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글들. 물론 일기같은 지극히 사적인 글일지라도 누군가가 본다는 시점을 상정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지만, 어쨌든 일기나 에세이, 편지 등 그런 글들을 좀 읽어볼까 계획했는데 역시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어서 그저 소설을 몇권 읽었을 뿐이다.

 

사라 핀보로의 [비하인드 허 아이즈]에 이어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읽었고, 그 뒤를 이어 마거릿 애트우드의 [도둑신부]를 읽기 시작했다.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작품은 [리플리]와 이번에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읽었고, [낯선 승객]([열차안의 낯선자들]), [캐롤]은 어찌하다보니 읽다가 중도에 잠시 덮어둔 상태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은 [눈먼 암살자]와 [시녀이야기]를 읽은 게 고작이다.

애트우드의 [도둑신부]는 역사학자(전공이 전쟁학)인 토니와 사업가 로즈, 텃밭 가꾸기와 점술을 즐기는 몽상가 캐리스. 이 세 여자는 지니아라는 '인생의 참변'을 겪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고 친구가 되었다. 지니아는 죽었고 세 여자는 한달에 한번씩 점심을 먹는 모임을 갖는데 죽었던 지니아가 그들 앞에 나타난다.

지니아가 '인생의 참변'인 이유는 '그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교묘하게 접근해서 그들을 이용하고, 애인이나 남편을 재미로 뺏고, 뺏어간 남자들과 그들의 삶을 갈가리 찢어놓은 여자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지만 정체와 진의를 알 수 없는 섬뜩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씻을 수 없는 고통과 공포를 주었던 지니아가 다시 세 여자 앞에 나타났다. 도대체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고 왜 그녀는 돌아왔는가......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언감생심 전작주의자를 꿈꾸지도 못하고 그저 힘닿는대로 찾아서 보고자 하는데 [도둑신부]의 줄거리만으로도 굉장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다. 뭘 찾을 수 있을런지는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시작은 토니라는 역사학자로부터 전개된다. 그녀는 전쟁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중세 말기에 일어난 전술상의 실수>, <유물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사> 같은 주제로 수업을 한다. 옷을 사입는 것보다는 돈 모아 전쟁 유적지 답사에 필요한 비행기 표를 사는 걸 더 선호하며, 각 유적지에서 꽃을 한송이씩 꺾어 말린다음 간직하는 것을 은근한 즐거움으로 알고 있는 여자다.

아쟁쿠르, 아우스터리츠, 벙커힐, 카르카손, 됭케르크(!!!!). 격전의 전투지 답사 후 스크랩을 해두는 여자.

토니는 '불면 날아갈듯한 몸집을 가진 여자'다. 지하철을 타면 셔츠단추와 허리띠 버클이 보이는 키의 여자.

 

"전반적으로 그녀는 남자들과 더 잘 지내는 편". 남자들은 그녀를 "꼬맹이 아가씨"라고 부르거나 그렇게 여성스러운 사람인 줄 몰랐다는 소리만 하지 않으면 된다.

토니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체구가 아담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이만큼 순탄하게 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키가 180센티미터쯤 되고 덩치가 산만했다면, 골반이 넓적했다면 협박에 시달리며 아마존 전사처럼 살았을 것이다. 외모와 관심의 부조화가 통행 허가증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불면 날아가겠구먼. 사람들은 내려다보고 씩 웃으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럴 것 같지? 토니는 따라 웃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많이들 불어봤거든?(45~46)

 

아주 흥미로운 단락이다. 아주 흥미로워...

 

토니와 함께 살게 된 웨스트라는 남자. 하룻밤 사이에 금발이 백발로 변해버린 음악학자.

"그녀는 항상 그를 조심스럽게 대한다. 그가 얼마나 약하고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알기 때문이다."(24) ...........

토니, 웨스트, 그리고 지니아 사이의 관계 한자락 깔고 시작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굉장히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내가 읽은 마거릿 애트우드의 두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그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서 사랑에 강력하게 빠져든다. 사랑이 그들을 구할 것이라고 믿는 것처럼. 나는 아직 애트우드에게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읽는 이에게 무얼 전달하고 싶은 건지 알지 못한다.

 

 

 

 

 

 

 

 

 

 

 

 

 

 

 

얼마전에 문득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많은 분량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읽기 시작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졌다.

박경리의 [토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무라사키 사키부의 [겐지 이야기] ...

 

스완네 집쪽으로 가다가 중단하고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관한 책이 나왔다. 그러니까 정작 원 소설은 읽지 않고 주변부 관련 책들만 주워들이고 있는 형국.

[프루스트와 함께 하는 여름]. 제목은 이러해도 여름은 다 갔는데 가을에 읽으면 안 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게 단지 프루스트만이 아니라 몽테뉴, 보들레르, 위고, 마키아벨리, 호메로스 등 "~와 함께 하는 여름"이라는 테마로 매년 여름 내내 프랑스 국영 라디오 채널에서 했던 프로그램이 바탕이된 책 시리즈의 하나라고 한다.

바캉스 특별 기획 "~와 함께 하는 여름"인데 저런 인물들과 함께 하는 바캉스, 뭐 이런 거다.

몽테뉴와 함께 한 여름은 [인생의 맛 : 몽테뉴와 함께 하는 마흔번의 철학 산책](책세상)으로 번역되어 있다. 몽테뉴라...

 

흐르는 시간을 어떻게 붙잡을 것인가, 사랑한다는것은 왜 고통스러운 것인가, 우리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 수 있는가? 라는 프루스트의 근원적 질문에 프루스트 전문가 8명 나름의 답이 전개된다는 것이지.

흐르는 시간을 꼭 붙잡아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고, 사랑한다는 것은 왜 고통스러운지.. 그걸 꼭 말로해야 하나, 그런데 '우리는 누군가를 진정으로 알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만큼은 어떤 대답을 하는지 궁금하다.

여기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일찌기 발터 벤야민은 "누군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아무런 희망없이 그를 사랑하는 것"(일방통행로)이라고 답했다.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이 너무 야박하게 들린다.

진정으로 알 수 있기 위해선 진정으로 온갖 것 속에서 뒹굴어봐야 알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이 온갖 것 속에서 뒹굴수는 없는 것이다. 저마다의 영역안에서 겪게 되는 것인데 그만큼만 아는 것 아닐까.

시간이 지나야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도 있고, 시간이 결코 알려주지 못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서 알게 되는 경우, 그땐 어떡할 것인가. 그것이 아주 치명적인 것이라면. ...나는 이것이 항상 무서웠던 것 같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장이브 타디에.. 등등. 흥미로운 견해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스완의 집쪽으로 일단 가는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될텐데.

 

 

 

 

 

 

 

 

 

 

 

 

 

 

 

 

 

 

 

 

그리고, 이 비슷한 프로젝트. 물론 전혀 다른 성격의 주제지만 한가지 주제를 놓고 여러 선수들이 나와 저마다의 수를 보여주는 쉽지 않은 프로젝트가 여기 또 하나 있다. [빛 혹은 그림자].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그림을 모티브 삼아 창작된 단편집.

스티븐 킹을 비롯하여 일급 선수들의 작품인데 사실 이런 기획된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가 자신의 기획하에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을 마음속의 데드라인은 있더라도 더이상 고칠 수 없다고 할때까지 마무리하여 완성한 작품이 아닌 기획하에 프로젝트처럼 쓰여진 작품을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워낙 장르계의 한 살수 하는 작가들이 참여한 거니 이들은 이런 던져진 주제를 살려서 글을 쓰는지 살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17점의 그림과 17명의 작가가 만났는데 18번(!!!!)째 작품 <케이프코드의 아침>만이 운나쁘게 작가와 인연이 없었던 모양인데 바로 이 그림을 영감삼아 원고지 30매 분량(A4 3매)의 소설공모전이 진행중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끝이 날지, 어디서부터 시작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략의 메모들도 해뒀다. 이야기가 나올런지 모르겠다.

그림을 본 순간 내가 최근에 생각거리로 삼았던 것이 무언가를 말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해 보려고 한다.

17 작품 중 한 작품을 읽어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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