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이 많아서 이틀간 두문불출했는데 그렇다고 크게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해치운 분량이 적지 않음에도 전체적으로는 별로 표가 나지 않는 수준이다. ‘빙산이론‘은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일에서건 우리는 고작 빙산의 일각과 씨름할 따름이다(그게 1/8이다).

머리도 무거운 차에 잠시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다. 경계 너머로? <상상된 공동체>로 유명한 인류학자 베네딕트 앤더슨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경계 너머의 삶>(연암서가). 알고보니 2015년에 유작으로 나온 책이다. 한 성실한 학자의 회고로서뿐만 아니라 그의 대표 저작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참고가 되겠다.

˝이 책은 앤더슨의 외국어 공부의 즐거움, 현장 연구의 중요성, 번역 작업의 희열, 신좌익이 전 세계 학계에 끼친 영향, 후학 양성의 보람, 세계 문학에 대한 애정 등, 세상을 향해 열린 마음으로 살아온 생애를 묘사한다. 그의 저작 중 가장 유명한 <상상의 공동체> 집필의 동인이 된 몇 가지 개념과 영향도 소개하고 있는데, 그 예리하고 독창적인 논의는 민족주의 연구의 틀을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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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 김두식 교수의 대표작 <불멸의 신성가족>(창비)이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2009년에 초판이 나왔으니 10년만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으로 한번 더 여실히 드러난 게 법조계 엘리트들이 장악한 ‘그들의 세계‘다. 덕분에 10년 전보다 책의 시의성이 더 두드러진다.

˝개정판에서는 최근 벌어진 ‘사법행정권 남용‘이 한국 법조계에 던지는 시사점을 정리한 글을 수록하고, 사법시험 폐지와 법학전문대학원 출범 등 초판 출간 이후 법조계에 일어난 주요 변화들을 반영해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그동안 통계나 개인 저술에만 머물던 법조연구의 고무적인 시도이자 일반 시민들에게 멀게만 느껴졌던 법조계의 내부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심층탐구했다.˝

10년 전에 읽은 책이지만 기꺼이 다시 읽고픈 생각이 든다. 비록 <법률가들>(창비)은 아직 숙제로 남겨둔 상태이지만 이런 ‘새치기‘는 불법이 아니라 독서인의 권리다. 혹 10년 뒤에 또 개정판이 나오게 될까? 한국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한 척도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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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인권자문위원 장 지글러는 우리에게 친숙한 저자다. 알다시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갈라파고스) 이후에 그러한데, 정확히 그 짝이 될 만한 책이 나왔다.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시공사). 부제에 있는대로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여서 똑똑한 중학생 정도면 따라갈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이다. 하지만 내용은 자본주의에 무지한 대다수 어른들도 필히 읽어볼 만하다.

˝자본주의가 괴물이 되어버린 지금,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며 다음 세대에 어떤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까. 그러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고 어떤 행동에 나서야 할까. 나를 위해, 우리를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나의 역할을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책 속에 있다.˝

책장을 보니 지글러의 전작 <유엔을 말하다>(갈라파고스)도 눈에 띈다. <왜 검은 돈은 스위스로 몰리는가>(갈라파고스)에 대해선 서평에서 다룬 적이 있다. 어느 쪽이건 이어서 읽어봐도 좋겠다. ‘자본주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아룬다티 로이의 <자본주의>(문학동네)로 넘어가도 좋겠는데 지글러의 책보다는 난이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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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하림 시인의 <김수영 평전>(실천문학사)이 절반된 줄 알았더니 작년말에 개정돼 나왔다. 짐작엔 표지만 바뀌었을 터이지만(내용이 일부 보완되었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다행이다. 현재로선 유일한 평전이기에. 지난달 강의 때 장바구니에만 넣어둔 책으로는 <김수영 사전>도 있는데 여전히 망설이게 된다. 아무리 사전이라지만 보통의 책값이 아니어서다.

거기에 연구서를 한권 더 얹자면(예전 민음사판 전집에는 <김수영 연구>가 별권으로 포함돼 있었다), 현재로선 <살아있는 김수영>(창비)이 최선으로 보인다. 주제별 균형과 안배가 잘 이루어져 있다. 김수영 전집과 함께 이런 공구서들을 갖춘 다음이라면 이제 김수영이라는 갱으로 들어가도 좋겠다. 러스키의 비유대로 독자는 광부니까. 김수영을 캐러 들어가는 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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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2-08 22: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캐고 또 캐다보면 막장에 이를 수 있을까요?
끝이 보이질 않아서~~

로쟈 2019-02-08 22:43   좋아요 0 | URL
보장은 없구요.~
 

엊그제부터 오늘까지 흑사병에 관한 책 세 권을 주문했다. 절판돼 중고본을 주문한 것도 있어서 오늘이나 내일까지 받게 될 듯하다. 관심주제야 매일같이 바뀌기 때문에(매일 새로 생겨난다) 특별할 게 없지만 그래도 왜 흑사병인가.

중세 흑사병이 얼마나 맹위를 떨쳤던가는 지난가을 독일문학기행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각 도시마다 구도심에는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기념물들이 있었다. 한데 흑사병으로 인구가 대폭으로 줄면서 역설적이지만 살아남은 자들이 부유해지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것도 원시적 자본축적의 사례 아닌가. 그와 관련한 좀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서 관련서를 주문한 것(원서도 한권 주문했는데 배송까지는 좀더 기다려야 한다).

가령 필립 지글러의 <흑사병>(한길사)은 당시 유럽 전체 인구의 1/3을 죽음으로 내몬 14세기의 흑사병을 다루는데, 경과도 중요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는 건 결과 쪽이다. 책의 마지막 장들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다. ˝흑사병이 유럽 중세 사회에 가져온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흑사병이 그 이전 이미 시작되고 있던 변화가 가속화되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분명한 것은 만약 흑사병이 없었더라면 14세기 후반의 유럽과 영국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중세사와 관련해서는 십자군전쟁의 여파와 흑사병이 가져온 변화가 최근에 관심을 갖게 된 주제다. 이런 주제만으로도 일주일은 붙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이 유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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