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2회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저는 지혜로워지고 싶었습니다. 내가 지혜롭지 못해서 남들을 괴롭히는구나. 그때부터 남의 말을 듣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저는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그건 가장 부지런해져야 한다는 벌이었습니다. 책 읽고, 영화 보고, 미드 보고, 음악 듣고, 죽어라 뭔가를 보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읽은 책 목록엔 미야베 미유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지냈습니다. 어떤 날은 나를 쓰다듬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를 혼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나에 관한 글을 써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상을 주기도 하고. 스스로 지혜로워졌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침잠하기로. 그런데 그때부터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즐거워졌습니다. 오늘은 어떤 책을 읽을까? 오늘은 어떤 영화를 볼까? 오늘은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볼까? 그 시간은 정말 최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무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그때부턴 빨리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잘하는 게 문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에 정말 고마운 일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 지독한 자기 연민이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나는 어떤 경우든 누구에게든 위로를 받아야 해,라는 생각이 무너진 겁니다. 한 친구가 저를 배신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친구는 제 앞에서 자신이 왜 그런 인간이 되었는지, 알고 보면 얼마나 불쌍한지 쭉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 저건 나다! 란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저는 가장 비참하고 초라한 제 모습을 봐버렸습니다. 자기 연민이 골수까지 박힌 인간이 타인한테 할 수 있는 일을 본 겁니다. 저는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가장 불쌍한 것이 아니라 서로 불쌍한 것이다. 서로의 불쌍함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한테 위로 받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도 바꾸기로 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로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나를 위로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영주야! 하고 부릅니다. 영주야! 너는 어떤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니? 영주야! 너는 영화가 왜 좋니? 영주야! 너는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고 싶니?
사람들을 만날 때도 좀 바뀌었습니다. 이젠 주장하지 않고 듣고 싶어졌습니다. 누가 “난 쭉쭉빵빵이 좋아.” 그러면 예전엔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이제 묻습니다. “왜 좋아? 언제부터 그랬어? 촉감 때문이야? 아니면 야동을 많이 봐서 그러니?” 듣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싫어요.”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당신을 더 잘 알게 되나요?”란 질문이 가능함을. 그리고 그 질문의 힘을.
저는 제가 과거에 한 일에 대해서도 좀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발레 교습소」를 만들고 나서야 「발레 교습소」를 왜 만들고 싶어 했는지를 알게 된 셈입니다. 저는 그때 IMF 트라우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애들이 왜 이렇게 떨고 있나? 그 애들은 어린 시절에 IMF를 겪었던 겁니다. 저는 가난해도 괜찮아,를 맑고 밝게 그려내고 싶었던 겁니다.
그 시절에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 좋은 사람들 중에 정혜윤(그러니까 지금 글을 쓰는 저. 변 감독은 저에게 이런 걸 배웠답니다. 저렇게 한심해 보이는 애가 생각이란 걸 하다니. 사람을 겉보기로 판단하지 말자. 쳇!) 그리고 송경동이 있었습니다. 2008년에 송경동(이 사람에 대해선 『여행 혹은 여행처럼』이란 책에 꽤 자세히 썼습니다.)을 처음 만났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해맑게 “제 옆에 서 계시네요. 처음 뵙겠어요. 누나.” 그 표정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 당신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달아오를 수 있는지, 일종의 혁명의 리비도라고 할 수가 있겠죠.
저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지혜로워졌다기보다는 결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 자신을 산산이 태우며 작품을 만들겠다고. 장점도 100% 보여 드리겠습니다. 단점도 100% 보여 드리겠습니다. 무엇하나 숨기려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장점에서 매혹된 것이 단점에서 실망한 것보다 크기만 바랍니다. 이것이 제 심정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출사표를 던질 것인가? 나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 시간이 2년 반에서 3년 정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낮은 목소리」, 「밀애」, 「발레 교습소」까지는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저는 2년마다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 당시 나는 훌륭한 감독이 되고 싶은 꿈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 속에 어떤 사람이 내 영화를 보고 행복할까, 어떤 사람이 내 영화에 대한 관심을 가질까에 대한 고민은 없었습니다. 나는 이런 장면을 찍고 싶어. “나는 이런 장면을 내 영화에 꼭 넣고 싶어.”는 있었지만 “관객들에게 이런 ‘정서’를 제공하고 싶다.” 같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쉽게 영화를 찍었습니다. 감독이란 걸 졸라 즐겼습니다. 현장에서도 누가 내 권위를 해치는가 살펴보는 데 집중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촬영이 끝나면 늘 놀 여력이 있었습니다. 반성은 어느 정도 과장이 있기 마련이니 이 말에도 아마 과장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그 정도 힘은 남아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완전히 지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번 「화차」 때는 찍고 나면 뻗어서 잠자기 바빴습니다.
어떤 영화를 찍을까 찾다가 어느 순간 결심했습니다. ‘장르’라는 방식이라면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도 있겠다. 그거라면 속 주제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중요한 말을 할 수 있겠구나.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게, 귀 좀 대줘.” 하고는 실은 악몽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재미있어 보이지만 무겁고 무서운, 무겁고 무섭지만 힘 있고 뜨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나를 불태울 수 있는 건 행복한 얼굴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다 같이 행진하는데 한쪽 골목에서 나는 무서워서 못 가겠다 하고 웅크리고 있던 애가 한걸음 내딛는데 그땐 이미 그 아이는 패배할 것이 분명합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울먹울먹 걸어가는 아이들 얼굴을 그리고 싶습니다. 몇 년 전의 나였다면 그런 와중에도 변함없이 섹스를 나누는 아이들을 그렸을 겁니다. 이젠 탐닉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결단을 내리는 인간을 그리고 싶어진 겁니다.
그 무렵 「화차」의 판권의 풀렸습니다. 처음엔 망설였는데 「화차」가 속삭였습니다. ‘영주야, 화차에 타. 너 아니면 누가 풀어낼 수 있어. 너는 알잖아. 자기 연민의 폭력성을, 자기가 불쌍해 죽겠는 여자가 저지르는 일을, 자기가 불쌍해 죽겠는 여자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잡아먹는지, 너는 알잖아. 교코(「화차」 원작 여주인공)가 2012년 한국에서 어떤 모습으로 돌아다닐지 너는 알잖아.’
그래서 “「화차」,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지난한 각색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불균질하고 엉성하고 거친 부분이 있어도 이 영화가 나의 출사표가 되겠구나. 나는 이 영화를 통해서 이 영화 이후에 더욱 뜨거워지고 더욱 정교해져 갈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화차」는 2011년 7월 8일에 크랭크인했고 70일간 찍었습니다. 정말 좋은 스태프들을 만났습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촬영도, 조명도, 미술도, 동시녹음 팀도, 제작부도, 연출부도. 당신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궁금해하는 친구들을 만나 행복했었습니다. 촬영 전엔 별의별 생각을 다합니다. 마지막 날까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이제 됐다,라고 생각한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부족한 건 알지만 후회되는 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한창 촬영할 때 ‘희망버스’가 출발합니다. 가고 싶어 미치겠습니다. 경동이는 매번 전화합니다.
“누나, 이건 해야 하는 일 같은데요.”
“경동아, 미안. 나 촬영 중이야.”
“괜찮아요. 누나.”
그런 통화를 한 날은 침대서 못 자겠습니다. 바닥에 누워 울다가 잡니다. 울다가 깨달았습니다. 나는 영화를 너무나 사랑하고 찍는 동안 행복하고 코피가 나도록 나를 불태울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보다 인간다워지는 것도 그렇게 사랑하는 영화만큼 내겐 중요하다. 영화로 표현하는 한편 세상을 향해서 시민 변영주로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화 끝나고 제일 하고 싶은 것은 ‘희망버스’ 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만큼이라도 용감해진 건 다 송경동 때문입니다.
「화차」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신용카드 사회의 문제를 너무 개인의 문제로 돌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핵심은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느냐를 보여 주는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싫어하는 태도는 알면 다 된다며,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한 연후에 그것이 아무리 끔찍한 거라도 자기 말이 맞는다는 사실에 안심하거나, 어떤 누구에게도 욕을 먹고 싶어 하지 않거나, 모두로부터 존중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거나, 세상에 지대하게 아는 게 많으나 그럼에도 나는 뒤로 한 발자국 빠져 나의 취향이나 향유하며 살겠다고 하거나……. 이 모든 것을 다 합해서 1970년대를 살았던 어떤 시인은 말했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이걸 좀 더 귀엽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왜 직접 가서 손을 잡지 않나요? 당신은 풍경을 보면서 나뭇결이나 이파리에 코를 갖다 대지 않던가요? 당신은 그렇게 우아하신가요? 그래서 저에게 2010년대 최고의 영화는 이창동의 「시」입니다. 「시」야말로 가서 시체 냄새를 맡는, 마음이 아파, 하고 말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가서 봉분의 흙을 덮는 여자가 나옵니다. 이것이 「화차」가 전달하고 싶었던 ‘정서’입니다. 마음속이 어쩐지 뭉클해지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끔찍했던 자기 연민에 관해서 말하자면, 이렇게 나이 들어가는 내 자신이 예뻐 죽겠습니다.
여기까지가 영화감독 변영주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화차」를 어떻게 바라보았던가요? 내가 만약 「화차」의 교코(차경선)가 되어서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면 나는 누구를 택했을까? 저는 교코(차경선)의 눈으로 영화를 봤습니다. 저라면 일단은 내가 사는 도시의 풍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을 골랐을 겁니다. 그래야지 그녀가 사라졌다는 것을 아무도 모를 테니까요. 지하철역, 버스정류장, 백화점, 기차역, 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마치 그 자체로 흔한 풍경 같은 여자요. 도처에 있는 여자들이요. 풍경이 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눈에 띄는 점이 없는 여자를요.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린 자아를 강조하지만 자아가 사라지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얼굴은 비슷해졌습니다. 옷차림도 닮았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그 욕망, 환상, 고독, 불안, 공포에서 닮았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그중 가장 외로운 여자, 행복해질 수 없다면 가짜로라도 행복한 것처럼 살자고 생각했던 여자, 외로워서 아무 손이나 덥석 잡던 여자 하나가 풍경 속에서 사라진 겁니다. 그녀는 사라지면서 이 도시의 정체를 폭로했습니다. 이 도시의 정체란 무엇일까요? 제대로 사는 것처럼 살아보지도 못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죽어가는 일만큼 슬픈 게 또 있겠습니까? 그런데 살인이 아니어도 이 도시에선 그런 일이 너무나 흔합니다. 제대로 살아보자고 결심해도 한번 나락에 떨어진 이상 제대로 살아가긴 또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 이 도시에선 그런 일이 너무나 흔한 겁니다. 이 도시에선 한번 나락에 떨어지면 무시당하고, 모욕당하고, 오해받고, 굶고, 불안하고, 맞고……. 저마다의 ‘화차(지옥으로 가는 불수레)’에 올라타고 마는 겁니다. 이 도시에선 한번 올라탄 화차에서 내리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것이 이 도시의 정체입니다.
「화차」에는 난데없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하늘이 한 컷 들어갑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몰이었습니다. 저는 그 아름다운 하늘 위로 화차가 날아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슬프고 섬뜩했습니다. 저는 변영주 감독에게 그 장면은 왜 넣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정말 무서운 이야기는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그저 하늘이 아름다웠던 것으로만 기억에 남는 평범한 날에 벌어지니까.
그런데 이 영화엔 신용카드 대란 같은 뉴스는 나오지 않습니다. 채권 추심에 대한 뉴스도 나오지 않습니다. 신용카드를 받은 개인을 구제하는 법제도 토론회 같은 것은 더더욱 나오지 않습니다. 이 사건이 사회적 사건임을 드러내는 어떤 단서도 없습니다. 그저 한 여자는 죽이고 다른 여자는 죽을 뿐입니다. 변영주 감독은 그저 사회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그런 사회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를 보여 주고 싶다고 말할 때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 가능하겠죠. 저 여자는 잔인해. 저 여자는 불쌍해. 누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어? 저 여자는 재수가 없었어. 나도 등록금 대출금 때문에 힘들어. 등등등.)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재난, 고통,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면 그걸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한 개인의 몸입니다. 재난과 고통이 최후에 남겨 놓는 것은 이데올로기도 아니고, 신념도 아니고, 법도 아니고, 아무런 보호막도 없는 한 개인의 완전히 까발려진 벌거벗은 몸일 뿐입니다. 먹고 싶고, 가리고 싶고, 숨고 싶고……. 저는 그 벌거벗은 몸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그 몸을 끌어안을 수 있는가? 벌거벗은 몸도 여전히 인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런데 변영주 감독은 ‘껍데기는 가라’라고 했습니다. 혹시 그렇다면 벌거벗겨지기 전에, 그러니까 미리 스스로 껍데기를 벗고 벌거벗은 몸을 직시해 본다면, 그래서 벌거벗겨진 타인의 상처와 고통이 내 안에도 잠자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렇다면 혹시 우리에게도 화차를 피할 공통의 희망이 생길 수도 있을까요?
참, 삼손과 데릴라 이야기를 빼놓을 뻔했습니다. 데릴라가 삼손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던 그 두 번째 그림에서 이제 세 번째 그림으로 넘어왔습니다. 데릴라는 잠든 삼손을 내려다봅니다. 삼손의 머리채는 데릴라의 무릎 위에 놓여 있습니다. 둘은 벌거벗고 있었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