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al Moments -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
조던 매터 지음 / 월간미술 / 2014년 7월
평점 :
절판


무엇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어느 정도일까? 몇 십 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는가 하면 단 몇 분, 몇 초 만에 마음이 바뀌어버리는 마법 같은 순간도 존재하는 듯하다, 이 책의 제목 ‘Magical Moment’처럼.

 

처음에는 와이어도 없이 이 개고생을 굳이? 라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멋진 장면들이 많았지만,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런 인위적인 장면들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뭔가 억지스러운 설정에 끼워놓은 느낌이랄까? 사진집의 형태라 보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휘리릭 보고 책장에 꽂아두었다.

 

이제껏 보았던 춤 중 가장 멋있었던 것은 강한 비트에 심장을 ‘바운스 바운스’하는, 관절을 꺾고 몸을 휙휙 돌리는 것이었다. 남성미가 팍팍 풍기는 배경 음악처럼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몸짓에 설레곤 했다. 적어도 그의 춤을 보기 전까지는. ‘댄싱 9’ 한 번 봐. 정말 재미있어. 진짜 춤을 멋있게 춰, 사람들이. 간혹 지인들이 말을 했지만 ‘춤을 잘 춰 봤자지.’ 선뜻 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김설진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미의 ‘기억상실’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 3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금새 흘러갔다. 헉! 하는 첫 느낌. 모니터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수의 노래에 맞춰 배경으로 깔리는 백댄서들의 춤과는 차원이 달랐다. 노래가 완벽하게 배경이 되는 장면들. 뭐라 표현하기 벅찬 느낌에 코끝이 찡해졌다. 춤을 보고 이렇게 먹먹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구나.

‘댄싱9 시즌2’를 다시보기로 미친 듯이 보기 시작했다. 이틀 동안 8회 분을 다 섭렵했다.

‘춤을 춘다’는 말만으로 그의 춤을, 그들의 춤을 나타내기에는 부족했다. 몸이 하는 말은 바디 랭귀지 밖에 모르던 내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말을 하지 않아도 전달되는 느낌들이 징하게 마음 한 가운데를 메웠다. 몸으로 하는 예술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감동을 받은 마음에 춤과 관련된 시도 지었다.

 

 

 

몸이란 붓이

공간에 담아내는

투명한 그림

삶의 흔적을 따라

내면의 울림 따라

 

류시화 시인의 『백만 광년의 고독 속에서 한 줄의 시를 읽다』를 읽은 후로 요즘 짓는 시는 하이쿠 내지는 와카화 되고 있다. 쩝~~^^;

 

몸과 춤에 대한 생각이 바뀐 후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았다. 수많은 사진들의 주는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우리는 현실의 제약과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 갈망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자신의 한계를 초월해 상승하려는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생에서 수없이 많은 도약을 시도하곤 합니다.

하늘을 나는 것은 희망과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지요. 조던 매터의 개인전은 우리 삶의 최고의 순간은 언제인지, 절정의 순간에 도달하기 위해 어떤 마음 자세와 노력이 필요한지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얻게 됩니다. 그리고 깨닫게 됩니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수많은 도약을 시도하는 인생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사실을.’...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p2)

 

1/1000초가 만들어내는 짜릿한 순간. 어떤 느낌일까?

중력의 법칙을 이겨낸 몸도 경이로웠지만, 다시 보는 사진에서는 도약하는 무용수들의 표정에 눈길이 갔다. 분명 힘겨웠을 것이다. 추위도, 더위도 견뎌야 했을 것이고, 반복되는 촬영 시간들은 아마도 인간의 한계를 보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러운 표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한결같이 행복하고도 희열을 느끼는 듯한 표정이었다. 사진에 담겨지기까지의 시간들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 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몸도 표정과 함께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었다. 몸이란 것이 정말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어릴 때에는 꿈속에서 자주 날아다녔다. 이쪽 옥상에서 저쪽 옥상으로 믿기지 않는 점프를 했다. 주로 쫓기는 꿈이었지만, 날아다닐 수 있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순간적으로 뿌듯함을 느끼며 깨어나곤 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날아다니는 꿈을 잘 꾸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 한없이 펼쳐진 푸르른 바다를 훨훨 날아다니는 꿈을 꾸곤 하는데, 실제로 날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고는 한다. 자이로드롭을 타고 내려올 때의 느낌처럼 몸 끝부분이 간지러운 듯한 느낌일까?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어보았을 ‘날고 싶다’는 꿈. 비현실적인 꿈을 순간적으로나마 현실에서 이루어냈던 사진 속의 그들이 살짝 부러웠다.

 

가장 좋았던 사진은 ‘Under the boardwalk'(p132)이다. ‘사랑은 어떤 환경도 이긴다’는 해석이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해석이 사진이 주는 메시지를 따라가지 못한다고나 할까? 하긴 ‘길 아래에서’라는 원제는 더 건조하지만. 거친 물살 한가운데 든든하게 여자의 몸을 받치고 있는 남자의 몸이 믿음직스럽다 못해 찡하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기억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순간을 기억한다’...체사레 파베세(p49)

과거를 더듬어보면 행복했던 순간들이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기억될 때가 있다. 우리 삶의 빛나는 순간들. 내 삶의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더라……?

목차에 나와 있는 말도 눈에 들어온다.‘Present is Present' (삶은 그 자체로 선물이다.) ‘선물’이라는 말과 동일어로 쓰이는 ‘현재’. 언제 마주쳐도 멋진 단어이다.

중간에 들어 있는 목차에 무용수들의 이름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는 점도 맘에 들었다.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스탭진들의 이름이 자막으로 주욱 올라오는 장면을 본 듯한 느낌이랄까?

구석구석 들어있는 멋진 말들과 장면은 중간 중간 책읽기를 멈추게 하고, 나를 어린 시절로, 현재로, 미래로 이끌었다.

예술이 삶에 주는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

 

화가는 붓으로

작가는 글로

작곡가는 음악으로

무용가는 춤으로

사진가는 빛으로

마음을 그린다

 

예술은 삶을 그리는 그림

삶이 건네는 먹먹한 떨림

 

 

나는 무엇으로 마음을 그릴 수 있을까?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마음을 잘 그려낼 수 있을까? 어떤 것이든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리는 그림이 가장 멋진 그림이 될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조던 매터가 맞이했을 1/1000초의 순간처럼.

나는 글을 통해서 수많은 도약 끝에 빛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계속 글을 쓰려 한다. 마법 같은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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