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뮌헨까지 10시간 반의 비행시간을 앞두고 기내에서 적는 페이퍼다. 아침에 부랴부랴 책짐을 쌌는데, 평전과 작품이 우선 순위였다. 릴케와 헤세도 포함되어 있지만 작가와 도시의 연관성을 고려하면 독일문학기행의 핵심은 괴테와 토마스 만이다. 보헤미아 출신의 릴케와 마찬가지로 헤세도 보헤미안적 삶을 살았다. 말년에 스위스에 안착했더라도 그의 정신의 고향을 특정하긴 어려울 것이다(동양에 대한 그의 관심을 고려해보더라도).

반면 프랑크프루트 출신의 괴테의 삶은 성장기를 보낸 프랑크푸르트와 공직자로 오래 봉직했던 바이마르와 분리되지 않는다. 거기에 이탈리아(<이탈리아여행>)와 베츨라(<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등을 더할 수 있겠다. 북부 항구도시 뤼벡 출신의 토마스 만에게도 성장기를 보낸 뤼벡과 작가생활을 시작하는 도시 뮌헨은 핵심적인 장소다(<토니오 크뢰거>는 뮌헨에서 뤼벡으로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제 그 흔적을 따라보려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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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널에 도착해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한숨 돌린다. 지난겨울에는 시간표를 잘못 알아 리무진을 놓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 확실히 여행 성수기는 아닌 듯해서 리무진 탑승객은 나를 포함해 두 명이다. 차가 좀 막히더라도 예정시각까지는 공항에 도착하겠다.

문득 독일도 가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덩달아 알렉산더 클루게의 영화 <독일의 가을>(1978)이 떠올랐다. 순전히 제목 탓이다. 1970년대 서독의 음울한 사회상을 담은 다큐 스타일의 영화. 기억에는 지난 2004년에 모스크바에서 보았다. 사전 정보도 없이 ‘독일의 가을‘이란 제목에 끌려 선택했다가 두 시간 동안 심문을 받는 듯했다. 붉은여단의 테러리스트들을 다룬 이 영화에서 기억나는 건 동료감독이기도 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무슨 말을 한 건지 기억에 없지만(이 독일 영화를 러시아어 더빙으로 봤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파스빈더는 이 영화에 나오는 파스빈더다.

1960년대가 프랑스 누벨바그의 연대였다면 1970년대는 뉴저먼시네마의 연대였다. 클루게와 파스빈더가 그 대표자들. 영화사에 좀더 관심이 있었다면 이들의 영화와 책을 더 많이 보았을 터인데 내가 본 건 파스빈더의 몇몇 영화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한나래) 같은 책이다. 클루게의 단편선 <이력서들>(을유문화사)과 러시아에서 나온 영화론집 <알렉산더 클루게> 등도 갖고 있지만 언제 읽을지는 기약이 없다. 1970년대 독일의 문학과 사회에 꽂히지 않는다면 손에 들기 어려울 수도 있다.

같은 독일의 가을이지만 1978년의 가을은 40년 전의 가을이다. 아, 1978년이면 한국도 아직 유신시대였다! 음울하기로 치자면 우리도 못지 않았겠다. 그 이듬해 가을과 겨울, 권력자의 암살과 군부의 반란으로 남한 사회는 격랑에 빠져들 터이다. 다시 되돌리기 꺼려지는 역사다. <독일의 가을>도 그냥 묻어두어야겠다.

아침부터 이런 페이퍼를 적는 걸 보니 여행이 시작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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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29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서평 강의를 하면서 읽은 스티븐 슬로먼, 필립 페른백의 <지식의 착각>(세종서적)을 다루었다. '왜 우리는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가'가 부제. 집단지능과 지식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교육에 대해 갖는 함의를 깊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는 게 소감이다...



주간경향(18. 10. 22)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


미국의 인지과학자 두 사람이 공저한 <지식의 착각>은 제목이 출발점이다. 우리들 각자가 똑똑하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막상 변기나 커피메이커가 작동하는 원리,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 원리를 질문하게 되면 대부분 말문이 막힌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면서 막연히 안다고 착각하는 걸 '이해의 착각'이라고도 부른다. 그렇지만 저자들이 겨냥하는 건 무지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한 해명이다. 


애초에 인간의 마음은 모든 것을 다 이해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기술자가 아닌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변기나 커피메이커를 이용할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만약 더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면 주변에 자문을 구하거나 전문가에게 문의할 수 있다. 길게 보면 이러한 협력이 인간의 진화를 가능하게 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알지 못해도 다수의 사람은 많은 것을 안다. 그렇게 우리는 지식 공동체에 속해 있으며 지식을 공유한다. 개개인이 자신의 무지를 과소평가하는 것은 지식 공동체 안에 살면서 자기 머릿속에 든 지식과 외부의 지식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지식이 지식 공동체에 의존한다면 지능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도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능은 더 이상 개인이 문제를 추론하는 능력이 아니라 집단의 추론과 문제해결에 기여하는 정도를 뜻한다. 즉 지능은 개인의 자질이 아니라 팀(집단)의 자질이며 만약 가능하다면 집단지능이 평가와 측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발상의 전환은 특히 교육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엇이 교육의 목적인가.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주입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개인의 지식과 기술을 넓히는 것이고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교육을 받은 이후에는 머릿속에 정확한 지식이 더 많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는 가정"을 문제 삼는다. 교육의 목적으로서 잘못 되었거나 최소한 불충분하다. 학습에 대한 편협한 관점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속해 있는 지식 공동체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학습에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의 개발만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제공해야 할 지식은 무엇이고 남들이 채워넣어야 할 틈새는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는 '지식의 착각'에 빗대어 말하자면 '교육의 착각'에 대해 눈뜨게 한다. 진정한 교육은 소크라테스의 오래된 가르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말은 더 구체적으로는 '너 자신의 무지를 알라'는 뜻이었다. 교육의 첫 단계는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고, 두번째는 나는 모르지만 남들은 아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교육의 핵심은 어떤 주장이 타당한지, 누가 아는지,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해줄 것 같은지를 배우는 과정이다." 대입 수능시험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사회는 교육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떤 교육과정을 실행하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18.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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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정신은 존재하는가‘가 비토리오 회슬레의 <독일철학사>(에코리브르)의 부제다(회슬레는 1750년 이후에야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2015년초에 나왔지만 계속 읽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독일문학기행을 핑계로 손에 든 책이다. 핑계만은 아닌데 헤겔이 초년기에 강사생활을 했던 예나대학도 방문지에 포함돼 있어서다. 그렇지만 너무 뒤늦게 손에 든 책이어서 아마도 뮌헨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붙들고 있을 듯싶다.

현재 미국 노터데임대학에 재직중인 저자가 이탈리아 밀라노 태생이라는 건 이번에야 알았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독어로 책을 쓰지만 이탈리아사람이었던 것. 지금은 아마 미국 국적도 가지고 있고 강의도 영어로 할 것 같지만, 그래도 책은 독어로 쓴다. 아내가 한국인이어서(그러니까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철학자다) 한국어도 조금 하지 않을까 싶지만 한글책을 읽을 정도는 아닐 것이다.

회슬레의 주저로 알려진 <헤겔의 체계>가 번역되다 만 지 꽤 오래 되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이나 <대논리학> 등도 새 번역본이 안 나오고 있는데, 아마 그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둘중 하나로 보이는데 번역할 만한 역량을 갖춘 학자가 없거나(그 역량에는 열의나 사명감도 포함된다) 아니면 헤겔의 독어를 번역할 수 있는 한국어가 없거나(헤겔의 독어는 독일인들에게도 악명이 높아서 ‘독어‘로 번역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회슬레의 책도 난삽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독일철학사>는 초심자를 염두에 둔 덕분인지 잘 읽히는 편이다(나이가 들면서 읽을 수 있는 책과 없는 책의 경계가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어떤 책들은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반면에 요령부득이라고 생각되는 책들도 자주 만난다. 독해가 어려운 책뿐 아니라 의미나 의의를 가늠할 수 없는 책들도 난해한 책들이다). 책은 영어판으로도 나왔는데 제목이 <간략한 독일철학사>다. 이 또한 구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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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페이퍼로 적은 일이 있는데, 중국 마오둔 수상작가 대표작 중심으의 '더봄 중국문학 전집'이 올 1월 쑤퉁의 <참새 이야기>를 시작으로 출간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나온 건 왕쉬펑의 <다인>이다. 독서 경험상 마오둔 문학상 수상작들은 신뢰할 만하기에 이 전집도 계속 주목하게 된다. 몇 작품은 내년에 강의에서 다뤄볼 계획이다. 올해 나온 다섯 권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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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인 1- 남방의 차나무
왕쉬펑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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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쉬펑 지음, 홍순도 옮김 / 더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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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족- 10cm 발에 갇힌 여자의 운명
펑지차이 지음, 양성희 옮김 / 더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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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을 기다리며
거페이 지음, 문현선 옮김 / 더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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