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아리랑>(2011)이 이번 칸느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상을 수상했다. 오전에 기사가 뜬 걸 보고, 점심을 먹고서는 예고편으로 올라와 있는 동영상을 봤다. 영화제에서의 수상 자체야 대수롭지 않을 수 있지만 여러 사정으로 '폐인' 상태에까지 갔었다는 그가 감독으로 재기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으면 싶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1. 05. 23) 김기덕 감독이 목 놓아 아리랑을 부른 이유는

그는 목놓아 아리랑을 불렀다. 2008년 이후 한국영화계에 담을 쌓고 은둔의 생활에 들어가 폐인이 됐다는 소리까지 들은 그는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한을 토해내는 듯 자신의 부활을 알리는 아리랑을 불렀다.  

김기덕(51) 감독의 아리랑은 수상소감이었다. 칸 영화제 폐막 하루 전날인 21일 밤(현지시각) 프랑스 휴양도시 칸 드뷔시관에서 열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시상식에서 독일 안드레아스 드레센 감독의 ‘스톱드 온 트랙’과 함께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공동 수상한 뒤 출품작 ‘아리랑’으로 수상의 기쁨을 토해냈다.

그의 수상 덕분에 한국 영화는 지난해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에 이어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2연패하는 개가를 올렸다. 아울러 김 감독 본인은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에 이어 칸 영화제까지 한국영화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을 섭렵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김 감독의 작품은 고국보다 외국에서 더 대접을 받는 기묘한 상황이 다시 한번 연출된 것이다. 김 감독은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빈집’으로 2004년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다. 주목할 만한 시선은 칸 영화제 경쟁부문과 함께 대표적인 공식부문으로, 주로 새로운 경향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부문이다.

그는 데뷔작 ‘악어’(1996)부터 ‘비몽’(2008)까지 15편의 영화를 만들며 각종 국제영화제를 석권한 국내를 대표할 만한 감독이었지만 국내에서보다는 외국에서 더 유명한 감독이었다.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노골적이면서도 밀도 있게 그린다는 호평도 있지만 국내에선 여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대상화한다는 악평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거의 매년 1편씩을 꾸준히 만들어온 왕성한 창작자였다.특히 2004년 ‘사마리아’로 베를린영화제 감독상과 ‘빈집’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감독으로서는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국제적 지명도가 높아지자 3대 영화제의 최고봉인 칸 영화제와도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활’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으며 2007년에는 ‘숨’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칸 영화제 수상은 시간문제인 듯 보였다. 하지만 악재가 찾아오면서 2008년 ‘비몽’(이나영 오다기리 조 주연) 이후 외부와 연락을 끊고 칩거 상태에 들어갔다. 영화 ‘비몽’을 찍으면서 주연 여배우 이나영이 숨질 뻔한 사고가 발생한 데다 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자신의 조감독 출신인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영화다’를 놓고는 배급사와 소송전을 벌였다.

지난해 연말에는 장훈 감독이 메이저 영화사와 계약하면서 그를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으며 급기야 김기덕이 폐인이 됐다는 뜬 소문까지 번지기도 했다. 인터넷을 통해 논란이 일자 김기덕 감독은 “더 이상 장훈 감독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과 그가 하는 영화 일에 지장이 생기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한다”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칸 현지에서 공개된 김 감독의 새 영화는 ‘의형제’의 장훈 감독을 실명 거명하며 격하게 비판해 파문이 일었다. “깨끗이 떠난다고 말했다면 내가 안 보낼 사람이 아닌데 아무런 상의도 없이 떠났다. 자본주의의 유혹에 떠난 걸 안다. 인생이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배신이라고 하지만 그냥 떠난 거다. 슬펐다”  

김 감독은 몇몇 연기자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실명은 거론하지 않은 채 “악역이 제일 쉽다고? 악역을 통해서 자위하는 거잖아. 니네들은 가슴 안에 있는 성질을 그대로 표현하면 되는 거잖아. 악역 잘한다는 거, 내면이 그만큼 악하다는 거야”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김기덕 감독은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담은 작품인데도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했다고 국가가 상을 주는 “삶의 아이러니”도 비꼬았다.

<아리랑>은 감독 자신의 15년간의 영화인생을 반추하는 세미다큐멘터리 형식의 작품이다. 감독이 직접 출연해서 자신의 지난 영화적 괘적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번민하고 대답하는 형식이다. 본인의 영화인생을 되돌아보는 사적 영화이지만 한국 주류 영화계와 독립영화계의 충돌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이기도 하다.

서울을 떠나 어느 시골의 오두막에서 김 감독은 스스로 묻고 답한다. “매일 술만 먹고 영화는 안 찍을 거냐. 그러니 배신당해서 폐인이란 소리를 듣는 거 아니냐”고 심하게 다그친다. 강한 어조의 질문자 김기덕과 달리, 대답하는 김기덕은 눈물을 글썽이며 심정적인 동요를 한껏 드러낸다. 그는 “일련의 사건 이후로 시나리오가 안 써지더라. 그래서 지금은 슬픈 시기다”라고 입을 연다. “<비몽>을 찍기 이전까지는 육상선수가 계속 트랙을 달리는 것처럼 영화를 만들었다. 야생적이고 순수하고 계산이 없는 영화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강박이 찾아왔다”며 공장 근로자, 폐차장 인부 등으로 일하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받는 감독이 되기까지 자신의 소회를 드러냈다.  

‘아리랑’이란 말이 마치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의미로 들린다는 그는 영화 속에서 절규에 찬 민요 ‘아리랑’을 직접 불렀으며, 거친 욕설까지 입에 담으며 그간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대신했다. “스스로 자신을 고민하는 건 처음이라 설레고 무척 떨리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그는 영화의 말미에서, 자신이 지금까지 가졌던 원망과 분노를 직접 제작한 권총을 동원해 해소하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한다. 결국 “자신에게 가장 행복한 일인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다큐멘터리, 드라마, 판타지를 오가는 장르의 실험. 스태프 없이 혼자 캐논 디지털 카메라 촬영을 시도한 점 등 <아리랑>은 영화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시사 후에서 일부 영화기자들과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보냈으나 일부 관객들은 중도퇴장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영화웹진 <에크랑 누아르>는 트위터를 통해 “김기덕의 신작은 굉장히 매혹적이고 급진적”이라고 평했으며, 프랑스의 문화월간지 <테크니카르>는 “칸영화제를 향한 구조 요청과 같은 영화”라고 전했다.

한편 칸 심사위원상은 안드레이 지야긴트세프 감독의 ‘엘레나’가, 감독상은 모하마드 라소울로프 감독의 ‘굿바이’가 차지했다. 올해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에는 개·폐막 작을 포함해 모두 21편이 초청됐으며 한국영화는 김 감독의 ‘아리랑’,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진출했다.(김도형 선임기자) 

11. 05. 22.  

P.S. 기사 말미에서 심사위원 수상자로 거명된 '안드레이 지야긴트셰프'는 <리턴>의 감독 '안드레이 즈뱌긴체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이름이 제대로 표기된 기사가 드물다). <아리랑>과 함께 이번에 같은 부문에 출품됐던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2011)도 기대작이다. 두 영화를 한국에서도 곧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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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11-05-23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기덕 감독을 조용히 응원해 왔어요
세계에서 거장임에도 우리 나라에서는 학력이 달리고 남달라 무시받는 느낌이 참 싫더라고요. 물론 싫어하는사람들 그 이유가 아니라고 말하지만요

로쟈 2011-05-24 00:01   좋아요 0 | URL
대중에겐 가장 과소평가된 감독 중 하나죠...

아웅 2011-05-26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기덕 감독작업 나쁜남자는 좋았는데 외국에서 김기덕 감독의 작품 활이 주목을 받은 개인적인 생각은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작업은 그의 다른 작품보자 현실과는 개연성이 적은 망망 대해에서의 노인과 젊은 남녀 mythical, fantasy like 상황의 전개는 서구인에게는 신기해보였을것 같습니다. 오희려 빈집이나 나쁜남자는 배경을 경험(직접이 아니더라도) 한 같은 사회의 일원으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으니까요

로쟈 2011-05-27 08:36   좋아요 0 | URL
<빈집> 이후의 <활>은 개인적으로도 퇴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갈 수 있는 자리에서 주춤거린 걸로 보여요...

영남자파 2011-09-26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입견이 있어서 최근에야 챙겨봤는데 김기덕 꺼, 다 작품이라고 느껴졌어요. 빈집은 참 잘 된 소품의 느낌.
끝장면 쯤, 이승연이 몸은 남편쪽으로 돌리지만 재희 들으라고 한마디 하는데..고것 참 반짝 빛나는 아이디어!!

로쟈 2011-09-27 08:28   좋아요 0 | URL
네, 빈집은 걸작 소품입니다...
 

손창섭의 소설들을 읽을 기회가 있어서 1950년대 문학, 혹은 전후문학에도 덩달아 관심을 갖게 됐다. 몇몇 작가의 단편들을 읽어보긴 했지만, 어떤 조망점을 갖고 체계적으로 읽진 않았는데, 손창섭과 전후문학에 관한 몇권의 연구서를 챙기면서 아예 조금 본격적인 관심을 가져보려고 한다. '전쟁의 문학적 의미'에 대한 관심의 고랑을 더 깊게 파두려는 계산이다(카뮈의 <페스트>와 김은국의 <순교자>를 비교해보는 것도 한 가지 욕심이다). 손창섭 장편소설의 발굴과 출간에 공을 들이고 있는 방민호 교수의 <한국 전후문학과 세대>(향연, 2003)를 지난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오래전에 나온 <1950년대 소설가들>(나남출판, 1994)도 도움이 될 듯싶다(소장도서인 듯하지만 가까이에 없어서 확인이 안된다). 장용학, 손창섭 외 김성한, 서기원, 선우휘, 그리고 황순원과 박경리의 전후소설들을 더 챙겨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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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후문학과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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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우리 소설의 세 시야- 장용학 손창섭 김성한의 서사적 모형
나은진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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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와 세계경제사로 분류되는 책 두 권도 지난주 관심도서인데, 하나는 어제 배송받은 기디언 래치먼의 <불안의 시대>(아카이브, 2011)이고, 다른 하나는 장바구니에 넣어둔 대니얼 앨트먼의 <10년후 미래>(청림출판, 2011)이다. 저자들은 각각 파이낸셜타인스의 칼럼니스트와 뉴욕타임스의 논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오피니언 리더'들이 지난 30년과 앞으로 10년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참고해볼 수 있겠다.    

한국일보(11. 05. 21) 경쟁과 분열의 제로섬 시대 윈윈의 시대로 돌아가려면…

2008년 9월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 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외교 문제 칼럼니스트 기디언 래치먼은 <불안의 시대>에서 금융위기를 계기로 세계가 국가 간 협력을 강조하는 윈윈 게임에서 경쟁과 분열이 지배하는 제로섬 게임의 시대로 들어섰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지난 30년간의 세계 역사를 전환의 시대(1978~91년), 낙관의 시대(91~2008년), 불안의 시대(2008~현재)로 나누어 살펴보면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한다. 78년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은 그해 12월 덩샤오핑(鄧小平)이 결정한 중국의 개혁개방을 강대국들의 세계화의 출발점으로 보기 때문이다.

전환의 시대에는 자유시장과 민주화를 향한 움직임이 세계적 추세였다. 중국의 개방뿐만 아니라 레이건과 대처가 주도한 미국과 영국의 급진적 경제 개혁, 유럽의 단일시장 출범, 라틴아메리카의 개방, 인도의 개혁 등이 이 시대에 일어났다. 또 80년대에는 라틴아메리카와 한국, 동유럽 공산권 등 16개국에서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91년 겨울 구 소련이 사라지고 미국이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남으면서 전환의 시대는 끝났다.

낙관의 시대는 세계 어느 국가도 미국에 맞설 수 없을 정도로 미국의 힘이 강력했던 시기다. 주요 강대국들이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이라는 비전을 공유해 국제 갈등의 가능성이 줄어든 윈윈의 시대였다. 저자는 프랜시스 후쿠야마, 앨런 그린스펀 등의 인물들을 통해 이 시대의 사상을 보여 준다. 또 미국이 아시아, 유럽 국가들과 민주주의, 시장, 민주적 평화, 기술력에 대한 믿음 등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었는가를 설명함으로써 주요 강대국이 왜 세계화를 수용했는지, 그리고 윈윈 시대가 어떻게 창출됐는지를 설명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는 국제정치가 위험하고 불안정해진 불안의 시대다. 이 시대에 제로섬 논리가 횡행하게 된 것은 낙관의 시대를 지탱했던 민주주의 자유시장 기술혁명 등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국제 질서를 개편하는 새로운 요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히 중국과 미국 간의 새로운 라이벌 관계로 인해 세계가 한 나라의 이익이 다른 나라의 손실을 의미하는 제로섬 논리에 빠져들고 있다고 지적한다.

불안의 시대에 등장한 기후변화 경제불균형 같은 새로운 글로벌 문제의 특징,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 주요20개국(G20) 유엔 기후회담 등을 무대로 나타난 글로벌 거버넌스 추진 움직임,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경제적 경쟁 심화가 세계 문제 해결이 걸림돌이 되는 이유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제로섬 논리를 극복하고 윈윈의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는 낙관의 시대의 특징들을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미국의 입장에 치우친 감이 있지만 지난 30년간 시대별로 주요 사건과 인물들을 잘 포착해 세계 정치, 경제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남경욱기자)   

한국경제(11. 05. 21) "EU가 붕괴된다고"…세계가 직면하게 될 12가지 경제변화

중국은 다시 가난한 나라로 돌아간다. 유럽연합(EU)은 붕괴한다. 뉴욕타임스 최연소 논설위원인 대니얼 앨트먼 뉴욕대 교수는 이러한 일들이 불과 10년 후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10년 후 미래》에서 세계가 앞으로 직면하게 될 12가지 경제변화를 분석한다. 앨트먼 교수는 "세계 경제의 운명은 단기적 시장 변화가 아니라 보다 심층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지정학적 위치,정치제도,인구 등 '딥 팩터'들을 고려해야 경제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딥 팩터 분석을 통해 중국의 경제 전성기가 머지않아 막을 내릴 것이라 전망한다. 중앙집권적 정부체제와 유교문화는 중국 경제를 경직시키는 대표적 요인이다. 강력한 정부 통제는 산업을 일정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만 그만큼 기업 활동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조사한 '기업 환경평가보고서'에서 중국은 183개 국가 중 151위를 기록했다. 기업하기 힘든 나라에서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중국이 빠르게 늙어가는 국가라는 점도 근거로 든다. 1979년 이후 시행한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노동할 수 있는 젊은 인구의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들 또한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지만 미국의 취업연령 인구는 비교적 적게 줄어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자의 낮은 생산성과 법제도의 불투명성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따라서 인구 증가율과 생산성이 더 높은 미국에 세계 최대 경제대국의 타이틀이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는 "세계경제사에서 중국의 시대는 강력하지만 짧게 기록될 것"이라고 말한다.

EU의 미래에 대해서도 비관적 전망을 내놓는다. 서로 다른 경제성장의 한계 때문에 재정위기를 계기로 이미 회원국 사이에 분열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저자는 미국 남북전쟁을 예로 들어 "정치 · 경제제도의 통합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EU는 결국 불가피하게 다시 분열할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는 독일 네덜란드 등 북서유럽 국가들끼리 금융과 상업적 연대가 강화되는 반면 다른 국가들은 점차 소외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국은 지금 외부 세계에 경제를 개방할 것인지 아니면 폐쇄적인 상태로 남아있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시기"라며 "한국은 중국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예고편이기 때문에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일본경제의 몰락을 예로 들며 인구 감소를 감안해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젊은 인재들이 아이디어와 혁신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도록 경직된 위계질서를 타파하라고 조언한다.(최만수기자) 

11. 0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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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지식인/예술가들의 서재 구경이나 잠시 해보려고 <지식인의 서재>(행성:B잎새, 2011)를 손에 들었다가 뜻밖의 '문장수업'을 받았다. 자연과학자 최재천 교수가 미국 유학시절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대목에서인데, 과학논문을 쓰기 위해 '테크니컬 라이팅' 코스를 수강한 그는 '일생일대의 스승 로버트 위버 교수'를 만나게 된다고. 시인 흉내를 내는 게 눈에 띄어 개인 교습을 받게 됐는데, 위버 교수는 방에 놓인 긴 의자에 누워서 그가 들고 온 글을 읽게 했다. 그리고 맘에 안 드는 대목이 있으면 이유를 설명하게 하고,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고치도록 시켰다.   

이렇게 한 문장 한 문장 교수와 제자는 글을 고쳐나갔다. 이 과정이 어떤 때는 밤이 어둑해질 때까지 끝나지 않은 적도 많았다. 학기 중간쯤 되어서는 고치는 문장이 점점 줄어들었다. 이때부터 최재천에게는 글을 쓰면서 소리 내어 읽는 습관이 생겼다. 혀에서 구르지 않으면 수십 번이고 고쳐 썼다. 그러다 한숨에 문장이 쭉 굴러가면 그제서야 완성이다. 로버트 위버와의 수업은 최재천에게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수업이었다.(54쪽)

요즘 유행하는 멘토-멘티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가 아닌가 싶다. 국어교과서에도 실리게 된 최 교수의 글쓰기 실력은 그렇게 해서 갖춰진 것. 석사과정을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가기 위해 위버 교수에게 추천서를 받으러 갔다고 한다. 이번엔 거꾸로 위버 교수가 최재천을 긴 의자에 눕게 하고 자신이 학생용 의자에 앉아서 추천서를 읽기 시작했다. '가르치고 배우기'가 어떻게 완성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최재천 교수의 사례는 <글쓰기의 최소원칙>(룩스문디, 2008)에 실린 강연에서도 언급된 듯싶다.)  

"마음에 드세요?"
"사실은 말이야, 난 이렇게 쓰고 싶었어."
"그럼 그렇게 쓰시죠." 

그렇게 해서 위버 교수가 최종적으로 완성한 추천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He writes with precision, economy, and grace(그는 정확하고 경제적이며 우아하게 글을 쓴다)." 

이 '기막한 추천서'에 가슴이 벅차오른 최재천은 이렇게 말했다. 

"교수님, 이렇게 써주셔도 되는 겁니까?" 
"왜 부끄럽니? 앞으로 이렇게 쓰면 되지?"
그 순간부터 최재천은 '정확성, 경제성, 우아함'이라는 세 단어를 가슴에 새겼다.(55쪽) 

'테크니컬 라이팅' 코스도 없었고, 문장수업을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나로선 좀 부러운 사례이다. 아무려나 '정확성, 경제성, 우아함'은 직업작가만 아니라면(그런 경우엔 여러 가지 문체가 선택지로 놓인다) 권장할 만한 글쓰기 덕목이다. 특히나 젊은 대학(원)생들에게는.    

<지식인의 서재>에는 각 서재 주인들의 추천도서 목록도 장 말미에 실려 있는데, 최재천 교수의 경우는 김병종 교수의 <화첩기행>(효형출판)을 첫번째 순위로 꼽았다.  

"저는 이 분의 책을 너무 좋아합니다. 그림도 최고이고 글도 최고입니다. 제가 김병종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서 이 분의 책이 나온 출판사에 제 원고를 직접 들고 찾아갔어요. "김병종 선생님이 책을 낸 출판사에서 저도 책 한번 내게 해주십시오."

문장가도 경탄을 아끼지 않은 문장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화첩기행>을 나는 안 갖고 있기에. 하지만, 그 출판사에 낸 최재천 교수의 책은 읽어봤다. 알고보니 첫번째 책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효형출판, 2001)가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었다... 

11. 05. 21.  

P.S. 이번주에 책상 가까이 두고 있는 책은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문학동네, 2011), 유종호의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현대문학, 2011), 그리고 존 그레이의 <추악한 동맹>(이후, 2011)이다. 두 한국 문학평론가의 유려한 문체는 이미 소문난 것이고,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이후, 2010)에 이어서 읽는 존 그레이의 책 역시 '정확성, 경제성, 우아함'의 원칙을 만족시킨다. 번역이 좋지만 이번에도 원서를 구할까 생각중이다. 순전히 문장 때문에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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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린의 생각
    from ptec's me2day 2011-05-24 15:57 
    직업적 글쓰기 의 원칙은 정확성,경제성,우아함 이다. 최재천교수님 처럼 최고의 멘토를 만날 수 있는것도 커다란 행운이다.
  2. 그린의 생각
    from ptec's me2day 2011-05-24 16:03 
    글쓰기의 원칙은 정확성,경제성,우아함이다. 로버트위버교수와 최재천교수님의 일화가 너무나 부럽다. 누군가가 저런 멘토가 되어 준다면…
 
 
비로그인 2011-05-21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데요. 얼른 작문 숙제를 끝내고 낚시 가고 싶어 안달이 난 두 꼬맹이 아들에게 자신들의 글을 되풀이해서 고치게 만들던 아버지... 그런 식의 가르침을 받아본 적이 없어 부럽기도 했고요....
말이 나온 김에, 개인적으로 늘 궁금했던 건데, 저런 은사를 두신 것도 아니면서 로쟈님은 어떻게 그토록 정확하고 경제적이며 우아한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가요? 비법이 있다면 한두 가지만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로쟈 2011-05-21 15:35   좋아요 0 | URL
네, 인상적인 장면이었죠. 정확하고 경제적이고 우아한 글은 써보려고 저도 애쓰고는 있습니다.^^;
 

이번주 경제분야의 관심도서는 성장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들이다. 마인하르트 미겔의 <성장의 광기>(뜨인돌, 2011)와 클라이브 해밀턴의 <성장숭배>(바오, 2011). 미겔의 책은 <성장의 종말>(에코리브르, 2006)도 이미 출간돼 있다.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성장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의 한 계기가 될 수 있을까.  

 

경향신문(11. 05. 21) 또 다른 ‘성장’의 조건   

경제현상을 바라보는 최근 시각은 ‘숫자’ 너머를 향한다. 숫자 너머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의 움직임이 있다. 물론 여전히 숫자 이상을 보지 않으려는 매우 강력한 관성이 존재한다. 숫자는 사람들과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해 등장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람들의 움직임을 때로 숫자가 은폐해 현실과 유리된 경제현상을 전달하기도 한다. 



경제성장률은 이러한 은폐의 대표격이다. 경제성장률은 해당 기간에 국내총생산(GDP)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보는 지표이다. 기존 GDP 측정 방식에 대한 반성이 있고 대안적인 측정방법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GDP는 여전히 성장의 척도이다. 대안적인 측정방법을 모색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성장주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성장 자체를 거부할 의의, 그리고 의지와 능력이 있을까. <성장의 광기>(뜨인돌)의 저자 마인하르트 미겔과 <성장숭배>(바오) 저자 클라이브 해밀턴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일단 숫자상으로 인류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산업화가 경제성장을 이끌기 시작한 1800년경 이후 세계 GDP는 인구 1인당 약 11배로 늘었다. 그 사이 세계 인구가 9억명에서 69억명으로 7.7배로 커졌으니, 세계 GDP 총량은 200년 전과 비교해 거의 80배로 늘어난 셈이다. 숫자상으로 인류는 200년 전과 비교해 훨씬 더 행복해져 있어야 하고 삶도 풍요로워야 한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소득 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 인간의 행복도는 소득증가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스털린 역설’이 입증했듯 적어도 산업사회에 속한 국민들의 삶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원인이 무엇이든 성장옹호론자들은 문제해결에 성장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편다. 이들은 서구 사회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효율성을 유지하는 데만 장기적으로 연 평균 1인당 최소 2% 성장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지난 200년의 1인당 평균 성장률의 2배만큼 성장해야 한다는 뜻이다. 빈국과 부국 사이의 간격을 메우기 위해서, 서구사회가 매년 1인당 2% 성장하는 동안 세계 전체로는 4% 성장해야 한다고 세계은행은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현재 61조달러인 세계 GDP는 21세기 후반 약 2000조달러가 된다.

앞으로 이런 정도의 성장이 가능한지는 차치하고, 그렇다면 현재 시점에서 그동안의 성장 전략으로 사람들의 복지가 향상됐을까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성장의 광기>에서 미겔은 “많은 가계의 구매력은 오래 전부터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으며 적지 않은 가계가 부채로 고통받고 있다. 성장과 물질적 복지의 증진은 적지 않은 시민들에게 아직도 빈말에 불과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물론 “사람들의 위와 옷장은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삶이 여전히 피폐하거나 혹은 더 피폐해졌다면 산업화 이후 성장을 기치로 내건 인류의 발전전략은 잘못된 것이라고 미겔은 역설한다. 나아가 성장옹호론자들이 제시하는 장밋빛 전망은 상식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간단하게 인구 측면에서만 봐도 급격한 노령화로 세금 낼 사람이 줄고 연금 받을 사람이 느는데 과거 같은 역동적인 성장이 가능할까. 더 본질적으로는 자연과의 적대관계를 축으로 한 기존 성장은 성장비용을 숫자 속에다 숨겨 놓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이다. “오늘날 우리는 과거 세대가 계산하지 못하고 내버려둔 금액을 지불하고 있으며, 우리 후세들은 우리 대신에 또 지불하게 될 것이다. 지불하는 액수가 항상 동일하다면 그렇게 긴장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액수는 몇년 전부터 점점 가파르게 증가하여 머지않아 지불할 수 없을 정도의 액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 이전에 출간된 <성장숭배>도 같은 관점을 유지한다. 선진국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에서 소비자본주의로 변이하면서 폭주기관차가 됐다고 진단한다. 현대 사회를 ‘마케팅 사회(marketing society)’로 규정하는 저자는 진보주의자들도 이른바 전통적인 ‘빈곤모델’에 사로잡혀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장주의자의 관점에 빠져든다고 비판한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성장을 포기하자는 논리는 아니다. 요는 어떤 성장을 어떻게 이루느냐이다. 답은 나와 있다. 지구와 우리 문명이 감당 가능한 수준으로 성장 혹은 수축하며, 물신을 숭배하는 대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존중하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방향이다. 해답이 식상하다고? 모든 해답은 단순하지만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에 해답인 것이다. 성장을 사회설계나 정책의 전제조건으로 받아들이는 오랜 선입관을 깰 수 있다면 인간은 또 다른 ‘성장’을 가능케 할 수 있다.(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위한경제연구소장) 

11.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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