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운동을 도와달라는 말을 꺼내고 당신과 손이 맞닿던 첫날, 손금 사이로 미세하게 배어들던 물기를 기억한다.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째부터는 반비례 그래프처럼 긴장감이 줄어들었지. 접촉 시간을 늘리고 팔을 주무르는 관문까지 통과하다니! 음하하! 의기양양해진다.

 

책읽기, 일기쓰기, <남자친구> 일정을 순탄하게 마친 다음 천천히 빨래를 널고,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간 어젯밤. 힐끗 시계를 보니 23시를 조금 넘었다. 1시 넘어 자는 당신에게는 초저녁 수준의 시간이다. 세수를 하고 여유 있게 양치질을 하며 생각한다. ‘오늘은 어떤 운동을 시도해볼까? 백허그는 아직 좀 이르겠지? 팔 주무르는 시간을 좀 더 늘려볼까? 모가지가 아팠으면 좀 더 로맨틱했을 텐데. 아니지, 너무 세게 하면 목 졸릴 수 있으니 왼쪽 어깨 정도면 적당히 옳은 부위야.’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작은 꿈에 부푼 나.

 

.....

 

화장실에서 나오니 사방이 고요하다. 열린 안방문 밖 거실의 조도가 대폭 감소했다. ! 당신이 자는 거실에 불이 꺼져있다! 벌써 자나? 화장대에서 수분크림을 바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TV 소리가 들린다. 아항! 불을 끄고 TV를 보는구나. 더 좋아, 딱 좋아. 적당히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는 피부의 잡티가 자취를 감추니 내 얼굴이 예뻐지는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난다. 크크크.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었어. 온 우주가 나와 당신의 거리 좁히기 프로젝트에 도움의 손길을 뻗고 있군.

 

보송보송한 얼굴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거실을 향한다. 쩜쩜쩜. 당신은 자고, TV만 깨어있다. 이건 아니잖아, TV. 네가 자고 이 인간이 깨어있어야지. 어째 원하는 방향으로 술술 흘러간다 싶었다. . 조용히 TV를 재우고 당신의 이불을 덮어준다. 아쉬운 마음에 토닥토닥 이불 위 스킨십을 시도한 나는 살금살금 안방으로 들어온다. 살짝 짠하다. 많이 피곤했나보다, 당신.

내일은 당신의 피곤함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다시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불끈! 자만해서 긴장감이 느슨해질 타이밍에 적절한 인터셉트로 도전의지를 솟아오르게 하는, 온 우주는 그리 만만한 대상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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