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에 관한 페이퍼를 몇차례 쓰면서 자연스레 <순수의 시대>도 노출하게 되었는데, 강의에서 주로 쓰는 건 민음사판이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번역에 오류가 많다. 강의를 이미 진행중이라 되물릴 수도 없어서, 그리고 혹시나 이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 적자면, 현재 가장 나은 번역본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열린책들판이다. 문예출판사판이 그 다음이고, 민음사판과 펭귄클래식은 최악을 두고 다툰다. 그래도 골라야 한다면 최악은 펭귄클래식이다(내가 검토한 게 이 네 종이다).

세계문학전집은 작품마다 편차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어느 출판사 전집이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민음사전집과 펭귄클래식에도 좋은 번역본들이 있다. 그렇지만 <순수의 시대>는 평균 이하이고 두 전집에 민폐라고 생각된다. 여하튼 번역자의 경력을 고려하면서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을 보통 교재로 쓰는데 그래도 함정이 있다는 걸 확인한다. <순수의 시대> 번역본 문제는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좀더 자세히 적도록 하겠다(장담은 못하겠지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주의 과학서로 꼽음직한 스티븐 실버판의 <뉴로트라이브>(알마)의 부제다. 정확히는 부제의 절반이다. 전체 부제는 ‘자폐증의 잃어버린 역사와 신경다양성의 미래‘. 제목과 부제로는 독자가 한정될 듯싶지만 자폐증을 다룬 책으로는 최고라는 평판이다.

작고한 올리버 색스도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보기 드문 공감능력과 감수성으로 이 모든 역사를 넓고 깊게 그려낸다. 이 책을 읽는다면 자폐증에 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자폐증에 관한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겠지만 여하튼 자폐증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도 하니까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몇년전인가 자폐증 관련서를 구한 적이 있는데 대개 전문서들이었다. 교양수준에서도 읽어볼 만한 책인 듯싶어 반갑다(저자는 의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다).

색스는 서문에서 자신의 책도 은근히 소개하고 있는데 회고록 <엉클 텅스텐>과 <화성의 인류학자>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난달에 책장 공사를 하며 식당과 거실의 책을 얼추 정리했지만(그래도 거실 바닥에는 아직도 쌓여 있는 책들이 있다) 아직 서재로 쓰는 두 방의 책들은 철옹성을 자랑한다. 무질서하지만 빈틈없이 쌓여 있어서 터무니없는 비유를 쓰자면 마치 도요토미의 오사카성 같다. 강의에 필요한 책을 찾다가 이번에도 허탕을 치고 대신 <2018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을 손에 들었다. 기억에 대상작인 박민정의 ‘세실, 주희‘를 읽다 만 것 같다.

다시 손에 든 건 마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 붙인 작가노트를 읽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연휴 초반에 손에 들게 돼 그럭저럭 읽어버린 게 박상영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여서 일종의 디저트로 읽었다. 예상대로 그의 많은 이야기가 경험담으로 보이는데, 공식적인 분류는 아니지만 나는 이런 작가군을 자멸파라고 부른다. 자기 삶을 창작의 불쏘시개로 쓰는 작가들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가 다자이 오사무. 내 식으로 분류하면 박상영은 다자이과에 속한다. 하위분류로는 ‘퀴어 다자이‘.

<자이툰 파스타>의 첫 단편 ‘제제‘(제목이 너무 길어서 ‘제제‘라고만)에 이끌려 한편 더 읽어보자는 계산으로 읽어나갔는데 나로선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그 짝이 되는 ‘부산국제영화제‘까지가 재미있었고 ‘자이툰 파스타‘에 이르러서는 벌써 물린다는 느낌이 들었다(뒤에 이어지는 단편들은 현저하게 힘이 빠졌다). 작가 자신의 토로대로 감정 과잉은 독자를 오래 붙들지 못한다. 술 마시고 택시를 탈 때마다 울었다는 고백도 두번, 세번 듣다 보면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소설집 이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자음과모음>(2018 겨울호)에 실린 ‘재희‘가 나로서는 박상영의 한 시기를 결산하는 것으로 읽힌다(대학시절 특별한 절친이던 재희의 결혼식에 참석한 ‘나‘가 그들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야기인데, 현재 시점의 ‘나‘는 갓 등단한 신인작가로 나온다). 믿거나 말거나 그 자신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편인데, ‘패리스 힐튼‘과 ‘부산국제영화제‘와 3종세트로 따로 묶어도 좋겠다 싶다.

한번 적었지만 문제는 이 작가에게 더 쓸 거리가 있을까, 라는 것. 자멸파 작가들은 자기 생을 탕진해가며 쓰기에 소재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다작이 가능하더라도 대개 반복이고 재탕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몇몇 작품으로만 기억되는 이유다. 이런 작가가 무얼 취재해서 3인칭 시점의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얼른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건 다른 종류의 작가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이리라. 두번째 소설집에는(짐작컨대 2-3년 안으로 나옴직한) 어떤 작품들이 실릴지 궁금하다. 작가로서의 생산력을 가늠하게 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자크와 함께 요즘 강의에서 다루는 작가는 미국 작가 이디스 워튼(1862-1937)이다. <순수의 시대>(1920)로 여성작가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또 국내에서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순수의 시대>(1993)로 새삼 이름이 알려진 작가이기도 하다.

다작의 작가이지만 워튼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건 <기쁨의 집>(1905)과 <그 지방의 관습>(1913), <순수의 시대> 등의 장편과 <이선 프롬>(1911) 같은 중편이다. 강의에서는 <그 지방의 관습>만 다루지 못했는데, 학술명저번역으로 출간돼 책값이 너무 비싼 것이 이유다(그런 이유에서 강의에서 읽지 못하는 작품이 여럿 된다. 디킨스의 <작은 도릿>이 대표적이다. 번역본으로는 네 권짜리에 책값이 6만원에 이르니 ‘디킨스의 이 한권‘이라면 모를까 <전쟁과 평화>만큼 중요한 작품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

워튼을 읽는 맥락은 여러 가지인데, 나는 강의에서 1)100년전 작가로 여성의 결혼 문제를 주로 다룬 제인 오스틴과 워튼, 2)뉴욕 상류사회 출신으로 20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분이 깊었던 작가 헨리 제임스와 워튼, 3)동시대 작가로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그렇지만 발자크의 영향도 두드러진다) 시어도어 드라이저와 워튼, 4)그리고 탁월한 심리묘사의 선구적 작가 스탕달과 워튼 등을 주요한 맥락으로 다룬다. ‘사교계 소설‘이라는 면에서는 톨스토이의 작품들과도 비교할 수 있는데, 쓰인 시기에는 차이가 있지만 <안나 카레니나>나 <순수의 시대> 모두 187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순수의 시대>는 좀더 긴 시간대를 배경으로 갖지만).

대단히 자세한 세부묘사와 섬세한 심리묘사가 강점이라고 생각되는 워튼은 작품 말고도 생애 자체가 전범으로서 의미가 있다. 여성작가로서만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삶이 어떻게 가능한지 전력으로 모색한 대표적인 사례여서다. 작품뿐 아니라(주요작은 번역돼 있다) 자서전과 평전이 번역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영어로는 몇권의 평전이 나와있고(일부는 절판되었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 평전을 쓰기도 한 허마니오니 리의 평전을 주문해놓은 상태다. 그녀의 자서전은 진작 구입했었는데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연휴 마지막날에 대부분 느끼는 침울함과 함께 동네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가방에는 내일 강의할 책들을 넣어 왔다. 즐거운 연휴가 끝나서 침울한 게 아니라 늘 그렇듯이 해야 할 일들을 끝마치지 못해서 침울한데, 매번 연휴 때마다 반복되는 일이니 이 또한 습관이다. 휴일이 아닌데 휴일로 시간을 보낸 데 대한 습관적 괴로움이라니.

연휴에 무얼 했던가. 박상영의 소설집을 읽고(나는 그가 3인칭 소설을 쓸 수 있을지 궁금하다. 혹은 홍상수 영화가 그렇듯이 술먹고 섹스하는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쓸 수 있을지도), 하라리의 책을 절반 정도 읽고(하라리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 안도감이다. 이걸 전세계적으로 수백만의 독자가 읽는다는 안도감. 그럼에도 역부족인 것인지 궁금하다. 하라리는 책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늠해보는 척도다. 혹은 대중독자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그의 예측대로 ‘대중‘의 시대도 이제 서서히 힘을 잃어갈 것이다). 그리고 잠시 들춰본 여러 권의 책.

연휴에는 책주문을 자제하는 편이지만 이번 연휴에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외서는 일단 (개인적인) 주문제한이 적용되지 않는 데다가 내달 독일여행을 앞두고 이래저래 챙겨볼 책들이 생겨서다. 여행서가 대표적인데, 론리 플래닛 베스트 시리즈 몇권을 주문한데 이어서 이다혜의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나 오지은의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등의 책이 장바구니에 들어가 있다.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라도‘는 물론 보들레르의 인용일 텐데, 오늘처럼 흐린 날 침울한 기분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자니 더욱 절감하게 된다. 언젠가 적은 대로 시는 인식이 아니라 기분의 권력에 봉사한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그 권력의 순종하는 신민이거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