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웃음으로 모른 척하기에는 :










비웃음





 


▶  비의 몰락을 가속화한 전설적인 노래로 대중에게 한바탕 웃음을 선사한 작품. 비라는 브랜드에 지나친 자신감을 선보여 " 레이니즘 " 이라는 해괴망칙한 작명으로 자신을 뿜뿜 할 때부터 그를 좆같이 생각한 나는 깡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기쁨으로 충만했다. 나는 깡이라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 너, 좆됐어. 쪼다야 ~ " 









                                                                                                   직장에서 윗사람이 웃기지도 않는 쌍팔련도 개그를 선보일 때 아랫것은 쌍팔들어 환호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농담꾼은 보기 좋았어라. 웃기냐, 나도 웃기다 !  아재는 젊은 사원이 박장대소하는 모습에 불알이 탱천하여 의기양양하다. " 이 나이에도 저 어린것들을 웃길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란 말인가. 나란 존재는 그런 존재다. "  모두 다 쌍팔 머리 위로 손 들어, 예 ~  


웃기지도 않은 농담을 웃어 젖히는 일도 힘든데 그 농담이 약자를 희화화하거나 성적 농담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래도 웃어야 산다.  그것이 사회적 약자의 애티튜드'이다. 웃음과 미소는 약자의 방어 무기'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이 웃(어야 하)고, 윗사람보다는 아랫것이 더 많이 웃는다.  억지로 웃어야 하는 웃음 때문에 울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니,  이토록 포지티브하고 투머치 해피한 감정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감정 노동'일 뿐이다. 그런데 사회적 강자들은 사회적 약자가 보내는 약호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약자의 웃음을 오해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죽을 맛이다.  웃음은 비단 약자의 애티튜드'만은 아니다. 강자도 기분이 좋으면 맘껏 웃는다. 그들이 웃는 웃음은 주로 비웃음의 형태를 띤다. 우리는 흔히 < 비웃음 > 이란 단어에서 " 비 - " 라는 접두사를 非 : 아닐 비'로 오해하는데,  여기서 < 비 - > 는 토종 브랜드 어원'이다. 비의 어원1)을 두고 논란이 많지만 내 생각에는 < 비- > 라는 접사가 " 힘껏 " 의 뜻을 더하는 옛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그러니까 비웃음은 가짜 웃음이라기보다는 그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힘껏 웃는 웃음인 것이다. 


종종 조폭 영화에서 눈치 없이 너무 크게 웃는 바람에 오야붕으로부터 죽도록 맞는 꼬붕을 자주 보게 되는데, 여기서 꼬붕의 죄는 한바탕 웃은 죄'다. 한바탕 웃음으로 모른 척하기에는 오야붕의 상처가 너무나 크다.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주변 상황과 관련 없이 힘껏 웃을 수 있는 이는 오로지 오야붕'만 가능하다. 아양이 너무 지나치면 비아냥이 되듯이 웃음이 너무 지나치면 그것은 더 이상 웃음이 아니다. 비웃음'이다. 자주 하는 소리이지만 꼬붕은 주먹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오야붕은 손짓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오야붕의 손짓보다 한 단계 위'인 존재는 눈짓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은 아랫것들의 몫인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웃음을 강요한다. 웃음이 없는 여성은 애교가 없다거나 매력없다고 타박하기 일쑤'다. 반면에 웃음이 너무 많으면 문란한 여성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어느 장단에 웃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많다.  타인에게 웃음을 억지로 강요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그렇기에 서비스 노동자에게 웃음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이다. 내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여성에게 " 넌 웃을 때가 제일 예뻐 ! " 라고 말하는 교회 오빠 스타일이 최악의 개새끼인 경우가 많았다. 이런 놈은 대부분 이런 소리를 자주 한다. " 오빠 믿지 ?  손만 잡고 잘께 ~ " 










​                                  


1) 국어연구원의 대답 : ‘비웃음’은 15세기에 ‘비우’(월인석보 21:15)으로 처음 보입니다. ‘비우’은 ‘비웃-’의 동명사형이 그대로 명사화한 것으로 봅니다. ‘비웃-’은 동사 어간 ‘비-’와 ‘웃-[笑]’이 결합된 복합 동사로 추정되는데 ‘비-’의 정체는 알 수 없습니다. 김민수 편(1997:508) "어원사전"에서는 ‘비-’를 접사로 보고 있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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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발이냐 불발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섹스 피스톨즈





- 리오 브라보, 1959




                                                                                                    영화 속에서 " 총 " 은 " 딱딱한 페니스 " 에 대한 은유'이다(섹스 피스톨즈'라는 이름의 미국 롹밴드도 있다). 격발은 사정이며 불발은 발기 불능'이다. 그리고 총알은 강철로 만든 정자'이고 리볼버 회전식 탄창은, 음.... 그러니까, 그게 일종의 불알'이다. 


그것은 남성의 욕망이자 그 욕망이 반영된 페티시'다. 영화 << 다이 하드 >> 에서 도시를 순찰하는 흑인 형사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총을 겨누지 못하는데 이것은 명백히 성 불능에 대한 은유이다. 그와 무전기로 대화를 나누며 동병상련을 느끼는 존 맥클레인 형사'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는 무능한 남편으로 아내와는 이혼 위기에 처해 있으며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아내는 남편의 성을 숨긴 채 처녀적 이름으로 직장 생활을 한다. ​ 그러니깐 아내는 < 홀리 맥클레인 > 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결혼 전 이름인 < 홀리 제네로 > ​로 처녀 행세를 하는 것이다. 


맥클레인 형사는 나카토미 빌딩 로비에 있는 방문자 명단에서 아내가 처녀적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눈살을 찌푸린다. 맥클레인'이라는 성'은 말 그대로 아내로부터 제거(거세)된 상태인 것이다.  지금 그의 페니스는 발기와 거세 사이에 있다.  잘린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꼴린 것도 아닌 상태.  마치 휴대폰 표시창에 방전을 알리는,  깜박거리는 아이콘처럼 말이다.  그는 자신의 남근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그는 자세를 고추세우며 외친다. " 우린, 죽지 않아 !!!!! " 영화 << 다이하드 >> 는 서부 LA에서 벌어지는 현대판 마천루 서부극이다. 


< 총 > 이 중요한 오브제로 활용되는 서부 영화 장르는 발기된 불알후드의 세계를 다룬다. 주인공은 총구에 불을 품어냄으로써 남성다움을 과시'한다. 퐈이야 ~             그러니까 웨스턴 무비는 기본적으로 남근 선망 판타지에 기반을 둔 장르인 셈이다. 서부 영화의 아이콘이었던 배우 존 웨인과 하워드 혹스 감독이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연출한 << 하이 눈, 1952 >> 에 대하여 격렬한 어조로 비난한 이유는 그들이 보기에 윌 케인 보안관(게리 쿠퍼 분)이 히마리 없는 거세된 남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형사가 트라우마로 인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총을 겨누지 못한다고 고백하는 << 다이 하드 >> 의 흑인 형사를 닮았다. 


윌 케인 보안관은 악당과의 대결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연대를 강조한다.  또한 그는 부보안관에게 애인을 빼앗긴 상관이며 그와의 몸싸움에서도 가까스로 이긴다.  어디 그뿐인가,  그는 여성을 구원하는 남성이 아니라 여성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나는 남성'이다.  존 웨인과 하워드 혹스가 보기에 월 케인 보안관은 겁쟁이'다.  그래서 그들이 손을 잡고 만든 영화가 << 리오 브라보, 1959 >> 이다.  영화 << 리오 브라보 >> 는 << 하이 눈 >> 제작진에게 보내는 발기한 남성-들의 딱딱한 답장'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보안관(존 웨인 분)은 악당과 시시때때로 대결하는데, 그는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들의 선의를 모두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는 오로지 독고다이 정신으로 수많은 악당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둔다. 게리 쿠퍼 보안관이 고뇌하는 햄릿 유형이라면 존 웨인 보안관은 돈키호테'다. 다시 말해서 게리 쿠퍼 보안관이 당기되 쏘지는 않는다는 " 인이불발 " 을 실천한다면,  존 웨인 보안관은 " 일단격발 一旦擊發 " 을 주장한다.  전자가 지루라면 후자는 조루다. 이처럼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영화를 감상하며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은 시각적 쾌락 너머의 지적 유희'이다.  불알후드의 극렬 다이오드적 시네마틱 극성 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고개 숙인 남성의 히마리 없는 불발'에 애정이 간다. 무릇 총이란 위험한 무기'로 언제나 격발이 가능하기에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남근도 총이다(아님 말고). 당기되 아무때나 쏘지는 마라, 잉글랜드 토끼가 비웃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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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8-22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황혼에서 새벽까지>에 나온 ‘섹스 머신’이 생각나네요. 하체로 총을 쏘잖아요.. ㅎㅎㅎㅎ 중학생 때 그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정말 잊지 못할 캐릭터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8-22 17:10   좋아요 0 | URL
인상에 남는 캐릭터였죠. 섹스 머신.... 보고 싶네요. ㅎㅎㅎ
 












미워도, 원 모어 타임 플리즈 ! "










                                                                                                       한때 시네마 떼끄가 우후죽순처럼 들쑥날쑥하던 때가 있었다. 퀄리티를 놓고 보면 죽(竹)인지 쑥인지 알 수 없는 죽 쑨 시설도 많았지만 지하 골방에서 접이식 의자에 앉아 말로만 듣던 세계 명작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장 비고의 << 품행 제로 >> 를 그곳에서 보았으며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 거울 >> 도 그곳'에서 보았다. 영화의 원형을 경험한다는 것은 묘한 감동을 준다. 서부극은 시네마 떼끄의 단골 상영작 목록이었다. 존 포드의 << 역마차 >> 에서 존 웨인은 서부 영화의 원형에 가까웠다. 서부인은 적과 싸울 뿐만 아니라 거친 자연과도 싸운다. 존 웨인은 현대극 이전의 존 맥클레인이었고 존 람보'였다. 그는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역경을 헤쳐나가며 적과 싸워 이긴다. 그리고는 홀연히 떠난다. 영광은 잠시뿐, 굴비는 짜다 !  서부극은 앞모습으로 시작해서 뒷모습으로 끝나는 장르'였고 나는 그 영웅들의 뒷모습을 좋아했다. 


앞모습은 초라해 보일지라도 뒷모습이 당당한 남자야말로 진짜 사나이'가 아닐까 ?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연출한 << 하이 눈 >> 은 전통 클래식 웨스턴 무비'와는 사뭇 다르다. 은퇴한 보안관을 연기하는 게리 쿠퍼는 늙고 지쳐 보인다. 그의 뒷모습은 당당하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며 불안해 보인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악당을 물리치자고 애원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악당 프랭크 일당이 공동체의 위협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무질서의 세계가 누군가에게는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보안관은 그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프랭크 밀러 일당과 싸워 이긴다. 이 승리에 크게 환호하는 사람도 없고 적으로부터 마을 공동체를 지켜냈다는 주인공의 자부심도 없다. 보안관은 경멸인 듯 아닌 듯 마을 광장으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그곳을 떠난다. 그는 영웅이라기보다는 간신히 살아남은 생존자처럼 보인다. 오래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이 영화가 나를 매혹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당혹하게 만들었다. 그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입이 바짝바짝 마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다른 서부극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이 직립의 애티튜드는 장렬하다기보다는 나약해 보였다. 


오래전 내 기억 속에서 이 영화는 그다지 매력적인 영화가 아니었다. 최근에 이 영화를 다시 보았을 때, 나는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게리 쿠퍼가 연기한 윌 케인 보안관은 서부극 영웅의 전통적인 영웅이 아니다. 그는 고독한 영웅이라기보다는 절망하고 고뇌하며 다가오는 죽음에 불안해하는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이 영화 속에서 은퇴한 보안관은 적과의 " 대결 " 보다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 대화 " 를 시도하지만 그가 이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은 거대한 권력과 무소불위의 힘 앞에서는 약해지는 인간의 추악한 속성'이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서 서부영화 장르의 허망한 판타지를 낱낱이 고발한다. 또한 이 영화에서 여성들은 남성보다 정의롭고 정직하다. 프랭크 밀러 일당 네 명 중 두 명은 에이미(그레이스 켈리 분)'가 처단한다. 주류 서부 영화가 주로 여성을 구원하는 남성을 보여주지만 이 영화에서 위기에 빠진 남성(게리 쿠퍼)를 구원하는 사람은 여성이다. 이 영화는 여러모로 진보적이고 전복적이다.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본다는 것은(혹은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동일한 텍스트를 반복 경험한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텍스트를 경험하는 행위'다. 같은 영화라 할지라도 어제 본 영화와 오늘 본 영화는 다른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사랑에 빠진 연인이 만날 때마다 새로운 기쁨을 얻는 것과 비슷하다. 좋은 사람은 항상 새로운 사람이다. 영화도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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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8-21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 무삭제 장 자끄 베네의
<베티 블루> 세 시간을 아무런 자막
도 없이 그림만 보며 황홀해 하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그리고 보니 링클레이터의 <비포어
선라이즈>도 시네마떼끄에서 본
것 같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8-21 17:08   좋아요 0 | URL
제 친구가 프랑스 유학 갔을 때 티븨에서 베티블루 무삭제판 상영했다고 편지에다 구구절절 적었더군요.
ㅎㅎㅎㅎㅎ....
 

















                                                     


좋은 예술가는 빌리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














결정적 순간






                                                                                                    일요일 오전 10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시원한 맥주와 안주를 준비하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다음,  에어컨을 가동했다. 플레이 버튼'만 누르면 영화가 시작되지만 오늘 준비한 이벤트의 화룡점정은 상영 시간'에 맞춰져 있다.


프레드 진네만 감독이 연출한 << 하이 눈, 1952 >> 은 반드시 오전 10시 35분'에 플레이 버튼을 눌러야 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모두 다 아시다시피 이 영화 속 배경은 오전 10시 35분에 시작되어 12시 정오에 끝나는 영화'다( 물론 시계가 12시를 가리킨 이후에도 15분가량 마지막 대결 장면이 보이기 때문에 12시 15분에 끝나는 영화라는 표현이 더 적확할 것이다). 하이눈은 영화 속 시간(10:35~12:15)과 영화의 상영 시간(100분)을 일치시킨 영화로 관객이 영화를 보는 실재 시간과 영화 속에서 상기시키는 시간 흐름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매우 실험적인 영화'이다. 


나는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서 정확히 오전 10시 35분에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영화 속 등장인물과 관객인 나는 지금 동시간대를 공유하는 것이다 !). 영화에 등장하는 시계는 등장인물과 관객에게 악당이 마을에 도착하는 예정 시간인 정오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정오는 말 그대로 " 데드라인 " 인 셈이다. 나는 영화 속에서 시간을 알리는 시계가 등장할 때마다 거실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영화에서 11시를 가리키면 현실 속 시간도 정확히 11시를 알리고 있는 것이다. 아따, 허벌나게 짜릿하다 ! 이 영화는 주류 서부극 장르'에서 흔히 보이는 클리셰'가 없다. 


예를 들면 서부극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추격, 폭력, 액션, 서부의 광활한 자연 풍경 찬양 따위'가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보안관 케인(게리 쿠퍼 분)은 기존 서부극 영웅과는 결이 다르다.  기존 서부극 속 영웅은 혼자의 힘으로 악당을 물리쳐 마을을 구원하는 맨-파워의 상징적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안관 케인'은 전지전능한 구원자가 아니다.  그는 적과 싸우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힘을 합쳐 함께 싸우자고 호소하는 다소 나약한 인물로 그려진다. 일종의 수정주의 서부극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전통 서부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곱게 볼 리 없었다. 


서부극에서 전지전능한 영웅을 연기했던 존 웨인'은 이 영화를 싫어했고 하워드 혹스는 존 웨인과 의기투합하여 영화 << 리오 브라보 >> 를 만들었다.  마을 보안관이 어느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악당-들'과 대결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은 단순했다.  하워드 혹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존 웨인과 나는 < 하이 눈 > 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 리오 브라보 > 를 만들었다. 나는 좋은 보안관이라면 겁쟁이처럼 사람들에게 도움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보안관의 목숨을 살리는 것은 그의 아내가 아닌가 ?  이러한 설정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서부극이 아니다 ! " 


불알후드의 발광 다이오드적 3파장 극성에 해당되는 지랄 같은 허세'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존 웨인'보다는 게리 쿠퍼 보안관'이 마음에 든다. 나는 영화 속 게리 쿠퍼 보안관을 열렬히 지지했다. 영화에 흠뻑 빠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 12시(high noon)에 다다랐다.  악당 프랭크 밀러 일당과 게리 쿠퍼'가 만나는 지점이다. 그때였다. 내 집 거실 벽에 걸려 있던 시계가 12시를 알리는 알림 소리'를 냈다. 불길한 예감. 거실에 걸린 시계는 알람 소리 기능이 없는 단순한 시계'가 아니던가 ?  알고 보니 시계의 알람 소리가 아니라 누군가 현관문 벨을 누르고 있었다. 


현관문 렌즈를 통해 밖을 보니 복도에는 세 명의 남자가 카우보이 복장을 한 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영화 속 악당인 프랭크 밀러와 그 부하들이 아닌가. 나는 깜짝 놀라서 현관문에서 한 발짝 물러나다가  내 허리춤에 리볼보 45구경 권총이 걸려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영화에 집중하다 보니 영화 속 세계로 빨려 든 것이다. 타임 블랙홀에 빠진 것이다. 좋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사나이답게 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죽으리라. 나는 현관문 잠금장치를 해제한 후 문을 냅다 걷어찼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문이 열리면 악당들은 당황해서 허둥대리라. 그때를 노려야 한다. 


내 계획이 빗나갔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문이 열리자 눈부신 정오의 햇살이 밀려 들어와 " 결정적 순간 high noon1) " 에 갑자기 앞이 하얗게 보이는 화이트아웃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때 세 방의 총성이 동시에 울렸다 !  때는 늦었다.  소리와 속도의 물리적 계산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이다. " 니미, 시이이이발 ~ "  총알을 피하기에는...... 나는 너무 늙었다.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열리는 것은 항문의 괄약근이라고 한다. 푸쉬쉬쉬 ~   열린 내 괄약근 사이로 방귀가 새어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잠시 고민했으나 나에게는 많은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                                  



1)   high noon 은 " 정오 " 라는 뜻과 함께 " 결정적 순간 " 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 어느 하드보일드 소설의 대가(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는 독자가 지루하다 싶으면 느닷없이 소설 속에 총을 등장시켜 방아쇠를 당긴 후 잉글랜드 토끼처럼 토끼라고 했다. 그래야 독자의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쿠엔틴 타란티노는 머리통을 날릴 기세로 총을 뽑되 절대 쏘지는 마라 _ 라고 충고한다. 영화 << 펄프픽션 >> 의 도입부에서 두 명의 짝패 펌킨과 허니버니는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밑도 끝도 없이 식객을 향해 소리친다. " 모두 꼼짝 마. 우린 강도다. 발가락만 움직여도 모두 머리통을 날려버린다 !!!! "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냅다 소리를 지르며 시작하니 관객은 어리둥절할 뿐이다. 시작부터 이 모양이니 관객은 총알이 빗발치는 현장을 상상하지만 격발은 내내 지연된다.  이 지적은 발기하되 사정하지는 마라 _ 라는 고대 인도의 성전 < 카마수트라 > 의 문장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너무 천박한가 ? 그렇다면 인이불발 (引而不發)  정신이라고 해두자. 활시위를 당길 뿐 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 영화 << 펄프 픽션 >> 에서 이 장면은 당기되 쏘지 않는 방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기똥찬 영화'다.



두 대가의 작법론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훌륭한 작법일까.  에둘러 말하지 않고 서둘러 말하자면 둘 다 옳은 지적이다. 전자는 선행된 액션에 방점이 찍혔고 후자는 지연된 심리에 방점이 찍혔다. 또한 전자는 서프라이즈에 해당되고 후자는 서스팬스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활극이 스토리텔링의 중심이라면 일단 쏘고 나서 잉글랜드 토끼처럼 토끼는 편이 유리하고, 서스펜스를 중심으로 한 심리극이라면 장전은 하되 쏘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는 소리이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많고 많은 토끼 중에 왜 하필 잉글랜드 토끼'인가 _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련다. 잉글랜드 토끼는 일종의 나의 맥거핀'이다.  잉글랜드 토끼는 그런 존재'다 !  나는 아무래도 일단 쏘고 나서 토끼는 잉글랜드 서사가 좋은 모양이다(물론 때에 따라서는 가거도 우럭 서사도 좋아하는 편이다). 고전 영화 리뷰랍시고 글을 쓰다가 글이 막혀서 느닷없이 총을 든 악당을 등장시켰으니 말이다.  오후 3시가 온전히 << 아비정전 >> 의 시간이라면 << 하이 눈 >> 은 10시 35분, 혹은 정오의 세계이다.  << 하이 눈 >> 은 좋은 영화'이다. 일요일 아침 10시 35분에 이 영화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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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리  엄 마 는  안  그 래  :







분리 불안 장애








                                                                                                        에스비에스 간판 오락 프로그램은 뭐니 뭐니 해도 << 티븨 동물 농장 >> 이다. 티븨 동물 농장은 에스비에스'판 모닝 선데이 데이 대표 전국 노래 자랑'이다. 일요일 아침엔 동물 농장, 점심엔 짜빠게티, 저녁엔 치맥 ~


온갖 동물이 출연하여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모성과 부성과 인성을 보여주니 눈물이 주르륵 !   동물 행동에 대한 논문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로렌츠 박사는 동물을 의인화해서 휴머니티'를 유도하는 방식을 경고했지만 동물 윤리의 불모지에 가까운 대한민국에서 이 방송 프로그램이 주는 좋은 영향력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 농장'에서 자주 등장하는 동물이 흔히 겪는 증상은 분리 불안 장애'이다.  집사가 출근하고 나면 혼자 남은 견/묘'는 애착 대상(집사님)과 분리되는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발달 수준에 비해 부적절하게 심한 수준의 공포와 불안 반응을 보여 적응상 문제를 초래한다. 


하루 종일 목 놓아 울거나 주변 물건을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다.  혹은 평소와는 달리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애착 대상과의 분리에 따른 극심한 스트레스 반응인 셈이다.   분리 불안 장애'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경험이 있는 엄마라면 한 번쯤 경험하게 되는 애끓는 이별 별곡'이다.  하지만 이 분리 불안 장애는 대부분 나이가 들면 사라진다.   어릴 때에는 애착 대상이 집과 엄마'였지만 질풍노도의 기후 변화를 겪고 나면 애착 대상이 또래와 이성 친구에게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몸은 성인이지만 정신'은 그 옛날에 미아리 고개를 넘으며 하울링 하던 항문기 시절에 고착되는 경우이다. 


항문기 고착이란 나이는 성인인데 정신은 항문기(만 1세 ~ 3세)에 머무른 경우를 말한다.  항문기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바탕으로 설명되는 성격 발달의 두 번째 단계에 속하는 것으로 항문이 성적 쾌감을 주는 원천이 되는 시기이다. 연령으로 보면 대개 1~3세까지이며 이 시기 동안 유아는 배설기관에 의한 성적 쾌감을 즐기며 배설 과정에 대한 독특한 관심을 갖게 된다.  항문기에 고착된 성인은 고집불통, 구두쇠, 수집벽(패티시즘) 등의 성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인물은 " 박근혜 " 다.  변기 때문에 < 세계 핵 안보 정상 회담 >  도중'에 자리를 떠났다는 박근혜의 그 유명한 일화'는 


그가 항문기 고착'이 아닐까 라는 의심을 하게 된다. 박근혜가 특정 변기 디자인과 쌍팔련도 생활용품을 고집했다는 점에서 " 70년대 새마을 레트로 패티시 " 이다. 박근혜가 항문기 고착'이라면,  그가 아버지에게 집착했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에게 있어서 " 청와대  그 옛날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본가'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다 큰 성인이 집과 엄마(아빠)에게 집착하게 되면  볼성사나운 꼴을 연출하게 된다.  따지고 보면 한국 성인 남성 거개는 어릴 때 애착 대상이었던 집(혈통)과 엄마와의 관계를 분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결혼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가 제일 좋고, 우리 엄마가 해준 집밥이 제일 맛있다고 착각한다. 


아내가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음식을 주물럭거리면 혀부터 끌끌 찬다. 이 사람아, 음식은 손맛이야 !!!   하지만 그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엄마가 해준 집밥의 비결은 손맛이 아니라 미원과 소고기 다시다 맛이었으며,  가사 노동에 지친 엄마는 사랑과 정성을 듬뿍 담은 손맛이고 지랄이고 간에 남이 해준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말한다는 사실을 아들은 모른다는 점이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면 남편은 대뜸 우리 엄마는 안 그래 _ 라고 외치곤 하는데 이것도 일종의 애착 대상이었던 엄마와의 완벽한 분리에 실패한 데에서 발생한 증상'이다. 성인 항문기 고착 아들은 엄마와 아내'가 서로완벽한 타인'이란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 한다. 


또한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역할이 동일한 조건과 비슷한 입장의 동등한 정치적 동료'라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의 신뢰는 무너지고 번뇌는 우레처럼 요동친다. 결혼 생활, 이게 뭐래 ?  결혼 생활'을 20자 내로 정의하자면 :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 !   결혼이란 어릴 적 애착 대상이었던 집과 엄마와 결별하고 타인과 새로운 집을 짓고 사는 과정이니 말이다. 혼자의 힘으로 숲속 오두막집을 지어본 사람은 안다. 새집을 짓는다는 것은 언제나 고생이며 저 푸른 저 하늘에 그림 같은 집을 지으려고 할수록 더, 더더더 개고생'이란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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