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W. G. 제발트의 작품 두 편이 새 장정으로 다시 나왔다. <이민자들>과 <토성의 고리>(창비)다. 지난해 여름 제발트의 작품을 강의할 때는 <이민자들>이 품절이어서 강의 목록에 포함시키지 못했었다. 제발트의 작품은 중편소설집 <이민자들>과 세 권의 소설(<현기증. 감정들><토성의 고리><아우스터리츠>) 외에 강연집(<공중전과 문학>)과 산문시집(<자연을 따라. 기초시>)과 산문집(<캄포 산토>)까지 대부분 출간된 상태다. 이 가운데 소설 네 권과 <공중전과 문학>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이민자들>과 <토성의 고리>는 개정판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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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기증.감정들 (반양장)
W. G. 제발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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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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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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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과 문학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6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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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자 에마누엘 레비나스 선집의 하나로 대담집 <우리 사이>(그린비)가 출간되있다. 주저 <전체성과 무한>에 뒤이은 것인데 읽는 순서로는 먼저 읽어볼 만하다. 아무래도 대담집이 접근과 이해에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레비나스를 열심히 읽던 게 20년 전이다. 지난 세기말에 대학원생이면서 초년 강사시절에 탐독하면서 강의중에도 그의 타자 철학을 자주 들먹였던 것 같다. 국내에서도 레비나스 수용 초창기였다. 이제 20년이 지나고 예전보다 훨씬 많은 책들이 나왔기에 독서 여건은 좋아졌다. 하지만 예전만큼의 열의는 갖게 되지 않는다. <우리 사이>도 진작에 영어본을 구한 책이지만 지금은 어느 구석에 꽂혀 있을지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당장 내일모레 강의할 책도 못 찾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 다시 손에 든다면 <전체성과 무한>을 들고 씨름하기보다는 <우리 사이>를 손에 들고 산보에 나서는 것이 훨씬 낫겠다 싶다. 레비나스 입문서에 해당하는 책으로는 최근에도 박남희의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세창출판사)가 나왔는데 처음 읽을 독자들을 겨냥한 책으로 보인다.

아예 콜린 데이비스의 <처음 읽는 레비나스>(동녘)처럼 대놓고 입문서를 자처하는 책도 있다. 원저는 영어권의 대표 입문서로 20년 전에 열독한 책이었다. 번역본은 두 종이 있는데 앞선 것은 오류가 많았다. 뒤에 나온 책도 갖고 있지만 이때부터는 유심히 보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와의 관련으로도 다시 읽어볼까 싶다. <우리 사이>를 보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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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11: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3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방강의차 아침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중이다. 이 시갼의 버스승객은 대부분 지방캠퍼스로 통학하는 대학생들이다. 짐작엔 유일하게 거기 껴 있는 1인. 평소보다 1시간 일찍 일어나서 집을 나서기에 보통은 수면모드가 된다. 잠들기 전에 눈에 띈 신간을 챙겨놓는다. 가이 스탠딩의 <불로소득 자본주의>(여문책)다. 저자는 지난해 <기본소득>(창비)을 통해서 이름을 익히게 된 경제학자다.

<불로소득 자본주의>의 원제는 ‘자본주의의 부패‘. 부제가 ‘부패한 자본은 어떻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가‘다. 제목과 부제만 봐서는 남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소개를 보니 부패한 자본가들 얘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부패 얘기다.

˝개인이나 기업의 부패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이상으로 여겨졌던 자유시장의 유례없는 부패, 즉 경제가 어떻게 유산자(불로소득자)들에게 점점 이익을 안겨주는 반면에, 노동을 통해 얻는 소득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요컨대 ‘부패한 자본‘이란 말의 중의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음미할 필요가 있다. 한쪽에는 부패한 자본가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부패한(불의한) 자본주의가 있다. 따라서 필요한 싸움은 이중의 싸움이다. 부패한 자본가들과의 싸움도 힘겨운 싸움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놓쳐서는 안된다.

하지만 일단 발등의 불은 한국 자본주의의 부패한 자본가들이다. 이들과 결탁해온 부패한 권력이다. 당장 고 장자연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조선일보 사주일가다. 아침뉴스를 보니 핵심 당사자가 방정오 전 TV조선 대표로 특정되고 있다(조만간 ‘장자연 사건‘은 ‘방정오 사건‘으로 불리게 될지도). ‘부패한 언론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는가‘를 다룬 책도 나옴직하다. 나왔던가? 그랬더라도 ‘업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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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03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3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3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4-03 1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지그문트 바우만 읽기‘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다. 담당자의 낙관 덕분에 신청이 저조함에도 폐강되지 않았다(하지만 다음 강의를 기획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겠다). 아무래도 바우만은 경계가 모호한 듯싶다. 대중적이라고 하기엔 어려운 학자이고 전문적이라고 하기엔 또 대중적인 ‘현자‘이기에.

인디고연구소가 기획한 인터뷰 <희망, 살아있는 자의 의무>(궁리)가 다음주까지 읽을 책이고 이어서 말년작인 <레트로토피아>(아르테)와 초기작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를 다음달까지 차례대로 읽는다. 워낙 다작의 사회학자라 유토피아라는 주제에 한정하여 책을 고른 것(<레트로토피아>의 출간이 계기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바우만 강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오래전에 대학의 교양강의예서(‘현대사회의 이해‘인가 그랬다) 교재 가운데 하나로 <액체 근대>(길)를 다루었기 때문이다(수주 동안 읽은 듯하다). 거의 십년 전의 일인 듯싶다. 그간에 바우만 책은 특히 2012년 이후에(<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이후다) 쏟아지다시피 출간되었기에 읽을 책이 너무 많다. 그나마 2017년 타계한 그를 기리며 기획된 <지그문트 바우만을 읽는 시간>(북바이북)이 길라잡이가 되는 책.

거기에다 개정판으로 이번에 다시 나온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동녘)가 다시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부 오역도 교정했다고 하므로 이미 읽은 독자라 하더라도 재독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앞서는 <희망, 살아남은 자의 의무>와 같은 해에 출간되어 인터뷰에서도 언급된다. 다음주 강의는 그 대목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새로 나온 개정판을 나도 주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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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회학 전공자‘라는 프로필의 정보밖에 없어서 저자의 포지션에 대해 가늠하기 어렵다. <타락한 저항>(교유서가)이란 얇은 책이 ‘우리 안의 반지성주의‘를 겨냥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는데, 목차에서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2000년대 이후 한국사회의 반지성주의를 논하기 위해 저자가 고른 세 가지 열쇳말(괄호안은 정치 진영)이 ‘블랙리스트‘(보수우파), ‘나꼼수 현상‘(중도우파), ‘메갈리아‘(진보좌파)라고 해서다.

저자는 반지성주의를 ˝알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상태˝라고 정의하는데(수포자는 수학의 반지성주의자다) 다른 건 몰라도 권력의 문화예술계에 대한 불법적 통제를 가리키는 ‘블랙리스트‘가 그에 해당하는가? 저자가 나꼼수와 메갈리아를 나란히 비판의 도마에 올려놓은 것은 그들이 ‘피해자‘이되 ‘지배하는 피해자들‘이라서다. 한데 블랙리스트는? 블랙리스트의 피해자들 역시 ‘지배하는 피해자들‘인가? 정리해서 ‘블랙리스트=나꼼수=메갈리아=반지성주의‘라는 게 저자의 주장인가? 그게 아니라면 블랙리스트는 뭔가 저자의 의도와는 잘 맞지 않는 열쇳말이라는 생각이다.

더불어 반지성주의는 우리말의 부정적 어감과는 달리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반지성주의가 자칫 반권위주의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바로 거기에 반지성주의의 힘이 있다. 반지성주의이면서 반엘리트주의. 반지성주의는 자연스레 평등주의를 함축한다. 가령 종교에서의 반지성주의는 사제계급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반권위주의와 만난다. 그것은 몽매주의와는 다른 자가계몽주의다. 

사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반지성주의가 한국어에서 갖는 의미는 주로 그 부정적인 절반에만 한정되기에 반지성주의를 주제로 한 책도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반지성주의는 반권위주의와는 다르고, 또 반엘리트주의와도 다르며... 더불어 좋은 입론을 세우기도 어렵다. <타락한 저항> 역시 그런 예측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동녘) 같은 저자의 다른 책을 기대해봐야 할 것 같다...

*어제 쓴 글인데 페어퍼 등록이 거부되어(알라딘의 금칙어DB 에러라나) 이제서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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