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어제의 구도가 아니다
배치도 다르고 엑스트라도 다르다
오늘의 전철 씬
그러고 보니 나도 엑스트라군
대사가 없다
입 다물고 스마트폰에 열중한다
열심히 문자를 보내는 표정으로
시를 적는다 오늘의
할당량을 채운다
이제 겨우 복역 2개월차
만기 출소는 꿈꾸지 않는다
특별대사면은 혹 모르겠다
다행히 수용소는 아주 넓다
무제한 데이터서비스처럼
이동반경도 무제한
해저터널이 있다면 남미도 갈 수 있다
모스크바에서 안부를 묻는다
뮌헨에서도 문자가 온다
병원도 오갈 수 있다
단지 시를 써야 할 뿐이다
다들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재소자들의 특징이다
그림시도 있고 노래시도 있고
포르노시도 있다
형량은 다르다
장르도 다르고 스타일도 다르다
각자 복역중이다
다들 모르는 척 시선을 돌린다
나도 전과를 숨긴다
예전에 써봤다고 진술했다
멍청이!
나는 두 배를 써야 한다
전철에서도 쓴다
안약 넣고도 쓴다
무작정 쓴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컷! 이제 다음 장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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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6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역2개월차 ㅎㅎ
교도관에게 미운털 박히지 마시고
용문신 재소자들도 잘 피해다니시고
부디 모범수로 조기출소 하시길~~
(사진속 지하철은 어디? 이쁘네요
시도 되고 연애도 될듯한 지하철~)

로쟈 2018-06-06 15:49   좋아요 0 | URL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이랍니다.~
 

장미의 계절이라는 장미들의 피케팅
누가 장미파이고 비장미파인가
누가 들장미파이고 백장미파인가
이 계절의 입장권을 확인한다
여름을 간과한 자들이 입구에서 저지당한다
여기는 장미구역
장미 아닌 것들은 다 숙일 것
지금은 정치의 계절이 아니라 장미의 계절
장미들의 기세등등한 기세를 보라
아파트단지마다 장미들의 대오를 보라
장미들의 들끓는 붉은 함성을 보라
저들은 압구정파이기도 하지
근방에서 유명하다네
언젠가 노숙자라고 봉변을 당할 뻔했네
지금 집이 없는 자들은 피해 가야지
장미 가시에 찔리기 전에 이 구역을 벗어나야지
서둘러 지하철입구 계단을 내려간다
오늘은 에스컬레이터도 수리중
그래도 나는 가뿐하게 도망중
장미들이 순발력 없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충정로에서 한숨 돌리네
누구처럼 장미의 시인이 아닌 건 얼마나 다행인가
그런데 그 많던 철쭉은 어디로 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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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이 죽음의 유예라면
모든 독서는 죽음을 이기는 독서
클라이브 제임스는 백혈병과 비장하게 싸우고
나는 식도염과 헐겁게 싸울지라도
(찾아보면 더 나올지 몰라)
나는 전우애를 느낀다
한 글자를 읽을 때 하나의 세포를 잃어가도
제임스는 투항하지 않는다
죽음을 이기는 독서는 병상의 독서이자
참호 속의 독서
예의를 아는 총알이여
이 페이지를 마저 읽게 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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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5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에 길도 내야하고
죽음과 싸워 이기고
열일하는 독서 맞네요.
제겐
시간을 이기는
시간을 버티게 하는
독서~

로쟈 2018-06-05 17:04   좋아요 1 | URL
네 열일합니다.~

로제트50 2018-06-05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픈 열대, 코스모스, 율리시즈,
빈 서판은 읽고 죽으리라!
- 남편 왈, ˝책 더 사야겠다!˝ ~

로쟈 2018-06-05 17:04   좋아요 0 | URL
네 더 욕심을내셔도.~

로제트50 2018-06-05 17:11   좋아요 0 | URL
네*^^* 쌤이 오래오래
많이 소개해주셔요~~

가명 2018-06-1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연 책이 죽음까지 이기게 해 줄까요...

로쟈 2018-06-13 00:01   좋아요 0 | URL
죽음을 유예하는 독서죠.
 

밤, 거리, 가로등, 약국
그렇게 시작하는 러시아시가 있어
시는 그렇게 쓰는 건가 싶어
밤, 거리, 가로등, 약국이라고
나도 적어 보지만
약국은 언제 시가 되려는지
여름밤 가로등은 창백하게 제 자리를 지키고
거리엔 차들만 오고간다
눈 오는 밤거리여야 했던가
순서를 바꿔야 했는지도
눈 오는 밤거리에 창백한 가로등 하나
약국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그래 조금 나은 듯싶다
내친 김에 눈보라를 넣어보자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밤거리에
가로등도 불빛을 잃어가고
나는 약국으로 가는 길을 잃었다
그게 아니면
밤, 거리, 가로등, 약국에 대해서
나는 무얼 쓸 수 있을까
나는 약국으로 가야 한다
나는 약국으로 가는 중이다
나는 약국에 갈 수 없는 것일까
약국에서는 왜 시를 팔지 않는가
약국은 왜 시가 되지 않는가
약국이 뭐기에
왜 시비냐고
여기가 약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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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05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먹는 약국인가요?
약국에서 ‘시‘라는 약이라도 팔아야 할듯~ㅎ

로쟈 2018-06-05 17:05   좋아요 0 | URL
약국이란 단어는 시가 잘 안 돼요. 그래서 써본.
 

어제도 내일도 모르는 풀꽃에게
이건 손짓발짓으로도 안 되네
어제도 소용없고 내일도 소용없어라
풀꽃은 무얼 믿는가
지금 여기가 풀꽃의 신앙이라네
햇살 아래 풀꽃이 막 기지개를 켜네
손과 발을 쭉 뻗고 고개를 처드네
물과 바람도 덩달아 오늘뿐이네
어제도 내일도 잊고 풀꽃 생각뿐이네
모르는 게 힘이지
풀꽃은 막무가내로 살고 사랑하고 배우고
레오 버스카글리아처럼
무얼 배우는지는 들어본 적 없지만
나는 풀꽃을 응원하지
사랑하는 풀꽃이 이름없는 풀꽃으로 성장하길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냥 풀꽃이지만
풀꽃일 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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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5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5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