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천안함과 선거 정국으로 인해 뉴스가 '묻혔지만' 지난주 25일에 대학의 한 시간강사가 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메일함을 확인해보니 이튿날인 26일 '대학강사교원지위회복과 대학교육정상화 투쟁본부'쪽에서 보낸 메일이 와 있다. 이후에도 이번 사건과 관련한 메일을 몇 차례 더 받았다. 개인적으론 엊그제가 시간강사를 하다가 2003년 자살한 친구의 기일이기도 해서 마음이 더 착잡했다. 대학사회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대부분 외면한다. 나 또한 대학에 한쪽 발을 들여놓고는 있지만 이런 현실을 대할 때마다 '정나미'가 떨어진다(그래서 요즘 나대로의 '자립'과 '안식'을 꿈꾼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대학사회의 '암흑의 카르텔'을 다시 한번 질타하는 이광수 교수의 기고문을 스크랩해놓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교수신문(10. 05. 31) [긴급기고] ‘암흑의 카르텔’ 누가 외면하나  

또 한 분의 비정규 교수‘시간강사’가 자살을 했다. 부모를 앞에 두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자식을 곁에 두고 조선대 시간강사 서 아무개 박사(45세, 영어영문학)가 지난 5월 25일 밤 11시 광주 금호동 자신의 아파트에 연탄불을 피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8년 건국대 시간강사 한경선 박사가 임용비리와 강사 제도를 비판하며 피 끓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지 2년 만의 일이고, 1998년 이래 벌써 여덟 번째의 비극이다. 여덟 번째이지만 이번 서 박사의 비극은 엄청난 충격을 우리에게 뱉어냈다. 그것은 그가 그 동안 빠져나오지 못 한 채 유린당하고 겁탈당한 대학의 임용 구조 속에서 정규직 교수가 저지른 비리를 낱낱이 폭로하고 그 문제를 풀어야 함을 만 천하에 공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최근 2~3개 대학의 전임교수 임용에서 탈락했기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목숨을 걸면서 폭로한 내용은 충격적이라 파장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 같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B’라고 밝힌 그의 은사에 관한 내용이다. 서 박사에 의하면 그가 B 교수와 공동저자의 명의로 쓴 논문이 대략 54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논문은 모두 서 박사 자신이 쓴 것이라 했고, 심지어는 B의 제자를 위해 쓴 박사학위 논문도 있고, 석사학위 논문도 있다고 했다. 숫자로 표현된 양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고, B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매도당했다는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나와 같이 그 업종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은 그의 말이 대개 맞을 것임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그가 “‘교수와 제자 =종속관계=교수=개’의 관계를 세상에 알려 주십시오”라고 울부짖은 그 말의 피맺힘을 익히 안다.

대학 교수의 임용을 둘러싸고 저지른 갖은 악행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재단과 대학 당국에 의한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비리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 아니고, 그보다 더 더럽고 악질적이고 그래서 그가 ‘개’(犬)라고 표현할 정도의 짓이 정규직 교수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다는 말이다. 그가 개를 셀 때 사용하는 단위인 ‘마리’라는 어휘를 사용하면서까지 질타한 ‘시간강사’에 대한 정규직 교수의 비열함과 잔혹함은 이 업계에서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정규직 교수들은 그들의 ‘종’(僕)-서 박사는 자신을 B에게 이렇게 불렀다-에게 논문이나 책을 자신이나 자신의 제자 혹은 자신의 지인을 위해 대필을 시키는 것은 속칭 ‘관행’에 가까울 정도이고, 그 외에 그들에게 저지른 악행이 비일비재하다. 그런 교수 한 ‘마리’에 1억5천만원, 3억원을呼價 한다고 했다. 서 박사 개인이 그런 ‘오퍼’를 받았다고 했다. 이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다수의 교수는 그런 짓과는 거리가 먼, 일반 사회의 이치와 다르지 않다.

돈을 수억이라도 주고, 수 십 편의 논문을 써주고, 몸도 뺏기고 마음도 뺏기면서까지 교수가 되려고 그 많은 시간강사들이 안간힘을 쓰는 것은 그 교수들이 너무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고, 교수가 된다는 것은 같은 교원에서 위치 이동을 하는 것이 아닌 신분 자체가 달라진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 교수들은 자신들이 교과부나 사학 재단에 대해 피고용주 신분이면서 동시에 시간강사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고용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인간성’, ‘대인관계’ 등의 표현으로 그 시간강사들을 매도하고, 평가하는 카르텔을 강하고 질기게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서 한 번이라도 찍히면 그 동안 공부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면서, 질기고 모질게 살아 온 인생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간강사’라는 슬픈 이름을 가진 그 비정규 교수들은 정규직 교수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그냥 목숨을 던져 버릴 수밖에 없다. 그 암흑의 카르텔에서 살아나온 자는 아무도 없다. 단언하건데, 비정규 교수 문제에 침묵하고 그 암흑의 카르텔에 저항하지 않은 교수는 지식인이 아니다. 상당수의 교수들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4대강’과 MB 정부에 대해서 맞싸우며 ‘진보’를 실천하고 있다. 맞고 옳고 바람직한 일이다. KTX 여승무원들의 억울한 주장에 귀기울여주고 함께 싸운 사람들은 그들 진보적 지식인들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와 여승무원 문제에까지 그렇게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그 진보적 지식인들이 지금 여기 우리가 같이 살고 있는 이 비리와 부정의 틀 안에 짜여 있는 악의 카르텔에 대해서는 절대 침묵이다. 무엇 때문일까. 그들도 그 공존공생,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상봉 교수의 말을 빌려 말을 하자면, “지금 이곳에서, 비정규 교수 문제를 위해 싸우지 않는 진보 지식인은 가짜다.”(이광수 부산외대·역사학) 

10.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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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01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1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0-06-01 12:13   좋아요 0 | URL
뭐 대학의 정규직 직원(정교수,부교수,조교수,전임강사)등이 신경을 쓰지 않으면 과연 시간 강사 문제가 해결 될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6-04 08:55   좋아요 0 | URL
법으로 해결할 수도 있는데, 고등교육법 개정안 매번 발의만 돼고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어요...

2010-06-01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0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6-01 21:14   좋아요 0 | URL
아이고...대학원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미미달 2010-06-03 19:59   좋아요 0 | URL
꼭 강사가 되기 위해서 대학원에 가지는 않습니다.
 

빌려볼 책들이 있어서 관내 도서관에 갔다가 정간실에서 <인물과사상>(6월호)에 실린 김진석 교수 인터뷰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한 가지 정도만 빼면 그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 한국일보에 실린 그의 칼럼들을 찾아 옮겨놓으려다가 우연히 이기호 소설가의 지난주 칼럼을 읽게 됐다. 원래 벌어지는 일은 하려던 일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법이다. 철학자의 칼럼 대신에 소설가의 칼럼을 스크랩해놓기로 한다. 참고로 칼럼에서 언급되는 가라타니 고진의 대의제 비판은 <일본 정신의 기원>(이매진)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일보(10. 05. 22) 과두정이냐, 제비 뽑기냐

6.2 지방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목요일, 천안함 사건 민군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있었다. 전국에 생중계된 발표가 끝난 시각은 점심시간 바로 직전. 그래서인지 식당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화두는 온통 그쪽으로만 쏠렸다.

유능한 엘리트만 뽑는 선거
선거 운동 첫날을 발표 시점으로 삼은 저의를 의심하는 사람과, 조만간 국지전이라도 발생하지 않겠냐며 우울한 낯빛으로 우울한 예측을 내놓는 사람, 교신기록 미공개를 예로 들며 음모론을 설파하는 사람까지, 오가는 이야기들은 심각했다. 그러나 그래서 식당 안은 아연 알 수 없는 활기로 들끓고 있었다. 그런 식당 안으로 들어와 명함을 돌리며 허리를 숙이는 구의원 입후보자까지, 2010년 5월 하순의 대한민국은 요란스럽고 수상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구의원 후보자가 주고 간 명함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명함이어서 그랬겠지만, 공약은 온데간데 없고 후보자 약력만 열 줄 넘게 빼곡히 적혀 있다. 행정학박사라는 입후보자는 캐치프레이즈 역시 '행정학박사가 만들어가는 명품 구정 실현'으로 큼지막하게 박아 놓았다. 바로 그 문구가 그렇지 않아도 어수선했던 내 마음을 더욱더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는 선거를 통해 우리의 대표를 선출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선출된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유능한 엘리트 집단이다. 예외 없이 일류라고 일컫는 대학을 졸업했으며, 각종 고시에 패스했거나, 이른 나이에 공직이나 기업 대표를 역임한 사람들이다. 국회의원 중에는 유독 교수, 변호사, 기업체 사장이 많다.

사람들은 국민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남들보다 우월한 식견을 가진 사람이 대표로 선출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선출된 엘리트들은 다시 민의의 대표라는 이름으로 민중을 계몽하고, 정해진 방향으로 이끌고 가려 애를 쓴다. 정파적 입장에 따라 소소하게 의견이 갈릴 수 있겠지만, 출신 성분으로만 따지자면 가히 엘리트들의 과두정(寡頭政)이 실현된 곳이 바로 이 땅의 의회이고, 이 땅의 민주주의의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 본질은, 일본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어느 글에선가 말했듯, 제비 뽑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데모크라시의 어원 그대로 '누구라도 좋은', '하찮은' 사람들이 통치하는 체제이다. 그 말인즉슨, 민주주의 체제란 그 누구도 그 누구를 계몽하려 들지 않고, 무언가를 독점하려 들지도 않으며, 소수에게 권력이 독점되는 현상 또한 발생하지 않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 제비 뽑기와 같은 상태에선 '북풍'이니 '노풍'이니 하는 바람은 일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가 정보를 손아귀에 쥔 채 시기를 저울질하는 일 따위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태 자체를 지금 이 땅에서 바라는 것은 다분히 이상적인 일이겠지만, 이 과두정의 체제를 모두들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역시 충분히 괴이쩍다. 우리가 선거철만 되면 자꾸 누군가가 만들어낸 바람에 몸을 맡기고, 거기에 휩쓸린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다 그와 같은 연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찮은'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우리의 투표가 보다 더 민주주의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선, 바로 그 바람을 배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바람을 만드는 자와, 바람을 가르치는 자들을 우선적으로 솎아내는 일 역시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도 나중에 1 번부터 8 번까지, 그 누구를 제비 뽑기 하듯 뽑아도 아무 걱정 없는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행정학박사이지만 행정학박사 학위 따위를 자신의 약력에 포함시키지 않는 명함, 나는 그런 명함을 받아보고 싶었다. 출신학교 따위는 더더군다나 말할 나위도 없고. 그런 '막 돼먹은' 명함이 보고 싶어졌다.(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소설가) 

10. 05. 29. 

 

P.S.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휴머니스트, 2010)에서 과두정과 추첨제(제비뽑기)에 관해 참고할 만한 대목을 뽑아본다. 먼저, 박명림 교수의 지적. 

시민됨의 인정이라는 것은 주권을 이양함으로써 공적 존재(즉 국가)를 형성한 뒤 국가의 역할을 통해 안전과 권리와 형평을 제공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개별적인 시민의 존재가 전체로서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의 원칙에 의해서 국가를 구성한 뒤 다시 국가에 의해서 개별적인 시민의 권리를 보장받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구성한 국가가 소수 과두집단에 포함된 시민 외에는 개별적으로 열심히 먹고살라고 한다면 곧 공동체로부터 전혀 시민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90-91쪽)

그리고 그리스 민주정에 대한 김상봉 교수의 설명. 우리가 더 '진보한' 민주주의를 갖고 있는 건지 생각해볼 문제다.

제가 아는 한 역사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평등한 사회는 적어도 남성 시민들 내에서는 고대 아테네였어요. 아테네 시민들의 관심사는 철저히 권력의 평등한 공유 원칙에 입각한 민주주의였죠.(...) 오늘날 공직자를 뽑을 때 어떻게 뽑는 게 민주적인 방식입니까? 우리는 선거잖아요. 그런데 아테네 시민들한테 선거는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그건 '과두정'이에요. 그들은 '추첨'을 민주정이라고 보았습니다. 원래 그게 고전적 구분이에요.
선거로 할 경우 열이면 열, 돈 있는 사람만 선거에 나갈 수 있습니다. 생업을 제쳐놓고 선거에 나갈 사람이 있겠어요? 특히 그 시대에? 그리고 거기 나가면  인물 좋은 사람이 한 표라도 더 얻게 돼요. 집안 좋고 학벌 좋고 돈 많은 사람이 이길 수밖에 없어요. 아테네 시민들은 그걸 집요하게 거부한 거예요. 그 다음에는? 추첨해서 아무나 맡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이 모이는 민회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국회인 평의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 중 하나인 재판정 배심원까지 모두 추첨으로 뽑은 겁니다. 당시에는 판사, 검사가 따로 있지 않았으니까요. 해마다 추첨을 통해 뽑았어요.(167-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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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 2010-05-29 21:39   좋아요 0 | URL
어릴 때부터 지도자의 윤리를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지만, 추첨은... 상당히 충격적이네요^^... 여러 모로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 같습니다.

로쟈 2010-05-30 20:09   좋아요 0 | URL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보면 오히려 자연스런 방식이죠...

구보 2010-05-30 12:32   좋아요 0 | URL
출신대학을 밝히지 않은 명함을 받으면 '명문대가 아닌가보다'란 생각이 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반성합니다.
가라타니고진에 매혹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네요.
요즘 읽는 책에도 어김없이 인용되고 있는 걸 보면요.

로쟈 2010-05-30 20:08   좋아요 0 | URL
오늘 고진 번역자를 만났는데, 그래도 책은 생각만큼 안 나간다네요. 반가운 소식도 있는데, <트랜스크리틱>에 이은 고진의 또 다른 주저가 조만간 나온다고 합니다...

aleph 2010-05-30 14:01   좋아요 0 | URL
오오. 추첨이라.. 제가 가졌던 선거에대한 통념을 깨는군요.

로쟈 2010-05-30 20:07   좋아요 0 | URL
초등학생이 로테이션으로 반장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아이들은 모두 천재다"는 믿음이 민주주의(평등)에 대한 믿음이고요...

픽션들 2010-06-01 22:49   좋아요 0 | URL
'자유'는 커녕 '평등'이라는 말만 들어도 빨간 불이 깜박깜박하는 현재의 한국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오늘 전직 방송작가였다는 사람과 선거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겨우 58년 게띠인 사람이...sbs여서 그런가...저는 택시를 타면 기사분들과 정치 얘기를 (일부러)많이 하는 편인데 어떤 경우엔 콧김을 쑹쑹뿜는 기사분과 짧은 시간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윈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천안함 사건(천안함 게이트)을 빌미로 벌어지고 있는 남북 대치상황이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고통이 되는지 따져본 칼럼이다. 이명박과 김정일을 제외한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이 필자의 계산서다. '적대적 공범자'라는 게 따로 없다. 자신을 이명박, 김정일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왜 그리 많은 것인지.    

경향신문(10. 05. 27) 적대는 공짜가 아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봤을 때 천안함 사건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손해 볼 종목은 아니다. 마침 화폐 개혁실패로 박남기 당 재정부장을 숙청하고 총리가 인민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진 터라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배출하고 외부 위기를 이유로 내부 결속을 꾀할 필요가 절실했다. 그런 때에 딱 맞춰 남측이 동시 다발적 압박 공세를 하고 있으니 김정일로서는 만세 부를 일이다. 천안함 사건은 경제난이 장군님의 부덕의 소치가 아니라 외부의 제재 때문이라는 근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선군정치가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는 것인지를 입증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인민생활 개선을 포기하면서까지 핵·미사일 개발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 억지력을 확보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군사 보복을 당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 사태를 막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천안함 사건은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다. 이미 지방선거 쟁점을 흐리고 반MB 표심을 약화시키는 데 상당한 정도로 기여했다. 선거에서 져도 남북 대결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중도·실용때문에 진짜 보수 맞느냐는 의심을 받아야 했던 억울함도 보수세력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남북대결을 선물함으로써 풀 수 있다.

이명박·김정일 뺀 모두에 고통
남북관계를 복원하라는 ‘부당한’ 압력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다. 대북 강경책은 자기 정당화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묘한 동물이다. 대북 강경책은 북한의 대남 강경책을 초래하고 그 대남 강경책은 다시 대북 강경책을 정당화한다. 그 때문에 북한과 화해하다가 당하면 용서가 안되지만, 적대하다가 당한 것은 용서가 되는 것이다. 이명박이 안보·평화에 실패했으면 정치적 타격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인기가 더 오르는 것은 이런 대결의 특성 때문이다.

이렇게 직접 부딪치지만 않으면 어설픈 화해나 뜨뜻미지근한 관계보다 적대가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바로 그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화해하거나 국면을 바꾸기 위해 무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을 제외한,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사정은 다르다. 남북 교류·협력 전면 차단은 북쪽만 아니라 남쪽 사람들의 피해를 동반한다. 대북 지원을 끊으면 김정일이 굶는 게 아니라 힘없는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고 그 때문에 46명의 죽음이 그랬듯이 남쪽 사람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준다. 남측이 대북 압박을 해도 북한이 ‘전면 전쟁’이니 ‘남측과의 모든 관계 단절’이니 하는 역공세로 그 불안을 더 키워 환율 급상승과 같은 경제불안 현상이 나타날 때 떨며 가슴을 졸이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한·미 양국은 연합 군사훈련으로 북한의 비상동원 체제를 유도,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기름과 전력을 탕진하게 해서 경제난을 가중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보복과 중단, 제재로 북한의 목을 죌수록 우리의 목도 조여진다. 북한의 작은 손실조차 우리의 손실이며 북한이 잃는 것은 곧 우리가 잃는 것이다. 한반도 남쪽을 떼어내 태평양 한 가운데로 이사가지 않는 한 북한은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이런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다. 북한이 대화하기 좋은 상대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반대라서 더욱 그렇다. 대화는 이명박 처럼 할 말 없을 때, 대책이 없을 때 하는 빈 말도 아니며 기념사에 동원되는 췌사(贅辭)도 아니다. 대화란 정말 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대결은 잠자는 적의를 불러내는 주술 혹은 악령이다. 증오와 분노를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힘을 지닌 그런 악령이다. 이런 대결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전력 강화를 위해 엄청난 군비를 쓰고도 군사적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사는 것과 그 일부만을 북한에 지원하고도 남북이 화해와 안정 속에서 사는 것을 비교해 보라. 대결은 적절하게 써야 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그 결과, 더 많은 미래 비용을 발생시키는 행위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대결의 엄청난 비용 직시해야
이런 대결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아마도 다음 정부는 대결을 물려받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복원하려 할 것이고,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주지 않았던 식량을 주고, 경협을 재개하고 확대해야 할 것이다. 북한 사람을 굶기고 골탕먹이고 겁주고 북한 경제를 흔들었다고 좋아할 것 하나도 없다. 적대한 시간의 길이 만큼 청구서가 쌓일 것이다. 적대는 공짜가 아니다. 

10. 05. 27. 

P.S. '북풍몰이'로 선거국면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한나라당이 입단속에 나섰다. 유리해진 마당에 경제상황을 고려해 너무 무리하지 않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예견된 수순이긴 하나 이러한 술수에 넘어가는 수준의 '표심'으론 아직도 '머나먼 민주주의'다. '북풍 민주주의'란 결국 '막걸리 민주주의'나 '고무신 민주주의'에서 멀지 않다. 아니 더 나쁘다고 해야겠다. 그나마 막걸리와 고무신 대신에 공포와 겁박으로 표를 쓸어모으는 것이니 말이다... 

북풍에 따른 지지율 상승 효과 못지않게 국민들 사이에서 경제위기론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한나라당 정 대표도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는 경기 하남 지원유세 도중 “한나라당은 천안함과 관련해 야당을 공격하지 않겠으니 민주당도 천안함 문제를 국내 정치의 정쟁 소재로 끌어들이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앞서 당내 이한구 의원도 평화방송에 출연해 “비경제 쪽에서 사고를 너무 크게 안 쳤으면 좋겠다”고 신중한 대처를 요청했다.(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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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0-05-27 08:45   좋아요 0 | URL
요즘 이 시절에 <쇼크독트린>을 읽고 있습니다. 시집도 아니고 말랑한 사랑이야기도 아닌 책을 읽다가 소주 마시러 가기는 황석영의 <~너머 ~너머> 이후 처음이아닌가 합니다.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서 거의 40조 가까운 돈이 증시에서 사라져버렸는데 그 이면에는 풋옵션과 환치기로 대박 난 외국자본들이 있지요
단순히 지방선거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만큼 과하게 판을 키우고 있는 무리들...이 위기를 조장하고 확대시키는 무리 (수구세력-조중동연문)의 배후...
전후복구사업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시장인 시대에 산다는 것...참 우울합
니다. 일단 투표 !

로쟈 2010-05-28 10:29   좋아요 0 | URL
이젠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samahun 2010-05-27 10:06   좋아요 0 | URL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과연 내 삶에 무슨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로쟈님이나 파란여우님의 서재를 보면서 새삼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책읽는 행위의 가치를 느낌니다. 로쟈님의 인문학서재를 거의 무협지 읽는 기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묘한 초식과 내공가득한 검술과 호방한 무림의 세계에 빠진듯...^^ 항상 건필하세요..

로쟈 2010-05-28 10:30   좋아요 0 | URL
혼자 고수란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푸른바다 2010-05-27 17:16   좋아요 0 | URL
선거가 끝나면 곧 월드컵이지요. 붉은 악마의 환성 속에서 언제 전쟁분위기였냐는 듯한 상황으로 바뀌겠지요... 달력 대로 진행해 가는 모양새로 보아 이도 계산되어 있겠지요.

로쟈 2010-05-28 10:3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계산을 해두었겠지요. '어리석은 백성'들입니다...

비로그인 2010-05-27 20:0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부분을 꼭 강조하고 싶군요. "대화는 이런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다." 적어도 한쪽에는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요.

로쟈 2010-05-28 10:32   좋아요 0 | URL
치킨게임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익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겠다는 주의죠. 대화는 사치스러워 보입니다...

Sati 2010-05-28 07:40   좋아요 0 | URL
두 사진이 참 인상적이네요.

로쟈 2010-05-28 10:32   좋아요 0 | URL
인격은 가려지지 않는 듯해요...
 

일간지 칼럼을 써야 하는지라 이런저런 뉴스들을 검색해보는데, 역시나 압도적인 건 천안함 조사발표에 대한 것이다. 가장 공감한 건 구역질이 난다고 한 김용옥 선생의 강연 내용(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523144719&section=03). 그는 "국민 세금 몇 십조 원을 강바닥에 버리는 게 4대강 사업"이라며 "이런 짓을 하는 이들이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르겠다"는 일갈도 잊지 않았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으려다가 '구역질'이 나서 조금 '소프트'한 걸로 대체하기로 했다. 한나라당의 여성비하 선거홍보 동영상 파문에 관한 것이다. 이들이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한다면, 그들의 '선거전략'의 승리이기도 할 것이다. "여자는 아는 게 쥐뿔도 없다”는 전제하에 세운 전략이다(이런 것이 '제1당'의 비결일까?). 그런 게 여전히 먹히는지 두고볼 일이다.  

 

미디어오늘(10. 05. 19) '여성비하 동영상’, 조중동은 보도 안했다 

한나라당 여성비하 선거홍보 동영상을 둘러산 논란이 증폭되는 가운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나란히 관련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인기 케이블 TV프로그램인 ‘남녀탐구생활’을 패러디한 ‘선거탐구생활’ 선거홍보 동영상을 제작해 내보냈지만,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여성계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한나라당 동영상에는 "여자는 뉴스를 바퀴벌레 다음으로 싫어해요"라며 "여자는 아는 거 쥐뿔 없어요"라는 내용이 담겼다. 한나라당이 아는 거 쥐뿔도 없다고 소개한 그 여자는 동생으로부터 "이명박 정부가 원전수주를 계약한 나라는"이라는 질문을 받고 고민하다 'USA'라고 답변한다.

한나라당은 동영상에서 "드라마는 재방 삼방까지 보지만 뉴스는 절대 안보는 여자에게 이런 문제는 수능보다 어려워요"라고 설명이 뒤따른다. 한나라당은 동영상이 여성비하 논란을 일으키자 홈페이지에서 내렸지만, 여성계가 19일 기자회견을 열기로 하는 등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는 정당의 선거전략을 담긴 홍보 동영상의 내용이라는 점이다. 여성은 뉴스를 바퀴벌레 다음으로 싫어한다는 표현이나, 일반상식에 가까운 시사문제에 엉뚱한 대답을 한다는 내용이나 “난 왜 이렇게 무식할까”라고 자책하는 내용 모두 여성 일반에 대한 모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내용이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홍보 동영상은 사전에 기획안을 짜서 토의를 거쳐 내부 결재까지 받아 제작한다. 촬영하고 편집한 다음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시사회와 평가회도 한다. 선거의 성패를 좌우할 동영상은 더욱 꼼꼼하게 여러 단계를 거치며 수없이 고친다. 그렇게 토의하고 보완하고 수정해서 태어난 한나라당의 동영상이 고작 이거라니, 한나라당에는 정상적인 성인지 사고를 하는 당직자가 단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박선영 대변인은 “대한민국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을 이렇게 모욕해서는 안 된다. 이제 한나라당은 여성비하 동영상이 제작되고 공개된 전모를 밝혀야 한다. 동시에 어머니고 아내이며, 딸이고 누이동생인 이 땅의 여성들에게 석고대죄 하라. 아니면 차라리 당명을 ‘여성비하당’으로 개명하고, 선거를 막장개그로 치르든지”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의 선거 악재가 될 수도 있는 이번 사건은 19일자 주요 아침신문에도 보도됐다. 경향신문은 19일자 4면에 <“여자는 아는 게 쥐뿔도 없어” 한나라 또 ‘여성 비하’ 논란>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한겨레는 5면에 <한나라 선거 동영상 여성비하>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국민일보와 한국일보도 각각 <한나라 홍보동영상 여성 비하 논란>, <"아는 것 쥐뿔도…" 여 6.2선거 홍보동영상 여성폄하 논란>이라는 기사를 19일자 지면에 내보냈다. 그러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여성비하 동영상과 관련한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동영상’ 키워드를 담은 기사를 내보내기는 했다. 2면에 <전교조 집회서 조전혁 의원에 폭언 쏟아내>라는 내용이다.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을 둘러싼 논란의 동영상은 보도했던 동아일보는 한나라당 선거홍보동영상에 담긴 “여자는 아는 게 쥐뿔 없었요” “여자는 뉴스를 바퀴벌레 다음으로 싫어해요” 등 여성을 비하하는 내용에는 침묵한 셈이다.(류정민기자) 

10.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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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23 18: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23 1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ephistopheles 2010-05-23 22:35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지지율이 여전히 높게 나오는 걸 보면...대한민국 국민들은 아는게 쥐뿔도 없어요 란 말이 그냥 흘러나오기까지 합니다.

로쟈 2010-05-23 22:39   좋아요 0 | URL
10% 정도의 지지야 이해할 수 있지요. 이해관계가 맞으니까. 나머지는 쥐에 쏠리면서도 좋다고 당하는 경우죠...

자꾸때리다 2010-05-24 11:16   좋아요 0 | URL
서울시장 선거
오세훈은 에러인 것 같은데
한명숙도 별로 맘에는 안 들고 (하는 걸로 봐서는 당선도 힘들 것 같고)
에혀 노회찬이나 찍어야...

2010-05-24 1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지 2010-05-24 19:06   좋아요 0 | URL
지난주 토요일 한겨레의 장정일 독서에세이를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지배자들은 너무 악랄하고 피지배자들은 너무 착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는 거죠. 여성에 대한 이런 태도나 강바닥 뒤집어대고 돈없는 국민 목숨 우습게 여기는 걸 보면, 우연한 사고도 공격당한 것도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확신에 가까워집니다... 저들이 떠드는 대로 북한에게 공격당한 거라면, 국방체제 관리 제대로 못한 책임으로 대통령과 국방부 관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겠죠

로쟈 2010-05-24 22:33   좋아요 0 | URL
여론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게 그들의 계산이겠죠. 국민들은 쥐뿔도 모른다고 보니까...

mediocris 2010-05-29 19:20   좋아요 0 | URL
쓰레기 뒤지는 시궁쥐들이 구덩이 파는 들쥐 나무라고 있으니 없는 쥐뿔이라도 만들어 줘야 하나?

로쟈 2010-05-29 19:32   좋아요 0 | URL
쓰레기라는 덴 동의하시나 보군요.

mediocris 2010-05-30 09:59   좋아요 0 | URL
진정 쓰레기가 뭔지 몰라서 그러시나요? 왜 이러세요? 아마츄어 같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작성해볼 필요가 있는 '차가 현상서'(<민주주의는 죽었는가?>(난장, 2010)를 보니 '집을 임대해 들어가고 나올 때 집의 상태를 점검하는 보고서'를 뜻한다고 한다)에 또 하나 기입되어야 할 항목은 '부동산'이다. 문제의 윤곽을 그려주고 있는 칼럼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실상은 '손낙구의 세상공부'(http://blog.ohmynews.com/balbadak/)도 참고할 수 있다...  

경향신문(10. 04. 29) 부동산 정치와 자산 계급사회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또 ‘집’이 세간의 화제다. 집 문제는 정치적으로 복잡하다. 집값이 오르길 바라는 계층, 내리길 바라는 계층이 있기 때문이다. 현 정권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은 모양이다. 집값을 떨어뜨리지 않고 무주택자의 환심을 사는 것 말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보금자리주택으로 수도권의 무주택 중산층을 현혹하고, 다른 한편으론 다양한 거래활성화 정책을 내놓고 있다. 이 정책들엔 공통분모가 있다.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정치적으로 동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정치’다. 대략 2006년부터 부동산 정치는 수도권 중산층, 나아가 한국정치 전반을 보수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람들의 삶 좌우하는 ‘집’의 힘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주거, 자산, 자본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다. 그런데 한국에선 사적 자산과 자본의 성격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집’은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왜 한국에선 부동산 불평등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총체적인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걸까? 룩셈부르크 부(富) 연구 그룹(LWS)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계자산 중 실물자산 비중은 이탈리아(85%), 핀란드(84%) 등이 한국(80% 내외)보다 높고 캐나다(78%)나 스웨덴(72%)도 꽤 높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금융자산 비중이 40%나 되는 나라의 사례를 일반화할 수 없다. 나아가 많은 선진국에서도 자산 불평등도는 1980년대 이래 상승 추세라서 한국보다 불평등도가 높거나 비슷한 수준의 나라도 많다. 그런데도 이 나라 사람들은 ‘집’에 웃고 울지 않는다. 왜일까? 그것은 임금소득과 사회보장, 각종 공적 인프라에 의해 인간다운 삶의 ‘기본’이 충족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유럽 사회는 한국보다 소득분배가 훨씬 더 평등하다. 또한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 사회보장 지출의 비중을 보면, 한국은 5% 수준인데 유럽연합(EU) 회원국 평균은 24%에 이른다. 네덜란드, 영국, 스웨덴 등 많은 나라에서 전체 주택 중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20~40%나 된다. 한국은 겨우 5% 수준이라서 사회적 낙인효과까지 있다.

고용과 소득, 사회보장이 삶의 기본을 충족시켜주는 곳에선 누가 궁전에 살든 일반인들이 마음 쓸 바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선 사정이 다르다. 일자리는 불안하다. 임금 격차도 벌어진다. 퇴직연령은 당겨진다. 자영업은 망하기 일쑤다. 교육비는 감당이 안 된다. 자식의 경제적 독립도 늦어진다. 고령화로 살기는 오래 산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공적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디선가 ‘돈’이 나와야 한다. 어디서 나올 것인가? 자산이다. 



유럽 공공임대주택 비중 20~40%
그래서 중산층은 온 힘을 다해 집을 사고 주식·펀드로 돈을 불리려 하지만, 부채나 금융시장 리스크를 떠안고 산다. 불안이다. 자산 하위계층은 여유자금이 없고, 부채비율도 높은 데다, 공금융기관에 접근할 수도 없어 인생이 제자리걸음이다. 절망이다. 하지만 상위계층은 자본과 정보가 풍부하며, 위기를 견디고 이용할 재력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집과 돈’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이런 자산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 의미는 커지고 있다. 실로 ‘자산 계급사회’라고 부를 만하다. 자산 계급사회는 부동산 불평등, 투기적 금융시장, 고용불안과 소득격차, 열악한 사회보장, 투기적 산업구조의 문제가 얽혀 생겨난다.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을 도구화하는 부동산 정치가 아니라, 총체적 시스템을 개혁할 비전과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거기에 실패한다면, 부동산투기가 금융투기로 전이될지언정 자산에 따라 삶의 질과 노후, 자식의 계급까지 결정되는 잔혹한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다. 한국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신진욱 | 중앙대 교수·사회학

10. 04. 29. 

P.S. "대략 2006년부터 부동산 정치는 수도권 중산층, 나아가 한국정치 전반을 보수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진단과 "사람들의 불안과 욕망을 도구화하는 부동산 정치가 아니라, 총체적 시스템을 개혁할 비전과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처방에 모두 공감한다. "거기에 실패한다면, 부동산투기가 금융투기로 전이될지언정 자산에 따라 삶의 질과 노후, 자식의 계급까지 결정되는 잔혹한 현실은 개선되지 않는다"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선거 이후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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