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회학 전공자‘라는 프로필의 정보밖에 없어서 저자의 포지션에 대해 가늠하기 어렵다. <타락한 저항>(교유서가)이란 얇은 책이 ‘우리 안의 반지성주의‘를 겨냥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는데, 목차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반지성주의를 논하기 위해 저자가 고른 세 가지 열쇳말(괄호안은 정치 진영)이 ‘블랙리스트‘(보수우파), ‘나꼼수 현상‘(중도우파), ‘메갈리아‘(진보좌파)라고 해서다.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라고 정의하는데(수포자는 수학의 반지성주의자다) 다른 건 몰라도 권력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불법적 통제를 가리키는 ‘블랙리스트‘가 그에 해당하는가? 저자가 나꼼수와 메갈리아를 나란히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은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되 ‘지배하는 피해자들‘이라서다. 한데 블랙리스트는?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들 역시 ‘지배하는 피해자들‘인가? 정리해서 ‘블랙리스트=나꼼수=메갈리아=반지성주의‘라는 게 저자의 주장인가? 그게 아니라면 블랙리스트는 뭔가 저자의 의도와는 잘 맞지 않는 열쇳말이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반지성주의는 우리말의 부정적 어감과는 달리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반지성주의가 자칫 반권위주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바로 거기에 반지성주의의 힘이 있다. 반지성주의이면서 반엘리트주의. 반지성주의는 자연스레 평등주의를 함축한다. 가령 종교에서의 반지성주의는 사제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반권위주의와 만난다. 그것은 몽매주의와는 다른 자가계몽주의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반지성주의가 한국어에서 갖는 의미는 주로 그 부정적인 절반에만 한정되기에 반지성주의를 주제로 한 책도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반지성주의는 반권위주의와는 다르고, 또 반엘리트주의와도 다르며... 더불어 좋은 입론을 세우기도 어렵다. <타락한 저항> 역시 그런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동녘)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어제 쓴 글인데 페어퍼 등록이 거부되어(알라딘의 금칙어DB 에러라나) 이제서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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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달팽이가 집으로 들어가는지
언제 항아리가 입을 오므리는지
언제 봄볕은 외출나간 마음을 불러들이는지
언제 마지못해 적은 답안지를 제출해야 하는지
언제 돌이켜보기엔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는 생각이 드는지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던 그 언제던가
봄날은 가고 낙엽이 떨어지던 날 또
흰눈이 내리고 또 내려서
집으로 가는 길이 벅찬 모험이었던 그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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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도서관 강의에서 춘향전을 다루고 오늘까지 관런서와 논문들을 추가로 읽었다. 국문학계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작품이라는 평판답게 연구논저가 많이 나와 있다. 한편으론 이본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10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미궁인 작품인 탓으로도 보인다. 상식선에서 보기에도 근거가 미흡하거나 편향된 주장이 많았다. 춘향전을 이해하는 데 정작 도움이 되는 논저는 희소해보인다.

가장 유감스러운 건 주요 이본들의 성립시기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점. 고소설이 유통시기와 그 과정에 대한 연구가 뒤늦게서야 이루어진 때문으로 보이는데(이윤석, 정병설 교수 등의 교양서가 나온 게 오래되지 않는다), 춘향전의 경우 세책본(남원고사가 대표적)과 경판본, 완판본, 그리고 한문본의 (선후)관계가 먼저 밝혀져야 계보와 함께 개변과정, 이본들간의 차이점이 해명될 수 있을 터이다. 
















국문학계의 고질로 보이는 건 작품의 성립연대를 빈약한 근거를 앞세워 앞으로 당기려고 하는 점(한글소설 홍길동전을 허균의 저작으로 보는 태도가 그러하다. 그런 입장이 ‘정설‘로 통하는 한 한국고소설에 대한 이해는 포기해야 한다). 춘향전의 경우에도 18세기에 살았던 유진한의 한시 ‘춘향가‘(유진한의 호가 만화당이어서 통상 ‘만화본춘향가‘로 칭한다)가 현재 가장 오래된 이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수록하고 있는 문집 ‘만화집‘의 후대 가필 여부가 불분명하다. 이윤석 교수에 따르면 일부 내용이 19세기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마치 허균이 지었다는 홍길동전에 후대 인물 장길산이 등장하는 식이다).

게다가 유진한이 호남 여행 중 춘향가를 듣고 돌아와 이를 한시로 적었다고 전해지는데 판소리가 완창형태로 불리는 건 1960년대에 와서다(그 이전에는 한 대목씩 가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윤석 교수의 추정은 한문본 춘향가는 주로 여성과 평민 독자를 거느린 세책본의 춘향전을 남성 양반이 읽기 위한 용도로 한문으로 옮겼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18세기에 춘향전이 어떤 형태로 존재했는지 알 수 없다(‘원춘향전‘에 대한 무리한 가정만 있다).

춘항전의 대표 이본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현존 84장 완판본이 1900년대초 판본이라는 사실에 이르면(그리니까 19세기말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춘향전의 주제와 그 의의를 어떻게 봐야 할지 당혹스럽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성립시기에 대한 정확한 특정 없이 막연하게 춘항전을 고소설의 백미이자 민족문학의 고전 운운하는 것은 공허한 수작에 머문다. 가장 유명한 고전이라지만 춘향전에 대해서도 우리가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으며 어디까지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홍길동전도 그렇지만 춘향전도 현재 많은 판본이 나와있다. 그렇지만 춘향전에 대한 여러 의문을 해소시켜줄 만한 판본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한국고전문학전집‘에 아직 빠져 있는 문학동네판을 기다리게 된다. 민음사판이나 책세상판 등이 해소해주지 못한 의문을 풀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면서(문학동네판 홍길동전은 저자를 허균으로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이렇게 늦어지는 건 편집위원들이 춘향전의 난점을 간파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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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이 2019-04-0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춘향전 읽고싶었는데 기다려야겠네요

로쟈 2019-04-05 08:58   좋아요 0 | URL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점심을 먹고 이번주에 강의할 책들을 챙겨서 동네 카페로 나왔다. 카페도 오후가 되어서야 문을 열었는지 아직 먼지 냄새가 가라앉지 않았고 손님도 내가 유일하다. 나오면서 확인하니 기온은 8도. 아직 봄기운보다는 찬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 어제는 저녁무렵 비가 흩뿌리기도 했다. 그렇지만 실내에서 내다보기에는 봄이 완연하다. 이번주에는 아파트단지의 목련들도 만개할 준비를 마칠 듯하다.

길게 느껴지는 한달이었다. 열흘간의 이탈리아여행이 상순에 있었기 때문인데 이후에도 정신없는 날들이 지나가는 통에 마음의 여유를 갖기 어려웠다. 어제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고서야 비로소 정신이 좀 드는 것 같다. 나이와 함께 회복탄력성이 점점 떨어지는 탓이겠다. 그래도 벌써 9월의 영국문학기행을 위한 강의와 준비를 진행하고 있으니 올해도 한달음에 지나갈 것 같다. 길게 느껴지면서도 한순간이라니.

이탈리아여행 뒤풀이격으로 주문한 책들을 내주면 다 받아보게 된다(여행 전후로 구입한 책이 수십 권이다). 여행은 준비도 필요하지만 막상 현지에서의 경험과 느낌으로 촉발된 과제를 처리하는 것도 중요해보인다. 단테와 르네상스, 그리고 프리모 레비는 물론이고, 이번 여행의 과제는 아니었지만 숙제로 떠안고 온 마키아벨리와 그람시까지. 이번에 볼 수 있었던 미술작품들 덕분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에 대해 친숙한 느낌을 갖게 된 것도 보람이다.

그중 사후 500주년을맞은 다빈치에 대해서는 여행 전에 <인포크래픽, 다빈치>만 구입하고 채 읽지못한 상태였는데 이번에 월터 아이작슨의 평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왔고 쟁여두기만 한 책으로는 발레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방법 입문>까지 두루 읽을 거리가 생겼다. 다빈치의 인생에서 중요한 도시는 피렌체나 밀라노 외에도 프랑스 파리를 꼽을 수 있을 텐데 아직 확정된 건 아니지만 내년가을 프랑스문학기행 때 루브르를 찾는다면 (다들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온다는) ‘모나리자‘도 직접 보게 될지 모르겠다. 다빈치에 대해서는 그때까지 쉬엄쉬엄 읽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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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세 권의 그래픽노블을 나열한 것이다. 그래픽노블의 상시 독자는 아니지만 인물이나 역사를 다룬 책들은 관심도서다.

러시아 태생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는 비탈리 콘스탄티노프의 <도스토옙스키>(미메시스)는 평전 대용이다. ‘대문호의 삶과 작품‘이 부제다. 봄학기에 도스토옙스키 강의도 있기에 흥미롭게 읽어볼 참이다.

파뷔엥 뉘리와 티에리 로뱅의 <스탈린의 죽음>(생각비행)은 프랑스 그래픽노블. 스탈린 사후 벌어진 권력암투를 실제 사실과 상상을 섞어서 재구성하고 있다고. 책이 나오자마자 201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한다. <스탈린의 죽음>(아만도 이아누치 감독).영화도 찾아봐야겠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다룬 그래픽노블도 나왔다. 켄 크림슈타인의 <한나 아렌트, 세번의 탈출>(더숲). 아렌트의 생애를 다룬 최초의 그래픽노블로 전문가들로부터도 추천받은 책이라고 한다. 여성 사상가에 대한 그래픽노블로는 케이트 에번스의 <레드 로자>(산처럼) 옆에 놓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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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0 2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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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30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31 16: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31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마음 2019-03-3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나온 석영중교수의 매핑 도스토예프스키를 사고 이 책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선생님 올해 내신다고 하신 도스토예프스키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로쟈 2019-03-31 19:45   좋아요 0 | URL
네, 숙제 중 하나입니다.^^;

2019-03-31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31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