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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2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영장류 학자 다이로 마에스트리피에리의 <영장류 게임>(책읽는수요일, 2013)을 읽고 적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잘 쓰인, 흥미로운 책이라는 게 독후감이다. 저자의 또다른 책으로 <마카키아벨리의 지능>도 번역되면 좋겠다...

 

 

주간경향(13. 04. 09) 엘리베이터에 낯선 두 사람이 거리를 두는 까닭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던질 수 있는 근본물음은 무엇일까? ‘생명이란 무엇인가’도 가능한 후보이지만, 보통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일 것이다. 동물도 아니고 신도 아닌 중간적 존재로서 자신을 규정하는 게 우리의 통상적인 이해, 혹은 지극히 ‘인간적인’ 자기 이해다. 하지만 영장류 학자들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영장류 및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는 진화생물학자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의 <영장류 게임>(책읽는수요일)에서 초점은 ‘우리 안의 영장류 본성’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영장류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기에 영장류 본성의 특수한 변형일 따름이다. 우리의 사회적 게임이 영장류 게임인 이유이고, 영장류 본성에 대한 이해가 우리의 자기 이해인 이유다.


물론 인간의 사회적 행동, 곧 사회적 게임이 벌어지는 ‘경기장’은 바뀌었다. 영장류가 진화해온 과거의 환경조건과는 너무도 판이하기에 우리는 자신의 영장류 본성에 대해서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이렇게 바뀐 조건 속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영장류 게임의 플레이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가령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사람과 함께 타게 됐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엘리베이터는 분명 근래에 발명된 것이지만, 좁은 공간에서 타인과 매우 가까이 있어야 하는 상황 자체가 낯선 것은 아니다. 과거에 서로 모르는 두 원시인이 좁은 동굴에서 조우하는 것은 흔하게 일어날 법한 일이다. 그때 보통은 한 명이 다른 한 명의 머리를 몽둥이로 후려치는 것으로 상황은 종료된다.


하지만 언제나 상황이 만만한 것은 아니며 상대를 공격하는 중에 자신이 입을 수 있는 상해도 고려해야만 한다. 좁은 공간에서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싸울 것인가, 싸우지 말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우리는 매우 높은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영장류가 싸움을 피하는 동물은 아니지만 갇힌 공간에서의 싸움에서는 양쪽 모두 큰 손해를 볼 확률이 높다.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타게 되면 보통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저자의 실험에 따르면 이런 행동은 원숭이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두 마리의 붉은털원숭이가 작은 우리 안에 갇히게 되면 그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싸움을 피하려고 한다.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것은 위협 신호이기 때문에 이들은 허공이나 땅을 쳐다보기도 하고 우리 밖 가상의 지점을 응시하기도 한다. 그렇게 무관심한 척하는 것으로도 긴장이 누그러지지 않으면 이빨을 드러냄으로써 친하게 지내자는 의사를 전달하고 서로의 몸을 손질해준다. 그렇다고 엘리베이터에 동승한 두 사람이 서로 몸을 손질해주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인간은 대화를 시도함으로써 몸손질을 대신한다.


엘리베이터 문제에서도 시사를 얻을 수 있지만 영장류의 행동은 언제나 비용이 덜 드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저자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 또한 그러한 적응의 산물로 본다.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할 때 이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둘이 싸우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협상을 통해 타협에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전략 모두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반면에 서로 지배-복종 관계가 형성되면 의견이 불일치할 때마다 싸우거나 협상할 필요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처음부터 지배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분쟁의 소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연인이나 부부 간의 다툼을 이런 시각에서 보게 되면, 가장 안정적인 커플은 비대칭적인 지배관계가 형성된 커플이다. 즉 둘 중 한 사람이 양보하게 되면 저녁 메뉴나 리모컨을 두고 파국적인 분쟁으로까지 치닫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나 영장류 동물에게서 지배 욕망은 매우 강력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지배가 개입되지 않은 인간관계는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모든 지배에는 책임이 따르며 또한 지배는 결코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우리의 영장류 본성에 대해 되짚어보도록 해주는 유익한 책이다.

 

13. 04. 02.

 

 

P.S.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이탈리아 출신인데 로마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현재는 시카고대학에서 진화생물학과 행동신경과학 등을 강의한다. 매 장이 흥미로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만 저자는 3장 '마파아 본능'에서 자신이 왜 이탈리아를 떠나 미국 대학에서 일자리를 찾아볼 수밖에 없었는지를 털어놓는다. 이탈리아 족벌주의의 생생한 사례와 체험담이 마피아 영화 뺨친다.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번역도 만족스러운데, 옥에 티가 있다면 같은 책명이 다르게 번역돼 있다는 점이다. 로버트 프랭크의 같은 책이 <이성 내의 열정 Passions Within Reason>(221쪽), <이성 속의 열정 Passions Within Reason>(229쪽)이라고 두 가지로 옮겨진 것인데, 제목도 통일하는 게 낫겠고 병기된 원서명도 한 번 제시하는 것으로 족하다. 편집자가 체크했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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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주문하고 저녁에 배송받은 책 가운데 하나는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장국영>(흐름출판, 2013)이다. 기억에 이 책은 한달쯤 전에 나왔는데(좀 일찍 나온 거 아닌가란 생각을 했었다) 판권란을 보니 발행일자가 오늘이다. 4월 1일, 만우절. 물론 이건 '기획출판'이다. 2003년 4월 1일 우리 곁을 떠난 장국영의 10주기를 추모하는. 그러니까 빨리 나온 게 아니라 누구라도 오늘 손에 들 수 있게끔 타이머가 맞춰졌던 것.

 

 

책을 펼쳐 보니 류승완 감독부터 정성일 평론가를 거쳐 김경주 시인까지 추천사가 세 쪽이다. 그리고 책장을 다 넘길 필요도 없이 깨달은 것은 이 책이 '앨범'이라는 것. 읽는 것보다 간직하는 것이 더 의미가 있을 때 그것은 책이라기보다 앨범이다. 한 배우에 대한 기억이면서 한 시대에 대한 추억을 담은. 내게도 장국영은 <아비정전>의 장국영이다. 그리고 <동사서독>과 <해피 투게더> 같은 왕가위의 영화들 속 장국영. <천녀유혼>과 <인지구>(<연지구>)의 장국영도 떠오른다.

 

 

그런 영화를 영화관에서 그리고 비디오로 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대학가에서 하숙하던 시절 <아비정전>을 비디오로 빌려다 보고서, 그 자리에서 되감아 다시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한동안은 생일날마다 한번씩 보곤 했다. 그랬던 시절의 앨범. 그러니 이 책은 읽지 않아도 되는 책이다. 언제라도 꺼내 펼쳐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책이기에.

 

책 뒷갈피를 보니 저자의 책으로 홍콩 영화여행 가이드북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과 인터뷰집 <8인의 장인들>이 더 거명돼 있다. 전자는 알고 있지만 후자는 처음 들어봐서 찾아보니 아직 나오지 않은 책이다. 위시리스트로 기억만 해놓는다. 사실 홍콩에 두 번은커녕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가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나는 여행을 싫어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생각해보니 떠난 적이 별로 없다. 즐기진 않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설혹 가게 되더라도 장국영의 흔적은 찾기 어려울 거라고 한다. "몇 해 전에 장국영의 발자취들을 따라서 홍콩에 간 적이 있다. 예상과 달리, 그때 이미 그의 흔적들은 옅게만 남아 있었다. 홍콩은 너무 쉽게 그를 잊은 듯했다."라는 게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보고다.   

 

 

역시나 장국영은 그의 영화 속에, 그리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나 살아있을 뿐이다.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까? 턱도 없는 일이다.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바이지만, 한번 떠난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우리의 청춘 또한 그러하다. 반복되지 않기에 슬프고 아름답다. 목련처럼 가끔 찬란하다. 그리고 이런 날, 만우절처럼 웃기다. 어쩌겠어, 그게 인생인 걸. 2003년 4월 1일, 홍콩의 만다린오리엔탈호텔 24층 객실에서 거짓말처럼 몸을 던진 당신처럼... 

 

 

13. 04.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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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시학사에서 출간되는 '백석 문학전집'의 3,4,5권으로 <테스>와 <고요한 돈>이 출간됐다. 번역시 전집은 따로 흰당나귀에서 출간되고 있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의 번역문학이 백석의 독자들에겐 흥미로운 경합이고 선물이다. 이게 완간인지는 모르겠지만, 권수로는 다섯 권이 채워지기에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조만간 책값 벌이라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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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문학전집 3 : 테스
토머스 하디 지음, 최동호 외 엮음, 백석 옮김 / 서정시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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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문학전집 4 : 고요한 돈 1
미하일 숄로호프 지음, 최동호 외 엮음, 백석 옮김 / 서정시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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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문학전집 5 : 고요한 돈 2
미하일 숄로호프 지음, 최동호 외 엮음, 백석 옮김 / 서정시학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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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문학전집 2- 산문.기타
백석 지음, 최동호 외 엮음 / 서정시학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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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읽을 만한 책을 골라놓는다. 3월 한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지만, 지나간 건 지나간 거다. 요즘은 4월은 돼야 봄꽃들이 기지개를 켜는 듯하므로 지나간 3월이 크게 아쉽진 않다. 4월은 또 황사의 계절이기도 하므로 막상 4월이 되면 얼른 5월이 오기를 고대할지 모르겠지만...

 

 

 

1. 문학

 

김미현 교수가 고른 책은 재미작가 이창래의 <생존자>(알에이치코리아, 2013)다(작가는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거명되기 시작했다고. 언어 장벽이 문제되지 않기에, 어쩌면 더 수상이 유력할 수도 있겠다. 두어 작품을 더 써낸다면). 지난 1월에 출간됐지만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기에 아직 읽을 여유는 있다. 6월까지 읽으면 되니까. 나도 원서와 함께 사두고 아직 펴보진 못했는데, 4월부터는 페이지를 넘겨볼 참이다. 이창래 소설은 <생존자>를 제외하면 모두 품절 상태인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다시 나오면 좋겠다.

 

 

외국 작가의 작품으론 폴란드 작가 브루노 슐츠의 <브루노 슐츠 작품집>(을유문화사, 2013)을 고르고 싶다. "폴란드의 카프카로 불리며, 폴란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가 되었지만 재능을 더 꽃피우지 못하고 나치에 의해 총살된 그의 작품은 1934년에 출간한 단편집과 그 이후 여러 잡지에 소개된 중.단편을 모아 출간한 작품집이 전부이다. 그리고 그가 죽은 지 70년이 지난 지금 그 두 권의 작품집을 모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한다." 전에 소개됐던 <모래시계 요양원>(길, 2003)과 <계피색 가계들>(길, 2003)이 한권으로 묶인 것이기도 해서 알고 보면 '오래된 새책'이다.

 

 

 

2. 역사

 

김기덕 교수가 고른 책은 이정철의 <언제나 민생을 염려하노니>(역사비평사, 2013)이다. <대동법:조선 최고의 개혁>(역사비평사, 2010)의 후속편이라고 할까. 대동법 둘러싼 네 명의 주요 인물 평전이다. 좀 여유가 된다면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서 조선 건국의 과정과 지배층의 연속성 문제를 다룬 존 B. 던컨의 <조선왕조의 기원>(너머북스, 2013)을 손에 들어도 좋겠다.

 

 

더불어 서중석 교수의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 현대사>(웅진지식하우스, 2013) 개정판이 나온 김에 현대사 쪽 책들도 챙겨보면 좋겠다. 강만길 교수의 <고쳐 쓴 한국현대사>(창비, 2006), 브루스 커밍스의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창비, 2001) 등을 나란히 손에 들만 하다.

 

 

 

3. 철학

 

박인철 교수가 고른 책은 김정현의 <철학과 마음의 치유>(책세상, 2013)다. "니체철학을 중심으로 한, 철학의 치료적 의미에 대한 저자의 오랜 연구의 결과물로서 니체를 단순한 사변적 철학자로서가 아니라 일관되게 (심층)심리학적으로 바라보고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특별히 돋보이는 책"이라는 평이다.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책세상, 2006)의 연장선상에서 읽을 수 있겠다. 문제의식으로 보자면 이광래 등의 <마음, 철학으로 치료한다>(지와사랑, 2011)도 같이 묶을 수 있겠는데, 아예 '철학치료학 시론'을 부제로 내걸고 있는 책이다.

 

 

봄바람처럼 조금 가벼운 걸음으로 읽을 수 있는 철학책으로는 이진경의 <히치하이커의 철학여행>(휴머니스트, 2013)을 따라가볼 수도 있겠다. <철학의 모험>(푸른숲, 2000)의 전면개정판이다. 더불어 국내에 '반철학사' 시리즈가 소개되고 있는 미셀 옹프레의 <철학자의 여행법>(세상의모든길들, 2013)은 제목 그대로 철학자의 여행론이다. 번역자이자 인문저술가 남경태의 <철학입문 18>(휴머니스트, 2013)은 '철학으로 들어가는 18개의 문'을 소개한다. 역시 <남경태의 스토리 철학 18>(들녘, 2007)의 개정판이다.

 

 

 

4. 정치/사회

 

마인섭 교수가 추천한 책은 롤로 메이의 <권력과 거짓순수>(문예출판사, 2013)다. "저자는 임상경험으로부터 많은 사례와 풍부한 문헌을 소개하였고, 역사 속의 개인과 집단과 국가의 폭력사례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였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언어와 문화의 폭력, 폭행, 자살, 살인, 테러, 반란과 전쟁에 이르는 다양한 공격성과 폭력을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흥미로운 책"이라는 게 추천의 변이다. 개인적으로는 출간시에 관심을 갖게 돼 롤로 메이의 다른 대표작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문예출판사, 2010), 아브라함 매슬로의 <존재의 심리학>(문예출판사, 2005)까지 같이 구해놓았다. 소위 '실존주의 심리치료' '인본주의 심리학' 계열의 저자들인데, 에리히 프롬과 함께 한 시기를 풍미했었다. 임상에서 여전히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독해볼 여지는 있어 보인다.

 

 

 

<뉴레프트 리뷰4>(길, 2013)가 출간된 김에 4월에는 구미의 진보저널을 읽는 데도 시간을 할애해보는 건 어떨까. 지난달에는 <베스텐트>(사월의책, 2013)도 2호가 나왔다. <뉴레프트 리뷰>나 <베스텐트>나 연간지 형태로 나오고 있는데(<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월간으로 나오고 있다), 반연간지 정도까지 가면 좋겠다. 독자층이 확보돼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한편 <뉴레프트 리뷰4>에는 러시아 작가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보고서 '사회주의 최초의 비극에 대하여'도 수록돼 있다. 짧은 글이긴 하지만 그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참고가 된다. 겸사겸사 대표작 <체벤구르>(을유문화사, 2012)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5. 경제/경영

 

김은섭 위원이 추천한 책은 필립 델브스 브러턴의 <장사의 시대>(어크로스, 2013)다. "하버드 MBA 출신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교과과정에 장사의 기술을 가르쳐주는 세일즈 과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어리둥절했다. 그래서 장사와 세일즈의 고수들을 만나 세일즈에 관한 특별수업을 책으로 엮은 것이 <장사의 시대>다." 부제는 '마케팅 원론에는 없는 세일즈의 모든 것'이고, 원제는 <세일즈의 기술>이다. 그렇게 번역됐음직한 책이 <장사의 시대>라고 나온 게 새롭다. 얼마전에 <세일즈맨의 죽음>(민음사, 2009)과 같이 읽어보려고 산 책이 월터 프리드만의 <세일즈맨의 탄생>(말글빛냄, 2005)였는데, 이 세 권을 전부 같이 묶어도 좋겠다. '장사'와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지만 따지고 보니 나도 '보따리 장사' 십수년 째다. 

 

 

 

날이 풀이는 만큼 단골 경기 부양책에 따라 본격적으로 돈도 풀릴 모양인데, 국가 경제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높여줄 수 있는 책들도 '무기' 삼아 읽어보면 좋겠다. 고려대에서 공공경제학을 강의하는 김태일 교수의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웅진지식하우스, 2013)가 맞춤한 참고도서다. 거기에 선대인경제연구소에서 펴낸 <두 명만 모여도 꼭 나오는 경제 질문>(웅진지식하우스, 2013)도 '가정상비약'처럼 집안에 꽂아두고 수시로 참고해볼 만하다. 좋은기업센터에서 기획한 <고장 난 거대 기업>(양철북, 2013)은 국가 재정과 함께 요주의 대상인 거대기업 열두 곳의 경영실상과 문제점을 짚어본 책이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이야기로, 앞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에게 좋은 경영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6. 과학      

 

김웅서 위원이 추천한 과학책은 <손영운의 우리 땅 과학답사기2>(살림, 2013)다. <손영운의 우리땅 과학답사기>(살림, 2009)의 속편.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과학 기행문 버전이라고 할까. "지구과학을 전공한 저자가 전국 곳곳을 발품 팔아 쓴 땀내 나는 책"이라는 평이다. 저자는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두리미디어, 2004) 등 청소년을 위한 교양서도 다수 펴낸 이력을 갖고 있다.  

 

 

 

이미 포스팅을 한 바 있는 책들이지만 다리오 마에스트리피에리의 <영장류 게임>(책읽는수요일, 2013), 마크 챈기지의 <자연 모방>(에이도스, 2013), 존 올콕의 <사회생물학의 승리>(동아시아, 2013)도 필독해볼 만하다. 이 참에 인문 계열 전공자라면 교양과학서를, 그리고 이공계 전공자라면 인문서를 필히 한 달에 한권씩은 읽는 걸 규칙으로 삼으면 좋겠다. 스티브 잡스 아저씨가 그리 하지 않았던가.

 

 

 

7. 예술

 

이주은 교수가 고른 책은 소홍삼의 <무대의 탄생>(미래의창, 2013)이다. 어떤 책인가. "국내에서 공연된 10개의 작품들이 실제로 무대에 올랐던 이야기이다. 에피소드들을 양념처럼 곁들여가며 흥미를 던지지만, 끝자락엔 반드시 저자의 날카로운 비평이 따라온다." 연극 관련서로는 김문환의 <명배우 명무대>(연극과인간, 2013)도 읽을 거리이고, 교재용 책으로는 <연극, 즐거운 예술>(시그마프레스, 2013)도 손에 듬직하다. 제8판을 옮긴 것으로 보아 원서가 꽤나 많이 읽히는 모양이다.

 

 

미술책도 더 얹자면, 사이먼 샤마의 <파워 오브 아트>(아트북스, 2013/ 2008) 개정판이 나왔다. 분량이 줄고 값도 내려갔다. 보급판이라고 해야 할까. 소개를 찾아보니 "몇 가지 오역을 바로잡았고 원서의 편집에 따라 배치되어 있던 도판을 관련 텍스트를 읽으며 함께 볼 수 있도록 다시 배치해 독자들이 좀 더 편안하게 독서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 페이퍼백으로 바꿔 내면서 가격을 대폭 낮춰 독자들의 부담을 덜었다." 먼저 구입한 독자들에겐 아쉬운 일이지만, 새 독자들에겐 반가운 일이다. 알다시피 책은 BBC 방송 프로그램을 토대로 쓰인 것으로 이 프로그램은 EBS의 다큐로도 방영된 바 있다.

 

 

 

8. 교양

 

내가 고른 교양서는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휴머니스트, 2013)이다. 묵직한 책이긴 하지만, 교양에도 '묵직한 교양'이 있는 법이다. 추천사는 이렇게 적었다.

이야기를 포함하여 예술은 생존과 번식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적응 과정의 일부라는 게 핵심 아이디어다. 이 주장을 펼치기 위해 그는 여러 단계를 밟아나간다. 인간의 본성은 따로 없고 오직 문화에 의해서 좌우될 뿐이라는 현대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주장과 달리 인간이란 종의 공통적 본성이 있으며 이는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라는 것이 첫 단계다. 그리고 인간생활의 창조적인 면으로서 예술 또한 생물학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게 두 번째 단계이고, 픽션 또한 인간의 적응 행동이라는 게 세 번째 단계다. 압축해서 말하면 “우리가 예술과 스토리텔링에 참여하도록 진화된 이유는 우리 종이 생존하는 데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닥터 수스의 그림책 <호턴이 듣고 있어!>를 사례로 하여 이야기 혹은 스토리텔링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설명한다.

예술과 생물학적 본성의 관계를 다룬 '진화미학' 관련서로는 엘렌 다사나야케의 <미학적 인간>(예담, 2009)도 번역됐었지만 지금은 절판된 상태다. 이 분야의 책이 더 소개되면 좋겠다.

 

 

 

9. 실용

 

이계성 위원이 추천한 책은 이근후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갤리온, 2013)다. 추천사에 따르면 "이 책에는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기술 53가지가 담겨 있다. 그는 의대교수이자 정신과 전문의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은퇴 후에도 봉사활동 등 정력적인 사회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2011년에는 76세 나이에 고려사이버대학 문화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해 화제가 됐다. 지금도 청소년 성 상담, 부모 교육, 노년을 위한 생애 준비교육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다채롭게 살아온 삶의 기록이자 그 과정에서 깨달은 지혜와 통찰을 담고 있다."

 

비슷한 성격의 책으로는 대니얼 클라인의 <철학자처럼 느긋하게 나이 드는 법>(책읽는수요일, 2013)이 있다. "75세의 유쾌한 노학자 대니얼 클라인은 영원한 청춘을 꿈꾸며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현자들의 섬에서 찾아낸 ‘청춘 이후의 삶과 시간의 지혜’를 전해준다."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이와우, 2013)은 우리 시대 '50대의 인생 보고서'다. 노년의 초입에 있는 이 시대 50대의 슬픈 자화상을 활기찬 70대 인생론과 비교해가며 읽어볼 수 있겠다.

 

 

마음을 치유하는 책들도 실용서 범주에 들어간다면 몇 권 더 꼽아볼 수 있다. 셰릴 스트레이드의 ,안녕, 누구나의 인생>(부키, 2013)은 저명 작가가 쓴 온라인 상담 칼럼집이다. 원제는 <작고 어여쁜 것(Tiny Beautiful Things)>. 이젤딘 아부엘아이시의 <그러나 증오하지 않습니다>(낮은산, 2013)는 '세 딸을 폭격으로 잃은 팔레스타인 의사 이야기'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는 "제 이야기는 이론적이거나 지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제가 살며 경험했던 고난과 전쟁과 참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도전을 이겨내며 계속 나아가고자 했다는 이야기입니다."라고 적었다. 이시마루 가즈미의 <고양이 섬의 기적>(문학동네, 2013)은 '쓰나미가 휩쓸고 간 외딴 섬마을 고양이 이야기'다. "3.11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비극 이후, 다시 섬을 일으키려는 섬사람들의 담담하지만 강인한 모습을 담고 있다." 요컨대 봄에 읽을 만한 책인 것이다...

 

 

 

10. 링컨

 

내 맘대로 고르는 주제는 '링컨'으로 정했다. 스필버그의 영화 <링컨> 때문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이 역사적 인물에 대해선 그래도 여러 권의 책이 출간돼 있다. 도리스 컨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21세기북스, 2013)과 죠슈아 울프 솅크의 <링컨의 우울증>(랜덤하우스코리아, 2009), 그리고 <게티즈버그 연설, 272단어의 비밀>(돋을새김, 2004)의 개정판 <링컨의 연설>(돋을새김, 2012) 등이 내가 고른 책이다.

 

 

평전으로는 데이비드 허버트 도날드의 <링컨>(살림, 2003)이 결정판인데, 번역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아 구입은 일단 보류했다. 원서까지 구하게 되면 읽어보려고 한다. 아, 영화를 먼저 봐야 할텐데, <레미제라블>과는 달리 한국 관객들에겐 너무 '어려운' 영화로 치부돼 간판을 내린 곳이 많다. '노무현의 링컨', '안철수의 링컨'도 이런 경우엔 소용이 없나 보다. 뮤지컬 버전이었다면 반응이 좀 달랐겠다. 적어도 한국 관객들에게는...

 

13. 03. 3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아카넷, 2013)을 고른다(저자 표기는 아직도 '소로'와 '소로우' 사이에서 통일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철학적 사상가·명상가로서의 모습이 <월든>에서 두드러진다면, 이 책에서는 자연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치중하는 생태학자, 자연사 작가로서 소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고 소개된다. 소로 관련서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출간되고 있는데, 근래에 나온 것으로는 김선미의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위즈덤하우스, 2013), 그리고 에세이집 <소로우의 강>(갈라파고스, 2013) 등이 있다. 후자는 "소로우가 가장 많은 공을 들였던 첫 작품이자 가장 사랑했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했던 책"이다. 이를테면 <월든>과 <시민 불복종>을 읽은 독자들이 그 다음으로 손에 들 수 있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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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온 책 가운데 가장 의외다 싶은 건 에드워드 윌슨의 '장편소설' <개미언덕>(사이언스북스, 2013)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책이 나온 건 물론 놀랍지 않다. 장편소설도 흔하다. 하지만 그 둘의 결합은 좀 놀랍다. 세계적인 개미학자이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가 쓴 장편소설?! 다행히 그게 연애소설이 아니라 개미소설이어서 놀라 자빠질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여하튼 '서프라이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새로운 통섭>을 썼다고 하면 더 놀라게 될까.    

 

 

아무튼 개미에 관해서라면 세계에서 가장 박식한 학자가 쓴 소설인지라 개미의 생태에 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리라 기대된다. 사실 윌슨 스스로도 그런 자신감 때문에 쓰지 않았을까 싶다. 평판도 좋은 편이어서 <시카고 트리뷴>의 하트랜드상 픽션 부문 수상작이기도 하다고. 윌슨의 제자이자 사회생물학 전도사이기도 한 최재천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이 소설이 늘 과학책을 읽어 온 독자들은 물론, 평소에는 과학책을 잘 읽지 않던 문학 독자들의 손에도 쥐어지기 바란다. 생물 다양성의 보전은 이제 더 이상 과학자들의 부르짖음만으로 이룰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또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만끽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생명을 보전할 의무를 지닌다. <개미언덕>이 작가 윌슨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쯤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출세작 <개미>를 검색해보니 5권짜리 양장판으로 나와 있다(<개미>와 <개미혁명>을 통합한 듯하다). 아주 오래전 처음 나왔을 때(1993년인가 보다)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어느덧 20년 전이다. 로버트 라이트의 책 <3인의 과학자와 그들의 신>(정신세계사, 1991)도 아마 그맘때 읽었을 텐데, 그 '3인의 과학자' 중 한 명이 에드워드 윌슨이었다. 주저 <사회생물학>(민음사, 1992)이 또 그 즈음에 나왔고. 개정판 번역서가 곧 나온다고 한 게 재작년쯤 되는데 아직 소식이 없군...

 

 

윌슨의 <사회생물학>(1975)가 던지 파문과 그 이후의 경과를 알려주는 존 올콕의 <사회생물학의 승리>(동아시아, 2013)도 지난주에 출간된 흥미로운 책이다. 윌슨 스스로는 "사회생물학의 내용과 역사에 대한 명쾌하고 유창하며 정확한 저작"이라고 평했다. 저자는 애리조나 주립대학의 생물학과 명예교수. 윌슨이 불러일으킨 논쟁에 대해선 국내서 <사회생물학 대논쟁>(이음, 2011)과 피터 싱어의 <사회생물학과 윤리>(연암서가, 2012) 등을 더 참고할 수 있다.

 

 

예전에 리스트도 만들어놓은 적이 있지만 이 주제에 대해서는 그래도 책들이 좀 출간돼 있다.

 

 

 

사회생물학에 대한 강력한 비판은 같은 하버드대학 교수였던 리처드 르원틴,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의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한울, 1993/2009)가 있다. <사회생물학의 승리>에서도 이 대목이 다뤄진다. <사회생물학>이 출간된 이후 보스턴 지역의 과학자와 교사, 학생들이 '사회생물학 연구 그룹'을 만들었는데, 사회생물학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비판하고자 했던 그룹이었고 대표적 인물이 굴드와 르원틴이었다. 존 올콕은 이렇게 정리한다.

르윈틴과 그 동료들의 '주된 목적'은 사회생물학을 해체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단지 윌슨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사회의 정치의식을 고무시키는 데 사용했다. 이 정치적 의도는 윌슨의 머리 위와 사상에 찬물을 끼얹고 다른 사회생물학자들을 조금이나마 불안하게 만드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초기 공격의 거침없는 성격과 굴드의 계속된 비판은 사회생물학을 부정하려는 사회학자와 페미니스트들을 합법화해주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이 최초의 성명에서 주장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여전히 사회생물학에 반대한다. 뒷장에서 나는 사회생물학이 불필요한 적개심을 얻는 데 공헌한 잘못된 오해들을 규명하고 제거하여 사회생물학 연구의 진정한 본성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34-35쪽)

따라서 <사회생물학의 승리>는 '사회생물학에 대한 오해'를 교정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윌슨의 또다른 화제작 <통섭>과 그것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공역자이기도 한 최재천 교수의 신작 <통섭적 인생이 권유>(명진출판, 2013)와 <통찰>(이음, 2012) 등도 참고할 만하다.

 

 

<사회생물학>을 제외하면 에드워드 윌슨의 주저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 <바이오필리아>, <통섭> 등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머스트리드 아이템...

 

13. 0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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