고와 D59[위에서부터 4번째칸] 등 친절하게 위치가 나오니 간편했다. 같은 책이라도 상태에 따라 조금씩 가격 차이가 나니 꺼내어 서로 비교해보고 결정을 할 수도 있었다.

 

<이런 센스 참 좋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옆에 붙어있는 안내 문구를 무심코 바라보다 감탄을 한다.

와이파이.. 와이 낫?’ No Problem처럼 문제없다는 허용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무장점원 근무중은행 같은 데서 볼 수 있는 문구에 대한 패러디인가? 점원이 무장하고 있는 모습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웃겼다.

사진촬영 환영사실 사진을 찍으면서 약간 께름칙하기는 했다. 대개의 전시장이나 공연장에서 사진촬영을 금지시키듯이 이곳도 그렇지 않을까 지레짐작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몰래 몇 컷 찍기는 했지만. 이 문구를 보니, 나 뭐한 거임? 하는 생각에 스스로 웃겼다. 들어올 때 보지 못한 문구가 나가는 마당에 보이다니.

책 읽는 개만, 마음의 양식만긍정적이고 위트 있는 문구. 금지사항을 이렇게 바꾸어 표현하다니. 아 다르고 어 다른 언어의 위력을 다시 생각해본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따뜻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알라딘 시청역점은 공부를 하던 학창 시절, 때로는 만화책에 미쳐있던 시간들을 타임머신처럼 끌어왔다.

중고 서점이면 한 마디로 헌 책방인데, 헌책방이 주는 뭔가 구석지고 먼지가 뽀얗게 일 것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구석구석 위트 있고 산뜻한 에너지가 매력적인 곳이었다.

대형 서점 못지않게 드넓은 공간, 자유롭게 책을 꺼내어 읽는 분위기, 시청역 근처에 약속이 생긴다면 이곳으로 약속 장소를 잡는 것도 괜찮겠다. 사람을 기다릴 때 들고 다니는 책을 읽을 만한 분위기가 안 되면 핸드폰을 들여다보곤 했는데, 이 곳이라면 잠시라도 책을 펼쳐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니.

마법의 시간 여행을 하고 온 듯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마법 같을 시간여행을 할 것만 같은 예감에 가슴이 설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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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6-06-12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오후 가보려고요 ^^

나비종 2016-06-12 12:50   좋아요 0 | URL
버스를 타고 갔는데, 시청역 정류장에서 내려서 길 건너 몇 걸음 걸어가니 있더군요. 주차장도 있다고 하고, 마땅치 않으면 시청 주차장을 이용해도 되니 교통도 편리해서 좋아요~^^
앞으로 책장에 꾸역꾸역 넘치는 책도 팔러가려구요ㅎㅎ

cyrus 2016-06-12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점은 지하에 있어서 그런지 가끔 와이파이가 안 터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 점만 빼면 대구점도 좋아요. ^^

나비종 2016-06-12 20:33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대구점은 한 군데 있나요?^^

cyrus 2016-06-12 20:39   좋아요 0 | URL
네. 딱 한 곳 뿐입니다. ^^

나비종 2016-06-12 20:42   좋아요 0 | URL
대구에는 두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둘 다 현지인의 안내를 받았던 거라 제겐 다소 낯선 이미지의 도시랄까요.
언제 한 번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