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가스 요사의 <켈트의 꿈>은 2010년 바르가스 요사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10월) 직후에 발표한 소설이다(11월 출간). 물론 그 이전에 집필을 완료하고 인쇄에 넘겼을 작품이다. 노벨상 발표 이후 그의 정치적 입장 내지 편럭과 관련하여 많은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켈트의 꿈>은 그가 우리시대의 거장이며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을 한번더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74세에도 이런 작품을 써내는 작가정신은 모범이 될 만하다...

아래 인용문에는 오역이 들어 있는데, 주인공인 영국 영사 로저 케이스먼트가 콩고 공안군의 장교 마사르 대위에게 병사들의 만행을 비판하자 대위가 답변하는 대목이다. 그는 인권문제가 아닌 생산성 저하를 이유로 병사들을 비난한다. ˝그 손과 성기가 잘린 병사들˝의 등짝을 두들겨패겠다? ˝그 손과 성기를 자른 병사들˝로 옮겨져야 한다. 착오이지만 정반대의 의미가 돼버렸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사르 대위님. 케이스먼트가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 아주 느릿하게 말했다. "제가 볼로보 병원에서 본 그 짓이겨진 손과 잘린 성기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만행처럼 보입니다."
"그렇죠, 물론, 그렇습니다." 대위가 싫은 표정을 지으며 즉시 수긍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말이죠, 영사님, 그게 엄청난 인력 낭비라는 겁니다. 절단당한 그 남자들은 더이상 일할 수 없거나, 한다 해도 엉망으로 할 것이고, 생산성은 최저가 될 테니까요. 우리가 여기서 겪고 있는 노동력 결핍은 진정한 범죄입니다. 그 손과 성기가 잘린 병사들을 내 앞에 데려와봐요. 그러면 내가 그자들 핏줄에 피 한방울 남지 않을 때까지 등짝을 두들겨패버릴 겁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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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에서 위대한 비극의 시대는 단 두번, 페리클레스의 시대 아테네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에 있었다고 하면서 두 시대의 공통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한 자들과, 스페인과 싸우고 무적함대가 침몰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자들은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세상은 경탄의 장소였고, 인류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행운의 절정에서 삶이 영위되었다. 특히 영웅주의의 감동적인 기쁨이 인간의 가슴을 휘저었다. 비극을 위한 소재가 아니지 않은가라고 여러분은 질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운의 절정에서 인간은 틀림없이 비통함이나 벅찬 기쁨을 느낀다. 인간은 단조로이 느낄 수없다. 인생 속에서 비극을 보는 정신의 기질과 환희를 보는 기질은 정반대의 것이 아니다. 인생에 대한 비극적인 시각과 정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것은 인생을 천박하게 보는 시각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중요성을 결여하고 있고, 경박하고 비열하고 처량하게 희망이 없는 상태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될 때, 비극의 정신은 떠나버린다. "언젠가 왕의 휘장을 입은 찬란한 비극이 스쳐 지나가게 하자." 그 반대극점에 고리키가「밑바닥에서(Na dne)」와 함께 서 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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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관련서를 찾다가 우연히 책장에서 빼낸 책인데, 저자가 가장 기본적인 사실도 잘못 적고 있다. 1872년 초판의 제목이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이다. 너무 당당하게 적고 있어서 다시 확인해봤다. 그럼에도 500쪽이 넘는 책을 써내는 용기는 도취에서 나오는 것일까...

니체의 처녀작 <비극의 탄생>은 1872년에 출간되었다. 27세의 젊은 철학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책이다. 당시 제목은 <비극의 탄생, 또는 그리스 정신과 염세주의 Die Geburt der Tragodie, oder: Griechenturn und Pessimismus>였고, 서론으로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이 실렸다. 그 뒤 1874년에 재판이 나왔고, 14년이 지난 1886년에 새롭게 개편한 책이 출간되었다. 그때는 제목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Die Geburt der Tragödie aus dem Geist der Musik>으로 바뀌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서문인 ‘자기비판의 시도‘가 실려 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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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학자이자 감정사학자 바버라 로젠와인의 신간(2021)이다. 원제는 <사랑>인데, 사랑이란 판타지의 역사를 다룬다는 의미에서 번역본 제목이 그렇게 정해진 것 같다. 프루스트 강의에 참고하려 구입했다. 앞서 나온 <분노>도 챙겨놓아야겠다...

나는 오늘날 사람들이 사랑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과거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이라 생각했는지를 이해하고 싶고, 그 서사 속에 여성들을 포함시키고 싶다. 나는 ‘실제‘ 인물들과 그들이 자신의 사랑을 어떻게 이야기했는지를, 더불어 우리가 정교하게 만들어내고 붙드는 사랑의 판타지에 흔히 뼈대 역할을 하는 창작물들을 나란히 언급하고 싶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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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강의에서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극장 얘기가 나와서 잠시 로마의 콜로세움과 비교했는데, 마침 <7개 코드로 읽는 유럽 도시>에서 같은 맥락의 비교를 읽는다...

아테네를 무력으로 누르고 지중해지역 문명세계의 지배자로 등극한 로마 제국의 수도 및 기타 로마의 주요 도시들에도 아테네 극장을 모방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그러나 공연 내용은 너무나 달랐다. 로마인들은 무대에서 배우가 실제 피를 흘려야 열광했다. 어차피 죽을 죄수를 끌고 와 무대에서 죽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아테네는 연극무대에서도 그렇지만 무대 밖에서도 직접 사람의 피를 보는 것을 극히 꺼렸다. 반국가 사범으로 몰려 죽임을 당한 소크라테스에게 내린 판결도 자기 집에서 조용히 사약을 먹는 것이었다. 살인자를 처벌할 때도 광장에서 목을 쳐죽이지 않았다. 웅덩이에 던져 버리거나 나무판에 묶어놓고 서서히 죽게 했다. 살인에 쓰인 무기, 사람의 피를 흘린 도구도 용납하지 않았다. 피 묻은 칼은 아테네 밖으로 추방했다. 아테네는 비극을 사랑했으되 피를 꺼린 도시였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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