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장르소설이 고팠다. 한동안 별로 보고 싶지 않았고 이제 혹 장르소설과는 영 이별하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어째 이리 변덕이 심할꼬.

 

하, 6월 마지막 날 급하게 집을 나서 7월 첫날까지 중환자실 앞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또한 어떤 생각도 명료하지 않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정작 고비를 넘기고 일반 병실로 옮긴 며칠 뒤에야 밤에 문득 깨어 눈물을 쏟았다.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잘 견뎌낼 것 같기도 하다가 어느땐 지금까지와 다른 삶이 펼쳐질 것 같은 두려움도 일었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진다.

하, 여튼 힘든 시간이었고 ....... 물론 한 고비만 넘겼을 뿐이다. 마음이 내내 어둡고 무겁다는 건 이런 것인가 보다.

아무 일 없이 무료한 날들을 사랑해야겠다.

 

지난 달 내내 니체를 읽으려고 했지만 책만 사고 정작 읽지는 않았네. 줄리언 반스의 책도 역시 마찬가지.

지난 주말에는 레이먼드 카버를 꺼내놓았다. [대성당] 하나만 구입했는데 다시 꺼내 읽었고, 단편의 맛을 음미중이다. 

2007년이었나, [대성당] 외에는 [제발 조용히 좀 해요]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는데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서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려한다.

카버의 미발표 소설과 초기 소설, 에세이, 서평과 잠언을 한데 모은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Call If You Need Me]가 문학동네 근간으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건 출간되지 않은 모양이다. 저간의 사정을 이제야 묻다니 참 빠르기도 하다, 끌끌.

 

 

 

 

 

 

 

 

 

 

 

 

내친김에 캐롤 스클레니카의 카버 전기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도 읽어보려 한다.

옮긴이(고영범)의 말을 읽다가 잊었던 카버와 관련된 출간 스캔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2007년 10월 <뉴욕타임즈>에 두 번에 걸쳐 발표된 기사인데, 카버의 마지막 몇 해를 같이 보내고 사망 직전에 결혼한 부인 테스 갤러거가 새로운 카버 선집을 기획한다는 소식과 함께 초기 작품집이 편집자 고든 리시에 의해 거의 개작에 가깝게 고쳐진 후 출간됐다는 기사였다고 한다. 12월에는 <뉴요커>에서 본격적으로 분석을 했는데 [초보자들]이라는 작품이 리시의 편집을 거쳐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되기까지, 그 첨삭 내용을 그대로 공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카버의 역량은 어디까지인가. 고영범은 리시가 손본 작품들에 더 끌렸기에 카버에 실망했었다고 하는데 캐롤 스클레니카의 이 책이 그러한 실망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이 대목부터 먼저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궁금하면 기사를 직접 찾아보고 더 자세한 정보들을 읽어보면 되겠지만 어디 말처럼 그게 쉬운가.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대개 궁금하다. 

그러니까 저 두 권,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리시의 '지도'가 들어간 작품들인 것인가?

 

책을 떠들어보면서 맞아, 카버의 거구, 험상궂은 듯한 얼굴(일부러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을 그렇게 짓곤 했다고 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을 가진 사람은 아닌듯하다), 알코올중독, 금주, 그리고 이른 죽음 등 예전에 카버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이 다시 생각났다. 오랜만에 본문만 893페이지인 전기를 볼 생각을 했다. 부분부분 작품과 관련된 대목 찾아 읽으려 한다. 그러다가 혹 정말 재미있으면 완독하게 될 것 아닌가.

 

카버를 읽으며 함께 참조할 작가로는 안톤 체호프,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자, 그리고 마구마구 사들이고 싶은 장르소설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초기 단편들을 모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정근].

현대물로 돌아온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

이상하게 북스피어가 아니라 문학동네라서 의아해했는데 북스피어의 팟캐스트를 들어보니 이건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신 북스피어의 [그림자 밟기]. 그동안 멀리했던 미야베 미유키에 다시 감탄할 수 있을런지.

 

 

 

 

 

 

 

 

 

 

 

 

게다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까지.

 

 

 

 

 

 

 

 

 

 

 

책만 읽고 싶다.

 

 

 

 

 

 

 

 

 

 

 

 

 

 

아, 또 이 책도 보고 싶다.

 

 

 

 

 

 

 

 

 

 

 

 

 

귀태(鬼胎). 고맙다. 놓치고 갈뻔한 책이었는데 돌아보게 해줘서. 일본 고단샤의 '흥망의 세계사' 시리즈 중 한 권으로 강상중 교수와 현무암 교수의 공저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그리고 지지도 보면 부끄럽지 않은가. 난 창피하고 쪽 팔려서 살 맛이 안나던데 다들 괜찮은가부다. 아무리 대안이 시원치 않다해도 그렇지. 세상 참 쪽 팔려서. ......  언론, 기자들까지 생각하면 내 참......

 

만주국에 대한 얘기로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가 다시 생각난다.

이번에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도 다시 나오는데 '꿈속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에게도 어떤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374)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징적으로 그는 유즈를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도대체 어떤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지 쓰쿠루 자신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유즈 안에도 그녀만의 은밀하고 짙은 어둠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어딘가에서, 아주 깊은 지하의 어딘가에서 쓰쿠루 자신의 어둠과 서로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유즈의 목을 조른 것은 그녀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의 바람을 서로 이어진 어둠 속에서 들었을지도 모른다."(375)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나는 하루키의 이러한 태도가 영 못마땅하고 꺼름칙하다.

그냥 개인적 취향을 맘껏 따라주었던 예전의 하루키가 더 생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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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7-07-2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신 분이 님 본인이신지 분명친 않치만 고비를 두번이나 넘겨야했던저의 경험에 비추어 건강보다중요한건없더군요. 포스트잇님의 글을좋아하는사람으로서 명령합니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길,

포스트잇 2017-07-24 16:14   좋아요 0 | URL
와, 여기 포스팅된 제 글을 좋아해주시다니, 더위를 훅 날려주는 바람같은 말씀이시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2013년 여름이었군요.. 제 아버지께서 급작스럽게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전활받았던.
님 덕분에 오랫만에 떠올려봅니다.

그나저나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세상에..고비를 두번이나 넘기셨다니..
건강하셔야 할 분은 제가 아니라 bgkim님이시네요.
더위 잡숫지 마시고 ㅎㅎ 건강한 여름 나시길 바랍니다.

bgkim 2017-07-2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남쪽 해남으로.. 모든걸 접고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항상 님의글 잘보고 있으니 글많이 쓰세요.저는글재주가 없어요.우리 아들은 문학청년이지만 애비는 책소개만 해줄뿐 도움이 안돼 무력감을 느낄때가많아요·

포스트잇 2017-07-24 16:38   좋아요 0 | URL
깊은 생각없이 그때그때 지극히 사소한 메모처럼 글을 올리는데 예쁘게 봐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앞으론 정말 생각 열심히 하고 좋은 글 올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드님께서 잘 하실거에요.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힘인데요.
저 여름에 제 아버지께서 고비를 넘기시고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딴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건강하세요~~

bgkim 2017-07-24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하고 이쁜 맘이 글에 묻어나서 기뻐요.열심히 쓰셔요.여기 충성도 높은 애독자를 생각하셔서...

포스트잇 2017-07-24 16:54   좋아요 0 | URL
네, 그저 감사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