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취향 -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취향 존중 에세이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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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운 글을 쓰고 싶다. 나만 쓸 수 있는 문장으로, 나만 쓸 수밖에 없는 내용을 글에 담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기에 내 글 안에는 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게도 문체가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은하의 모습은 옆에서 보면 원반형, 위에서 보면 막대나선모양이라고 한다. 은하의 크기가 10만 광년이나 되기에 현재 기술로는 누구도 전체를 입체적으로 볼 수 없다. 그 안에 있는 우리는 단면인 은하수를 보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같은 이유일 거라 생각한다. 내가 나의 글에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는 이유는.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고 다른 이의 글에서 독특한 문양이나 색깔이 보이는 걸 보면 아마 내게도 나만의 문체가 있을 텐데. 타인은 나의 글을 어떤 느낌으로 읽을까.

 

자신, 사랑, , 이웃, 여행 등 작가의 일상을 그린 에세이다. 카피라이터라서 이런 문체일까, 이런 문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서 카피라이터가 된 걸까. 어찌 되었든 김민철의 문체는 내 취향이다. 간결하고 은은한 유머가 배어있고 중독성이 있다. 주변의 소란에도 불편함 없이 단숨에 완독을 했다. 맨발로 편한 산책길을 다녀온 느낌이다. 그녀의 문장에서는 피톤치드가 폐 속 깊이 스며드는 상큼한 숲 냄새가 난다.

 

요즘 집안의 물건들을 조금씩 교체하고 있다. 위치를 바꾸기도 하고, 낡은 것을 새로운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커다란 것들은 아니고 사진틀이라든지 방향제라든지 작은 장식품 같은 물건들이다. 신기한 것은 물건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나를 둘러싼 환경이 새롭게 느껴져 미묘하게 신선한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어디에 무엇을 놓고, 어디를 어떻게 꾸미고, 어디를 어떻게 비울 것인가 고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 고민은 하나의 고민에 닿았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p26) 이 문장을 읽고 감탄한다. 얼마나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심리학인가! , 나는 이렇게 살고 싶은 거였구나. 조금씩 달라지고 싶었던 거구나. 이런 향기로 둘러싸이고 싶던 거구나.

 

학교 일을 과도하게 열심히 하던 때가 있었다. 일이 좋아서도 아니고 윗분들의 눈치를 보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가 허술함을 용납하지 못하여 제 발등을 찍는 성격,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이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읽으면서 절로 깨달아진 사실이 있다. 나는 일을 너무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 열정이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건 아니구나, 이런 삶은 아니구나. 몇 년 전부터 새해 계획을 세울 때 학교일 열심히 하지 않기를 실천 사항에 넣었다. 그렇다고 허술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라도 해야 남들 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몇 년을 하니 이제는 굳이 실천 사항에 포함시키지 않아도 될 만큼이 되었다. ‘두 번째입니다.’(p144~154) 라는 제목의 글을 읽으면서 확신한다. 이게 맞구나. 작가의 말대로 일은 힘이 세서 수시로 나의 의지를 말랑하게 하지만, 계속 노력해보려고 한다. 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몇 년 전부터 매년 1일에 하는 일이 있다. 201911. 새해의 계획을 세웠다. 주제는 가슴 뛰는 대로 움직이기. 세부 실천 사항으로 영화 월 1회 보기, 고독한 독서가들 최소 2회 참여, 글짓기대회 10회 참여, 수필일기쓰기, 자주 스트레칭하기, 당신에게 다가가기, 주변에 선물 자주 하기, 불필요한 물건 버리기를 정했다. 가슴 뛰는 방향으로 작은 걸음이라도 옮기려 한다. ‘나의 마음이 향하는 것들로 완성한 나만의 취향 지도 안에서 나는 쉽게 행복에 도착한다.’(p76) 작가의 말대로 가슴 뛰는 대로 살아간다면 어제보다 행복한 오늘, 오늘보다 행복한 내일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새해에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이 아닐까. 내 취향의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의 글과 내 삶의 방향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으로 말이다. ‘고독한 독서가들의 단톡방에 당당하게 읽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의 사진을 올렸다.

매일 글을 쓰려고 한다. 쓰다보면 내 모습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에. 오늘도 읽고, 나를 들여다보고, 내 마음을 어루만지고 글로 그린다. 글은 언어로 그리는 그림이라서 나의 글은 자화상이 된다. 못난 모습이라도 사랑스럽게 보듬어보려고 한다. 그러다보면 젊은 시절 방치했던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해서.

 

 

p169, 2째줄 : 진도 6.5 규모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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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9-01-02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만의 문체를 갖는건, 글쓰는 모든이의 소원인 것 같아요.
나비종님의 문체도 갖춰져있어요^^
읽기 편하구요ㅎㅎ

나비종 2019-01-02 19:25   좋아요 0 | URL
용기를 주시는 댓글이군요. 감사합니다! 저의 지향점 중 하나가 매우 저렴한 글이거든요.^^; 계속 다듬어 나가다보면 이건 누가 봐도 나비종이야! 라는 느낌도 나오겠죠? 그런 날을 향해 계속 달리려고 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