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완벽한 하루
채민 글.그림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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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으로 '엣지'있게 살아가는 현대 여성, 그녀를 만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시, 우리가 만나는 그녀는 멀리 있는 그런 그녀가 아니라 바로 곁 우리네 찌질하고 비루한 나날 속, 우리 모습 그대로인 그녀들이다. 
 
 강희정, 김발근례, 박윤정, 정지은, 김미영, 양수현, 그리고 이인엽 과 나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남루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가 좀 더 행복하거나 그래도 저런 삶이 좀 더 나은 삶이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만화를 보며 희망의 웃음을 만나리라 기대했던 내게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모두 씁쓸하고 착잡하다.  
 
 그럼 이 책에서 우리가 건져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단지 삶의 부정적인 면만을 강조한 듯한 슬픈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할까? 아마 그것은 지은이가 가려뽑은 이야기의 모티브이기도 한 10편의 詩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물론 이 책은 시가 主가 아니라 만화가 주인인 책이다. 그렇지만 시를 배경음악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들이기에 시를 통하여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음이 더 쉬우리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아홉 편의 이야기 앞에 놓인 10편의 시와 9명의 시인들을 나는 거의 다 만났다. 최승자 시인과 이상의 시집만 내게 없을 뿐, 다른 시인들의 시집은 한 권 이상씩 소장중이다. 그만큼 시인의 정서가 나랑 들어맞는다는 이야기도 되리라. 세상에나 고르고 고른 시인들이 다 나랑 함께 머무는 시인들이라니…. 그간의 노력 - 詩를 사랑하고 소유!하는 - 이 보상을 받는 순간일까? ^^
 
 너무 답답하고 괴롭긴 하지.
 하지만 손잡고 노래하는 길섶은 
 따듯하고 적막하고 너무 평화로워서 
  - 박정만, "영원의 한쪽" 에서  (25)
 
 그래, 이 책 속 이야기들이 '답답하고 괴롭긴 하지.'  그러나 황지우의 말처럼, 우리도 '나는 수락했다. 이것도 삶이'라고 외치며 살아간다.(123)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어쩌면 '아무 것도 가질 수 없고 가진 것이 없'는 지금이 차라리 '세상을 빠져나가기에 가장 행복한 때' (151)가 아니던가.
 
 하지만 오해마시라. 여기 실린 詩들이 뿜어내는 정서가 우울과 비참의 모드라고 하여 우리네 삶조차 그리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닐지니 지은이가 시를 배경음악으로 깔아둔 까닭은 아마도 이런 삶도 詩가 되고 있음을…. 詩란 사랑과 아름다움의 노래일지니 팍팍한 삶이라고 하여 피어나지 못할 까닭이 없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니.
 
 그러니 우리, 이제 이렇게 살아가야 하리라.
 
 나 혼자만 유배된 게 아닐까
 지상에서 지하로
 지옥철로 외로이 밀려난 게 아닐까
 이런 의심 날마다 출근하듯 밥 먹듯 가볍게 해치우며
 가볍게 잊어버리며
  - 최영미, "지하철에서 2" 에서 (79)
 
 
2010. 2. 28. 늦은 밤, '그녀의 완벽한 하루'를 저도 기원합니다.
 
들풀처럼

*2010-024-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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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3-01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집들이군요. 저도 참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