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범]의 놀라운 특색은 이 작품이 주인공 없는 소설, 특히 추리하는 주인공이 없는 소설이라는 점이다.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든 추리소설에는 '추리로 수수께끼를 푸는 사람'이 주인공을 맡는다.

초기에는 홈스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똑똑한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나중에는 말로처럼 우리보다 백배는 운이 없고 백배는 고통스러운 사람이 주인공을 맡았다.

...

 

[리는법설소추읽] (양자오, 274)

 

 

대만의 문학비평가이자 인문학자 양자오의 책을 이번에 처음 읽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고전읽기 강좌를 이끌어온 학자라는데 어디한번 어떤 수준인지 좀 볼까, 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들었다가 대충 보아가며 읽었다. 홈스는 슬슬 건너띄어가며 읽었다(이미 많이 들어본적있을 듯하여, 에이, 또 홈스.. 뭐 이런 기분), 그러다 좋아하는 챈들러 대목에서는 흠. 제법이군, 그랬다. 그래도 뭐 나도 이 정도는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좋아하니까 그런 마음이었다.

결국, 이책에 별 다섯개를 줬다. [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와 [모방범] [낙원]의 미야베 미유키를 다시 읽고 싶게 만든 것만으로 별 다섯개를 받을만하다. [모방범]과 [낙원] 중고를 구입했다.

[모방범]은 2004년에 읽었는데 아직도 그 두꺼운 세권을 읽던 내 모습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다.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읽었는지 그때 그 시절이 내게 어떤 나날들이었는지...

2004년부터 나의 몰락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는 아니고 막 시작할 때였다. 그땐 몰랐다.)

그때 [모방범]은 놀라운 소설이었다.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하던 때도 그 언저리였다.

과연 방대한 이야기 규모에 압도된 독서경험을 했던 것 같다. 

이번에 양자오의 분석을 읽으면서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면서 이야기 구조도 들여다보고 미스터리서사를 이끌어가는 방법도 한수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자오의 이책은 그야말로 방대하고 심오한 추리소설의 계보나 역사를 쫙 꿰어보여주지는 않지만, 단 네명의 작가와 작품을 통해 입문서로서 나름의 신선한 역할을 한다. 추리소설을 읽을때 추리나 이야기에 풍덩 빠져 허우적대는 맛과는 다른 맛, 내게는 이런 맛이 더 혹하는 건데, 시대에 따라 추리소설 또는 미스터리 소설이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그 고비고비마다 새로운 경지를 열어젖힌 성실한 천재들의 한수를 모방이라도 하고 싶게 자극하는 그 통찰의 맛이 난다.

읽을 책들이 많았는데 급작스럽게 선회해서 [모방범] [낙원]부터 읽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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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석 2018-06-13 0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