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반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1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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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알. 표지를 펼치기 전에 더듬어보았던 고등학교 때의 기억은 두 글자였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p110)’ 책을 읽지 않아도 지식의 바다에 동지 팥죽 새..심으로 동동 떠있는 문구이다. 왠지 간지 나는 문장, 이게 다인 줄 알았다.

소설 초반에는 주인공 싱클레어가 프란츠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학교 폭력을 다룬 청소년 소설이었던가. 이런 내용이 있었나. 새삼스러웠고 이게 다인 줄 알았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몽롱함으로 정신이 몽롱해질 때 알았다.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좀 더 심오한 차원이었음을.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갔구나! 요즘 퇴근길에 하는 생각이다. 수업을 주로 들어가는 3학년의 마지막 시험이 지난 1121일에 끝났다. 겨울방학은 117일에 시작한다. 교사라면 앞의 문장들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것이다. 그렇다. 제대로 수업 듣는 인간이 한 명일 때도 있다. 수업 시작종과 동시에 심호흡을 할 때, 힘이 되어준 문장이 있다. ‘누군가를 두려워한다면, 그건 그 사람에게 자기를 지배할 힘을 내주었기 때문이야.(p48)’ 두렵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들이 간혹 훅 들어올 때가 있다. 그들의 당당한 행동을 보면서 내 안에 있는 마그마가 불끈 올라오려할 때, 마인드컨트롤을 하게 해준 문장이다.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p136)’라는 문장을 떠올리며 관찰자의 입장이 되기도 했다. 올해가 지나면 사리 몇 개는 어딘가에서 만들어져있을 거라며, 이제는 화도 나지 않는 편안함으로 나머지 한 달을 맞이할 지경에 이르렀다.

 

싱클레어라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포장되어있으나 <데미안>은 인간이 품고 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동시에 열어 보이며 존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철학과 윤리학과 심리학이 문학과 어우러진 모습. 두 번째 읽으면서 나는 홀로그램을 떠올렸다. 평면적이다가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이중적이고 입체적으로 보이는 묘한 느낌의 이미지. 그 세계에 나를 대입해보며 인간이란 존재와 내 자신의 무의식에 대하여 생각했다.

 

무의식에 접근하는 통로가 꿈이라는 게 신기하다. 날마다 꿈과 현실을 오가며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니! 의식 세계보다 훨씬 크다고 알려져 있는 무의식의 세계. 내안에 있지만 내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 두렵다.

거울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무의식이란 말이 다시 떠오른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모습은 크게 두 가지이다. 바로 선 상과 거꾸로 선 상. 거울의 상은 거꾸로 맺히는 것을 실상, 바로 맺히는 것을 허상이라 한다. 선과 악, 의식과 무의식, 두 세상을 경험하며 갈등하는 싱클레어를 보면서 거울을 떠올렸다. 무의식의 세계가 꼭 거울 속에 거꾸로 선 실상인 것만 같아서. 거울 밖에서 내가 느끼는 의식 세계와 거울 속에 거꾸로 서서 실존하는 무의식의 세계가 점점 가까워지는 상상을 했다.

 

드라마 <남자친구>의 박보검이 가진 매력은 솔직함이다. 느낀 대로 행동하고 내면이 원하는 바를 드러내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인간은 자기 자신과 하나가 아닐 때만 두려움을 갖는 법이야.(p163)’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은 무의식 속 자신이 원하는 자아인지도 모른다. 작품 속 캐릭터의 힘이든 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의 힘이든 드라마를 보면서 자주 설렘을 느꼈다. 남녀 관계를 떠나서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외로움을 어루만져 주려는 그 순수에 가슴이 뛰는 거다. 아마도 드라마 속 박보검은 의식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와 가장 근접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바라보는 나는 홀로그램처럼 이중적일 때가 있다. 드러내지 못하는 모습들이 구석구석에 숨어있음을 간혹 느낀다. ‘누구나 오직 자기 자신만을 해석할 수 있을 뿐이다.(p9)’ 나란 인간을 해석하고 싶어졌다.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때론 에둘러가려는 유혹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래서 더욱 먼 길이 될 지도 모르지만, 소설 <데미안>이 나에게 용기를 준다. 그 모습까지 받아들여야 진짜 를 만날 수 있다고. ‘바깥 세계가 처음으로 나의 내면세계와 순수하게 일치하는 울림을 냈다.(p166)’ 말하던 주인공은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작가는 이 문장을 쓰면서 스스로 얼마나 공감했을까. 의식과 무의식이 일치하여 공명을 하는 순간의 희열을 내 것으로 경험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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