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조금 앞당겨 적는다. 꽃샘추위가 오늘 낮부터는 풀린다고 하니까 내주엔 봄날씨를 경험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구제역이 잠잠해지면서 아직 지진 피해의 규모도 산정되지 않는 이웃나라에 비하면 '태평한' 편이지만 한국 청소년의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 꼴찌라는 기사가 뜨는 걸 보면 언젠가 자업자득의 파국과 대면할 날도 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대학도서관의 현실에 대한 리포트는 어떤가.  

국내 대학에서 책이 가장 많은 서울대에서도 최신 전공서적은 모두 대출중이고, 서가에 남은 책은 대부분이 오래된 책입니다. 지방대는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광주의 한 사립대학은 장서가 5만 8천 권으로 적은데도 도서 구입비는 예산의 0.1%에 불과합니다. 학생 한 명당 3천 9백 원인 셈인데요, 이런 책 한 권도 살 수 없는 액수입니다.(...) 국내 대학의 도서 자료 구입비는 한 해 예산의 1% 안팎입니다. 전자책을 포함해 4년제 대학은 학생 1인당 평균 10만 원선, 전문대는 1만 8천 원을 쓰는 셈입니다. 한 해 등록금 1천만 원 시대, 학생들은 국내 대학들이 어디에 돈을 쓰기 위해 적립금을 10조 원이나 쌓아놓고 있는지 의아해할 뿐입니다.(SBS)

'전 국민 책읽기 운동' 일환으로 선정/발표하는 '이달의 읽을 만한 책' 목록보다 중요한 것은 독서를 할 수 있는 기반시설, 곧 도서관의 확충이다. 대학도서관이건 공립도서관이건 마찬가지다. 물론 알아서 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순진한 일일 터이다...  

1. 문학 

아무려나 '이달의 일을 만한 책' 목록으로 넘어가면, 정과리 교수가 추천한 책은 중국계 미국 작가 하진의 <멋진 추락>(시공사, 2011)이다(여담이지만 하진은 이름으로 검색하기가 가장 어려운 작가의 한 사람이다. 성과 이름을 다 해서 고작 '하진'이기에). 알라딘을 기준으로 하면, 국내에 이미 8권의 책이 소개됐고 이번에 3년만에 나온 건 단편집이다. 그의 작품으론 <기다림>(시공사, 2007) 말고는 그다지 한국 독자들의 호응은 얻고 있지 못한 편인데, 그래도 전담 번역가인 왕은철 교수의 노고로 계속 번역되고 있다. <호랑이 싸움꾼은 찾기 힘들어>(현대문학, 2008)과 <전쟁쓰레기>(시공사, 2008)까지 거슬러 올라가볼 수도 있겠다.  

  

동시대 한국작가들의 소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편혜영의 세번째 소설집 <저녁의 구애>(문학과지성사, 2011), 천운영의 두번째 장편소설 <생강>(창비, 2011), 그리고 김숨의 세번째 소설집 <간과 쓸개>(문학과지성사, 2011) 등이다. 제목을 좀 맞추자면 편혜영의 소설집은 <통조림 공장>이라고 해도 좋았겠다. 마지막 단편의 제목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추천한 역사분야의 책은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1-5>(웅진지식하우스, 2011)이다. 지난달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미리 꼽아보았기에, 이달엔 나대로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책과함께, 2011)를 골라둔다. 나중에 나온 2-3권은 아직 못 받았지만 1권만 해도 처음 시작이 마음에 든다. "인간은 모두 원시인으로 시작했다. 그리스인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원시인으로 시작했지만 '그리스 문명'을 건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3. 철학 

김형철 교수가추천한 책은 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사계절, 2011)이다. "이 책은 저자가 치열하게 독서한 48권으로부터 얻은 단상을 우리에게 평이한 말로 들려주고 있다. 객관적 독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삶에서 예를 찾아가며 자신이 얻은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고 있다."는 게 소개다. 이미 널리 읽히는 책이기게 군말은 필요하지 않겠다. 개인적으론 두 권의 '입문서'를 보태고 싶다. 윌리엄 프라이어의 <덕과 지식, 그리고 행복>(서광사, 2011)은 부제가 '고대 희랍 윤리학 입문'이며, 댄 오브라이언의 <지식론 입문>(서광사, 2011)은 제목 그대로이다. 봄꽃들이 비로소 기지개를 켤 4월은 '입문'도 필요한 시간이다.    

4. 정치/사회  

강정인 교수가 추천한 책은 예기치 않은 제목이다. 정외영의 <골목에 꽃이 피네>(이매진, 2011). "강북구 수유동의 ‘아줌마’들이 지난 16년 동안 한데 힘을 합쳐 삭막하고 황량한 생활공간을 정감 넘치는 이웃과 마을로 복원시키는 데 성공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같은 '이웃살이' '마을살이' 범주의 책으론 유창복의 <우린 마을에서 논다>(또하나의문화, 2010)도 있다. 그런 관심이 '이야기'에서 '분석'으로 나가면 <나와 너의 사회과학>(김영사, 2011)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유학 가지 않아도 되는 사회'에 대한 저자 우석훈의 희망이 현실화될 수 있을까? 동네 반상회에서 이런 책을 주제로 토론할 수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5. 경제/경영  

박원암 교수가 고른 책은 라구람 라잔의 <폴트라인>(에코리브르, 2011)이다. 제목만으론 감을 잡기 어려운데, 소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에 관해 많은 책들이 쓰여졌고 이 책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러나 지금까지 출판된 책들이 주로 진보진영의 시각에서 저술된 반면, 이 책은 보수 진영의 시각으로 쓰여졌다는 점에서 크게 차별화된다. 또한 일본의 대지진을 예측이라도 한 듯 책 제목을 <폴트 라인>이라고 달았다. 폴트 라인(fault line)은 지진을 유발하는 단층선을 의미한다." 저자의 시각이 독특한데, "저자는 세계 경제에 많은 단층선이 있어서 이를 진단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대재앙을 맞을 것임을 예고한다.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가는 세 가지 폴트 라인은 경제와 정치의 단층선, 국가 간 무역불균형의 단층선, 영미식 금융제도와 독일ㆍ일본식 금융제도의 단층선이다." 같은 주제를 다룬 책으로 데이비드 위더머 등이 쓴 <애프터쇼크>(쌤앤파커스, 2011), 로버트 라이시의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김영사, 2011) 등도 나란히 참고해봄직하다.  

6. 과학

장경애 실장이 추천한 책은 화제작 <로지코믹스>(랜덤하우스코리아, 2011)이다. "20세기의 지성으로 포장돼 있던 버트런드 러셀을 한 꺼풀 벗겨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책으로 "영국 귀족 출신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로 알려진 ‘딱딱한’ 러셀을 만화라는 형식 덕분에 좀 더 쉽게, 좀 더 인간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러셀 선집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비아북, 2011)와 다시 나온 <종교와 과학>(동녘, 2011)까지, 갑자기 러셀 붐이다.  

  

좀더 근원적인 독서를 원하는 독자라면 그의 자서전과 함께 박병철 교수의 <버트런드 러셀의 삶과 철학>(서광사, 2006), 러셀 자신의 철학론 <나는 이렇게 철학을 하였다>(서광사, 2008), 그리고 편파적이란 평판 속에서도 가장 유명한 철학사 중 하나인 <서양철학사>(을유문화사, 2009)까지 다시 챙겨볼 수 있겠다. 음 <서양철학사>를 읽던 게 학부 1학년 때이니 그새 한 세월이 지나갔군...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민병일의 <나의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아우라, 2011)이다. 제목 그대로 고릿적 몽블랑 만년필 이야기인가 보다. 오래된 일상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라면 사진작가 윤광준의 '생활명품' 이야기들과 잘 어울릴 듯싶다.  

개인적으론 데이브 히키의 <보이지 않는 용>(마음산책, 2011)을 예술분야의 책으로 읽어볼까 한다. "미국 미술평단의 '이단아'로 불리는 그는 수잔 손택, 아서 단토, 로잘린드 크라우스, 제리 살츠 등과 함께 미술계 안팎으로 강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비평가"란 소개에 솔깃해서다. 손택과 단토와 크라우스를 읽은 적이 있는 만큼(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살츠는 생소하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하니 관심이 생기는 것. <에어 기타>와 <앤디 워홀> 등의 책들을 갖고 있다.   

8. 교양 

철학자 탁석산이 고른 책은 조셉 조네이도의 <만들어진 아동>(마고북스, 2011)이다. 모처럼 모르고 지나친 책이 나와 반갑다. "만들어진 전통, 만들어진 근대 등 최근에 우리가 갖고 있는 것들이 원래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책들이 나오고 있다. 이 책은 그 대상이 아동이라는 점에서 좀 더 정신에 자극을 준다."는 게 추천 이유다. '만들어진 XX'만큼, 아니 그보다 더 유행한 제목은 'XX의 탄생'인데, '아동'도 예외는 아니다. 필립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새물결, 2003)은 <만들어진 아동>과 나란히 읽어둠직하다(웬지 '5월의 읽을 만한 책' 같긴 하다).   

9. 실용 

손수호 논설위원이 고른 실용서는 윌리엄 케인의 <거장처럼 써라>(이론과실천, 2011)이다. 한번 소개 페이퍼에 올려놓았던 책인데, 그때의 멘트를 다시 따오면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의 기교>(역락, 2010), 프랜신 프로즈의 <소설, 어떻게 쓸 것인가>(민음사, 2009)도 교본이 될 만한 책이다. 소설의 각 단계별로 모범이 될 만한 예시들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말 그대로 교재형 책은 제임스 스콧 벨의 <소설쓰기의 모든 것>(다른, 2010). '플롯과 구조'를 다룬 1부만 나와 있는데, 몇 부까지 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실전형' 같다. 이 시리즈가 다 출간되면 혹 나도 소설을 써볼까란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이라고 하니까... 

10. 일본문화사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의 주제는 '일본문화사'로 정한다. 폴 발리의 <일본문화사>(경당, 2011)을 원서까지 구해놓은 참이다. 게다가 '근대 일본의 문화사'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근대 지의 성립>(소명출판, 2011)도 눈길을 끈다.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가 기획한 이 시리즈는 별권을 포함해 총 11권으로 구성돼 있다고 하는데, <근대 지의 성립>은 제3권이고, 이미 나온 <확장하는 모더니티>(소명출판, 2011)가 제6권이었다. 시리즈가 완역되면 좋겠다... 

11. 03. 27.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은 니콜라이 고골의 <죽은 혼>이다. 새 번역본이 작년 10월에야 출간돼 이번 학기부터 비로소 강의 커리큘럼에 집어넣은, 고골의 대표작이다. 오랜만에 다시 읽게 돼 반갑고, 고골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처음 강의하게 돼 약간은 설레기도 하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 산더미이지만, 다시 읽어야 하는 책도 그 못지 않다는 사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끔 한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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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한 한 지난 두 주는 '조용한' 주였다. 책이야 떨어지지 않고 계속 나오지만 가끔씩 '폭발'하는 주에 비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가운데서도 주목받지 못하고 묻히는 책들이 나오는데, 언론리뷰를 기준으로 삼자면 역사학 책 두 권이 그렇게 보인다.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실과 흔적>(천지인, 2011)과 설혜심 교수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길, 2011). 두 역사학자의 역사론으로 나름 일독의 의미가 있을 듯싶어 자투리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대전일보(11. 03. 19) 인간의 역사는 진실인가 거짓인가

미시사(微視史) 개척자로 평가받는 이탈리아의 역사가 카를로 긴즈부르그가 쓴 역사학 방법론에 관한 책이다. 2500년의 세월 속에서 진실한 것, 거짓된 것, 허구적인 것들을 지적하고 추적하며 진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연 가능한지 문제를 함께 제기한다.

대표작인 ‘치즈와 구더기’에서 16세기 이탈리아의 한 방앗간 주인을 통해 농민 문화를 들여다봤던 저자는 이 책에서 2천500년의 역사 속에서 진실한 것, 거짓된 것, 허구적인 것들을 추적하면서 진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묻는다.

저자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 대한 생동감 있는 묘사(에나르게이아)와 역사 서술, 프랑스의 철학자 볼테르, 소설가 스탕달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허구와 진실 사이에 있는 거짓된 진실로 보이는 역사적 소재들을 해부한다. 이처럼 상당히 이질적인 주제들을 언급하고 있는 모든 장들의 내용은 이야기의 실마리로서 우리를 현실의 미로로 인도해주는 실과 흔적들 간의 관계라고 설명한다.(김수영 기자)   

한겨레(11. 03. 26) 역사학의 새로운 맛은?

1970년대 유신 말기 감옥에 갇힌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교재의 하나가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 발전 연구>였다. 1946년에 나온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 시각에서 자본주의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실증적으로 검토한 쉽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어쩌랴 감옥에서 넉넉한 건 시간뿐이었으니. 역사학자 이영석을 역사학으로 이끈 것도 돕이었다. 친구들이 감옥으로, 노동현장으로 갈 때 서양사를 공부한 그는 유럽의 사회사와 경제사 연구를 통해 시대의 빚을 갚으려 했다. 학벌주의가 판을 치는 학계에서 명문대 출신도, 유학파도 아니고, 사학과조차 없는 지방대 교수인 그가 서양사학회장에 선출되게 만든 힘은 근면과 성실, 그리고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와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 같은 쓰나미를 버틴 학문적 뒷심이었다.

이영석은 역사학자 설혜심 연세대 교수가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에서 로이 포터, 키스 토머스와 함께 ‘내가 사랑하는 역사가들’로 소개한 이다. 온천장, 관상학, 지도 등 독특한 주제로 역사학의 새로운 맛을 선보인 지은이가 이번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역사책을 내놓았다. 여기엔 역사학에 왜 상상력이 필요한가를 주장한 논문부터, 한국 서양사 연구의 계보, 마녀사냥과 신대륙 발견에 대한 연구 등 역사연구 다양한 시각, 트위터와 미시 역사가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는 데 착안한 일상과 관련된 역사 등 다양한 글들이 모였다. 한 주제에 천착한 이제까지의 책과 다른, 숙달된 조교의 시범 같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애초 지은이가 염두에 둔 제목은 ‘역사 실험’ 또는 ‘역사 연습’이었다.(조홍섭 기자)  

11. 03. 27.  

P.S. 근대 영국사가 주전공인 이영석 교수의 번역으로는 윌리엄 조지 호스킨스의 <잉글랜드 풍경의 형성>(한길사, 2007)이 있다. 역사학 공부의 여정을 담은 '사회사의 유혹' 두 권도 역사학도에겐 유익한 길잡이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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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3-27 15:44   좋아요 0 | URL
유신말기에 감옥에서 <자본주의 발전연구>를 읽었다는 건...글쎄요.광민사에서 번역본이 나온 때가 1980년입니다.뭔가 기자가 잘못알고 있는 것 같아요.

로쟈 2011-03-27 18:00   좋아요 0 | URL
원서로 읽었다는 얘기 아닐까요? 감옥에서의 넉넉한 시간 얘기로 봐서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7 21:00   좋아요 0 | URL
글쎄요...그걸 어떻게 원서로...내용도 어렵거니와 두께가 엄청나지 않습니까.자본주의 이행논쟁을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논하게 되는 게 70년대 후반 80년대 초인데, 유신말기는 학생운동가들이 탐독할 시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로쟈 님 또래들이 읽지 않았을까요?

로쟈 2011-03-27 21:02   좋아요 0 | URL
정확한 건 책을 보면 알겠지만, 400쪽 원서라면 1년안에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하루에 한 페이지씩 읽으면 될 테니까요...

노이에자이트 2011-03-27 21:17   좋아요 0 | URL
제가 학생운동을 경험한 사람이 아니긴 합니다만 학생운동기에서 유신 말기는 사회과학을 그리 깊이 공부한 때가 아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그렇다고 80년대 학생운동이 특별히 70년대보다 더 나을 것은 없지만 80년대의 운동론 서적들을 보면 70년대의 운동론의 과학적 토대가 빈약했다 운운 하더군요.그랬기 때문에 독서성향이 달라서 70년대 학생운동가와 80년대 학생운동가는 서로 이질감을 많이 느꼈다고 하더라구요.로쟈 님의 대학시절엔 대학생들이 자본주의 이행논쟁이나 내재적 발전론에 관해서 많이 공부하던가요?

로쟈 2011-03-27 21:20   좋아요 0 | URL
제가 경제학에 관심이 없어서 읽지 않았을 뿐, 사회과학 탐독 세대들은 다 보았을 듯싶은데요. 이행논쟁에 관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3-27 21:43   좋아요 0 | URL
그런 독서성향이 70년대 말기까지는 없었을 것입니다.또 어떤 책이 번역되느냐도 중요한데, 모리스 돕의 책이 나온 지 5년이 지나고서야 스위지<자본주의 발전이론>이 번역됩니다.그전에는 스위지의 그 책은 <자본주의 이행논쟁>에 그 일부가 소개된 데 불과하죠.여하튼 80년대 초반 중반이 되어서야 경제사 책이 좋은 게 많이 번역되었습니다.

긴돌 2011-05-14 23:35   좋아요 0 | URL
우연히 이 싸이트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돕의 <자본주의 발전연구> 영문판 복사본은 1974년경부터 구입할 수 있었지요. 그 무렵 이 책을 구입해 대학 3학년 여름에 자취방에서 줄곧
이 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암파서점에서 나온 오스카 히사오, 다카하시 고하치로 등이 집필한 <서양경제사강좌>(일본판)은 대학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었고요. 물론 돕의 번역판은 1980년 무렵에 나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행논쟁은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1970년대에 영문서적 복사본이나 일본의 관련 서적을 구할 수 있었어요. 또 1950년대 말에 서울대 민석홍선생이 잘 요약해 소개하기도 했지요. 우리 번역판은 1980년경에 나왔을 겁니다. <한겨레신문> 기사에 유신 말기 감옥에서 돕의 책을 읽었다는 것은 조금 과장된 것 같고, 다만 일본번역본이나 영문판 복사본은 구할 수 있었겠죠.

로쟈 2011-05-15 13:51   좋아요 0 | URL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Who are you?

화제성에서는 리비아의 전쟁과 일본 대지진마저도 잠재운 듯 보이는 것이 '신정아 신드롬'이다(알라딘에서는 단연 더 그렇다). 베스트셀러로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와 <아프니까 청춘이다>에 이어서 자전에세이 <4001>은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보여주는 지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정아 신드롬 원인을 살펴본 기사와 과거 '신정아 게이트'의 의미에 대해 짚은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사안이 미술계의 병폐와 연애 스캔들에서 사회 전반으로 번진 느낌이다.    

한국일보(11. 03. 25) 신정아 자서전 신드롬 왜 

"신정아의 책 한 권이 서울의 종이값을 올리고 있다."

지난 22일 출간돼 유례없는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신정아씨의 자전에세이 <4001>을 두고 항간에 도는 말이다. 이틀 만에 1쇄 5만부가 모두 팔려나갔고 추가 인쇄될 책을 구하기 위해 서점들은 출판사에, 사람들은 서점에 줄을 섰다. "출판계에서 통상적인 경우는 아니다"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신씨의 책에 이토록 열광케 하는 것일까.

이택광 경희대 교수(문화평론가)는 "선정성과 정치성이라는 두 요소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 집계에 따르면 출간 후 이틀 동안 신씨의 책을 가장 많이 구입한 층은 50대 남성(17.4%)이었는데,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두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는 층"이라며 "여기에 민감한 세대의 심리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30대 여성(16.3%)도 높은 구매력을 보였다"며 "이는 신씨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흔히 보이는 애증의 현상"이라고 풀이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신씨를 시기하고 질투하면서도 같은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동병상련의 정도 함께 느낀다는 것이다.

책의 인기 비결을 설명하는 데는 관음에 대한 독자들의 욕구도 빠지지 않는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과 전문의는 "과거 연예인 X파일이 폭발적이었던 것은 결국 실명이 나왔기 때문"이라며 "이번의 경우에도 정운찬 전 총리 등 다수의 권력층, 지도층 인사들의 실명이 거론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책의 서술 방식도 '차 안에서 추행 당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웃옷 단추를 어떻게 했다'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이라며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과도 연결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택광 교수는 "일방적인 주장이라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신씨의 책에 진실이 들어 있다고 본다면 이는 그 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된다"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기를 끄는 책들은 대개 부조리와 정의에 관한 이야기인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신씨의 '용기 있는 행동'도 책이 인기를 끄는 이유로 분석됐다. 문학평론가 김갑수씨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신정아씨의 입장에 대입한다면 많은 경우 소리없이 지내다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기를 바랄 것"이라며 "하지만 신씨는 여성을 업무상의 파트너가 아닌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근주의 사회의 병폐를 온몸으로 겪은 한 여성으로서 이를 세상에 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복수 차원을 넘어서는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측면도 있다는 분석인 셈이다.

한편의 드라마 같은 신씨의 복수극이 책의 인기 배경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택광 교수는 "책 제목으로 자신의 수감번호를 선택한 것은 '당신들이 날 이렇게 만들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신씨는 과거 속죄한다는 마음으로 책을 쓰고 있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실제로는 복수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분석학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감옥에 갔다 온 사실을 전면에 내세울 수 없다"며 "신씨는 책을 통해 '난 죄수가 아니다, 피해자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책 내용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일방통행식의 폭로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것도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정신과 전문의 이창한씨는 "신씨는 자신의 책을 통해 세상의 한복판에 보란 듯이 다시 섰다"며 "터뜨리면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인생역전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갑수씨는 "'좋은 게 좋다'며 나쁜 것들은 감춰놓고 보는 우리 사회가 보다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정민승기자)   

경향신문(07. 09. 21) 卞·申이 진짜 보여준 것

갑자기 사건의 양상은 학력위조에서 섹스스캔들로 바뀌어버렸다. ‘신정아 게이트’라는 표현 자체가 이 사건의 스펙터클을 더욱 자극한다. 상류층 인사들이 신정아라는 ‘팜므 파탈’을 두고 치정극을 벌인 것처럼 몰고 가는 분위기다. 때는 바야흐로 대선국면. 신정아씨에 쏠린 관심 때문에 여권 대선후보 경선에 차질이 빚어져서 검찰이 이 사건을 빨리 종결지으려 한다는 소문도 있고, 그 반대로 야당이 여당의 대선구상을 망쳐놓기 위해서 신정아 스캔들을 부풀리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말들도 각양각색이다.

-내용없는 스펙터클 잔치 전락-
그러나 그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다. 신정아씨에 대한 언론의 전언은 언제나 뜬금없다. 오늘은 동국대 이사장이 신정아씨에게 거액을 줬다는 보도가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 어떻게 줬는지 알 길이 없다. 이사장이 아무리 해명을 하더라도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이야기를 기대한다. 언론은 이런 욕망에 화답하고, 이야기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이 미궁에서 길을 잃기 전에 한번 생각해보자. 이 사건이 어떤 의미에서 이토록 중요한 사안인가? 정치권이 이 사건을 어떻게 이용해먹든, 그건 시간이 지나면 시시비비가 가려질 문제다.

여기에서 정작 주목해야 할 건 이 사건이 이른바 한국 미술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거울이라는 사실이다. 신정아씨는 변양균씨를 ‘예술적 동지’라고 불렀는데, 바로 이 점에서 이들이 말하는 미술이라는 게 두 사람의 스캔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 판명 난다. 내가 보기에, 이 대목이 훨씬 의미심장하다. 이 둘이 어떤 사이이든, 이 둘이 연인 사이라는 그 ‘결정적 물증’이 무엇이든, 변양균씨가 신정아씨에게 노골적인 e메일을 보냈든 말든, 오직 문제가 되는 건 이들이 ‘예술을 위해’ 의기투합했다는 사실이다. 이 사적이고 은밀한 관계로 인해 신정아씨는 시장성 있는 ‘스타급’ 큐레이터로 포장될 수 있었던 거다.

도대체 이들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었던 그 예술은 무엇일까? 사실 예술을 조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 신정아씨와 변양균씨의 예술은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하다. 신정아씨가 ‘예술’을 위해 한 일이라곤, 원로들에게 싹싹하게 대하고, 변양균씨 같은 고위급 공무원과 뜻을 모아, 돈도 벌고 명성도 쌓은 거다. 신정아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처벌하는 문제와 이 문제는 엄연히 다른 사안이다. 오히려 후자가 더 긴박하고 심각한 건지도 모른다. 법적으로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계에 이런 사적 관계의 은밀한 거래를 제어할 능력이 없다는 걸 이번 사건은 명확하게 보여줬다. 이와 더불어 명문대 학벌이 경쟁의 도구로서 막강한 능력을 과시한다는 세간의 믿음을 재확인시켰고, 엉뚱하게도 방송 연예계에 허위학력 문제가 만연해 있다는 점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런 걸 보면, 신정아 사건의 후폭풍은 참으로 거셌다. 평소에 신정아가 누군지도 몰랐던 애먼 이들이 파편에 맞아 나가떨어졌다. 허위로 쌓아올린 거대한 성곽의 실체가 드러났던 거다. 그러나 이런 사실에 대한 반성도 없이, 오직 언론은 이 사건을 스캔들로 만들어 세간의 시선을 더 끌어보고자 열성을 부리고 있다. 이게 정치적인 꿍꿍이 때문이든, 아니면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순수한 기자정신 때문이든, 이 사건은 이제 내용 없는 스펙터클의 향연으로 전락해버렸다.

-인맥에 휘둘린 미술계 현실-
예술이 근대화의 견인차 역할을 한 적이 없는 한국에서 이번 사건은 필연적으로 예견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어떤 미술인은 신정아씨 때문에 그나마 성장의 기미가 보이던 미술계가 초토화되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성장의 기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 이번 사건이 증명하는 게 아닌가 한다. 지금 한국 미술에 필요한 건 성장이라기보다, 미술계가 사사로운 인맥과 금전주의에 휘둘리는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라고, 이번 사건은 웅변하고 있는 거다.(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어학부) 

11. 0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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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11-03-25 17:35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미친듯이 팔리는 대한민국이 무섭습니다.

로쟈 2011-03-27 18:05   좋아요 0 | URL
MB를 대통령에 뽑은 거에 비하면야...

헌내 2011-03-25 21:54   좋아요 0 | URL
노이즈 마케팅의 진수군요... -_-
한국 사회도 이해가 안 되고요..

로쟈 2011-03-27 18:05   좋아요 0 | URL
알고보면 다 이해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세실 2011-03-26 08:45   좋아요 0 | URL
어제 수업시간에 이 책을 도서관에 비치하느냐 마느냐로 잠시 토론을 했어요.
전 개인적으로 사기 보다는 차라리 도서관에 비치하는 쪽이 맞다고는 생각하지만
읽고 싶지는 않아요. 왠지 상술에 놀아나는 느낌이랄까. 선데이서울 읽는 느낌일꺼 같아요.

로쟈 2011-03-27 18:07   좋아요 0 | URL
비치불가용까지는 아닌 듯한데요. 이용자들의 수요가 있다면요...

비로그인 2011-03-27 09:09   좋아요 0 | URL
많이 배운 사람도 까놓으면 시정잡배랑 별 다를거 없다는 식의
반지성주의 반지식인주의도 이런 책 인기에 한몫합니다.

철학책보다는 철학자의 사생활과 스캔들, 이중성을
다룬 책이 나오면 훨씬 잘 팔리겠죠.

로쟈 2011-03-27 18:07   좋아요 0 | URL
반지성주의이기도 하지만 반권위주의이기도 해서 양면적인 듯합니다...

하영-이룰수없는아련한첫사랑- 2011-03-29 19:17   좋아요 0 | URL
너무 많은 책들의 홍수속에서.... (늘 세상에 필요없거나 의미없는 존재는 없다고 믿지만)
정말 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뻥하게 만드는 책들의 홍수속에 있으면
가끔은 나오지 말았으면 아니 나올 필요가 없는 책들은 좀 사라져 주길 바라곤 합니다.
(오역되어 원래의 가치를 흐리는 책들을 물론 포함해서요)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보지 않아서 판단하기 힘들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 정도밖에 안되는 에세이나 잠시 비치된 잡지에 실릴 만한 읽을꺼리 정도인데 '책'이 되어 '출판'되고 심지어 '무수히 팔려나가기'까지 하는 건 아닌가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 읽을 이유는 저한텐 없지만, 혹시 그래야 하는 분들에겐 '책 값'이 아까울 지 모르니 도서관엔 비치하심이^^
('그런 정도의 책'이 워낙 많이 나오는 우리 사회라...)
 

사회학자에서 환경운동가를 거쳐 '파리의 산책자'가 된 정수복 씨의 새 책이 나왔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문학동네, 2011). 아침에 주문을 해놓고 보니, 이 책을 읽으려면 '완전한 휴식'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든다. 프로방스 예찬은 익히 들어본 것이라 새삼스럽지 않지만 '완전한 휴식'은 뭔가 끄는 게 있다. 완전한... 휴식이라...

한겨레(11. 03. 24) “느릿느릿 걸으면 햇빛이 날 치유하지요”

‘파리의 산책자’ 정수복(56·사진)씨가 이번엔 프로방스의 햇빛을 가득 담은 책을 내놓았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의 출간에 맞춰 현 거처인 파리를 잠시 비워두고 서울에 왔다. 23일 서울 홍대 앞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자신을 ‘프랑스와 한국 사이에서 나룻배로 양안을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프로방스 예찬에 입이 말랐다. “최창조 선생이 마음이 편하면 명당이라고 했죠. 프로방스에 가면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프로방스에는 영혼을 고양시켜 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보는 휴식 같은 것이죠. 반 고흐, 알퐁스 도데 같은 예술가들이 거기서 휴식을 취한 것은 다 이유가 있지요. 프로방스의 핵심은 바로 햇빛이지요.” 



사회학자에서 환경운동가로, 다시 걷는 사람 ‘산책자’로, ‘분류가 불가능한 지식인’으로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그는 빠르게만 달려가는 세상 사람들에게 자동차를 버리고 느릿느릿 발소리를 낮춘 채 ‘프로방스’의 작고 한적한 마을들을 걸어보라고 속삭인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서 그가 남프랑스의 햇빛이 주는 휴식과 치유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생태운동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삶의 방식과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적게 쓰는 삶이 답입니다. 적게 소유하지만 훨씬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1990년대에 사회학자로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환경운동에 몰입하다, 2002년 문득 그만두고 집을 내놓고 6년 유학생활의 장소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 그는 이를 ‘정신적 망명’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를 쓴 홍세화 선생은 정치적 망명을 하신 분입니다. 어쩔 수 없이 조국을 떠나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제 의지로 떠난 정신적 망명자입니다.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에 적응을 강요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당시 귀농운동하던 이병철 선생께 여쭈었죠. ‘프랑스 남부로 가서 귀농해도 귀농이죠?’라고. 그랬더니 당황하시면서 ‘어, 귀농이지’ 하고 답하더라고요. 환경운동을 10년가량 하면서 한계를 느꼈죠.” 



그는 파리에서 9년 남짓 생활하면서 파리를 걷고 또 걸었다. 리옹, 브르타뉴, 프로방스 등등 프랑스 전역을 걷고 여행했다고 한다. 2009년 파리 산책기 <파리를 생각한다-도시 걷기의 인문학>을, 지난해엔 <파리의 장소들-기억과 풍경의 도시미학>을 펴냈다. 걷기는 사색이요 영감의 원천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책에서 오늘의 국내 사회학이 현실과 호흡하지 못하고 있으며, “학술지 논문평가 제도화로 학자가 논문제조기로 전락했다” 비판한다. 그 자신을 좌도 우도 아니고, 사르트르 팬이지만 때론 카뮈에 가깝게 다가가는 그런 지식인,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 지식인으로 규정한다. 그것은 다른 말로는 개인주의다. 그는 한국에서 건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이야기했듯이)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 답이 안 나오지만 그 질문을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진정한 개인주의입니다. 그러려면 문학, 예술, 교양을 책을 통해 폭넓게 체험해야겠지요.”(허미경 기자) 

11. 03. 25. 

 

P.S.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과 같이 주문한 책은 <전쟁은 없다>(인간사랑, 2011)이다. 정신분석 잡지 '엄브라(Umbra)'의 번역으로 <법은 아무것도 모른다>(인간사랑, 2008)에 이어서 나온 것이다. 2년 터울인가, 3년 터울인가. 그러고 보니 연간으로 나오던 <뉴레프트리뷰>도 3호가 나올 때가 됐다. 조금 늦어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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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rror 2011-03-25 23:48   좋아요 0 | URL
학술지 논문평가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 제도가 없었을 때 한국의 학자들이 아주 대단하고 독창적인 업적을 남긴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행하기 이전의 한국학계의 생산력이란 논문 갯수로 평가하는 지금보다 더 훌륭했다고 결코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제도 시행 이전의 한국 학자들이란 다수가 1년에 논문 한 편도 안 쓰는 경우가 허다했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누구나 갯수 채우기 위해서 몇개씩이라도 쓰려고 하죠. 강제적인 제도가 없었을 때 아무 것도 안하고 놀았으니, 이런 강제적 제도가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이런 제도를 불평하기 이전에 스스로 논문을 잘 쓸 생각부터 먼저 해야죠.
그런데 프랑스에서 지내는 한국 지식인의 눈에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는 치유의 기능을 갖고 있나 봅니다.

로쟈 2011-03-27 18:16   좋아요 0 | URL
문제는 갯수로 평가하는 방식도 아니라는 거지요. 업적이 갯수에서 나오진 않으니까요. 그냥 연구업적이나 활동을 공개하는 식으로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아는 거지요. 그가 어떤 학자인지...

雨香 2011-03-26 03:00   좋아요 0 | URL
건강한 의미의 개인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감합니다. 특히 왜곡된 집단주의 문화가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에서는요.
개인적으로 '파리를 생각한다'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08년에 짧게 파리에 다녀왔었는데 파리 방문전에 출간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 했습니다. '파리의 장소들'역시....

로쟈 2011-03-27 18:18   좋아요 0 | URL
저는 책만 모아놓고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파리에 갈일이 한번 생기면 좋겠는데요.^^;
 

요즘의 개인적인 관심사는 '그리스'와 '세계사', '이슬람', '미국사', '근대' '성경' 등인데(관련서를 모으고 있다는 뜻이다), '성경'이 포함된 건 케네스 데이비스의 <당신이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웅진지식하우스, 2011)이란 책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원제가 'Don't Know Much About the Bible'이고, 'Don't Know Much About' 시리즈의 하나. 미국사와 세계신화, 지리 등에 관한 책 몇 권이 더 소개돼 있고, 시리즈의 청소년판도 번역돼 나왔다. 아무튼 '고전 텍스트'로서의 성경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책이다. 덕분에 존 게이블 외, <문학으로서의 성서>(이레서원, 2011)와 존 쿠퍼의 <철학자들의 신과 성서의 하나님>(새물결플러스, 2011)도 주문해놓았다. 분량에서 압도적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성경 가이드북 <아시모프의 바이블>(들녘, 2002)에까지 손길이 미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읽고 있는 <일리아스> 관련서들과 함께 <성경>에 관한 독서도 보충해놓을 참이다. 다섯 권을 리스트로 묶어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당신이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케네스 C. 데이비스 지음,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3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원(5% 적립)
2011년 03월 21일에 저장
절판
문학으로의 성서- 제5판
존 게이블 외 지음, 신우철 옮김 / 이레서원 / 2011년 3월
26,000원 → 23,400원(10%할인) / 마일리지 1,300원(5% 적립)
2011년 03월 21일에 저장
절판
철학자들의 신과 성서의 하나님- 신과 세계의 관계, 그 치열한 논쟁사
존 쿠퍼 지음, 김재영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1년 3월
35,000원 → 31,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75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밤 11시 잠들기전 배송
2011년 03월 21일에 저장

아시모프의 바이블- 오리엔트의 흙으로 빚은 구약 (양장본)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박웅희 옮김 / 들녘 / 2002년 2월
42,000원 → 37,800원(10%할인) / 마일리지 2,100원(5% 적립)
2011년 03월 21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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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1-03-21 10:18   좋아요 0 | URL
미국사에 대한 책을 여러권 읽어보니 케네스의 책이 text로 삼기에 아주 좋았습니다. 미국에서 보니 Don't know much about 이라는 책이 몇 권 있던데 Bible에 대한 책에 일단 눈도장 찍습니다.

고등학교 때 성경을 약 3번 정도 통독하고(신약은 백번이 넘게 정독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던데요 라고 이야기했다가 교회에서 문제아로 찍혔던 기억이 납니다. 심지어 성경에 목사라는 말이 한번 밖에 나오지 않고, 신약성경의 논리상 목사가 특정한 권위를 갖는 것을 문제삼자 이번엔 전도사들이 돌아가며 상담을 하더군요.
결국 교회를 옮기자 목사가 설교시간에 저를 두고 이단에 빠졌다 했답니다. 저희 어머니 수년간 새벽기도 가셔서 우셨습니다. 이단에 빠진 아들때문에...

지금처럼 '좋은게 좋은것' 정신으로 살았으면 조용했을 텐데요.

로쟈 2011-03-24 00:06   좋아요 0 | URL
'당신이 성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의 독자가 아니라 저자가 되셔야 할 거 같은데요.^^

두락 2011-03-21 22:07   좋아요 0 | URL
근데 신문기사를 보니까 2010년 안에 아트앤스터디 러시아문학강의를 책으로 내신다고 했던것 같은데 이거 언제 나오나요?

로쟈 2011-03-24 00:07   좋아요 0 | URL
예정대로 진행되면 상반기에 나올 거 같습니다.^^

아돌0식 2011-03-21 22:49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는 바트 어만의 "성경 왜곡의 역사(Misquoting Jesus)"를 강추해드리고 싶네요. 성서 본문 비평의 권위자로 성서의 "'원본문'이란 것은 없다"라는 주장을 토대로 성서무오설과 축자영감설의 오류를 시원하게 지적하면서 성서로부터 동성애,남성우월주의,타종교 배척과 같은 교리를 도출하는 기독교 근본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4복음서를 분석한 "예수 왜곡의 역사(Jesus, Interrupted)" 라는 책도 나왔다는 군요.

로쟈 2011-03-24 00:07   좋아요 0 | URL
어만의 책은 갖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

2011-03-22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3-24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