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에 대한 이런저런 그런 생각-들








1 척하기


척하기를 고상한 말투로 옮기면 < 상호작용 의례, face to face interaction > 라고 한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 동생 이름은 배가 고프구먼 씨'다, 농담이다. << 대면 행동에 관한 에세이 >> 라는 책에서 인간의 연극적 속성을 다룬다. 예를 들면 자신을 제외하고는 화장실에 아무도 없을 때 화장실 이용자가 일을 마친 후 손을 씻는 비율은 20%가 안되지만 화장실 로비에 사람이 있을 경우에는 70%가 넘는 사람이 손을 씻는다고 한다. 손을 씻는 사람이 50%가 증가하는 까닭은 타인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 ㅡ 척하기 > 이다. 손을 씻는 행위는 의사 표현 행위에 해당되지 않지만 메시지는 분명하다. 나, 이래 봬도 깔끔한 사람이에요 ! 영화 << 기생충 >> 의 키워드도 바로 " ㅡ 척하기 " 이다. 기택(송강호 분) 가족은 ㅡ 척하기'로 생계를 꾸린다. 국내파 고졸 백수는 해외파 대졸 고수가 되어 전문가인 척한다. 반면에 박사장(이선균 분) 부부가 선보인 내공은 " 착하기 " 이다. 부부는 깨나 다정하고 예의 바른 상류층'을 연기하는데, 이들 부부가 선보이는 착하기는 척하기의 모방, 흉내, 혼용에 불과하다. 박사장 부부는 착하기를 척하기 한다. 반면에 지하 벙커에 사는 사람은 " 유령 " 을 연기한다. 그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척하는 존재'다. 





2 바퀴벌레


이중에서도 가장 자본주의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지상에 사는 박사장 가족이 아니라 지하 벙커에 사는 근세(박명훈 분)라는 캐릭터'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산(破産) 선고는 곧 파생(破生) 선고를 의미하기에 빚쟁이에게 쫒겨 지하 벙커로 숨은 대만대왕카스테라 가게 사장은 산 자이나 죽은 자나 다름 없다. 그는 살아 있지만 그 누구에게도 보여줘서는 안되는 존재이다. 자본주의적 응징인 셈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비가시적 영역에서만 존재해야 하는 투명 인간'이다. 바퀴벌레라는 존재도 비가사적 영역에서만 존재해야 한다. 비가시적 존재가 가시적 영역에서 발각되는 경우는...... 뭐, 다들 아시다시피 죽음이다.



3 냄새

가난한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한 세간살이는 태양이다. 우선 햇볕 은 종합비타민제볕만 잘 쬐도 비타민D는 생성되니 태양이야말로 영양가 높은 < ① 비타민제 인 것이다또한 햇볕은 세로토닌을 생성하기에 < ② 항우울제 이기도 하다. 정신과 의사가 우울증 환자에게 늘상 하는 소리가 볕 좋은 날에 산책을 자주 하라는 당부다. 그뿐인가살균 소독 건조 기능이 있으니 < ③ 식기 건조기 > , < ④ 살균기 > , < ⑤ 빨래 건조기 이다또한 볕만 잘 들어도 난방비를 절약할 수 있으니 < ⑥ 절약형 보일러 > 요, < ⑦ 형광등 > 기능도 가지고 있다. 자연 속에서 전기 없이 사는 자연인이 최소한의 살림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은 햇볕이라는 만능 세간살이 덕분이다. 이 모든 기능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기능은 ⑧ 탈취 기능이다.  볕에 잘 말린 옷은 눅눅한 옷에 비싼 방향제를 뿌린 옷보다 기분 좋은 냄새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햇볕은 부자보다 빈자에게 더 중요한 세간살이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난한 사람일수록 좋을 볕을 얻을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박사장이 맡는 냄새는 바로 햇볕이 부족한 데에서 오는 것이다. 




4 공의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태복음 : 5장 45절). 해와 비는 공공재'다.  그 혜택을 받는 자가 불의한 자'라 해도 불의한 자'조차 공평하게 해와 비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달리,  기택과 근세는 가난하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볕을 차단당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는 단비가 아니라 범람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의 범람은 박사장에게는 단비이다. 비 그치면 미세먼지 없는,  볕 좋은 맑은 하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불의로 만든 주체는 하나님인가, 자본제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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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와르 가족 음모 코믹 서스펜스 스릴러  : 









기생충




                                                                                                     내가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기생충1) >> 에서 기택 식구(송강호 분)가 사는 반지하 집이 세트장'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간파한 이유는 반지하에서 살아본 내 경험이 반영된 탓이 크다. 영화 속 반지하 집 거실 창문짝은 네 개2)인데, 특별한 용도로 지어진 공간이 아닌 이상, 실제로 저런 식으로 지어진 가정집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창문 면적이 넓으면 똥바람이 거리 바닥의 쓰레기를 쓸어 담아 집안으로 무단 투기할 뿐만 아니라 설상가상 밖에서 안이 훤히 다 보여서 그만큼 사생활이 노출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지상보다 지하가 서늘하기에 굳이 무더운 여름을 대비하기 위해서 창문을 크게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반지하 집 창문은 반투명 유리로 창문 크기를 최소화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평소에 가슴을 활짝 펴고 푸른 창공을 보며 씩씩하게 걷지 않고 항상 구부정한 자세로 바닥을 관찰하며 걷는 습관과 반지하 집에서 살았던 내 경험의 총합인 셈이다( 바닥에 대한 토킹어바웃'이라면 그 누구보다 자신있다. 이 바닥에서 그 바닥에 대한 인문학적 교양을 뽐낼 이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 한 바닥 하는 사람입니다. 허허 ). 


지상의 세입자에게 밖이 훤히 보이는 탁 트인 병풍식 4단 창문은 근사한 풍경이 되지만 반지하 세입자에게는 사생활이 전방위적으로 노출이 되는 불안의 통로에 불과할 뿐이다. 디테일의 제왕인 봉준호가 설계한 정교한 세트장이 내 눈에는 허술하게 보였던 까닭은 안양 충훈부 반지하 셋방에서 십오촉 알전구 밑에서 불온서적을 등사하며 바퀴벌레처럼 살았던 남루한 내 삶의 흔적 때문이었다.  오케이, 거기까지 !  영화는 자의 반 타의 반 내가 하류층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며 출발했다. 내가 이 영화에 몰입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 영화를 보다가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박찬욱의 말이었다. 


그는 오래전에 기자와 인터뷰(2004년 인터뷰)하면서 " 이제는 부자가 착하기까지 하다 " 고 말한 적이 있다.



: 이 영화(쓰리 몬스터, 2004)는 프로렐타리아의  피 빠는 부르조아의 이야기인가?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룬 것인가?

: 이 스토리를 만들때 제일 처음 떠올랐던 경험이 있는데 << JSA >> 가 흥행한 직후 여기 저기서 초청이 많았다. 그중에 거절할 수 없었던 조찬모임이 있었는데 ' 21세기를 준비하는 어쩌구 모임 ' 이었다. 재벌 2세나 교수, 의사 등 나이가 나보다는 조금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는 모임이라 가긴 가면서도 밥맛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다들 매너좋고 겸손하고 지적이고 ...... 선입견이 완전히 무너졌다. 사람이 삐딱하다 보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텐데 좋은 사람이라는 호감보다는 다 가진 놈들이 착하기까지 하구나 싶어 화가 나고 슬펐다. 이 사람들은 맨손으로 뭘 한게 아니라 이미 다 부자들이고 부를 세습한 이들이라 뭐 하나 부족함이 없어서 성격이 나빠질 일이 뭐있냐, 이전엔 천민자본주의가 있었지만 그들의 2,3세는 상류사회 환경 속에서 성장해서 나쁜 것을 할 필요가 없다. 그와 반대로 가난뱅이들은 욕망이 많은데 채워지지 않으니 삐뚤어질 수 밖에 없다. 미덕이 세습된다는 것. 그런 식으로 계급이 정착되고 벗어나기 어려워 지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듯이 그래봐야 상류사회의 매너나 교양을 얻을 수는 없다.  그건 나중에 다뤄봐야 겠다, ' 너무 착해 미움받는 사람 ' 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박찬욱 감독).


​- 2004년 인터뷰, 박찬욱 감독

 


2004년도 인터뷰이다 보니 박찬욱 감독이 여전히 그 사실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한때 박찬욱도 순진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박 감독, 땅콩이나 드슈 !  봉준호 감독도 영화 속 기택의 말을 빌려 이와 비슷한 말을 한다. 나는 봉준호 감독이 박찬욱의 오래전 인터뷰를 눈여겨보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박찬욱의 질문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부자가 착하기만 할까 ?  박찬욱의 순진한 절망과는 달리,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에서 다 가진 놈이 착하기도 하다는 인상비평에 반론을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감독이 보기에 다 가진 놈들이 보여주는 < - 착하기 > 는 < - 척하기 > 의 변종, 흉내, 패러디, 혼성모방(패스티쉬)에 불과하다.  이 혼성모방은 공허한 패러디이며, 유머 감각을 상실한 패러디'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 』에서 한 말이다.  영화에서는 " PRETEND : 척하기 " 라는 단어가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대사 속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이 영화의 주요 메시지인 셈이다. 반지하보다 더 낮은 곳에서 사는 " 근세 " 라는 인물은 사채업자를 피해 비밀 벙커로 숨어든 자로 죽은 척하면서 살아가는 인물이다.  이런 부류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다. 


그는 죽은 척하는 생태'이자 얼어죽을 동태'이다. 생태야, 영업 시간 끝났어. 이제 숨 쉬어 ! 흙흙흙.     그는 산 자이지만 죽은 자 " 유령 " 이며 투명 망토 쓴 " 인간 " 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곧 파산 선고(産ㅡ)이자 동시에 파생 선고(破生ㅡ)와 같다. 기택 식구들도 마찬가지'이다. 가족은 파산으로 인한 파생이 두려워 가족 음모를 꾸민다. 그뿐 아니라 상류층(ㅡ層)도 종종 쇼파에서 상류충(ㅡ蟲)을 드러낸다.  박찬욱 감독은 다 가진 놈이 착하기도 하다는 인식론적 한계에 멈췄다면 봉준호 감독은 다 가진 놈이 " 착하기를 척하기 " 를 하고 있는 사려 깊고 우아하며 은밀한 부르조아의 욕망을 폭로한다.  


태극기부대의 말투를 빌리자면 봉준호는 박찬욱보다 더,  더 더 뼛속까지 빨갱이인 셈이다. 박사장 부부가 보여주는 착하기는 하류층이 선을 넘지 않을 때에만 가능한 매너'이다.  이러한 태도는 하류층을 냄새로 구별하려는 박사장의 태도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영화의 색깔은 블랙(코미디)로 시작해서 느와르(코미디)로 급변한다. 급변하는 솜씨가 매우 탁월하다. 이 영화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재미있다는 점이다. 칸느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 중에서 이보다 재미있는 영화는 없었다. 나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




​                              


1) 


2)  영화 << 기생충 >> 오프닝 장면




▶  블로그나 인스타그램 따위의 SNS에서 학력과 재력을 뽐내는 인간이 있었다. 그가 제공한 정보에 의하면 그는 엘리트'였다. 자격지심이었을까 ?  나는 호시탐탐 그가 약점을 노출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걸리기만 해봐라 ! 수박 씨 발라 먹을 놈아 ~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사진 한 장'을 올렸는데 사진 속 백그라운드가 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쪽창의 높이가 비상식적으로 천장 높이 위치한 사진이었다. 이 말은 곧 그가 사는 곳이 반지하'라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반지하는 면적의 2/3가 지하에 박혀 있어서 창문은 항상 천장에 가깝게 설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높은 성에 산다고 그토록 자랑을 하던 이가 사는 곳이 반지하였다니. 입만 열면 구라가 파랄(팔할)이었던 어느 부랄후드의 지랄 같은 관종 인생 !  이 사실을 폭로해서 망신을 톡톡(talktalk)히 줄까 말까 잠시 고민했으나 포기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도 나와 같은 반지하 생활자'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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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6-28 1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9-06-28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이 천 만 간다면 제 몫도 있을 듯.
4번 봤습니다. 그 슬픔에 깊이 잠기고 싶어서.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하나님.

제가 갖고있던 ‘공의‘ 에 대해서 많이 생각 해봤습니다. 최소한 공의롭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8 20:52   좋아요 1 | URL
맙소사. 4번이나 보셨다고요.. 볼 만하죠. 저도 심야 때마다 극장 문 내리기 전에 자주 들러야 겠습니다..
나와 님, 혹시 기생충 리뷰 쓰셨나요 ?

나와같다면 2019-06-28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나는 ‘기생충‘ 이 슬펐을까?

마태복음 5장 45절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최소한의 공의라고 생각했다
악인이나 선인에게 공평하게 내리는 햇빛과 비

그 믿음이 깨졌다

갑작스런 폭우로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

비가 많이 내린 덕분에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고 깨끗한 하늘을 선물 받는 사람

기우의 계획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9 12:28   좋아요 1 | URL
나와같다면 님 댓글 읽고 한 꼭지 더 썼습니다.



4 공의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마태복음 : 5장 45절). 해와 비는 공공재‘다. 그 혜택을 받는 자가 불의한 자‘라 해도 불의한 자‘조차 공평하게 해와 비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과는 달리 기택과 근세는 가난하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볕을 차단당한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는 단비가 아니라 범람이다. 하지만 가난한 자에게 내리는 비의 범람은 박사장에게는 단비이다. 비 그치면 미세먼지 없는, 볕 좋은 맑은 하늘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공의를 불의로 만든 주체는 하나님인가, 자본제인가 ?
 

 

 

 


 

 

 

 

영화 세 편


 

 


 


1. 넘버3

유한계급은 재산이 많아서 생산 노동 활동은 하지 않고 오로지 한가롭게 백수 생활을 하며 유희와 쾌락에 탐닉하는 계급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불한당이 바로 유한계급이다. 불한당(不汗黨)이라는 단어가 땀(汗)을 흘리지 않는(不) 무리(黨)를 뜻하니 말이다. 그러니까 유한계급과 불한당은 닮았다. 인간 고라니 가족 대한항공 JOSSY FAMILY'(조씨 패밀리)가 대표적인 불한당'이다. 한국의 재벌 상류층은 유한계급이자 불한당이며 조폭이고 양아치'이며 무산 계급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층이다. 대한민국 노블레스 계급의 현주소이다. 피 빨아먹는 고라니라니. 당최, 이게 뭐라니 ?              << 유한계급론 >> 의 저자 베블린은 " 유한계급은 평화에서 호전적 생활 습관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출현했다 " 고 지적한다. 소수인 유한계급이 다수인 노동계급 사회 전체를 자지우지(좌지우지)하는 현상은 곧 한국 사회가 " 평화적 ㅡ " 이라기보다는 " 호전적 ㅡ " 문화로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태왕이 되는 사회로 변모하였고, 자라나는 청소년의 꿈은 건물주가 되는 것이다. 조물주를 섬기는 목사조차 그의 장래희망은 대형교회 건물주'다. 그들은 조물주를 팔아서 건물주가 되고자 열심히 평화를 외친다. 땀을 흘리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건물주는 무노동의 환상을 도착적으로 현실화하려는 욕망의 투사 대상이 되었다. 이제 한국인의 장래 희망은 불한당이 되는 것이다 !  영화 << 넘버 3 >> 는 유한계급이 되기 위한 하빠리-들의 무간지옥을 다룬다. 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한국 사회의 병폐를 꿰뚫는 송능한 감독의 통찰과 성찰에 있다. 영화 << 하녀, 1961 >> 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일무이한 컬트라면, << 넘버 3 >> 는 당대의 유이무이한 컬트 영화이다.


​  


2. 밀양

영화 << 밀양 >> 에서의 " 미용실 "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내가 영화를 보면서 내내 골머리를 앓던 행간이었는데, 김영민은 이것을 신애가 반만 용서하는 행위(영화 속에서 신애는 머리를 반만 깎인 상태에서 미용실을 뛰쳐나온다)라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실패도 아니고 성공도 아닌, 중단이다. 용서는 중단되었지만 그렇다고 용서를 철회한 것은 아니다. 인간이 원수를 완벽하게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만지는 일이 워낙에 금기와 관련된 탓에 원수의 딸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도록 용인하고 그 절반을 자르도록 허락한 것은 용서의 의도가 있었으나 중간에 중지가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학원 원장과 신애의 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였다면, 신애와 학원 원장 딸의 관계에서 신애는 더 이상 피해자의 위치에 있지 않다. 학원 원장 딸은 신애보다 더 낮은 약자의 위치에 있다. 살인자의 딸은 도시의 한켠 구석에서 또래 남자애들에게 얻어맞는다. 그는 살인자의 딸이기에 그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다. 신애가 약자라면 원장 딸은 그보다 낮은 희생양이다. 그렇기에 신애는 원장 딸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위대한 한국 영화 한 편을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 영화를 선정하겠다. 보면 볼수록 사유의 폭이 넓고 깊다.   






3. 기생충

노릇은 롤(: ROLE )에 가깝고, 버릇은 룰(: RULE )에 가깝다. 무릇, 노릇은 역할 놀이이다. 아비 노릇, 자식 노릇, 사위 노릇 따위에서 알 수 있듯이 노릇은 직위에 대한 책무의 무거움이 투사된 낱말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이 " 대통령 못해 먹겠다 ! " 라고 한 소리도 알고 보면 < 노릇 > 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대한 하소연인 셈이다. 반면에 버릇은 습관이 고착화된 행위 일반이다. 그렇다면 노릇과 버릇은 서로 상반될 수밖에 없다. < 노릇 > 은 나이가 듦에 따라 역할이 바뀐다. 자식일 때는 자식 노릇을 해야 하고, 아비일 때는 아비 노릇을 해야 한다. 만약에 아비 노릇을 해야 할 때 자식 노릇을 하면 철없다는 소리 듣기 쉽다. 즉, 직위(노릇)에 따른 책무도 나이가 듦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다. 반면에 버릇은 불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 노릇을 해야 하는, 인간으로 둔갑한 천 년 여우가 밤마다 닭의 생간을 먹는 것은 생래적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버릇의 불변을 상기시킨다. 바디 체인지'를 다룬 영화 << 내 안에 그놈, 2018 >> 은 노릇과 버릇이 충돌하는 영화이다. 양아치 아재와 겁쟁이 고딩이 우연한 사고로 인해 몸이 바뀌게 되는데, 이런 류의 영화는 노릇과 버릇이 혼동을 일으키며 발생하게 되는 왁자지껄을 다룬다. 겁쟁이 고딩의 몸으로 들어간 양아치 아재'는 고딩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만 아재 때 습속을 버리지 못하는 바람에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형이 거기서 왜 나와 ?! 그 역(逆)도 마찬가지'이다. 양아치 아재의 몸으로 들어간 겁쟁이 고딩은 아재 노릇에 충실해야 하지만 부지불식 간에 고딩 때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툭 튀어나온다. 영화 << 기생충 >> 도 일종의 노릇과 버릇이 뒤섞일 때 발생하게 되는 곤경을 다룬다. 하류층 가족이 상류층 가족과 동화되기 위해서는 하류층의 버릇을 감춘 채 상류층 노릇을 모방, 흉내, 척하기와 같은 연기를 해야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불쑥 하류층의 버릇이 튀어나온다. 상류층도 마찬가지'이다. 상류층은 종종 부지불식간이 상류충(ㅡㅡ蟲)을 드러낸다. 뭐, 아님 말고1) ■




​                     

1) 참고로 << 기생충 >> 과 관련된 리뷰는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고 쓴 글이다( 영화 예고편 한 편 본 게 전부다. 이 영화와 관련된 리뷰나 기사 그리고 평론도 읽지 않았다 ). 읽지 않고 읽은 척하는 기술을 터득하다 보면 보지 않고도 본 척하는 내숭의 경지에 다다르게 된다. 김영민은 알면서 모른 척하라고 충고하지만 나는 그 충고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알면서 모른 척하는 것보다 상위는 "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 " 이다. 그거시 바로 관심법이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영화를 보지도 않았으면서 본 척하는 글에 화가 나서 가래침을 툭 내뱉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 누가 지금 가래침 뱉는 소리를 내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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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 2019-06-15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지내시나요? 곰발님의 재치는 이미 스타일이 되었군요.
저는 어떤 글이 좋은가... 그런 것들을 구별하지 못해요. 대개 책을 읽을 때도 읽기 어려우면 필사를 하고 읽을 만 하면 그대로 읽고 하는데, 곰발님 글을 읽을 때는 음성 지원이 되는 경험을 해요. 곰발님의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저도 뭔가 스타일을 만들어 볼까 봐요. 야무진 꿈이지만요.
(하나 물어도 될까요? 김영민 씨의 ‘알면서 모른 척‘이 어떤 맥락일까요. 곰발님이나 김영민 씨는 어떤 때 알면서 모른 척할까요. 곤란한 질문이라면 이 글은 보이지 않는 겁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15 18:22   좋아요 0 | URL
아이고. 반갑네요. 초원 님 ! 잘 지내십니까, 저는 늘 그렇습니다..




공자는 셋이 길을 걸으면 반드시 한 사람은 스승으로 모실 만하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공자는 사람의 관계를 스승으로 모실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별을 하는데 이것은 곧 인간 관계를 수직 서열화하는 태도인데, 김영민은 그렇게 되면 셋이 동무가 될 수 없다면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15 17:58   좋아요 0 | URL
글구보니 누군가 초원 님과 똑같은 소리를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도 내 글이 음성지원되는 독특한 문장이라고 하더군요 ^^

초원 2019-06-17 21:08   좋아요 1 | URL
답변 감사해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목소리 들려주세요.

*몇 마디 더 덧붙여였었는데,
제가 더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서 댓글을 수정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주의할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7 19:37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주의 안 하셔도 됩니다. ㅎㅎㅎㅎㅎ

수다맨 2019-06-24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곰곰발님 서재에 들렀습니다.
저는 시간이 좀 지나서 이 영화를 볼 생각입니다. 지금 이 영화를 보았다가는 특정한 명예(황금종려상)와 특정한 열정(천만 관객 돌파 초읽기)을 의식해야 하기에 오독과 오해를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현재 이 영화에 낀 거품이 좀 빠지면, 보다 차가운 눈으로 시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27 19:36   좋아요 0 | URL
영화 보셨습니까 ? 오늘내일이면 막을 내릴 것 같던데..
 
괴물 [VCD]
봉준호 감독, 고아성 외 출연 / 대경DVD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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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괴물에 대하여    :



 




잔디밭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너무 빨리 다가온 타자는 괴물이 되고 영영 오지 않는 타자는 메시아가 된다1)


 

 

 

 

                                                                                                    조용필과 괴수(물)의 공통점은 둘 다 피날레를 풀샷으로 장식한다는 점이다. 내가 기억하는 조용필은 피날레 무대에 올라 마지막 노래를 부른다. 하늘에서는 박이 터지며 색종이 날리고, 무대에서는 박수 터지며 환호를 날린다.

삼 파장 발광 다이오드적 극성이 내장된 럭키금성 티븨 모니터 화면에 엔딩 자막이 뜬다. 지금은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  다음에 또 만나요 !  괴수(물)가 등장하는 장르도 마찬가지'이다. 괴수는 처음부터 인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 멀리서 저잣거리를 염탐하는 < 거리 두기 방식 > 을 선호한다. 그렇기에 관객이 괴수의 전신을 보기 위해서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장르적 약속이자 관습이다. 관객은 절정에 다다르기 전까지는 괴수 신체의 편린-들'만 볼 수 있다. 관객에게 전부가 아닌 부분만 살짝살짝 보여주는 열쇠 구멍 수법은 " 감질나 " 지만 또 나름 그것이야말로 괴수물의 " 감칠맛 " 이기도 하다. 그래, 이 맛이야 !

일종의 절편음란증적 관습을 즐기는 경우이다.  장르 마니아라면 장르 영화 패턴이 똑같다며 욕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익숙함에 대한 무저항이 바로 장르 마니아의 미더덕'이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 << 괴물, 2006 >> 은 장르의 익숙한 순서를 180도 뒤집는다. 괴물은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이 채 지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낮에 보란듯이 전신을 드러내며 한강 공원의 고른 잔디밭을 들쑥날쑥한 쑥대밭으로 만든다. 여담이지만  :  한강 공원 잔디밭이 딸기밭이라 한들 한순간에 쑥대밭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보고 있나, 신 작가 !     관객은 예상치 못한 등장에 당황하게 된다. 장르적 습속에 익숙했던 관객은 마음의 준비도 없이 불쑥 자신에게 달려드는 괴물에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마음의 준비도 없이,  너무 빨리 다가온 타자는 괴물2)이 되고,  영영 오지 않는 타자는 메시아가 된다는 점에서 봉준호의 << 괴물 >> 은 너무 빨리 등장한 타자이다. 감독은 관객이 방심하고 있을 때 허를 찌른 후 냅다 도망친다. 일격인 셈이다. 봉준호의 치밀한 전략 앞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절정이 맨 앞에 배치되다 보니 김 빠진 전개가 펼쳐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영화가 장르적 재미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괴물의 한강 공원 난입 사건이 사실은 진짜 절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영화 제목은 << 괴물 >> 이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다.

진짜 오르가슴이라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가짜 오르가슴이라고 밝혀졌을 때 관객은 일종의 보너스를 얻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까 영화 속에서 관객 마음을 사로잡는 < 가짜 오르가슴 > 은 노래방에서 마지막 노래를 열창하고 나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노래방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 때 마음씨 좋은 노래방 주인이 보너스 타임을 넉넉하게 넣어줄 때의 환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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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민, 집중과 영혼 962쪽  

2)   인간과 짐승은 모두 < 곁 > 이라는 이름의 고유한 영토를 가지고 있다. 이 영토(거리감)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법으로 보호를 받는다. 그래서 친밀하지 않은 낯선 타자가 자신의 동의 없이 곁을 침범하며 팔짱을 끼거나 허리를 감싸는 행위는 불법인 것이다(성범죄가 대표적이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너무 빨리 다가오는 타자는 괴물이 되는 것이다. 봉준호의 괴물은 그 어떤 동의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인간의 곁을 공격하고 파괴한다. 괴물이 너무 빨리 다가온다면 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이다. 신이 인간의 권선징악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는 신은 인간에게 관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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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  문  과     잡  문     사  이  : 

 

 

 

 

 

 

 

 

더 나쁜 쪽으로  :  숙주와 기생충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학을 순수 문학(純粹 ) 이라고 한다. 그리교양이 비교적 낮은 독자를 대상으로 하여 흥미에 중점을 둔 내용으로 평이하게 쓴 문학을 통속 문학(通俗 )이라고 한다.

전자는 한자 純(聖) : 순수할 순 에 방점이 찍혔고 후자는 俗 : 속될 속 에 방점이 찍혔다. < 순수 > 가 다른 것이 조금도 섞이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감안하면 순수 문학이냐 / 통속 문학이냐라는 질문은 곧 뉘 집 자식이니 ?  _  라는 질문과 일맥상통한다.  그 질문의 핵심은 순혈주의'다.  순수 문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평단은 작가에게 혈통이 무엇인지 / 뉘 집 자식인지 / 그리고 아버지는 뭐 하시노 ? _ 라고 묻는다. 문단 어르신의 질문에 우리 아버지, 건달입니더 _ 라고 말하는 순간, 그 결말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 

내가 문단의 이분법적 잣대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계기는 신경숙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에 신경숙 문학은 아무리 봐도 통속 문학에 가까웠다. 아니, 통속문학의 정수였다. 속되도다. 아아,  졸라 속되도다.               그런데 한국 문단은 왜 신경숙 소설을 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것일까. 누가 봐도 크리넥스 티슈와 다를 바 없는 데 말이다. 나는 신경숙의 촌스러운 쌍팔련도 키친아트적 욕망에는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신경숙은 통속 작가로서 꽤 재능 있는 작가라는 점인 인정한다.  문제는 신경숙이 잡문가가 아니라 순문가'로 둔갑한 데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신경숙은 억울한 측면이 있다.

잡문가를 순문가라며 띄워 준 집단은 문단 어르신'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경숙을 앞세워 문단 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경숙은 일종의 가케무사가 아니었을까 ?  이들은 숙주와 기생충의 관계로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도 죽는 공생'이다. 그렇다고 신경숙을 헤게모니 싸움의 피해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그 권력의 단물을 만끽한 이는 신경숙이었으니 말이다. 송충이가 갈잎을 먹으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솔잎을 먹고 사는 송충이가 먹을 것을 찾아 갈밭에 내려와 갈잎을 먹는다는 말로 자기 분수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비꼬는 말이다.

순문과 잡문을 순혈의 잣대로 나누는 속된 짓을 하면서도 입만 열면 순문학'을 예찬하는 꼴을 보면 역겹다. 신경숙보다 더 나쁜 쪽은 한국 문단이다. " 나이가 들어도 자라지 않는 비평가의 꼴을 보는 일은 슬프다. " 故 김현 문학평론가의 지적'이다. 한국 문단은 판타스틱하다, 더 나쁜 쪽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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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맨 2019-06-08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경숙은 논외로 하더라도, 백낙청 교수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럼에도 작게나마 존경의 마음을 가진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이런 것도 다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06-08 17:04   좋아요 0 | URL
수다맨 님, 29일(토)에 한 잔 합시다. 그때 솔방울 님 새로운 전시가 광화문에서 하는데 전시 보고 나서 우리 둘이 오붓하고 한 잔.. 어떻습니까 ?

수다맨 2019-06-10 09:20   좋아요 1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29일에는 제가 선약이 있어서 아무래도 약속을 잡기가 어려울 듯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6-1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 잘 알겠습니다. 나중에 변심이라도 생기시면 알려주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