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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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요?” 의외라는 듯 다시 한 번 나를 본다. “국어나 가정이라고 생각했는데…….” “전공을 잘못 선택한 바른 예죠.” 열에 여덟은 물리교육을 전공했다고 하면 매칭이 안 된다고 한다.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시와 리뷰를 쓸 때면 종종 생각했다. 아무래도 나, 전공을 잘못 선택한 모양이야. 감성적인 마음이 공식과 실험 데이터에 부딪히며 마찰음을 냈다. 사포로 된 바닥에서 물체를 끄는 사람이 되어버린 듯 어색하게 주춤거렸다. 되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나.

물론 과학이 나의 본성과 전혀 동떨어진 분야는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가장 좋아했던 과목은 수학이었으니. 깔끔하고 명료한 점이 매력이었다.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한 서술은 질색이다. 체계적인 알고리즘을 따라 사고할 때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과학적인 면이 아주 없지는 않다. 다만 글과 시가 조금 더 강한 인력으로 내 마음을 끌어당길 뿐이다.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책 제목이 마음을 몰랑하게 만든다. 이해하지 못했던 방대한 내용들을 억지로 머리에 구겨 넣으며 공부했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해하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다. 시험을 보거나 리포트를 쓸 때에는 임시방편으로 외우거나 자료를 찾아보면서 근근이 버텼다. 물리교육을 전공했다고 말하기 부끄러운 모습으로 대학을 졸업했다.

작가의 말을 읽고 깨닫는다. 4년 동안 전공을 공부하고 27년째 과학 수업을 해오면서 내가 무엇을 놓쳐왔던가를. ‘과학이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던졌어야 할 질문이다.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기에 답변이 궁색해진다. 과학의 근본을 끊임없이 질문해온 걸까. 이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명쾌하다. ‘과학은 삶의 태도다.(p6)’ 라고. 이 문장이 이제껏 나의 고민을 묶고 있던 실의 끄트머리를 붙잡는다. 4페이지에 담긴 내용이 실 끝을 가만히 잡아당긴다.

과학과 문학. 커다란 삶의 테두리 안에서 두 분야는 단지 방법의 차이일 뿐이라 정의해본다. 과학이 생각하는 방법이라면 문학은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굳이 경계 짓지 않아도 되는.

 

나는 무엇을 가르쳐왔던가. 냉철하게 판단해보니 주를 이루는 것은 단순한 지식이다. 에모토 마사루의물은 답을 알고 있다(p113)에 관한 내용을 읽고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물의 결정 사진을 인터넷으로 보여주면서 양파로 한 번 실험을 해보라는 둥 떠들어댔다. ‘공포의 전자레인지(p143~147)’ 에서는 휴대폰과 전자레인지에서 나오는 전자기파에 대한 내용을 읽고 나서 머리를 떨군다. 고차원적인 본질을 가르치지는 못할망정 엉성하게 틀린 지식이었다니.

교과서에 기록된 지식이 절대적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하기는 했다. 지금 여러분들이 배우는 지식은 현재까지의 진리라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무지에 대한 변명으로는 빈약하다. 조금 더 고민하고 제대로 찾아보았어야 했다. 그나마 과학자는 매일 실패하는 사람들이다.(p264)’ 라는 말로 위안을 삼는다.

 

많은 발명품들이 자연을 모방한다. 거미줄 소재 방탄복, 연잎의 나노 구조를 활용한 초발수 유리, 개코도마뱀 발바닥을 모방한 장갑이나 접착제, 홍합에서 단백질을 추출하여 의료용 접착제를 만들어낸다. 어떻게 저런 동식물을 보고 저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과학 뉴스를 검색할 때마다 매번 감탄한다. 기발한 물건들이 참 많다. ‘창의성이란 있는 것들을 이렇게 엮고 저렇게 편집하여 새로운 것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p286)’ 홍합탕을 맛있는 먹거리로만 생각했다면 이런 발명품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물들은 응용할 점이 무궁무진한 대상이다.

글이나 시를 쓸 때에도 비슷한 룰이 적용된다. 얕은 지식이나마 내가 아는 과학 지식이나 관점은 적절한 비유에 매우 유용하게 동원된다. 어떻게 이런 상황을 여기에 비유할 생각을 했지? 가끔 듣는 말이다. 하루의 많은 부분을 과학책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생각이 절로 과학과 연결 지어지는 것일까.

 

삶과 동떨어진 과학은 의미가 없다. 저자의 글은 과학적인 요소를 삶에 적용하는 데 탁월했다. 사회적인 이슈에 과학이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과정이 감탄스럽다. 작은 꽃이 번식하는 과정인가 싶더니 어느덧 연대로 이어진다. ‘시민 한 명 한 명의 힘은 작다. 우리가 주인이 되는 길은 벚꽃처럼 서둘러 흐드러지게 피는 수밖에 없다.(p52)’ 라고.

곳곳에 배치된 깊이 있는 유머는 짧게 웃고 길게 생각하게 만든다. 과학교과서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잠시 상상해본다.

 

버려야 빛난다.(p57)’ 라는 문장이 문신인양 강렬하게 새겨진다. 본질을 생각할수록 이 책의 가치를 빛내주기에 충분하다. ‘빛은 빨아들이고 커질 때 나오는 게 아니라 버리고 작아질 때 나오는 것이다.(p60)’ 수업 시간에 태양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타는 유일한 항성이라고 얼마나 반복해왔던가. 그 과정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다. ‘에너지를 버릴 때 빛이 난다. (중략) 태양에서 빛이 날 때는 더 많은 것을 가져서가 아니라 자기의 것을 버리기 때문이다.(p57)’ 몇 번을 읽고 또 읽는다. 별의 일생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삶의 태도가 빛이 발한다. 버려서 빛이 나는 삶이라. 그런 삶을 그대로 닮은, 그래서 아름답게 빛을 내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문학과 과학 사이의 어느 지점을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있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난 걸까. 나에게 적절하게 날아든 행운이었다. 책 속에 나온 지식이 술술 읽히는 순간에는 과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웠다. 잠시 잊고 있었다.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 신중함은 실험을 통해 얻어진 것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사고하면서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있었음을. 관찰을 하면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온 습관이 대화에 적용되어 팩트와 스토리를 구분하고 있었음을.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지혜였다. 과학과 삶이 깔끔하게 연결되는 순간 생각했다. 여전히 어렵지만 과학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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