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히 쓴다.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좋다.

마지막에 이 표제작이 실렸는데, 이 책을 갈무리하는데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는 느낌이다.

청춘의 사춘기마냥 갱년기를 지나는 여자로서, '서풍만 불어도' 울컥하는 감성에 제대로 꽂힌다. 경멸스럽다 해도 어쩔 수 없다.

한밤 중에 옛 애인이었던 M의 남편으로부터 그녀가 '지난 주 수요일에 자살'했다는 전화를 받는다.

'여자 없는 남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한동안 글이 이어지다가 엠과 관련해 그녀가 '엘리베이터 음악'을 사랑했다는 것을 '가장 또렷하게 기억'한다, 고 소개한다. 

'엘리베이터 음악'이란 것은 엘리베이터 안에 곧잘 흐르는 그런 음악이란다.

 

즉 퍼시 페이스나 만토바니, 레몽 르페브르, 프랭크 책스필드, 프랑시스 레(우리식으로 프랑시스 레이), 101스트링스, 폴 모리아, 빌리 본 같은 유의 음악들. 그녀는 (내 생각으로는) 무해한 그런 음악을 숙명적으로 좋아했다. 유려하기 짝이 없는 각종 현악기, 산뜻하게 떠오르는 목관악기, 약음기를 붙인 금관악기,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하프 소리, 절대로 무너지는 일 없는 차밍한 멜로디, 설탕과자처럼 착 감기는 하모니, 적당하게 에코를 살린 녹음. (333)

 

이건 '엘리베이터 음악'에 대한 소개이고, 정작 감동적인 대목은 엠의 부연 설명이다.

 

"내가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건," 언젠가 엠이 말했다. "요컨대 스페이스의 문제야."

"스페이스의 문제?"

"그러니까, 이런 음악을 듣고 있으면 내가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공간에 있는 기분이 들거든. 그곳은 정말로 넓고, 칸막이 같은 것도 없어, 벽도 없고 천장도 없어,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아무 생각 안해도 되고, 아무 말 안 해도 되고, 아무 일 안 해도 돼. 단지 그곳에 있기만 하면 돼. 그냥 눈을 감고 스트링스의 아름다운 음악 소리에 몸을 맡기면 돼. 두통도 없고 수족냉증도 없고 생리도 배란기도 없어.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한결같이 아름답고 평안하고 막힘이 없어. 그 이상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

"천국에 있는 것처럼?"

"응." 엠은 말했다. "천국에선 분명 BGM으로 퍼시 페이스의 음악이 흐를 거야. 저기, 등 좀 쓰다듬어줄래?"

"그럼, 물론이지." 나는 말했다.

"당신은 등을 정말 잘 쓰다듬어."

나와 헨리 맨시니는 그녀 모르게 서로 마주본다. 입가에 슬그머니 웃음을 띠고. (335)

등 좀 긁어달라는 게 아니라, 등 좀 쓰다듬어달라는 건 좀 실망스럽지만, 헨리 만시니의 <A Summer Place>가 어떤 음악인지 궁금해서 유투브를 찾아보고는 음악이 나오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게다가 프랑시스 레이의 <13 jours en France>를 듣다가는 포복절도했다. 아, 그래... 한동안 절대로 듣지 못했던 음악이었다. 왜 내가 탔던 엘리베이터에는 이런 음악이 한 번도 흘러나온적이 없었던가. ...(그러고보니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지하철에서 가끔 들었던 때가 있었다. '설탕과자처럼 착 감기는 하모니'가 흘러나오는 CD를 파는 행상에게서. 그들에게 저 음악이 가끔 위안을 주기도 할까. 매일은 지겹더라도 가끔은 말이다. 그게 성립될까?)

웃다가 끝내는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갱년기를 지나는 여자로서 괜찮은 반응이다.

적어도 분명한 건 나는 지금 천국에 있지 않다는 것.

 

신형철의 '문학동네 책 팟캐스트'의 9월 1일자 업로드된 방송은 많은 사람이 들었으면 한다.

특히 신형철이 낭독해준 계간지 문학동네 가을호에 실렸다는 박민규의 세월호 관련 글은 꼭 들어야 한다. 

어제 긴 시간 동안 가면서 그의 방송을 선택해 들었다는 건 행운이었다. 이번에도 안 들을 뻔 했었으니까.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는 도대체 무슨 책인가?

아직 보지 않은 터라 뭐라 말하기 뭣하지만, 그분은 대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한국정치나 한국문학에 대해 그러고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거 같다.

유권자들(독자들)의 배신과 값싼 감성과 가벼움에 대해서 서운해하고 욕하며 심판론만 부르짖는 태도를 말하는건가?

그게 싸가지의 문제란 건가?

 

진중권은 강준만이 '상황을 너무 안이하게 본 것'이라고 평했다. 동의한다. 싸가지없는 진보에 대한 정서적 반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 있는 전개되고 있는 지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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