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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가락으로 시를 쓰듯
한 눈을 감고 쓴다
이 정도는 써준다는 식으로
시를 쓰느라 눈이 시리다는 핑계로
핑계 아닌 핑계로
설마 시를 쓰다 실명하겠느냐만은
실없는 시라면 또 모르는 일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쓴다고 쓰는 시라면
누구를 위한 시인가
그럼 쓰지 않는다고 쓰는가
그렇다, 이건 시가 아닌 시
시가 아니라고 쓰는 시를
나는 눈이 시려 한 눈을 감고서
시라고 쓴다
어차피 그대가 읽지 않는다면
누가 읽어도 상관 없는 일
누가 읽지 않아도 상관 없는 일
시만 그렇지도 않다
시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
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한 손가락으로 시를 쓰거나
시를 쓰지 않거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예정이니
나는 두 눈을 모두 감았다 뜰 예정이니
한 눈으로 시를 쓰는 건
한눈파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것
어느 날 두 눈을 감고도 쓰리라
누가 읽어도 상관없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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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7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어느 대목이
저남자에게 저런 표정을 짓게 했던걸까요?

로쟈 2018-06-28 09:54   좋아요 0 | URL
페이지를보니 앞부분 같은데요. 뒤로가면 쓰러질듯.~

로제트50 2018-06-2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핑계로든, 저 핑계로든 시 쓰기는
시인의 숙명이겠지요. 그 고독은 외로움과는 다른 능동적인 선택이겠지요.

로쟈 2018-06-28 09:55   좋아요 0 | URL
^^
 

낮에도 조개를 먹었지만
벌교꼬막의 마음은 나도 모른다
바지락칼국수에 홍합짬뽕은 먹었어도
그건 바지락이고 홍합이고
네가 꼬막을 알 리 없다
꼬막을 먹어봤다 쳐도
벌교꼬막은 아니었으니
벌교는 가본 적도 없으니
먹어본 적도 없으니
속마음을 알 리 없다
그게 하동에 재첩국이 있다면
벌교엔 꼬막이 있는 것이지
인연이 없으면 마음을 어찌 알리
네가 꼬막도 모르면
벌교의 마음을 어찌 알리
꼬막정식도 맛보지 못하고
꼬막무침에 꼬막전과 꼬막탕수육까지
네가 벌교꼬막도 알지 못하면서
네가 식욕이 없다고
네가 벌교도 가보지 않고서
역사를 읽었다고
굳이 아현동 벌교꼬막을 지나쳤다고
트집을 잡는 게 아니다
꼬막과의 오랜 인연을 생각해보라
꼬막은 벌교꼬막이라는데
네가 내 마음을 몰라줄 수가 없다
이런 비 오는 날에는
그대로 지나칠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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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척추가 없어도
곧게 서 있구나
비바람에 흔들려주면 그만
흔들릴 마음이 없어
표정도 없구나
나무는 무심하구나
무심이 극락이지
내색하지 않지만
나무는 극락에 있지
척추가 없으니 뇌도 없는 거지
뇌는 움직이는 동물에게나
까불대거나
깝작대거나
뇌는 움직일 때 쓰는 거지
나무가 되거나 바위가 된다면
신경이 필요 없고 뇌가 필요 없고
무심한 지경에 이르니
가만히 앉아
무심코 나무를 바라보다가
나무는 극락에 있다고 적는다
나는 이 손가락 때문에
극락에 들지 못한다
또 자리를 떠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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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만 보는 게
눈의 편견이다
그렇다고 눈을 뺄 수는 없다

볼 수 없는 것들과는
매일매일 작별한다
그때그때 지나칠 때마다

차창에 이마를 댄다
다시 보지 못할 것들과는
급하게 입을 맞춘다
(사실은 눈을 맞춘다)

다시 못 볼 인연이라면
아스팔트도 그립다
건너지 못한 횡단보도

매일매일 그런 마음으로
눈을 감는다
만질 수 없는 것들이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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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흑백영화의 제목은?
고모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봤던 주말의 명화
어흥~~~으로 시작하던.
(저 초딩땐 고모가 세상에서 젤 세련되 보임.
영화보기도 일명 고모따라하기 프로젝트ㅋ)

로제트50 2018-06-2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사블랑카

two0sun 2018-06-2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사블랑카~저도 봤는데~
저남자배우가 험프리 보가트는 아니죠? 맞나?
제 기억속의 험프리 보가트는 더 멋있었는데~~

로쟈 2018-06-26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데이비드 린 감독의 ‘밀회‘입니다.~

two0sun 2018-06-26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본영환데~
(역시 전 영화랑 안친한듯. 몇년전에 봤는데)
몇장면과 분위기?는 기억이 나네요.

bond2000 2018-06-26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46년, 제 1 회 칸 영화제 그랑프리 수장작 (십여편 중 한편) 이네요 ^^

꿀복 2018-06-3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너지 못한 횡단보도 ... 많은 것들이 생각나요

philocinema 2018-09-06 1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중 여주인공인 로라의 내면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으로 표현한 것이 인상적 이었습니다
 

해변으로 가요
라는 노래 들으며 딴데로 간다
해변은 어디에 있었나
매일 저녁 해변으로 갔다

여름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밤바다 파도 소리 들으며
지난날을 되새김질했다
왜 이런 날은 떠올리지 못했나

24년이 지난 어느 날
해변으로 가요를
들으며 나는 딴데로 가고
해변으로 가서 마시던 캔맥주는

거품마저 삭은 지 오래
나는 오늘도 해변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나는 해변으로 가요를 들으며
내일도 해변으로 가서

잃어버린 시간을
바닷물과 함께 움켜쥐고
나는 또 딴데로 가며
오래 전 시간을 되새김질하고

나는 갈 곳이 없고
나는 가는 곳이 없고
나는 딴데로만 가는 게 특기였나
해변으로 가요

해변은 어디에 있었나
태양은 어디로 숨었나
태양이 앉았다 떠난 자리 같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물거품을 애도하고
거품은 거품끼리 몰려 다니고
나는 딴데로 간다
나는 딴데로 가며 해변으로

간다 아무도 없는
해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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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6-25 2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향기의 아니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13살부터~송창식 윤형주의 노래를 들었더랬죠.
뭘 알고나 들었을까 싶네요.
그 어린것이.
이젠 땡볕 내리쬐는 해변을 좋아할만큼의 열정도 사라지고
해변에서의 나 잡아봐라~~는 저멀리 추억속으로~~ㅎㅎ

로쟈 2018-06-26 00:07   좋아요 0 | URL
네 버스에서 흘러나와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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