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출간된 지젝의 <시차적 관점>(마티, 2009)에 대한 리뷰기사들이 이번주에 올라올 듯한데, 가장 먼저 눈에 띈 고명섭 기자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안 그래도 낮에 도서관에서 책을 좀 읽다가 온 터이다. '시차'(혹은 '시차적 관점')와 함께 핵심적인 키워드는 '변증법적 유물론'이지만, 기사의 타이틀은 "러시아 혁명을 복권하라"고 붙여졌다. 표지에 거꾸로 박힌 레닌 동상과의 조응을 고려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겨레(09. 04. 04) 지젝의 주장 “러시아 혁명을 복권하라”  

<시차적 관점>은 지은이 슬라보예 지젝이 스스로 ‘대작’이라고 부른 책이다. 한국어판으로 840쪽에 이르는 이 최신작(2006)은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 <까다로운 주체> <부정적인 것인 것과 함께 머물기>에 이은 네 번째 주저의 자리에 놓일 만하다. 그는 이 책에서 앞에 쓴 모든 저작의 문제의식을 종합해 변혁의 새로운 출구를 열어 보려고 한다. 출판사에서 붙인 한국어판 부제는 ‘현대 철학이 처한 교착 상태를 돌파하려는 지젝의 도전’인데, 현대 철학의 최전선에서 그가 찾는 것은 철학적 돌파구라는 형식을 빌린 정치적 돌파구다.

이 책은 지젝의 다른 어떤 책보다 까다로운 책이다. 이 책에 대한 추천글에서 테리 이글턴은 그 까다로움과 관련해 “지젝의 글이 가끔 이해가 안 된다면, 이는 그의 생각이 복잡하기 때문이지 결코 잘난 척해서가 아니다”고 말한다. 그런 까다로움은 일차로 이 책의 비체계적 서술에 있다. 지젝은 형식상 3부로 나누어 철학적·과학적·정치적 분석을 하고 있지만, 내용은 서로 겹치고 섞인다. 지젝은 철학·종교·문학·영화·예술, 그리고 온갖 일화와 사례를 동원해 자신의 생각을 풀어 나간다. 그리하여 이 책은 수많은 이야기의 접합으로 이루어진 철학적 콜라주가 된다. 그는 모든 통념·관습·도그마를 분쇄하고자 하고, 더 나아가 도그마에 도전하는 생각들 자체의 맹점을 지적하고 깨뜨리고자 한다. 지젝의 발본적이고 급진적인 사유는 책의 전편에 지뢰처럼 매복해 있다.  

이 책의 출발점은 가라타니 고진의 2001년 저작 <트랜스크리틱-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다. 지젝은 가라타니의 책에서 ‘시차적 관점’이라는 근본 주제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시차적 관점>의 서문에서 지젝은 이렇게 쓴다. “가라타니 고진은 <트랜스크리틱>에서 ‘시차적 관점’의 중요한 잠재력에 대해 주장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가라타니의 기여는 여기서 그친다. 지젝은 가라타니가 제시한 ‘시차적 관점’이라는 근본 발상만 수용할 뿐 그의 나머지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가라타니는 그의 책에서 헤겔을 거부하고 칸트를 사유의 거점으로 삼는데, 지젝은 가라타니와는 반대로 칸트를 기각하고 헤겔을 승인한다. 헤겔주의자답게 그는 헤겔의 사유를 갱신하고 진척시킴으로써 오늘날의 정치적 난국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런 노력의 한 양상이 ‘변증법적 유물론’에 대한 재사유다. 지젝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패퇴해 철학사의 한 장으로 축소돼 버린 것이야말로 전망 부재의 오늘 현실을 보여 주는 철학적 사례로 이해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패배는 마르크스주의 혁명, 더 구체적으로는 1917년 러시아혁명의 궁극적 실패와 같은 선상에 있는 사건이다. 러시아혁명이 실패로 끝남으로써 변증법적 유물론도 함께 매장된 것이다. 지젝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퇴출당하고 난 뒤 좌파적 사유에 남은 것이 ‘부정 변증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이 ‘부정 변증법’은 진정한 혁명을 사고할 수 없다는 치명적 한계를 안고 있다. “부정 변증법은 폭발적인 부정성 및 ‘저항’과 ‘전복’에 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들과 사랑에 빠졌으나, 정작 그 자신이 기존의 (현실) 질서에 기생하게 되는 일만은 극복할 수 없다.” 부정 변증법만으로는 현실의 극복과 재건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런 이유로 지젝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복권을 주장하는데, 그것은 다시 러시아 혁명의 긍정적 핵심을 복권시키는 일과 연결된다.

그렇다고 해서 지젝이 과거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의 발상은 러시아 혁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 근본적 이유를 따져 보고 거기서부터 다시 새로운 길을 찾는 데 있다. 그런 사유를 요약한 말이 ‘시차적 관점’이다. 여기서 ‘시차’(視差, parallax)란 천문학에서 쓰이는 용어를 빌려온 것인바, 관찰자의 위치가 바뀜에 따라 별자리가 달라지는 것을 가리킨다. 동일한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주체가 어떤 위치에서 보는냐에 따라 그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는 것이 바로 시차이며, 이런 근본적인 차이를 낳는 관점이 ‘시차적 관점’이다.  

지젝이 사례로 제시하는 것이 러시아 10월혁명 때 함께했던 혁명가 레닌과 모더니즘 예술가들의 경우다. 화가 말레비치나 시인 마야콥스키 같은 전위예술가들은 혁명 초기에 열광적으로 레닌의 혁명을 찬양했다. 그러나 이 예술가들은 1920년대 이후, 특히 스탈린 시대에 모두 제거되거나 좌절하고 말았다. 이것은 스탈린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스탈린에 앞서 레닌과 전위예술가들 사이에 있었던 근본적인 ‘시차적 관점’의 결과라는 게 지젝의 주장이다. 레닌이 좋아한 것은 고전 예술이었다. 그는 결코 전위예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전위예술가들은 낭만적인 혁명 열정은 좋아했지만, 그 뒤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동일한 사태에 대한 이 다른 시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가 혁명을 다시 사유하는 데 관건적인 문제라고 지젝은 말한다. 이 책은 그런 생각에 대한 아주 긴 설명이다.(고명섭 기자) 

09. 04. 03.


댓글(0) 먼댓글(1)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헤겔-라캉주의와 변증법적 유물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04 00:17 
    <시차적 관점>(마티, 2009)의 리뷰기사를 옮겨놓은 김에 서문(번역본에서는 'introduction'을 음악용어인 '서주'로 옮겼다. 중간에 나오는 '간주'들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일 것이다) 번역에서 의견이 다른 부분들을 지적해두고 싶다(이런 '품앗이' 교정이 방대한 분량의 이론서를 깔끔하게 우리말로 옮긴 역자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는 나대로의 방식이다). 한 가지 핵심적인 사안과 몇 가지 사소한 부분이다.   
 
 
 
4월은 잔인한 달

이번달 <고교 독서평설>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엘리엇의 시 <황무지>에 대한 갑론을박을 다루었는데, 아주 오랜만에 시와 함께 관련논문을 10편쯤 읽고서 작성한 것이다.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 흥미로웠고 이해의 가닥을 나름대로 잡을 수 있었다. 제목엔 '깊이 읽기'란 말이 들어갔지만, 실제로는 '깊이 읽기'를 위한 심호흡이자 워밍업 정도이다. 여유가 되면 나중에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다(물론 더 편하고 더 좋은 건, 그렇게 본격적으로 다룬 글을 찾아 읽는 것이지만).   

고교 독서평설(09년 4월호) 유명한 시? 난해한 시! - T. S. 엘리엇의 『황무지』 깊이 읽기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아마도 20세기 영시 가운데 가장 유명한 구절이 아닌가 싶은 T. S. 엘리엇(1888~1965)의 『황무지』(1922) 서두다. 그런데 이 시의 모순은 현대시의 대명사라 불릴 정도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는 너무도 난해하다는 데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시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시, 과연 우리는 『황무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황무지』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잔인한 달’을 맞이하여 『황무지』의 세계로 잠시 들어가 보자. 



문학 소년, 엘리엇
먼저, 시인 엘리엇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엘리엇은 1888년 미국 미주리 주(州)의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유니테리언의 저명한 목사였고,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근엄한 분위기에 종교적·도덕적 책임을 중요시하는 가풍은 어린 시절 엘리엇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엘리엇은 선천성 탈장증을 앓는 약골에다 내성적이어서, 자연스레 어릴 때부터 야외 활동보다는 독서에 열중했다. 아마추어 시인이었던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문학의 세계로 이끌었다. 엘리엇은 10대 때부터 시작(詩作)에 재능을 보였는데, 특히 저명한 시인들의 시를 모방하고 패러디하는 데 장기가 있었다. 나중에 그가 쓴 『황무지』에 수많은 인용과 인유가 사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뒤 하버드 대학에 진학한 엘리엇은 고대와 중세 철학, 그리스 문학, 영문학, 불문학, 비교 문학 등을 두루 공부하고, 영국으로 건너가 철학자 브래들리(1846~1924)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그는 ‘개개인의 무질서한 파편적 경험이 어떻게 질서 정연한 세계로 인식될 수 있는가’에 관심을 가졌고, 자신의 시작 활동도 절대적 질서를 추구하는 여정으로 간주했다. 그런 배경 아래 1927년에는 영국으로 귀화하고, 종교도 영국 성공회로 개종했다. 자주 인용되는 그의 말을 빌리면, 엘리엇은 “정치에서는 왕당파, 문학에서는 고전주의자, 그리고 종교에서는 영국 국교회 신자”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장 배경과 경력이 『황무지』를 읽는 데 참고는 될지언정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엘리엇의 독특한 성격과 관련이 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황무지』의 방대한 초고를 1/3로 줄여서 지금의 분량으로 만들어 준 선배 시인 에즈라 파운드(1885~1972)는 그에게 ‘늙은 주머니쥐(Old Possum)’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엘리엇은 『황무지』를 파운드에게 바치며 그를 ‘더 나은 예술가’라고 불렀다.). 엘리엇 스스로도 그 별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는데, 주머니쥐는 공격을 받으면 죽은 체하고 있다가 위험이 없어지면 다시 움직인다고 한다. 이런 ‘주머니쥐’ 성격은 엘리엇의 시와 시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도 그런 경우 아닌가.  



『황무지』 깊이 읽기
엘리엇은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을 비판하면서, 이 작품에서는 상황들이 구체적인 이미지로 형상화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햄릿의 주관적 감정을 표현해 주는 객관적 상관물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객관적 상관물은 비물질적인 의식이나 감정을 시각화하고 공간화하는 작업의 산물이다. 엘리엇의 초기 시인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의 한 대목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수술대 위에서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처럼
저녁이 하늘을 배경으로 널브러져 있을 때.
When the evening is spread out against the sky
Like a patient etherized upon a table.


무기력한 ‘저녁’이라는 시간이 “수술대 위에서 에테르로 마취된 환자”에 비유되고 있는데, 이렇게 구체적인 이미지로 시각화한 대응물이 바로 객관적 상관물이다. 엘리엇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전통)를 환기하는 방법을 통해서 유동적인 현재의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고정시키려 했다. 가령 『황무지』의 한 가지 에피소드를 보자. 

거기서 나는 낯익은 자를 만나 소리쳐서 그를 세웠다 :  스텟슨!
자네 밀라이 해전 때 나와 같은 배에 탔었지!
There I saw one I knew, and stopped him, crying : ‘Stetson!
‘You who were with me in the ships at Mylae! 



화자는 20세기 런던의 한 중심가에서 우연히 만난 한 사람(스텟슨)에게 말을 붙이면서 ‘밀라이 해전’ 때의 인연을 상기시킨다. 기원전 260년에 벌어진 이 해전은 제1차 포에니 전쟁 초기에 로마군이 카르타고 해군에 대승한 전투를 가리킨다.  

다른 상징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시적 진술은 기본적으로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병렬적으로 제시하려는 시적 전략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전략은 과거의 사건을 통해 현재를 제시함으로써, 지금의 상황을 보다 잘 해명해 주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현재 사건의 충격을 완화하거나 은폐하는 역할도 한다. 『황무지』의 많은 서술과 비유, 인용 들이 독자에게 모호하거나 무질서하게 여겨지는 것은 그런 은폐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3장 「불의 설교」 끄트머리의 병치를 보라.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

불이 탄다 탄다 탄다 탄다.
오 주여 당신이 저를 건지시나이다.
오 주여 당신이 건지시나이다

탄다.
To Carthage then I came

Burning burning burning burning
O Lord Thou pluckest me out
O Lord Thou pluckest

burning

엘리엇이 직접 붙인 주석에 따르면, “카르타고로 그때 나는 왔다”라는 구절은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고백록』에서 인용한 것이다. 그리고 “불이 탄다 탄다 탄다 탄다”는 부처의 ‘불의 설교’에서 가져온 것이다. 엘리엇은 동서양을 대표하는 금욕주의자의 말을 이 대목에서 고의적으로 병치시켜 놓는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적 의미가 창출되거나 강화되리라고 본 듯하다(곧 기독교와 불교의 교리를 통합하고자 한다!).  

하지만 『황무지』 전체에 걸쳐 가장 두드러지게 사용된 이 병치 기법이, 의미를 수렴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발산시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시의 무질서에서는 어떤 의미 있는 질서를 도출해 낼 수 없으며, 그 무질서 자체가 이 시의 질서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두 5부로 구성된 『황무지』는 각 부의 인과성이나 연결성이 미약하기 때문에 아예 시작과 끝을 바꾸어도 상관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렇다면 이때 우리 앞에 놓인 『황무지』는 ‘이야기’가 없는 시다. 이야기의 파편들만 있을 뿐, 전체를 통합해 주는 ‘이야기’가 부재한다는 뜻이다. 흔히 이 작품을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세계의 황폐함과 정신적 불모 상태를 묘사하면서 소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노래하고 있는 시’로 이해하는 것과는 정반대되는 시각이다.  

이 두 가지 입장이 각각 모더니즘적 이해와 포스트모더니즘적 이해이다. 전자는 『황무지』의 파편성과 다양성, 무질서가 어떤 통합적 질서로 수렴된다고 보는 반면, 후자는 우리가 『황무지』에서 읽는 것은 ‘통합되지 않는 다양성’뿐이라고 말한다. 또 『황무지』를 모더니즘 시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창작의 기원으로서 시인의 우월한 권위를 인정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 시로 이해하는 입장에서는 작품을 창조하고 의미를 주재하는 시인의 존재를 부정한다. 곧 작품 해석에서 모더니즘은 시인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은 독자에게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황무지』의 등장인물 티레시아스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결부된다.

비록 눈이 멀고 남녀 양성 사이에서 털털대는
시든 여자 젖을 지닌 늙은 남자인 나 티레시아스는 볼 수 있노라
I Tiresias, though blind, throbbing between two lives,
Old man with wrinkled female breasts, can see


티레시아스(테이레시아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남녀 양성의 인물로 테베(테바이)의 눈먼 예언자다. 엘리엇은 그에 대해서 이렇게 주석을 달았다. “티레시아스는 단순한 방관자이고 등장인물은 아니지만, 이 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다른 모든 등장인물을 통합하고 있다. …(중략)… 티레시아스가 ‘관찰하는’ 것이 사실상 이 시의 내용이다.” 말하자면, 티레시아스는 이 시에서 ‘행위의 주체’는 아니지만, ‘시선의 주체’로서 전체를 총괄한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엘리엇은 그런 역할을 티레시아스에게 부여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우리가 이 ‘늙은 주머니쥐’의 이야기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으며, 또 엘리엇이 진실을 말했다 해도 그의 의도가 과연 텍스트 속에 얼마만큼 투영되었나 하는 것이다.

엘리엇, 창작 의도를 밝히다
만약 엘리엇의 말을 존중하기로 한다면, 다음과 같은 그의 고백은 독자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줄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이 『황무지』를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따라서 이 시를 중요한 사회 비평이라고 생각해 온 것이 사실이다. 나로선 영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내게 이 시는 단지 인생에 대해 갖고 있던 개인적인 불만, 그것도 하찮은 불만의 토로였을 뿐이다. 이 시는 단지 그런 불만을 운율을 맞춘 시로 써 본 것뿐이다.”  

이보다 더 분명하게 자신의 창작 의도를 고백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황무지』의 창작 동기가 된 엘리엇의 ‘하찮은 불만’이란 무엇이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그의 개인사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아야 한다. 1915년, 엘리엇은 영국 중산층 출신의 여성 비비언 헤이우드와 결혼한다. 병약한 데다가 신경 쇠약을 앓던 비비언과의 결혼 생활은 무척이나 힘들었고, 이 때문에 그는 생계를 위해 1917년 로이드 은행에 취직한다. 『황무지』를 쓰던 1921년에는 과로와 긴장으로 엘리엇 자신이 신경 쇠약에 걸릴 정도여서, 스위스의 한 요양소에 입원하기까지 한다. 이때는 제1차 세계 대전 직후라 유럽의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최악이었던 시절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잘 알려진 전기적 사실이며, 거기에 덧붙일 수 있는 내용은 엘리엇의 ‘하찮은 개인사’다. 엘리엇 부부와 철학자 러셀(1872~1970)의 인연이 그것이다. 엘리엇은 마치 『황무지』의 화자가 런던에서 스텟슨을 만났던 것처럼, 우연히 하버드 대학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러셀과 만난다. 곤궁한 처지에 있던 엘리엇은 곧 러셀의 아파트로 이사를 갈 만큼 그와 친해지고, 러셀 또한 그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다. 문제는 자유 연애주의자인 러셀과 아내 비비언의 관계가 불륜으로까지 발전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과묵하고 내성적이었던 엘리엇은 이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황무지』는 그의 ‘하찮은 불만’의 객관적 상관물이 아니었을까? 『황무지』의 1부 「죽은 자의 매장」은 이렇게 끝난다.

오오 개를 멀리하게, 비록 놈이 인간의 친구이긴 해도  
그렇잖으면 놈이 발톱으로 시체를 다시 파헤칠 걸세!
그대! 위선적인 독자여! 나와 같은 자 나의 형제여!
‘O keep the Dog far hence, that’s friend to men,
‘Or with his nails he’ll dig it up again!
‘You! Hypocrite lecteur! - mon semblable, - mon frère!’


마지막 행의 프랑스 어 시구는 엘리엇이 보들레르(1821~1867)의 시집 『악의 꽃』에서 인용한 것이다. 거기서 ‘독자’를 뜻하는 프랑스 어 단어 ‘lecteur’는 ‘강사’를 뜻하기도 한다! 요컨대, 엘리엇은 아내 비비언조차 알아채지 못할 방식으로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던 것은 아닐까? 다양한 갑론을박의 해석을 낳고 있는 『황무지』는 이래저래 난해할 수밖에 없는 시다.   

09. 04. 03.  

P.S. 뒷부분에서 "하버드 대학 시절 그의 스승이었던 러셀"이란 구절은 원래 "하버드 대학 시절의 강사였던 러셀"이라고 적어보낸 것이다(편집과정에 교졍되었다). 일부러 '강사'라고 지칭한 것은 "위선적인 독자여!"란 구절의 이중적인 의미와 호응하게 하려는 뜻에서였다. 표면적인 인용 너머에서 엘리엇은 러셀을 상대로 "위선적인 강사여!"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인데(러셀은 이 시의 숨겨진 수신자이다), 중요한 것은 이 '비난'이 아내 헤이우드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은밀한 것이어야 했다는 점(엘리엇은 시의 초고를 아내에게 자주 보여주었다). <황무지>는 그러한 맥락에서 재구성될 수 있다(이미 이러한 읽기를 시도한 논문들도 나와 있다).  

덧붙여, 오랜만에 황동규 시인의 <황무지> 번역을 다시 들여다보았는데, 4부의 제목 'Death by Water'를 '수사(水死)'라고 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아주 단순하게 '물에 빠져 죽는 것'을 가리키는 더 익숙한 표현은 물론 '익사'다. 이창배 교수의 번역은 '물 죽음'으로 옮겼는데, 이 또한 특이한 선택이다(3부의 제목 '불의 설교'와는 호응시키려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서울비의 생각
    from seoulrain's me2DAY 2009-04-03 10:32 
    '황무지'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로쟈
 
 
 

얼마전에 <녹색평론>에서인가 김규항의 <예수전>에 대한 서평이 실린 걸 보고 서점과 알라딘에서 몇 차례 검색을 해보았지만 뜨지 않는다(실상 지난 1월에 나오는 걸로 원래는 예고돼 있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책에 대한 서평이 씌어졌을리는 만무할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설마 비매품일까?). 여하튼 검색해보다가 찾은 기사나 대신 옮겨놓는다.      

뉴스앤조이(08. 12. 12) 김규항, "내 사상은 예수에서 출발"

"혁명은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원래의 조화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인간성, 불의와 모순, 착취와 억압으로 왜곡된 관계를 회복하고 세상을 상호부조하는 따뜻한 곳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예수가 했던 일이었을 겁니다."

김규항 씨(46·<고래가 그랬어>발행인)에게 기독교 신앙은 진정한 혁명운동이다. 예수의 삶을 진지하게 살피고 예수의 고뇌에 동참하면 자본주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씨는 자칭 B급 좌파다. 또 스스로를 불온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다수의 좌파 지식인들과 달리 그의 사상은 예수에서 출발한다. 김 씨가 곧 <예수전>이라는 책을 낸다는 소문을 들었다. 마침 그가 만드는 어린이 교양지가 5주년을 맞아 겸사겸사 인터뷰를 요청했다. 12월 8일 성산동 <고래가 그랬어> 사무실에서 '인간 예수'에 꽂혀있는 신앙인 김규항을 만났다.

김 씨는 방언과 기도를 강조하는 보수적인 교회에서 '나는 왜 뜨겁지 않을까'란 자책감 속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 후 한신대에 들어가 예수라는 존재에 깊이 빠졌다. 그는 역동적인 예수의 삶과 70년대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진보진영 목사들의 존재에 충격을 받았다. 진정한 의미의 신앙이 시작됐다. 신앙은 그를 왜곡된 세상에 대해 '쾌도난담'하는 비평가로 만들었다.   

김 씨는 홍세화 기획위원(<한겨레신문>)·진중권 교수(중앙대) 등과 진보적 사회평론지인 <아웃사이더>를 펴내고, <한겨레신문>·<한겨레21>·<씨네 21>·<오마이뉴스> 등에서 진보 논객으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다가 2003년 10월 불현듯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이하 고래)를 세상에 선보인다. 다양한 사회 문제를 고민하던 중 사회적 모순이 가장 집약된 곳이 아이들의 세계란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본주의에 순응한 부모들이 만들어 놓은 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자라고 있었다.

"창간 전에 한국에서 가장 아이들 책을 잘 만든다는 모 출판사 사장님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이 '한국 아이들 중 우리 책 좋아하는 애들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책은 아이들에게 재미없을 수밖에 없다는 말인데 그 말이 못 마땅하게 들렸습니다. 아이들 책의 주인은 아이들입니다. 아이들 편이 돼 주고 아이들이 재미있어 하는 잡지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고래는 인터넷 서점에서 과월호와 신간 매출이 비슷한 유일한 책이다. 4,500여 명의 정기구독자는 모두가 애독자다. 도서관이나 공부방에 비치된 걸 감안하면 실 독자는 만 명이 넘는다. 김 씨는 어려운 상황에도 고래 식구들이 힘을 잃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재밌어하고 지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종종 독자(아이들)에게 비밀편지도 받는다고 했다.  

"발행일이 조금이라도 늦어질 때면 부모들의 항의전화에 시달립니다. 아이들이 고래 왜 안 오냐고 부모에게 조르는 거죠. 아이들과 사회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던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래를 보고난 뒤 먼저 질문을 하니까 좋아합니다. '아빠는 왜 담배를 끊지 않는가', '왜 청소와 설거지는 엄마만 하느냐' 등의 질문에 난처해지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김규항의 교육관, "공부는 능력 아닌 적성"
올해 창간 5주년을 맞은 고래는 60호(11월)에 초등학생들의 의식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설문조사를 실었다. 전국 24개 초등학교 1,496명의 학생 중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아이는 48%에 지나지 않았다. 40.3%의 아이들은 성적이 좋아지면 행복할 것이라고 답했다. 24.6%의 아이들은 행복해지려면 돈이 많아야 한다고 답했다. 부모와 아이들 모두 판·검사, 의사 등을 선호하는 직업 1순위로 꼽았다. 80%의 아이들은 한 곳 이상의 학원에 다녔다. 학원에 있을 때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아이들은 2.6%였다. 

사람들은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김 씨는 공부가 적성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되고 싶어 하는 판검사·변호사·의사·학자 등의 직업은 공부를 잘해야만 될 수 있다. 그는 쿠바에서는 청소부가 의사보다 월급이 더 많고, 노르웨이의 버스기사는 대학교수와 임금이 비슷하다며 적성이 능력으로 평가받고 있는 한국 사회를 비판했다.

김 씨는 교육 운동이 국제중·특목고·사교육 문제 등 개별 사안에 함몰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공부를 왜 하는가', '사람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등 근본적인 물음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촛불 집회에 나가 정부의 교육정책을 욕하다가 밤 11시쯤 아이에게 전화해 학원 갔다 왔는지 확인하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나중에 행복하게 살게 만들려고 지금 아이들을 고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지금 내 아이가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줘야 무엇이 행복인지 잘 알고 나중에도 내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김 씨는 곧 대안교육을 연구하는 고래부설교육연구소를 설립할 예정이다. 그 일환으로 5주년 기념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노동자 자녀교육 강의도 다니고 있다. 고래에 부모들의 토론 코너도 시작한다. 자녀 교육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하고 서로 사례를 교환하며 대안 교육을 위한 연대를 넓혀나갈 예정이다. "아이들이 맘몬의 체제에서 벗어나 참 신앙과 인간성을 갖고 초·중·고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어서도 대안적인 삶을 모색할 능력을 길러내는 것이 진정한 대안교육입니다. 급진적으로 말하면 대학을 가지 않고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낙오자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한국교회, 자본주의·맘몬 신앙에 맞서야
왜곡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게 교회의 임무인데 오히려 잘못된 가치 기준에 편승하는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환경미화원이 된 아이가 교수나 의사가 된 아이와 비교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예수를 좇는 사람은 솔선해야 합니다. 아이를 데리고 더 낮고 작은 자리에 가야 할 신앙인이 자기 아이가 남보다 높아지길 바라며 수능 때면 백일기도하고, 목사님은 축복기도 해주는 것은 세상을 그대로 두겠다는 말입니다." 

김 씨는 세상이 맘몬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지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개혁은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관에 물든 목회자들로 인해 맘몬 신앙이 부드럽고 교양 있는 모습으로 한국교회를 잠식하는 일을 막아야한다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해 온 복음주의 진영 신학자 김회권 교수(숭실대)를 예로 들며 보수든 진보든 진정한 신학을 갖고 세계를 보면 자본주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회주의=반기독교, 기독교=반사회주의'라는 등식을 퍼뜨리는 사람들은 사회주의를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주의는 맘몬을 극복하기 위한 상대적 개념일 뿐이라고 말한다. 더 높은 것을 추구해야 할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란 의미다.

"사회변혁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 기독교 신앙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나와 우주와의 관계, 나와 근원적 존재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자는 생각이기 때문에 외부의 문제에 집착합니다. 기독교 신앙이나 예수의 태도는 그보다 수준이 높습니다. 예수의 하나님나라운동은 지금 여기에 천국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나 사회변혁가들의 주장처럼 완벽에 가까운 사회체제나 국가를 건설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아무리 좋은 사회체제 안에서도 지옥을 경험할 수 있고 아무리 나쁜 사회 속에서도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말씀한 천국은 우리 마음속에, 사람들과의 관계에 연결돼 있습니다. 저는 영성이나 생명을 얘기하며 사회변혁 운동을 폄훼하는 자들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하루에 30분도 기도하지 않는 자들이 일으키는 혁명은 더 위험하다고 봅니다." 

<예수전>, 평신도 김규항의 인간 예수 읽기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따위는 모조리 생략한 채, 그를 단지 교리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한다. 정말 예수는 단지 교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그 고단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 이성으로든 신앙으로든, 예수를 '갈릴리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교리 속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김규항 블로그 GYUHANG.NET '갈릴리 예수, 교리 예수' 중)

김 씨는 신학이나 교리를 접고 마음을 열어 2000년 전 예수님과 그 분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느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생각의 결과물이 곧 <예수전>이란 책으로 나온다. 김규항이라는 한 평신도의 성경읽기를 엮은 이 책은 내년 1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과거 남미 등지에서는 학습 받지 않은 민중이 사제나 목회자와 모여 복음서를 읽고 자신의 삶과 예수님의 말씀을 접목해 얘기할 때 대단한 통찰력이 나타나고, 목회자들이 오히려 감동받는 일이 벌어졌다. 김 씨는 한국교회가 이런 가능성을 배제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인간 예수가 싸우고 고뇌했던 상황과 현실이 오늘 우리에게 해석되어야 합니다. 보수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살아 계시다면 현실의 문제를 어떻게 보셨을지 자신의 삶에 생생하게 적용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설교나 강해를 통해 해석된 예수를 주입받기 때문이죠. 성경을 외우긴 하지만 생각하는 힘이 거세돼 버린 것입니다."

김 씨는 기독교인들은 자기 종교의 창설자를 추앙하면서도 스스로 개혁의 대상되는 일에 마음이 닫혀 있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예수가 율법주의자와 부패한 제사장을 비판하면서도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왔다'고 말씀하셨듯이 기독교 스스로 갱신하고 진정한 교회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의미다. 

"다들 사랑과 용서의 예수를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가 지배 계급에 의해 정치범으로 지목되었고 사형 당했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예수가 왜 사형을 당했을까요. 간디는 비폭력을 외치다가 폭력에 의해 살해됐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비폭력과 평화를 말하는 사람들은 사형 당할 일이 없습니다. 경찰서에 갈 일도 없습니다. 예수가 도대체 어떤 생각과 노선으로 어떤 메시지를 설파했기에 사형 당했는가 고뇌하지 않고서 십자가 정신을 말하는 것은 너무 안이한 태도입니다."

김 씨는 <예수전>을 계기로 더 많은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성경을 읽고, 살아있는 예수의 말씀과 예수가 말하는 하나님나라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고 했다.(김은석기자)  

09. 04. 02.  

 

P.S. 김규항의 <예수전>(돌베개)과 함께 내가 기대하는 근간은 슬라보예 지젝이 존 밀뱅크와 공저자로 뜨는 <그리스도의 괴물성>(2009)이다. 아담 코츠코의 <지젝과 신학>(2008)도 물론 관심도서이고. 두루 읽어볼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


댓글(11)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김규항이 본 예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1 12:25 
    얼마전 출간 여부를 논란이 있었던 김규항의 <예수전>(돌베개, 2009)이 드디어 나왔다. 표지만 보면 '황색예수'를 바로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사실 예수에 대해서 뭔가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준다기보다는 예수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서 자문하게 해주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예수를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아직 책은 보지 못했는데 일단은 소개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영국 좌파인 테리 이
 
 
멜기세덱 2009-04-02 02:52   좋아요 0 | URL
저도 녹색평론에 실린 서평보고 이 책 찾아봤는데, 없더라구요. 아직도 안 나온건가요? 보고 싶은 책인뎅...ㅎㅎ 지젝과 코츠코의 책들도 끌리네요. 좋은 정보 항상 고맙습니다.ㅎㅎ

로쟈 2009-04-03 08:39   좋아요 0 | URL
저자가 더 손을 보고 있다는군요...

[해이] 2009-04-02 09:22   좋아요 0 | URL
혹시 mapping ideology는 번역 소식이 없나요?

로쟈 2009-04-03 08:38   좋아요 0 | URL
네, 아직 소식이 없는 듯합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4-02 11:59   좋아요 0 | URL
로쟈님 찌찌뽕~ 저도 읽어보고 싶어서 기다리고 있어요~

로쟈 2009-04-03 08:38   좋아요 0 | URL
^^

2009-04-02 22: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2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공개 2009-04-03 15:21   좋아요 0 | URL
다음주 목요일부터 합정동에서 김규항 <예수전>강의가 시작되는데,
그전후로 출간될 것 같더라구요.
저도 그 강의 신청했는데 책출간과 함께, 기대하고 있답니다. ㅎㅎ

로쟈 2009-04-04 17:36   좋아요 0 | URL
아, 이달에 나오는 건가요?^^

비공개 2009-04-06 13:08   좋아요 0 | URL
네 이번달에 나온대요 ^^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궁리, 2008)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관련 페이퍼를 올려둔 바 있는 듯싶은데(사실 나는 다른 책들에 밀려 아직 다 읽지 않았다. 쓰고자 하는 글의 소재로 염두에 두고 있는 정도다) 서평 하나를 더 스크랩해놓는다(람혼님의 서평 http://blog.aladin.co.kr/sinthome/2636449 도 참고하시길). 랑시에르가 반박하고자 하는 상대 중의 하나는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인데, 그 점을 잘 부각시키고 있는 서평이어서다. 제목은 그 점을 좀더 강조한 것이다.   

 

교수신문(09. 03. 30) 지적 불평등? 부르디외, 당신이 틀렸어!  

이 책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는 책이다. 철학, 교육학, 사회학, 심리학, 심지어 정치학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가 없다.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루길래 이토록 반향이 큰 것일까. 저자인 랑시에르는 기존 학문의, 정치적 기획의, 교육적 실천의 전제조건이었던 지적 조건의 불평등이라는 테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인간은 지적으로 평등하며, 바로 거기에서 모든 것이 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근대 계몽주의를 거부하는 20세기 후반의 몸짓보다 더 과격하고 급진적인 주장이다. 랑시에르가 이 같은 주장을 제기한 배경에는 지적 불평등의 격차 해소를 두고 지루하게 이어진 논쟁과 갈등이 있다. 진보주의와 공화주의, 과학주의적 강조와 대중 자발성에 대한 강조 등으로 대립해온 모든 논쟁의 역사 이면에는 대중은 무지하고 지적으로 열등하며, 가르침의 대상이라는 전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전제 자체가 잘못됐으며, 자코토의 예 등 무수한 사례가 노동하는 대중의 무한한 지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이는 정치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도 보여준다는 점이 저자의 진단이다.(오주훈 기자)

지난 해 겨울 한국을 방문해서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의 주요 저작 한 권이 또 번역돼 출간됐다. 『무지한 스승』이 그것이다. 번역은 이미 랑시에르의『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를 훌륭히 번역한 바 있는 양창렬씨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번역자는 한국 독자들의 이해에 필요한 내용을 옮긴이 주를 통해서 제공해주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무지한 스승』은 1818년 루뱅대학 불문학 담당 외국인 강사가 된 조제프 자코토의 지적 모험을 소개하고, 그가 이 경험으로부터 이끌어내고 있는 교훈들을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부르봉 왕가의 복귀와 더불어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자코토는 루뱅에서 프랑스어를 모르는 학생들에게 불문학을 가르쳐야 했다. 그런데 그는 네덜란드어를 할 줄 몰랐다. 요컨대,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혹은 자신이 전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야만 하는 역설적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자코토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 번역이 함께 실려 있는 책 한 권을 학생들에게 던져 주고, 번역문의 도움을 얻어서 프랑스어 텍스트를 익히도록 주문했다. 그 실험의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학생들은 얼마가지 않아 자신들의 생각을 프랑스어로 표현할 줄 알게 됐던 것이다.  

자코토는 이러한 경험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들을 이끌어낸다. 첫째, 스승의 역할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있지 않다. 앎은 전수받는 것이 아니라 터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스승의 덕목은 오히려 무지이다. 무지한 스승, 그는 자신이 가르쳐야 할 것에 대해 무지한 스승을 말한다. 그의 스승으로서의 역할은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무지한 자가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그의 지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둘째, 모든 인간들은 지능에 있어서 평등하다. 교육을 지식의 전달로, ‘설명’으로 생각하는 입장은 지능의 불평등이라는 전제로부터 출발해서 그 불평등의 간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설명 자체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설명을 듣는 자가 그 설명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 즉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모두가 지능에 있어서 평등하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평등은 목표로서, 달성해야 할 어떤 것으로 제시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출발점으로 이미 전제돼야 하는 것이다.  

셋째, 지능들의 동등성은 어떤 것을 배울 때 따라야만 하는 어떤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무엇을 터득하는 데에는 하나가 아니라 여러 방식 및 절차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무지한 사람들의 방법은 ‘우연의 방법’이다. 한번이라도 스승 없이 무언가를 알아가야만 했던 상황에 놓이지 않았던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 방법은 아주 일상적으로 그리고 세계가 시작되면서부터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코토는 이러한 학습방법을 ‘보편적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넷째, 지능들의 동등성이 함축하고 있는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을 알아가는 지적 과정들에 실행되고 있는 지능들은 본성적으로 하나이고 보편적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모국어를 익히는데 사용됐던 지능은 문학작품이나 수학의 증명을 이해하는 데 요구되는 지능과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코토는 “전체는 전체 안에 있다”고 말한다. 즉, 우리는 전체의 어떤 임의의 부분으로부터 출발해서, 그것에 대한 앎을 다른 부분과 연관시킴으로써 새로운 것에 대한 앎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적 평등이라는 관념에 기초를 둔 이 방법은 전통적인 교육모델과 대립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지적 해방을 가능케 하는 교육 방법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특히 랑시에르의 사상에서 이 ‘지적 평등’이라는 관념이 갖는 중요성에서 잘 드러나듯이, 정치적 함의들을 갖는다.

전통적인 교육모델은 무엇보다도 진보의 이념을 전제하고 있다. 지식들의 전수와 그 축적 및 확산을 통해서 한 개인 혹은 한 사회는 진보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것이다. 실제로 자코토가 ‘무지한 스승’이란역설적인 주장과 함께 개입했던 시기는, 사회를 합리적 질서로 구성함으로써 프랑스 혁명이라는 비판적 시대를 완수하고자 하는 기획이 시작됐던 시대였다. 이 기획의 바탕에 놓여 있던 것이 바로 진보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이 이미 전제하고 있는 지적 불평등을 재생산할 뿐이다. 그것은 세계의 분할, 우월한 지능과 열등한 지능, 말할 자격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분할을 하나의 사실로서 전제한다. 이러한 전제로부터 정치적 주체화와 해방은 주어질 수 없다. 따라서 해방은 다른 전제, 즉 지적 평등으로부터 출발해야 가능한 것임을 랑시에르는 강조한다.

 

다른 한편으로 방법으로서의 ‘보편적 가르침’은,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이 출간됐을 당시 프랑스에서 지배적인 담론중의 하나였던 부르디외의 이론과도 대립한다. 부르디외는, 보편적 교육이라는허울 아래 사회적으로 이미 존재하는 불평등이 학교에서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랑시에르에 따르면, 자신의 반대자들과 마찬가지로 지적 불평등을 전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 및 정치를 사회경제적 조건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그에게 정치는 소멸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이론적 틀에서 정치적 주체화에 대한 사유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는 전위주의 혹은 엘리트주의라고 부를 수 있는 전통이 존재한다.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은 이 전통에 대한 비판적 답변이며, 동시에 정치의 가능성이 어디에 놓여있는지에 대한 오랜 탐구의 결과이다. 그가 찾은 ‘지적 평등’이라는 논제는, 정치가 점점 더 전문적 지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의 시대에 다소 유토피아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랑시에르의 논의는, 정치적 주체화를 사유하기 위한 전제가 무엇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박기순 서울대 강사·철학) 

09. 03. 31.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3-31 0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3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Octopus 2009-03-31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 중 "번역자는 한국 독자들의 이해에 필요한 내용을 옮긴이 주를 통해서 제공해주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는 점에 큰 불만이 있는 독자입니다. 대부분이 불필요한 역주, 그리고 '원문에는 이런 단어가 없지만' 하는 식으로 굳이 본문 중간중간 끼워넣은 괄호[ ]들은 독서의 속도감을 엄청나게 방해하더군요. 역자 본인도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주렁주렁 달린 옮긴이주의 존재 자체가 이 책의 주장에 위배된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역자 후기에 언급했지요. 그런 거추장스런 사족 없이도 술술 읽히고 잔뜩 영감을 주는 책인데 말입니다.

로쟈 2009-03-31 22:35   좋아요 0 | URL
라캉의 <세미나>와는 대조되죠. 밀레는 역주 자체를 엄격하게 제한(금지?)한다더군요...

푸른바다 2009-04-01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으로서의 평등, 아니 생명으로서의 평등은 인정하지만, 전 '지적 평등'은 동의하기 힘들군요. 제 경험상 사람들의 지적 능력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9-04-03 08:41   좋아요 0 | URL
불한 대역본이라면 그런 '평등한' 지적 능력이 발휘될 수 없었겠죠. 자코토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다만, 문제는 제기해주는 것이죠...
 

이달부터 교수신문의 서평위원을 맡게 됐다. 주로 하는 일이 대략 한 달에 한 번꼴로 칼럼을 싣는 것이다. 첫번째로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마땅한 주제가 없을까 찾아보다가 그냥 어쩌다 손에 든 번역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교수신문(09. 03. 30) 번역가의 겸손 혹은 소명의식

몇 주 전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손에 든 책은 『번역, 권력, 전복』(동인, 2008)이다. 책은 여타의 번역서에서 흔히 읽을 수 있는 딱딱한 문장들로 구성돼 있었다. 물론 딱딱하다는 게 흠이 될 수는 없지만, 경험상 이런 경우에 사소한 오류들도 동반하기 마련이다. 가령 리오타르의 ‘Grand Recits’는 ‘메타서사’라고 옮겼는데, 흔히 ‘거대서사’(혹은 ‘큰 이야기’)라 옮겨지는 표현이다. 'xenophobia and racism’도 ‘배타주의와 민족 우월감’으로 ‘의역’했는데, ‘외국인 혐오증과 인종주의’란 ‘직역’을 왜 기피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정도야 의견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작 흥미로운 오역은 따로 있었다. 번역상의 어려움을 야기하는 문제들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때때로 어떤 공백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은 다른 문화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매우 다른 의미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란 지적을 한다. 같은 의미를 담은 대응어가 없거나 마땅하지 않은 경우를 가리키겠다. 원천언어(출발어)와 목표언어(도착어)를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한쪽으로 기우는 경우다.  



그러한 지적을 보충하기 위해 저자는 “에스키모인의 ‘횃불의 신’은 잘 알려진 예이다”라고 덧붙였다. 무슨 말인가. 원문을 찾아보니 이렇다. “thus, the well-known example of 'Lamb of God' in the case of the Eskimos.” 여기서 ‘Lamb of God’이 어떻게 ‘횃불의 신’이란 뜻이 되는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깨닫게 된 건 번역과정에서 두 단계의 치환이 있었으리라는 점. 먼저 역자는 ‘Lamb of God(하느님의 어린양)’을 ‘Lamp of God(신의 횃불)’로 잘못 보았고, 이어서 ‘God of Lamp(횃불의 신)’라고 어순을 뒤집어 읽지 않았을까.  

극지방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이 ‘양’이란 동물을 구경해봤을 리 없다. 따라서 번역어를 찾기 어려웠을 것이고, 유목민족의 표현인 ‘하느님의 어린양’을 이해하기도 난감했을 것이다(그런 경우엔 ‘하느님의 물개’라고 옮겨야 할까). 이것이 문화적 차이와 그 ‘공백’이 낳는 문제이고 에스키모인의 언어로 ‘하느님의 어린양’을 번역해야 하는 상황의 곤경이다.

결과적으로 ‘횃불의 신’이란 번역은 ‘잘 알려진 예’를 잘못 옮긴 예가 됐다. 흥미로운 것은 저자의 글이 번역가의 역할과 함께 번역에서의 조작 문제도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언어를 조작하는 데에 따른 결과와 번역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힘의 남용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번역이 가져다 줄 수 있는 힘’이란 실상 번역과정에서 행사되는 ‘번역가의 힘’이다.  번역가는 단어를 선택하고 배치하고 또 추가하고 생략하면서 자신의 힘을 행사한다. 그런 점에서 그는 또 다른 ‘저자’이며 ‘신’이다!  

‘하느님의 어린양’은 본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횃불의 신’이란 오역 덕분에 상기하게 되는 신은 프로메테우스다. 번역가는 인간(독자)에게 횃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와 닮지 않았는가. 번역의 목적이 ‘소통과 나눔’이라고 할 때, 그것의 절반(소통)은헤르메스의 일이며, 나머지 절반(나눔)은 프로메테우스의 일이다.  

나는 헤르메스-번역가들의 겸손을 존중하며, 프로메테우스-번역가들의 소명의식을 존경한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러한 신적인 힘과 의지의 오용이나 남용을 경계할 필요도 있지 않나 싶다. 헤르메스-번역가들의 겸손이 혹 자신의 책임에 대한 방기는 아닌지, 프로메테우스-번역가들의 소명의식이 혹 도취적 자기만족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염려되기도 하는 것이다. 왜 아니겠는가, 우리가 읽는 책의 태반이 번역서이거늘! 

09. 03. 30.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09-03-30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느님의 어린양을 저렇게 잘 못 보는 수도 있군요.

로쟈 2009-03-31 22:32   좋아요 0 | URL
희한한 오역들이 많습니다...

베토벤 2009-03-31 0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일화를 떠올리게 하네요. " 다음 곡은 A piece of dream 입니다, 평화의 꿈"

로쟈 2009-03-31 22:33   좋아요 0 | URL
유사 사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