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동향기사 두 편을 스크랩해놓는다. 요즘 부쩍 늘어난 인터넷 연재소설과 문단문학에 대한 대안적 글쓰기론을 소개하는 기사이다. 첫번째 기사는 알라딘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 두번째 기사에서 언급된 <실천문학>(가을호)은 아직 알라딘에 입고가 되지 않은 듯하다. 계간지들의 판매 실적이 저조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일보(09. 08. 24) 인터넷 소설 연재, 문단에 활력이냐 그들만의 잔치냐
인터넷 공간은 한국 소설에 활력을 부여하는 새 개척지인가? 최근 몇년간 주요 인터넷 서점과 포털 사이트들이 국내 유명 작가들의 소설을 연재하고, 이를 출판사들이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시스템이 정착되면서 한국문학에 던져진 질문이다. 활자 텍스트에서 인터넷으로의 '글쓰기 공간'의 변화는 소설의 형식 변화를 유도할 것인가, 댓글이라는 인터넷의 특성이 독자가 작품에 개입할 여지를 넓힐 것인가, 하는 질문도 잇따른다.
■ 자리잡은 인터넷 소설 연재
이른바 순수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2007년 박범신씨가 네이버 블로그에 '촐라체'를 연재한 것이 시초다. 이 연재는 100만명의 방문자를 끌어들였고 이후 황석영씨도 장편소설 '개밥바라기별' 을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펴냈다. 공지영씨의 '도가니', 박민규씨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공선옥씨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등도 인터넷 연재 후 책으로 나왔다.
최근에는 '나비', '웹진 뿔' 등 문학 전용 인터넷 사이트도 속속 만들어지면서 작가들의 인터넷 연재는 확산일로다. 신경숙, 김훈, 구효서, 정도상, 김경욱, 김도언, 이기호, 오현종씨 등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한 후 단행본 출간을 기다리고 있거나 연재 중인 작가들은 10여명에 이른다.
■ 창작공간 확장 vs 출판사ㆍ특정 작가들의 잔치
인터넷 소설 공간의 등장은 일간지의 소설 연재가 크게 축소된 현실에서, 장편소설을 연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아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이 작가들의 반응이다. 소설가 이기호씨는 "작품들이 매체의 특성을 살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한국소설이 양적으로 풍성해질 것은 분명하다.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무시켜줄 것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학평론가 조영일씨는 계간 '문학수첩' 가을호에 발표한 '인터넷 문학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글에서 현재 연재되는 인터넷 소설들이 이미 출판사와 출간계약이 된 유명 작가들의 작품 일색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이 공간이 "추가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출판사의, 그리고 그 비용만큼 추가이익이 가능하다고 간주되는 작가들만의 잔치가 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넷 연재소설의 경우 출판사가 포털 사이트(또는 인터넷 서점)와 연재료를 절반씩 부담하거나 출판사가 전액 부담하고 있다.
반면 문학평론가 김명석씨는 같은 잡지에 발표한 '더 리더, 인터넷에서 소설을 읽다'라는 글에서 "인터넷 소설이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작품성을 보장해줄 수 있는 프로 작가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독자들이 보다 다양하고 수준높은 작품들을 풍요롭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독자 입장에서는 무료로 책 발간 전에 소설을 접할 수 있고, 웹진을 운영하는 출판사나 서점 측에서는 책의 홍보를 통해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윈윈 효과를 거둔다"고 평가했다.
■ 소설 형식 변화 가져올까
댓글이 활성화된 글쓰기 공간의 변화가 글쓰기에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관심거리다. 작가들로서는 여전히 연필로 글쓰기를 고집하며 댓글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는 반응(김훈)이 있는가 하면 "연재 내내 백주 대낮에 광장에서 글쓰는 과정이 중개되는 것 같아 힘들었다"는 반응(공지영)까지 다양했다. 댓글을 의식하지만 작품의 근간을 흔들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작가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실제로 댓글의 80~90%가 작품 비평보다는 작품에 대한 칭찬이나 작가에 대한 격려로 나타나고 있다.
매체 변화가 소설 형식의 변화를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반응이 엇갈렸다. 현재 장편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연재 중인 신경숙씨는 "예전에는 인터넷 언어라는 것이 따로 있어 만일 연재를 한다면 기존에 지면에 발표한 작품보다 경쾌하거나 발랄하게 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실제 해보니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이제는 인터넷이 일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인터넷 소설 '거대한 속물들'의 연재를 시작한 오현종씨는 "구술로 전달되던 이야기가 기록되면서 형식을 갖췄듯 인터넷 소설은 작가들로 하여금 글쓰기 스타일의 변화를 추동할 것"이라며 "원고지 10매 안팎의 글을 네티즌들을 상대로 매일 연재하는 만큼 한 편 한 편이 완결성을 갖고 문장의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애를 쓴다"고 말했다.(이왕구 기자)
한겨레(09. 08. 22) 낙선작가여, 문단 버리고 세상을 공략하라
해마다 신문사 신춘문예와 각종 문예지 신인상 공모 등에 응모되는 작품은 1만여편에 이른다고 한다. 그들 응모자 중 한 해에 수백명이 문단 ‘신인’으로 등단하지만 그뒤로도 살아남는 작가는 열명 안팎에 불과하다.
어째서 그럴까. 작가적 역량의 문제인가? 통상 돌아오는 답이다. 계간 <실천문학> 가을호 특집 ‘새로운 감각, 게릴라 글쓰기’는 질문을 바꿔보자고 말한다. 이 특집에서 신예 문학평론가 임태훈(31·사진)씨는 기성 문단문학의 폐쇄성을 비판하며, 문단 제도 바깥의 작가들, 다시 말해 미등단 작가(=작가 지망생)들에게 ‘세상을 정면으로 관통하려는 연대’와 그 방식으로서 ‘게릴라의 글쓰기’를 제안한다.
임씨는 우선 문단문학을 두고 ‘대형작가와 당파적 출판사의 배만 불리는 승자독식 문단이자 문학청년의 도살장’이라고 비판한 평론가 조영일씨의 견해에 대체로 공감을 표한다. 하지만 임씨가 보기에, 중요한 건 문학청년들의 진짜 행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구체적인 방법이다. 문단문학의 문제점을 나열하는 데 그친다면, 그에 대한 언급 자체를 회피하는 것만으로도 문단문학은 논쟁의 가능성을 간단히 제압할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의 궁극적 욕망이 독자와의 소통에 있다면, 그 점에서 오늘의 문단문학은 실패하고 있다는 게 임씨의 진단이다. 몇몇 유명 작가들 작품 외에는 문단문학의 독자층은 협소하다. 신인작가의 책은 초판 1천부가 팔리지 않는 일이 허다하고, 문예지의 독자층도 점점 줄고 있다. 문단문학의 큰 폐해는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쓸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 자격증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가려 하기에 비슷한 글들이 양산된다. 제도로부터 반복적으로 거절당한 이들은 글을 그 기준에 맞추거나 글쓰기를 그만둔다. 그러니 임씨는 등단이 작가의 출발점이라고 믿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가는 삶의 방식이다. 자신의 역량과 무능을 ‘글쓰기라는 소통’을 통해 경험하는 삶이야말로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본질이라고 말한다. 신춘문예와 신인상 제도로 대표되는 문단 등단의 기준을 통과할 만한 모범답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자괴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이 스스로 제도의 바깥에서 재미있는 글쓰기 방식을 찾아나가는 것, 그 모험이 중요하다고 임씨는 말한다. 인터넷 글쓰기는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희망이자 또다른 걸림돌이다. 최근 창간된 인터넷상의 문학 웹진은 문단문학의 매체 확장일 뿐이다. 7개 출판사와 매출 1위 인터넷서점이 공동으로 만든 이 웹진의 주된 필자들은 문단제도권 안에서 선택되고 길러진 작가들이니, 아무나 읽으러 갈 순 있어도 아무나 쓸 수는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곳곳에 산재한 창작블로그들이나 창작카페 모임들은 온라인 사이트 안에서만 교류하기 일쑤이며 오프라인 공동체 만들기엔 무심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릴라들이 전선 없이 싸우는 것처럼, 글을 꼭 제도권 지면에 쓸 필요는 없으며, 그 바깥에서 마치 게릴라처럼 어디서나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해야 한다. 게릴라가 민중의 지지 없이는 활동할 수 없듯이, 게릴라식 글쓰기는 어떻게든 독자들과 ‘직접 접촉’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임씨는 피투피(P2P)를 활용한 글쓰기는 대안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극단적인 예로, 연예인 엑스파일이 삽시간에 피투피를 통해 거의 온국민에 노출되었듯이, 피투피를 활용한 글의 유통은 게릴라 글쓰기의 근거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쓰는 이들의 연대와 기존 창작블로그나 카페 공동체들의 접속이 필요하다. 글쓰기 공동체와 사이트를 링크해주고 연결해주는 연결망 ‘노드’의 증식이 필요하다고 임씨는 힘주어 말한다.
<실천문학> 가을호 특집은 미등단 작가들의 좌담도 실었는데, 김경년(25)씨는 “대중이 원하는 글과 등단한 이들이 쓰는 글이 다르다”며 “대중과 작가의 불일치 속에서 문학이 사회의 문화적 생산자 구실을 하는 게 아니라 잊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교희(25)씨는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이 10~20년 후 가능성을 보기보다는 자신들의 틀 안에서 작품을 뽑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그런 갇혀 있음에 절망하게 된다고 말했다.
미등단 작가들의 작품들로 특집을 기획한 <실천문학>의 고명철 편집위원은 기획의 말에서 “이들 젊은 문청들의 글은 기성의 목소리들에 반성적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며 “이 글들이 새로운 미적 저항의 징후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허미경기자)
09. 0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