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오타가 아니다. ‘읽기 위하여‘가 아니리 ‘읽히기 위하여‘다. 백화점 겨울학기 강의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라캉의 <에크리>가 화제가 되었는데(일차적으로는 두께와 가격 때문에), 한 분이 선물하기 좋은 책이라고 하셨다. 이 경우 ‘읽기 위하여‘와 ‘모셔 두려고‘와는 구매 동기가 다른데, 특히 자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란다. 가령 싫어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고 ˝다 읽고 나면 보자!˝라고 인사하는 것(굉장히 제한적일 테지만 시어머니에게 선물로 드려도 좋은 책이 <에크리>다).

조금 응용하자면 <에크리> 외에 두 권의 <세미나>도 그런 용도에 값하겠다. 내가 읽으려는 책이 아니라 그들에게 읽히려는 책. 싫어하는 사람에게 읽힌다고 했으니 적들에게 읽힌다고 해도 되겠다. 관점을 바꾸면 책의 의의도 달라진다. 읽으려고 하면 암담하지만 적들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라면 이만한 책이 있을까. 이 경우 어줍잖은 해설서들은 적을 이롭게 하기에 필히 피해야 한다(적들이 모르게 하라!). 원저인 불어본이나 영역본을 추천하는 것까지는 괜찮다(어차피 프랑스인들도 못 읽는다는 불어본이니까).

오늘 한겨레의 기사를 읽으니 <에크리>는 초판 1000부를 찍었다고 한다. 유효독자를 감안한 것이면서 번역의 수정을 대비한 것이리라. 명절 선물용 소갈비 한짝이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그에 준하는 선물로 몇 권 구입해놓아도 좋겠다. 나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해서 한권만 구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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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과학서로 꼽을 만한 마이클 셔머의 <천국의 발명>(아르테)에 대해서도 짧은 서평을 읽었다. 저자의 전작이나 이력을 생각하면 ‘사후세계, 영생, 유토피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라는 부제에서 저자의 의도와 결론까지도 가늠이 되는 책. 물론 독서의 즐거움은 직접 읽어봐야 얻게 되지만.

˝정말로 천국이 있다면 가기 싫다는 사람이 있을까? 종교가 있든 없든 사람들은 여전히 사후 세계의 존재를, 그리고 가급적 현실보다 나은 사후 세계를 바란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과학적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 박사는 이런 인간의 사후 세계에 대한 강박관념을 과학적으로 탐구한다. 그러면서 인문과 과학, 진중함과 날카로움, 유머러스함을 시종 넘나들며 ‘죽음 뒤에 그곳’에서의 행복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삶의 목적을 이뤄야 할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한다.˝

셔머는 과학잡지 ‘스켑틱‘을 창간한 대표적 ‘과학적 회의주의자‘다(‘과학적‘이란 말이 붙는 건 ‘철학적 회의주의자‘를 의식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스켑틱‘은 몇년 전부터 한국판도 나오고 있다. 대체로 종교적 맹신이 아직 과도하게 판을 치는 한국사회에서 합리적 회의주의의 자세는 그 자체로 미덕이 된다. 꾸준히 번역되는 편이지만 많이 읽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는 셔머의 책들에 응원을 보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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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은 아니지만 격주로 종이신문을 읽는다. 격주로 지방강의에 내려가면서 서울역 매점에서 한겨레를 손에 드는데 금요일자에는 ‘책과 생각‘이 실리기 때문. 대개 이미 구한 책이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의 서평을 미리 읽어보거나 더 구해볼 만한 책의 목록을 작성하는 용도다. 지난해 작고한 김진영의 깅의록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포스트카드)는 전자에 해당한다. ‘김진영의 벤야민 강의실‘이란 부제가 말해주듯 벤야민 강의록이다. 서평은 한상원 충북대 교수가 쓰고 있는데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에디투스) 저자다.

한때 인문독자들 사이에서 벤야민 열독 열풍이 분 적이 있다. 기억엔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번역돼 나올 무렵인데 지금은 언제적 기억인가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벤야민과 아도르노의 문학비평에 관해 기본적인 관심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라면(나도 그에 해당한다) 이런 책이나 서평에 눈이 간다. 지난달에 벤야민의 카프카론도 강의에서 다룬 터라 좀더 본격적으로 벤야민 전투에 나설 생각도 있지만 현재의 여러 상황(강의준비와 책이사)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도 여유가 생긴다면 벤야민의 역사철학은 가장 먼저 다시 검토해볼 참이다. 이전에 읽은 책들도 있고 그 사이에 더 나온 책들도 있기에. 그러고 보니 역사철학을 주제로 한 강의도 계획해볼 만하다.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나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등 나대로 강의에서 다룬 역사서들이 여럿 된다. ‘문학과 역사‘를 주제로 한 강의도 몇 차례 진행한 바 있으니 낯설지 않은 주제다. 벤야민도 그렇고 내년봄으로 기획하고 동유럽문학기행 준비와 관련하여 루카치의 <역사와 계급의식>도 탐독해봐아겠다. <희망은 과거에서 온다>를 읽으며 견적을 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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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2019-02-2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일간지 북코너가 가장좋을까요?

로쟈 2019-02-22 23:26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를 싣고 있어서 주로 한겨레를 봅니다.

로제트50 2019-02-2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토욜 출근하면 일간지 북코너
훑어보는데, 요즘은 동아일보요...
새책 정보가 쪼금 빠르고 해설도
괜찮고. 한겨레는 넘 길어서
지쳐요 -.-

로쟈 2019-02-22 23:27   좋아요 0 | URL
서평은 좀 길어도 된다고 보는 쪽이라. 길어야 20매가 안 되고요.~

wingles 2019-02-23 0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철학과 문학을 연결한 강의 원츄입니다! 내년 봄까지 목빼고 기다릴수 있어요!
 

강의 공지다. 4월 1일부터 5월 27일까지 8주에 결쳐서 매주 월요일 저녁(7시30-9시30분)에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지그문트 바우만 읽기' 강의를 진행한다. 국내에 다수 소개돼 있는 바우만의 저작 가운데 이번 강의에서는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궁리)와 함게 <레트로토피아>(아르테)와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오월의봄) 세 권을 차례로 읽을 예정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문의는 02. 3279. 0900).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지그문트 바우만 읽기: 레트로토피아와 유토피아


1강 4월 01일_ 공동선과 새로운 윤리: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1)



2강 4월 08일_ 공동선과 새로운 정치: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2)



3강 4월 15일_ 향수의 시대: <레트로토피아>(1)



4강 4월 22일_ 불평등으로의 회귀: <레트로토피아>(2)



5강 4월 29일_ 자궁으로의 회귀: <레트로토피아>(3)



6강 5월 13일_ 유토피아와 현대사회: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1)



7강 5월 20일_ 유토피아의 구조: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2)



8강 5월 27일_ 문화로서 사회주의: <사회주의, 생동하는 유토피아>(3)



19.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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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도 되먹임(피드백) 법칙이 작동하여 읽으면 읽을 수록 읽을 책이 더 많아진다(거꾸로 읽지 않기 시작하면 읽을 책도 줄어든다. 음의 되먹임이다). 이런 되먹임 작용에 의한 과부하를 어떻게,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 않는데, 여하튼 아직은 읽을 책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무슨 책을 읽든지 거기에 따라붙는 책들이 있어서 그렇다. 독자우환이다.

어제오늘 제발트의 <현기증. 감정들>(문학동네)을 강의에서 다루었는데, 주로 카프카와 제발트의 관계와 두 사람이 북이탈리아 여행 행적이 관심 주제였다. 이와 관련하여 카프카의 가장 중요한 작품은 단편 ‘사냥꾼 그라쿠스‘다(여느 작품와 마찬가지로 그라쿠스 역시 카프카의 분신적인 주인공이다). 카프카 전집에는 물론 수록돼 있지만 여느 선집에는 빠져 있는 작품. 그렇지만 작품의 의의나 주목도에서 보자면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아야 할 정도다. 꼼꼼한 독서를 요구한다는 얘기다.

‘사냥꾼 그라쿠스‘를 수록하고 있는 앤솔로지로는 <카프카, 비유에 대하여>나 <칼다 기차의 추억> 등이 있다. 민음사판 <변신>이 단편집으로서는 가장 많이 읽히지만 아쉽게도 ‘그라쿠스‘는 포함하고 있지 않다. 이런 문제적인 미발표작까지 포함한 단편집이 나오면 좋겠다. 강의의 편의를 위해서도 그렇고 카프카 독서를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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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gles 2019-02-2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렇지 않아도 <비유에 대하여>를 빌려 왔는데요, 책 제목을 ‘단편선’이나 ‘우화’가 아니라 저렇게 붙인건 카프카의 글을 머릿글로 인용한거 때문이겠죠?

로쟈 2019-02-22 23:28   좋아요 0 | URL
비유담이라고도 불러서요. 아직 분류명이 고정되지 않은 듯..

two0sun 2019-02-20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발트는 이번에 다시 읽으니 처음 읽었을 때보다 좋았어요.
따라붙는 책들과 더불어 이렇게 다시 봐야 하는 책들까지.
그저 난감할 따름입니다.~

로쟈 2019-02-22 23:27   좋아요 0 | URL
네, 난감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