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여성 철학자 장밍밍{長明明)의 [고로, 철학한다 : 찌질한 철학자들의 위대한 생각 이야기]를 읽다보면 진짜 저 질문을 하게 된다. 진짜? 진짜로 그랬단 말이야? 이거 사실임?

장밍밍은 저부제(哲不解, 철학은 이해하기 어려워라는 뜻)라는 닉네임으로 인터넷에 "재미있고 통속적인 철학사책을 쓰겠다"는 호언장담을 실천에 옮겼다. 그러니까, 그래? 이거 실화임? 같은 질문을 던지며 낄낄거리며 철학을 대할 수 있는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높은 조회수를 올리며 관심을 끌자, 진지하게 글을 써서 올리게 됐다고 한다. 그렇게 쓰여진 12인의 철학자에 대한 글이 이책으로 묶였다.

 

장밍밍은 칭화대학교 철학과에서 마르크스 이론의 석박사 학위를 받은 올해 32살의 여성 철학자인데, 이책은 작년에 [미치광이, 루저, 찌질이, 그러나 철학자]라는 제목으로 이미 나온바있다. 이번에 제목이며 표지갈이를 하고 새롭게 출간되었다.

재밌는 건 2016년 버전과 각 장의 소제목이자 각 철학자들에게 붙인 네이밍이 조금씩 다르다는 건데 

나는 올해 버전보다는 작년 버전의 것이 더 흥미롭다. 예를들어, 한나 아렌트를 '아까운 사랑의 포로'라고 했는데 

'미녀, 재녀'는 비록 속물적인 냄새가 나긴 하지만 담박에 눈에 들어오긴 한다. 

여튼 좀더 세련된 네이밍이 된것도 있고, 재미는 좀 덜하다. 

중국 철학자답게 서술체가 사기를 따라 본편, 기전체와 편년체로 구분해서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이책의 매력 중 하나다. 

기전체는 본기(왕의 업적을 서술)와 열전(세가들의 전기)으로 이뤄진 인물 중심의 종합적 역사 서술방식으로 정사체(正史)라 할 수 있는데 [고로, 철학한다]에서는 '본편'에서 12인의 철학자를 다룬다. 12인의 철학대가, 철학황제급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철학세가급에 해당한다고 본 14인의 철학자를 '번외'편으로 다룬다.

이 '본편' 12인과 '번외편' 14인을 연대기순의 기록인 편년체로 살펴볼 수도 있다. 그게 "시간 순서와 철학 유파에 따른 차례"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재밌는 착상이다. 더 흥미로운건, 황제급 철학자 '본편'에 칸트, 헤겔, 마르크스 다음에 오는 이가 무려 한나 아렌트다. 한나 아렌트를 철학자로 분류하는 것을 엄정하게 논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니체, 스피노자 앞에 둔 것도 못마땅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렌트의 유부남 하이데거는 본편 마지막에서 다룬다. 어뗘, 통속적이제? ㅎㅎㅎㅎ

 

장밍밍의 영웅은 카를 마르크스다. 그녀의 전공이기도 하다.

그녀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충만한 에너지를 선사'하고 마치 근시인 저자에게 "도수가 잘 맞는 안경 같아서 그 안경을 쓰면 갑자기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사회를 꿰뚫어보게 되며 세상의 얼굴에 난 작은 주근깨까지도 선명하게 보'이게 해준다고 말한다.

 

아주 오래전 대학시절에 마르크스는 나에게도 영웅이었다. ... 아니, 당시 내게 진짜 영웅은 레닌이었다. 혁명가로서의 로망을 느꼈던듯한데, 지금 생각하면 순수하고 명랑하고(그땐 비장했지만) 가벼웠던 시절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레닌은 울림이 있다.

이런 생각하면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생각이 난다.

쇼스타코비치에게 소련의 공산당, 공산혁명은 영혼을 굴복시킨 파괴자에 다름이 아니었다.

그런 러시아혁명과 소련공산당을 지지하는 서방의 지식인과 인도주의자들에게 느꼈던 배신감과 혐오감을 반스는 소설에 집어넣었다. 그러니까 쇼스타코비치같은 이에게 나같은 사람은 혐오스러운 인간인 셈이다. 아, 나 역시 러시아혁명엔 전율했을지라도 레닌 이후 스탈린부터의 소련은 더이상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때도 지금도. 

다시 한번 레닌과 러시아혁명에 관한 책들을 보고 싶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을 때, 난 완전 반했다. 그의 글은 명쾌해서 아름다웠다. 그처럼 글을 쓰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만일 글을 쓴다면 마르크스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마르크스 전기도 몇권을 읽었는데 장밍밍이 전한 것처럼 마르크스가 시인이었고, 시인을 꿈꾸며 시 쓴다고 낭만거리고 다니던 마르크스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본대학교에서 베를린대학교로 옮기면서 낭만시단을 떠나 본격적인 학문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같다. 그랬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이거 실화임?

더 흥미로운 건 엥겔스와의 관계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관계는 너무나 유명한데 저자가 엥겔스를 따로 다룰만큼 엥겔스의 숨겨왔던 매력이 철철 넘치게 서술하고 있다. 실화인가 묻고 싶은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예를 들어 마르크스가 집안을 돌봐주던 메이드와 관계를 맺어 아이를 낳았을 때 아내 예나에게 자신의 아이라고 쉴드쳐준 이도 엥겔스이며(이건 알고 있었다), 마르크스가 "호방하고 과감한 글투로 옛 시와 역사의 일화들을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고매한 언어로 거침없이 남을 비판"한 반면, 엥겔스는 "깔끔하고 세련된 필치와 빈틈없는 논리로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글을 써냈다."

마르크스는 문과적이고 엥겔스는 이과생스러웠다는 요약인데, 문과 이과는 중국, 한국, 일본의 분류인지 세계공통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마르크스에 비해 엥겔스에 대한 관심이 덜했던 과거를 생각나게 해줬다.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해석자이며 스폰서이자 그 자신도 대단한 이론가로서 엥겔스를 시간 내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이제와서? 

그는 자본주의의 결혼제도를 비판했고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후에 아일랜드 노동자 메리 번즈를 사랑했지만 결혼하지 않았고 그녀의 여동생 리지 또한 엥겔스를 사랑했으나 요절했다고 한다.

리지는 죽음을 앞두고 결혼할 것을 요청했고 엥겔스와 둘은 결혼식을 올렸지만 결혼식 후 몇시간 만에 리지는 죽었다고 장밍밍은 알려준다. 이거 실화임?

엥겔스 전기나 평전은 읽어본 적이 없다. 엥겔스는 마르크스라는 태양을 바라보면 태양에 눈이 부셔 보이지 않는 인물같다. 그러나 엄연히 엥겔스의 퍼스낼리티도 눈부실만하지 않은가.

평생을 마르크스와 그 가족을 뒷바라지 했고 그토록 혐오하던 부르주아지 자본가로서 '잠복'해 살았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그 엥겔스임을 사업을 했던 사람들은 몰랐다고? 장밍밍의 말대로라면 '잠복한 채' 살아서 그의 사업 파트너들은  그가 바로 그라는 걸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라는 건데, 이거 실화임?

엥겔스를 너무 모른다.

혁명은 혁명. 혁명조직의 문제. 여기까지 생각이 번지면 굉장히 복잡해진다.

조직의 문제는 사람의 문제라서 인터내셔널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학생때도 쉽게 판단이 잘 되지 않았었던 것 같다.

 

이제 읽기 시작했는데 흥미롭게 철학자와 그들의 생각, 그들의 저서를 향한 입문서로 괜찮을 듯 싶다.

다독 다음이 정독, 다음이 반복독서인듯하다.

평생을 걸쳐 읽고, 또 읽고, 또 읽는 일. 철학은 더더욱 그런 거잖아.

이 나이에 내 마음 한자락 걸칠만한 철학자와 철학책 한권 정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면, 어쩐지 허하다는 느낌이 없지도 않다. 뭔 생각하며 살아온 걸까.

 

 

한나 아렌트, 이거 실화임? 환장하겄네. ...

 

  

고로, 철학한다 | 본편

은둔형 외톨이, 이마누엘 칸트
까다로운 불만쟁이, 게오르크 헤겔
사고뭉치 낭만 시인, 카를 마르크스
아까운 사랑의 포로, 한나 아렌트
천재 혹은 미치광이, 프리드리히 니체
괴짜 중의 괴짜, 바뤼흐 스피노자
남녀 협객,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고삐 풀린 망아지, 견유학파 철학자
나는 색마가 아니오, 지그문트 프로이트
여혐에 독설남,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유약한 겁쟁이, 르네 데카르트
개천에서 난 용, 마르틴 하이데거

고로, 철학한다 | 번외편

인민 대표와 인간 대표, 루소와 볼테르
천재 게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바람둥이 공공 지식인, 버트런드 러셀
사랑을 거부한 단독자, 쇠렌 키르케고르
오해받는 정치철학의 선구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예술을 하듯 사랑하라, 에리히 프롬
사상은 거인 행동은 소인, 프랜시스 베이컨
최초의 철학 순교자, 소크라테스
동굴을 탈출한 철학자, 플라톤
산책하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기독교 철학의 쌍두마차,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어둠 속 요염한 꽃, 미셸 푸코

 

[미치광이, 루저, 찌질이 그러나 철학자] 

 

 

1부_12인의 철학자 본편
은둔형 외톨이 칸트
처녀자리의 철학자 헤겔
혼세마왕 마르크스
미녀, 재녀才女, 정부: 한나 아렌트
천재 반, 미치광이 반: 니체
렌즈 세공 기술자 스피노자
남녀 협객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거지파 철학자: 견유학파
훌륭한 가장 프로이트
독설남 쇼펜하우어
겁쟁이 데카르트
하이데거: 농부, 연못, 밭

2부_14인의 철학자 번외편
계몽의 별: 앙숙 볼테르와 루소
키 작은 천재 부자 비트겐슈타인
공공 지식인 러셀
도망친 신랑 키르케고르
마키아벨리: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
에리히 프롬: 인간, 예술을 하듯 사랑하라
부정부패범 베이컨
고대 그리스의 3대 사상가 소크라테스: 우리 집에 무서운 아내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3대 사상가 플라톤: 죄수 굴에서 탈출하다
고대 그리스의 3대 사상가 아리스토텔레스: 소요파의 우두머리
기독교 철학의 쌍두마차: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악의 꽃 미셸 푸코

 

 

 

 

 

 

 

 

 

 

 

 

 

 

 

 

 

 

 

 

 

 

 

 

 

 

 

 

 

 

 

 

 

 

 

 

 

 

 

 

 

 

 

 

 

그리고 버트런드 러셀의 [세계철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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