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든 - 완결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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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를 반복되는 고리에 담다 삶의 마침표를 찍고 싶지 않다. ‘하루는 1년의 축소판’(p445)이라면 이런 모습으로 재미없게 살면 안 되었다.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아야겠어. 작년 11, 나 홀로 여행을 꼭 떠나리라! 서재 블로그에 공표했다. 그랬건만, 야심차게 주먹 불끈 쥔 결심이 무색하게도 1231일의 나는 스스로 한 발자국도 떼어보지 못한 채 1년을 마무리하고야 말았다.

왜 떠나지 못했을까? 직장 일이 바빠서, 부양가족을 챙겨야 해서, 막상 혼자 떠나려니 겁이 나서. 떠나야 할 이유보다 떠나지 못한 변명은 분분했다. 지키지 못한 계획에 갖가지 핑계를 매달고 있었다. 뭐라 하는 사람도 없는데 괜스레 혼자 껄끄러웠다.

빠른 여행자란 자기 발로 가는 사람’(p85)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곱씹다보니 깨달아지는 것들이 생긴다. 스스로의 한 걸음이 지닌 무게를, 한 걸음이 담고 있는 수많은 망설임의 시간들을, 그것이 품고 있을 순수한 용기를. 가지 않은 길을 걷기 위해서는 얼마나 커다란 힘이 필요한지 한참을 생각했다.

 

지난 명절에는 두 종류의 전을 부쳤다. 빈대떡과 동태전. 이 두 가지는 제조과정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 빈대떡은 녹두를 갈아 당근, 김치, 숙주, 양파, , 찹쌀가루 등을 넣고 잘 버무린 뒤 프라이팬에 부친다. 반면, 동태전은 밀가루를 묻히고 계란 물을 입힌 다음 부쳐낸다. 이런 이유로 동태전을 먹다보면 알맹이가 부침 옷과 분리되어 쑥 빠져나오기도 한다. 소로우의 삶은 이를테면 빈대떡 같다고나 할까. 겉과 속이 분리되지 않는 삶. 마음이 원하는 대로, 몸이 원하는 대로 다양한 요소들이 적절히 버무려져 하나 된 삶 말이다. 월든 호수 주변에서의 소박한 삶이 다른 이들에게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 (중략) 일을 두 가지나 세 가지로 줄일 것’(p141)을 말하며 말한 대로 실천하던 사람. 참 홀가분하겠지 싶었다. 무소유의 삶이란 이런 모습이겠지. ‘내 인생에 넓은 여백이 있기를 원한다.(p171)는 말이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그의 문장들이 붓이 되어 수묵화와 닮은 삶을 그렸다. 그 삶이 품고 있을 드넓은 시간과 공간이 너른 마당처럼 펼쳐졌다.

 

책 자체로 판단하면 각주가 해당 페이지의 아래에 있다는 점은 친절하고 좋았으나 나는 ~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와 같은 유형의 번역은 읽기에 편하지 않았다. 존댓말과 반말이 뒤죽박죽 섞인 문장을 접한 듯 거부감이 들었다. 원문의 맛을 모르니 감히 문체를 언급할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중간 중간 지루한 구간이 웅덩이처럼 나타났다. 사막을 꾸역꾸역 걸어가는 사람인 양 중간에 그만 멈추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삶에 적용해도 될 만큼 싱싱한 내용의 문장들을 붙들어가며 느린 속도로 걸었다. 무사히 끄트머리에 도착하니 담백한 맛이 나는 글들이 묵직한 위력을 발휘했다. 변화를 원하는 내 마음의 외피에 더께로 덮여있던 망설임들을 조금씩 날려 보냈다.

 

요즘은 버리는 중이다. 입지 않아도 아까워서 옷장 한 구석에 몇 년씩 자리를 보전하고 있는 옷을, 언젠가 쓸지 몰라 몇 년을 벽지처럼 머물던 물건들을 찾아 버린다. 버리는 만큼 마음은 점점 개운해지고 있다. 벌레가 무서워 자연에서의 삶은 엄두내지 못하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싶은 마음에 계속 버린다. 며칠 전에는 사무실 책상과 사물함을 정리했다. 각종 서류와 물건들을 버리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지닌 물건의 70%는 쓰레기라는 말이 맞구나 싶었다.

가지 않던 공간, 가지 않던 길을 조금씩 가보면서 바라보는 풍경의 변화를 체험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커피숍은 몇 달 전만해도 상상도 못했던 장소이니. 한동안 쓰지 않던 일기도 가끔 쓰며 마음을 재정비한다.

하지 않던 일도 해본다. 독립서점의 주인장이 운영하는 고독한 독서가들이란 프로그램을 신청하여 하루 30페이지 이상씩 책을 읽는 중이다. 처음 계획은 1월과 8, 두 달만 참여하려 했지만 1월말에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무사히 과속방지턱을 넘은 지 두 달째다. 이런 추세라면 학기 중에도 무난히 해낼 수 있겠다. 자신감이 생기니 독서 속도도 조금씩 빨라진다.

모든 행동의 이유는 하나다. 내 마음은 지금 변화를 원하고 있다.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p172) 책을 통해 숲에서 살아가는 소로우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만으로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닫는다. 몸이 서서히 들썩이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풍경을 향한다.

 

처진 달팽이<말하는 대로>를 들으며 소로우의 삶과 겹치는 부분을 발견한다. ‘어느 날 내 맘에 찾아온/ 작지만 놀라운 깨달음이/ 내일 뭘 할지 내일 뭘 할지 꿈꾸게 했지// 사실은 한 번도 미친 듯 그렇게/ 달려든 적이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 봤지 일으켜 세웠지 내 자신을//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마음먹은 대로 생각한 대로/ 할 수 있단 걸 알게 된 순간/ 고갤 끄덕였지 (중략)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 너의 길을 가/ 주변에서 하는 수많은 이야기/ 그러나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지금 바로 내 마음속에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정말 들어야 하는 건 내 마음 속 작은 이야기. 새삼 뭉클해지는 가사에 잠시 코끝이 찡해진다.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런 것 아닐까. 자연에서의 삶이 무조건 좋다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은 대로 당신의 길을 가라고.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p482)’ 내 심장의 북소리를 따라가려 한다. 마음이 말하는 대로 심장이 뛰는 대로 그런 공간으로 나의 몸을 데려다 놓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이 낯선 발걸음들을 계속 내딛으려 한다. 간절하고 순수한 동기가 흘러넘쳐 홀로 떠나는 여행의 첫걸음에 닿을 때까지. 그 안에서 나만의 자유를 찾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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