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사라 베이크웰의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이론과실천)을 읽다가 보부아르의 책들을 검색했다. 실존주의의 탄생 시점으로 저자는 세 명의 젊은 철학자가 파리 몽파르나스 거리의 한 바에 앉아 살구 칵테일을 마시던 순간을 지목하는데, 때는 1932-3년 초였고, 세 철학자는 고등사범 동기였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리고 레몽 아롱이었다.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아롱이 두 사람에게  최신 철학인 현상학에 대해 한창 열을 올리며 소개했고, 사르트르는 그런 친구를 경악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가 창백해졌다고 묘사했다. 새로운 철학에 흥분하기도 했고, 친구한테 뒤져 있다는 느낌에 자존심도 구겨진 상태였다.

 

 

사르트르는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 "현상학에 관한 책은 전부 내오시오!"라고 소리 지르게 된다. 당시 프랑스에 소개된 책은 레비나스가 쓴 얇은 책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이론>(그린비) 한권뿐이었다고 한다(<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의 역자는 국내 번역된 책 제목을 전혀 따르지 않아서, <후설의 현상학 속 직관론>이라고 옮겼다). 성에 차지 않았던 사르트르는 그해 여름 아롱의 제안에 따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난다. 후설을 현상학을 공부하기 위한 유학이었고, 자기 식으로 현상학을 소화하고 돌아온 그는 이내 '현대 실존주의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상이 <살구 칵테일을 마시는 철학자들>의 서두다. 사실 별반 새로운 내용은 아닌다. 학부 때 불어 강의 시간에 듣기도 하고, 오래 전 안니 코엔 솔랄의 평전 <사르트르>(전3권)에서 읽기도 한 내용이다. 차이라면 세 사람이 마시던 게 '맥주'에서 '살구 칵테일'로 바뀐 것 정도다. 저자가 붙인 주석을 보니 맥주는 사르트르의 회고 속에, 살구 칵테일은 보부아르의 자서전(자전소설로도 분류된다)에 나온다.  똑같은 장면을 두 사람이 각기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셈인데, 사라 베이크웰은 사르트르의 기억은 미덥지 않다면 보부아르의 손을 들어준다(주종이 핵심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구 칵테일'로 기록해 놓은 책이 <여자 한창 때>이다. 보부아르의 자서전(자전소설)은 통상 4부작으로 알려져 있는데, 번역판 제목으로 1부가 <처녀시절>(1958)이고, 2부가 <여자 한창때>(1960)이다. 현재 번역본이 한 종밖에 없다. <여자 한창 때>는 직역하여 <나이의 힘>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영어판 제목은 'The Prime of Life'이니까 '한창때'나 '전성기'란 뜻으로 추정된다. 거기에 이어지는 나머지 두 권은 <사물의 힘>(1963)과 <결국>(1972)이고, 아직 번역본이 없는 것으로 안다. 결국 자서전을 기준으로 하면 보부아르의 생애에 대해서 우리는 절반만 읽을 수 있다(그렇다고 따로 보부아르의 평전이 나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부아르의 책을 검색하다가 비로소 알게 된 것인데, 철학적 에세이 두 권이 지난해 가을에 출간되었다(본 것도 같은데 그냥 무시하고 지나친 모양이다). <모든 사람은 혼자다>와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꾸리에)라고 짝지은 제목인데, 물론 원제와는 거리가 멀다. 각각 보부아르의 첫번째와 두번째 에세이, <피리우스와 시네아스>(1944), <애매성의 윤리학>(1947)을 옮긴 것이다. (예전에 나온 적이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인데, 곧바로 주문을 하면서도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다>의 번역에 문제가 많다는 리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혼자다>만 주문했다. 올해의 마지막 주문 가운데 하나다. 제목만으로는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1946)도 떠올리게 되는데, 두 에세이 사이에 출간된 작품이다.

 

 

 

오늘날 보부아르는 주로 <제2의 성>의 저자로만 기억되는데, 사르트르와 마찬가지로 소설가를 겸한 철학자였고 그녀의 소설들도 제대로 소개되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갖고 있다. 공쿠르상 수상작인 <레망다랭>도 절판된 지 오래 되었고, <초대받은 여자>도 읽을 수가 없다. <위기의 여자>, <모든 인간은 죽는다>, <타인의 피> 정도가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소설들이다. 실존주의 문학자들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카뮈 등의 대표작을 한데 묶어서 강의해보려는 기획도 수년 전에 세워보았지만 보부아르의 작품이 없어서(즉 균형을 맞출 수가 없어서) 보류한 상태다. 그 많은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보부아르의 작품이 최소한 두어 편은 새 번역본으로 나오면 좋겠다...

 

1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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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전집판으로 완간되어 내년 강의에서도 자주 다루게 될 작품이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다. 방대한 스케일의 작품이라 관련하여 읽을 책이 많은데 문명과 전쟁을 주제로 한 책들도 그에 해당한다. 이번에 나온 브렛 보든의 <문명과 전쟁>(서울대출판부)과 같의 제목이지만 네댓 배 두꺼운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교유서가) 등이 대표적이다. 소개에 따르면 브렛 보든의 <문명과 전쟁>은 ‘전쟁하는 문명‘에 초점을 맞춘다.

˝문명화되면 될수록 전쟁은 회피될 것이라는 통념을 깨고, 실제로는 문명과 전쟁이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전쟁하는 문명‘의 현실을 드러낸다. 또한 독자로 하여금 이러한 문명과 전쟁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요컨대 문명과 전쟁의 관계가 복합적이라는 것. 전쟁이란 주제에 관심을 갖게 하고 내게는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을 소개해준, 이언 모리스의 <전쟁의 역설>도 음미가 필요한 책이다. 톨스토이의 역사철학을 평가하기 위해서 내가 참고하려는 책들이다. <전쟁과 평화>가 2000쪽이 넘는 분량을 자랑하지만 <전쟁과 평화>를 읽기 위한 참고문헌도 만만치 않다. 몇권의 나폴레옹 관련서까지 더하면 역시 2000쪽을 훌쩍 넘어간다. 책에 파묻히는 건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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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부터 올해 봄까지 한국 민주주의는 놀라운 진전을 이루었다. 아직도 많은 ‘적폐‘가 남아있지만, 그리고 적폐청산의 과제가 기대만큼 수월하게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기준이 되는 건 MB에 대한 법의 심판이다) 다시금 자유한국당이 집권한다든가 하는 ‘적폐복고‘의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동시대 한국인들은 보람과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

민주주의의 진전이 독서에도 변화를 가져왔는데 개인적인 느낌을 적자면, 이제는 민주주의 관련서를 편안한 마음으로 손에 들게 된다. 분통과 목마름을 동반하지 않고서 이 주제의 책들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진태원의 <을의 민주주의>(그린비)도 그렇고, 로베르트 웅거의 <민주주의를 넘어>(앨피)도 그렇다. ‘서양철학의 논문들‘ 시리즈로 나온 리처드 로티의 <철학에 대한 민주주의의 우선성>(전기가오리)까지도 예전처럼 숙제를 안겨주는 게 아니라 반가움을 먼저 느끼게 한다.

흔히 하는 말로 우리의 오늘은 누군가 간절히 꿈꾸던 내일이었다. 오늘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만 더불어 오늘의 성취를 잘 인식해야 한다는 말로도 새길 수 있다. 그게 또한 새로운 출발점이다. 길이 아직 멀다 하더라도 우리의 걸음은 가볍고 호흡은 활기차다. 이제 막 태어나는 시간과 함께 내년에도 우리는 더 멀리 갈 수 있다. 갑의 민주주의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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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의를 끝으로 올해의 강의가 일단락되었다. 대단한 역주는 아니었더라도 완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다. 다소 무리한 면도 있었지만 많이 읽고 또 배운 한해였다(강사도 강의를 통해 배운다). 몇몇 결과는 내년에 책으로 묶여서 나올 것이다. 무엇을 배운 것인지는 책을 내는 과정에서 다시금 복기하고 정리할 예정이다. 당장은 휴식.

내일 하루 정도는 휴식을 취할 예정이지만 그래도 책을 손에서 놓기는 어렵겠다. 편안하게 읽느냐 긴박하게 읽느냐의 차이일 뿐. 무엇을 읽을지는 아직 미정인데(내키는 대로 읽자면 십수 권은 읽어야겠기에), 후보 가운데 하나는 저명한 러시아사학자 쉴라 피츠패트릭의 <러시아 혁명 1917-1938>(사계절)이다. 올해 러시아혁명 관련서가 다수 출간됐으니 한권 더 추가된 게 대단한 뉴스는 아니다. 다만 저자가 다루는 시대 범위가 눈길을 끄는데 1938년 스탈린 공포정치기를 1917년 혁명의 일단락으로 보았다. ˝러시아혁명에 대한 간결하고 통찰력 있으며 독창적인 분석˝이라는 평도 이런 구분설정과 무관하지 않을 터이다.

비교해보자면 에드워드 카는 1917-1929년까지를 러시아혁명사의 대상으로 보았다. 그리고 올랜도 파이지스는 1891-1991년을 ‘혁명의 러시아‘로 제시했다. 피츠패트릭의 구분은 그 중간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올랜도 파이지스 자신이 피츠패트릭의 책에 대해 추천평을 적고 있는데 참고할 만하다. ˝소비에트 체제에 가장 정통한 학자가 쓴 간결하고 절묘한 해석이다.˝ 간결해서도, 그리고 절묘해서도 일독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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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의 강의 일정도 이제 하루를 남겨놓았다. 숨 가쁜 일정에 치이다 보니(자청한 것이긴 하다) 제때 읽어야 할 책을 읽지 못하고 놓치는 수가 많다. 최대한 구입은 해두려고 하는데 언제나 여력이 닿는 건 아니다(재정보다 더 큰 문제는 공간이다. 책을 갖고 있어도 제때 찾을 수 없으니). 그럼에도 마음은 늙지 않아서 욕심이 줄지 않는다. 그런 욕심 탓에 뒤늦게 주문한 책은 윌리엄 해리스의 <분노의 문화사>(인텔렉투스)다.

‘뒤늦게‘라고 적은 건 책이 나온 지 몇주 지났기 때문이다. 제목은 당연히 보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다. 클릭해보지 않았던 것. 하지만, 엊그제 보니 ‘숨은 보석‘ 같은 책이다. 모르고 지나쳤다면 분노를 살 뻔한. 부제는 ‘고전고대의 분노 통제 이데올로기‘이고 저자는 컬럼비아대학의 역사학 교수다. 고전고대, 즉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가 주 전공분야다.

˝분노란 무엇인가에 대한 용어 정의부터 시작해 호메로스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킬레스의 분노, 분노의 옹호자 아리스토텔레스, 분노의 통제를 미덕으로 삼았던 로마황제들, 여성과 노예를 상대로 한 분노 등 아르카익 시대와 고전고대를 넘나들며 분노에 대한 담론을 펼쳐나간다. 저자는 고대의 심리치료 방법과 더불어 현대심리학이 고전고대의 담론을 토대로 삼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분노‘는 의당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페터 슬로터다이크의 <분노는 세상을 어떻게 지배했는가>(이야기가있는집)와 비교해서 읽어봄 직하다. 그러고 보니 분노라는 주제를 다룬 ‘올해의 책‘ 두 권이로군.

사실 분노는 올해를 대표할 만한 정서는 아니다(그 점은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그럼에도 책이 나오니 읽어봐야겠다는 욕심은 불가피하다. 주제서평이라도 써볼 만한데 실현하기는 어렵다. 흠, 어렵다고 적으니 유감이로군. 게다가 원저의 책값도 신경이 거슬리게 한다. 이런 유감도 계속 쌓이면 분노로 치달을 수 있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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