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터 키튼과 팡시울











 


버스터 키튼 영화를 보다 보면 가거도 우럭도 아니면서 울컥하게 되는 감정의 변곡점을 만나게 된다. 감독이 관객을 웃기려고 만들었으니 서해 갯벌 피조개처럼 피식 쪼개면( 쪼개다 : 소리 없이 입을 벌리고 웃다 ) 되지만 버스터 키튼 영화는 오롯이 웃기에는 너무 고급스럽고 진지하다. 그 당시에는 특수효과가 전무해서 모든 장면은 사고를 염두에 두어야 했으니 웃기려고 만든 장면들은 사실 두려움과의 싸움이었던 셈이다. 이 동영상 맨마지막에 나오는, 그 유명한 전설적 장면에서 집채 한 단면의 무게는 수백 킬로그램'이었다. 그러니까 스티로폼 따위로 관객을 속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집을 지을 때 사용되는 목재였다. 한치의 오차만 벗어났어도 버스터 키튼은 사망이었던 것이다. 그는 관객을 웃기기 위해서 두려움과 싸워야 했던 광대'였다. 그의 코미디가 숭고해지는 지점이다.  그를 볼 때마다 사형 선고를 받은 광대 팡시울1)의 마지막 무대가 생각난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은 웃음이 아니라 두려움의 결과'이다. 



                           

1)  나, 페루애는 한때 " 팡시울 " 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한 적이 있다. 팡시울은 보들레르 시집 << 파리의 우울, 비장한 죽음 편 >> 에 등장하는 광대로 왕이 총애하는 어릿광대'였다. < 그 > 는 어릿광대였으나 현명한 영감이었고 총명했다. 보들레르는 팡시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팡시울은 찬탄할 만한 광대이며, 거의 국왕의 친구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직업상 희극에 몸을 바치고 사람들에게는 진지한 일이 숙면적인 매력을 갖는 법이어서, 국가라거나 자유라는 관념이 일개 익살 광대의 뇌수를 폭압적으로 사로잡는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느 날 광시울은 불만을 품은 몇몇 귀족들의 음모에 가담했다. 임금을 폐하고, 사회에 물어보지도 않고 사회의 이전을 도모하고 싶어 하는 이 우울증 기질의 분자들을 권력에 밀고하는 갸륵한 인간들은 어디를 가나 있게 마련이다. 문제의 귀족들은 광시울과 더불어 체포되었으며, 꼼짝없이 사형에 처해질 판이었다.




국왕은 그의 죽음을 잠시 유보하고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를 기회를 준다. 팡시울은 그 무대 위에서 지상 최대의 쇼를 펼치고, 그 무대 위에서 죽는다. 나는 이 극적인 익살광대의 소동극에 매력을 느꼈다. 역린'은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아버지의 질서를 무질서로 전복하는 행위'이다. 팡시울의 목적은 질서의 세계를 혼돈으로 만드는 것이다. << 다크 나이트 >> 의 조커는 바로 그 어릿광대 팡시울'을 연상하게 만든다. 브루스 웨인'이 신트로피 : 무질서에서 질서를 대표한다면 조커는 네트로피 : 질서에서 무질서'를 대표한다. 전자가 인간의 개입을 통한 예측 가능한 세계라면 후자는 예측 불가능한 요소인 우연과 혼돈의 자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돈에 집착하는 것은 화폐'가 미래 설계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본가인 브루스 웨인은 예측 가능한 세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법(징벌), 질서, 화폐, 도덕(선과 정의), 제도 따위는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 세계에서 벗어나 예측 가능한 확률을 높이기 위한 술책'에 불과하다. 관객인 우리가 조커의 동선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이유는 법과 질서 그리고 상식의 세계'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은행을 털 때 그 행위가 돈을 강탈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지레짐작하지만 조커는 예측 가능한 세계에 속한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화폐를 모두 불태운다. 그에게 있어서 예측 가능한 세계는 파괴되어야 할 가짜'이기에 화폐'는 의미가 없다. 조커는 병실에 누운 투페이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 정해진 질서를 뒤집으면 모든 건 카오스(혼돈)이 되지 !  나는 카오스의 화신이야. " 조커의 번호가 제로(0)인 것은 그가 기본적으로 무정부주의자(아니키스트)이면서 무산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악'이 아니라 nothing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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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











조국과 허클베리 핀





어두워져 모닥불가에 앉아 담배를 피우자, 꽤 흡족한 기분이 들었다


ㅡ 허클베리 핀







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담배는 1군 발암 물질이거든요. 그래서 지상파 방송에서 영화를 송출할 때 흡연하는 장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죠. 잘생긴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 멋있어 보이잖아요. 청소년들이 이를 모방하다가 결국에는 골초가 되죠.  그러니 흡연 장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것에 대해 저는 그다지 불만 없습니다. 뭐, 솔직히 누가 요즘 지상파 방송에서 하는 외화'를 봅니까 ? 하여튼 담배는 호환 마마와 쌍벽을 이루는 공공의 적'이죠. 지정된 흡연 장소가 아니라면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됩니다. 그리고 편의점에서 청소년에게 담배를 판매하면 법의 응징을 받습니다. 


며칠 전에 마이클 커티즈 감독이 1960년에 연출한 << 허클베리 핀의 모험 >> 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영화에서 꼬맹이 허클베리 핀 골초1)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개, 깜놀 !!!  대한민국이었다면 귀싸대기를 올렸을 겁니다. 암요,  동네 양아치도 윗사람 등에 배신의 칼을 꽂을지언정 윗사람과 맞담배는 안 피우죠. 허허, 이것 참. 이봐, 허클베리 핀 ! 흡연은 청소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마크 트웨인의 원작 소설'이 1886년에 출간되었으니 그 당시에 담배는 남녀노소 즐기는 기호 식품이었나 봅니다.  감독은 원작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보니 


시대에 역행하는 < 소년 골초 > 를 만들었겠지요. 그런데 어제 데이비드 린의 << 여정, 1955 >> 이라는 영화를 보다가 또 또다시 놀라고 말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약방의 감초로 등장하는 이태리 꼬마'도 골초더군요. 그러니까 1960년대에는 꼬마들이 담배를 피워도 흉이 되지 않는 시대였던 겁니다. 지금의 잣대로 보자면 꼬마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입으로 담배를 피도 되나, 안 되나 ?  문득, " 논란의 조국 " 이 떠오르더군요.  지금의 기준에서 보면 그때의 입시 특례 제도는 특정 계급에게 유리한 룰이었습니다만, 


그때의 기준에서 보자면  학종 특례 제도는 매우 선진화된 입시 제도였습니다. 못 믿으시겠다고요 ?  조중동은 그 당시에 학종 특례 제도를 선진화된 입시 제도'라고 칭찬하는 기사를 쏟아낸 장본인'입니다. 그렇다면 그때는 맞는데 지금은 틀린 것입니까 ?  그것이 내로남불입니까 ?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기준을 제시하는 현대의 윤리 기준도 내로남불입니까 ?  말해보시라요, 네에 ??!   현대의 기준에서 보자면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맹이(허클베리 핀의 모험)가 흡연을 하는 장면 묘사'가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준다고 해서 번역할 때 흡연 장면(or 문장)만 뽑아 삭제'해도 될까요 ? 


조국의 내로남불이 위선'이라며 이 불공정한 세상이 지옥이라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나는 차라리 지옥에 가겠어 !    << 허클베리 핀의 모험 >> 에서 주인공 허클베리 핀'이 흑인 인종 차별에 항의하며 주먹 불끈 쥐며 한,  그 유명한 말입니다.  쓸데없는 말이 길어졌군요. 이제 그만 글을 닫도록 하겠습니다. 흡연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덧대기

해마다 히트 상품을 선정한다. 몇 년 전에는 " 허니버터칩 " 이 그해의 히트상품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만약에 내가 히트 상품 선정단의 일원'이라면 21세기 대한민국의 최고 히트상품은 " 기레기 " 라는 신조어'에게 왕관을 씌워줄 것 같다. 허니버터칩은 한해 반짝 하다 요즘은 낯짝도 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기레기'라는 프레임은 꽤 오랫동안 장수할 히트상품으로 보여진다. 질문의 수준이 믿을 수 없어서 자꾸 그 기자의 낯짝을 보게 된다. 기레기, 라는 21세기 상품. 히트다, 히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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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O K E R 











 






<< 베트맨 >> 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커 캐릭터를 따로 떼어 만든, 조커의 기원'을 담은 영화 << 조커 >> 가 곧 개봉(10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원작 << 베트맨 >> 보다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뤘으니 프리퀼(Prequel)이자 원작의 파생상품에 가까우니 스핀오프(Spin-off)의 성격을 띠는 후속작'이다. 개인적으로 " 조커 " 라는 캐릭터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터라 모처럼 기대되는 개봉 예정작'이 나왔다. 더군다나 조커 역을 호아킨 피닉스'가 맡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기립박수를 쳤다.  병리학적 인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호아킨 피닉스 만한 배우를 찾기란 드물뿐만 아니라 어릴 적 구순구개열(흔히 언청이라 부른다)에 의한 입술 흉터를 가지고 있는 호아킨 피닉스와 조커는 서로 닮은 흉터를 간직한 운명론적 쌍생아'가 아닐까 ?  조커는 베트맨의 반대말'이다. 베트맨이 자본가 계급을 상징한다면 조커는 노동자 계급을 상징한다. 또한 베트맨이 남근을 상징하는 방망이(bat : 박쥐라는 뜻과 함께 야구방망이라는 뜻도 있다)를 손에 쥔 남성 자경단을 대표한다면 조커는 찢어진 입술을 가진 여성성'을 대표한다. 인간의 신체 기관 중 입술은 여성 성기와 닮은꼴이라는 점에서 조커는 베트맨의 대척점에 놓인 인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 베트맨 >> 이라는 영화의 핵심이 어머니의 복수를 위해 아버지에게 복수하는 조커의 서사'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음은 2012년 8월 4일에 작성한 글 << 베트맨보다는 조커에게 경배를, 부제 0에 대한 모든 것 >> 에서 부분 발췌한 내용이다. 예고편만 놓고 보면 조커에 대한 나의 캐릭터 분석은 정확한 편이다. 그는 죽어가는 어머니를 극진히 보살피는 아들로 등장한다. 




옛날부터 조커/광대'는 왕의 노리개로 내시'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 여자 같은 남자를 조롱할 때 흔히 쓰는 말이 내시 같다는 말이다. ) 이성복 시인이 아, 입이 없는 것들이라고 한탄했다면,  나는 " 아, 부, 부부부부부부불알'이 없는 것들 ! " 이라고 외치겠다. 영화 속 조커는 좆이 없는 존재다. 이러한 사실은 상처 입은 입을 보면 답이 나온다. 입을 90도 각도로 틀면 입이 여성 성기'를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 속 조커의 입술이 유난히 강조된 이유는 바로 조커가 여성(성을 간직한 남성)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입술이 폭력적인 아버지에 의해 찢어졌다는 것은 조커가 아버지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찢어진 입은 강간, 낙태, 임신중절'을 연상케한다. 조커는 남성 폭력에 의해 강제로 적출된 낙태아'이다. 지금 그녀는 복수를 하기 위해 배트맨과 싸움을 신청한 것이다. 말 그대로 방망이를 든 사내와 세기의 성대결을 벌이는 것이다. bat는 말 그대로 야구 배트'를 의미하지 않은가 ? 몽둥이란 폭력적 가부장의 대표적 오브제가 아니었던가 ? 라캉은 여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 "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여자는 0'이다. 그러므로 조커는 여자다. 왜냐하면 카드에서 조커는 숫자 0이기 때문이다. 나는 진심으로 조커'가 승리하기를 바랐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응징하기 위해 나타난 조커 ! 얼마나 멋진가. 남근을 닮은 그 몽둥이'를 부러뜨리기 위해 그녀는 돌아온 것이다. 배트맨은 bat가 아니가 bad다. 그는 나쁜 놈이다.  

 ㅡ << 베트맨보다는 조커에게 경배를, 부제 0에 대한 모든 것 >> 2012.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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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09-01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커를 배트맨의 또 다른 자아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는데, 곰곰발님의 해석과 좋은 대조가 되는 듯 합니다.^^:)
 









" 23시간 59분 59초 " 의 세계






이 남자는 얼마나 행복한가 !



현대는 이미지 시대'이다.  옛날에는 정보를 문자에서 얻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영상을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런 점에서 글자'보다는 사진을 중심으로 하는 인스타그램은 이미지 중심의 정보 플랫폼'이다. 그렇기에 인스타그램에서 " 핵인싸 " 가 되기 위해서는 사진을 많이 올려야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유통되는 가장 흔한 사진은 자신의 얼굴, 얼굴, 얼굴, 얼굴-들'이다.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으로 모두 다 행복해 보인다. 인스타그램 이용자는 그 사진 이미지를 통해서 그 사람의 하루'가 어떠했는가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사진'이라는 것은 24시간에서 겨우 " 1초의 세계 " 를 인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23시간 59분 59초는 공개되지 않은, 감춰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화된 1초의 세계가 그 사람의 하루를 대표'한다. 단언컨대, 웃고 있는 얼굴 사진을 자주 SNS에 자주 올리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정말로 행복한 사람은 굳이 공유 플랫폼을 통해서 자신의 행복을 광고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불행을 감추기 위해서 행복해 보이는 사진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행복한 웃음을 만드는 데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스마일, 찰칵 ~ 나는 인화된 1초의 세계를 볼 때마다 그 사람의 23시간 59분 59초의 세계'가 궁금해 진다. 완벽하게 행복한 사람은 웃지 않는다. 왜냐하면 웃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진 부자가 빈자 앞에서 명품으로 부를 과시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당신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 사진을 올릴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 그것은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증거이니까. 내가 속을 줄 알았지 ?  하여, 나는 행복하다. 타자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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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9-01 08: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가 어떻게 사는지 관심 가져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sns을 안 해요. sns에 게시물을 많이 올리는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살고 있다˝면서 광고하는 일에 몰두하잖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9-01 11:25   좋아요 0 | URL
요즘은 무엇을 먹었는지도 항상 일단 사진을 찍곤 하죠. 왜 음식 사진을 그렇게 열심히 찍는지 모르겠군요. 참, 요즘은 영화 티켓 인증샷도 엄청 찍던데. 이거 왜 찍는 거죠 ?
 



​                      


정 치 와   영 화   : 








조국, 의혹의 전망대
















                                                                                        세계 최초의 영화는 << 열차의 도착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1896 >> 이다. 1분이 채 안 되는 영화'이니 " 최초의 영화 " 라기보다는 " 최초의 움짤(최초의 ㅡ 비디오 클립, 동영상, 뉴스릴) " 이라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움짤-계의 박혁거세 격인 이 영화를 보고 싶다면 유튜브'를 통해 확인하시라.  내용은 제목 그대로 기차가 역에 도착하는 장면을 담았다.  최초의 영화에 초대된 최초의 관객은 열차가 도착하자 혼비백산하여 도망쳤다고 한다.  열차가 스크린을 뚫고 객석으로 돌진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의 극장 빤스런 사건'이다. 이 믿을 수 없는 " 옛 어르신의 빤스-런 " 은 그 당시에는 상식'에 기초한 행동이었다.  오히려 기차의 움짤을 보고도 튀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있던 몇몇 관객의 행동이야말로 튀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처럼 영화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시대에 그리피스 감독은 서로 다른 시기에 발생한 4개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한, 플롯과 내러티브가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 인똘레랑스 Intolerance: Love's Struggle Throughout The Ages, 1916 >> 를 만든다. 이 영화는 후세에 시대를 앞선 진일보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영화와 관객의 수준 차이'이다. 기차가 도착한다고 빤스런 했던 관객이 이 복잡한 내러티브와 세련된 플롯 그리고 영화 문법이 전무했던 시대에 교차편집과 평행편집을 선보였으니 당시의 관객이 이 영화의 급진적인 미학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이 영화에는 엑스트라 4천 명과 말 1만 마리'가 동원될 만큼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부었지만 흥행에 참패함으로써 " 미국 영화 


역사상 첫 번째 메이저 박스오피스 재앙 " 이 되었다. 이처럼 특별한 것(영화의 작품성)과 평범한 것(관객의 수준)의 간극이 클 때 비극은 발생한다. 오손 웰즈는 영화 역사상 전무후무한 걸작 << 시민 케인 >> 의 흥행 참패로 몰락했다. 이 영화는 관객뿐만 아니라 비평가에게도 신랄한 혹평을 받았다. 찰떡을 만들었는데 개떡이라고 욕을 한 것이다. 버스터 키튼 또한 그의 최고 걸작이라 할 수 있는 << 제너럴 >> 을 완성했으나 흥행 실패로 몰락했으며, 마이클 치미노의 << 천국의 문 >>은 후세에 " 저주받은 걸작 " 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지만 감독에게는 치명적인 아퍼컷'이었다. 그외 몇몇 천재 감독들도 그런 방식으로 잊혀져 갔다. 


이 글에서 언급한 << 인톨러런스 >> , << 시민 케인 >> , << 천국의 문 >> 은 모두 복잡한 서사의 영화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관객은 단선적이며 단순하고 선명한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영화라 해도 이야기 전개가 복잡하여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면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판을 정치판으로 옮기면 최근 벌어지고 있는 조국이라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조국 >> 이라는 영화는 단선적이고 단순하며 선명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유권자'에게는 꽤나 복잡하며 배배 꼬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 배배 꼬였네 ~ 들쑥날쑥해 ~ " 


조국 딸 특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 학종 " 이라는 별종을 이해해야 하고, 수시와 정시의 세계를 파악해야 하며, 특례와 특혜의 사전적 차이도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깐 << 조국 >> 이라는 영화는 내러티브와 플롯이 복잡해서 관객은 조국이라는 캐릭터가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 헷갈린다. 마치 << 천국의 문 >> 에서 제임스'라는 캐릭터를 두고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지를 두고 끝장 토론을 펼치는 영화광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 그러다 보니 같은 영화인데도 영화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못해 초초하다. 동일한 텍스트를 두고 다양한 해석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 조국 >> 이라는 영화는 꽤 훌륭한 영화'다. 


내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관람하고 나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국은 입시제도의 특례를 활용한 것이지 특혜를 입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한국인의 특권 의식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자신이 누렸던 특권은 보지 못했다. 그것은 흑인 여자는 거울을 볼 때 거울 속에서 " 흑인 " 여자를 보지만 백인 여자는 거울을 볼 때 거울 속에서 " 여자 " 를 보는 것과 유사하다.  특권을 가진 자는 특권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복잡한 내러티브를 20자평으로 요약하는 기술이 탁월한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내린 20자평은 다음과 같다. " 특례는 활용했으나 특혜는 없었다. " 이 20자평을 보다 짧은 10자 내외의 촌평으로 압축하자면 " 특례 OK, 특혜 NO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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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8-31 13: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조국 개인보다도 이 ‘문제적 인물‘을 자기 편의적, 일방적, 단선적으로만 해석하는 이들을 볼 때면 두통을 느낍니다. 자한당 계열의 사람들은 그동안 자신이 누렸던 특권을 조금도 인지하지 않으면서 조국 일인 때리기에만 광적으로 몰두하고 있고, 민주당과 우호적인 사람들은 ‘자한당 배후설‘을 주장하거나 ‘오직 조국만이 희망이다‘라는 식으로 일관하면서 특례의 문제성과 정당성에 대해선 ‘그래도 불법은 없었다‘는 태도만을 보이고 있더군요.
저도 제 서재에 조국에 관해서 쓰기는 했습니다만, 지금 상황에서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조국 일인의 장관 임명 여부를 넘어서 절차의 공정성과 정치적 정직성, 기득권의 형성과 대물림에 대한 총체적인 고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울러 부언을 하자면 저는 일명 SKY라고 불리는 대학들에 소속된 학생들이 추진하고 있는 집회와 시위에 대해서도 (그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의심과 아쉬움도 들더군요. 이들도 이른바 ‘명문대‘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인데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지언정 자신들의 출신 성분이나 입학 과정, 입신 욕망에 대해서는 자기 점검하는 기색이 별반 없더군요. 과연 이런 이들이 ‘명문대‘라는 영역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 여러 가지 이유로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 그 대학조차 갈 여력이 없어서 일찌감치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젊은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8-31 15:04   좋아요 1 | URL
저도 서울대 고대 촛불 집회 보고서.. 의아.... 아니 그들은 ˝ 기울어진 운동장 ˝ 운운하던데, 사실 그들도 기득권의 핵심에 진입한 이들 아닙니까.... 좀 웃긴 일이었음 -_- , 조만간 한 잔 ~

겨울호랑이 2019-08-31 14: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께서 명쾌하게 정리해 주셨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8-31 15:03   좋아요 1 | URL
ㅎㅎ 명쾌하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