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에 나온 과학서도 많이 밀려서 막간을 이용해 살펴보고 있는데 대략 댓권 정도는 이번 여름에 소화하려 한다. 그 중 하나로 저명한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느낌의 진화>(아르테)가 있다. 제목만으로도 ‘느낌‘이 오는 책. 대략의 소개는 이렇다.

˝다마지오는 감정이 의사 결정이나 행동, 의식, 자아 인식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그의 핵심 주장을 진화적 관점에서 논한다. 그는 생명의 탄생부터 인간 문명의 발달에 이르기까지 긴 진화적 과정 동안 느낌과 감정이 생명 유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원제, ‘만물의 놀라운 순서: 생명, 느낌, 그리고 문화의 형성The Strange order of things: life, feeling, and the making of cultures’이 보여 주는 바, 생명과 문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진화해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우리가 고려해야 할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다.˝

번역본이 나오자마자 원서도 주문해서 지금은 같이 보고 있는데 느낌과 감정에 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다마지오는 느낌을 항상성과 관련하여 이해한다. ˝느낌은 마음에 표상된 항상성이다. 느낌에 가려진 채 작용하는 항상성이라는 기능은 초기의 생명 형태와 오늘날 몸과 신경계의 놀라운 협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다.˝(15쪽) 느낌에서 마음으로, 다시 마음에서 문화와 문명의 축조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기술이 흥미롭게 전개될 듯싶다.

나란히 읽을 책은 조지프 헨릭의 <호모 사피엔스, 그 성공의 비밀>(뿌리와이파리)이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김영사)를 읽은 독자라면 그 각론으로 손에 들 수 있겠다. 그리고 리처드 프럼의 <아름다움의 진화>(동아시아)는 성의 진화에 대한 최신의 서술로 눈길을 끈다. 적어도 이 정도는 읽어주면서 여름을 맞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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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여러 명의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조사와 궁리를 하는데 어제오늘 관심을 갖게 된 작가는 영국의 크리스토퍼 이셔우드(1904-1986)다. 영국 태생이지만 1946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했기에 말 그대로 영미 작가다.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1935)와 <베를린이여 안녕>(1939), 2권으로 이루어진 대표작 ‘독일 이야기‘가 1930년대에 발표된 소설들로 영국작가 이셔우드의 작품이라면 영화로 널리 알려진 <싱글맨>(1964)은 미국작가 이셔우드의 소설이다. 적잖은 작품을 쓴 다작의 소설가이지만 대표작은 이 세 편으로 보이고 국내에도 그렇게 소개되었다.

지난주까지 영국 현대작가들에 대한 강의를 끝내면서 자연스레 다음 강의에 대한 구상도 해보게 되는데, 영국의 20세기 대표 여성작가들을 다루는 게 한 가지 선택지라면, 이셔우드와 같이 중요 작가로 국내에도 작품이 제법 소개된 작가들을 몇 명 묶는 게 또다른 선택지다. 당장은 이셔우드만 물망에 올려놓았다. 혹은 도시를 배경으로 작품들을 묶을 때 ‘베를린 이야기‘는 따로 떼어낼 수도 있겠다. 이미 겨울까지는 강의 일정이 정해졌기에 다룬다면 내년 일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낯선 작가들과 만나는 일이 언제부턴가 나의 일이 되어버렸다(술자리를 즐기지 않으니 따로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희소하다). <구토>의 로캉탱이 그렇듯이 나는 주로 죽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친하다(오늘만 하더라도 토머스 하디의 전기를 주문했다). ‘싱글맨‘이란 제목을 보니 나도 같은 과에 속하는 건 아닌가 싶어 잠시 감상에 젖는다. 며칠 안 남은 봄밤이 그렇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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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0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9 0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문학 강의에서 주로 다루는 건 근대소설이다. 자연스레 ‘근대‘와 ‘소설‘이 각각 어떻게 탄생하고 변모해나가는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근대의 형성과정은 복합적이지만 나는 홉스봄의 견해에 따라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영국)과 시민혁명(프랑스)이라는 이중혁명의 결과로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장기 19세기는 1789년에서 1914년까지이며 유럽 근대문학사는 이 시기 문학의 역사를 해명해야 한다.

근대 형성의 여러 지표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철도와 기차의 등장이다. 증기기관차에서부터 고속철도의 등장까지 철도의 역사는 곧바로 근대화의 역사가 된다(한국에서라면 1905년 경부철도의 개통이 중요한 분기점이다. 식민지 근대의 서막이었다). 근대소설에서도 철도와 기차가 나오는 장면들이 자연스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에밀 졸라도 루공-마카르 총서의 한권을 철도에 할애한다. <인간짐승>의 주인공이 기관사인 것은 그 의도의 결과다). 근대소설에 대한 이해에 철도의 역사에 대한 참조가 필수적인 것은 그 때문이다.

철도의 역사를 다룬 책이 몇권 나와있지만, 크리스티안 월마의 <철도의 세계사>(다시봄)은 ‘결정판‘으로서 의미가 있다. ‘철도는 어떻게 세상을 바뀌놓았나‘가 부제. 각 대륙과 각국의 철도 역사를 망라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시야에서 변화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해준다. 이 주제의 책들을 참고한다면 소설에서 철도가 나오는 장면들이 다르게 읽힐 것이다(러시아문학 가운데서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크로이체르 소나타>, 그리고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등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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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5-26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나카레니나의 기차와 역은 소설보다는 영화장면으로 떠올라 소설을 읽으면서도 영화에 의해 지배받았던 것 같아요 수증기와 두꺼운 외투 큰 가방 추위로 젖은 눈(eye) 흑백의 러시아..가짜에 의해 진짜가가려져버린걸까요는ㅎㅎ

로쟈 2019-05-26 23:05   좋아요 0 | URL
그레타 가르보를 떠올리게 되네요.^^
 

헤겔 전공자의 흥미로운 책이 나왔다. 남기호 교수의 <헤겔과 그 적들>(사월의책). 제목부터 칼 포퍼의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패러디하고 있는데, 요지 역시 헤겔에게 들씌어진 그와 같은 오해를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포퍼는 열린사회의 적들로 플라톤과 헤겔, 마르크스를 꼽았었다. 전체주의 사회의 철학적 원흉들이라는 것.

비단 포퍼만의 견해는 아닌데 프로이센의 ‘국가주의 철학자‘라는 게 헤겔의 전형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헤겔 당대의 철학적 논쟁 상황을 복원하여 헤겔의 입장이 과연 무엇이었던가를 다시 검토한다. 주로 다루는 것은 헤겔의 <법철학 개요>를 둘러싼 논쟁이다.

헤겔 철학의 한 국면을 자세히 다룬 책이어서 곧장 읽기에는 난점이 있는데 미리 저자가 옮긴 헤겔 입문서 <헤겔: 생애와 사상> 정도를 참고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헤겔과 마르크스를 겨냥한 <열린사회와 그 적들2>(민음사)도 오랜만에 다시 들춰볼 수 있겠고. 유감스럽게도 포퍼의 책은 아직도 개정되지 않았다(표지갈이 해서 다시 나온 1권과 견주더라도 2권은 방치상태다). 독자 입장에서는 방조자들이야말로 칼 포퍼의 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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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스포츠 기사부터 읽게 되는 아침 뉴스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번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를 수상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개인으로서도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흔한 표현으로 한국영화의 쾌거다(아시아권의 중국이나 일본, 태국 감독들의 수상 전력에 견주면 다소 늦은 수상이더라도 말이다). 더 반가운 것은 이번 영화가 오랜만에 국내에서 찍은 ‘한국 영화‘라는 것. 봉준호 영화의 간단한 필모그라피는 이렇다.

플란다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마더(2009)
설국열차(2013)
옥자(2017)
기생충(2019)

이 가운데 나는 ‘설국영화‘를 보고 처음 실망했고 ‘옥자‘는 아예 보지 않았다. 봉준호 영화가 엉뚱한 길로 빠졌다는 느낌이었다(봉준호 영화의 암중모색 10년으로 여겨진다. 지난정권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감독의 불가피한 우회로도 보인다). ‘기생충‘은 시놉시스만으로도 다시 궤도를 찾았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결과도 세계의 인정을 받을 만한 쾌작이어서 다행스럽다(모처럼 영화관을 찾을 일이 생겼다).

한국영화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 봉준호 감독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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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5-2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봉감독의 첫단편 <지리멸렬>을 인상적으로 봤어요. 그런 풍자와 상징을 계속 보고 싶네요!

로쟈 2019-05-31 07:24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저는 아직 못본듯. 한번 봐야겠어요.~

phlipismine 2019-05-3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고로, 깐느의 경우 그랑프리(Grand Prix)는 심사위원 대상(Grand Prix du Jury)라고 예전에 불렸고, 지금은 그냥 그랑프리인데 2등상입니다. 올드보이가 그랑프리이죠.

봉준호가 받은 황금종려상(Palme d‘Or)이 1등상입니다.
보통은 그랑프리가 1등상이라 많이들 틀리는 부분이죠 ㅎ

로쟈 2019-05-31 07:23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이네요.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