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잡탕 아카이브 (유찬근 서재) &gt; 리뷰/페이퍼</title><link>http://blog.aladin.co.kr/msg2012/category/5350296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프로 잡학러와 유사학문 종사자, 이야기꾼 워너비입니다. 남의 글을 '잘' 읽어주고 싶은데, 신통치는 않습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7 May 2026 12:51:49 +0900</lastBuildDate><image><title>유찬근</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84582032403707.jpg</url><link>http://blog.aladin.co.kr/msg2012/category/5350296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유찬근</description></image><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자본주의는 여성에 기생해 번영한다: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7232958</link><pubDate>Wed, 22 Apr 2026 2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72329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901&TPaperId=172329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40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901&TPaperId=172329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a><br/>이아리.권혁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 지금은 좀 덜하지만, 한국에는 자본주의를 향한 이상한 믿음이 있다. “임금과 계약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거야!” 같은. 한국 사회가 ‘제대로 된’ 자본주의 체제로 바뀌기만 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지리라는 기대는 좌우를 막론하고 꽤 뿌리 깊다. 노동과 소유를 전통적 사회관계로부터 뿌리 뽑아 투명한 숫자로 전환한다면 최소한 전근대적 악습으로부터는 자유로워지리라는 것이다. 사실 이건 자본주의 만능론이라기보다는, 그만큼 한국의 ‘봉건 질서’가 지긋지긋하다는 환멸과 절규에 가깝다. 최근 다시금 화제가 된, 레즈비언 커플에게 한 분은 임대인, 한 분은 임차인으로 등록하면 대출을 두 배로 받을 수 있다며 영업했다는 ‘편견 없는’ 부동산 중개인의 모습은 우리가 자본주의에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nbsp;   하지만 자본주의는 마냥 투명하지 않다. 우리의 낙관처럼(?) 온갖 낡은 전통을 깡그리 밀어버리고, 임금과 계약만으로 이뤄진 차가운 유토피아를 건설하지도 않는다. 전통적 사회질서에서 약자로 존재했던 이들이 자본주의를 만나 해방되었으리라는 믿음은, 따라서 오직 절반의 진실에 가깝다. 푸른역사 “여자, 하다” 시리즈 마지막 권인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는 자본주의와 여성의 조우를 보다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일제 식민지기 ‘어멈’ 혹은 ‘식모’로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글과 1980~90년대 엘리트 여성들의 회사 생활 투쟁기를 다룬 권혁은의 글은 얼핏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식민지기 식모든, 1980년대 회사원이든 젠더와 계급이라는 이중의 굴레 속에서 생존을 위해 분투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nbsp;   이아리가 머리말에 썼듯 “우리 집은 엄마(또는 할머니)가 먹여 살렸는데”라는 회고는 한국 사회에서 낯설지 않다. 그렇다면 여성의 ‘먹여 살림’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가. 식민지기엔 가사 노동이 대표적이었다. 20세기 초엽, 신분제 폐지로 노비가 떠난 양반가의 행랑채를 농촌에서 올라온 행랑아범과 행랑어멈이 채우기 시작했다. 예나 지금이나 도시는 농촌의 넘치는 인구를 흡수하는 ‘개미지옥’인 만큼, 행랑살이는 이내 식민지 수부 경성의 한 계급이 되었다. 다만 언제까지고 성인 남녀를 먹여 주고 재워줄 수는 없는 터, 별다른 일 없이 빈둥대던 행랑아범은 도시의 부랑자로 전락했다. 반면 행랑어멈은 홀몸으로 주인집에 들어와 집안일을 해주는 ‘안잠자기’로, 나아가 완연한 가사노동자인 ‘식모’로 도시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nbsp;   조선의 ‘식모 산업’을 뒷받침한 또 하나의 원동력은 급증하던 재조일본인이었다. 식민 지배가 10년을 넘어가며 아예 조선에 살 작정으로 건너오는 일본인이 늘었다. 주로 진고개(오늘날 충무로)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내지에서 번거롭게 식모를 데려오느니, 조선인 식모를 싸게 고용하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조선인 식모 입장에서도 일본인은 나쁘지 않은 고용주였다. 비록 일본인 식모의 60%밖에 임금을 받지 못했어도 그만하면 조선에서 큰돈이었고, 조선인 가정에서 으레 하는 김장도 없었던 데다 빨래도 쉬웠다. 여럿이 한방에서 뒹굴어야 하는 조선인 집과 달리, 일본인 집은 ‘여중 전용실’이 있어 잠자리도 편했다. 물론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멸시 아래서 일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조선인 집에서 “아씨”니 “서방님”이니 존대를 바치며 굽신대는 것과 도긴개긴이라 생각하는 식모가 많았다.  &nbsp;   그렇게 전통과 근대, 민족과 계급이 교차하는 가운데 식모는 어엿한 ‘직군’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직업소개소라는 ‘근대적인’ 기관을 거쳐 조선인과 일본인 가정에 식모로 고용되었다. 1930년대 내내 경성부 직업소개소 중개 실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을 정도로 ‘식모 산업’은 활황이었다. 1929년 이후 대공황 가운데서도, 아니 대공황이었기에 식모만큼은 건재했다. 농촌의 몰락으로 여성이 할 만한 일이 식모살이밖에 없었던 탓이다. 1930년 직업 통계에 따르면 “가사 사용인”으로 분류된 사람은 총 12만 877명이었다. 직업을 가지고 있던 976만 5,514명 중 농경 종사자가 75퍼센트를 넘는 가운데 농사가 아닌 단일 직군으로는 첫손에 꼽힐 규모였다. 한국 경제의 ‘자본주의적 전환’을 이끈 건 다름 아닌 식모였다.   &nbsp;   이렇듯 근대 한반도의 여성들은 ‘몫’을 받는 일에 적극 참여한 경제활동의 주체였다. 다만 그 한계 역시 뚜렷했다. 여성이 식모를 벗어나는 순간, 다시 말해 그간 남성의 것이라 여겨진 일에 도전하는 순간 엄혹한 차별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권혁은의 글은 바로 이런 금기를 넘어선 여성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대학원생, 회사원, 은행원 등 이른바 전문직, 엘리트 여성. 누군가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배울 만큼 배운 특권층 아니냐며 빈정댈 수도 있지만, 권혁은이 ‘굳이’ 이들을 다룬 이유가 있다. 대학까지 마치고 ‘여성 친화적’ 직장에 들어갔음에도 차별의 높은 벽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nbsp;   1980년대 중반까지도 수많은 회사가 응시 자격을 “병역 필 또는 면제자”로 한정함으로써 사실상 남성만 채용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드러냈다. 설사 회사에 들어갔더라도 여성은 직급이나 이름이 아닌, “미스 김”으로 불렸다. “미세스 김”이 없었던 건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나와야만 했기 때문이다. 은행과 사립학교에서조차 결혼과 함께 사표를 내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었다. 이는 암묵적 관행이 아닌, 각서와 교칙으로 문서화된 규정이었다. ‘공식’ 영역에서조차 이럴진대 ‘비공식’ 영역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성 은행원은 남성 은행원이 지폐를 종이비행기처럼 접어 날려 담배 심부름을 시켜도 투덜대며 따라야 했다. 은근한 추근거림, 노골적인 성추행은 일상이나 다름없었다.  &nbsp;   너무나도 명백한 차별에 여성들은 단결과 파업으로 대응했다. 1975년 11월 조흥은행 의무실 약사 강경자가 사표 아닌 휴가원을 내고 결혼했다. 여성 동료들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다. 그렇게 은행의 결혼 퇴직제가 폐지되고, 1988년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는 등 공식 영역에서의 차별은 점차 사라져갔다. 그럼에도 여전했던 비공식적 차별과 (성)폭력에도 여성들은 목소리를 냈다. 권혁은이 글머리에 언급한 1993년 ‘서울대 A 교수 사건’은 그 바로미터였다. 여성 조교가 실험실의 A 교수와 서울대, 대한민국을 상대로 건, 성희롱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시민사회는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 연대했다. 지난한 재판 과정에서 성희롱에 대한 법적 개념이 구체화되었고, 마침내 1999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직장 내 성희롱’이 명문화되었다.   &nbsp;   이아리와 권혁은의 글이 보여주듯 여성과 자본주의가 관계를 맺는 방식은 단일하지 않다. 어떤 때는 여성에게 요구되는 역할 ‘덕분에’ 임금노동의 선봉에 설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바로 그런 역할 ‘탓에’ 경제활동에서 배제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시대와 계급을 초월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최근 돌봄이란 말로 느슨히 묶이는 유지·관리·보수의 일로부터 여성이 단 한 번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조선 경제가 일본 경제에 강하게 예속되어 있던 식민지기엔 (일본인을 위해) 여성을 가정으로부터 분리하는 쪽이 나았던 반면, 본격적인 산업화 드라이브를 건 1960년대 이후엔 (남성 생계부양자를 위해) 가정에 강하게 종속시켜야 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 자본주의의 중요한 지표처럼 여겨지곤 하는, 임금을 받느냐 안 받느냐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nbsp;   자본주의는 ‘봉건’이라 뭉뚱그려지는 전근대적 혹은 전통적 관계들을 말끔하게 뿌리 뽑지 않고, 도리어 그런 관계들에 기대어 번성한다. 그 점에서 나는 자본주의 발전엔 식민지가 필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영이 적자였다는 냉소는 얼마나 일면적인가!) 그중에서도 여성은 가장 대표적인 식민지였다. 임금을 받든 받지 않든 근현대 한국의 여성은 돌봄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었다. 식민지기 식모는 돌봄으로 돈을 받는 임금노동자였지만 정작 자기 노동의 재생산을 위한 돌봄은 받지 못했다. 1990년대 이후의 워킹맘들은 (조주은이 『기획된 가족』에서 탁월하게 지적했듯) 일터에서도 ‘압축적으로’ 돌봄을 수행하거나, 일종의 폭탄 돌리기를 하듯 여성 친족이나 가사노동자에게 돌봄을 외주 준다. 어느 쪽이든 돌봄의 마지막 종착역은 여성이었다.   &nbsp;   이제는 많이 잊힌 표현이지만 윤해동의 말처럼 “모든 근대는 식민지 근대”라고 할 수 있다면, “모든 사회는 식민지반(半)봉건사회”라는 정의도 가능하다. ‘반봉건’의 핵심에 여성이 있다. 그들의 역할이 무시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여성을 중심에 두고 근현대 한국 경제사를 다시 이해하는 작업이 몇몇 여성 기업가나 노동자에 대한 조명 이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자본주의는 여성을 어떻게 숙주 삼았는가, 시대와 계급에 따른 여성과 자본주의의 ‘관계 맺음’은 어떠했는가, 이 과정에서 임금을 비롯한 다양한 수단이 어떻게 활용되었는가. 식민지 없는 근대가 가능한지 회의했던 최인훈, ‘봉건적’ 요소의 잔존 가운데서 이뤄지는 ‘자본주의적’ 발전을 규명하고자 했던 박현채와 맞닿아 있는, 그러나 이들이 끝내 가닿지 못한 질문들이 아니던가.  &nbsp;   기실 최근의 여성(경제)사 연구들은 최인훈과 박현채의 고민으로부터 훌쩍 나아가있다. 조민지의 버스 안내원 연구, 김미선의 ‘여사장’ 연구, 김주희의 성매매 연구, 박해천과 송은영의 복부인 연구, 시간을 좀 더 앞으로 당기면 고전이 된 김원의 여공 연구 등 이미 여성을 통해 자본주의 자체를 다르게 보려는 작업이 적지 않다. 그런 만큼 관건은 이들 연구가 지금보다 많이 읽히고, 이야기되는 것이다. “여자, 하다” 시리즈 서평을 쓰며 새삼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여성사를 여성사로만, 다시 말해 (주로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인 이들이 하는) 역사학의 한 분과로만 여기는 시각이 여전히 뿌리 깊다는 점이었다. “여자, 하다” 시리즈가 이런 뿌리 깊은 편견을 깨뜨려주길, 더 많은 여성사 연구로 나아가게 해주는 창이자 서로를 이어주는 실이 되어주길 바란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40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58</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치인트 홍설은 윤석열을 찍었을까?: ˝여자, 하다˝ 속 욕망하고 결단하는 여성들  -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7218012</link><pubDate>Wed, 15 Apr 2026 11: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721801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7901&TPaperId=172180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28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7901&TPaperId=1721801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a><br/>황향주.이민정.장지연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오랜 시간 잊혔으나 시간이 흐르며 다시금 널리 읽히는 책들이 있다. 최근엔 양귀자의 소설이 그렇다. 『모순』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2030 여성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이다. 우리 세대는 오랫동안 그를 『원미동 사람들』의 지은이로만 알고 있었으나, 이제 양귀자라는 이름은 한국 여성주의 문학의 ‘오래된 미래’를 상징한다.  &nbsp;  왜 하필 양귀자일까. 문학평론가 오혜진은 《한겨레》 이유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소설이 “페미니즘 대중화 현상을 통해 페미니즘 언어를 새롭게 만난 젊은 세대의 정서와 특별히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의 다른 여성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양귀자는 여성의 문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드문 작가”라는 것이다. 양귀자 소설 속의 여성들은 맹렬하게 저항하고, 거침없이 욕망하며, 주저없이 행동한다. 이런 과감함이 201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의 흐름과 공명하는 것일 터다.  &nbsp;  양귀자 소설의 새삼스런 인기가 보여주듯, 여성의 욕망은 최근 페미니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고 또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다. 푸른역사의 “여자, 하다” 시리즈에 실린 적잖은 글들 역시 욕망하고, 증오하고, 행동하는 역사 속 여성을 다룬다. 이들은 딱히 선하거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고려 안정궁주는 남편을 두고 악공과 바람을 피웠다. 조선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은 궁궐 곳곳에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흉물을 묻어두었다. 18세기 함양 과부 박씨는 주도면밀한 계획 끝에 남편의 삼년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열녀가 되었다. 19세기 전주의 송씨 여인은 절굿공이로 전 남편을 때려죽였다.  &nbsp;  바람 피고, 저주하고, 열녀가 되고, 살인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가장 강렬하게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보다 재미다. 고려 안정궁주의 간통 사건을 다룬 황향주의 「여자, 바람피다」를 읽으면서는 나도 모르게 “푸핫!”하고 웃음이 나왔다. “입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로 시작하는 도입부터 너무 강렬했다. 올 것이 왔다며 눈을 질끈 감는 안정궁주의 남편이자 피해자(?) 함녕백 박, 잔뜩 움추러든 그에게 대체 집안 관리를 어떻게 한 거냐며 노발대발하는 고려 명종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 웹소설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언젠가 황향주가 웹소든 웹툰이든 웹드든 여하간 ’웹‘자 들어가는 무언가를 꼭 만들어주면 좋겠다.)  &nbsp;  황향주의 글이 짜릿하다면, 이민정의 글은 서늘하다. 그가 쓴 「여자, 저주하다」는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이 궁궐에 파묻어둔 온갖 흉물을 나열하며 시작한다. 무덤에서 파낸 썩은 관 조각, 사람의 뼛가루와 뼛조각, 어린아이의 팔뼈와 두개골, 강아지 대가리, 살이 모두 타버린 고양이 시체······ 하나씩 떠올리는 것만으로 머리털이 쭈뼛 솟는다. 원래 책에 실릴 삽화도 목 잘린 고양이 사체였다는데, 들어가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에 대한 한보람의 글은 통쾌하다. 절굿공이로 때려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간통했다고 죽이고,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죽이고, 남편의 원수라고 죽이고······ 흔히 조선의 19세기는 찜통에서 죽어가는 개구리마냥 안온하게 쇠락하던 시기로 여겨지는데, 최소한 죽이는 덴 참 열심이었구나(?) 싶었달까.  &nbsp;  이렇게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거침없이 행동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깔깔대면서도, 한편으론 가슴 한켠에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나, 이렇게 웃어도 되나? 그래도 바람 피고, 저주하고, 살인한 사람들인데? 이들은 그나마 판단이 쉽다, 그래도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니깐. 훨씬 곤란한 건 장지연의 「여자, 수절하다」에 실린 함양 과부 박 씨 이야기다. 그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폐병쟁이 남편과 결혼했다. 예상대로(?) 남편이 혼례만 겨우 치르고 세상을 떠나자 개가를 권하는 시부모의 말도 무시하고 정성을 다해 상을 치른 뒤 독을 먹고 자결해 열녀가 되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과부 박 씨는 고상하게 말해 가부장제의 희생자고, 좀 더 천박하게 말하면 소위 “흉자”다. 그런 박 씨의 ’열녀 되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nbsp;  몇 년 전인 제20대 대선 전후, 웹툰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의 주인공 홍설이 실존 인물이었다면 대선에서 윤석열을 찍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트위터에 소소하게 돌았던 적이 있다. 홍설이 연세대를 모델로 한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의 엘리트 여성이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된 정서가 ’무임승차자‘에 대한 분노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싶었다. 그가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이었다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생일 테니 결혼하고 신혼살림을 꾸릴 즈음 문재인 정부의 아파트값 폭등을 온몸으로 겪었을 테다. 능력주의를 내면화한 만큼 보수 정당의 구호에 훨씬 이끌렸을 것이고. 홍설이 윤석열에 투표했으리라는 가정은 퍽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그게 다인가?  &nbsp;  문화연구자 구자준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새로운 남성성을 모방하고 활용하는 홍설에 주목한다. 홍설은 자기계발, 아버지의 차별, 데이트폭력 등 온갖 위협에 시달린다. 이런 ’피곤함‘에서 벗어나고자, 그는 같은 과 남자 선배인 유정을 모방한다. 유정은 모두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며, 삶의 모든 것을 ’자원화‘할 수 있는 냉정한 인물. 유정의 “초국적 비즈니스 남성성”은 정서적 과잉에 의존하던 기존의 남성성과 다르기에 여성인 홍설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는 것이 된다. (이상의 내용은 구자준, 「변화하는 남성성과 젠더 수행－웹툰 &lt;치즈 인 더 트랩&gt;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의 연구』 65, 2018)   &nbsp;  홍설은 유정의 남성성을 모방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여성적‘으로 규정하는 구조적 압력에서 벗어난다. 함양 과부 박 씨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모두 남성의 논리를 충실히 따라 나름의 방식으로 승자가 된다. 장지연의 지적처럼 박 씨의 죽음은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한글)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던 ’유교걸‘이었다. 당시 남성 사대부가 그러했듯 아전 집안 출신인 그녀에게도 고결하고 품위 있는 존재이고자 하는 명예욕이 있었다. 홍설과 박씨에게 어째서 남성성을 모방했냐고, 가부장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냐고 질문하는 건 그다지 유효하지 않다. 그들에게 주어진 방법이 그것뿐이었으므로.  &nbsp;  때로 여성은 남성의 논리를 따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뒤집거나 비틀기도 한다. 한보람의 글 속 살인하는 여성들은 법정에서 효를 위해, 의를 위해 죽였다고 호소했다. 그간 유교 질서 아래에서 여성에게 요구된 덕목이 오로지 열(烈)뿐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놀라운 변화였다. 이들은 소수의 일탈적이고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었다. 소진형에 따르면 조선 후기 널리 읽힌 여성영웅소설에선 남성보다 더 남성답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남장여성들이 등장한다. 비록 남장을 했을지언정 이들은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충‘을 실현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소진형, 「열녀 : 조선 후기 성리학의 대중화와 여성의 욕망」, 『한국정치학회보』 54, 2020)   &nbsp;  이송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 후기 ’여성영웅‘에 대한 상상이 근대적 ’애국부인‘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분과 귀천을 막론하고 누구나 충을 실현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열망이 근대에 이르러 ’애국하는 여성‘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충이 윤리적 인정투쟁에 머물렀다면, 신소설의 ’애국부인‘은 픽션의 형태로나마 ’애국‘이라는 공적 덕목에 헌신한다. (이송희, 「의와 충의 이중주: 조선 후기 한문소설의 여성영웅형 인물에게서 나타나는 여성윤리주체의 확대」, 『어문연구』 197, 2023) 그렇다면 이들은 유교 질서에 순응한 것인가, 아니면 이를 극복한 것인가? 아니, 순응과 극복이라는 프레임으로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가?  &nbsp;  얼마 전 희극인이자 유튜버인 강유미의 “중년남미새” 영상이 엄청난 화제와 논란을 불러온 적이 있다. 대놓고 남성 직원을 편애하는 것을 넘어 끝내 그에게 성애적 감정을 드러내는 ’아들맘‘에 대한 묘사가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일까, 유튜브 댓글창이 불타고 기사와 평론까지 여럿 작성되었다. 한편에선 학창 시절 남성 청소년들의 노골적인 성추행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다른 한편에선 남미새 프레임 역시 여성혐오라며 영상 속 ’아들맘‘ 묘사를 문제 삼았다. 오만 공간에서 온갖 이야기가 오갔지만, 사람들이 왜 이리 ’뜨겁게‘ 반응하는지, 영상이 보여주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비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적어도 내게 “중년남미새” 논란은 아직까지 한국 사회가 여성의 욕망과 실천을 정교하게 이해할 언어를 갖지 못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nbsp;  물론 주로 문화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소설과 웹툰, 드라마 속 여성의 욕망과 실천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이미 적지 않다. 다만 이런 분석들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서 멈춰버리고 만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는 연구자보다는 이들이 다루는 작품의 한계다. 구자준에 따르면 “초국적 비즈니스 남성성”을 재현함으로써 유정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는 홍설의 노력은 끝내 성공하지 못한다. 자신과 같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가는 홍설의 모습에 유정이 두려움을 느끼고, 솔직한 성찰과 반성으로 ’성급하게‘ 나아가기 때문이다. 둘 사이의 긴장과 위기는 로맨스를 통해 봉합된다. 오혜진 역시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능력주의와 금융 투기를 기꺼이 ’선택한‘ 엘리트 여성의 곤경을 지적한다. (오혜진,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한국 여성문학·퀴어문학 연구』,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2024)   &nbsp;  소설과 웹툰, 드라마가 멈춰 선 자리에서 역사학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치인트 홍설은 윤석열을 찍었을까?”라는 질문에 어떤 방식으로 대답해야 할까? 역사학이 (다른 학문에 비해) 그나마 잘하는 일 중 하나는 성실히 자료를 모음으로써 맥락을 드러내는 것이다. 명예욕과 성취욕, 질투심과 생존 본능, 성애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다종다양한 욕망은 당대의 규범과 어떻게 마주했는가? 열에 열은 자신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을 조건 가운데서 여성은 어떻게 전략을 세우고, 선택을 내렸으며, 행동에 나섰는가? 그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강고한 질서는 어떻게 뒤집히거나 틈을 내주었는가? 역사학이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을 때, “중년남미새”든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이든 여성의 욕망과 실천을 지금보다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리라 믿는다. “여자, 하다” 시리즈는 이를 위한 작지만 중요한 시도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28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17</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어디 모씨”의 눈으로 정치사를 다시 쓸 때: 「여자, 기억되다」와 「여자, 의절하다」 - [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 : 18세기 인동 장씨 부인*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7211146</link><pubDate>Sun, 12 Apr 2026 0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721114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7901&TPaperId=1721114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23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7901&TPaperId=1721114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 : 18세기 인동 장씨 부인*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a><br/>윤민경.한보람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소위 ‘덕후’까지는 아니지만, 정치를 좋아한다. 정확히는 정치인에 관심이 많다. 나무위키로 한국 정치인들을 검색해 보는 게 취미인데, 그때마다 흥미롭게 혹은 의아하게 본 게 있다. 남성 정치인의 어머니나 아내가 대부분 “어디 모씨”로만 나온다는 점이다. 비단 식민지기나 해방 전후 태어난 옛날 정치인뿐 아니라, 아직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5~60대 정치인도 비슷하다. 여성이 이름을 갖지 못하고 그저 가문의 사람으로만 여겨졌던 시절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고 놀라게 되지만, 한편으론 궁금해진다. 그들은 정말 “어디 모씨”로만 남아 있었을까? 아니, “어디 모씨”로는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을까?&nbsp;<br>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에 실린 윤민경의 글 「여자, 기억되다」와 「여자, 의절하다」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이들은 “어디 모씨”로 존재했기에, “어디 모씨”의 방식으로 정치에 나섰다. 윤민경이 다루는 인물은 두 명, 함흥 기생 가련과 인동 장씨 부인이다. 가련과 장씨 모두 남성의 언어로, 남성의 논리에 따라 정치를 이해하고 실천했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히 ‘남성 정치’의 성실한 학습자 혹은 체현자에 그치지 않는다. 가련은 10대 중반 함흥에 온 한양의 남인 도련님 목생을 통해 정치적으로 ‘각성한’ 뒤 평생 열렬한 남인의 옹호자로 살았다. 장씨 부인은 손자가 대대로 남인이었던 가문을 배신하고 노론으로 전향하자 그를 망설임 없이 파문했다.&nbsp;<br>가련과 장씨 부인 모두 중앙의 유력 정치인과 연줄이 있지도, 상궁이나 나인으로 궁에서 일하지도 않았던 시골 여인이었다. 그럼에도 가련은 평생 남인이라는 당색을 소중히 여긴 여협(女俠)이었다. 87세 할머니가 되어 함흥으로 유배 온 노론의 명사 권섭과 ‘찐한’ 연애를 할 때도 정치적 신념은 그에게 여전히 중요했다. 가련은 한문을 읽을 수는 있어도 쓸 수는 없었기에 스스로 글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수많은 남인과 소론 지식인의 글을 통해 계속해서 기억되었다.<br>기생 가련이 견해를 세우는 데 그쳤다면, 장씨 부인은 실제 행동에 나섰다. 손자 안택준이 서인-노론의 화신이었던 척화신 김상헌의 서원을 안동에 건립하려 하자, 손자에게 네가 우리 집을 노론으로 만들어버렸으니 남인인 류씨네로 시집간 딸네 머물겠다며 기어이 가버렸다. 장씨 부인이 안씨 집안의 전향을 막지는 못했지만, 그의 과감한 액션 덕에 이후 남인의 소굴 안동에서 누구도 감히 그 집안을 건드리지 못했다.&nbsp;<br>누군가는 가련이 멋도 모르고 똑똑한 남성들에게 들은 내용을 그저 주워섬겼을 뿐이라고 빈정댈 수도 있다. 장씨 부인은 지역에서 집안의 이익을 지키고자 했을 뿐인 할머니고 말이다. 윤민경이 조선의 ‘붕당의식’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며 들었던 이야기도 비슷했단다. 여성의 붕당의식이란 과장된 게 아니냐는, 그저 아버지와 남편을 따라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윤민경의 대답이 재미있다. 15대 대선이 한창이던 1997년, 초등학생이던 자신의 일기장에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이회창이 어떻니,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 중 어디가 더 낫니하는 얘기가 잔뜩 적혀 있더라는 것이다. 고려 안정궁주의 간통 사건을 쓴 황향주의 「여자, 바람피다」 머리말과 더불어 “여자, 하다” 시리즈에서 가장 웃겼던 대목이지만,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br>윤민경은 어린 자신이 뭘 알고 그런 얘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아마 부모님으로부터 들은 얘기를 단순히 따라 적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렇게 묻는다, 이것은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부모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정치에 대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면 그저 세뇌되고 휘둘렸을 뿐인 것인가?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우리 대부분은 잘 모르고, 어디서 주워 듣고 정치를 배우며 실천하게 되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게 정치의 본질은 아니던가? 다시 말해, 지금까지 우리가 이해한 정치가 굉장히 협소했을 가능성은 없는가?<br>윤민경이 조선의 ‘붕당의식’이라는 독특한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이유가 있다. 때는 2013년, 안식년으로 학교에 없던 지도교수의 연구실에서 선배가 지나가듯 던진 이야기가 계기였다. 자기 증조할머니가 다니던 사찰의 스님이 옷매무새만 보고도 절에 온 여자가 노론인지 소론인지 척척 맞추더라는 것이다. 조선의 붕당정치가 남성 정치인의 정교하고 세련된 논쟁, 중앙조정에서의 권력 쟁탈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남성이 장악한 조정과 공론장을 벗어나, 구체적인 일상의 영역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붕당의식을 내면화하고 실천했는가를 주제로 『18~19세기 붕당의식의 사회문화적 재생산과 확산』(서울대학교 국사학과, 2023)이라는 박사논문을 썼다.&nbsp;<br>기실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는 방식이 그렇다. 정치인의 명연설, 혹은 정책의 실행을 둘러싼 날 선 논쟁이 사실상 전부다. 하지만 정치란 게 말만으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고매한 언어를 뒷받침하는 조직, 진절머리나는 논쟁에 기꺼이 뛰어들게 하는 (때론 맹목에 가까운) 신념, 나와 남을 명확히 가르는 정체성과 상징이 필요하다. 역사 속에 누군가의 아내 혹은 어머니로만 남았던, 수많은 “어디 모씨”들의 정치가 이뤄진 공간이 바로 여기 아니었을까? 다시 말해 이들은 그저 남성 정치인을 보조하거나 따라 한 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구성하고 실현했던 것일 수도 있다.<br>언젠가 꼭 인터뷰하고픈 인물이 있다. 지금은 마약 퇴치 전도사가 된, 경기 남부를 기반으로 활동했고 한때 대권 주자로도 거론되던 남성 정치인 A의 어머니다. 언제나 그의 존재감은 비밀스럽게, 하지만 확실하게 전해졌다. A가 도지사로 출마하며 비게 된 지역구를 둘러싼 재보궐선거 당시, 도전장을 내민 야당의 유력 정치인 B는 과거 자신이 승리했던 신도시 지역구가 “경기도의 강남”이었다면 이곳은 “경기도의 영남” 같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쉽게 마음을 주지 않고, 지역과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는 것이었다. 결국 B는 꽤 큰 표 차로 패배했는데, 그 이유로 지역에 대한 A 모친의 여전한 영향력이 언급됐다. 반면 불과 2년 뒤 그 지역구가 야당에 넘어갈 때는 그가 조직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여당 후보를 돕지 않았던 것이 패배의 이유로 꼽혔다.<br>흥미롭지 않은가. 부자가 합쳐 6선을 하는 동안 지역을 조직하고, 관리하고, 단속해 온 그의 영향력이. 도지사까지 했던, 심지어 도청이 있던 바로 그 지역구에 도전장을 내민 야당 유력 정치인을 떨어뜨렸으나 그렇게 자신이 당선시킨 여당 정치인 역시 2년 뒤 지역에서 쫓아낸 그의 존재감이. 지역에서 버스회사를 경영하던 남편이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 그런 남편이 갑작스레 사망해 미국에서 유학하던 아들을 불러와 정치에 입문시켰을 때, 여러 불운이 겹치며 아들이 정계를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무슨 마음이었을까. 그가 이해하고 실천한 정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분명 남편이나 아들의 그것과는 같지 않았을 것이다.&nbsp;<br>A의 어머니는 예외적이고 독특한 사례가 아니다. ‘사모 권력’이라는 부정적인 명칭으로 회자되고, 실제로도 썩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많은 정치인의 지역구를 아내나 어머니가 관리한다. ‘영남당’ 출신으로 호남 지역구에서 거듭 승리해 한때 ‘지역주의 타파의 아이콘’이었던 C는 정치인 경력의 시작이 국회의원 아내의 비서였다. 보수의 장자방이라 불린 책사 D는 당시 대권후보 아내와의 갈등으로 대선 국면에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고 한다. “어디 모씨”의 역할은 단지 비선에 그치지 않는다. 민주화운동가 출신 정치인인 E의 아내는 군부독재 시절 감옥에 간 남편을 대신해 사람들을 잇고 모으며 투쟁에 나섰을 뿐 아니라, 남편이 사망하자 그의 지역구에 출마해 3선까지 했다.&nbsp;<br>윤민경의 글을 읽으며 근현대 한국 정치사의 수많은 “어디 모씨”가 떠올랐다. 이들의 시각에서 정치사를 다시 쓴다는 건 단순히 여성 챕터를 추가하거나 여성의 비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어디 모씨”의 정치사란 정치 자체를 지금까지와 다르게 이해하고, 구성하는 일이다. 그간 유려한 연설, 의회에서의 표결, 정책의 집행, 정당의 이합집산에 가려진 조직과 신념과 상징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나아가 이러한 일들에서 여성이 맡아온 역할을 조명하는 것이다. 함흥 기생 가련과 인동 장씨 부인은 여성의 정치가 남성과는 다르게, 그러나 그만큼의 중요성과 존재감을 가지고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이들이다.<br>윤민경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경험이 한국인의 ‘남다른’ 정치의식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여긴다. 실제로 요즘 학계 풍토에선 다소 대담하게도 그는 붕당이란 키워드로 전근대와 근대의 연결을 시도한다. 대표적인 당론서인 이건창의 『당의통략』이 근대 인쇄술과 미디어를 만나 어떻게 보급되고 유통되었는지 추적한 그의 논문을 나는 무척 재밌게 읽었다. 하지만 난 그의 관심이 훨씬 크고 야심만만한 주제를 향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조직하고, 당파에 대한 신념을 기르고, 남과 나를 구분할 상징을 만들어온 조선 후기의 경험은 근현대 한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그 과정에서 수많은 “어디 모씨”는 어떤 역할을 맡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은 비단 여성사뿐 아니라 정치사 자체를 새롭게 쓰는 작업일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23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30</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래봤자’와 ‘그래도’를 넘어, 이야기를 묻고 고민하기 위해: “여자, 하다” 시리즈 -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22</link><pubDate>Sat, 04 Apr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901&TPaperId=171961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40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137901&TPaperId=171961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 : 행랑어멈과 식모들*우리 시대의 커리어우먼</a><br/>이아리.권혁은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 흔히 “역사는 곧 이야기”라고도 한다. 수없이 되풀이돼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사실 이 말엔 두 개의 부사가 생략되어 있다. 하나는 ‘그래봤자’다. 역사란 ‘고작’ 이야기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는 역사에는 ‘방법론’이 없다는 자조로 이어지거나, 그런 게 필요 없다는 완고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역사는 사실을 발굴해 잘 잇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뿌리 깊다. 그것이 역사학의 건전함과 엄밀함을 유지케 해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어떠한 ‘가공’도 허용치 않는 그 추상같음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생략된 또 하나의 부사는 ‘그래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사는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란 것이다. 역사의 서사성을 강하게 신뢰하는 이런 입장은 최근 ‘공공역사’나 ‘역사콘텐츠’의 부상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주장이 서사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단순하고 자극적인 ‘썰’을 양산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강담사나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를 자처하는 역사콘텐츠 생산자를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기세가 한풀 꺾인 것도 같지만, 역사란 전부 이야기라며 『환단고기』 등의 위서를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사이비 종교인에 가까운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놓인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이야기의 가치를 무한정 깎아내리고, 다른 하나는 무한정 끌어올린다. 하지만 두 부사는 사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공유한다. 바로 이야기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이야기’든, ‘그래도 이야기’든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게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야기란 단수가 아니다. 역사가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인가, 이야기는 역사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역사 자체인가, 이야기에 따라 역사는, 혹은 역사에 따라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이런 질문을 담아내지 못한다.  &nbsp;   최근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 시리즈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진지하게, 동시에 발랄하게 풀어낸 시리즈라 반가웠다. 나는 이 시리즈가 단순히 ‘여성사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 같은 낡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자, 하다”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사고, 그렇기에 이야기 자체를 되묻고 다시 쓴다. 여성사라는 주제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요한 행위자였음에도 오랫동안 역사를 쓸 수 없고, 역사로 쓰일 수 없었던 대표적인 존재다. 그랬기에 일찍부터 ‘여성사’라는 범주가 만들어져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학부에서도 교양 강의가 열리곤 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한 카테고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nbsp;   “여자, 하다” 시리즈의 저자들이 문제 삼고 싶었던 것도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사가 단순히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처럼 역사학의 범주 하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를 다시 쓰고 읽는 시각이자 방법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자연히 이야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못한, 설령 남겼더라도 타자에 의한 기록뿐인 존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다시 말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어떤 서술 방식이 필요한가?  &nbsp;   당연하겠지만, 여성사라고 다 같은 여성사가 아니다. 이야기의 형식을 정해놓고 탬플릿처럼 시공을 초월해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리즈를 기획한 장지연이 쓴 두 글,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와 조선 과부 박씨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절부 조씨와 과부 박씨 모두 이곡과 박지원이라는 남성 지식인에 의해 그 행적이 기록되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살았다. 절부 조씨는 개경 환도와 삼별초 진압, 일본 원정과 카디안의 침입 등 숱한 변란을 겪었으나 일흔 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생존했다. 과부 박씨는 폐병 걸린 남편과 이름뿐인 혼례를 치르고, 남편이 죽자 처가와 시댁의 만류에도 삼년상을 치르다 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nbsp;   비단 두 사람의 삶뿐 아니라, 살아간 시대도 달랐다. 절부 조씨가 살아간 고려 말기는 여전히 기록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지만, 과부 박씨가 살아간 조선 후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료가 나오는 기록의 바다다. 심지어 서술자인 남성 지식인의 시각도 달랐다. 이곡은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조씨의 삶을 기리고자 글을 썼다. 반면 박지원은 박씨가 죽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울분을 못 이겨 자살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가 당대에는 파격이었던 풍부한 감정 표현과 구체적인 일화를 곁들여 일찍 사별한 큰누이를 거듭 추모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퍽 냉소적이고 매정한 평가였다.  &nbsp;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른 두 여성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화할 것인가. 장지연은 두 여성에 대해 별개의 전략을 취한다. 절부 조씨의 경우 그와 이곡이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조씨는 분명 언니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친족의 도움으로 삶을 꾸려왔고, 이들의 존재가 조씨로 하여금 가부장 없이 절부로 남을 수 있게끔 해주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곡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혹은 조씨가 말하지 않았거나.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홀로’ 꿋꿋이 살아온 조씨의 이야기가 당시 고려와 원에서 더 ‘먹혔기’ 때문이다.   &nbsp;   물론 이곡과 조씨의 목적이 오로지 ‘절부 만들기’ 혹은 ‘절부 되기’만은 아니었다. 시골 출신 이곡에게 조씨는 자신이 몰랐던 중심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강화에서 개경으로 수도가 바뀌고, 변발을 한 고려 임금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몽골 공주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었을 조씨의 이야기가 왜 흥미롭지 않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조씨는 “근래 정치의 잘잘못과 명문가의 내력” 또한 소상히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전해지진 않지만, 조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게 대문자 역사를 이루는 기둥과 서까래로 전해 내려왔다.  절부 조씨와 달리, 과부 박씨는 그가 직접 ‘말한’ 기록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박지원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 장지연은 박씨 스스로 남긴 언문(한글) 유서에서 열녀로 죽기 위한 치밀하고 흔들림 없는 계획을 읽어낸다. 박씨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묻힐 묫자리가 좁지는 않은지 세심히 살폈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대상(大祥) 날에는 죽은 뒤에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음을 보이고자 남편과 자신의 저고리를 엮어 매듭(동심결)을 만든 뒤 불살랐다. 주변에 자신이 남편의 상을 마친 뒤 자결하겠다고 미리 알린 뒤 남편이 운명한 시각에 맞춰 독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nbsp;   박씨의 죽음은 장지연의 말마따나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박지원의 빈정거림처럼 세간의 쑥덕임이 두려워, 혹은 일시적 감정에 치우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거창 선비 신돈항이 쓴 「열부 박씨 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며 흠모하던 ‘유교걸’이었다.   &nbsp;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자살을 선뜻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지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 연구를 통해 자살의 이유를 제시한다. 당시 여성에게도 남성만큼이나 고결한 존재이고 싶은 명예욕이 존재했으며, 이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전 집안 출신의 박씨처럼 양반 아닌 여성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순간 일상적인 희롱과 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보쌈’이라 불린 납치 강간의 위협도 마주해야 했다. 이를 고려하면 박씨의 자살은 옹호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 된다.  &nbsp;   이렇듯 고려 말기와 조선 후기,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한 것’을 실마리 삼아 뻗어가는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한쪽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빈 부분을 채워가야 하지만, 다른 한쪽은 분명 존재함에도 당대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았던 기록을 꼼꼼히 다시 읽어가야 한다. 자료가 차고 넘치는 근대와 현대로 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숱한 자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정말 재밌고 의미 있는 조각들을 속속 골라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고려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필자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과 인용하는 사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재미 역시 “여자, 하다”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nbsp;   그럼에도 일곱 명의 저자가 쓴 아홉 편의 이야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을 통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는 점이다. 저주로 출세하고 저주로 몰락한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을 다룬 이민정의 이야기에선 유교 사회 조선의 여백을 읽는다. 조선의 17세기는 국가에나 가정에나 주자학적 질서가 깊게 뿌리내린 시대였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고, 종래의 믿음이 흔들리며, 임금과 세자가 반목하는 당대의 ‘비합리적’ 불안과 긴장을 달랠 언어가 부재했다. 조 귀인이 파고든 게 바로 이러한 공백이었다. 조 귀인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자학적 합리주의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음울한 신경증의 징후다.  &nbsp;   일제 식민지기 ‘어멈’ 혹은 ‘식모’라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이야기 역시 근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서울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떠오른 ‘행랑살이’는 양반의 후예들이 종래의 ‘전근대적’ 삶을 이어가기 위한 ‘근대적인’ 수단이었던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이기도 했다. 교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 혹은 공장에서의 근대적 노동이 아니었음에도 엄연한 ‘임금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불황에도 유일하게 수요와 공급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던 인기 업종이 식모였다. 흔히 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와 전업 주부를 두 축으로 하는 핵가족 모델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nbsp;   스마트폰이나 게임 업계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반응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한 소비자로 제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인 혹은 오타쿠로 제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여자, 하다” 시리즈에 대한 내 반응은 후자, 그러니까 업계인과 오타쿠에 가깝다. 어설프게나마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지라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는 슬픔도 있지만, 업계인에게는 또 업계인의 즐거움이 있다. 최근 출시된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임 개발자나 콘텐츠 제작자와 얼추 비슷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이야기에 푹 빠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간다.   &nbsp;   최근 역사학이 다루는 대상은 여성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넓어졌다. 그래도 여성은 사람이기라도 하지! 이제 역사학은 은행나무나 다람쥐 같은 동식물은 물론 라디오나 아파트 같은 인공물까지 기꺼이 주인공으로 불러세운다. 문제는 이처럼 서술 대상의 확장에 발맞추어 서술의 방식 역시 달라졌는지다. 가령 남성 지식인이 주인공일 때와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일 때, 물고기와 손목시계가 주인공일 때 이야기는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대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참고할 수 있는 사료의 양과 성격 역시 크게 바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역사학은 다루는 대상(주인공)의 폭에 비해 이에 맞는 서술(이야기)의 폭은 넓어지지 않은 듯하다.   &nbsp;   나는 “여자, 하다” 시리즈가 넓어진 주인공의 폭에 맞춰, 이야기의 폭 역시 넓힐 수 있는 매개가 되면 좋겠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가도 함께 고민하는 광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앞서 업계인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한 업계에 몸을 담는다는 건 업종을 불문하고 자기가 속한 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전체 그림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문성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최소한 역사학계에 한정하자면 이런 ‘업계인화’ 혹은 ‘전문화’가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한 감각을 사그라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은 이야기가 좋아서 여기 온 사람들일 텐데, 정작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nbsp;   물론 이는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든, 이미 ‘말한 것’을 새롭게 읽어내기 위해서든, 기존의 이야기를 무식하리만치 꼼꼼히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켜켜이 공부를 쌓아간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다르게 쓸 여지도 생기는 것일 터다. 그 점에서 “여자, 하다” 시리즈를 기획하고 함께 쓴 일곱 명의 저자가 기울인 노력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같은 업계인들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고 고민할 여지를, 나아가 그런 이야기에 도전해 볼 여지를 주었으므로. “여자, 하다” 시리즈가 꾸준히 읽히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40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58</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래봤자’와 ‘그래도’를 넘어, 이야기를 묻고 고민하기 위해: “여자, 하다” 시리즈 -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21</link><pubDate>Sat, 04 Apr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2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7901&TPaperId=171961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28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137901&TPaperId=1719612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기어이 욕망하다 : 고려 안정궁주*인조 후궁 조 귀인*열녀들</a><br/>황향주.이민정.장지연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 흔히 “역사는 곧 이야기”라고도 한다. 수없이 되풀이돼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사실 이 말엔 두 개의 부사가 생략되어 있다. 하나는 ‘그래봤자’다. 역사란 ‘고작’ 이야기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는 역사에는 ‘방법론’이 없다는 자조로 이어지거나, 그런 게 필요 없다는 완고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역사는 사실을 발굴해 잘 잇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뿌리 깊다. 그것이 역사학의 건전함과 엄밀함을 유지케 해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어떠한 ‘가공’도 허용치 않는 그 추상같음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생략된 또 하나의 부사는 ‘그래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사는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란 것이다. 역사의 서사성을 강하게 신뢰하는 이런 입장은 최근 ‘공공역사’나 ‘역사콘텐츠’의 부상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주장이 서사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단순하고 자극적인 ‘썰’을 양산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강담사나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를 자처하는 역사콘텐츠 생산자를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기세가 한풀 꺾인 것도 같지만, 역사란 전부 이야기라며 『환단고기』 등의 위서를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사이비 종교인에 가까운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놓인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이야기의 가치를 무한정 깎아내리고, 다른 하나는 무한정 끌어올린다. 하지만 두 부사는 사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공유한다. 바로 이야기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이야기’든, ‘그래도 이야기’든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게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야기란 단수가 아니다. 역사가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인가, 이야기는 역사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역사 자체인가, 이야기에 따라 역사는, 혹은 역사에 따라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이런 질문을 담아내지 못한다.  &nbsp;   최근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 시리즈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진지하게, 동시에 발랄하게 풀어낸 시리즈라 반가웠다. 나는 이 시리즈가 단순히 ‘여성사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 같은 낡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자, 하다”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사고, 그렇기에 이야기 자체를 되묻고 다시 쓴다. 여성사라는 주제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요한 행위자였음에도 오랫동안 역사를 쓸 수 없고, 역사로 쓰일 수 없었던 대표적인 존재다. 그랬기에 일찍부터 ‘여성사’라는 범주가 만들어져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학부에서도 교양 강의가 열리곤 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한 카테고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nbsp;   “여자, 하다” 시리즈의 저자들이 문제 삼고 싶었던 것도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사가 단순히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처럼 역사학의 범주 하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를 다시 쓰고 읽는 시각이자 방법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자연히 이야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못한, 설령 남겼더라도 타자에 의한 기록뿐인 존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다시 말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어떤 서술 방식이 필요한가?  &nbsp;   당연하겠지만, 여성사라고 다 같은 여성사가 아니다. 이야기의 형식을 정해놓고 탬플릿처럼 시공을 초월해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리즈를 기획한 장지연이 쓴 두 글,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와 조선 과부 박씨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절부 조씨와 과부 박씨 모두 이곡과 박지원이라는 남성 지식인에 의해 그 행적이 기록되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살았다. 절부 조씨는 개경 환도와 삼별초 진압, 일본 원정과 카디안의 침입 등 숱한 변란을 겪었으나 일흔 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생존했다. 과부 박씨는 폐병 걸린 남편과 이름뿐인 혼례를 치르고, 남편이 죽자 처가와 시댁의 만류에도 삼년상을 치르다 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nbsp;   비단 두 사람의 삶뿐 아니라, 살아간 시대도 달랐다. 절부 조씨가 살아간 고려 말기는 여전히 기록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지만, 과부 박씨가 살아간 조선 후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료가 나오는 기록의 바다다. 심지어 서술자인 남성 지식인의 시각도 달랐다. 이곡은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조씨의 삶을 기리고자 글을 썼다. 반면 박지원은 박씨가 죽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울분을 못 이겨 자살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가 당대에는 파격이었던 풍부한 감정 표현과 구체적인 일화를 곁들여 일찍 사별한 큰누이를 거듭 추모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퍽 냉소적이고 매정한 평가였다.  &nbsp;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른 두 여성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화할 것인가. 장지연은 두 여성에 대해 별개의 전략을 취한다. 절부 조씨의 경우 그와 이곡이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조씨는 분명 언니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친족의 도움으로 삶을 꾸려왔고, 이들의 존재가 조씨로 하여금 가부장 없이 절부로 남을 수 있게끔 해주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곡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혹은 조씨가 말하지 않았거나.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홀로’ 꿋꿋이 살아온 조씨의 이야기가 당시 고려와 원에서 더 ‘먹혔기’ 때문이다.   &nbsp;   물론 이곡과 조씨의 목적이 오로지 ‘절부 만들기’ 혹은 ‘절부 되기’만은 아니었다. 시골 출신 이곡에게 조씨는 자신이 몰랐던 중심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강화에서 개경으로 수도가 바뀌고, 변발을 한 고려 임금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몽골 공주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었을 조씨의 이야기가 왜 흥미롭지 않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조씨는 “근래 정치의 잘잘못과 명문가의 내력” 또한 소상히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전해지진 않지만, 조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게 대문자 역사를 이루는 기둥과 서까래로 전해 내려왔다.  절부 조씨와 달리, 과부 박씨는 그가 직접 ‘말한’ 기록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박지원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 장지연은 박씨 스스로 남긴 언문(한글) 유서에서 열녀로 죽기 위한 치밀하고 흔들림 없는 계획을 읽어낸다. 박씨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묻힐 묫자리가 좁지는 않은지 세심히 살폈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대상(大祥) 날에는 죽은 뒤에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음을 보이고자 남편과 자신의 저고리를 엮어 매듭(동심결)을 만든 뒤 불살랐다. 주변에 자신이 남편의 상을 마친 뒤 자결하겠다고 미리 알린 뒤 남편이 운명한 시각에 맞춰 독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nbsp;   박씨의 죽음은 장지연의 말마따나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박지원의 빈정거림처럼 세간의 쑥덕임이 두려워, 혹은 일시적 감정에 치우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거창 선비 신돈항이 쓴 「열부 박씨 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며 흠모하던 ‘유교걸’이었다.   &nbsp;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자살을 선뜻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지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 연구를 통해 자살의 이유를 제시한다. 당시 여성에게도 남성만큼이나 고결한 존재이고 싶은 명예욕이 존재했으며, 이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전 집안 출신의 박씨처럼 양반 아닌 여성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순간 일상적인 희롱과 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보쌈’이라 불린 납치 강간의 위협도 마주해야 했다. 이를 고려하면 박씨의 자살은 옹호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 된다.  &nbsp;   이렇듯 고려 말기와 조선 후기,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한 것’을 실마리 삼아 뻗어가는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한쪽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빈 부분을 채워가야 하지만, 다른 한쪽은 분명 존재함에도 당대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았던 기록을 꼼꼼히 다시 읽어가야 한다. 자료가 차고 넘치는 근대와 현대로 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숱한 자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정말 재밌고 의미 있는 조각들을 속속 골라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고려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필자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과 인용하는 사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재미 역시 “여자, 하다”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nbsp;   그럼에도 일곱 명의 저자가 쓴 아홉 편의 이야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을 통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는 점이다. 저주로 출세하고 저주로 몰락한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을 다룬 이민정의 이야기에선 유교 사회 조선의 여백을 읽는다. 조선의 17세기는 국가에나 가정에나 주자학적 질서가 깊게 뿌리내린 시대였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고, 종래의 믿음이 흔들리며, 임금과 세자가 반목하는 당대의 ‘비합리적’ 불안과 긴장을 달랠 언어가 부재했다. 조 귀인이 파고든 게 바로 이러한 공백이었다. 조 귀인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자학적 합리주의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음울한 신경증의 징후다.  &nbsp;   일제 식민지기 ‘어멈’ 혹은 ‘식모’라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이야기 역시 근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서울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떠오른 ‘행랑살이’는 양반의 후예들이 종래의 ‘전근대적’ 삶을 이어가기 위한 ‘근대적인’ 수단이었던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이기도 했다. 교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 혹은 공장에서의 근대적 노동이 아니었음에도 엄연한 ‘임금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불황에도 유일하게 수요와 공급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던 인기 업종이 식모였다. 흔히 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와 전업 주부를 두 축으로 하는 핵가족 모델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nbsp;   스마트폰이나 게임 업계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반응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한 소비자로 제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인 혹은 오타쿠로 제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여자, 하다” 시리즈에 대한 내 반응은 후자, 그러니까 업계인과 오타쿠에 가깝다. 어설프게나마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지라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는 슬픔도 있지만, 업계인에게는 또 업계인의 즐거움이 있다. 최근 출시된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임 개발자나 콘텐츠 제작자와 얼추 비슷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이야기에 푹 빠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간다.   &nbsp;   최근 역사학이 다루는 대상은 여성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넓어졌다. 그래도 여성은 사람이기라도 하지! 이제 역사학은 은행나무나 다람쥐 같은 동식물은 물론 라디오나 아파트 같은 인공물까지 기꺼이 주인공으로 불러세운다. 문제는 이처럼 서술 대상의 확장에 발맞추어 서술의 방식 역시 달라졌는지다. 가령 남성 지식인이 주인공일 때와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일 때, 물고기와 손목시계가 주인공일 때 이야기는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대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참고할 수 있는 사료의 양과 성격 역시 크게 바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역사학은 다루는 대상(주인공)의 폭에 비해 이에 맞는 서술(이야기)의 폭은 넓어지지 않은 듯하다.   &nbsp;   나는 “여자, 하다” 시리즈가 넓어진 주인공의 폭에 맞춰, 이야기의 폭 역시 넓힐 수 있는 매개가 되면 좋겠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가도 함께 고민하는 광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앞서 업계인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한 업계에 몸을 담는다는 건 업종을 불문하고 자기가 속한 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전체 그림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문성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최소한 역사학계에 한정하자면 이런 ‘업계인화’ 혹은 ‘전문화’가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한 감각을 사그라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은 이야기가 좋아서 여기 온 사람들일 텐데, 정작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nbsp;   물론 이는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든, 이미 ‘말한 것’을 새롭게 읽어내기 위해서든, 기존의 이야기를 무식하리만치 꼼꼼히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켜켜이 공부를 쌓아간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다르게 쓸 여지도 생기는 것일 터다. 그 점에서 “여자, 하다” 시리즈를 기획하고 함께 쓴 일곱 명의 저자가 기울인 노력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같은 업계인들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고 고민할 여지를, 나아가 그런 이야기에 도전해 볼 여지를 주었으므로. “여자, 하다” 시리즈가 꾸준히 읽히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28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17</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래봤자’와 ‘그래도’를 넘어, 이야기를 묻고 고민하기 위해: “여자, 하다” 시리즈 - [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 : 18세기 인동 장씨 부인*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19</link><pubDate>Sat, 04 Apr 2026 13: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7901&TPaperId=171961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off/k2321379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32137901&TPaperId=171961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조용히 살지 않기로 하다 : 18세기 인동 장씨 부인*19세기 살인하는 여자들</a><br/>윤민경.한보람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 흔히 “역사는 곧 이야기”라고도 한다. 수없이 되풀이돼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사실 이 말엔 두 개의 부사가 생략되어 있다. 하나는 ‘그래봤자’다. 역사란 ‘고작’ 이야기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는 역사에는 ‘방법론’이 없다는 자조로 이어지거나, 그런 게 필요 없다는 완고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역사는 사실을 발굴해 잘 잇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뿌리 깊다. 그것이 역사학의 건전함과 엄밀함을 유지케 해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어떠한 ‘가공’도 허용치 않는 그 추상같음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생략된 또 하나의 부사는 ‘그래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사는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란 것이다. 역사의 서사성을 강하게 신뢰하는 이런 입장은 최근 ‘공공역사’나 ‘역사콘텐츠’의 부상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주장이 서사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단순하고 자극적인 ‘썰’을 양산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강담사나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를 자처하는 역사콘텐츠 생산자를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기세가 한풀 꺾인 것도 같지만, 역사란 전부 이야기라며 『환단고기』 등의 위서를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사이비 종교인에 가까운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놓인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이야기의 가치를 무한정 깎아내리고, 다른 하나는 무한정 끌어올린다. 하지만 두 부사는 사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공유한다. 바로 이야기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이야기’든, ‘그래도 이야기’든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게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야기란 단수가 아니다. 역사가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인가, 이야기는 역사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역사 자체인가, 이야기에 따라 역사는, 혹은 역사에 따라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이런 질문을 담아내지 못한다.  &nbsp;   최근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 시리즈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진지하게, 동시에 발랄하게 풀어낸 시리즈라 반가웠다. 나는 이 시리즈가 단순히 ‘여성사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 같은 낡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자, 하다”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사고, 그렇기에 이야기 자체를 되묻고 다시 쓴다. 여성사라는 주제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요한 행위자였음에도 오랫동안 역사를 쓸 수 없고, 역사로 쓰일 수 없었던 대표적인 존재다. 그랬기에 일찍부터 ‘여성사’라는 범주가 만들어져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학부에서도 교양 강의가 열리곤 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한 카테고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nbsp;   “여자, 하다” 시리즈의 저자들이 문제 삼고 싶었던 것도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사가 단순히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처럼 역사학의 범주 하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를 다시 쓰고 읽는 시각이자 방법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자연히 이야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못한, 설령 남겼더라도 타자에 의한 기록뿐인 존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다시 말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어떤 서술 방식이 필요한가?  &nbsp;   당연하겠지만, 여성사라고 다 같은 여성사가 아니다. 이야기의 형식을 정해놓고 탬플릿처럼 시공을 초월해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리즈를 기획한 장지연이 쓴 두 글,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와 조선 과부 박씨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절부 조씨와 과부 박씨 모두 이곡과 박지원이라는 남성 지식인에 의해 그 행적이 기록되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살았다. 절부 조씨는 개경 환도와 삼별초 진압, 일본 원정과 카디안의 침입 등 숱한 변란을 겪었으나 일흔 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생존했다. 과부 박씨는 폐병 걸린 남편과 이름뿐인 혼례를 치르고, 남편이 죽자 처가와 시댁의 만류에도 삼년상을 치르다 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nbsp;   비단 두 사람의 삶뿐 아니라, 살아간 시대도 달랐다. 절부 조씨가 살아간 고려 말기는 여전히 기록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지만, 과부 박씨가 살아간 조선 후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료가 나오는 기록의 바다다. 심지어 서술자인 남성 지식인의 시각도 달랐다. 이곡은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조씨의 삶을 기리고자 글을 썼다. 반면 박지원은 박씨가 죽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울분을 못 이겨 자살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가 당대에는 파격이었던 풍부한 감정 표현과 구체적인 일화를 곁들여 일찍 사별한 큰누이를 거듭 추모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퍽 냉소적이고 매정한 평가였다.  &nbsp;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른 두 여성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화할 것인가. 장지연은 두 여성에 대해 별개의 전략을 취한다. 절부 조씨의 경우 그와 이곡이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조씨는 분명 언니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친족의 도움으로 삶을 꾸려왔고, 이들의 존재가 조씨로 하여금 가부장 없이 절부로 남을 수 있게끔 해주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곡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혹은 조씨가 말하지 않았거나.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홀로’ 꿋꿋이 살아온 조씨의 이야기가 당시 고려와 원에서 더 ‘먹혔기’ 때문이다.   &nbsp;   물론 이곡과 조씨의 목적이 오로지 ‘절부 만들기’ 혹은 ‘절부 되기’만은 아니었다. 시골 출신 이곡에게 조씨는 자신이 몰랐던 중심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강화에서 개경으로 수도가 바뀌고, 변발을 한 고려 임금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몽골 공주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었을 조씨의 이야기가 왜 흥미롭지 않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조씨는 “근래 정치의 잘잘못과 명문가의 내력” 또한 소상히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전해지진 않지만, 조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게 대문자 역사를 이루는 기둥과 서까래로 전해 내려왔다.  절부 조씨와 달리, 과부 박씨는 그가 직접 ‘말한’ 기록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박지원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 장지연은 박씨 스스로 남긴 언문(한글) 유서에서 열녀로 죽기 위한 치밀하고 흔들림 없는 계획을 읽어낸다. 박씨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묻힐 묫자리가 좁지는 않은지 세심히 살폈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대상(大祥) 날에는 죽은 뒤에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음을 보이고자 남편과 자신의 저고리를 엮어 매듭(동심결)을 만든 뒤 불살랐다. 주변에 자신이 남편의 상을 마친 뒤 자결하겠다고 미리 알린 뒤 남편이 운명한 시각에 맞춰 독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nbsp;   박씨의 죽음은 장지연의 말마따나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박지원의 빈정거림처럼 세간의 쑥덕임이 두려워, 혹은 일시적 감정에 치우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거창 선비 신돈항이 쓴 「열부 박씨 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며 흠모하던 ‘유교걸’이었다.   &nbsp;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자살을 선뜻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지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 연구를 통해 자살의 이유를 제시한다. 당시 여성에게도 남성만큼이나 고결한 존재이고 싶은 명예욕이 존재했으며, 이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전 집안 출신의 박씨처럼 양반 아닌 여성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순간 일상적인 희롱과 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보쌈’이라 불린 납치 강간의 위협도 마주해야 했다. 이를 고려하면 박씨의 자살은 옹호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 된다.  &nbsp;   이렇듯 고려 말기와 조선 후기,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한 것’을 실마리 삼아 뻗어가는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한쪽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빈 부분을 채워가야 하지만, 다른 한쪽은 분명 존재함에도 당대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았던 기록을 꼼꼼히 다시 읽어가야 한다. 자료가 차고 넘치는 근대와 현대로 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숱한 자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정말 재밌고 의미 있는 조각들을 속속 골라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고려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필자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과 인용하는 사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재미 역시 “여자, 하다”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nbsp;   그럼에도 일곱 명의 저자가 쓴 아홉 편의 이야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을 통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는 점이다. 저주로 출세하고 저주로 몰락한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을 다룬 이민정의 이야기에선 유교 사회 조선의 여백을 읽는다. 조선의 17세기는 국가에나 가정에나 주자학적 질서가 깊게 뿌리내린 시대였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고, 종래의 믿음이 흔들리며, 임금과 세자가 반목하는 당대의 ‘비합리적’ 불안과 긴장을 달랠 언어가 부재했다. 조 귀인이 파고든 게 바로 이러한 공백이었다. 조 귀인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자학적 합리주의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음울한 신경증의 징후다.  &nbsp;   일제 식민지기 ‘어멈’ 혹은 ‘식모’라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이야기 역시 근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서울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떠오른 ‘행랑살이’는 양반의 후예들이 종래의 ‘전근대적’ 삶을 이어가기 위한 ‘근대적인’ 수단이었던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이기도 했다. 교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 혹은 공장에서의 근대적 노동이 아니었음에도 엄연한 ‘임금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불황에도 유일하게 수요와 공급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던 인기 업종이 식모였다. 흔히 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와 전업 주부를 두 축으로 하는 핵가족 모델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nbsp;   스마트폰이나 게임 업계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반응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한 소비자로 제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인 혹은 오타쿠로 제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여자, 하다” 시리즈에 대한 내 반응은 후자, 그러니까 업계인과 오타쿠에 가깝다. 어설프게나마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지라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는 슬픔도 있지만, 업계인에게는 또 업계인의 즐거움이 있다. 최근 출시된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임 개발자나 콘텐츠 제작자와 얼추 비슷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이야기에 푹 빠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간다.   &nbsp;   최근 역사학이 다루는 대상은 여성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넓어졌다. 그래도 여성은 사람이기라도 하지! 이제 역사학은 은행나무나 다람쥐 같은 동식물은 물론 라디오나 아파트 같은 인공물까지 기꺼이 주인공으로 불러세운다. 문제는 이처럼 서술 대상의 확장에 발맞추어 서술의 방식 역시 달라졌는지다. 가령 남성 지식인이 주인공일 때와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일 때, 물고기와 손목시계가 주인공일 때 이야기는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대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참고할 수 있는 사료의 양과 성격 역시 크게 바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역사학은 다루는 대상(주인공)의 폭에 비해 이에 맞는 서술(이야기)의 폭은 넓어지지 않은 듯하다.   &nbsp;   나는 “여자, 하다” 시리즈가 넓어진 주인공의 폭에 맞춰, 이야기의 폭 역시 넓힐 수 있는 매개가 되면 좋겠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가도 함께 고민하는 광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앞서 업계인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한 업계에 몸을 담는다는 건 업종을 불문하고 자기가 속한 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전체 그림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문성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최소한 역사학계에 한정하자면 이런 ‘업계인화’ 혹은 ‘전문화’가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한 감각을 사그라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은 이야기가 좋아서 여기 온 사람들일 텐데, 정작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nbsp;   물론 이는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든, 이미 ‘말한 것’을 새롭게 읽어내기 위해서든, 기존의 이야기를 무식하리만치 꼼꼼히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켜켜이 공부를 쌓아간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다르게 쓸 여지도 생기는 것일 터다. 그 점에서 “여자, 하다” 시리즈를 기획하고 함께 쓴 일곱 명의 저자가 기울인 노력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같은 업계인들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고 고민할 여지를, 나아가 그런 이야기에 도전해 볼 여지를 주었으므로. “여자, 하다” 시리즈가 꾸준히 읽히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0/cover150/k2321379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1030</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그래봤자’와 ‘그래도’를 넘어, 이야기를 묻고 고민하기 위해: “여자, 하다” 시리즈 - [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 고려 절부 조씨 부인*조선 기생 가련]</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18</link><pubDate>Sat, 04 Apr 2026 1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719611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7900&TPaperId=1719611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coveroff/k77213790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72137900&TPaperId=1719611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여자, 기록을 가로채다 : 고려 절부 조씨 부인*조선 기생 가련</a><br/>장지연.윤민경 지음 / 푸른역사 / 2026년 03월<br/></td></tr></table><br/> 흔히 “역사는 곧 이야기”라고도 한다. 수없이 되풀이돼 이젠 진부하게까지 느껴지지만, 사실 이 말엔 두 개의 부사가 생략되어 있다. 하나는 ‘그래봤자’다. 역사란 ‘고작’ 이야기에 불과하단 것이다. 이는 역사에는 ‘방법론’이 없다는 자조로 이어지거나, 그런 게 필요 없다는 완고함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역사는 사실을 발굴해 잘 잇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은 여전히 뿌리 깊다. 그것이 역사학의 건전함과 엄밀함을 유지케 해주는 마지막 보루이기도 하겠지만, 때론 어떠한 ‘가공’도 허용치 않는 그 추상같음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생략된 또 하나의 부사는 ‘그래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역사는 사람들을 웃고 울게 만드는 이야기란 것이다. 역사의 서사성을 강하게 신뢰하는 이런 입장은 최근 ‘공공역사’나 ‘역사콘텐츠’의 부상과 맞물려 더욱 힘을 얻고 있는 듯 보인다. 문제는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주장이 서사 자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그저 단순하고 자극적인 ‘썰’을 양산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강담사나 이야기꾼, 스토리텔러를 자처하는 역사콘텐츠 생산자를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젠 기세가 한풀 꺾인 것도 같지만, 역사란 전부 이야기라며 『환단고기』 등의 위서를 거리낌 없이 인용하는 사이비 종교인에 가까운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nbsp;   “역사는 곧 이야기” 앞에 놓인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나는 이야기의 가치를 무한정 깎아내리고, 다른 하나는 무한정 끌어올린다. 하지만 두 부사는 사실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공유한다. 바로 이야기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봤자 이야기’든, ‘그래도 이야기’든 역사란 결국 이야기란 게 너무나 자명하기에 이야기에 대한 고민은 공백으로 남는다. 이야기란 단수가 아니다. 역사가 이야기라면 어떤 이야기인가, 이야기는 역사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역사 자체인가, 이야기에 따라 역사는, 혹은 역사에 따라 이야기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그래봤자’와 ‘그래도’는 이런 질문을 담아내지 못한다.  &nbsp;   최근 푸른역사에서 나온 “여자, 하다” 시리즈는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가장 진지하게, 동시에 발랄하게 풀어낸 시리즈라 반가웠다. 나는 이 시리즈가 단순히 ‘여성사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이 아닌 휴머니즘” 같은 낡은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자, 하다”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이 여성사고, 그렇기에 이야기 자체를 되묻고 다시 쓴다. 여성사라는 주제가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성은 인류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역사의 중요한 행위자였음에도 오랫동안 역사를 쓸 수 없고, 역사로 쓰일 수 없었던 대표적인 존재다. 그랬기에 일찍부터 ‘여성사’라는 범주가 만들어져 무려 20여 년 전부터 학부에서도 교양 강의가 열리곤 했으나, 여전히 역사의 한 카테고리 이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nbsp;   “여자, 하다” 시리즈의 저자들이 문제 삼고 싶었던 것도 이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사가 단순히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처럼 역사학의 범주 하나에 그치지 않으려면, 역사를 다시 쓰고 읽는 시각이자 방법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는 자연히 이야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역사에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못한, 설령 남겼더라도 타자에 의한 기록뿐인 존재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다시 말해, 이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어떤 서술 방식이 필요한가?  &nbsp;   당연하겠지만, 여성사라고 다 같은 여성사가 아니다. 이야기의 형식을 정해놓고 탬플릿처럼 시공을 초월해 적용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시리즈를 기획한 장지연이 쓴 두 글, 고려 절부 조씨 부인 이야기와 조선 과부 박씨 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절부 조씨와 과부 박씨 모두 이곡과 박지원이라는 남성 지식인에 의해 그 행적이 기록되었지만, 이를 제외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른 삶을 살았다. 절부 조씨는 개경 환도와 삼별초 진압, 일본 원정과 카디안의 침입 등 숱한 변란을 겪었으나 일흔 줄 할머니가 될 때까지 건강히 생존했다. 과부 박씨는 폐병 걸린 남편과 이름뿐인 혼례를 치르고, 남편이 죽자 처가와 시댁의 만류에도 삼년상을 치르다 상이 끝나는 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nbsp;   비단 두 사람의 삶뿐 아니라, 살아간 시대도 달랐다. 절부 조씨가 살아간 고려 말기는 여전히 기록이 부족해 많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 넣을 수밖에 없지만, 과부 박씨가 살아간 조선 후기는 계속해서 새로운 사료가 나오는 기록의 바다다. 심지어 서술자인 남성 지식인의 시각도 달랐다. 이곡은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꿋꿋하게 살아남아 가문을 지킨 조씨의 삶을 기리고자 글을 썼다. 반면 박지원은 박씨가 죽은 남편에 대한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가십거리가 되었다는 울분을 못 이겨 자살한 게 아닌지 의심했다. 그가 당대에는 파격이었던 풍부한 감정 표현과 구체적인 일화를 곁들여 일찍 사별한 큰누이를 거듭 추모했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퍽 냉소적이고 매정한 평가였다.  &nbsp;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른 두 여성의 삶을 어떻게 이야기화할 것인가. 장지연은 두 여성에 대해 별개의 전략을 취한다. 절부 조씨의 경우 그와 이곡이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한다. 조씨는 분명 언니나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성 친족의 도움으로 삶을 꾸려왔고, 이들의 존재가 조씨로 하여금 가부장 없이 절부로 남을 수 있게끔 해주는 조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곡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 혹은 조씨가 말하지 않았거나. 아버지와 시아버지, 남편을 잃고도 ‘홀로’ 꿋꿋이 살아온 조씨의 이야기가 당시 고려와 원에서 더 ‘먹혔기’ 때문이다.   &nbsp;   물론 이곡과 조씨의 목적이 오로지 ‘절부 만들기’ 혹은 ‘절부 되기’만은 아니었다. 시골 출신 이곡에게 조씨는 자신이 몰랐던 중심의 내밀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강화에서 개경으로 수도가 바뀌고, 변발을 한 고려 임금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은 몽골 공주와 함께 돌아오는 모습을 직접 보고 겪었을 조씨의 이야기가 왜 흥미롭지 않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조씨는 “근래 정치의 잘잘못과 명문가의 내력” 또한 소상히 알고 있었다. 비록 직접 전해지진 않지만, 조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의 이야기가 그렇게 대문자 역사를 이루는 기둥과 서까래로 전해 내려왔다.  절부 조씨와 달리, 과부 박씨는 그가 직접 ‘말한’ 기록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박지원이 주목하지 않았을 뿐. 장지연은 박씨 스스로 남긴 언문(한글) 유서에서 열녀로 죽기 위한 치밀하고 흔들림 없는 계획을 읽어낸다. 박씨는 남편과 자신이 함께 묻힐 묫자리가 좁지는 않은지 세심히 살폈다. 남편이 사망한 지 2년이 지난 대상(大祥) 날에는 죽은 뒤에도 인연이 끊어지지 않음을 보이고자 남편과 자신의 저고리를 엮어 매듭(동심결)을 만든 뒤 불살랐다. 주변에 자신이 남편의 상을 마친 뒤 자결하겠다고 미리 알린 뒤 남편이 운명한 시각에 맞춰 독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nbsp;   박씨의 죽음은 장지연의 말마따나 “세심하게 준비한 자살의 의례”였다. 박지원의 빈정거림처럼 세간의 쑥덕임이 두려워, 혹은 일시적 감정에 치우쳐 즉흥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었다. 거창 선비 신돈항이 쓴 「열부 박씨 행록」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부터 언문으로 쓴 책을 읽으며 효녀와 열녀 이야기가 나오면 소리 높여 낭송하며 흠모하던 ‘유교걸’이었다.   &nbsp;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자살을 선뜻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장지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의 연구를 통해 자살의 이유를 제시한다. 당시 여성에게도 남성만큼이나 고결한 존재이고 싶은 명예욕이 존재했으며, 이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전 집안 출신의 박씨처럼 양반 아닌 여성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순간 일상적인 희롱과 비난에 시달리는 것은 물론, ‘보쌈’이라 불린 납치 강간의 위협도 마주해야 했다. 이를 고려하면 박씨의 자살은 옹호할 수는 없을지언정,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 된다.  &nbsp;   이렇듯 고려 말기와 조선 후기, ‘말하지 않은 것’과 ‘말한 것’을 실마리 삼아 뻗어가는 이야기는 분명 다르다. 한쪽은 적극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빈 부분을 채워가야 하지만, 다른 한쪽은 분명 존재함에도 당대나 지금이나 읽히지 않았던 기록을 꼼꼼히 다시 읽어가야 한다. 자료가 차고 넘치는 근대와 현대로 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숱한 자료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정말 재밌고 의미 있는 조각들을 속속 골라내는 것이 중요해진다. 고려부터 현대까지, 시대와 필자에 따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과 인용하는 사료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을 보는 재미 역시 “여자, 하다” 시리즈를 읽는 즐거움이었다.  &nbsp;   그럼에도 일곱 명의 저자가 쓴 아홉 편의 이야기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단순히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여성을 통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는 점이다. 저주로 출세하고 저주로 몰락한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을 다룬 이민정의 이야기에선 유교 사회 조선의 여백을 읽는다. 조선의 17세기는 국가에나 가정에나 주자학적 질서가 깊게 뿌리내린 시대였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고, 종래의 믿음이 흔들리며, 임금과 세자가 반목하는 당대의 ‘비합리적’ 불안과 긴장을 달랠 언어가 부재했다. 조 귀인이 파고든 게 바로 이러한 공백이었다. 조 귀인 이야기는 단순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자학적 합리주의가 결코 떼어낼 수 없는 음울한 신경증의 징후다.  &nbsp;   일제 식민지기 ‘어멈’ 혹은 ‘식모’라 불린 여성 가사노동자에 대한 이아리의 이야기 역시 근대에 대한 새로운 상상으로 우리를 이끈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 서울에서 하나의 계급으로 떠오른 ‘행랑살이’는 양반의 후예들이 종래의 ‘전근대적’ 삶을 이어가기 위한 ‘근대적인’ 수단이었던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이기도 했다. 교사나 의사 등의 전문직, 혹은 공장에서의 근대적 노동이 아니었음에도 엄연한 ‘임금노동’이었을 뿐 아니라 불황에도 유일하게 수요와 공급 모두 높은 수준으로 유지되던 인기 업종이 식모였다. 흔히 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하는, 남성 생계 부양자와 전업 주부를 두 축으로 하는 핵가족 모델이 한반도에 뿌리를 내린 시점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nbsp;   스마트폰이나 게임 업계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반응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하나는 순수한 소비자로 제품을 오롯이 즐기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업계인 혹은 오타쿠로 제품을 하나하나 뜯어보며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이다. “여자, 하다” 시리즈에 대한 내 반응은 후자, 그러니까 업계인과 오타쿠에 가깝다. 어설프게나마 역사를 공부하고 있는지라 이 재미난 이야기들을 순수하게 즐기지 못하는 슬픔도 있지만, 업계인에게는 또 업계인의 즐거움이 있다. 최근 출시된 펄어비스의 《붉은 사막》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게임 개발자나 콘텐츠 제작자와 얼추 비슷하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이야기에 푹 빠진다기보다는, 이야기를 통해 생각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뻗어나간다.   &nbsp;   최근 역사학이 다루는 대상은 여성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닐 만큼 넓어졌다. 그래도 여성은 사람이기라도 하지! 이제 역사학은 은행나무나 다람쥐 같은 동식물은 물론 라디오나 아파트 같은 인공물까지 기꺼이 주인공으로 불러세운다. 문제는 이처럼 서술 대상의 확장에 발맞추어 서술의 방식 역시 달라졌는지다. 가령 남성 지식인이 주인공일 때와 여성 노동자가 주인공일 때, 물고기와 손목시계가 주인공일 때 이야기는 서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대라는 변수가 추가되면 참고할 수 있는 사료의 양과 성격 역시 크게 바뀐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역사학은 다루는 대상(주인공)의 폭에 비해 이에 맞는 서술(이야기)의 폭은 넓어지지 않은 듯하다.   &nbsp;   나는 “여자, 하다” 시리즈가 넓어진 주인공의 폭에 맞춰, 이야기의 폭 역시 넓힐 수 있는 매개가 되면 좋겠다. ‘무엇을’ 써야 하는가뿐 아니라, ‘어떻게’ 써야 하는가도 함께 고민하는 광장을 만들어주기를 바란다. 앞서 업계인 이야기를 잠깐 했지만, 한 업계에 몸을 담는다는 건 업종을 불문하고 자기가 속한 판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전체 그림을 잘 보지 못하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것이 전문성을 길러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최소한 역사학계에 한정하자면 이런 ‘업계인화’ 혹은 ‘전문화’가 다양한 이야기‘들’에 대한 감각을 사그라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사를 업으로 삼은 이들 대부분은 이야기가 좋아서 여기 온 사람들일 텐데, 정작 이야기에 대해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nbsp;   물론 이는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든, 이미 ‘말한 것’을 새롭게 읽어내기 위해서든, 기존의 이야기를 무식하리만치 꼼꼼히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게 켜켜이 공부를 쌓아간 뒤에야, 비로소 이야기를 다르게 쓸 여지도 생기는 것일 터다. 그 점에서 “여자, 하다” 시리즈를 기획하고 함께 쓴 일곱 명의 저자가 기울인 노력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진다. 같은 업계인들로 하여금 다른 이야기를 마주하고 고민할 여지를, 나아가 그런 이야기에 도전해 볼 여지를 주었으므로. “여자, 하다” 시리즈가 꾸준히 읽히며,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들’을 계속해서 만들어주기를 바라는 이유이기도 하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56/1/cover150/k77213790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560161</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SF작가가 마법을 다룰 때: 《기병과 마법사》 - [기병과 마법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6597319</link><pubDate>Wed, 16 Jul 2025 17: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65973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9197&TPaperId=165973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25/3/coveroff/k58203919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82039197&TPaperId=165973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기병과 마법사</a><br/>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25년 05월<br/></td></tr></table><br/>등단 20년을 맞이한 배명훈이 그동안 써온 작품들의 집대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얼개는《신의 궤도》를 잇고 있지만, 미증유의 재난을 막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이라는 점에서는 《고고심령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아버지-스승과 딸-제자라는 구도, 몸짓과 움직임의 역동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춤추는 사신》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br/><br/>《신의 궤도》에서 날렵하고 경쾌하게 그려진 정주와 유목의 관계는, 《기병과 미법사》에서는 좀 더 복잡하고 무거워졌다. 가장 큰 차이는 정주와 유목이 비로소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는 데 있다. 《신의 궤도》의 초점은 거대하고 무거운 정주의 세계를 교란하고 무너뜨리는 작고 날렵한 유목의 세계에 맞춰져 있다. 반면 《기병과 마법사》는 두 세계를 나름의 장단이 있는, 그렇기에 서로에게 끝없이 침투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그려낸다. <br/><br/>그렇기에 《기병과 마법사》 속 정주의 세계는 《신의 궤도》처럼 압도적이지 않다. 유목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신의 궤도》의 정주 세계와 유목 세계는 한나라와 흉노를 연상케 했다. 반면 《기병과 마법사》에서 그것은 조선왕조와 누르하치의 등장 이전 여진 부락들 수준으로 작아졌다. 둘 다 고만고만해진 셈이다. 작가 역시 한반도 왕조를 염두에 두고 정주 세계를 그려냈다고 한다. 흥미로운 변화다.<br/><br/>정작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정주-유목보다는 몸짓의 역동성이었다. 나는 배명훈을 국제정치학의 시각에서 SF를 쓰는 작가,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SF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새삼 생각해보니 그는 몸짓이 만들어내는 리듬과 역동성에도 굉장히 관심이 많았고, 이를 활자에 담아내려는 (범인에게는 거의 불가능해보이는) 목표에 끝없이 도전해온 작가이기도 했다. 판소리 SF라는 기이한(!) 장르를 시도했던 것 역시 그래서였을 테고. 그동안 그를 너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읽어왔구나 싶었다.<br/><br/>다만 정주와 유목, 몸짓과 리듬 모두 배명훈 소설에서 그렇게까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둘 다 이전까지 배명훈이 관심을 가져온 주제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그 점에서 《기병과 마법사》는 다소 심심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그가 《미래과거시제》와《화성과 나》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더욱.<br/><br/>하지만 《기병과 마법사》에는 배명훈의 이전 소설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마법'이다. 그러니까 그는 판타지에 도전한 것이다. 정주와 유목, 몸짓과 리듬이라는, 이전까지 배명훈 소설들을 읽어온 사람에게는 익숙한 주제들을 가져온 것도 이를 위해서일 수 있다. 허허벌판에서 완전히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일 수 있으므로.<br/><br/>그렇다면 마법을 다루려는 배명훈의 시도는 성공적이었느냐, 그건 잘 모르겠다. 그는 《SF 작가입니다》에서 판타지와 SF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판타지는 별다른 이유 없이 드래곤이 등장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반면 SF에서 드래곤은 어떤 식으로든 설명되어야 한다. 어떤 점에서 《투명드래곤》은 판타지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 작품이다. 드래곤 중 최강이라 누구와 붙어도 이겨버리는 투명드래곤이 '어쨌든' 울부짖는 것이야말로 판타지의 논리이므로.<br/><br/>배명훈은 얼핏 이러한 판타지의 규칙을 잘 따르는 듯 보인다.《기병과 마법사》에서 마법에 별다른 이유와 설명을 붙이진 않으니까. 다만 독자에겐 이유가 없어도 소설에는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니까 독자만큼이나 소설 속 인물들에게도 마법이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졌달까. 판타지의 드래곤에게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다는 건 이쪽 세계 사람들에게 드래곤이란 우리의 비둘기만큼이다 당연하고 자연스런 존재라는 의미다. 판타지는 이를 깔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br/><br/>그러나 《기병과 마법사》 속 인물들은 독자만큼이나 마법을 처음 본 것처럼 허둥대고, 어색해한다. 마법이 이야기의 전제가 아닌 설명의 대상이 되는 것. 배명훈에 따르면 이는 판타지가 아닌 SF의 문법이다. 물론 SF에서도 마법을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기병과 마법사》에서 마법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정확히는 전제를 생략하고 설명한다. 말해 소설에서 마법은 누구나 당연히 여길 만큼 자연스럽지 않은데, 갑자기 마법에 대한 설명으로 넘어가 버린다. <br/><br/>그렇기에 《기병과 마법사》는 배명훈의 이전 소설이 그러했듯 세계 자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도 않고, 다른 판타지 소설들처럼 마법을 전제로 깐 상태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지도 않는다. 요컨대, 판타지를 SF처럼 썼다.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후반에 너무 확 몰아치는 감이 있지만 배명훈의 소설답게 정교했고, 무엇보다 무척 공들여 쓴 흔적이 느껴졌다. 그렇기에 나 역시 페이지를 휙휙 넘기지 않고 찬찬히 읽게 되고. <br/><br/>배명훈의 가장 멋진 점은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이 소설이란 장르로 할 수 있는 것들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끝없이 실험해왔고, 언제나 이전보다 더 멋진 글들을 보여줬다. 《기병과 마법사》도 그런 실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딛고 그가 새롭게 나아갈 지점이 어딜지 궁금해졌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25/3/cover150/k5820391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250366</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모호함의 소멸과 인간의 선택: 《먼저 온 미래》 -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6588093</link><pubDate>Sat, 12 Jul 2025 18: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65880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608&TPaperId=165880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9/88/coveroff/89626266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608&TPaperId=165880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a><br/>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06월<br/></td></tr></table><br/>올해 읽은 책 중 손꼽히게 좋았다. 논픽션이라기보다는 인문학, 혹은 철학서에 가깝다. 중국어나 일본어로도 번역되어 더 많은 사람이 읽는다면 좋겠다.<br/><br/>난 장강명 작가님(이하 존칭 생략)의 책에서 작가가 그리 강조하지 않은 대목에 꽂히는 경향이 있다. 처음엔 그가 정말 중요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슬쩍 숨기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냥 내가 장강명의 책을 살짝 꼬아서 읽는 것도 같다. 작가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내가 그의 책에서 읽어낸 중요한 이야기가《당선, 합격, 계급》에서는 '피드백 공동체'였다면, 《먼저 온 미래》에서는 '모호함의 소멸'이었다.<br/><br/>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이지도, 명료하지도 않다. 오히려 인간 문명을 떠받친 건 모호함이었다. 바둑이든, 소설 창착이든 인간 활동은 탁월함이나 기세, 가치, 낭만, 인간다움 등 우리가 똑부러지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개념에 기대 이루어졌다. 그게 뭔지 잘은 알지 못했지만, 대충 어떤 뜻이라는 것 정도는 공유했고, 오히려 이런 모호함 덕에 끝없는 창조나 변주가 이뤄지기도 했다. 비단 언어만 그랬던 게 아니다. 언어로 담아내지 못하는 암묵지 역시 근본적으로는 매뉴얼화할 수 없는, 몸으로 굴러야 체득할 수 있는, 하지만 모두 그런 게 있다는 건 알았던 지식이었으니까.<br/><br/>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런 모호함의 영역을 크게 줄였다. 사람들은 알파고가 바둑기사의 개성이나 예술성을 죽이고 모두 천편일률적으로 바둑을 두게 만들었다며 비판한다. 하지만 알파고 이전에도 다들 몇몇 거장의 기보를 따라해 저마다의 개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한탄이 나왔다. 오히려 알파고가 가져온 중요한 변화는 모든 게 수치화되었다는 데 있다. 기사가 두는 한 수 한 수마다 이길 확률이 몇 프로로 딱 찍혀 나오니 바둑은 수치 게임이 되었고, 바둑 중계는 심하게 말해 경마와 다를 바가 없어졌다.<br/><br/>물론 여전히 모호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게 인간의 것이 아닐 뿐. 그렇기에 기사들은 AI와 바둑을 두며 초반 포석을 외우다시피 한다. AI가 신의 자리에 오르며 역설적으로 기사들 사이의 격차는 줄었고, 바둑은 민주화되었다. 이는 바둑이라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뛰어난 천재들의 예술이 아니라, 지독한 공부벌레들의 암기력 테스트가 된 것이다. 이는 AI에 의해 바둑이 기대고 있던 모호함의 영역이 사라지거나 적어도 크게 줄어들었기에 발생한 결과다. 이런 표현을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난 AI가 바둑을 '해킹했다고' 생각한다.<br/><br/>이렇듯 AI는 모호함을 잠식한다. 문제는 인간 문명이 지금껏 모호함에 너무나 많이 의존해왔다는 데 있다. 따라서 AI의 발전은 인간의 존립 기반을 흔든다. 아니, 정확히는 그것이 텅 비어있다는, 모두가 알지만 쉬쉬해온 진실을 폭로한다. 비유하자면 오랜 세월 켜켜이 쌓아올린 엄청나게 높은 젠가블럭이 있는데, 그 첫 단에 사실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br/><br/>모호함의 실체가 드러났다면, 선택은 두 가지다. 그것이 소멸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말해 인간 문명을 완전히 새롭게 구성해야 함을 받아들이거나, 이를 보다 정교한 형태로 계속해서 보존하거나. 장강명의 선택은 후자다.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하거나 아쉬움을 드러낸, 인간만의 가치를 강조한 책의 9장과 10장은 그 점에서 지극히 자연스런 결말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점에서 AI의 등장은 그동안 우리가 모호하게 퉁치고 넘어갔던 가치들, 가령 탁월함이나 예술, 인간다움 등을 보다 진지하게 성찰할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애써 덮어온 구멍을 강제로 들여다보게 되었으니, 이젠 어떻게 이를 완전히 메우지 않을지 고민해야 한다.<br/><br/>기실 장강명은 이런 모호함을 아주 오래 전부터 붙들고 고민해온 작가이기도 했다. 《먼저 온 미래》 말미에 나오는 《재수사》가 그랬고, 그에게 한겨레문학상을 안겨준 《표백》이 그랬고,《뤼미에르 피플》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인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그랬다. 장강명이 《재수사》를 쓰기로 결심한 이유도 더 늦기 전에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탁월함에 도전해보기 위해서였으니. 그는 이과 출신의 냉정한 현실주의자라는 선입견과 반대로, 혹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나 열정, 영성에 주목해온 작가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지독한 올드스쿨이다.<br/><br/>그런 만큼 나는 9장과 10장이 다소 성길지언정, 지극히 장강명다운 결말이라 생각한다. 특히 바둑을 주제로 삼는다면 더더욱. 그의 책에 등장하는 바둑기사들의 인터뷰 역시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책도 그렇게 모호함을 부여잡고 탁월함에 이르고자 분투한 결과로 읽힌다. 갑작스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며 무언가를 해내는 것의 어려움을, 아주 조금은 안다고 생각한다. 작가님의 분투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9/88/cover150/89626266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98823</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흔적'이 남지 않는, 그래서 궁금한: 《혼모노》 - [혼모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6583893</link><pubDate>Thu, 10 Jul 2025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658389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959&TPaperId=1658389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01/66/coveroff/s7621373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959&TPaperId=1658389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혼모노</a><br/>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03월<br/></td></tr></table><br/>'흔적'이 남지 않는 작가다.<br/><br/>성해나의 《혼모노》를 정신없이 읽어가는 가운데서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었다. 보통 작가들은 여기가 '본진'이구나 싶은 영역이 있다. 그게 작가의 경험이든, 문제의식이나 취미든 한 번 '담그지' 않는 이상 절대 이렇게 쓰기 어려운, 작가 스스로도 쓰면서 엄청 신나보이는 대목이 거의 대부분 나온다. <br/><br/>내가 요 몇 년 사이 읽었던 작가들만 떠올려봐도, 박상영은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 경험, 김초엽은 연구실 생활과 독서, 장류진은 '연대 감성'과 판교 테크노밸리, 서이제는 시네필 생활과 90년대 초반생 감성, 김사과는 먹물인데다 돈도 많은 엘리트에 대한 (내부자만 가질 수 있는) 환멸, 김금희는 노동과 동식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천주교, 황정은은 "여씨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아버지와 전파상, 가난, 좋든 싫든 대를 이어가는 (비)혈연 가족, 고영범은 실향민 정서와 교회 등, 그리 섬세하지 않은 독자라도 작가가 어디에 꽂혔는지, 혹은 뿌리를 박고 있는지 대강은 알 수 있다. 작가들 역시 이를 드러내는 데 크게 거리낌이 없는 편이고.<br/><br/>하지만 《혼모노》는, 정말 이상하리만치 작가가 '담갔던' 영역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집이었다. 굉장히 치밀하고 꼼꼼한 조사를 거쳐 소설을 썼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그 어디서도 작가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해나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와 상관없이, 모든 주제에 '공정하게' 같은 관심과 정성을 주고 있는 듯 보였다. 심지어 인터뷰에서 관심이 많다고 밝힌 건축을 소재로 한 단편 &lt;구의 집&gt; 역시 다른 작품들과 거의 비슷한 애정이 느껴졌다. <br/><br/>이런 '공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혼모노》에 실린 단편들은 그 다음이 궁금하지 않았다. 재미없거나 밋밋한 소설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한 단편에서 어디까지 보여줄 수 있는지를 미리 계산한 뒤, 이를 정교하고 날렵하게 연출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고 남는 '앙금'이나 '여지'가 없다는 이야기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이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이게 끝이라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달까?  작가가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친절하게, 하지만 건조하게 알려주는 기분이었다. <br/><br/>《혼모노》의 뜨거운 인기 역시 이런 건조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보면 되는데."란 박정민의 추천사가 너무 충격적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나는 성해나 소설이 쇼츠 보는 '요즘 세대' 구미에 맞게 굉장히 강렬하고 감각적일 줄 알았다. 94년생인 작가 역시 이런 새로운 감각에 익숙하리라 지레짐작했고. 하지만 《혼모노》는 오히려 굉장히 고전적이랄지, 기성 소설의 문법을 충실히 따른다. 인터뷰에서도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다고 이야기했고. <br/><br/>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모노》가 '책 안 읽는' 젊은 세대를 끌어들인 이유는, 역시 그 바삭거림 때문일 것이다.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작가의 정교한 설계에 따라 주어진 목표를 향해 단숨에 내달리는 쾌감이 있달까. 이건 김사과 소설의 무자비함과 그로테스크함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혼모노》가 딱히 유머가 돋보이는 책은 아님에도 굉장히 재밌게 읽히는 까닭 역시 그래서라 생각한다. (그럼 유머가 돋보이는 소설가는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정세랑과 이기호, 그리고 남들이 잘 모르지만 김금희.. 김금희는 특유의 '아재 개그'가 있는데다 상황 자체를 굉장히 웃기게 그려내는 힘이 있다.)<br/><br/>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혼모노》를 읽으며 등장인물의 얼굴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을 다른 장르로 옮긴다면 뭐가 좋을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서이제의 《0%를 향하여》는 웹툰, 고영범의 《서교동에서 죽다》는 그래픽노블,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은 드라마, 김금희의 《첫 여름, 완주》는 애니메이션 등 작품마다 이렇게 바꾸면 좋겠다는 장르가 있었는데, 《혼모노》는 그게 없었다.<br/><br/>역설적인 건, 이처럼 성해나가 《혼모노》에서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진다는 점이다. 원래 뭐 하던 분인지, 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는지, 한 번 '담근' 곳은 어디인지 등. 그래서 지난 1주일 동안 작가 인터뷰도 보고, 공저자로 참여한 소설집까진 아니더라도 책으로 나온 작가의 모든 소설들을 찾아 읽었다. 다소 의외였지만, 다른 작품들에선 작가의 '흔적'이 퍽 잘 느껴졌다. 가령 학습지 교사였던 어머니, 86세대를 향한 애증, 언젠가 깨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인간 본성 등. 작가가 인터뷰도 많이 하는 등 신비주의를 고수하지도 않고.<br/><br/>내가 이상한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혼모노》보다는 작가의 '흔적'이 드러나는 소설이 더 좋았다. 건조하게 웃으면서 "이게 전부에요."라 말하는 소설보다는 다소 성길지언정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 좋았고. 내가 가장 재밌게 읽은 성해나 소설은 《두고 온 여름》이었다. 《혼모노》에서도 뭔가 덜 완성된 것 같던 &lt;길티 클럽&gt;이 가장 좋았고. 그렇다면 성해나는 왜 '여지'를 주지 않는, 날렵하고 정교한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그 이유가 계속 궁금했다. 주제넘은 호기심일 수 있겠지만.<br/><br/>나는 성해나가 자신이 한 번 '담갔던' 무언가를 갖고 장편을 써주면 좋겠다. 지금까지 써온 글만 봐도 그렇고, 그는 단편에 특화된, 혹은 단편에 맞는 몸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온 작가로 보인다. 애초에 등단도 중편으로 했고. 《두고 온 여름》역시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분량에도 못 미치는 중편에 가까운 소설이다. 그런 성해나가 다소 성기고 들쑥날쑥할지언정,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주제로 끝까지 밀고나간 장편을 읽고 싶다. <br/><br/>단순히 단편은 많이 읽었으니 이젠 장편을 읽고싶단 마음은 아니다. 《혼모노》를 봐도 그렇고, 인터뷰를 읽어도 그렇고, 성해나는 굉장히 성실하고 안정적인 사람인 듯 보인다. 자료 조사도 꼼꼼하고 철저하다. 공부를 했어도 훌륭한 연구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할 정도로. 괜히 건축을 좋아하는 게 아니구나 싶달까. 늘 불안하고 잘 흔들리는 사람으로서 이런 안정감과 뚝심은 굉장히 부러운 재능인데, 이는 단편만큼이나 장편에도 어울린다 생각한다. 장기인 자료조사를 살릴 수 있는 역사소설도 좋고, 의외로 추리소설도 굉장히 잘 쓸 것 같다. 뭐가 되었든 성해나가 계속 소설을 써주면 좋겠다. 앞으로도 그의 글을 읽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01/66/cover150/s7621373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016676</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온 역사가 필요하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 한 개인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818887</link><pubDate>Sun, 01 Sep 2024 20: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81888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3165&TPaperId=1581888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558/41/coveroff/k44293316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3165&TPaperId=1581888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 한 개인의 역사에서 모두의 역사로</a><br/>이동해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08월<br/></td></tr></table><br/>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온 역사가 필요하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  &nbsp;   살다보면 종종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다. 과거 잘 모르고 지나쳤던, 혹은 그리 대단하다 생각지 않았던 일이 실은 더 큰 흐름의 일부였음을 문득 깨닫는 경험 말이다. 반대로 그때는 무척 심각하고 중요하게 느껴졌던 일이 돌이켜보니 그런 흐름과 별반 상관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음을 깨닫기도 한다. 이처럼 뒤늦게야 알게 되는, 거대하고 도도한 흐름을 우리는 보통 역사라고 한다. 역사가의 작업이란 그런 흐름 속에 개인이나 사건을 알맞게 위치시키는 일일 테고 말이다.    &nbsp;   아마도 구술사는 이런 ‘위치지우기’로서 역사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난 작업 중 하나일 것이다. 구술사, 혹은 구술생애사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을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과 연결한다. 동시에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에 대한 기존의 통념이나 편견을 뒤집어버리기도 한다. 가장 큰 것 역시 가장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루어져 있음을, 나아가 가장 작은 것이 때로는 가장 큰 것을 전복하고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깨닫는 일이야말로 구술사의 묘미가 아닐까.  &nbsp;   문제는 구술사가 갖는 어마어마한 매력과 잠재력에 비해, 정작 ‘제대로 된’ 구술사를 쓰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개인의 생각과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 만만하게(?) 느껴져서인지, 최근 ‘공공역사’가 각광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술사는 이제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세’가 되었다. 학교에서는 자신이나 부모, 조부모의 생애사 쓰기를 꼭 한 번은 과제로 내준다. 공공도서관이나 문화센터에서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지자체에서 하는 각종 사업에서도 구술사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말이다. 하지만 구술사를 어떻게 하는지, 그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과문한 탓인지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nbsp;   이동해의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는 이처럼 구술사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높지만 그 방법과 의의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지금 가뭄에 단비처럼 등장한, 너무나도 훌륭한 구술사 교과서다.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는 90년대생 지은이가 구술사의 대상으로 삼은 이는 1935년생 외할아버지 허홍무. 얼핏 ‘내 할아버지의 역사’ 혹은 ‘나의 뿌리를 찾아서’ 같은 뻔한 주제가 떠오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대학원에서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역사학자답게 지은이가 무척이나 촘촘하고, 또 치밀하게 할아버지의 개인사와 격동의 한국근현대사를 연결하기 때문이다.  &nbsp;   책을 읽다보면 두 가지 사실에 우선 놀라게 된다. 우선 문장과 구성이다. 지은이 이동해는 자칫 어렵고 전문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도, 혹은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지엽적이라 느껴질 수도 있는 개인의 내밀한 경험들도 흥미롭고 유려하게 풀어내는 놀라운 재주를 지녔다. 얼핏 듣기로 그는 출판사에서 2년 간 어린이용 원고를 쓰는 일을 했다는데, 그 솜씨가 어디 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이쯤 되면 모든 역사가를 대상으로 ‘출판사 의무근무제’를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한때 그가 브런치에 열심히 쓰던, 전문적인 학술논문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글도 무척 재밌게 읽었다. 이처럼 이동해는 ‘좋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무척이나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여하튼 좀 거대하고 무거운 주제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도 앉은 자리에서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를 뚝딱 읽게 되는 것이리라.  &nbsp;   문장과 구성만큼, 아니 그보다 더 훌륭하고 경이로운 점은 이동해의 꼼꼼함과 집념이다. 우리 모두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제시대 때 천석꾼 집안이었다느니, 6.25 동란 때 죽을 위기를 넘겼다느니, 지금 보이는 저 아파트촌이 20여 년 전만 해도 논밭이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다만 “아 그랬구나~”하고 더 깊이 파헤칠 생각을 않을 뿐. 이동해는 달랐다. 학부 2학년 때인 2016년 구술사를 처음 접하고 바로 할아버지를 인터뷰했다. 물론 학부 2학년생이 그 맥락을 이해하기는커녕 잘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 할아버지의 구술을 갖고 바로 역사책을 쓸 수는 없을 터. 그는 좌절하는 대신 오랜 시간 논문을 읽고 자료를 모았다. 족보, &lt;호적부&gt;, 국민학교 &lt;생활기록부&gt;, 군 생활 내력이 담긴 &lt;거주표&gt; 등 할아버지와 관계된 자료를 모으는 것은 물론 그의 삶을 보다 풍부히 이해할 수 있는 ‘맥락’을 쌓고자 자료를 찾아 헤맸다.  &nbsp;   무려 8년에 걸친 이러한 ‘빌드업’의 결과가 이 책이다.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의 탁월함은 다름 아닌 각주에서 드러난다. 각주는 역사가가 얼마나 두텁게, 또 정확하게 대상을 이해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이 책은 240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는 이례적으로 주석이 많이 달렸다. 세어보니 무려 437개다. 놀라운 점은 그 많은 주석 중 허투루 달린 주석이 없다는 사실이다. 허홍무의 생애사를 따라가다 ‘이 부분이 궁금한데?’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엔 논문이든, 신문 기사든, 공문서든, 기관에서 제공하는 아카이브든 어김없이 주석이 달려 있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주석이 달린 맨 뒷부분과 본문을 분주히 오가곤 했는데, 무척이나 즐거운 경험이었다. 한 사람의 삶을 오롯이 설명하기 위해선 최소한 437개의 주석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깨달았다고나 할까.  &nbsp;   437개의 주석으로 두텁고 풍부하게 맥락을 덧댐으로써, 얼핏 그리 대단치 않아 보였던 허홍무의 삶은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아마 본문에 다 담지 못한, 혹은 않은 탓이겠지만 사실 허홍무의 구술이란 그리 대단한 이야기를 담고 있지는 않다. 어린 시절 동네에 창고가 있었는데 그게 다 우리 거였다든지, 천안 철도국에서 근무하던 작은할아버지가 제련소를 관리하며 금광을 할 생각을 했다든지, 금광이 망하며 아버지가 부평 미쓰비시 공장에 취직했다든지, 인민군을 피해 고모 집 뒷산에 있는 항아리 묻는 방공호에 숨었다든지 하는, 우리 모두 한두 번은 들어본 적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동해는 이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에, 온갖 자료를 뒤져가며 맥락과 의미를 부여한다. 비단 구술사뿐 아니라 모든 역사가들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작업이다. 물론 모두 해야 한다고 해서 잘 하기란 쉽지 않지만, 이동해는 무척이나 탁월하게 이 작업을 해냈다.   &nbsp;   그렇기에 이 책은 두 가지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는 개인의 삶을 통해 거대한 역사적 풍경을 상상하는 즐거움이다. ‘나무 심기’에 성공해 총독부로부터 임야를 양도받아 천석꾼으로 행세하며 면협의원까지 될 수 있었던 식민지 조선의 지주들, 일제가 국제연합에서 탈퇴하고 영미와 관계가 나빠지며 치솟은 금에 대한 수요와 조선에 도래한 ‘황금광시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인한 중공업단지 조성과 헌병이 감시하는 삼엄한 군수공장, 여운형의 인민위원회와 이승만의 독립촉성회, 미군정이 난립하던 해방공간의 혼란, 공교육이 감당할 수 없었던 폭발적인 교육열을 대신 채워줄 서당의 존재, 인민군과 국군이 서로 죽고 죽이던 ‘마을로 간 한국전쟁’까지. 허홍무의 삶 그 어느 대목도 한국근현대사의 거대한 흐름과 연결되지 않았던 게 없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면 온 역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책은 너무나도 멋지게 보여주고 있다.  &nbsp;   책이 안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허홍무의 구술과 역사의 공식 기록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줄다리기다. 이동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의 말에 미심쩍인 부분이 있으면 꼭 자료를 찾아보고 정말 허홍무의 말이 맞는지, 맞지 않다면 그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를 치밀하게 파고든다. 가령 군복무를 하며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인민군 포로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보았다는 허홍무의 이야기에 이동해는 할아버지의 참전 용사 등록을 위해 병무청에서 &lt;병적증명서&gt;를, 국방부 인사사령부에서 &lt;거주표&gt;를 발급받았지만, 문서에 따르면 허홍무의 입대일은 정전 이후 1년 가까이 지난 1954년 7월 12일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그것도 후방에서 근무한 데 따른 부끄러움에 허홍무가 거짓말을 한 것이다.    &nbsp;   물론 이런 ‘팩트체크’만이 전부는 아니다. 이동해는 할아버지가 무심코 한 이야기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어코 그것이 진짜였음을 보여준다. 허홍무의 작은할아버지 허옥이 운영한 광산이 &lt;조선총독부 관보&gt;에 등록되어 있었다든지, 인민군이 철수하며 인주면 부면장을 처형하고 십자가에 매달아놓았다는 허홍무의 기억이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에 실려 있었다든지, 허홍무가 부산에서 군 복무를 하던 시절 첫사랑을 만나게 해준 철길이 지금은 사라진 문현선이었다는 대목에선 짜릿함마저 들었다. 마치 잘 쓴 추리소설과 같은 긴장감과 쾌감을, 다름 아닌 1935년 허홍무의 구술사에서 느꼈달까? 공교롭게도 내가 아는 훌륭한 역사가 선생님들 중에는 추리소설 마니아가 많은데, 좋은 역사책은 추리물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nbsp;   『단 한 사람의 한국 현대사』는 비단 재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의 ‘공공성’을 다시금 묻게 만드는 책이기도 하다. 최근 ‘공공역사’란 말이 유행하고 있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기존의 역사학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질문과 혼란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아주 삐딱하게 말하자면, “그럼 기존 역사학은 공적이지 않다는 얘기냐!”는 반론도 가능하고 말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던가. 이 책은 공공역사란 이런 것이라고까지는 말하지는 못해도, 최소한 역사가가 실천할 수 있는 공공성의 한 갈래를 무척이나 모범적으로 보여준다.   &nbsp;   학부 4학년 때 들었던 답사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요즘 같은 시대에 역사가의 공적 역할이란 여러 맥락을 살피며 이들을 제대로 이어주는 게 아닐까하는 말씀을 하셨다. 꼭 역사왜곡에 분연히 맞서고 선비의 결기로 잘못된 시대에 준엄히 목소리를 내는 것만이 역사가가 실천할 수 있는 공공성의 전부는 아니다. (물론 요새는 그런 게 필요하다 느껴지기도 하지만...) 평범한 개인의 삶을 역사라는 보다 큰 맥락과 이어주고, 동시에 개인의 삶을 통해 역사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작고 소박하지만 꼭 필요한, 역사가의 의무일지 모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역사학자 이영남이 이야기한, “중층적인 삶의 층위를 펼쳐 사회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것을 들추어내 서로 조정하고 관련짓는” 치유와 연대의 ‘임상역사’의 길로도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푸른역사, 2007, 300쪽.)  &nbsp;   이동해 역시 할아버지의 구술사를 쓰며 그런 치유의 과정을 경험한 듯하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허홍무의 이야기를 들은 가족들은 그를 이해하며 어린 시절 맺혔던 마음 속 응어리를 조금씩 풀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족들 역시 조금씩 자신들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허홍무 역시 한두 마디씩 거들며 소통의 장이 마련되었다. 구술사가 가진 치유의 힘을 경험한 것이다. 물론 개인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해서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또 이해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그러한 이해와 소통, 나아가 소통의 장을 마련할 수는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역사가가 맡을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역할일 것이다. 이번 책으로 그 가능성을 멋지게 보여준 이동해가, 앞으로도 자신의 방식대로 역사가의 공공성을 실천해가기를 소망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558/41/cover150/k44293316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5584159</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쓸모없음의 쓸모’를 설득하기 -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711220</link><pubDate>Mon, 22 Jul 2024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71122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939571&TPaperId=157112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33/22/coveroff/k6429395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42939571&TPaperId=1571122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 사람들이 읽기를 싫어한다는 착각</a><br/>김지원 지음 / 유유 / 2024년 03월<br/></td></tr></table><br/>‘쓸모없음의 쓸모’를 설득하기: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  &nbsp;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는 동생과 밥을 먹는데, 글쎄 얘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그동안 책을 너무 안 읽은 것 같다고, 그래서 삶의 깊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가 부족한 것 같단다. 그 얘기를 듣고 짧게 답해줬다. 네 형을 보라고, 난 대한민국 평균에 비해 그래도 책을 많이 읽는 축에 들 텐데, 내가 지혜롭거나 깊이를 갖춘 사람처럼 보이냐고. 그러자 동생은 “아!” 하고 감탄인지 한탄인지 모를 말을 내뱉더니 더 이상 내게 뭘 물어보지 않았다.  &nbsp;   반쯤은 농담이었지만, 마냥 실없는 소리는 아니다. 난 정말로 책 읽기가 대단한 자랑거리나 인간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덕목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책을 비교적 많이 읽고, 또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현명하거나 성숙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예민하고, 서투르며, 비관적이고, 침울한 사람에 가깝다. 내게 책 읽기란 말 그대로 ‘배운 도둑질’이 이것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다. 막말로 내가 다른 좋은 취미, 가령 공연 관람이나 스트릿 댄스를 좋아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밝고 건강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종종 생각한다.   &nbsp;   말이 나왔으니 하는 얘기지만, 어쩌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사람들이 왜 책을 읽지 않는가?”가 아니라 “왜 지금까지 사람들이 꼭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나?”일지도 모른다. 다들 책 좀 읽으라는 잔소리는 많이 들어보았겠지만 유튜브 좀 보라는 잔소리는 들어본 적 없지 않은가. 책보다 유튜브가 못할 건 없다. 적어도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리의 걱정은 그저 책이라는 매체가 (그 가치에 비해) 훨씬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인류 역사에서 무척 짧고 예외적인 시기의 끝물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호들갑은 아닐까.  &nbsp;   김지원의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이처럼 책이 더 이상 가치 있게 여겨지지 않는 시대에 용감하게 책의 ‘쓸모’를 주장하는 책이다. 한데 그 이유가 재밌다. 책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쓸모’를 갖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경향신문》에서 인문교양 뉴스레터 “인스피아”를 발행해온 지은이가 정의하는 책만의 특징은 ‘굳이’로 요약할 수 있다. 요즘처럼 타자 몇 번 두드리고 클릭 몇 번만 하면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는 시대에, 책은 그걸 ‘굳이’ 엮어서 일정한 리듬과 질서를 갖게 만든 뒤 종이에 찍어내 물성을 부여한다. 그리고 바로 이 ‘굳이’로부터 책의 쓸모가 발생한다.  &nbsp;   지은이가 꼽는,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적지 않다. 우선 책은 “가치 있는 텍스트를 모은 방주”다. 이때 방주라 함은 내가 찾는 정보만이 아닌, 그야말로 온갖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아카이브란 의미다. 그렇기에 우리는 책을 읽으며 원래는 생각지 못했던, 그러나 혹은 그렇기에 꼭 필요했던 번뜩이는 통찰을 ‘우연히’ 발견하곤 한다. 알고리즘의 ‘필연성’에 대항하는 책의 ‘우연성’은 이처럼 당장 필요하지 않은 정보까지 ‘굳이’ 읽는 해찰의 경험에서 나온다. (이게 내가 발췌독을 하지 않고, 웬만해선 책을 끝까지 읽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나 내가 찾으려는 책보다 그 옆에 꽂힌 책에 눈이 가는, 도서관 ‘서가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nbsp;   책은 ‘읽기’에서도 다른 매체는 줄 수 없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읽기’에서 책이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심지어 ‘읽지 않기’라는 선택지까지 존재한다는 점이다. 모바일의 ‘읽기’란 끊임없는 간섭과 방해의 연속이다. 비단 엑스 버튼이 어디 있는지 돋보기를 들이대야 겨우 찾을 수 있는 끝없는 광고의 벽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사가 독자의 편의를 위해 마련해둔 온갖 링크 역시 때로는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책은 이런 간섭 없이 편하게, 어디서나 원하는 페이지에서 펼치고 접을 수 있다. 내키지 않을 땐 그냥 안 읽으면 그만이다.  &nbsp;   요컨대, 적어도 책을 상대로는, 내가 주도권을 100% 가져가는 폭력적인 관계가 가능하다. 난 솔직히 이게 책을 읽는 가장 강력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사람을 상대할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신경 쓰는가! 말투부터 표정까지 사소한 것 하나 하나 파악하며 상대방이 혹시 지루해하거나 기분 상하진 않았는지, 내가 뭐 실수한 건 없는지 강박적으로 되돌아보지 않는가. 책은 그럴 일이 없다. (나는 안 그러지만) 북북 줄을 치거나 모서리를 접어도, 메모를 남겨도,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거나 동의가 되지 않는 부분에 “이의 있소!”하고 딴지를 걸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과의 관계에선 이런 식의 폭력성이 적극 권장되기까지 한다. 마음껏 폭력적이어도 된다니, ‘무해함’이 미덕인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얼마나 좋은가! (최소한 사람이나 동물한테 그러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nbsp;   책의 ‘쓸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은이의 말처럼 책은 “원산지가 표시된 정보”다. 이건 단지 책에 쓰인 이야기를 믿을 수 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난 좋은 책을 판가름하는 유무는 결국 각주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어디서 가져왔는지 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각주를 사다리 삼아 더 넓고 깊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끔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좋은 책은 “믿을 만한 지식의 지도”가 되어준다. 정말로 훌륭한 책(가령 방기중의 『한국근현대사상사연구』)은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에 발을 딛을 수 있게끔 해주는 베이스캠프가 되어주기도 한다. 책을 지도 삼아, 각주를 길잡이 삼아 내가 갈 수 있는 영역을 넓혀가고, 막힐 때면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nbsp;   문제는 이처럼 책이 갖는 ‘쓸모’가, 결국 그 ‘쓸모없음’으로부터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한때 책은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쓸모 있는 매체였을 수 있다. 하지만 클릭 몇 번, 아니 챗GPT에게 대충 물어만 봐도 원하는 답이 뚝딱 나오는 요즘 같은 시대에 책은 지나치게 수고롭고 품이 많이 드는 매체가 되어버렸다. 물론 책이 갖는 강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는 모두 ‘쓸모’를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다. 우연히 얻게 되는 통찰도, 자유로운(혹은 폭력적인) 읽기의 경험도, 각주를 길잡이 삼아 앎의 전선을 넓히는 일도, 속도와 효율이 중시되는 지금은 지나치게 한가로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nbsp;   요컨대, 책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쓸모’를 갖는, 지극히 역설적인 매체다. 『지금도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역시 같은 유유출판사에서 나온 우치다 다쓰루의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도서관은 근본적으로 ‘쓸모’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서관은 공공의 탈을 쓰고 있지만 민간에 위탁한 일부 도서관이 그러하듯, ‘고객’을 더 불러 모으고 이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흥미 위주의 책을 배치하거나 인스타그래머블한 북카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이란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경계의 장소여야 하며, 사서는 저편의 문지기, 즉 마녀와도 같은 존재여야 한다. (학교에서 겉도는 학생들이 자주 찾는 장소가 보건실과 도서실이라는 사실을 떠올려보자.)  &nbsp;   문제는 ‘쓸모없음의 쓸모’를 설득하기가 무척 난망하다는 사실이다. 앞서 길게 얘기했듯 책은 그 자체론 ‘쓸모’를 갖지 않고, 설령 갖는다 해도 이를 바로 알아차리기 무척 어렵다. 그런 만큼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오지 않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고 책을 읽으려 할 때, 책은 어렵기만 하고 곧바로 느낄 수 있는 효용은 적은 매체일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은 검색 엔진이나 챗GPT에 의존하게 되고, 결국 책은 ‘읽는 사람만 읽는’ 매체로 전락하고 만다. 비단 독자뿐 아니라, 시장과 정부에게도 책의 ‘쓸모’를 보여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일단 돈이 안 되지 않는가. 몇 백 명이나 읽을까 말까한 두툼한 학술서를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비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치다 선생님껜 안타깝게도, 사람이 오지 않는 도서관은 결국 문을 닫게 된다. 그 점에서 난 조용한 봉쇄수도원 같던 우리 동네 중앙도서관이 최근 인스타그래머블한 네온등을 주렁주렁 단 것을 이해한다.   &nbsp;   책이 ‘쓸모’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거나 슬프지는 않다. 애초에 책은 그러라고 만들어진 매체니까. 다만 ‘쓸모’가 없다고 아무도 책을 읽지 않고, 도서관에 투자하지 않는 사회가 썩 바람직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럼 결국 ‘쓸모없음으로부터 발생하는 쓸모’는 포기하게 되는 것이고, 그때 사회가 잃는 것이 적지는 않을 테니까. 아니, 이런 진지하고 거창한 고민까지 갈 것도 없이, 적어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재밌는 읽을거리가 계속 나와 주긴 해야 할 텐데. 이제 와서 공연 관람이나 스트릿 댄스에 도전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배운 도둑질이 책 읽기밖에 없는 미련한 사람으로서 머지않아 몇 안 되는 재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고민이기도 하다.  &nbsp;   어떻게 해야 ‘쓸모없음의 쓸모’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내가 떠올린 방법은 책이야말로 가장 진지하고 정성스런 ‘말 걸기’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가곤 하는 배우성의 『독서와 지식의 풍경』은 책과 출판에 대한 근대주의적 시선을 걷어내자 이야기한다. 조선 후기 지식인들은 오늘날의 기대처럼 책을 (목판이든 금속이든) 활자로 찍어내 모두가 자신의 글을 읽고, 낙양의 지가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자신의 생각을 알아줄 단 한 사람의 독자였다. 그 독자가 굳이 동시대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먼 훗날이라도 좋으니, 누군가 책을 읽고 그 뜻에 공감해준다면 이들로서는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nbsp;   물론 영세할지언정 출판이 ‘산업’이 된지 오래인 지금 이러한 관점을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여러 기사와 리뷰들을 훑으며 느끼는 건, 저자에겐 자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삼프로 티비에 출연하고, 문재인 전 대통령의 ‘픽’을 받는 것만큼이나(차마 ‘그보다’라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자기 책을 깊게 읽어줄 단 한 명의 독자를 만나는 일이 각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일 수 있겠다는 사실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기쁘고 즐거운 일 중 하나도 언론사에서 제대로 된 서평조차 나오지 않은 책이 알음알음 입소문이 나고, 책을 읽은 독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진지한 감상을 올리는 모습을 볼 때다. 김영민의 말마따나 “학식과 비판과 문체가 어우러져 좋은 글이 쌓이면, 그 사회는 그야말로 문예공화국의 면모를 갖게 될 것이다.” 좋은 소통의 매개로서, 문예공화국의 주춧돌로서 책이 갖는 ‘쓸모’는 여전히 존재하리라는 희망을 품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533/22/cover150/k6429395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5332269</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담론의 행간을 읽기, 탐침봉을 깊숙이 찔러넣기 - [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693837</link><pubDate>Mon, 15 Jul 2024 19: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69383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931390&TPaperId=156938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37/36/coveroff/k6729313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72931390&TPaperId=1569383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a><br/>배우성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06월<br/></td></tr></table><br/>담론의 행간을 읽기, 탐침봉을 깊숙이 찔러넣기: 『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  &nbsp;  1935년 만주, 삼학사가 다시 불려나오기까지  &nbsp;   1935년 봉천(심양), 만주국의 국립봉천도서관 사서 김구경은 송시열의 『삼학사전』을 다시 펴냈다. 2년 전, 명에 대한 충절을 지키다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된 삼학사를 기리는 비석 일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따른 것이었다. 누군가는 청이 망하고, 민국이 들어섰으며, 심지어 만주국이 세워진 1930년대에 재만(在滿) 조선인 사회가 새삼스레 삼학사를 재조명했다는 사실이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이런 생각에 근거가 없지는 않다. 김구경은 ‘황조(皇朝)’나 ‘대명(大明)’ 등의 표현을 그대로 썼을 뿐 아니라, 그 앞에서 칸을 떼는 대두법 역시 계속 따랐기 때문이다.  &nbsp;   그러나 뚜렷한 차이도 있었다. 김구경은 송시열이 쓴 ‘호(胡)’, ‘노(虜)’, ‘적(賊)’ 등을 찾아 그 대부분을 ‘적(敵)’으로 고쳤다. 뚜렷하게 중국을 겨냥한 동시에, 제국의 ‘신민’이자 만주국의 ‘국민’이었던 재만 조선인의 처지를 (최소한 중국인보다는 낫게끔) 고려해달라는 호소의 성격이 짙었다. 그렇게 송시열이 보편적 인륜으로 상정한 ‘의(義)’는, 만주국과 일본 제국이라는 뚜렷한 충성의 대상을 갖는 가치로 재해석되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에피소드는 ‘중화’의 의미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300년 전 삼학사가 다시 소환되었다는 점에서 ‘중화’는 여전히 힘이 셌지만, 이들이 불려나온 이유가 제국 일본에 읍소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명백히 달랐던 것이다.  &nbsp;   배우성의 『중화, 사라진 문명의 기준』(이하 『중화』)는 이렇듯 비교적 최근까지 한반도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그러나 그 내용은 시대와 맥락에 따라 달랐을 ‘중화’의 역사를 추적한다. 한데 그 방식이 독특하다. 지은이는 첫머리에서부터 넓고 큰 대로가 아닌, 좁고 구불구불한 샛길을 따라가겠다고 선언한다. 가령 이 책은 그간 학계에서 ‘중화’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중화’의 세 구성요소인 ‘지리’, ‘종족’, ‘문화’ 개념을 거의 논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국에서 ‘중화’를 논할 때나 의미 있는 개념들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지리적으로 중원이 아니며, 종족적으로 한족이 아닌 한반도의 경우 이들 개념만으로 ‘중화’가 상상되고 실천된 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10여 년 전 계승범-우경섭 논쟁이 어딘가 겉돌았던 이유 역시 그래서일 수 있다.)  &nbsp;   배우성이 택한 건 일종의 ‘측면돌파’, 혹은 ‘돌려깎기’ 전략이다. 그는 한반도에서 ‘중화’ 개념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심과 주변의 거리감 혹은 긴장감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중화’ 연구는 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거나(우경섭), 혹은 너무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에(계승범) 핵심에 다가서지 못했을 수 있다. 이렇듯 한반도가 중심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때론 동경했으나 결코 중심이 될 수는 없었다는 사실을 전제한 가운데, 배우성은 ‘이적’, ‘사대’, ‘동국’, ‘북학’ 등의 키워드로 한반도에서 ‘중화’가 어떻게 상상되고 실천되었는지 들여다본다. 이들 키워드야말로 주변에서 바라본 중심을 가장 정교하게 포착할 수 있다. 배우성의 생각은 이렇지 않았을까.  &nbsp;  사대와 북학, ‘관리된 모순’의 본질을 읽다  &nbsp;   자기만의 글쓰기와 내러티브를 갖춘 역사가는 많지 않다. 감히 말해보자면, 배우성은 그 드문 역사가 중 한 명일 것이다. 다소 아이러니하지만, 그는 세간에서 역사학(자)에 품는 기대와는 완전히 다르게 글을 쓴다. 배우성의 글은 ‘팩트’로 상대를 논박하기보다는 ‘팩트’ 자체를 의문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고, 복잡한 맥락을 말끔하게 해소해주기보다는 더 복잡하게 헝클어버리며, 분명한 교훈을 던져주기보다는 기존의 교훈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이처럼 그간의 이해와 상식을 완전히 헤집어놓고, 그는 질문에 질문을 던지며 대상을 향해 탐침봉을 깊숙하게 찔러넣는다. 배우성의 글에서 ‘행간’이라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원래는 “필자는 아무개의 이 말/글을 이렇게 읽는다.”는 표현이 많이 쓰였는데, 흥미롭게도 『중화』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nbsp;   복잡하게 헝클어버림으로써 오히려 분명한 진실에 다가서는 배우성의 글쓰기는 『중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특히 그의 전공인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중화 인식에 대해서는, 과장을 보태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갔다 나왔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중화 인식의 역사에서 조선 후기가 중요한 건, 누구나 알다시피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굴욕, 명청교체로 이어지는 ‘천붕지열(天崩地裂)’의 대변동 때문이다. 정통성을 갖춘 한족 왕조인 명이 멸망하고, 그 자리를 변발을 하며 옷깃을 왼쪽으로 여미는(左袵) 오랑캐가 차지했다. 나라를 다시 세워준 아버지와 같은 나라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무너뜨리는 데 일조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원수에 고개를 조아리며 이들의 후의에 기대어 연명하게 되었다. 당장 죽어도 시원치 않지만 죽을 수 없다. 모멸감과 비루함을 견디며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조선 후기 지식인이 처해있던 상황이었다.  &nbsp;   오랑캐인 청을 섬기면서도 망한 왕조인 명을 기리는, 얼핏 모순적인 행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계승범은 이를 두고 ‘정신분열적’이라고 비판했으며, 김영민은 그것이 ‘관리된 모순’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배우성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정교하고 구체적으로 ‘관리된 모순’의 본질을 파헤친다. 명이야말로 ‘중국’이라는 입장은 분명 조선 후기 지식인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진리였다. 그러나 100년 안에 망한다던 청이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전례 없는 성세(盛世)를 구가하며, 이들의 생각이 미묘하게 변해가기 시작한다. ‘상국/중국’과 ‘강국/대국’을 구분하게 된 것이다.   &nbsp;   ‘상국/중국’과 ‘강국/대국’에 대한 입장은 남인 안정복에게서 가장 명료하게 전개된다. 안정복이 보기에 ‘상국/중국’과 ‘강국/대국’은 다른 차원, 다른 층위에 놓였다. 상국 혹은 중국은 한, 당, 송, 명처럼 ‘중화’를 계승한 한족 왕조다. 이들이 대국이자 강국일 수 있지만, 거란의 요와 여진의 금에 시달린 송나라를 봐도 알 수 있듯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상국/중국’이 ‘강국/대국’이 아닐 때, 혹은 ‘상국/중국’과 ‘강국/대국’이 대치할 때 ‘동국(東國, 한반도 왕조를 일컫는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상국/중국’에 대해서는 천명을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강국/대국’에 대해서는 나라가 망하지 않는 선에서 ‘요령껏’ 행동해야 한다. 비록 “바꿀 수 없는 정리”를 분명히 해두었을지언정, 안정복은 ‘상국/중국’과 ‘강국/대국’ 사이에서 ‘동국’이 주체적으로 운신할 여지를 열어두었다.  &nbsp;   이러한 변화는 몽골의 원나라에 고려가 사대한 역사에 대한 ‘새삼스런’ 재조명과 맞물린다. 안정복도, 그의 스승 이익도 고려가 원에 갖는 군신의 분의를 인정했다. 심지어 이익은 요나라나 원나라가 이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이들이 나름의 ‘문(文)’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배우성의 말마따나 이익과 안정복이 거란의 요와 몽골의 원에 대한 생각을 만주의 청에 그대로 적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는 분명 청에 대한 입장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었다. 존주의리의 수호자를 자처한 동시에 청에 대한 사대에도 정성을 다했던 정조의 ‘모순’은, 그 점에서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정조에게 ‘상국/중국’인 명을 기리는 마음과 ‘대국/강국’인 청에 대한 사대는 층위를 달리했고, 따라서 충돌하지 않았다.  &nbsp;   같은 시기 (주로 노론이었던) 일군의 지식인 사이에서 일었던, ‘북학’에 대한 갈망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배우성은 이러한 흐름이 ‘청학(淸學)’이나 ‘만학(滿學)’이 아니라 ‘북학(北學)’으로 불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들은 청나라를 배우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청나라를 ‘통해’ 배우자고 주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청을 거쳐서라도 배워야 할 ‘무언가’란 어떤 것인가? 이는 박지원에게서 가장 정교하게 설명된다. 그는 소설 『호질』을 통해 청을 ‘인(仁)한 도둑’에 빗댄다. 청은 분명 중국을 훔친 도둑이다. 그러나 훔친 재물을 어질고 정의롭게 사용하는 도둑처럼, 청 역시 중국의 문물을 현명하게 관리하며 성세를 구가하고 있다. 조선이 청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이란 이처럼 청에 남아있는 중국의 문물, 구체적으로 한, 당, 송, 명의 유제다. 정조와 마찬가지로, 박지원에게도 ‘북학’과 ‘존주’는 전혀 모순되지 않았다.   &nbsp;  동국과 근대, 모호하거나 성급한  &nbsp;   이렇듯 배우성은 얼핏 모든 것을 모호하게 헝클어버리는 듯 보이면서도, 깊숙이 탐침봉을 꽂아 ‘중화’의 의미망을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그의 글은 (어쩌면 역사를 다룬 글로는 다소 이례적으로) 수많은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는 결코 답할 수 없는 것을 애매하게 덮어놓고 가려는 미봉책이 아니다. 오히려 질문을 극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끝끝내 진실을 포획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앞서 살펴보았듯 그간 너무 단순하게, 혹은 애매하게 설명되었던, 청에 사대하면서도 명을 기렸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모순’에 다가서려는 그의 노력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다만 배우성이 모든 키워드에 대해 이렇듯 집요하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며 답을 낸 것은 아니다.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은 키워드가 있는가하면, 다소 성급하게 결론을 내버린 키워드 역시 존재한다. ‘동국(東國)’과 ‘근대(책에서는 ’기자·진인·동양‘이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근대의 중화‘이므로)’가 이에 해당한다.  &nbsp;   그간 조선 후기 중화 인식을 연구할 때 ‘조선’과 ‘중화’가 어떤 관계를 맺는지, ‘중화’라는 의미망 속에서 ‘조선’이 어느 자리에 위치하는지는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무척이나 논쟁적인 주제였다. 가령 정옥자는 명이 사라진 현실에서 조선이 곧 ‘중화’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았고, 이는 조선 고유의 것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조선중화주의’가 ‘진경(眞景)’의 추구로 전화(轉化)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대자인 계승범의 경우 조선이 추구한 ‘중화’란 기실 명이라는 ‘타자’에 불과했으며, 이는 조선이 권위의 원천을 스스로에게서 찾는 데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했다고 보았다. 그의 책 『정지된 시간』이 제목과 달리 조선의 시간이 나름의 방식으로 흘러갔음을 흥미롭게 보여주었음에도, “조선의 ‘역사시계’는 (중략) 더 이상은 힘차게 똑딱이지 않았다”는 ‘악명 높은’ 결론으로 나아갔던 이유 역시 이처럼 조선이 권위의 ‘자기화’에 실패했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nbsp;   주목할 점은 얼핏 상반되는 듯 보이는 두 주장이, 조선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다고 전제한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두 주장의 차이란 ‘조선중화주의’가 그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긍정적인 촉매로 작용했느냐, 아니면 걸림돌이 되었느냐에 있을 뿐이다. (우경섭은 이를 우회해 ‘중화’를 보편적인 이념이나 가치의 수준까지 끌어 올리지만, ‘중화’의 추상성을 극도로 높일 경우 이는 어디에나 갖다 붙여도 좋을 무색무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계승범의 말처럼 조선 후기 지식인에게 ‘중화’란 기실 종족적 아이덴티티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 의관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선만의 무언가란 존재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것이 (적어도 식자층 사이에서) 뚜렷하게 인지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부터인가? 나아가 ‘중화’는 그 무언가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만약 ‘중화’가 조선의 무언가를 발견하는 데 촉매로 작용했다면, 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가능했는가?  &nbsp;   배우성은 조선 후기 지식인들이 ‘중화’를 말할 때 언제나 ‘동국’ 혹은 ‘아동(我東)’을 칭했다는 점에서 ‘조선 중화’란 성립하기 어려운 개념임을 분명히 한다. 이들은 감히 ‘중화’를 자처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하지 못했다. ‘중화’란 어디까지나 중원, 최소한 주희가 나고 자란 강남에서, 주씨 성을 가진 명 황실의 후손에 의해 회복되어야 했다. 조선의 역할이란 그때를 대비해 ‘중화’의 예악문물을 잘 보존해놓는 것이었다. 당시 표현으론 마지막 남은 등불, 요즘 말로는 백업용 하드디스크인 셈이다.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북벌을 주장하면서도 조선이 오를 수 있는 최대의 지위를 천자가 아닌, 천자의 스승으로 한정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nbsp;   이처럼 ‘동국’ 조선의 역할이란 기껏해야 ‘중화’의 회복을 위한 하드디스크 정도였다고 할 때, 조선만의 무언가가 놓일 자리는 어디인가? 물론 그것이 꼭 존재했으리라고, 혹은 존재해야만 한다고 여길 이유는 없다. 하지만 김자현, 그리고 그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은 오드 아르네 베스타의 말마따나 최소한 임진전쟁을 계기로 조선에도 일종의 ‘네이션’이 형성되었다면, 이는 ‘중화’ 혹은 ‘동국’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설사 한국사에서 네이션의 형성이란 19세기 말 이후에나 관찰된다는 근대주의적 설명을 따른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요컨대, ‘중화’라는 의미망 속에서 ‘동국’ 혹은 ‘아동’은 어떤 지위를 갖는가? 이는 단순히 조선이 ‘중화’의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는 설명으로 갈음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답이 없어 보일지언정) 훨씬 집요하고 끈질기게 질문해야 할 문제다.  &nbsp;   ‘동국’에 대한 배우성의 설명이 여전히 모호한 채로 남아있다면, ‘근대’에 대한 설명은 다소 성급하게 마무리된다. 가령 그는 김윤식이 청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중국이라 일컬었다는 사실을 ‘중화’ 인식이 변화한 중요한 사례로 거론한다. 서세동점의 긴박함 앞에서 청은 더 이상 오랑캐가 아닌, 천명을 받은 진정한 중국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배우성은 마땅한 답을, 하다못해 질문조차 내놓지 않는다. 김윤식은 19세기에 이르러 종래의 ‘중화’ 인식에 균열이 일어나고, 마침내 해체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례로 거론될 뿐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어쩌면 김윤식을 비롯해 김홍집, 어윤중과 같은 19세기 후반의 ‘친청파’ 관료들은 실무에 능할 뿐 별다른 지향을 갖지 못했던, 영혼 없는 테크노크라트였을 수 있다. 설사 이들이 목표한 바가 있었을지언정 그것은 왕현종이나 김종학의 말처럼 전통적인 ‘군신공치’의 현대화였지, 중화질서의 수호는 아니었을 수 있다.  &nbsp;   그럼에도,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되물어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이들에게 ‘중화’는 그저 아무래도 좋을 것이 되어버렸는가. 어째서 박지원까지만 해도 청을 ‘통해’ 배우는 것이었던 북학은, 그의 손자 박규수에게 배운 김윤식에 이르러선 청을 배우는 것으로 의미가 달라졌는가. 18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팽팽하게 존재하던 ‘상국/중국’과 ‘강국/대국’ 사이의 긴장은, 어째서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선 그렇게 눈 녹듯이 허물어져 버렸는가. 박규수라는 ‘미싱 링크’에 주목하는 건 이에 대한 답을 찾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단순히 김명호의 연구만으로 그에 대한 설명을 갈음하고 넘어가기는 어렵지 않은가. 가령 무엇이든 명쾌한 설명을 내놓던 김명호가 머뭇거린 몇 안 되는 대목인, “천한 만고에 예의 없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라는 박규수의 말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그것은 조경달의 말처럼 ‘리(理)’를 일종의 자연법으로서 만국에 적용한 결과인가, 아니면 김명호의 조심스런 해석처럼 ‘리’로부터 벗어난 상대주의의 발로인가.   &nbsp;   박규수를 파고드는 게 사소하고 지엽적인 방법이라면, 서양이라는 변수에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건 그보다는 적극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일 수 있다. 배우성의 말처럼 조선의 ‘중화’ 인식이 결국 중심과 주변의 거리와 긴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면, 서양이라는 또 다른 중심이 등장했을 때 기존의 ‘중화’ 인식은 어떻게 변화했을 것인가. 《독립신문》이 청나라를 ‘중국’이라 부르는 호명법은 “유식자의 느끼는 정에 해로운” 것이라 했을 때, 이때의 ‘중국’은 어디이며 《독립신문》이 호명한 ‘유식자’는 누구인가. 이들은 과거 유일한 중국이었던 명을 떠올렸기에 청을 ‘중국’이라 부르면 안 된다고 느꼈던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중국’으로 떠오른 서양에 비추어 청은 너무나 야만적이고 낙후했다고 느꼈던 것인가. 요컨대, ‘유식자’의 마음에 자리했던 ‘중심’ 곧 ‘중화’는 명인가, 서양인가. 나아가, 명에서 서양으로 ‘중심’이 교체되었다고 해서 ‘중화’라는 의미망은 소멸하는 것인가. 책의 제목처럼 ‘중화’가 “사라진 문명의 기준”이라면, 그것이 사라져간 과정에 대해서도 지금보단 많은 설명과 질문이 필요하지 않은가.   &nbsp;  가벼우면서도 진지하게, 담론의 샛길을 헤매기  &nbsp;   종종 전근대사를 공부하듯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근현대사 전공자면서도 조선시대를 다룬 책들을 (어쩌면 전공 서적보다도) 많이 읽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재미있는, 혹은 부끄러운 사실은 언제나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그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설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단 근현대사 연구가 지나치게 거대 담론에 짓눌린 것 같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근대, 민족, 식민지, 차별, 통일, 민주주의, 냉전과 같은 말들은 내게 과하게 무거워 보였다. 현재 근현대사 연구의 최신 트렌드라 할 수 있는, 넓은 의미의 ‘사회사’ 역시 이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은 것 같다.  &nbsp;   이처럼 무엇을 하고 싶지 않다는 건 분명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다는 건 여전히 모호한 상태다. 전근대사를 공부하듯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스스로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이상한 말은 어쩌면 이에 대한 나름의 변명인지도 모른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저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고, 혹은 계속해서 의미를 바꿔가며 오래도록 헤맬 것이다. 그럼에도 예정된 방황과 고민이 그렇게까지 걱정스럽지 않은 이유는 그렇게 헤매도 된다는, 이 역시 좋은 연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글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내겐 배우성의 연구가 그렇다. 힘들거나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가 쓴 『독서와 지식의 풍경』을 꺼내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고는 했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구태여 답을 내지 않고 복잡한 것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도 된다는 데서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nbsp;   조심스레 말해보자면, 『중화』는 지금껏 그가 썼던 글보다는 방향이나 문제의식이 뚜렷한 책이다. (단순히 질문으로 끝나는 문장이 이전보다 적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배우성은 여전히 잘 닦인 넓은 길보다는 작고 구불구불한 샛길을 선호하며, 뚜렷한 답을 내기보다는 원래 자명하게 보였던 것조차 헝클어버리고, 길을 잃고 헤매거나 막다른 곳에 이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 배우성의 글을 읽다 보면 나 역시 이렇게 헤매도 괜찮지 않을까, 근현대사 전공자라고 거대 담론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 괜시리 힘이 나곤 한다. 그렇게 나는 만약 배우성과 같이 민주주의의 개념사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가벼우면서도 충분히 진지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담론의 샛길을 헤매려는 마음을 먹어보게 되는 것이다. 큰 틀에서야 계속 달라지겠지만, 전근대사를 공부하듯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생각한다.&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137/36/cover150/k6729313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1373626</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공론정치의 붕괴와 ‘사회’의 탄생: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 1792년 만인소운동]</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595014</link><pubDate>Thu, 06 Jun 2024 16: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5950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0441&TPaperId=155950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70/54/coveroff/k4429304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42930441&TPaperId=155950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 1792년 만인소운동</a><br/>이상호 지음 / 푸른역사 / 2024년 05월<br/></td></tr></table><br/>공론정치의 붕괴와 ‘사회’의 탄생: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  &nbsp;  정조의 눈물, 그 안에 담긴 복잡한 셈법  &nbsp;   1792년 윤 4월 27일,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는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있었다. 영남 유생 만 명이 언명한, 길이 100미터에 무게 10kg 전후의 상소를 읽고 난 뒤였다. 영남 유생을 대표해 상소를 올린 류이좌는 감히 용안을 보지도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조아릴 뿐이었다.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가장 박식했고 이를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으며, 철두철미한 논리와 음흉한 뒷공작으로 노회한 대신들도 주머니 속 떡처럼 주무르던 희대의 마키아벨리스트, 조선의 지존이 시골 선비 앞에서 울고 있었다.   &nbsp;   영남 유생 만 명이 사도세자의 복권을 주청하며 집단으로 상소를 올리고, 정조가 이에 눈물로 화답한 1792년 만인소운동은 분명 대단한 ‘사건’이었다. 비록 이후 대단한 변화는 없었을지언정 시골 선비들이 합세해 중앙에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어느 정도 먹혔다는 사실은 당대에도, 오늘날에도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하다. 다만 이는 보잘 것 없는 촌부들의 요구에 왕이 따뜻하게 화답한, 동화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움직인 ‘사건’은 결코 선한 마음과 올곧은 의지만으로 가능하진 않으니 말이다.   &nbsp;   이상호의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는 1792년 만인소운동의 전말을 꼼꼼하게 추적함으로써 정조의 눈물에 담긴 복잡한 내막을 읽어낸다. 산골짜기 영남의 선비들은 어떻게 뜻을 모아 공동행동에 나설 수 있었는가? 이를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으며, 누가 뒷배가 되어주었는가? 조선왕조 역사상 가장 똑똑했으며 자존심도 강했던 정조는 왜 눈물을 보였으며, 그 의미는 무엇이었나? 이 모든 질문들을 종합하면, 어렴풋하게나마 하나의 답이 나온다. 1792년 만인소운동은 조선 특유의 ‘공론정치’가 가장 원숙한 단계에 이른 그 순간 무너질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nbsp;  경향분기와 붕당정치, ‘모두’가 ‘모두’가 아니게 될 때  &nbsp;   지은이인 이상호를 비롯해 책을 소개한 여러 기사들은 조선시대 공론정치와 오늘날 민주주의의 유사성에 주목했다. 공론이란 여러 사람들이 토론과 심의를 거쳐 만들어낸 하나의 주장인 만큼, 그 성격이 민주주의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과연 절차적 정당성에 근거해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정치체제인지는 차치하고, 일단 확실히 해둘 게 있다. 공론이란 ‘모두의 의견’이 아니라 ‘옳은 의견’이다. 김경래나 김인걸 등이 지적하듯이, 공론은 천리를 구현하는 의론으로 일종의 ‘공공선’에 가까운 개념이었다. 만일 공론정치와 유사성을 논할 수 있는 서구 정치체제 혹은 사상이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보다는 공화주의에 가까울 것이다.  &nbsp;   그랬기에 ‘공공선’인 공론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원칙적으로 다수의 동의는 필요치 않았다. 물론 ‘모두의 의견’과 ‘옳은 의견’이 언제나 상충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두가 옳은 의견을 공유하면 되니 말이다. 꿈같은 얘기처럼 들리지만 조선 역사에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사림이 역사의 중심에 등장하고 대간이 정치의 핵심으로 떠오른 16세기가 되면 양반 엘리트 사이에서 어렴풋하게나마 ‘이게 공론’이란 인식이 자리 잡는다.   &nbsp;   ‘모두의 의견’이 ‘옳은 의견’이 될 수 있었던 건 이때의 ‘모두’가 신분적, 경제적으로 일정한 동질성을 가진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서로 크게 다르지 않으니 생각하는 것도 비슷했고, 먹고사는 문제는 괄호 안에 둔 채 우아하고 추상적인 문제를 고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운 일부 남성만이 동등한 시민으로 나랏일을 논했던 고대 아테네처럼, 16세기 조선의 양반 엘리트 역시 대충 공론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을 공유한 상태에서 세련된 문치주의를 꽃피울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정치가 우아하고 품격을 갖췄다는 얘기는, 어쩌면 정치가 정말로 중요한 무언가를 외면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nbsp;   ‘모두의 의견’과 ‘옳은 의견’ 사이의 행복한 동행은, 그러나 오래 갈 수 없었다. 양란의 혼란을 거치고 17세기 중반에 접어들며 ‘모두’가 ‘모두’가 아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얼마 되지도 않았던 ‘모두’를 갈라놓은 첫 번째 요인은 서울과 지방의 현격한 격차, 곧 경향분기다. 수도 한성은 온갖 재화가 쏠리며 번영을 구가하고 새로운 사상적 조류를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반면, 지방은 점차 소외되고 고립되어갔다. 양반 엘리트가 나라를 나라로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마지막 보루였던 과거조차 서울과 경기에 대대로 거주하는 명문가인 ‘경화거족’의 독점이 두드러졌다.   &nbsp;   서울과 지방의 차이는 심지어 당색마저 봉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같은 남인이라 해도 근기남인인 정약용은 과감하게 이황이 아닌 이이가 옳다고 주장하는가하면 먼 옛날 원시유학에 흥미를 보이고, (논란이 있지만) 한때 천주교 신자이기도 했다. 반면 영남 남인은 퇴계의 학설을 교조적으로 추종하는 컬트 집단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오늘날의 수도권 집중을 연상케 할 정도로, 서울과 지방은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약용은 말할 것도 없고, 영남 남인을 서울로 불러들인 사실상 장본인인 채제공조차 이들을 자신의 동류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nbsp;   ‘모두’를 ‘모두’가 아니게 만든 두 번째 요인은 극에 달한 붕당 간의 대립이었다. 본래 성리학은 복수 당파의 공존을 인정하지 않는다. 영미 자유주의의 본질을 가장 날카롭게 간파한 칼 슈미트가 이죽거렸듯,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여러 집단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어쩌면 현대 의회정치에서도 무척이나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단 하나의 ‘옳은 의견’이 존재한다고 여겼던 조선시대에는 어떠했겠는가! 여러 연구자들이 지적했듯 당파마다 자신만이 ‘옳은 의견’이라 주장하며 상대 당파를 향해 ‘잘못된 의견’, 심지어는 ‘나쁜 의견’이라 낙인찍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nbsp;   그렇게 숙종과 경종의 치세를 거치며 극에 달한 당쟁은 상대 당파를 (물리적으로) 절멸시키려는 수준까지 나아갔다. 모든 갈등의 중재자이자 지고의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었던 왕조차 붕당의 대립을 중재하는 데 애를 먹었다. 아예 당파별로 지지하는 왕위 계승 후보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이른바 ‘탕평의 시대’라 여겨지는 영조와 정조의 치세에도 붕당 간의 갈등은 전혀 완화되지 않았다. 붕당의 입장에 따라 역사를 다르게 기술하는 당론서가 조선이 망하는 19세기 말까지 널리 쓰이고 읽혔다는 사실은 분열된 ‘모두’가 저마다 ‘옳은 의견’을 내세울 때 갈등의 골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nbsp;  저마다의 ‘동상이몽’, 실패한 ‘약속대련’  &nbsp;   18세기의 두 위대한 군주였던 영조와 정조는 이러한 갈등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그럴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사람이 사실상 왕밖에 없었다.) 조선 역사를 통틀어 가장 명민하고 노회했을, 그리고 그만큼 콤플렉스에 시달렸을 두 왕이 택한 건 일종의 ‘투 트랙’ 전략이었다. 영조와 정조는 단순히 서로 싸우지 말고 좋게 좋게 가자는 얘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들의 탕평이란 붕당의 논리와 의리보다 한 차원 높은 논리와 의리를 제시하는, 다시 말해 왕이 나서 ‘옳은 의견’의 표준을 정하는 것이었다. 영조와 정조가 조선 역사에서 손꼽히는 공부벌레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nbsp;   물론 논리와 의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나 그것이 자신들의 생존과 직결된다면 더더욱. 그랬기에 영조와 정조는 이성에 호소하는 첫 번째 전략만큼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두 번째 전략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영조는 조선 역사상 눈물을 가장 정치적으로 활용한 임금이었다. 그는 대신들 앞에서 뻑하면 시위를 벌였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기 위해 언제든 눈물 밸브를 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왕조국가에서 누가 왕의 ‘땡깡’을 이길 수 있겠는가?) 동시에 영조는 백성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자신이야말로 조선의 유일한 지존이요, 갈등의 조정자임을 과시하곤 했다. 속된 말로 말 안 듣는 너희 신하들 제끼고 언제든 백성과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협박한 것이다.  &nbsp;   영조의 손자인 정조 역시 정치에서 ‘퍼포먼스’가 갖는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화성 행차를 통해 눈물과 백성과의 직접 접촉을 보다 효과적으로 결합했다. 화성에 가는 정조의 행차는 웅장하고 화려해 왕의 위엄을 만백성에게 각인시키기 충분했다. 화성에 도착하면 그는 친부 사도세자의 묘 앞에서 눈물을 쏟고는 했다. 조선에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인 ‘효’를 과시한 것이다. 정순왕후가 결사반대했고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가 병가(兵家)에서 계책을 내어 적을 속이듯 한다며 비판했던, 강화도에 유배된 이복동생 은언군과의 은밀한 상봉 역시 감성을 공략한 ‘퍼포먼스’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책에도 나와 있지만, 정조는 서학과 더불어 강화도에 관한 일은 거론하지 말라고 했다.)  &nbsp;   1792년 만인소운동은 이처럼 서울과 지방이 갈라지고, 붕당의 대립이 극심해지며, 이를 봉합하려는 왕의 근심이 깊어가는 가운데 ‘공교롭게’ 발생한 사건이었다. 다시 말해 우연만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지은이가 이야기하듯 만인소운동은 어느 정도 기획된, 구체적으로 정조와 채제공의 의중이 반영된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만인소운동이란 사실상 정조의 사주를 받은 관제동원에 가까웠다고까지 말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라도 최소한 ‘약속대련’의 성격을 적잖이 갖고 있었다고는 봐야할 것 같다.   &nbsp;   문제는 ‘약속대련’에 임한 당사자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울까지 올라온 영남 남인이 바랐던 것은 무엇보다 정조의 관심을 끄는 일이었을 터다. 임금이 더 이상 우리를 봐주지 않는다, 공맹이 나고 자란 추로지향(鄒魯之鄕)을 자부하는 영남 선비들로서는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조금 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면 천거의 형태로 영남 남인들이 중앙 정계에 대거 진출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반면 조정을 이끄는 정승이자 서울 남인들의 영수였던 채제공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사실 자신과 동류라 여기지도 않았을) 영남 남인을 지렛대 삼아 중앙 정계의 판을 뒤집고, 궁극적으로는 노론의 단죄와 남인의 집권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nbsp;   정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남인만이 아닌, 노론을 포함한 사대부 전체와 만백성의 임금이 되고자 했다. 궁극적인 목표였던 친부의 신원 역시 당색을 초월해 모두의 동의 아래 이뤄져야 했다. 1792년 만인소운동은 이를 위한 중요한 포석이요, 요즘 말로 하면 ‘빌드업’이었다. 정조가 상소에 감읍해 눈물을 흘리면서도 영남 남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던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시골 선비들이 나라를 생각해 들고 일어나다니, 나 감동받았다!”를 어필하면서 사도세자 신원의 명분을 쌓는 동시에, 만인소운동이 조정을 뒤흔들거나 환국을 초래하는 일은 막아야 했다.   &nbsp;   요컨대, 1792년 만인소운동이란 영남 남인과 채제공, 정조 모두 ‘약속대련’인 줄 알고 임했으나 한 합씩 겨뤄보곤 “어, 이게 아니네?”하며 물러난 사건이었다. 영남 남인은 왕이 “영남은 나라의 근본”이라며 립서비스를 날려줄지언정 지역차별 해소, 구체적으로 영남 선비 등용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채제공은 (이후 보다 확실히 깨닫게 되지만) 숙종 이래 유구한 환국의 방식으로 남인의 집권을 실현할 수는 없음을 직감했다. 정조 역시 임금이 나서 노론과 소론, 남인의 당론을 조정하고, 이성과 감성을 내세워 모두의 동의 아래 사도세자의 신원을 이루는 일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nbsp;   그렇게 만인소운동은 누구에게도 만족스런 성과를 안기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영남 남인은 사실상 빈손으로 고향에 내려갔고, 채제공은 죽을 때까지 자신과는 한 하늘 아래 살 수 없다는 노론과 불안한 동거를 이어갔으며, 정조는 퇴위 후 화성에서 선왕으로서 신원을 이루겠다는 염원을 실현할 새도 없이 죽음을 맞았다. 18세기 말의 조선은 ‘옳은 의견’을 ‘모두의 의견’으로 끌어올리기엔 지나치게 분열된 상황이었다. ‘약속대련’에 임한 영남 남인과 채제공, 정조가 이랬을진대 노론이나 소론, 당시 급속히 늘어나던 천주교 신자들은 어땠겠는가. 만인소운동의 실패는 어쩌면 처음부터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nbsp;  이것은 왜 사회가 아니란 말인가  &nbsp;   그렇다면 1792년 만인소운동은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던, 이미 ‘모두’가 ‘모두’가 아니게 된 시대에 ‘모두’가 인정하는 ‘옳은 의견’을 만들어보겠다던 돈키호테적 망상에 불과할까? 그렇지는 않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들여다보면 지금껏 주목받지 못했던 만인소운동의 새로운 면모, 나아가 당시 조선사회의 성취가 드러난다. 그것이 『영남 선비들, 정조를 울리다』의 진가이기도 하다.  &nbsp;   이미 책에 대한 흥미로운 서평을 쓴 장지연의 말마따나, 1792년 만인소운동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조직을 만들고 유지·관리하는 영남 남인들의 힘이다. 이들은 사간원 정언이자 노론이었던 류성한이 임금께서 사도세자를 생각하느라 목이 메어 경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상소를 올려 조정이 벌집이 되기가 무섭게 삼계서원을 중심으로 대책을 논의했다. 윤 4월 10일 열린 도회에서 서울로 올라가 상소를 올리기로 결정이 내려지자마자 도산서원, 병산서원 등 영남의 주요 서원에서 명첩과 경비를 보내왔고, 대표단은 윤 4월 18~19일에 영남을 떠나 닷새 만에 한성에 도착했다.   &nbsp;   지은이의 말마따나 1792년 만인소운동은 당시까지 금기시되던 사도세자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했던 만큼 남인으로서는 자칫 노론에 의해 역적으로 몰릴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류성한을 처벌하라는 중앙의 여론이 식기 전에 한성에 도착해야 했기에 최대한 많은 사람의 이름을 올려 위험부담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최대한 신속하게 상소를 올려야만 했다. 이를 감안해도 영남 남인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의 서명을 받아, 이렇게나 빠르게 한성까지 갈 수 있었다는 건 이들이 그만큼 탄탄하고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는 증거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주먹구구, 얼렁뚱땅 이뤄진 게 아니라 영남의 여러 서원들은 물론 한성에 거주하던 영남 출신 선비들과의 지속적인 토론과 합의를 거쳐 절차적으로 ‘완벽하게’ 진행되었다.   &nbsp;   1792년 만인소운동이 보여준 영남 남인의 신속함과 조직력, 그리고 (절차적) 합리성은 조선시대 ‘사회’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간 조선의 ‘사회’에 대한 우리의 상상은 어딘가 미진하고 낙후했으며, 심하게 말하면 ‘사회’랄 게 없었다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은 추상적인 화폐에 의해 매개되는 전국시장도 존재하지 않았고,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인쇄문화는 형편없었으며, 다양한 생각을 주고받으며 ‘공론장’을 형성할 무대인 도시 역시 한성을 제외하고는 전무하다시피 했으니 말이다. 요컨대, 18세기 조선은 서구식 ‘시민사회’와 비슷하기라도 한 요소를 찾아보려야 찾아보기 힘들었던 곳이었다. 그간 중국과 달리 조선을 대상으로 ‘시민사회’ 논쟁이 활발히 진행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nbsp;   하지만 1792년 만인소운동은, 비록 그 형태는 서구와 상당히 달랐을지언정 조선에도 ‘사회’가 존재했으며, 심지어 꽤 건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영남 선비들은 서원과 문중을 매개로 촘촘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었고, 중앙에서 발생한 정치적 사건에 기민하게 반응해 하나의 입장을 정해 대표자를 한성까지 올려 보낼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심지어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되긴 했지만, 임금이 상소에 감읍해 눈물을 흘리는 등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왜 사회가 아니란 말인가?”  &nbsp;   지금까지 조선, 나아가 한국사에서 국가와 사회의 관계는 대부분 ‘강한 국가, 약한 사회’로 설명되곤 했다. (정치사상사 연구자 김영민처럼 ‘약한 국가, 약한 사회’로 여기는 입장도 존재한다.) 하지만 1792년 만인소운동은 조선의 사회가 결코 약하지 않았음을, 비록 최종적으로는 국가의 승인을 요구했을지언정 적어도 국가를 상대로 무언가를 요구할 역량을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19세기에 접어들면 사회는 파편화되어 개인과 문중, 마을만이 생존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소용돌이’ 상태에 놓이지만, 20세기 이후 ‘사회’는 다시금 그 힘을 회복해 국가와의 지난한 드잡이에 나서지 않았을까? 특히 식민지배와 군사독재라는, 강한 물리력을 갖췄으나 정당성 부재에 시달리는 국가의 시대에는 더더욱. ‘사회사’는 많지만 ‘사회의 역사’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에서, 한국식 ‘사회’의 기원으로서 만인소운동에 주목하는 이유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70/54/cover150/k4429304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9705429</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기예‘로서 돌봄, 그리고 지속가능한 자기계발 혹은 자기착취</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520632</link><pubDate>Tue, 07 May 2024 17: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52063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52939930&TPaperId=155206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685/58/coveroff/k55293993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92938561&TPaperId=155206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249/63/coveroff/k49293856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833780&TPaperId=1552063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78/60/coveroff/k202833780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이정 선생님의 『장인과 닥나무』는 생각할수록 훌륭한 책이다. 펼쳐볼 때마다 정말 다양한 각도에서 오밀조밀 뜯어볼 여지가 많다며 감탄하게 되는데, 요새는 우리가 ‘위대한’ 발명과 혁신만큼이나 ‘일상적인’ 유지·보수·관리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대목을 곱씹고 있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내가 조교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다음 학기부터는 할 수 없게 되었지만...) 조교는 가르침을 보조한다는 뜻에서 알 수 있듯 정말 유지·보수·관리만을 위해 만들어진 자리다. 비유하자면, 교수와 학부생, 대학원생, 대학(원) 행정팀 사이에 적절하게 파이프를 뚫어주는 배관공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br> <br>사실 조교는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난 예나 지금이나 돈 내고 하는 일보다는 돈 받고 하는 일이 훨씬 힘들고, 그런 만큼 대학원생은 직장인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조교가 중요한 일이 아니냐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비록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아니지만,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가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게끔 여러 방면에서 신경을 쓰며 발품을 팔아야 하는 일이니 말이다. 다른 원생들과도 하는 이야긴데, 조교 일이란 집안일과 비슷하다고 종종 생각한다. 그만큼 돌봄노동의 성격도 강하고.   &nbsp;  <br>생각해보면 내 군생활도 전형적인 유지·보수·관리의 영역에 있었다. 나는 유치원에서 장애를 가진 어린이를 돌보는 일을 했는데, 비단 돌봄노동뿐 아니라 유치원이라는 조직의 성격상 거의 모든 일을 다 했다. 사실상 유치원 소사 아저씨...같은 존재였는데, 이 역시 적성에 꽤 맞았다. 한 번 쓴 종이를 버리지 않고 북방의 추위를 견디는 겨울 외투로, 가벼운 밥그릇으로, 튼튼한 신발로, 아름다운 공예품으로 재활용한 조선 사람들처럼 나도 유치원에서 끊임없이 심고, 뽑고, 고치고, 만들고, 붙이고, 쓸고, 돌봤다. 물론 열심히 해도 크게 티가 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조교 일과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돌아가게 하는’ 재미가 있었다.   &nbsp;   <br>오늘 (아주 늦게) 《유레카》에 서평 원고를 넘긴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역시 일상적 유지·보수·관리의 기예로서 돌봄의 가치에 새롭게 주목한다. 돌봄이란 서로 관계를 맺고, 상대방의 다름을 헤아리며 부족함을 채워주는 일이다. 돌봄이 곧 관계인만큼, 정확히 관계를 맺는 이상 돌봄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만큼 돌봄은 곧 삶이나 다름없다. 물론 돌봄은 아무런 경제적 가치도 만들어내지 못하지만, 돌봄이 없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그렇기에 두 지은이는 말한다, 지금까지는 “돌봄 때문에 일을 못해!”라 말해왔다면 이제는 “일 때문에 돌봄을 못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nbsp;  돌봄 때문에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일 때문에 돌봄을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란 어떤 사회일까? 적어도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고, 서로를 연결해주며, 무언가를 ‘돌아가게 하는’ 능력이 지금보다는 훨씬 값지게 여겨지는 사회일 것이다. 대단한 발명이나 혁신만큼이나 일상의 소소한 유지·보수·관리 역시 중요할 테고 말이다. 요새 고민하는 게 바로 이런 시민의 덕목, 혹은 기예로서 돌봄이다. 우리는 인간이 사회적/정치적 동물이란 말을 너무 자명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그러한 사회성/정치성이 마치 자연스레 주어지는 양 착각하곤 한다. 내가 생각하기엔 돌봄, 혹은 유지·보수·관리 역시 적잖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어느 정도는 재능의 영역이기도 하고.   &nbsp;  기예로서 돌봄을 생각할 때마다 턱턱 걸리는 책이 양승훈 선생님의 『울산 디스토피아』다. (언젠간 꼭 긴 서평을...) 이 책은, 물론 나 혼자만의 생각인 것 같지만, 결국 자기계발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울산 디스토피아』는 자기계발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간 자기계발의 방식과 대상이 아주 한정적이었다는 게 문제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그간 한국에서 자기계발이 가능했던 집단은 수도권/남성/인서울/화이트칼라뿐이었고, 나머지(비수도권/여성/지방대/블루칼라)는 사실상 방치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nbsp;   <br>그간 자기계발이 일부 집단에게나 겨우 허락되었다는 사실은 자기계발을 할 수 없었던 나머지 집단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도 큰 비극이다. 이제는 이들 역시 치열하게 자기계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한국의 성장과 번영을 담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울산 디스토피아』는 수도권/남성/인서울/화이트칼라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자기계발을 할 수 있게끔, 다양한 자기계발의 루트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수도권/남성/인서울/화이트칼라가 아닌 나머지의 미래는 물론, 대한민국 전체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nbsp;  『울산 디스토피아』를 읽는 내내 가장 강하게 느껴졌던 감정은 이대로는 망한다는 위기의식이었다. 양승훈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간 내버려둔 “6~25등”의 아이들도 치열하게 자기계발, 혹은 자기착취를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한국은 곧 중국에게 뒤처지고, 끝내 주저앉고 만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1~5등”의 아이들만 달달 볶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이는 비단 대한민국뿐 아니라 “6~25등”의 아이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중·고등학교부터 교육은 그들에게 적절한 목표를 준 적이 없고 부족한 점을 채워준 적이 없다.”(양승훈, 「6~25등 이야기」, 《경향신문》, 2017. 07. 02.) 자기계발과 자기착취는 엄밀히 구분되지 않는다, 고 생각한다.   &nbsp;  요컨대,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와 『울산 디스토피아』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대로는 망한다!”를 외치고 있으며, 파국에 맞서기 위한 나름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는 돌봄 위기, 나아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돌봄 인프라’가 되어 시민의 의무로서 돌봄을 나눠 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신 경제적 생산성이나 효율성은 어느 정도 내려놓아야 하고 말이다. 반면 『울산 디스토피아』는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지속가능한 자기계발 혹은 자기착취의 프로세스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새 비관적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어쩌면 한국의 비극은 상충하는 듯 보이는 두 주장 모두 무척이나 ‘맞는 말’이라는 데서 오는지도 모르겠다.&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678/60/cover150/k2028337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6786058</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강과 인간의 ‘보다 나은’ 관계를 위해: 『한강에 살아요』 - [한강에 살아요 - 새로 보는 한강 역사 여행]</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490901</link><pubDate>Fri, 26 Apr 2024 1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4909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930863&TPaperId=15490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43/96/coveroff/k7929308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930863&TPaperId=154909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강에 살아요 - 새로 보는 한강 역사 여행</a><br/>장지연 지음, 전지 그림 / 너머학교 / 2024년 04월<br/></td></tr></table><br/>한강은 수도권 사람들이 늘 마주하는, 그러나 그 의미가 꼭 같지는 않은 강이다. 나처럼 경부고속도로에서 보낸 시간이 20대의 6분의 1은 될 사람에게 한강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한남대교를 건널 때마다 보게 되는 배경이다. 수많은 사람한때 넷상에서 유행했던 “인생은 한강뷰 아니면 한강물”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는 성공한 인생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반면, 주식이나 코인 등에 실패한 이들이 농반진반 찾는 곳 역시 한강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쉬거나 운동하러 한강을 찾지만, 동시에 위압적인 도로들 때문에 쉽게 접근할 수만은 없는 곳이기도 하다.  &nbsp;  장지연이 글을 쓰고 전지가 그림을 그린 『한강에 살아요』는 한강이 가진 다양한 면모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한강 주위에 펼쳐진 모래밭과 여기저기 뻗은 샛강, 이들 사이에 놓인 크고 작은 모래섬이었다. 아마도 나 같은 20~30대는 한강을 오늘날과 같은, 잔잔한 호수의 모습으로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한강의 긴 역사에 비추어보면 극히 최근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드넓은 모래밭과 큰비가 올 때마다 줄기가 달라지는 샛강, 생겼다 사라지곤 하는 모래섬이야말로 한강의 오랜 모습에 가깝다.   &nbsp;  나 역시 남양주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로부터 당신 어린 시절엔 한강에 백사장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고, 여름이면 한강과 왕숙천에서 수영을 즐기곤 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목가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한강에 살아요』는 결코 이를 낭만적으로 그리지만은 않는다. 모래밭과 샛강, 모래섬은 한강이 그만큼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인간은 아주 최근까지도 한강과의 싸움에서 번번이 패배했다. 그 유명한 을축년 대홍수는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최근인 1984년과 1990년에도 큰비가 내려 망원동과 고양군이 물에 잠기기도 했다.   &nbsp;  인간이 한강을 비로소 ‘다스릴’ 수 있게 된 건 전두환 시절인 1980년대에 이르러서다. 강바닥을 파내고, 강줄기를 직선으로 다듬었다. 물속에는 보를, 물위에는 둑을 만들어 큰비에도 강이 넘치지 않게 했다. 지난 총선 최대 승부처로 떠오른 “한강 벨트”의 대단위 아파트 단지는 이처럼 한강이 잠잠해지며 지어질 수 있었다. 여기서 혼자 소름이 돋았는데, 88올림픽-한강 치수-중산층 육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게, 각각의 사실들은 알고 있었는데 왜 그걸 하나로 꿸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nbsp;  이처럼 1980년대 이후 한강은 우리가 아는 그 모습이 되었지만, 결코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있지만은 않았다. 여의도를 만들기 위해 폭파한 밤섬이 되살아났고, 쓰레기매립장이 된 난지도에 다시 수풀이 자라나며 동물들이 살기 시작했다. 글작가 장지연의 말처럼 자연은 정말 놀랍달까? 내가 사는 동네를 가로지르는 탄천도 매년 강바닥을 파내고, 보를 지었다 철거했다 난리지만, 모래톱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비가 오면 강물이 범람한다.   &nbsp;  물론 자연의 놀라움은 언제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한강의 아름다운 모래밭과 무시무시한 대홍수는 어느 한 쪽만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어린 시절 보았던 《모노노케히메》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난 《모노노케히메》 만큼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탁월하게 그려낸 작품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한강에 살아요』 역시 인간과 자연 어느 한 쪽에 치우진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책은 굉장히 담담하게, 글작가 장지연의 말처럼 사람이 사는 곳의 환경을 바꾸고, 환경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낸 역사를 보여준다. “자연의 회복력은 강하고 사람들의 힘도 강하니까요.”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진 건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nbsp;  자칫 어려울 수 있는 내용을 쉽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풀어낸 글작가 장지연의 내공에도 감탄했지만(구체적인 숫자가 많이 나온 점이 특히 좋았다), 그림작가 전지의 디테일한 그림도(특히 간판!) 무척이나 좋았다. 흥미로운 점은 전지가 ‘지역’에 무척이나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진 작가라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나고 자란 안양을 배경으로 삼은 자전적 만화인 『선명한 거리』를 그렸고,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의 문제를 알기 쉽게 풀어내 호평을 받은 『어디에서 살까』의 일러스트를 그렸다. 그런 전지 작가인 만큼 디테일이 살아난 그림책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nbsp;  한편으론 궁금해진다, 안양 출신 전지 작가가 생각하는 한강은 어떤 모습일까? 『선명한 거리』에선 고등학생 시절 갑갑한 일상에 질린 작가와 친구가 서울로 떠나 한강을 보며 꼭 바다 같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반면 한강의 지류인 안양천은 냄새 나는 “안양 똥천”으로 그려지고 말이다. 서울로 가는 버스 안에서 작가의 친구가 “나 안양 떠나니까 숨이 쉬어져.”라고 고백하듯 말했던 건 그래서일 것이다.   &nbsp;  『선명한 거리』는 나이가 든 작가가 동네 풍경을 그린 전시회를 열며 끝이 난다. 10대 때는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안양에 대해 “울퉁불퉁 소란스러운 가운데 얻어걸리는 재미라는 게 있으니까.”라고 말할 수 있게 된 작가는, 이제 한강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안양 똥천”이라 불렀던 안양천은? (그 사이 안양천도 많이 달라지긴 했겠지만.) 안양천, 중랑천, 탄천, 왕숙천 같은 한강의 지류들 이야기 역시, 『한강에 살아요』를 읽으니 새삼 궁금해진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743/96/cover150/k7929308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7439654</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라져간 가능성들에 대한 애정 어린 탐구 - [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299141</link><pubDate>Tue, 13 Feb 2024 0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29914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938293&TPaperId=1529914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5/86/coveroff/k51293829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938293&TPaperId=1529914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북으로 간 언어학자 김수경</a><br/>이타가키 류타 지음, 고영진.임경화 옮김 / 푸른역사 / 2024년 02월<br/></td></tr></table><br/>사라져간 가능성들에 대한 애정 어린 탐구: 『북으로 간 언어학자』  &nbsp;  한국이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게 될 때  &nbsp;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박근혜 정부에서 총리로 지명된 문창극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왜 총리가 아니라 총리로 ‘지명된’ 사람이냐면, 문창극 씨는 청문회조차 가보지 못하고 낙마했기 때문이다. 총리의 꿈을 좌절시킨 결정적인 ‘트리거’는 그가 강남의 한 교회에서 했다는 강연이었다. 그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은 하나님의 뜻”이라며, 하나님이 고비고비마다 주신 시련과 고난이 민족을 단련시키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은 문창극 씨의 이 발언을 전형적인 식민통치 미화, 혹은 식민지근대화론으로 보도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 최소한 일제 식민지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한국에서 그가 총리가 될 수 없었던 건 따라서 당연한 일이었다.  &nbsp;   이 사건을 한 보수 기독교 인사의 ‘잘못된’ 역사관이 빚은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득문득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 건, 문창극 씨의 생각이 그리 예외적이거나 이상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어린이용 학습만화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를 소재로 삼은 거의 모든 콘텐츠는 비극적인 과거가 빛나는 오늘을 위한 ‘시련’이었음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좌와 우의 구분이 없다. ‘시련’을 통해 얻게 된 ‘성취’가 경제발전이냐 민주주의냐의 차이 정도만 있을 뿐. 특히 한국이 명실상부 선진국으로 올라선 2010년대 후반부터는 보다 적극적이고, 공공연한 형태로 ‘시련 사관’이 유통되었다, 고 생각한다. 당장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연설문집인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nbsp;   문제는 이러한 ‘시련 사관’에서, 근현대 한국이 겪은 모든 ‘시련’은 오로지 ‘성취’와 연결됨으로써만 그 의의를 인정받는다는 점이다. 일제 식민지배도, 분단과 전쟁도, 군사독재와 노동착취도 오늘날 한국의 번영을 위한 밑거름으로 간단히 치환된다. 뒤집어 말해 현재의 ‘성취’와 연결되지 않는다면, 과거의 ‘시련’은 시련조차 될 수 없다. ‘시련’과 ‘성취’라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도식을 비껴나는 인물이나 사건은 역사의 저편으로 밀려나고 말이다. 그렇다면 ‘성취’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혹은 그다지 ‘시련’처럼 느껴지지 않는 역사를 구태여 발굴하고 배워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정확히 말해 대중에게 이를 설득할 수 있는가? 나아가 만일 한국이 더 이상 선진국이 아니게 될 때, 그러니까 현재가 그리 자랑스럽거나 떳떳하지 않은 날이 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과거를 긍정할 수 있을 것인가?   &nbsp;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닥쳐올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타가키 류타의 『북으로 간 언어학자』는 흥미진진하게, 무엇보다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임화의 월북을 다룬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북으로  간 시인』을 연상케 하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은 해방 이후 월북해 초창기 북조선 언어정책을 설계하다시피 했던 언어학자 김수경에 대한 평전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김수경인가? 그가 7개 언어로 된 원서를 동시에 읽어가며 물 흐르듯 수업할 정도의 천재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남에서도 북에서도 오랫동안 잊혔다 최근에야 알려진 비운의 인물에 가깝다.   &nbsp;   그렇다고 『북으로 간 언어학자』가 수많은 평전이 그러하듯, 김수경에게 ‘마땅한’ 자리를 찾아주겠다는 ‘복권(復權) 시도’는 아니다. 이타가키는 김수경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왜 그에게 주목해야 하는지 애써 강변하지 않는다. 이타가키가 주목하는 건 김수경의 ‘실패’다. 김수경은 오늘날 한국인과 일본인이 보기에는 의심의 여지없이 ‘실패한’ 국가인 북조선을 선택했다. 그가 북조선에서 펼친 언어정책 역시 끝내 채택되지 못했다. 말하자면 이중의 실패를 한 셈인데, 이타가키는 오히려 이로부터 현재를 상대화할 가능성을 본다. 대한민국과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 현재 우리가 쓰는 한국어로 귀결되지 않는 숱한 시도와 가능성들이 김수경의 삶에 응축되어 있다. 일체의 역사를 현재의 ‘성취’를 위한 ‘시련’으로 여기지 않는 역사 연구, 이타가키는 이를 “비판적 코리아 연구”라 이름 붙인다.   &nbsp;  식민지의 “소쉬르 보이”, 신국가의 언어를 설계하다  &nbsp;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고 활동했던 숱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조선의 지식청년이었던 김수경 역시 제국 일본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다만 그가 받았다는 영향은, 다른 지식인들과 비교해 조금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경성제대 시절 김수경의 사실상 지도교수였던 고바야시 히데오는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를 세계 최초로 번역한 언어학자였고, 김수경은 이러한 고바야시와 “면학의 고락을 함께”하며(p.89.) 구조언어학을 폭넓게 수용했다. 구조언어학이 식민본국 일본에서도 생소한 ‘최신 학문’이었던 만큼, 어쩌면 김수경은 일본이라는 ‘매개’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언어학의 세계적 조류와 직결했던 것이다. 인도유럽어를 중심으로 수많은 언어들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탐구하며,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의 구조를 발견하려는 구조언어학의 이상은 이후 김수경의 삶과 학문을 틀 지우게 된다.  &nbsp;   이처럼 조선은 물론 일본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을 “소쉬르 보이”였던 동시에, 식민지 조선의 지식청년 대부분이 그러했듯 “마르크스 보이”이기도 했던 김수경이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일제가 패망하고 한반도에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새로운 두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언어학은 그 추상성과 복잡함 때문에 종종 천재들의 유희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실은 굉장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갖는 학문이다. 사람의 말과 행동을 틀 지우는, 언어에 대한 규범을 마련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베네딕트 앤더슨이 일찍이 간파했듯 이른바 민족/국민(Nation)의 형성에 언어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연히 ‘국민’ 창출을 목표로 하던 두 나라는 언어학자 김수경의 재능을 탐낼 수밖에 없었고, 남쪽의 경성대학 교수였던 김수경은 이른바 “국대안 파동”을 계기로 월북하게 된다.   &nbsp;   그렇게 김수경이 선택한 북조선의 2인자가, 공교롭게도 주시경의 제자였던 김두봉이었다. ‘장군’ 김일성과 대조적으로 ‘선생’이라 불렸던 그는, 1947년 2월 서울에서 발행되던 종합잡지 《민성民聲》의 북조선 특파원이었던 박찬식이 한글과 문자정책에 대해 간단한 질문을 던지자 입에 거품까지 물어가며 문자개혁에 대한 열변을 토할 정도로 열성적인 언어학자였다. 박찬식은 “천하의 혁명가를 만나서 겨우 한글 이야기밖에 하지 못했다는 건 기자로서 여지없는 낙제”라며 한탄했지만(p.159.), 김두봉에게는 ‘정치혁명’과 ‘언어혁명’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 신국가 건설이란 곧 이를 떠받칠 언어체계를 건설하는 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 김두봉 밑에서, 김수경은 마치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격으로 자신의 구상을 펼칠 수 있었다.   &nbsp;   당시 대한민국과 북조선을 막론하고 새로운 언어체계를 마련하는데 가장 중요했던 과제 중 하나는, ‘한자의 빈자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였다. 특히 북조선은 초기부터 언어생활에서 한자를 완전히 배격할 것을 선언했는데, 이로부터 발생하는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일단 국한문 혼용에서 벗어나는 순간 종래의 모아쓰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어진다. 애당초 《훈민정음》부터 중국의 소리를 최대한 올바르게 받아 적기 위해, 다시 말해 한자를 전제한 상태에서 탄생한 문자였다. 한자음의 소리를 한글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지도 골치였다. 국한문 혼용 시절에는 속으로 어떻게 읽든 한자로 써놓으면 그만이었지만 순한글로 표기하는 이상 이를 어떻게 쓸지, 가령 勞動을 “노동”으로 쓸지 “로동”으로 쓸지 결정해야 했다.   &nbsp;   김수경이 내놓은 답은 풀어쓰기, 그리고 형태주의였다. 풀어쓰기란 한글의 자모음을 알파벳처럼 전부 풀어서, 그러니까 “김수경”을 “ㄱlㅁㅅㅜㄱㅕㅇ”으로 적는 방식이다. 형식주의는 실제 발음과는 다를지언정 같은 어(語)는 같은 철자로 표기한다는 원칙이다. 물론 이 두 방침은 김수경만의 독특한 발상이라기보다는 주시경 이래 조선의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언젠가는 달성해야 할 목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나 김수경은 특유의 어학 실력과 구조주의 언어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뒷받침할 탄탄한 이론적 근거를 마련했다. 변칙적 표기를 줄이기 위한 ㅿ, ㆆ를 비롯한 “신6자모”의 고안, 풀어쓰기를 채택할 때 적절한 끊어읽기를 위한 “절음부” '의 도입은 모두 이러한 맥락에서 이뤄진 일이었다.   &nbsp;  ‘외부’를 잃은 ‘내부’의 귀결, 학문의 ‘주체화’  &nbsp;   앤더슨의 말마따나 한문이나 라틴어처럼 지나치게 표의적이지도, 민중의 입말처럼 지나치게 표음적이지도 않은, ‘국민’을 창출하는데 가장 적합한 언어를 고안하려던 김수경의 야심찬 기획은, 그러나 1958년 김두봉이 실각하며 좌절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언어학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이어가긴 했으나, 1968년 김일성대학 문학부에서 중앙도서관 사서로 사실상 좌천되었다. 김수경의 숙청과 함께 북조선의 학술계, 나아가 사회 전체도 크게 달라졌다. ‘자주’와 ‘주체’의 구축이 지상과제로 떠오르며 소련을 비롯한 해외의 연구 업적에 대한 참조가 “외래 사상의 기계적 적용”으로 비판받게 것이다.   &nbsp;   이를 잘 보여주는 게 “토”에 대한 규정 변화다. “~이”, “~가”와 같은 조사를 일컫는 말인 토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북조선에서 퍽 오랜 시간 논쟁의 대상이었다. 만일 토를 독립적인 품사로 본다면 굴절어인 인도유럽어족 언어들과 구별되는 교착어로서 조선어의 ‘특수성’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반면 토를 접사로 본다면 조선어와 다른 인도유럽어족 언어들 사이의 ‘보편성’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일단 1949년 김수경의 주도로 편찬한 『조선어 문법』에서는 토를 독립적인 품사로 취급하지 않고, 명사나 형용사 등 각 품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보조적으로 다루었다. 인도유럽어라는 ‘보편’의 맥락에서 조선어를 이해코자 했던 것이다. 당시 소련 언어학계를 주도하던 마르학파의 공식주의가 반영된 결과였다.   &nbsp;   반면 1950년 6월 20일 스탈린이 《프라우다》에 마르학파를 비판하며 언어의 전 인민적 성격을 강조하는 논문을 실은 뒤인 1954년 간행한 『조선어 문법』에서는 토를 “보조적 품사”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이는 이전에 비해 토, 나아가 조선어의 ‘특수성’을 강조한 것으로, 스탈린의 논문에서 “민족적 자주성”을 추출해내고자 했던 김수경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였다. 물론 이때의 “민족적 자주성”이란 어디까지나 다른 나라들과의 폭넓은 비교라는 보편적·국제주의적 시야를 전제한 것이었다. 앤더슨이 간파했듯 ‘내셔널(national)’한 것은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혹은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한 지평에서만 비로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nbsp;   그러나 “주체의 확립”이 중시되는 1960년대 이후에는 인도유럽어의 ‘보편성’을 중시하는 “토는 접사다”, 인도유럽어의 ‘보편성’ 위에서 조선어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하는 “토는 접사지만 일부 다르다”는 종래의 주장 대신 “토는 토다”라는, 다른 언어와의 비교를 일체 거부하며 조선어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주장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나아가 어음론, 형태론, 문장론의 3부로 구성된 기존의 문법서를 말소리, 품사, 토, 문장의 4부로 구성하는 등, 아예 토를 중심으로 조선어의 문법체계를 새롭게 짜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처럼 이론적 권위의 원천을 민족 ‘내부’의 지고한 존재(수령)에게 구하고, 일체의 ‘외부’를 지워가는 학문의 ‘주체화’ 과정에서(p.366.), 외부와 내부, 특수와 보편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잃지 않았던 다언어 구사자 김수경의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nbsp;  열린 것과 닫힌 것, 인물사의 어려움  &nbsp;   식민지의 지식청년이었던 “소쉬르 보이” 김수경이 해방 이후 신국가의 언어체계 건설에 투신하고, 1960년대 학문의 ‘주체화’가 이루어지며 끝내 숙청되는 과정은 무척이나 극적이고 또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이타가키는 김수경이 인생의 주요 고비마다 마주했던 여러 가능성을 풍성하게 드러냄으로써, 여러 맥락이 얽힌 ‘교차로’로서 개인의 삶을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드러낸다(p.14.). “머리말”에서 밝히듯 그는 김수경이라는 개인이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그때그때 판단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림으로써, 지나치게 결과론적인 역사 서술에 지배되고 있는 한반도를 둘러싼 담론에 대항해 보고 싶다”는(p.41.) 포부를 가지고 있고, 감히 평가하자면 이를 멋지게 성공시켰다.  &nbsp;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김수경을 통해 현재로 수렴하지 않는 역사 속의 다양한 가능성들을 섬세하고 아름답게 복원해내는 이 책이, 막상 김수경 개인을 다룰 때는 그의 삶과 사고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전제하는 듯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 ‘무언가’란 다름 아닌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이다. 실제로 이타가키는 김수경이 경성제대 시절 고바야시로부터 구조주의 언어학을 사사한 과정을 적잖이 공들여 서술한다. 이후 김수경의 삶에서 구조주의 언어학은 계속해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통주저음(通奏低音)처럼 묘사된다. 심지어 이타가키는 김수경의 한국전쟁 수기 역시 소쉬르의 랑그와 파롤 개념에 따라 분석을 시도한다(p.228.).   &nbsp;   요컨대, 이타가키가 그려낸 김수경은 소쉬르와 구조주의 언어학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어쩌면 김수경의 삶이란 청년 시절 받아들인 구조주의 언어학을 조금씩 변주시켜가는 과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경성제대 시절 김수경의 배움에서 일본이라는 ‘매개’가 갖는 영향력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다시 말해 그가 유럽에서 유학한 조선인 혹은 일본에서 공부한 일본인처럼 보인다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준 고바야시의 존재를 잊게 될 만큼, 『북으로 간 언어학자』에서 김수경과 소쉬르의 거리는 가깝게 묘사된다. (책 속에서 고바야시는 김수경의 언어적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격려해주며,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김수경을 그리워하는 고마운 은사로 그려진다.)  &nbsp;   김수경과 소쉬르의 이러한 ‘밀접함’은, 인물의 삶을 다룰 때 우리가 무엇을,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느냐는 질문으로 이끈다. 인물사 혹은 평전을 쓰거나 읽을 때, 우리는 인물의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전제하곤 한다. 이는 사실 불가피한 것이기도 한데, 그 ‘무언가’가 없다면 애당초 인물사나 평전을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절치 않은 비유일지 모르겠지만 실험을 할 때 어떤 변수는 꼭 통제되어야 하듯이, 한 인물을 통해 역사 속에 존재했던 다양한 가능성을 드러내고자 한다면 결국 인물의 삶은 어느 정도 일관적으로 묘사되어야 한다. 『북으로 간 언어학자』가 결과론적 역사 서술에 맞서 수많은 가능성의 조각들을 발굴해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래서일 것이다. ‘열린’ 역사를 그려내기 위해 무언가는 ‘닫혀야’ 한다.  &nbsp;   이 역설을 어떻게 돌파하거나 극복할 수 있을지, 하다못해 우회라도 할 수 있을지, 아직까지는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필이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고, 당장 써야 하는 글 역시 넓은 의미의 인물사기 때문에 더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었다. 아마 나 역시 내가 다룰 인물의 삶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글을 쓸 것이고, 앞으로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비단 ‘남의 이야기’를 읽거나 쓸 때뿐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지어낼 때도 그것이 최대한 완전하기를 바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삶을 일관하는 ‘무언가’를 상정하지 않고 한 인물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nbsp;  선의가 모여 빚어낸 감동적인 이야기  &nbsp;   구태여 이런 어렵고 답답한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이, 『북으로 간 언어학자』는 그 자체로 무척이나 재밌고 또 감동적인 이야기다. 단언컨대, 학술서와 교양서를 막론하고 현재 한국어로 쓰였거나 번역된 역사서 중에서 『북으로 간 언어학자』 이상으로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책만큼 재밌게 읽었던 인물사는 스티븐 그린블랫의 셰익스피어 평전 『세계를 향한 의지』 정도밖에 없었던 것 같다.   &nbsp;   특히 남쪽에 남은 김수경의 가족들 이야기는 눈물 없인 읽기 어렵다. 김수경이 도쿄제대에서 유학할 때 만난 아내 이남재는 해방 후 남편을 따라 얼떨결에 38선을 넘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정치강습을 위해 점령 지역으로 파견된 남편을 기다리다 아이들과 시어머니를 이끌고 남으로 내려왔고, 그렇게 북으로 다시 올라온 남편과 생이별했다. 이후 이남재는 홀로 네 아이를 기르고 시어머니를 모시며 부산에 자리를 잡았고, 맏딸 김혜자가 졸업할 무렵 남편의 호적을 정리했으며, 나중에는 둘째 아들을 제외한 온 가족이 캐나다 토론토로 이민을 갔다. 이남재가 김수경과 직접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건 1986년에 이르러서였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이 일찌감치 재혼했단 소식이었다.   &nbsp;   물론 김수경의 재혼은 온 가족이 남으로 내려간 상황에서 간첩이란 의심을 피하기 위해 내린,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남편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만으로 살아왔던 이남재에게 남편의 재혼은 견디기 어려운 슬픔이었다. 김수경이 1988년 둘째 딸 김혜영과 재회하고, 1996년 첫째 아들 김태정이 평양을 찾았음에도 정작 아내 이남재와의 상봉은 1998년에야 이뤄진 것 역시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nbsp;   아닌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이남재에게 재회를 요구하는 김수경의 모습은 어딘가 이기적이고, 철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장남 김태정이 평양에 살던 시절 거주했던 “건국의 집4호”를 재현한 평면도에도 “아버지가 부엌 선반을 만든 것이 부엌일의 전부”라 쓰여 있다(p.415). 그는 가족과 함께 살 때나 떨어져 살 때나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서투른, 전형적인 ‘학자형’ 인물이었던 것 같다. 반면 그것이 선천적인 성격이든, 타지에서 홀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을 기르며 후천적으로 기른 성격이든 이남재는 훨씬 강인하고 주체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내가 책을 읽다 끝내 울게 된 대목도 부산에서 교사로 일하던 1971년 설에 일직을 하는 이남재의 사진이 실린 페이지였다(p.425.). 사진 속 그는 당당하고 자신만만해보이면서도, 어딘가 회한에 잠긴 모습이었다.   &nbsp;   토론토로 건너간 이남재 가족은 이타가키가 『북으로 간 언어학자』를 쓰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2010년 3월 이타가키가 북미에 거주하는 한반도(조선반도) 북부 출신들과 인터뷰를 진행하기 위해 토론토를 찾았을 때, 그를 자동차로 숙소까지 데려다준 사람이 다름 아닌 김수경의 둘째 딸 김혜영이었던 것이다. (그땐 이미 남편의 성인 임(Im)을 쓰고 있어서, 이타가키가 아버지 역시 임 씨 성을 쓰겠거니 하고 넘겨짚기도 했다.) 이후 이타가키는 김혜영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선의로 김수경에 대한 자료를 모아갔고, 결국 이 책을 완성했다.   &nbsp;   그 점에서 몇 페이지에 걸친 “맺음말”의 감사인사는 어쩌면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이다. 보통 “감사의 말”은 책의 가장 재미없고 형식적인 챕터이기 마련이지만, 이타가키는 누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누가 읽어도 그가 정말 고마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끔 상세히 밝혔다. 본인의 말마따나 『북으로 간 언어학자』가 숱한 만남이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p.17.), 애초에 그가 선한 마음을 갖고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작업을 시작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말하자면 이타가키의 선의에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선의가 공명한 셈이다. 뭔 일을 해도 누군가의 숨은 의도부터 의심하게 되는 시대에, 결국 좋은 이야기란 좋은 마음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이처럼 아름답게 보여주기도 어려울 것이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325/86/cover150/k51293829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3258635</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길들임'에 대한 정밀하고 아름다운 보고서 - [파견자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180043</link><pubDate>Fri, 29 Dec 2023 22: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1800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935549&TPaperId=151800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91/29/coveroff/k352935549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935549&TPaperId=151800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파견자들</a><br/>김초엽 지음 / 퍼블리온 / 2023년 10월<br/></td></tr></table><br/>배명훈의 《미래과거시제》와 더불어, 올해 최고의 책 중 하나. 세상을 감각하고, 인지하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까지 그야말로 모든 게 다른 두 지성체가 상대방을 어떻게 '길들이는지'에 대한 정밀하고 아름다운, 때로는 잔혹한 보고서. 알라딘 독자평이나 네이버 블로그를 보니 작가가 이전까지의 관심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이 적지 않은데, 난 오히려 뚜렷한 '도약'을 느꼈다. 특히 '길들임'의 방향이 일방향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 얘기하면 스포가 될 테니 여기까지만.)<br/><br/>훌륭한 소설책인 동시에, 훌륭한 교양 철학서다. 내가 선생이라면 학부 교양수업 커리큘럼에 꼭 집어넣었을 것. 역시 김초엽은 성실한 연구자이자 훌륭한 대학원생의 마인드셋이 장착된 사람. 요즘같은 시대에 매우 귀한 자세다. 나는 그의 첫 에세이 《책과 우연들》을 대학원생 혹은 연구자 지망생을 위한 친절한 안내서로 읽었는데, (절대 망치를 들었다고 죄다 못으로 보이는 착시가 아니다!) 조만간 그 책의 서평을 쓰며 《파견자들》이야기도 조금 곁들여볼 생각.]]></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91/29/cover150/k352935549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5912999</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역사가의 연구노트가 만들어낸 ‘문예공화국’: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5166692</link><pubDate>Mon, 25 Dec 2023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51666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833055&TPaperId=151666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37/35/coveroff/k4828330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82833055&TPaperId=151666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a><br/>장지연 지음, 한국역사연구회 기획 / 푸른역사 / 2023년 06월<br/></td></tr></table><br/>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는 올해 그나마 잘한 일이 있다면, 사료를 퍽 열심히 읽었다는 것이다. 1890년대 《독립신문》부터 1920년대 《개벽》, 1950년대 《사상계》와 1960년대 제6대 국회회의록에 이르기까지 약 70여 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사료를 찾고, 읽고, 정리했다. 좋아하는 선생님께선 역사가는 언제든 “지금 무슨 사료를 읽고 있나요?”란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적어도 지금 뭘 읽고 있고 앞으로 뭘 읽을 거란 얘기는 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올해 나를 가장 괴롭게 했던, 혹시 나는 사료를 읽는 게 무의미하다 생각하는 게 아닌가, 사료보다는 재밌는 학술서를 더 읽고 싶어 하는 게 아닌가라는 질문에도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nbsp;   재밌었던 점은 189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길다면 긴 시대를 오가며 사료를 읽어가다 보니 비단 내용만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더라는 것이다. 한자가 조금 섞였을지언정 한글이 주가 된 한국어 사료만 읽었는데도 결이 다 달랐다. 가령 《독립신문》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리듬감이다. 종결어미 “~라”의 빈번한 사용부터 해서 마치 판소리계 소설처럼 누구라도 소리 내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리듬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오죽하면 도서관에서 《독립신문》 〈논셜〉을 조용히 몇 번 읊조렸을 정도다. 이광수의 『무정』이 나오기 20년도 더 전이니 구어체 한국어가 아직 자리를 잡지 않았기 때문이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독립신문》이 여러 사람에게 널리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 ‘정치 팜플렛’의 성격이 강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리듬감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nbsp;   반면 1920년대 《개벽》으로 넘어오면, 간간이 종결어미 “~라”가 쓰이긴 해도 리듬감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진다. 대신 일본식 표현이 눈에 띄게 늘어난다. 단순히 “~하지 않을 수 없다”처럼 오늘날에도 찾아볼 수 있는 번역투 이야기가 아니다. “社會의 圈을 脫할 수 업는”과 같이 일본에서 가나와 한자를 섞어 쓰는 것과 유사한 표현이 대부분이란 이야기다. 덕분에 사료를 정리하며 꽤나 애를 먹었다. 가령 저 위 표현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사회의 권을 탈할 수 없는”인가, 아니면 “사회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는”인가? “進하야”는 “진하야”인가, “나아가”인가? “及하는”은 “급하는”으로 읽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르는”이나 “미치는”으로 읽어야 하는가? 만약 후자라면, 현대 한국어에 일본어와 비슷한 ‘훈독’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한문 혼용이라 해서 지금의 한국어에 한자만 갖다 붙인 게 아니다.  &nbsp;   그러던 게 1950년대 《사상계》에 이르러서는 일본식 ‘훈독’이 거의 사라진다. 하지만 글을 읽기는 훨씬 어렵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걸 다 한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사상계가 초기부터 최현배의 글을 실으며 한글전용운동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이러한 ‘한자 사랑’은 퍽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사상계》에서 한자의 비중이 급격히 줄어드는 건, 체감 상 1957년 정도다. 아마 요즘 청소년에게 《독립신문》을 읽히면 “와 쌤, 라임 오지네요!”하면서 신나서 따라 읽겠지만 《사상계》는 손도 대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10대에게 더 ‘가까운’ 과거는 1890년대 《독립신문》인가, 아니면 1950년대 《사상계》인가? 선뜻 답하기 어려워진다.   &nbsp;   서론이 길었다. 망설임 없이 “올해의 교양서”로 꼽고 싶은 장지연의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이처럼 한국사를 이루는 언어의 다양한 ‘결’을 살핀다. 한국사의 ‘언어들’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은 지극히 이분법적이며, 또한 단절적이다. 횡으로는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로 그 이전은 한문, 그 이후는 한글로 나뉜다. 종으로는 양반/남성/엘리트가 애용한 한문과, 백성/여성/민중이 애용한 한글로 나뉜다. 하지만 한문과 한글은 과연 ‘단수’일까? 앞서 살펴보았듯 《독립신문》의 한글과 《개벽》의 한글, 《사상계》의 한글은 전부 다르다. 한문도 마찬가지다. 범어(산스크리트어)가 ‘보편언어’였던 고려시대의 한문과, 유교 경전이 정치는 물론 개인의 내면까지 수양하는 ‘표준’으로 올라선 조선시대의 한문은 명백히 다르다. 장지연이 보고자 하는 것은 복수의 한글‘들’과 한문‘들’, 그리고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nbsp;   6월 말에 나온 책인 만큼 그 내용을 다룬 서평은 적지 않다. 나 역시 《한겨레21》에 짧게나마 서평을 실었고, 무엇보다 지은이 장지연이 《대학지성 In&amp;Out》에 책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내용에 대한 소개는 과감히 생략하겠지만, 딱 하나 다루고픈 이야기가 있다. 지금껏 대부분의 서평에서 주목하지 않은, 심지어 지은이 자신도 넘어간 ‘도구’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문자는 이를 쓰는 도구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p.120.) 가령 윤치호가 구태여 한글이 아닌 영어로 일기를 쓰겠다고 ‘선언’까지 한 이유는 필묵을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영어는 펜에, 한문과 한자는 붓에 적합한 언어였던 셈이다. 물론 갈대 펜을 여러 번 덧칠해가며 붓으로 쓴 것과 거의 동일한 글씨체를 구현해낸 8세기 돈황의 한인(漢人), 멋들어진 로마자 서예를 하는 베트남인을 통해 알 수 있듯 문자와 도구의 관계 역시 일방적이지 않다.   &nbsp;   서체와 활자, 도구에 대한 지은이의 관심은 한국사의 ‘뜨거운 감자’인 금속활자로까지 뻗어나간다. 그간 금속활자를 둘러싼 논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구텐베르크보다 78년 앞서 금속활자로 책을 찍어낸 ‘선진성’에 대한 찬탄과, 그런 금속활자를 갖고도 조선말까지 인쇄혁명은커녕 서울에 변변한 서점 하나 없었던 ‘낙후성’에 대한 멸시가 그것이다. 지은이는 이 두 입장 모두 근대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하며,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간 질문을 던질 때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12세기 고려의 무신집정 최우는 왜 어떤 책은 금속활자로, 어떤 책은 목판 번각으로 찍어냈는가? 1403년 조선 조정은 하루에 서너 장밖에 찍어내지 못하는 지지부진함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금속활자 인쇄를 선택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었느니, 그것이 정작 별다른 쓸모가 없었느니 하는 무의미한 논쟁에서 벗어나 활자에 담긴 복합적인 ‘맥락’에 주목해야 한다. 지은이가 말하고 싶었던 바는 이러할 것이다.   &nbsp;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비단 그 내용이나 문제의식뿐 아니라, 소비와 유통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책이다. 지난 6월 말 책이 나온 이후, 근 3개월 가까이 책에 대한 감상이 꾸준히 올라왔다. 평범한 ‘독서 애호가’에서 기자, 전문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퍽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령 간단한 한줄평을 남기든 내용을 요약하든 자신의 공부 경험을 덧대든 다양하게 책을 읽어간 경험을 공유했다. 주요 언론사에서 큼지막하게 소개하지 않은(이건 전적으로 언론사 잘못이다!) 책으로는 꽤 이례적인 일이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이 책을 매개로 (그것이 있었는지도 분명치 않지만) 거의 와해된 줄 알았던 ‘서평공동체’ 혹은 ‘문예공화국’이 잠시나마 복구되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nbsp;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가 이토록 꾸준하고도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일차적으로 지은이 장지연이 탁월한 역사 글쟁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탁월하다는 건 단순히 글을 잘 쓴다는 의미가 아니다. 장지연은 아마도 소설을 제외한다면 역사를 소재 삼아 쓸 수 있는 모든 글을 써본 거의 유일한 역사가일 것이다. 논문과 학술서, 해제는 물론 교양서(『경복궁, 시대를 세우다』, 너머북스, 2018.), 청소년을 위한 역사서(『마주 보는 한국사 교실 5: 새 나라 조선을 세우다』, 웅진주니어, 2010과 『질문하는 한국사 3: 조선』, 나무를심는사람들, 2020.), 일간지 칼럼(《경향신문》 「역사와 현실」), 심지어는 그림책(『세종로 1번지 경복궁 역사 여행』, 너머학교, 2021.)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독자를 겨냥한 글을 썼다. 그는 글의 성격과 목적, 독자에 따라 스타일을 달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역사가다.   &nbsp;   하지만 단순히 장지연이 탁월한 역사 글쟁이라는 이유만으로는 이 책의 인기를 설명할 수 없다. 추측컨대,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읽힐 수 있었던 건, 이 책이 역사가의 연구노트를 엿보는 기분을 선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연구자가 그렇겠지만, 특히 역사가에게 연구노트란 무척이나 중요하다. 역사학이란 기본적으로 사료를 통해 말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사료를 모으고, 읽고, 정리하고, 그때그때 감상과 생각을 메모 형식으로 남길 수밖에 없다. 은퇴를 앞둔 존경하는 교수님께서는 당신은 아직도 연구노트를 쓴다며, 박사과정생이라면 연구노트를 1000페이지는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nbsp;   문제는 연구노트의 상당 부분은 논문에 담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말한 교수님께선 1000페이지의 연구노트 중 90%는 버릴 수밖에 없다고 일갈하셨더랬다. 나만 해도 올해 노트 두 권 분량의 연구노트를 만들었지만(그렇다, 난 아직도 영인본으로 사료를 읽고 일일이 손으로 메모를 해가며 연구노트를 만든다), 그 중 대부분은 레포트에 넣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버려진’ 연구노트는 정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일단 연구노트는 논문보다 재밌다. 왜, 쭈쭈바도 꼬다리가 더 맛있지 않은가. 논문에 담지 않았다는, 혹은 못했다는 건 학술장에서 인정받기엔 (아직은) 어려운 얘기라는 의미기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딱딱한’ 학술장이 감히 담아낼 수 없는 발랄하고 참신한 얘기라는 의미기도 하니 말이다.    &nbsp;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말하자면 역사가 장지연이 논문에는 싣지 않거나 못한 연구노트처럼 읽힌다. 연구노트라 해서 산만하다거나, 허무맹랑하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탁월한 역사 글쟁이답게, 장지연은 유려한 문장과 매끈한 서사로 연구노트를 한 편의 이야기로 묶어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이 책이 역사가가 사료를 읽고, 분석하고, 고민하며 논리와 얼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독자에게 생생히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역사 교양서는 주어진 사실이나 서사를 독자에게 쉽게 전달하는 데 주력한다. 독자 역시 역사 교양서를 통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거나, 복잡한 맥락을 보다 잘 이해하는 것 정도를 독서의 목표로 삼고 말이다.  &nbsp;   반면 이 책은 (장지연의 선별을 거치긴 했지만) 사료를 있는 그대로 제시하고, 지은이가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생각을 펼쳐가는 모습을 독자에게 거의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장지연이 사료를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요새 역사교육의 화두이기도 한 “역사하기(Doing History)”에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하게 된다. 역사가의 연구노트를 엿보는 기분을 선사했다는 건 이런 의미에서다. 이 책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독자들로부터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며 일종의 ‘문예공화국’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고 확신한다.   &nbsp;   흔히 요즘 독자는 지적으로 게으르기에, 지은이가 하나부터 열까지 ‘떠먹여주지’ 않으면 책이 팔릴 수 없다고들 한다. 내가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의 꾸준한 인기를 지켜보며 내린 결론은 정 반대다. 독자는 주어진 사실과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이 직접 사료를 읽고 판단하고 싶어 하며,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다만 지금까지는 이를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서가 없었을 뿐이다. 장지연은 자신의 연구노트를 선뜻 독자에게 공개했을 뿐 아니라, 탁월한 역사 글쟁이답게 이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끔 풀어냈다. 그랬기에 다양한 독자가 책을 읽으며 사료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감도 잡아보고, 감상과 서평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도 만들어볼 수 있었다.   &nbsp;   그런 만큼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는 단순히 좋은 교양서의 모범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나아가 대학에서의 역사교육은 어떠해야 하는지, 학생이나 독자에게 단순히 주어진 사실과 서사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이들을 “역사하기”에 참여케 하려면 어떤 방법과 전략을 택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특히나 “공공역사”가 화두인, 정확히 말해 역사에 구태여 “공공”을 붙이지 않고는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책은 역사가 기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설민석화’하지 않으면서도) 대중과 접촉면을 넓혀갈 수 있는 탁월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이 책을 매개 삼아, 그간 애매하게 퉁쳐왔던 역사와 대중의 ‘소통’에 대한 보다 많은 논의가 이뤄지길 바라는 이유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937/35/cover150/k4828330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9373557</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유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어쩌다 유교걸》 - [어쩌다 유교걸 - 어느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4999962</link><pubDate>Sun, 22 Oct 2023 20: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499996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935247&TPaperId=149999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79/55/coveroff/k99293524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935247&TPaperId=1499996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어쩌다 유교걸 - 어느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a><br/>김고은 지음 / 오월의봄 / 2023년 10월<br/></td></tr></table><br/>유교는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어쩌다 유교걸》<br/><br/>이미 여러 번 얘기했지만, 나는 유교맨이다. 리추얼을 중히 여기고 인간의 선의를 믿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내가 정말로 공맹의 가르침을 인생의 신념이나 철칙으로 받아들인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유교는 내게 일종의 생존술, 그러니까 내가 이만큼 하면 남도 최소한 날 막 대하지는 않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된 자구책에 가깝다. 물론 그 기대는 종종, 아니 자주 배반당하지만 별다른 수가 없어 그냥 밀고 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한문을 모른다. 유교 경전을 '각 잡고' 읽어본 적도 없다. 유교를 하나도 모르면서 맹자로부터 민주주의와 양심의 기원을 찾았던 김대중과 마찬가지로, 내게 유교란 레토릭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br/><br/>나이롱 유교맨인 나와 달리, 김고은은 정말로 진지한 유교걸이다. 꽤 오랜 시간 유교 경전을 공부했고, 지금도 학생들에게 사자소학을 가르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진지하게 유교의 가르침을 믿는 동시에, 꽤나 급진적인 페미니스트이자 비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또래 여성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죽어가는 현실에 분개하고, 돼지 새벽이와 잔디의 생추어리 활동에 꼬박꼬박 참여한다.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은 오늘 같기만을 바라는, 일제시대 태어났다면 소학교 선생으로 조용히 살다 도둑같이 해방을 맞이했을 나 같은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세간의 상식에 비추어 보면 '고루한' 유교와 어울리는 사람은 김고은보다는 내 쪽이겠지만, 정작 유교에 훨씬 진심인건 내가 아닌 김고은이다.<br/><br/>김고은의 첫 단독 저서(그는 이미 여러 책에 공저자로 참여했고, 《함께 살 수 있을까》라는 훌륭한 인터뷰집을 내기도 했다)인 《어쩌다 유교걸》은 김고은이 페미니스트-비건이자 유교걸이라는, 얼핏 모순되는 두 정체성을 끌어안기까지의 좌충우돌을 솔직하게 보여준다. 유교맨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그러니까 피식자에 가까웠던 나와 달리 김고은은 구태여 유교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총명하고, 모든 일을 똑 부러지게 해냈으며, 스스로의 선택으로 대안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을 자퇴했다. 아마 그가 조금만 덜 정의롭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었다면 지금쯤 중학생 시절 꿈인 변호사가 되어 억대연봉을 받고 있었을지도 모른다.<br/><br/>유교는 그런 '알파걸' 김고은에게 (아마도) 처음으로 당혹감과 난감함을 알려준 존재였다. 그는 제도권 바깥의 인문학 공동체인 문탁네트워크와 길드다에서 처음으로 동양 고전 공부에 도전하지만, 꽤 오랜 시간 '열등생'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가 유교를 다시 보게 된 청소나 식사처럼, 일상을 꾸리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의 가치를 깨닫게 되면서다. 그때부터 김고은에게 유교란 이해할 수 없는 골동품에서 자신과 주변을 새롭게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텍스트로 거듭나게 된다. <br/><br/>김고은이 유교의 가치와 쓸모를 증명하는 방식은 어쩌면 지극히 고전적이다. 그는 유교를 둘러싼 후대의 편견과 무지를 걷어내자고, 공자가 《논어》를 처음 썼을 때의 역사적 맥락에 집중하자고 호소한다. "공자께선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 OOO(여기엔 주로 주자학이 들어간다)이 오염시킨 유교를 원래의 '올바른' 모습으로 복원해야 해!!"는 정약용, 오규 소라이, 캉유웨이 등 유교의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사상가들이 즐겨 채택하는 방식이었다. 유교의 역사란 곧 주석의 역사라고까지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김고은은 의식했건 그렇지 않건 선배들의 길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셈이다.<br/><br/>그렇다면 《어쩌다 유교걸》은 아주 오래 전부터 하나의 전통으로 이어져왔고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진짜' 유교란 이런 것이라 주장하는 주석서일 뿐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김고은이 유교에 단 주석이 퍽 의미심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유교의 충(忠)으로부터 자기 배려를, 서(恕)로부터 관계성을, 예(禮)로부터 리추얼을 이끌어낸다. 가부장적, 억압적, 봉건적 등 온갖 나쁜 수식어는 다 붙는 우교를 가장 급진적으로 전유코자 하는 것이다.<br/><br/>이는 단순히 유교를 구원하려는 시도에 그치지 않는다. 김고은이 발딛고 선 또 하나의 지반인 페미니즘을, 거꾸로 유교를 통해 구원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기실 김고은은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온 사람이다. 비단 또래 여성이나 비인간동물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페미니즘 진영에서 썩 좋게 평가받지 못하는 기성세대와도 대화를 거듭하며 이해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고민과 노력을 인터뷰집 《함께 살 수 있을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들 너무나도 손쉽게 손절과 혐오를 말하고, 어느 진영에 서있든 내가 낸 돈만큼 무언가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여기는 소비자주의가 횡행하는 시대에, 김고은은 유교를 통해 관계와 연대의 가치를 복원하고자 한다.<br/><br/>물론 그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끊임없는 고민과 갈등의 연속에 가깝다. 《어쩌다 유교걸》의 가장 큰 미덕은 그 불협화음을 숨기거나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김고은은 유교와 페미니즘을 함께 가져가는 길이, 서로를 배려하면서도 의례를 통해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럼에도 그는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유교를 통해 가장 '앞선' 가치를 실현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으며, 이를 위한 고군분투를 이 얇은 책에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br/><br/>김고은은 솔직하게 인정한다. 왜 '굳이' 유교여야 하는지는 스스로도 뚜렷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오늘날 우리의 의식세계는 명료한 서양철학을 기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말이다. 누군가는 그가 책에서 인용한《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나 《숲은 생각한다》를 구태여 유교라는 필터를 거쳐 읽어야 하는지, 다시 말해 이미 서양철학에도 있는 이야기를 왜 유교에서 끌어와야 하는지 질문할 수도 있다. <br/><br/>김고은은 이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변명하지 않는다. 유교는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잠들어 있다는, 빤하지만 그다지 설득력은 없는 주장을 끌어오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기는 유교의 '낯설음'이 재밌다고, 이를 통해 자신의 현장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들에 질문을 던지고 균열을 내고 싶다고 말이다. 유교맨을 자부하면서도, 나는 유교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내리지 못했다. (아마 김고은도 이런 거창한 목표를 꿈꾸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유교의 '낯설음'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고 나아가 바꾸고자 하는 그의 도전은 존경과 애정의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유교에 페미니즘과 생태주의라는 새로운 주석을 달고자 하는 김고은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맺을지, 앞으로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보려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79/55/cover150/k99293524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5795593</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민족과 세계 사이,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 『야만의 시간』 - [야만의 시간 -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4937081</link><pubDate>Tue, 26 Sep 2023 16: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49370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834325&TPaperId=149370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90/38/coveroff/k22283432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22834325&TPaperId=149370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야만의 시간 -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a><br/>김종철 지음 / 진실의힘 / 2023년 08월<br/></td></tr></table><br/>민족과 세계 사이,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 『야만의 시간』<br> 최근 한국사 연구의 트렌드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역사학”이다. 국민국가를 당연한, 주어진 것으로 여기는 “방법론적 민족주의”를 벗어나, 네이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흐름이다. 현대사는 아마도 고대사와 더불어 ‘트랜스내셔널한’ 접근이 가장 활발한 시대일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현대란 어떤 나라도 외따로 존재할 수는 없는,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 기업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니 말이다.   &nbsp;   그렇다면 현대사 연구에서 ‘민족’이란 더 이상 유의미한 변수가 아니게 된 걸까? 그렇진 않다. 방법론,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하는 틀로서 의미가 없어졌을 뿐 ‘트랜스내셔널한’ 현대사회에서도 ‘네이션’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이젠 “2민족 2국가”란 얘기도 나오지만)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민국가와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나뉜 “코리아”라면 더더욱. 한국 현대사는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굉장히 ‘글로벌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네이션’과 ‘트랜스내셔널’은 상충하기보다는 오히려 함께 간다고 봐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nbsp;   김종철의 『야만의 시간』 역시 민단계 재일코리안 사회단체인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50년사를 통해 ‘네이션’과 ‘트랜스내셔널’이 복잡하게 얽힌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은이는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혀 무고한 사람들이 숱하게 고통 받고 오늘날까지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아픈 현실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의식을 보다 잘 나타내는 말은, 제목보다는 뒤표지에 적힌 “대한민국 국민은 한통련에 큰 빚을 지고 있다”에 가깝다. 한통련은 한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그로 인해 말 못할 고초를 겪었으나,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nbsp;   한통련은 그 탄생부터 한국 현대 정치사와 밀접히 얽혀있다. 한통련의 기원 중 하나인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부터가 4·19혁명에 큰 자극을 받아 “4월혁명의 이념을 자신들의 이념으로 삼아 그 이념을 실천해가는 조직”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또 다른 기원인 “유지간담회” 역시 5·16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며 “민단의 여당화”를 꾀한 단장 권일에 맞서 김재화와 배동호가 주축이 돼 결성한 민단 내 개혁파였다. 이들은 한국 내 학생운동 세력 및 야당과 연대해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벌이는 등 민단과 한국의 민주화를 나눠서 생각하지 않았다.   &nbsp;   박정희 정권에 대한 찬반과 맞물린 민단 내 대립은 1967년 한국 총선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공화당이 권일을 전국구 의원으로 공천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민당의 유진산은 김재화를 공천하겠다 약속했는데, 유지간담회가 신민당에 보낸 4,000만 엔을 정보부가 총련의 공작 자금으로 몰고 간 것이다. 급기야 1971년 민단 정기대회에서 정보부는 사실상 조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녹음테이프를 근거로 유지간담회 측이 조총련과 함께 한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단장 선거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결국 1972년 7월 7일 민단 중앙은 유지간담회의 거점인 민단 도쿄본부와 한청, 한학동을 “민단 와해를 기도하는 불순분자”로 규정하며 산하단체에서 제외했다.   &nbsp;   갈 곳을 잃은 (구)민단 개혁파는, 역시 박정희 정부에 의해 해외를 떠도는 망명객이 된 김대중을 만나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73년 3월 21일 김대중의 하코네 연설을 계기로 이들은 민단과 한국의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당시 7·4남북공동성명의 여파로  재일코리안 사회에서도 민단과 총련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구)민단 개혁파는 총련과 선을 긋고 “선민주 후통일”을 분명히 해달라는 김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면서까지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한통련의 전신) 일본지부 결성에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이 납치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구)민단 개혁파는 일본 시민사회에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나 자작극이 아닌 박정희 정부에 의해 벌어졌다고 호소하며 김대중 구명운동을 벌였다. 그렇게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의 중심이 됨으로써 일본사회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김대중을 한국 민주화운동의 얼굴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   &nbsp;   김대중과의 만남은, 그러나 한민통에겐 크나큰 시련이기도 했다. 김대중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군사정권은 그가 의장을 맡았던 한민통에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을 찍었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서의 차별에 낙담해 ‘고국’을 찾은 재일코리안 청년들을 간첩으로 몰아갔고, 이들과 별다른 접점도 없던 한민통은 보안사에 의해 총련의 지령을 받고 한국에 간첩을 파견한 반국가단체로 탈바꿈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을 사형시키기 위해 그의 한민통 의장 경력을 국가보안법에 따른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로 둔갑시켰다.   &nbsp;   이는 김대중 개인에게도 큰 불행이었지만, 한민통에게도 그만큼의 비극이었다. 한민통이 반국가단체로 규정됨으로써 한민통에서 활동한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별과 제약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입국도, 투표도 할 수 없는 한통련 의장 손형근, 한국전쟁 당시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출전했음에도 한민통 활동 경력 탓에 보훈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곽동의, 한통련 회원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이어오던 거래처마저 빼앗긴 허경민은 한통련(한민통은 1989년 한통련으로 개편)에 새겨진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nbsp;   이처럼 한통련(한민통)의 50년 역사는 한국의 국가폭력,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한통련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물론 한통련의 목표가 오로지 한국의 민주화였던 것만은 아니다. 『야만의 시간』에서 가장 가슴 벅찬 대목 중 하나인, “보통의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오사카의 재일코리안 고등학생 김창오가 ‘의식화’되는 순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평범한 고등학생답게 멋 내기에만 관심이 있던 그는 도쿄 우에노공원의 판다를 보여준다는 형의 꼬임에 따라간 한청 집회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김종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nbsp;   “제가 아는 조선 사람은 가난한 집에 살면서 육체노동을 하고 술 취해서 집에 오면 부인과 아이들을 때리는 그런 가난하고 야만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 인상밖에 없었는데, 거기 모인 동포들이 당당하게 자기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는 한청에 가입했죠.”(p.209.)  &nbsp;   김창오에게 한청이란 단순히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었다. 그동안 부끄럽게 여기던 조선/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나아가 조선/한국인으로서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지원이라는 대의와 일본사회 내 마이너리티로서 재일코리안의 존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서로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재일조선인(그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3세 역사학자인 정영환이 재일코리안을 의도적으로 ‘민족’과 떨어뜨려 서술하려는 최근의 연구경향과 거리를 두며, 이들에게 조국에 대한 공헌과 외국인으로서 권리 획득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지적한 것은 곱씹을 가치가 있다.   &nbsp;   그렇다고 한통련(한민통)의 50년 역사가 전적으로 ‘민족’이란 틀 안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기실 한통련(한민통)의 “눈부신 성과”는 국제사회의 연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한민통은 윤이상의 소개로 1977년 도쿄에서 열리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 정상회담에 참석한 빌리 브란트를 만났고, 그에게 한국 민주화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듬해 6월 본과 런던에서 열린 한국 민주화에 대한 국제회의는 그 결실이었다.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이 1980년 6월 오슬로에서 열린 간사회에 한민통을 공식 옵서버로 초청한 것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   &nbsp;   한민통이 주최하지는 않았지만, 김대중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자 일본연락회의가 주도한 집회에 일본 시민 1만 7000여 명이 참가해 김대중의 석방을 외치기도 했다. 김대중의 1심 선고가 있던 날 전일본국철노동조합은 일본의 모든 기차역에서 항의의 기적을 울렸으며, 전일본항만노동조합도 일본의 모든 항구에서 한국 선박의 선적과 짐 내리기를 거부했다. 김종철의 말마따나 “이웃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한 나라의 시민이 이처럼 깊이 연대투쟁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p.235.)  &nbsp;   요컨대 한통련(한민통), 나아가 한국 현대사는 전적으로 ‘내셔널하지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트랜스내셔널하지도’ 않다. 같은 민족을 뿌리로 삼는 두 개의 국민국가, 그리고 해외의 여러 디아스포라 공동체에게 민족이란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이었으며, 이를 둘러싼 협력과 경쟁이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앞서 이야기했듯 애초에 한국 현대사의 ‘트랜스내셔널한’ 교류 대부분이 ‘네이션’을 매개로 이뤄진 것이기도 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정말로 ‘다른’ 네이션들이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nbsp;   그런 만큼 한국 현대사를 이해할 때는 민족과 세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진부한 얘기지만) 양자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문제의식과 시선이 필요하다. 지은이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만의 시간』은 내게 그런 한국 현대사 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한 책처럼 읽힌다. 나 같은 얼치기 역사학도의 기를 죽이는, 기자의 취재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촘촘한 서술도 인상적이다. (좋아하는 선생님께선 늘 역사학도가 기자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더랬다.) 재일코리안 연구는 물론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연구할 때도 중요하게 언급될 이 책을, 『역사문제연구』나 『역사학연구』, 『역사비평』 같은 훌륭한 학술지에서 다뤄주길 바라는 건 그래서다.&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190/38/cover150/k2228343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1903884</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대의제, 근대화, 국민주권, 그 너머의 민주주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 -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4858256</link><pubDate>Sat, 26 Aug 2023 2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485825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551763&TPaperId=148582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060/71/coveroff/897155176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551763&TPaperId=1485825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a><br/>이상록 지음 /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 2020년 05월<br/></td></tr></table><br/>대의제, 근대화, 국민주권, 그 너머의 민주주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br/><br/>지금은 아닌 것도 같지만, 어쨌거나 87년 이후 민주주의는 한국 사회에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자 거스를 수 없는 당위로 자리 잡았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간단하다, 교과서를 보면 된다.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만 펼쳐도 1960년 4.19를 거쳐 1980년 5.18에서 좌절했다 1987년 6.29로 '완성되는' 민주주의의 승리서사를 찾을 수 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간단명료한 도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역사가 경전(canon)화 되었다는 증거다. <br/><br/>흥미로운 점은, 교과서에서 민주화(운동)의 단초를 언제나 선거의 문제로 환원한다는 사실이다. 4.19는 '역사적인' 3.15 부정선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났다. 6.29의 핵심은 대통령 직선제고 말이다. 교과서의 도식에 따르면 한국 민주화운동사는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제대로 된 선거 하나를 위해 고군분투해온 납작한 역사로 쪼그라들고 만다. <br/><br/>물론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단순히 선거나 대의제만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촛불시위마다 등장하는 구호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에서 알 수 있듯 민주주의는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표가 국민의 뜻을 무시할 때 이에 저항하는 명분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 때의 민주주의란 국민의 "총의" 혹은 "주권"이다. 그런가 하면 민주주의는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만)이 이뤄낸 자랑스런 성과이자, 나머지 아시아(여기엔 때때로 일본까지 포함된다!)보다 '앞서' 있다는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주기도 한다. 요컨대, 한국의 민주주의란 기능적으로는 대의제요, 실질적으로는 국민주권이며, 수사적으로는 선진 혹은 근대인 셈이다.<br/><br/>이상록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이하 《자유민주주의》)는 이처럼 대의제, 국민주권, 근대(화)로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기원을 찾아나선다.《사상계》자체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는 이를 매개로 삼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비평"처럼 느껴지는 이 책은, 지은이 이상록의 조금은 재밌는 이력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고전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퍽 독특한 지성사 연구서로 거듭났다. <br/><br/>우선 이상록은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대중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친 마지막 학술적 논쟁인 2000년대 중반 "대중독재 논쟁"의 메인 플레이어였다. 나는 갓 박사를 수료한 30대 초반의 연구자였던 그가 논쟁의 다른 쪽 당사자인 조희연을 조목조목 매섭게 몰아붙인 글을 잊지 못한다. (정작 나중에 만나본 이상록은, 적어도 내가 이야기를 나눈 역사가 중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인품의 소유자여서 적잖이 놀랐지만.) 또한 이상록은 《일상사로 보는 한국근현대사》(책과함께, 2006)나 《한국현대 생활문화사》(창비, 2016)에 공저자로 참여한, 한국사에 일상사와 생활문화사의 시각을 선구적으로 도입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br/><br/>이러한 두 개성이 맞물려 《자유민주주의》의 텍스트 비평은 도발적이면서도 깊이가 있으며, 지성사 연구가 자칫 빠지기 쉬운 공허한 관념론에 머물지 않고 사상과 현실의 낙차를 민감하게 의식한다. 고전적이면서도 독특한 지성사란 이런 의미다. <br/><br/>이 책에 대한 호의 가득한 서평을 쓴 한봉석의 말마따나 이상록은 얼핏 "백과전서"라 느껴질 정도로 풍부한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결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자 노력한다. 그럼에도 《사상계》지식인의 자유민주주의론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가 가능하다. 첫째, "대의제"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했듯(최근에는 김민철,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창비, 2023.) 대의제란 명백히 귀족정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그렇기에 김민철은 현대 자유민주주의란 기실 "선거자유주의"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한다), 《사상계》지식인들은 대의제를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이해했다. 한국 국민의 낮은 "민도"에 대한 이들의 한탄이나 4.19를 학생과 지식인이 주도한 시민혁명으로 포장하려는 노력 역시 인민에겐 대표가 필요하다는 신념, 즉 대의제에 대한 믿음의 소산이었다.<br/><br/>둘째, "국민주권"이다. 이상록이 책에서 여러 번 언급한 정치사상사 연구자 문지영이 《지배와 저항》(후마니타스, 2011.)에서 이야기했듯 장준하를 비롯한 《사상계》지식인들은 민주주의를 누리는 주체를 "국민"이나 "민족"처럼 하나의 집단으로 이해했다. 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이 들어설 자리는, 적어도 《사상계》 지식인의 민주주의론에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무척 좁았다. 물론 "국민주권"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론은 6.3항쟁에서처럼 박정희 정부가 국민의 뜻을 무시했을 경우 강력한 투쟁의 명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박정희 정부가 "국민주권"을 내세워 유신을 단행한 데서 알 수 있듯, 이는 다분히 양가적인 것이었다. (유신체제에 대한 분석이야말로 "대중독재" 연구자로서 이상록의 진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br/><br/>셋째, "근대화"다. 봉건과 정체, 낙후로부터의 탈피는 (그것이 정당했는가와는 별개로) 당시의 "시대적 과제"였던 만큼, 《사상계》 지식인들은 근대(화)라는 문제를 민감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가 민주화에 선행한다고 여기든, 산업화와 민주화를 병행할 수 있다고 여기든 이들은 결코 산업이나 발전, 근대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를 상상하지 못했다. 《사상계》지식인 사이에서도 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여기는 입장과 목적으로 여기는 입장이 공존했지만, 결국 근대라는 최종심급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br/><br/>"《사상계》 지식인"이면서도 이러한 흐름에서 빗겨난 인물이 있다. 바로 함석헌이다. 역시《사상계》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고 이 책에 대한 애정어린 서평을 쓴 김건우가 예리하게 지적했듯, 함석헌에 대한 이상록의 관심은 어딘가 독특한 구석이 있다. 책의 저본이 된 박사논문에서는 따로 하나의 장을 마련했고 이 책에서는 본문 곳곳에 흩뿌렸다는 차이는 있지만, 김건우의 말마따나 "무리를 무릅쓰고서라도 함석헌의 비중을 도드라지게 서술"했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김건우, &lt;《사상계》를 연구하려는 이들이 통과해야 할 하나의 문&gt;, 《역사비평》132, 2020, p.402.) <br/><br/>아닌 게 아니라 함석헌에 대한 이상록의 시선은 굉장히 따뜻하면도, 동시에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냉정하다. 함석헌은 장준하를 비롯한 다른 《사상계》 지식인들과 달리 개발/발전/근대로 수렴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한 사상가지만, 그의 "민중"이란 실제 역사에 기반하지 않은 다분히 종교적인 개념이었다. 그런 만큼 현실의 민중이 함석헌의 기대와 조금이라도 어긋날 경우 자칫 (다른 《사상계》 지식인과 마찬가지로) "민도"나 탓하며 이들에 대한 실망과 회의로 돌아설  위험이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유신체제보다 더 강력한 "대중독재"의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었다.<br/><br/>함석헌이라는 여러 모로 '튀는' 인물이 가진 빛과 그림자를 이상록은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가 글의 통일성을 깨뜨리면서까지 함석헌을 조명하는 이유는, 추측컨대 《사상계》바깥의, "자유"가 붙지 않는 "민주주의"로 나아갈 연결고리를 마련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김건우는 "개인적으로 이에 대해 저자와 대화를 나누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이야기를 들었을지 궁금하다.) <br/><br/>한봉석과 김건우 모두 이아기했듯 《자유민주주의》는 2011년에 나온 이상록의 박사논문을 저본으로 한다. 박사논문을 내고 이를 토대로 책을 내기까지 10여 년의 시간 동안, 이상록은 한국 현대사에서 대의제, 국민주권, 근대화로 수렴하지 않는 또다른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끝없이 모색해왔다. 선출된 대표 없이 인민이 스스로를 통치하고, 국민이나 민족이라는 집합적 주체의 이름을 빌리지 않으며, 근대의 개발주의와 발전주의를 문제시하는 민주주의란, 곧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에 다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이상록의 "일상사 연구자"로서의 면목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인, 4.19 직후 인민이 학생과 지식인의 '지도'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간 과정은 그 점에서 퍽 의미심장하다. 이상록이 보여주고 싶었던 건 어쩌면 이 작은 저항과 전유의 조각들이 아니었을까.<br/><br/>이상록은 시종일관 민주주의란 그 자체로 선이 아니며,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자행된 부조리와 폭력 역시 직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는 민주주의를 대의제, 국민주권, 근대화라는 속박에서 해방시킴으로써 그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젖히려는 시도로 읽힌다. 옛날 영화 제목을 빌리자면 "민주주의 일병 구하기"랄까. 그리고 그는 이미 또 한 권의 두툼한 단독 저서를 내도 될 정도로 훌륭한 연구를 숱하게 쌓아놓았다. 한국 현대 지성사 연구자에게는 든든한 밑천이자, 두려운 산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060/71/cover150/897155176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0607123</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이야기'를 거부한 지성사, 고집스레 그려낸 지(知)의 지도 -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의 이론 체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4846822</link><pubDate>Tue, 22 Aug 2023 10: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484682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4470&TPaperId=1484682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63/82/coveroff/897696447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6964470&TPaperId=1484682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의 이론 체계</a><br/>홍정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021년 09월<br/></td></tr></table><br/>'이야기'를 거부한 지성사, 고집스레 그려낸 지(知)의 지도: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br/><br/>마지막 페이지를 덮은 뒤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책이 있다. 홍정완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의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이하 《기원》)이 그런 책이다. 좋든 싫든 나는 앞으로 한국 현대 지성사를 다룬 글을 읽을 때마다 《기원》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지성사 비스무리한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지성사 못 쓴다는 이야기다. <br/><br/>의미심장한 점은, "나 빼곤 다 한국 현대 지성사 하지 마!!"라고 선언하는 것만 같은 이 책이, 정작 우리가 일반적으로 "지성사" 하면 떠올리는 책과는 자못 다른 서술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분명 욕 먹을 이야기란걸 알지만 나는 역사학(적 글쓰기)이 추리소설, 사회과학이 SF라면 정치사상사나 지성사는 평론 혹은 비평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진짜' 지성사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제쳐두고, 지성사를 표방한 글들은 일반적으로 사료를 하나의 완결된 책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지성사나 사상사 연구자는 사료를 꿰뚫는 나름의 이야기가 있으리라 믿고, 여기에 적극적으로 의미와 맥락을 부여한다. 지성/사상사의 글쓰기가 평론과 비슷한 이유다.<br/><br/>많이 읽진 못했지만, 한국 현대 지성사를 다룬 책들도 대체로 비슷하다. 김봉국의 《냉전과 투쟁》(선인, 2018), 이하나의 《대한민국, 재건의 시대(1948~1968)》(푸른역사, 2013), 이상록의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사상계》(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원, 2020) 등, 여러 연구자들은 방대한 사료를 읽고, 이를 분석/해체/재구성함으로써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하나의 책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난 일단 영화를 사료로 삼은 지성사라 생각한다.)<br/><br/>반면 홍정완은 자신이 찾아내고 정리한 방대한 사료에 '이야기'를 입히기를 집요하리만치 거부한다. 난 그가 이야기를 찾지 '못한' 게 아니라, 일부러 찾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원》 역시 책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굉장히 뚜렷하다. 굳이 정리하자면, 아마도 "로스토우가 전부가 아냐 이것들아!"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홍정완은 자신의 주제의식에 따라 사료를 재배열하길 거부한다. 대신 그는 굉장히 치밀하고 집요하게, 1950~60년대 생산된 교과서와 논문, 보고서, 각 대학이 발행한 신문에 이르는 방대한 텍스트의 계보와 관계를 추적한다. 그 결과 《기원》은 하나의 그럴싸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거대한 전함의 설계도나 한 도시를 오롯이 담아낸 지도처럼 느껴진다.<br/><br/>그런 만큼《기원》이 읽기 어려운 책이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3부와 4부를 제외하면 요즘 유행하는 '서사'가 뚜렷하지 않고, 그보다는 묵묵히 지식의 지도를 그려가는 책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밋밋함이야말로 《기원》을 다른 지성사 연구서와 차별화하는 지점이자, 지성사란 무엇인가 질문하게 만드는 촉매다. 솔직히 말해 "척박한 진실"보단 "풍요로운 오류"를, "재미없는 맞는 말"보단 "재미있는 헛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기원》처럼 정밀한 설계도 혹은 지도가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홍정완의 (감히 말하자면) '무시무시한' 노력 덕에 우리는 1950~60년대 한국 지성계를 아우르는 지도를 비로소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br/><br/>그 점에서 이우창이 《기원》의 서평을 쓰며 "하지만 나는 바로 이 시점에서 강조하고 싶다. 어떤 학술장의 수준은, 어느 사회의 지적 자긍심이라는 것은 정확히 이런 종류의 책들, 독자에게 문장마다 집중하고 생각할 것을 뻔뻔스럽게 요구하고, 인내의 시간을 통과한 사람의 손에 지적인 대가를 무심히 쥐여주는 책들을 얼마나 내놓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인문학술장의 질적 쇠퇴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기원』을 읽고 조금은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찬사를 보낸 건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우창, &lt;길을 낸다는 것&gt;, 《문학/사상 5: 로컬의 방법》, 산지니, 2022년 5월.)<br/><br/>문제는 (나를 비롯해) 홍정완 뒤에 한국 현대 지성사를 쓸, 혹은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음, 난 《기원》을 읽고 정말이지 질려버려셔, 한국 현대 지성사는 건드리고 싶지가 않다. 홍정완 선생님께서 다 해주실 거야... 그럼 난 뭐하지. 당장 이번 주까지 논문계획서 내야 하는데... 꼭 이 책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난 어젯밤 교수님들로부터 이런 형편없는 글을 논문이랍시고 가져왔냐며 질책을 받는 꿈을 꾸었다. 《기원》은 그런 책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63/82/cover150/897696447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9638238</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역사학도여, 이제는 알고 구르자!:《역사논문 작성법》 - [역사논문 작성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4678865</link><pubDate>Wed, 21 Jun 2023 09: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467886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833635&TPaperId=1467886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91/73/coveroff/k27283363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72833635&TPaperId=1467886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역사논문 작성법</a><br/>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3년 06월<br/></td></tr></table><br/>종종 역사학이야말로 '독학자'가 나오기 가장 어려운 분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른바 '방법론'이 없기 때문이다. 철학이나 사회학, 국문학은 모델과 이론, 계보가 있다. 충실히 따라가면 학계 바깥의 연구자라도 탁월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반면 역사학은 속된 말로 '몸으로 구르는' 학문이다. 역사학의 전문성이란 암묵지적 성격을 갖는다. 어디서 사료를 찾아야 하는지, 사료를 어떻게 엮어서 어떻게 내러티브를 짜야 하는지 등 일체의 교육이 도제식으로 이뤄진다. 교수와 선배에게 엄청나게 혼나면서 배운다는 이야기다. 역사학이 유독 '강단'의 힘이 강한, 나쁘게 말해 고루하고 답답한 학문이란 이야기를 듣는 것도 그래서다.<br/><br/>역사학 트레이닝의 이런 암묵지적 성격은 양가적 의미를 갖는다. 누구나 열심히 '구르면' 괜찮은 역사학자가 될 수 있다. 역사학은 천재가 나오기 어려운 학문이라지 않은가. 하지만 어떻게 굴러야 할 지 모른다면, 혹은 옆에서 굴리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 것도 못하고 손가락만 빨다 자의 반 타의 반 대학원을 그만둘 수도 있다. 특히 사학과 학부수업에 강독, 연습류의 수업이 멸종하다시피 한 작금의 현실에서, 대학원에 갓 입학한 석사생들은 진짜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하나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단 굴러야 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두렵고 막막한 것이다. 교수님과 선배들은 화만 내고 말이지.<br/><br/>임경석의《역사논문 작성법》은 나처럼 어떻게 굴러야 할 지 모르겠는 석사생들을 위한 최고의 안내서다. 임경석이 누구인가, 자신의 이름을 따 "임경석체"라 불릴 만큼 유려하고 개성있는 글쓰기로 정평이 난 역사가가 아닌가. 그는 딱딱한 논문에도 내러티브를 녹여낼 줄 알고(김윤식 사회장 논문을 보라!), 대중적인 칼럼에도 깊이를 더할 줄 안다.(《독랍운동 열전》을 보라!) 요컨대, 그는 글쓰기에서 남들이 따라하기 어려운 자신만의 경지를 이룩한 인물이다. 그런 임경석이 역사논문 작성법을 강의한다니, 혹시 팁이랍시고 자신밖에 할 수 없는 뜬구름잡는 얘기나 하는 건 아닐까?<br/><br/>그렇지 않다.《역사논문 작성법》은 주제 선정부터 연구사 정리, 사료 노트 작성과 플롯에 이르기까지 역사논문 쓰기의 모든 것을, 누구나 읽고 따라할 수 있게끔 자세하고 친절하게 담아냈다. 내가 석사 첫 학기 교수님과 선배들에게 혼나가며 배운 암묵지를 이렇게나 정갈한 문장으로 풀어낼 수 있을 줄이야!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근데 임경석은 그걸 해냈다. 그의 역사가 인생 40년이 이 책에 압축됐다. 엄청난 깊이와 내공이 느껴지면서도, 마치 성균관대 퇴계인문관에서 수업을 듣는 것처럼 생생하고 정감이 간다. 역시 푸른역사에서 나온 글쓰기 지침서인《내 논문을 대중서로》와 마찬가지로 구체적이고 풍부한 '연습문제'는 덤이다.<br/><br/>《역사논문 작성법》은 비단 구르는 법을 알려주는 훌륭한 매뉴얼에 그치지 않는다. 이 책은 유려하고 개성적인 글쓰기도 결국 충실한 기초가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단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임경석처럼 글쓰기의 독보적인 경지를 이룩한 역사가도 처음부터 글을 잘 쓰지는 않았다.(그가《한겨레21》인터뷰에서 밝힌 이야기다.) 자신만의 독특한 문장이나 논지, 생각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남들이 다 하는 고되고, 지루하며, 얼핏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단순 작업을 묵묵히 따라갈 때 비로소 개성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늘 요행만 바라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나 같은 사람이 특히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br/><br/>나는 이 책을 내 책상 가장 잘 보이는 책꽂이에 꽂아두었다. 마치 곰국을 끓여먹듯, 생각날 때마다 두고두고 참고할 생각이다. 나처럼 어떻게 굴러야 할 지 몰라 괴로워하는 동료들에게도 여러 권 선물할 것이다. 구르고, 깨지고, 혼나는건 역사학도의 숙명이지만, 그래도 모르고 구르는 것보단 알고 구르는게 낫지 않은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891/73/cover150/k2728336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8917323</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한국판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 - [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4295405</link><pubDate>Wed, 25 Jan 2023 16: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429540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831297&TPaperId=1429540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927/42/coveroff/k16283129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62831297&TPaperId=1429540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a><br/>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01월<br/></td></tr></table><br/>광흥창역 일대에 대한 흥미로운 지리지이자, 한국판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 역시 한국에 몇 안 되는 "영국식 보수" 장강명 작가님. 보수가 "근대화"를 외치고 진보가 "전통"을 옹호하는 나라 한국에서 무척이나 독특하고 인상적인 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927/42/cover150/k16283129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9274236</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베이징을 거치지 않고는 만날 수 없었던 조선과 서양 - [베이징에 온 서양인, 조선과 마주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4286119</link><pubDate>Sat, 21 Jan 2023 16: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42861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87750X&TPaperId=142861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79/81/coveroff/896187750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87750X&TPaperId=142861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베이징에 온 서양인, 조선과 마주치다</a><br/>손성욱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2년 12월<br/></td></tr></table><br/>그다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2년 가까이 연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건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오히려 글에 대한 욕심이나 집착이 덜해서(=고분고분해서)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80% 정도 전달할 수 있으면 됐지 뭐, 정도의 생각이랄까.<br/><br/>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좋은 글을 알아보는 눈은 퍽 밝다고 자신한다. 좋은 글은 아주 거칠게 말해 둘로 나뉜다. 내가 죽을 만큼 노력하면 비슷하게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글과, 그렇지 않은 글. 어느 쪽이 더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타일의 차이니까. 그럼에도 더 눈여겨보는 글은 내가 따라할 수 없는 글이다. 써놓고 보니 역시 난 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구나.<br/><br/>손성욱의 글은 후자다. 그는 아주 단정하고 담백한 단문으로도 흥미진진하며 밀도높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난 그의 교양서도 교양서지만 전문서평이나 논문을 굉장히 좋아한다. 모두가 그렇진 않지만 재밌는 칼럼이나 교양서를 쓰는 연구자도 논문은 딱딱하고 어려운걸 넘어, 그냥 읽기 어렵게 쓰는 경우가 많다. 반면 손성욱은 아주 전문적인 주제를 아주 평이하게, 그러면서도 아주 촘촘하게 풀어나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왕위안총의 《중화제국 다시 만들기》에 대한 그의 서평인데, 감히 서평의 이데아같은 글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br/><br/>이번에 동북아역사재단 교양총서로 나온 손성욱의《베이징에 온 서양인, 조선과 마주치다》(이하 《베이징》)도 담백하고 촘촘한,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다. 제목과는 약간 다르게 이 책의 큰 줄기는 "서구(+러시아)의 중국 탐문기"다. 마지막 4장을 제외하면 조선은 서구가 중국에 대한 앎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곁다리로 등장하는데, 이 점이 굉장히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한다. 조선이 결코 그 자체로 서구와 대면할 수 없었다는, 언제나 중국이라는 매개를 거쳐야 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니, 애초에 중국과는 다른 조선 "그 자체"가 존재했을까? <br/><br/> 《베이징》은 재밌는 이야기책인 동시에 흥미로운 삽화집이기도 하다. 손성욱은 러시아 화가들이 그린 중국 풍경이나 미국인 펌펠리가 작성한 일본 에조치(홋카이도) 지질도, 조선인을 담은 최초의 사진 등 굉장히 다양한 시각자료를 보여준다. 당시 서구가 쌓아가던 동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결코 문자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자료들이다. <br/><br/>이런 다양한, 그리고 쉽게 보기 어려운 시각자료 가운데 내가 가장 '꽂힌' 건 사무엘 윌리엄스가 제작하고 1847년 미국 뉴욕에서 앳우드가 출판한 중국 지도다. 중국과 일본은 오늘날 지도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자세하고 정확하지만, 한반도는 실제 지형과 다르게 그려져 있다. 비단 윌리엄스 지도 뿐 아니라, 비슷한 시기 제작된 많은 지도가 이러했다. 이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br/><br/>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19세기 조선은 중국 중심의 천하질서에서 벗어나 근대 서구가 주도하는 국제질서에 편입되었습니다"라는 '교과서적 설명'이 큰 틀에서는 맞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뜯어고칠 것이냐... 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니니 할 말이 없지만, 애초에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적 조공책봉질서"가 지극히 근대적인 관점에 따라 재구성된 만큼 오히려 당시를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게 만드는 측면이 있달까. <br/><br/>가령 어떤 사람들은 임오군란 이후 청이 조선에 간섭한 걸 두고 '전통적' 조공책봉 관계를 무시하는, 서구 식민주의적 처사라며 분개한다. 하지만 이 책에도 나와있듯 19세기 조선은 "인신무외교"를 내세우며 통상을 요구하는 서양 함선의 요구를 물리쳤다. 신미양요 이후에는 미국에 명을 내려 더 이상 조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청 황제에게 부탁했다. '진짜' 전통은 이들의 기대와 달랐던 셈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임오군란 이후 청의 조선개입을 "식민주의"라며 비판하는 이들이 준거로 삼은 "전통"은 사실 유길준의 양절체제 정도의, 지극히 근대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br/><br/>그렇다면 19세기 조청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그것은 '전통적(=수구적)'이었나 '근대적'이었나. 아니면 그러한 이항대립 자체가 잘못되었나. 손성욱은 이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는 한중관계 일반에 대한 여러 선행 연구를 꼼꼼하게 정리해온 동시에, 19세기 조청관계의 실상 역시 구체적으로 파악해 왔다. 나는 그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두꺼운 학술서를 내주길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 <br/><br/>한중관계는 비단 한국과 특정 국가A의 관계가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한국사에 대한 이해가 휙휙 바뀔 정도로, 중국은 한국에 매우 중요한 타자다. 아니, 사실 중국이 한국에 타자였는지 아닌지조차 매우 민감한 문제다. 그중에서도 19세기 조청관계는 한반도가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서에 편입된 시기인 만큼, 나머지 시대에 비길 수 없는 중요성을 갖고 있다. 손성욱이 한중관계, 나아가 한국사를 이해하는 핵심적인 퍼즐조각인 19세기 조청관계를 꼭 맞춰주길 독자로서 소망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0879/81/cover150/896187750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08798179</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아주 오랜만에 "벼르고 나온 작품"을 만났다. - [[세트] 재수사 1~2 - 전2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3876454</link><pubDate>Fri, 26 Aug 2022 03: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387645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838349&TPaperId=1387645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982/34/coveroff/k94283834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42838349&TPaperId=1387645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트] 재수사 1~2 - 전2권</a><br/>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08월<br/></td></tr></table><br/>벼르고 나왔다, 혹은 갈고 닦았다는 느낌을 주는 작품이 있다. "나 여기까지 생각했어, 이만큼이나 할 수 있어"란 티를 팍팍 내는데, 그게 전혀 거북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감격스러운 작품. 누군가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 완성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결과물은 언제나 즐겁고 벅찬다.<br/><br/>장강명 작가의 《재수사》는 아주 오랜만에 만난, 그런 감격스런 작품이다. 사실 작품을 읽기 전까진 걱정이 앞섰다. 그는 자신의 작가 인생에서뿐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큰 의의를 남길 작품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퍽 오래 전부터 여러 지면에서 해왔지만, 정작 결과물이 나올 기미는 통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 나온 뒤에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에 비친 책은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느껴졌고, 장강명의 현실감 넘치는 묘사와 발군의 취재력은 좋아하지만 주제의식은 다소 공허하다 느끼는 나로서는 이번 작품이 전형적인 사변소설은 아닐까 우려스러웠다. 다소 건방지지만, 장강명이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있을 이번 소설이 실패해 그가 다시는 펜을 잡지 않으면 어쩌나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장강명의 팬으로서 그의 글을 더는 읽지 못한다는 건 매우 아쉬운 일이니까.<br/><br/>하지만 이런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였다. 남들보다 늦게 택배가 도착해 오후 8시 쯤 첫 페이지를 넘긴 뒤 새벽 3시가 넘은 방금 전까지 앉은 자리에서 침을 꼴깍꼴깍 넘겨가며 두 권 합쳐 800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을 다 읽었다. 이런 게 진짜 "페이지 터너"구나... 앞으로 《재수사》 미만 "페이지 터너"라 부르기 금지. 이 책을 읽고 제 코로나 후유증이 (일시적으로) 나았어요.<br/><br/>소설은 22년만에 신촌 여대생 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메인 스토리와 살인자의 일지가 교차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읽기 전까진 아주 걱정했던 구조였는데 장강명 특유의 관념론이랄까, 형이상학을 한 쪽에 몰아주니 오히려 몰입감이 훨씬 높아진다. 그렇다고 양자가 물과 기름 같다거나 겉돌지도 않고, 아주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 작가가 군데군데 심어놓은 복선과 암시, 상징을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달까. 작가가 "나 이만큼이나 신경 썼어, 이만큼이나 글을 다듬었어"라고 자랑하는 티가 팍팍 나는데 그게 전혀 밉지 않다.<br/><br/>무엇보다 《재수사》는 내가 지금껏 읽은 장강명의 소설 중 (나는 기사를 뺀 그의 글 대부분을 읽었다고 자부한다) 가장 주제의식이 살아있다. 장강명은 2022년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를 공허와 불안이라 진단했고, 그 기원을 정교하고 설득력있게 풀어냈다.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장강명의 소설은 《표백》인데, 이 소설에선 다소 피상적이고 설익었다 느껴졌던 문제의식을 《재수사》는 훨씬 묵직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발전시켰다. 솔직히 말해 《표백》이 68혁명 이후 유럽이나 일본에서 나올 법한, 다시 말해 2010년대 초반의 한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설이었다면 《재수사》는 지극히 2022년의 한국답달까.<br/><br/>《재수사》2권에는 "초판으로 만나 반갑습니다. 저에게는 무척 각별한 책이네요. 어떻게 읽어주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부디 즐거운 독서이기를..." 이라 쓰인 장강명 작가의 싸인이 (아마도 인쇄된 것이겠지만) 적혀 있다. 몇 년 간 써온 여러 글들을 통해 그 각별함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했고, 그래서 더 걱정이 컸다. 오늘날 한국 출판시장은 작가의 각별함이 독자에게 잘 전달되진 않는 곳이니까. 하지만 적어도 나는 《재수사》를 각별히 읽었고, 다른 독자들 역시 그러리라 확신한다. 다소 아이러니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의미의 의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 책을 통해 장강명은 삶의 의미를 멋지게 증명했다. 이런 작품 하나 남길 수 있으면 삶은 의미있다 할 수 있지, 암.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이라면 책이 나오기도 전에 이뤄진 여러 언론사의 인터뷰인데, 하나같이 책이 가진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다들 책 안/못읽으신듯... 그러니 제발 기사 말고 책을 읽으셔야 합니다 여러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982/34/cover150/k9428383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9823489</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박상영이 드디어 자신과 닮지 않은 남주를 만들어냈다 - [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3820585</link><pubDate>Wed, 03 Aug 2022 1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382058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9804&TPaperId=1382058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08/73/coveroff/8954699804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99804&TPaperId=1382058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믿음에 대하여 - 박상영 연작소설</a><br/>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07월<br/></td></tr></table><br/>박상영이 드디어 자신과 닮지 않은 남주를 만들어냈다, 《믿음에 대하여》의 가장 큰 성취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자신의 모습을 여러 개로 쪼개 남주들에 흩뿌린 것에 가깝기는 하다. 첫 직장이었던 잡지사 이야기(이젠 그만 보고 싶지만, 어지간히 힘들었나 봄)나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처럼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나 그동안 여러 번 소설에 사용했던 테마들도 여전히 등장한다. <br/><br/>그럼에도 이 소설이 《알려지지 못한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대도시의 사랑법》, 《일차원이 되고 싶어》와 다른 점은 뒤가 아닌 앞을 본다는 것. 그동안의 소설들은 작가의 10대와 20대를 '털고 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지금'과 '앞으로'를 이야기한다. 종종 방문하는 문학 전문 블로그에선 이 소설이 박상영 특유의 유머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웠다지만, 오히려 난 그 점이 좋았다. 이제 옛 추억을 떠올리며 농담하는 이야긴 끝이다, 라는 결기가 느껴졌달까. 애당초 코로나 팬데믹을 정면으로 관통하는 소설인 만큼 웃기는 이야기는 좀 어렵기도 하고.<br/><br/>다만 이야기를 너무 갈고 닦은 탓인지 마지막 단편인 &lt;믿음에 대하여&gt;는 좀 작위적인 티가 났고, 특히 결말은 아주 뜬금없었던 데다 유교보이로서 용납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책을 덮은 뒤에됴 계속해서 강렬한 이미지로 떠오르는걸 보면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던 듯. "믿음에 대하여"라는 제목과도 아주 잘 어울리고.<br/><br/>《대도시의 사랑법》이 영어로 번역되고 부커상 후보에도 올랐던 덕인지 이번 책은 아예 해외 출간을 염두하고 주제나 문장을 고심한 티가 났다. 별 상관도 없어 보이는 단편들을 모아놓고 연작이라 우기는 소설이 적지 않은 요즘, 작가가 A의 눈으로 B를 보고 B의 눈으로 A를 보는 연작소설만의 재미를 제대로 살린 점도 좋았다. 박상영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랬듯, 이번 소설도 가장 매력적인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친구 말처럼 여성 등장인물을 가장 기깔나게 그려내는 남성 작가. 다음 작품은 아예 여성이 주인공이어도 좋겠다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808/73/cover150/8954699804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8087324</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사람이 온다는 건: 『각별한 당신』 - [각별한 당신 - 오랫동안 자기답게 살아온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3676507</link><pubDate>Mon, 13 Jun 2022 17: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367650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837159&TPaperId=1367650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46/93/coveroff/k79283715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92837159&TPaperId=1367650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각별한 당신 - 오랫동안 자기답게 살아온 사람들</a><br/>김종철 지음 / 사이드웨이 / 2022년 05월<br/></td></tr></table><br/>“토요판 김종철 선배의 인터뷰가 제일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nbsp;   지난 3월, 한창 《한겨레21》 창간특집 인터뷰를 준비할 때였다. 그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혹은 과제를 위한 인터뷰는 여러 번 해봤어도 이런 공식적이고도 중요한 지면에 글을 싣는 건 처음이었다. 준비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무엇보다 어찌어찌 인터뷰를 마친들 이걸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혼자 속만 끓이느니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겠다싶어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담당자, 구둘래 기자님께 카톡을 보냈다. 언제나처럼 짧고 굵게, 딱 한 줄로 답장이 왔다. “김종철 선배”의 인터뷰를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nbsp;   지난달을 끝으로 《한겨레》를 정년퇴임한 김종철의 인터뷰는 따뜻하고 웅숭깊은 내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 변희수 하사나 독립연구자 정태인 인터뷰는 SNS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김종철의 인터뷰를 배운다고 따라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함에 정태인 인터뷰를 한글파일로 인쇄해 밑줄까지 쳐가며 공부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강명관 인터뷰는 인터뷰어의 에고가 덕지덕지 묻어난, ‘인터뷰’라기보다는 ‘비평’에 가까운 글이 되어버렸다.   &nbsp;   이번에 나온 김종철의 인터뷰 모음집 『각별한 당신』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종철의 인터뷰는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다. 그를 제외하곤 누구도 이런 인터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독특한,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타인을 읽어낸다. 아니, 어쩌면 “읽어낸다”는 표현조차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김종철의 인터뷰는 ‘읽음’보다는 ‘받아들임’의 과정이며, 그렇기에 결코 ‘읽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경이감과 복잡함을 동시에 안긴다.  &nbsp;   (야매) 글쟁이로서 내가 가진 강점은 소위 ‘야마’를 잘 잡는다는 것이다. 글이든 사람이든 가만히 읽거나 듣다보면 이게 어떤 이야긴지 대충 감이 온다. 이렇게 잡은 야마를 얼개로 본문을 해체-재구성해 날렵하고 요령 있게 정리하는 것. 문장이 유려하지도, 어휘가 풍부하지도, 사유가 단단하지도 않은 내가 연재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호의와 배려 덕분이겠지만) 바로 이 야마 잡는 능력 덕분일 것이다.    &nbsp;   문제는 내가 야마를 ‘잡는’ 게 아니라 야마에 ‘잡힐’ 때 일어난다. 미리 구상해둔 얼개에서 벗어나는 사실이나 발언이 튀어나오면 억지로 욱여넣으려 들거나, 아예 모른 척 넘어가버리기도 한다. 내가 잡은 야마에 내가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지난 번 강명관 인터뷰를 공유하며 “딱딱 떨어지는 명쾌함보다는 복잡함과 머뭇거림을 더 많이 담고 싶었”노라 적었지만, 이 복잡함과 머뭇거림조차 잘 짜인 기획의 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던 건 그래서다. 기획된 애매함이라니, 그건 그냥 형용모순이 아닐까.   &nbsp;   반면 김종철의 인터뷰엔 야마란 게 없다. 그는 그저 가만히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씩 정말로 궁금해 보이는 점만을 질문할 뿐이다. 인터뷰 어디에도 김종철의 에고가 드러난 대목은 찾을 수 없다. 기자 생활 34년에 《한겨레》에서 정치부장에 선임기자, 신문부문장까지 지낸 김종철이 야마를 잡을 줄 몰라서 안 잡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참은 것이다.  &nbsp;   김종철이 야마를 못 잡은 게 아니라 안 잡았다는 건 그의 촘촘한 취재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겨레21》 전 편집장이자 현 콘텐츠총괄인 정은주에 따르면, 김종철은 역사학과 출신답게 (이 얘길 들었을 때 역사학도로서 정말 찔렸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 인터뷰이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꼼꼼히 읽고 정리한다고 한다. 실제로 김종철은 56년 만에 부당한 판결의 재심을 신청한 최말자를 인터뷰하며 사건 발생 24년 뒤인 1988년, 최말자와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여성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찾아낼 정도로 취재에 열심이다.   &nbsp;   보통 이 정도로 촘촘하게 취재를 하면 인물에 대한 어떤 상(像)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연히 여기에 맞춰 인물을 그려내고픈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올 법도 한데, 김종철은 그러지 않는다. 대신 그는 묵묵히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김종철과 마주앉은 사람들은 모두 말이 많아진다.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애초에 수다스런 사람만 인터뷰어로 점찍었나 싶을 정도다. 물론 이는 “되게 깊이 묻네요. 이렇게까지 심층적인 인터뷰는 처음 해봤어요.”(p.219.)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자세한 김종철의 질문 덕분이겠지만 말이다.   &nbsp;   그렇게 김종철은 꼼꼼히 읽고, 가만히 듣고, 깊이 물음으로써 한 인물을 통째로, 오롯이 전해준다. 그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정현종의 시 &lt;방문객&gt;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온다는 일의 어마어마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인터뷰이도, 그리고 어쩌면 인터뷰어도 의도하지 않았을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고 변희수, 신순애, 이준원, 임현정, 강수돌, 최말자, 달시 파켓, 김수억, 이동현, 김정남, 정재민, 김선희, 김덕수, 심재명·이은, 조영학, 윤선애, 이병곤, 송경동, 홍순관, 정태인.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인생도 다 다르지만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기다움’을 지켜온 스무 사람의 인터뷰가 각별하게 읽히는 건 그래서다.   &nbsp;   누군가를 잘 읽어주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내가 가진 무수한 욕심들 중 그나마 덜 숭하고, 어쩌면 조금은 이로울 수도 있는 바람이다. 그런 내게 『각별한 당신』은 어쩌면 지금껏 야마를 이야기로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움을 안긴다. 다시 정현종의 시를 빌리자면, 환대란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바람처럼 더듬어보는 일이다. 그러한 환대로서의 인터뷰를 너무나 따뜻하게 보여준 이 책 앞에서 나는 과연 야마 없이 누군가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사람이 온다는 어마어마한 일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되물어 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46/93/cover150/k79283715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5469362</link></image></item><item><author>유찬근</author><category>리뷰/페이퍼</category><title>문하수(文河水)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내 논문을 대중서로』 - [내 논문을 대중서로 - 친절한 글쓰기를 위한 꿀팁 18가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msg2012/13671658</link><pubDate>Sat, 11 Jun 2022 2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msg2012/1367165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837151&TPaperId=1367165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47/47/coveroff/k99283715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837151&TPaperId=1367165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내 논문을 대중서로 - 친절한 글쓰기를 위한 꿀팁 18가지</a><br/>손영옥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05월<br/></td></tr></table><br/>“선생님, 그래서 박논은 언제 책으로 내시나요??”  &nbsp;   좋아하는 선생님들을 뵐 때마다 이렇게 여쭙곤 한다. 훌륭한 연구들을 빨리 책으로 읽어보고 싶어서다. 물론 박논을 인쇄해 스프링제본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소위 ‘읽는 맛’이 살지 않는다. 그렇게 뽑아만 놓고 사물함에 쌓아둔 박논이 한 트럭이다. 게다가 박논은 “역사책 달리기”에 써먹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거칠고 딱딱한 논문이 아닌, 전문적인 편집을 거친 유려한 책을 원한다.   &nbsp;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다. “아, 제가 아직 공부가 부족해서요...” 박사까지 따셨는데 공부가 부족하다면 대체 얼마나 더 공부해야 책을 낼 수 있는 것일까? 5년? 10년? 일단 책을 내셔야 연재에 써먹는데, 나는 10년 뒤에도 “역사책 달리기”를 연재할 수 있을까? 아니, 다 떠나서 과연 10년 뒤에 책이란 게 남아있을까? 연구자가 아닌 독자인지라 이런 속도 모르는 얘기를 꺼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결국 세상에 널리 읽히고 도움이 되라고 하는 연구일진대, 좀 ‘쉽게’ 내주시면 안 될까?<br>  손영옥의 『내 논문을 대중서로』는 이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 같다. 지은이는 문화전문기자이자 미술평론가로, 박사논문인 『한국 근대 미술시장 형성사 연구』(2015, 서울대)를 다듬어 『미술시장의 탄생』(2020, 푸른역사)을 퍼냈다. 기사와 논문, 평론은 물론 『한 폭의 한국사』(2012, 창비)처럼 청소년을 위한 교양서까지 쓴 올라운드 플레이어다. 책이 나온 푸른역사는 ‘대중학술서’란 말이 등장하기도 전에 이를 교양 독자에게 선보이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한 역사출판계의 명가. 지은이의 패기와 출판사의 안목이 다시없을 책을 만들었다.  &nbsp;   지은이는 『미술시장의 탄생』에 대한 관심을 되살리려는 마음이 책을 쓴 동기가 되었노라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실제로 이 책은 지은이가 박사논문을 대중학술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을 뼈대로 삼고 있는 만큼, 읽다보면 감질나서라도 『미술시장의 탄생』을 한 권 사보고 싶어진다. (내가 그랬다!) 하지만 『내 논문을 대중서로』가 단순히 『미술시장의 탄생』의 홍보책자나 미끼상품만은 아니다. 전방위 글쟁이 손영옥이 아니라면 결코 들을 수 없었을, 유용하고 구체적인 ‘꿀팁’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nbsp;   바야흐로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다. 이들 예비 작가를 위한 글쓰기 교본은 이미 쌔고 쌨다. 비단 ‘글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서평, 동화,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형식과 내용에 맞는 교본을 골라잡을 수 있을 수 있을 정도로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시장’은 포화 상태다. 그렇기에 이런 유의 책은 소위 ‘예제’와 ‘풀이과정’이 얼마나 상세한가에 성패가 판가름된다. 잘 팔리는 수학문제집도 다들 개념설명보다는 풍부한 문제와 자세한 해답을 기대하며 사보는 게 아니겠는가.  &nbsp;   『내 논문을 대중서로』는 이 점에서 아주 독보적이다. 솔직히 손영옥이 제시하는 ‘꿀팁’은 그렇게까지 새롭지는 않다. 쉽게 쓰고, 스토리텔링으로 흥미를 돋우고, 편집자를 믿으면 된다. 대신 지은이는 풍부한 예제와 풀이를 통해 이 뻔한 과정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냈다. 앞서 이야기했듯 지은이가 박사논문을 대중학술서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이 이 책의 뼈대지만, 당연하게도 지은이는 자신의 책과 논문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최효찬의 『일상의 공간과 미디어』(연세대학교출판부, 2007)나 이성낙의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눌와, 2018), 송은영의 『서울 탄생기』(푸른역사, 2018)처럼 박사논문을 토대로 만든 다른 교양서도 적극 참고했다.  &nbsp;   단순히 이런 책도 있다며 슬쩍 언급하고 넘어가는 수준이 아니다. 지은이는 자신의 책을 비롯해 참고자료로 사용한 모든 책들을 꼼꼼하게 해부한다. 목차를 비교하고, ‘꿀팁’이 어떻게 반영됐는지 일일이 찾아 대조하는 등 박사논문과 교양서를 부지런히 오간다. 얼핏 봐도 품이 꽤 많이 들었을 것 같은 작업이다. 여기에 더해 문화전문기자로 일하며 겪거나 들은 수많은 에피소드가 군데군데 감초처럼 들어가 있다. 심지어 마지막엔 (이 역시 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의도겠지만) 《한겨레》 이유진 기자와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의 『미술시장의 탄생』 서평까지 실었다. 논문, 학술서, 교양서, 기획서, 서평을 넘나드는 종합선물세트인 셈이다.   &nbsp;   이러한 충실함은 책을 지은이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을 방향으로도 읽게 해준다. ‘논문을 대중서로’ 바꾸려는 연구자뿐 아니라 ‘대중서를 논문으로’ 바꾸려는 기자나 칼럼니스트에게도 유용한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단 한 번도 논문을 써본 적이 없는 내가 책을 읽으며 마음에 새긴 대목도 (지은이가 그런 얘기를 쓰진 않았지만) 칼럼이나 서평 쓰듯 논문을 쓰면 안 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흠모하는 고태우나 정일영처럼 유려하고 문학적인 논문을 쓰는 연구자도 있으나, 최소한 학술적인 글에 걸맞은 문장과 구성, 전개가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nbsp;   꼭 글을 쓰려는 사람들뿐 아니라 글을 읽는 사람에게도 이 책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준다. 단언컨대 읽기에 대한 가장 쉽고 훌륭한 교양서라 할 수 있는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에서 김성우와 엄기호는 ‘탑 쌓기’가 아닌 ‘다리 놓기’의 리터러시를 이야기한다. 다양한 매체의 성격과 특징을 이해하고 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잘 읽기’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은 주로 영상과 활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지만, 동시에 다양한 활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이라고 다 같은 글이 아니다. 어떤 내용을, 누구를 대상으로,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구성과 전개는 물론, 문체와 예시까지 달라진다.  &nbsp;   『내 논문을 대중서로』는 글이 가진 그러한 결을 이해하는 최고의 안내서다. 마치 빛을 분산시켜 여러 색으로 펼쳐내는 프리즘처럼,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장르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친절하고 자세하게 보여준다. 장르에 따른 글의 특성을 파악하고, 여기에 맞춤한 읽기를 연마해간다면 ‘논문을 대중서로’든 ‘대중서를 논문으로’든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잘 쓰는 법에서 시작해 결국 잘 읽는 법으로 되돌아오며, 다시 잘 오가는 법으로 나아간다. 연구자와 작가, 독자와 편집자에 이르기까지, 글의 바다를 여행하는 모든 히치하이커를 위한 발랄한 가이드북이 지금 막 도착했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9547/47/cover150/k99283715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547478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