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과 제왕 - 문화인류학 3부작 넥스트 3
마빈 해리스 / 한길사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시원해 보이는 강물 줄기, 연초록의 가뿐한 나무들, 외국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지층. 컴퓨터 바탕화면의 이미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탁 트인다. 체온을 넘어서던 2018년의 여름을 가까스로 넘겼다. 아침저녁으로 가을이 묻은 바람이 분다. 파란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대 중국, 인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강을 중심으로 발달되었다는 문명들이 떠오른다. 물을 지배하던 절대 권력과 전제군주제 아래에서 수력 사회를 살아가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책을 읽고 나서 바라보는 물은 더 이상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마빈 해리스가 1977년에 쓴 책이다. 처음에는 주춤했다. 과학이 발달되어가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가속화되는 세상인데, 40여 년 전에 쓰인 내용이 얼마나 실효성을 나타낼 수 있을까. 절판된 책이라 중고로 구입해야 한다는 점도 망설임의 이유를 더했다. 꾸준히 읽히는 책은 아니라는 말이니. 따분하지는 않을까. 40년의 간극이 이질감으로 채워지지는 않을까.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이 모든 망설임보다 호기심이 조금이나마 컸던 것이 책장을 펼친 이유다. 나는 책이 쓰인 시점으로부터 40년 동안 일어난 변화를 이미 아는 입장이니, 문화의 흐름을 읽는 저자의 예측이 요즘 세상과 얼마나 일치될 수 있을까가 궁금했다. 옮긴이는 책을 번역하면서 1994년 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즐겁게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2018년 여름, 독자에게는 어떤 느낌을 줄까. 타임머신을 탄 기분으로 인류의 기원을 향했다.

 

문화인류학이라니! 생소한 분야였다. 내게 있어 문화란 움집, 초가집, 이글루, 수상가옥 등 거주 형태의 다양성이거나 한식, 양식, 분식, 중식, 일식 등 음식의 나열이거나 의복 형태의 변천사 같은 의미였다. 학창시절, 역사나 세계사 교과서에서 스치듯 배운 내용이 아는 지식의 대부분이었다. 더군다나 인류라는 거창한 말까지 결합되니 규모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져서 내가 이해할만한 분야가 아닐 것만 같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역사를 알아서 어쩌자는 건지 싶기도 하고.

식인과 제왕이라는 제목부터 탐탁지 않았다. 세상 어딘가에는 아직도 식인종이 있다지만 극히 일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목으로 대표하기에는 과하다 싶어서. ‘식인제왕이란 말 역시 아무리 연관을 지어보려 해도 접점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식인 문화는 일부 독특한 인종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여기에 정치, 종교, 경제, 사회 문제 등이 인과 관계를 이루며 사람들과 얽혀있었다. 일련의 역사가 야만적이라며 무조건 비난할 수 없을 만큼 합리적인 이유로 존재했다.

 

에세이형식이면서도 인류학에 대한 이론이 풍부하게 담겨있어 교과서를 공부하는 듯 했다. 저자는 문화 발전에 일종의 프로세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생식압력(인구증가압력)에서 시작한 과정은 생산증강을 가져오고 이로 인해 생태 환경의 파괴와 고갈이 발생하면 새로운 생산 양식이 출현한다고 설명한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이제껏 발생했던 문화는 자연환경에 대한 인간의 적응과 자기조절 과정의 반복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유적들과 현존하는 일부 부족의 모습과 동서양의 사례들을 근거로 제시하며 인류 문화의 발달 과정을 말한다. 문화를 바라보는 거대한 틀을 제시하는 책이다.

교과서를 저런 식으로 배웠으면 어땠을까. 어른이 되어서 접하는 내용들이 새삼스럽다. 나이 들면서 생긴다는 통찰력은 죽어가던 지식에 생명력을 주는가. 학교 다닐 때에는 글자로만 인식되던 지식들이 마음에 들어와서 꿈틀댄다. 종종 느꼈지만 세상에 저절로 이루어진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한 줄의 문장에 담긴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세월의 무게가 벅차고 먹먹했다.

 

동굴 안에서 발견되었다는 석공 기술의 흔적이나 엄청난 뼈 더미는 석기시대의 생활이 지극히 어려웠을 거라는 가정을 여지없이 깨어버린다. 남자 177cm, 여자 165cm. 구석기 시대 성인의 평균 신장으로 추정되는 데이터라고 한다. 생각보다 풍족한 삶을 누렸을 거라는 증거다.

일부 식물학자들은 식물이 움직일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광합성으로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기에, 먹이를 찾아 헤매야 하는 동물과는 달리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이라고. 이 책에서도 인간이 천성적으로 정착하기를 원해서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석기시대에 농사를 짓지 않은 것은 지식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농사를 지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고대로부터의 인류의 생활은 비례관계 그래프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나아지는 방향으로 발달되었다고. 근거 없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은 얼마나 오만한 것인가.

 

농업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빙하 시대 말기, 지구의 온난화로부터 출발한다. 기후 변화로 목초지가 소멸되면서 육식하는 인간에 의해 거대 동물의 멸종이 일어나고, 좀 더 작은 짐승을 거쳐 곡물 쪽으로까지 관심 대상이 확산되면서 농업적 생산 양식이 유발된다. 짐승이나 농사에 이용되는 가축의 분포에 따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의 구세계와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신세계의 촌락 생활에도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저자는 농사를 지으면서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기원을 이렇게 본다.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발생한 생산 양식이라는 것이다.

변화는 멈추지 않고 일어난다.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환경이 소모되고 자원이 고갈된다. 생활수준의 하락을 막기 위한 대가가 필요해진다. 인간과 자원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수렵채집인들의 선택은 전쟁과 여아 살해이다. 전쟁에 참여하는 남성들과 연관이 되어 부계제나 모계제가 출현한다. 저자는 남성지배제와 외디푸스 콤플렉스의 원인도 전쟁에 있다고 본다. 남성에 의한 무기 독점의 부산물로 성차별적인 관습과 제도가 생겼다는 것이다.

농업 생산을 강화하다보니 이를 주도적으로 밀고 나갈 필요가 생긴다. 원시국가가 발흥한다. 국가는 자유로부터 예속으로 내려앉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 안에서 생산의 증강을 이끄는 자들은 빅맨이나 무미라 불렸고, 식량을 분배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권력은 막강해진다.

 

강도 높은 생산 활동으로 다시 인구가 증가한다. 가축이 드물었던 메소아메리카(중부아메리카와 멕시코)로서는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으로 인육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과정은 정황상 이해가 된다 해도 섬찟하다. 아즈텍이나 톨테카족, 마야족 등의 문화에서 종교적 희생의식으로 거행되었다는 인신공희. 인신공희를 위한 방편으로 전쟁을 일으켰고 주로 포로들이 식인의 대상이 된다. 상당수의 노예나 청년, 처녀들도 희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한다. 인간을 죽이는 과정이나 인육으로 잔치를 벌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된 부분은 매우 원초적이었다. 육식동물이 피식 동물을 취하는 과정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여 자주 움찔했다.

가축이 이렇게나 고마운 존재였던가. 적국의 병사들은 덕분에 식량의 생산자로 이용된다. 인육이나 가축이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원으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은 비용 대비 효과의 문제이다. 라마의 먹이는 사람이 먹지 못하는 풀들이다. 잉카는 다행스럽게도 라마 덕분에 인육을 먹는 것을 그만둘 수 있게 된다.

유목민 사회의 돼지고기 금지도 필요에 의해 생겨난 문화이다. 육식의 계속적인 이용이 기존 생존 양식을 위태롭게 했기에 생겼다고 한다. 금기 대상은 물질적인 비용과 이득을 따져본 결과로 정해진다. 힌두교에서의 소고기 금지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동물 고기에 대한 일반 대중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지자, 육식은 브라만 등 선택된 계층만이 누리는 특권이 된다. 인구밀도가 증가하면서 농사기간동안 쟁기를 끌어야했던 소는 금기시된다. 불규칙한 몬순 강우에 의존해야 하는 농사의 특성 상 암소와 황소 보호가 긴박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힌두교도의 채식주의가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가 아니라 생산력에 대한 생식력의 승리라고 본다.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은 물을 지배하는 고대 제국적 통치제도의 복원이다. 생산을 집중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과정에서 전제주의가 통치 형태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물에 의한 올가미는 몇 천 년 동안 인간의 지성과 의지를 무력화시킨다. 물을 중심으로 발생한 문명사회에서 거대한 성곽, 피라미드 등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 구조물의 건축이 가능했던 이유다.

자본주의가 유독 유럽에서 발달한 이유도 생산 양식과 무관하지 않다. 봉건 제도로 농노제가 실시되고 생산의 기본 단위가 장원의 영지로 분화되면서 출발한다. 전염병과 전쟁과 여러 가지 요인 등으로 장원 제도가 붕괴될 위기가 오자 과학 기술과 기계 생산에 기초한 제도가 절실해진다. 이윤을 극대화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그 결과 자본주의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문화 발달 과정에서 꾸준한 희생양이 되어왔다. 구석기 시대의 유아 살해율은 50%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자행된 잔인한 행위가 석기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유아 살해는 취락 규모의 지나친 팽창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종종 이용되었다.

직접 살해뿐 아니라 간접 살해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졌다. 18세기 영국에서는 정부가 세운 영아 양육원이 사실상 어린이의 살해 장소로 이용된다. 수천 명의 기아들을 죽이는 유모들까지 존재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해 높은 출생률과 못지않게 사망률도 높았다. 19세기 초까지 양육기관에 있는 유아의 80%~90%가 출생 후 첫해에 죽어갔다니 경악할 일이다.

18세기 말 유럽에서는 드디어 어린이의 사망률이 감소하는데 그 이유에 화가 치민다. 어린이를 노동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니. 생존의 문제라 어쩔 수 없던 면도 있었을 거다. 어른들의 이기심이라고만 치부하기 어렵기에 마음이 더욱 무겁다.

자식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회면 뉴스를 보니 다시 답답해졌다. 예나 지금이나 어린이들은 약자일 수밖에 없는 걸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이를 희생시키는 방법이 유일한 선택지였을까. 속속들이 이어져온 역사적인 사실이 함께 떠오르면서 한동안 가슴이 아팠다.

 

19세기 산업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구 증가율은 감소된다. 인구통계상의 과도기로 불리는 시기가 나타났다. 저자는 그 원인을 3가지로 분석한다. 연료와 피임과 직업의 혁명이다.

직업의 혁명으로 경제 활동의 구조가 달라지면서 어린이에 대한 양육비가 증가한다. 이에 비해 극소 부분만 돈이나 재화나 용역으로 돌아온다. 이는 출생률의 감소로 나타난다. 21세기인 지금도 우리나라를 본다면 마찬가지 아닌가. 올해 우리나라의 2분기 합계출산율이 0.97명이라는 뉴스를 보았다. 0명대는 전쟁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나 나타날 법한 현상이라는데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인구 감소 현상은 자원 분배라는 단순한 시각으로만 보면 바람직한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연료의 혁명에 있다. 석탄이나 석유라는 연료가 재생 불가능하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현재의 식량 생산은 절대적으로 석유 공급에 의존한다. 저자는 감소되는 인구 증가율에도 불구하고 투입된 연료가 인구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게 될 것이라 예측한다. 대체에너지 전환의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태풍 솔릭이 지나간 후 요 며칠 장마처럼 비가 왔다. 긴장된 마음으로 뉴스 보도에 귀를 기울이며 기상 위성 사진을 가장 많이 보았던 지난주였다. 태양을 향해 정밀한 탐사선을 쏘아 올리고 우주여행상품이 개발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인간은 자연재해에 무기력하다. 지구온난화의 결과물은 상상 이상이다. 일기예보조차 보란 듯이 추측을 벗어난다.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이 만든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기분이다.

다양한 문화는 환경의 영향을 받은 인류가 생존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물이다. 문화현상들의 연결고리가 놀랍다. 나타날 수 없는 문화의 형태는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함부로 속단하면 안 된다는 점도 배웠다.

저자가 제시한 문화 발전 과정으로 본다면 대체적으로 지금 이 시기는 생태환경의 파괴와 고갈이 일어나는 단계로 판단된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상 이변과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한 데이터가 쏟아질수록 점점 분명해진다. 새로운 생산 양식이 나타날 시점이 온 것이다.

 

역사적 결정론을 지닌 저자의 입장에서 문화는 패턴처럼 되풀이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한다. 과정만을 본다면 환경에 순응할 수밖에 없나 하고 비관적인 듯 보이지만 저자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하는 인간들의 대응방식에 주목한다. 유사한 듯 동일하지 않고, 확정적인 듯 확률적이라는 것이다. 하고 많은 선택지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 선택을 하는 데에는 인간의 의지가 개입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보다 합리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노력하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의식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면 이 세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변화되어왔는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유용했다.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이 부채 살을 편 듯 확 늘어난 느낌이다.

도미노를 떠올린다. 인접해있는 블록이 다음 블록을 건드리면 쓰러지지만 조금이라도 방향이 틀어지면 가다가 멈추고 만다. 도미노의 성공여부는 미세한 차이를 두고 바뀌는 방향에 있다. 문화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책을 쓴 마빈 해리스로부터, 책을 옮긴 정도영에게로, 책을 읽은 나로부터, 이 리뷰를 읽는 당신에게로 이어지는 인식 변화의 도미노. 거대한 폭풍이 나비 효과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될지 불확실하지만 이렇게 이어지는 과정 어딘가에 아직 희망은 존재한다고 믿고 싶다.

 

p234, 2번째 단락 10째줄 : 암소을 암소를

p240, 2번째 단락 마지막 줄 : 우수꽝스런 우스꽝스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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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8-30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들의 사망율 감소와 증가 원인이 충격적이네요 ㅠㅠ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 요약만으로 책을 안 읽어도 될 거 같ㅇ....으면 안 되고 기회 될 때 꼭 읽어보려고 합니다

나비종 2018-08-30 15:25   좋아요 1 | URL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된 거라 대략적인 요약에 최선을 다했으나 내용 자체가 엄~~~청 방대합니다ㅎㅎ 세계사 내용 요약 숙제한다 생각하고 읽었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