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세상을 떠난 여파도 있고 해서 보드리야르의 책들을 좀 뒤적거렸다. 그가 쓴 푸코론의 제목을 비틀어서 '보드리야르 잊어버리기'란 제목의 페이퍼도 써볼까 하면서. 한데 뒤적거리다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잊을 만큼 남아있는 게 없었던 것이다. 알라딘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은 <시뮬라시옹>이고 <소비의 사회>가 그 뒤를 잇는다. 내가 조금 훑어본 책들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건축과 철학>과 <암호>이고 아침엔 <시뮬라시옹>의 몇 페이지를 읽어봤다. 재작년 국내에서 개최된 보드리야르의 사진전 제목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였는데, 과연 보드리야르는 우리 곁에 '존재했던'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그간에 우리가 보고 읽었던 건 '보드리야르'라는 가상, 시뮬라크르가 아니었던 것인지. 관련기사들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해본다. 기사는 재작년 전시회와 최근의 부음에 관한 것이다.  

한겨레(05. 06. 30) 프랑스 철학자 보드리야르 사진전

사진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디지털 기법의 보급으로 현대 사진은 찍는 각도는 물론 콘텐츠까지 조작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사진이 매체에 나오면 그 이미지를 진짜로 지레 단정해 버리기 일쑤다. 복제된 현실이 일상을 지배한다는 시물라크르 이론으로 세계적 철학자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의 장 보드리야르가 20여년간 사진을 찍은 건 이런 역설적 현실을 비틀려는 의지 때문이었다. 그는 “사진은 왜곡을 밥 먹듯 하는 매체다, 따라서 사진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보드리야르 사진전은 가상현실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온 이 철학자와 관객이 사진을 두고 벌이는 지적 게임장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컴퓨터 디지털 프린팅으로 인화한 사진들은 지나치는 주변의 일상 풍경을 슬쩍 찍은 것들인데, 통상적인 사진찍기의 어법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순수한 이미지 채집가를 자처하며 찍은 이들 사진은 미국, 유럽, 남미 등 대도시의 폐허같은 뒷골목, 삭아가는 건물, 구조물의 단면을 찍은 것들이 상당수다. 뉴욕 뒷골목 붉은 빛 벽돌건물의 격자 구조, 포르투갈 바닷가 포구의 바닥돌, 바닷물에 잠기는 방파제의 일부분, 물잔에 거꾸로 투사되어 한 풍경으로 담긴 파리 바스티유 광장 등의 작품들은 노출시점, 촬영각도에 구애받지 않고 찍은 것들이다. 상파울로에서는 합성수지 차단벽의 울퉁불퉁한 곡면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컴컴한 뒷골목을 찍었고, 성당 의자바닥에 은은하게 비치는 황금빛 햇살을 잡아내기도 한다. 어떤 의미도 두지 않고 자신을 유혹하는 순수한 이미지 자체를 찍은 것들이라고 미술관쪽은 설명한다.

하지만 익숙한 듯 낯선 사진들이 작가의 희망처럼 단순히 보고 즐기는 차원으로 끝나지는 않는다는 것이 전시의 묘미다.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흔히 보는 시선과 다른 독특한 지점에서 스냅사진 찍듯 대상물을 찍는다. 물속에 가라앉은 차에서 수면 위로 삐죽 튀어나온 차 문틀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은 불가사의한 일상의 한순간을 보여준다.

그의 이미지 장난은 3층 들머리에 있는 ‘조각 같은 사람’이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진흙을 온통 덮어쓰고 몸에 청색 진액을 칠한 알몸 여자의 모습은 연출사진 같지만 알고 보면 길거리를 가다 개그맨의 퍼포먼스를 그냥 찍은 데 불과하다. 그는 사진의 고정관념 즉 정확한 기록 재현이라는 의미를 의식하는 관객들의 뒤통수를 치는 작업들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앵글을 보는 그의 시선 속에 끼여든 욕망은 과연 실체가 없는 것일까. 전시장 해설사들은 생각 없이 보라고 강변하지만 전시장 벽에 붙은, 이미지의 순수성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선문답같은 어록을 보면서 관객은 더욱 의미를 따지게 된다.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니 아무 생각 없이 보라는 작가와 그의 철학적 행보 때문에 더욱 의미에 고심하는 관객들 사이의 미묘한 긴장과 간극이야말로 이 전시의 고갱이라고 할 수 있다.(노형석 기자) 

'공석중인' 보드리야르의 사진을 몇 작품 감상했다면(보다 자세한 소개는 오마이뉴스의 기사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58556를 참조) 이제 얼마간은 좀 본격적으로 그에 관한 수다를 늘어놓아야겠다. 일단 내가 참조한 건 프레시안의 최연구 기획위원이 쓴 기사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이다(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70308092524&s_menu=문화). 두 문단을 건너뛰고 읽어본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현대 프랑스 철학을 풍미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지난 3월 6일 향년 77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자크 라캉(81년 사망), 질 들뢰즈(95년 사망), 자크 데리다(2004년 사망)에 이어 현대 프랑스 철학의 또 하나의 큰 별이 진 것이다. 프랑스 최고권위의 일간지 르 몽드와 지식인들이 즐겨보는 리베라시옹은 3월 7일자 1면 톱기사로 보드리야르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보드리야르의 비중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섹스, 언어, 기호, 상품, 전쟁 등 그 어떤 것도 이 사회학자의 역설적인 분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장 보드리야르는 호기심 그 자체였다." 리베라시옹은 보드리야르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학문적 업적을 기렸다.

1929년 7월 20일 랭스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독일어를 공부했고 브레히트나 맑스의 번역자이기도 했던 보드리야르는 1966년 파리 10대학 낭테르의 강단에 서면서 사회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여러 학위들을 고려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1965년 사회학만이 유일하게 개방적인 학문이었다."사회학을 선택했던 이유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그의 박사논문이자 첫 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1968)>와 1970년에 출간한 <소비의 사회>는 그를 일약 대철학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현대인의 일상을 소비라는 측면에서 해부한 보드리야르는 현대인들이 물건의 본연의 기능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위세와 권위, 즉 기호를 소비한다고 주장해 큰 반향을 얻었다.

 

 

 

 

기억에 국내에 제일 처음 소개된 보드리야르의 책이 <소비의 사회>(문예출판사, 1992)이다. <사물의 체계>(백의, 1999)는 그보다 좀 나중에 소개됐는데, 이 두 권의 초기저작이 '사회학자'로서 보드리야르의 기여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자신의 저작들에 입문하기 위한 '키워드'로서의 암호들을 제시해주고 있는 근작 <암호>(동문선, 2006)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암호'(패스워드)는 바로 '사물(The Object)'이다.

유감스럽게도 "보드리야르에 관한 책 10여 권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는 보드리야르 연구가"는 '대상'이라고 옮겼지만(그렇게 옮기려고 했다면 보드리야르의 데뷔작도 역자는 <사물의 체계>가 아닌 <대상의 체계>라고 옮겼어야 했다). 이미지는 <사물의 체계> 영역본의 표지(내가 갖고 있는 영역본이기도 한데, 최근엔 Verso에서 다른 표지로 재출간됐다). 그리고 옆은 <암호>의 영역본.

가령, 국역본 <암호>에서 '대상'이란 항목은 이렇게 기술된다: "나의 관점에서 대상은 전형적인 '암호'였을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나는 이러한 관점을 택했다. 왜냐하면 나는 주체의 문제와 결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상의 문제는 대상의 해결책을 의미했는데, 그것은 나의 사고방식으로 남아 있다."(13쪽)

'사물'을 '대상'으로 옮긴 것도 불만스럽지만(물론 'object'는 그렇게 옮겨질 수도 있다. 다만 문맥상 '사물'이 보다 적합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대상의 문제는 대상의 해결책을 의미'한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역시나 보드리야르식의 난해한 문장일까? 영역본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이 영역본은 국역본이 나왔을 때 도서관에 구입신청을 했던 것이다). "For me, object will have been the 'password' par excellence. I chose that angle from the beginning, because I wanted to break with the problematic of the subject. The question of the  object represented the alternative to that problematic, and it has remained the horizon of my thinking."

보드리야르를 이해하는 '첩경'과도 같은 대목인데, 다시 옮기면 "나에게 사물은 암호 중의 암호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처음부터 그러한 관점을 취했는데, 왜냐하면 주체라는 문제틀과 단절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물의 문제는 그 문제틀에 대한 대안적 관점을 대표했으며, 지금까지도 나의 사유의 지평으로 남아있다." 물론 여기서 '그 문제틀'이란 '주체라는 문제틀'을 가리키며, '주체'로부터의 탈피를 기획했던 보드리야르에게 '사물들'의 세계와 그 체계는 처음부터 핵심적인 관심사였다는 것.

보드리야르가 이어서 말하는 것은 자신의 그러한 관심/선택을 낳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다. "말하자면 1960년대에 생산의 우위에서 소비의 우위로의 이행은 대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자체 속에서 만들어진 대상들이 아니라 대상들이 서로에게 말했던 것, 즉 대상들이 만들어냈던 기호체계와 통사론이다. 그리고 특히 대상들이 현실세계를 참조하게 했다는 사실보다는 소비와 이익의 명백한 힘이 현실 세계를 믿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13-4쪽)

말하자면 1960년대를 기점으로 생산 패러다임에서 소비 패러다임으로 이행해가면서 '사물'이 전면에 부각되기 시작했다는 것. 더불어 보드리야르에 따르면 '자본의 정치경제학' 대신에 '기호의 정치경제학'이 문제되기 시작한다. 영역본에 근거해서 다시 옮기면: "1960년대, 생산 우위로부터 소비 우위로의 이행은 사물들을 전면에 부각시켰다. 하지만 정말로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공장제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물들이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방식, 즉 기호들의 체계와 그것들이 발전시킨 통사론이었다. 특히나 사물들이 실제의 현실을 지시하는 것보다 확연한 것이 소비의 전능성과 우리를 현혹시키는 이익이라는 사실에 끌렸다." 이제 이 '사물들'은 사용가치의 세계에서 기호적 가치의 세계로 넘어갈 것이었다.   

 

 

 

 

"이 기호학적 형식화의 이면에는 확실히 사르트르의 <구토>와 강박관념의 대상, 즉 해로운 실체인 많이 언급된 근원에 대한 무의지적 기억이 존재했다..."고 보드리야르는 고백하는데, 번역문은 아주 실망스럽다. 영역문 "Behind this semiological formalism there was no doubt a memory of Sartre's Nausea and that famous root which is an obsessive object, a poisonous substance..."으로 보아 '많이 언급된 근원'이라고 옮겨진 'that famous root'는 '그 유명한 마로니에나무 뿌리'이기 때문이다. "실존적 회의에 빠져 절망하던 어느 날 저녁, 로캉캥은 심한 구토감을 느끼고 공원으로 달려가 벤치에 앉는다. 벤치 옆에 서 있는 마로니에 뿌리를 보며 사색에 잠기고 마침내 구토의 정체를 알게 된다."라고 할 때의 그 뿌리(보드리야르식 허무주의의 기원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불문학 전공자인 역자는 과연 <구토>를 읽어본 것일까?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이 얇은 책을 한 달간 읽게 된다. 한 대목만 더 인용한다.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대상들로 구성된 이 동물상과 식물상의 탐구이다. 이러한 탐구를 위하여나는 널리 퍼져 있었던 모든 학문들, 즉 바르트의 예를 따라 정신분석, 생산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특히 언어학적 분석을 이용했다."(15쪽)

보드리야르를 따라 읽기 위해서는 '당대의 모든 학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암시해주는 대목인데, 나는 번역문을 읽다가 구역질이 날 뻔했다. '대상들로 구성된 이 동물상과 식물상의 탐구'가 '사물들의 동물상과 식물상에 대한 탐구'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건 차치하고, '바르트의 예를 따라 정신분석'이란 건 대체 무엇인지? 영역은 이렇다: "I used all the disciplines current at the time: psychoanalysis, the Marxist analysis of production and, especially, following the example of Barthes, linguistic analysis."

 

 

 

 

보드리야르가 당시에 유행하던 학문으로 거명하고 있는 건 정신분석, 정치경제학적 분석(생산의 분석), 그리고 언어학적 분석이다. 물론 기호학자이자 문학이론가인 롤랑 바르트와 관계된 것은 정신분석이 아니라 언어학적/기호학적 분석이다. 가령, 바르트의 입문서 <기호학 요강>이나 학위논문인 <모드의 체계>, 혹은 문화현상에 대한 실제적인 분석인 <현대의 신화> 등이 보드리야르에게 영향을 주었다. 어찌하여 '바르트의 예를 따라' 애매한 독자들까지 삼천포로 빠져야 하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고작 해야 번역본의 세 페이지(영역본의 두 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역자가 보드리야르의 '암호들'을 우리에게 제대로 일러주고 있는 것인지 심히 의심스럽다. 우리에게 주어진 건 보드리야르식 시뮬라시옹의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보드리야르'가 아닌 것인지... 다시 프레시안의 기사로 돌아간다.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에서는 독창적인 분석을 통해 포스트모던 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실재가 아닌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뮐라시옹(Simulation)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 대체물이 '시뮐라크르(Simulacre)'인데, 그에 의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모사와 복제에 의한 가상실재, 즉 시뮐라크르의 미혹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는 복제의 시대라는 그의 독특한 분석과 이론은 현실과 가상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흐름을 이끌었고 미디어와 예술분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 1901-1981)의 제자로 초기에는 맑시즘을 신봉했으나 1973년 <생산의 거울>이라는 책을 통해 맑시즘과 결별하고 구조주의와 기호학에 관심을 쏟았으며 그 뒤 줄곧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사회이론을 전개해 왔다. <상징적 교환과 죽음>(1976), <푸코 잊기>(1977),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 아래서>(1978), <유혹에 대하여>(1979),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1981), <차가운 기억들 1,2,3>(1987~95), <아메리카>(1986), <악의 투명성>(1990), <완전범죄>(1994), <이타성의 형태들>(1994) 등 50편에 이르는 저작을 남겼고 그의 책의 한국에서도 20여 권이 번역되었다.

 

 

 

 

소위 주저라고 할 만한 보드리야르의 저작 중에서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은 가장 중요한 책은 <상징적 교환과 죽음>으로 보인다. (푸코의 생전에 나왔지만 푸코로부터 아무런 반응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푸코 잊기>는 <푸코를 잊어버리기>(<세계의문학>, 1989년 가을호)로 번역/소개된 바 있고, <유혹에 대하여>, <아메리카> 등은 번역돼 있다(하지만 읽는 건 별개의 문제이다). 보드리야르는 러시아어로도 여러 권이 번역돼 있는데, <푸코 잊기>, <사물의 체계>,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 <상징적 교환과 죽음>, <악의 투명성>, <아메리카> 등을 나는 갖고 있다(인터넷에 온라인으로도 떠 있다). 아래는 작년에 출간된 러시아어판 <암호>(2006). 

Пароли. От фрагмента к фрагменту
  
그의 포스트모니즘은 1991년 걸프전 당시에도 지성계를 뒤흔들어놓았다. 걸프전이 한창일 때 그는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사일이 정확히 투하돼 목표물이 파괴되는 장면은 실제 아주 무섭고 비참한 것이지만 안방에서 TV를 보는 사람들은 컴퓨터 게임 속 가상현실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토모던 현실 속에서는 일상과 가상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모사된 이미지가 실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같은 구호는 보드리야르의 트레이드마크이다. 그는 똑같은 논리에서 "9.11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이미 <시뮬라시옹>에서는 "베트남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그런 진단을 가능하게 해준 것은 CNN이 아니라 코폴라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이다. 내가 갖고 있는 국역본 초판에서 이 영화를 다룬 글(영역으로는 두 쪽짜리의 짧은 글이다)은 어찌된 일인지 'Apocalypse now(세계의 종말 지금)'이란 표제를 갖고 있고 본문에서는 <아포칼립스 나우>라고 옮겨졌다.

아무래도 역자가 <지옥의 묵시록>은 본 적이 없을 뿐더러 국내에 개봉되었다는 사실도 모르는 듯하다(개정판에서는 번역이 수정됐는지 모르겠다). 그런 심증은 영화에서의 '특수효과(special effects)'를 내내 '특이효과'라고 옮기는 데에서 더 굳어진다. 게다가 "코폴라는 헬리콥터 조종사들에게 경기병대의 모자를 씌워, 바그너의 힘찬 음악에 맞춰 베트남 촌을 뭉개버리도록 할 수 있다."(초판 114쪽)는 문장은 상식 이하이다.

불어본이라고 해서 단수를 복수('조종사들')로 적어놓았을 리는 없는데, 영역본을 옮기자면 "Coppola can certainly deck out his helicopter captain in a ridiculous hat of the light cavalry, and make him crush the Vietnam village to the sound of Wagner's music."(60쪽)이고, 작전중 철모 대신에 경기병 모자를 고집하는 이는 '조종사들'이 아니라 헬기 부대장인 로버트 듀발이다(그는 아침에 맡는 네이팜탄의 향기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지옥의 묵시록>의 초반부를 압도하는 이 헬기 폭격 장면을 이 글을 번역하면서 역자가 참조하지 않은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strafing Charlie's Point

보드리야르가 <지옥의 묵시록>론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이 영화 자체가 전쟁의 완성이고 종결이어서 전쟁이 곧 영화이고 영화가 곧 전쟁이 되었다는 것. 이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아포칼립스 나우>는 전세계적 승리이다. 산업적, 군사적 기계들의 힘과 동등하고 우월한, 펜타곤과 정부들의 힘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힘 때문에."(115쪽)

여기서 '산업적, 군사적 기계들'이 'industrial and military complexes', 곧 '군산복합체'를 가리킨다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문제인 것은 'cinematographic power'란 주어가 생략된 것. 실제 불어본이 그러한지 모르겠으나 영역본에 따르면 이 문장은 이렇게 다시 번역될 수 있다: "<지옥의 묵시록>은 전세계적 승리다. 영화의 힘은 군산복합체의 힘과 대등하거나 그보다 우월하며, 또 펜타곤과 정부의 힘에 맞먹거나 그보다 우월하다."

다시 프레시안의 기사: 2005년 한국을 방한했던 보드리야르는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복제실험은 자연현실의 부정이라는 점에서 시뮐라시옹의 극단적 사례"라고 주장했고, "문화와 예술, 행동양식에서 기호를 통한 현실의 재현을 가리켰던 근대의 시뮐라시옹과 달리 현대의 시뮐라시옹은 급격한 변화와 전이, 도약을 통해 더 이상 재현이 아니라 가상현실로 넘어간다"고 설명하며 '극단적 현실 청산에 대한 두려운 전망'을 언급한 바 있다.

그의 자취는 현대사회학과 철학에 큰 족적이 아닐 수 없다. "소비는 일종의 신화이자 현대사회 스스로에 대한 표현이며 (…) 충만한 자기예언적인 담론이고 (…) 총체적인 해석체계이자 사회가 스스로를 극도로 향유하는 거울이며, 예견을 통해서 사회가 스스로 성찰하는 유토피아이다."

소비에 대한 탁월한 분석과 통찰력을 담은 <소비의 사회>는 그의 학문적 입지를 단숨에 다져놓았다. 이 책의 서문에서 리딩대학교 토크빌연구소 메이어 교수는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는 뒤르카임(*뒤르켐)의 <사회분업론>, 베블렌의 <유한계급론>,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과 같은 책의 대열에 자리 잡고 있다"고 격찬했다. 모더니티에 대한 분석, 현대사회의 작동기제와 이면에 대한 독특한 해석은 우리시대 지성의 폭을 크게 넓혀놓았고, 무한한 통찰력의 새 지평을 열었다.
  
'참여하지 않는 지식인', '유토피아적 망상가'라는 그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장 보드리야르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유로운 통찰력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류의 지적 자산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한때 시대를 풍미했던 프랑스 현대철학자들이 하나둘씩 떠나간 빈 공간에 그가 우려한 바와 같이 지식인의 무기력과 나태함이 자리잡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이 때문에 그가 떠난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러니 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만 마음놓고 읽을 만한 책이 없는 게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07. 03. 10.

 

 

 

 

 

 

 

 

 

 

 

P.S. '사진작가'이기도 한 보드리야르의 사진론을 옮겨놓는다. <불가능한 교환>에 포함돼 있는 것인데, 나는 이 책의 영역본을 따로 갖고 있지 않다. 국역본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아서 일단은 '배치'만 해놓는다.  

Photography, Or The Writing Of Light

Jean Baudrillard
Translated by Francois Debrix

The miracle of photography, of its so-called objective image, is that it reveals a radically non-objective world. It is a paradox that the lack of objectivity of the world is disclosed by the photographic lens (objectif).2 Analysis and reproduction (ressemblance) are of no help in solving this problem. The technique of photography takes us beyond the replica into the domain of the trompe l’oeil. Through its unrealistic play of visual techniques, its slicing of reality, its immobility, its silence, and its phenomenological reduction of movements, photography affirms itself as both the purest and the most artificial exposition of the image.

At the same time, photography transforms the very notion of technique. Technique becomes an opportunity for a double play: it amplifies the concept of illusion and the visual forms. A complicity between the technical device and the world is established. The power of objects and of “objective” techniques converge. The photographic act consists of entering this space of intimate complicity, not to master it, but to play along with it and to demonstrate that nothing has been decided yet (rendre evidente l’idee que les jeux ne sont pas faits). “What cannot be said must be kept silent.” But what cannot be said can also be kept silent through a display of images.

The idea is to resist noise, speech, rumors by mobilizing photography’s silence; to resist movements, flows, and speed by using its immobility; to resist the explosion of communication and information by brandishing its secrecy; and to resist the moral imperative of meaning by deploying its absence of signification. What above all must be challenged is the automatic overflow of images, their endless succession, which obliterates not only the mark of photography (le trait), the poignant detail of the object (its punctum), but also the very moment of the photo, immediately passed, irreversible, hence always nostalgic. The instantaneity of photography is not to be confused with the simultaneity of real time. The flow of pictures produced and erased in real time is indifferent to the third dimension of the photographic moment. Visual flows only know change. The image is no longer given the time to become an image. To be an image, there has to be a moment of becoming which can only happen when the rowdy proceedings of the world are suspended and dismissed for good. The idea, then, is to replace the triumphant epiphany of meaning with a silent apophany of objects and their appearances.

Against meaning and its aesthetic, the subversive function of the image is to discover literality in the object (the photographic image, itself an expression of literality, becomes the magical operator of reality’s disappearance). In a sense, the photographic image materially translates the absence of reality which “is so obvious and so easily accepted because we already have the feeling that nothing is real” (Borges). Such a phenomenology of reality’s absence is usually impossible to achieve. Classically, the subject outshines the object. The subject is an excessively blinding source of light. Thus, the literal function of the image has to be ignored to the benefit of ideology, aesthetics, politics, and of the need to make connections with other images. Most images speak, tell stories; their noise cannot be turned down. They obliterate the silent signification of their objects. We must get rid of everything that interferes with and covers up the manifestation of silent evidence. Photography helps us filter the impact of the subject. It facilitates the deployment of the objects’s own magic (black or otherwise).

Photography also enables a technical perfection of the gaze (through the lens) which can protect the object from aesthetic transfiguration. The photographic gaze has a sort of nonchalance which nonintrusively captures the apparition of objects. It does not seek to probe or analyze reality. Instead, the photographic gaze is “literally” applied on the surface of things to illustrate their apparition as fragments. It is a very brief revelation, immediately followed by the disappearance of the objects.

But no matter which photographic technique is used, there is always one thing, and one thing only, that remains: the light. Photo-graphy: The writing of light. The light of photography remains proper to the image. Photographic light is not “realistic” or “natural.” It is not artificial either. Rather, this light is the very imagination of the image, its own thought. It does not emanate from one single source, but from two different, dual ones: the object and the gaze. “The image stands at the junction of a light which comes from the object and another which comes from the gaze” (Plato).

This is exactly the kind of light we find in Edward Hopper’s work. His light is raw, white, ocean-like, reminiscent of sea shores. Yet, at the same time, it is unreal, emptied out, without atmosphere, as if it came from another shore (venue d’un autre littoral). It is an irradiating light which preserves the power of black and white contrasts, even when colors are used. The characters, their faces, the landscapes are projected into a light that is not theirs. They are violently illuminated from outside, like strange objects, and by a light which announces the imminence of an unexpected event. They are isolated in an aura which is both extremely fluid and distinctly cruel. It is an absolute light, literally photographic, which demands that one does not look at it but, instead, that one closes one’s eyes on the internal night it contains. There is in Hopper’s work a luminous intuition similar to that found in Vermeer’s painting. But the secret of Vermeer’s light is its intimacy whereas, in Hopper, the light reveals a ruthless exteriority, a brilliant materiality of objects and of their immediate fulfillment, a revelation through emptiness.

This raw phenomenology of the photographic image is a bit like negative theology. It is “apophatic,” as we used to call the practice of proving God’s existence by focusing on what he wasn’t rather than on what he was. The same thing happens with our knowledge of the world and its objects. The idea is to reveal such a knowledge in its emptiness, by default (en creux) rather than in an open confrontation (in any case impossible). In photography, it is the writing of light which serves as the medium for this elision of meaning and this quasi-experimental revelation (in theoretical works, it is language which functions as the thought’s symbolic filter).

In addition to such an apophatic approach to things (through their emptiness), photography is also a drama, a dramatic move to action (passage a l’acte), which is a way of seizing the world by “acting it out.”3 Photography exorcizes the world through the instantaneous fiction of its representation (not by its representation directly; representation is always a play with reality). The photographic image is not a representation; it is a fiction. Through photography, it is perhaps the world itself that starts to act (qui passe a l’acte) and imposes its fiction. Photography brings the world into action (acts out the world, is the world’s act) and the world steps into the photographic act (acts out photography, is photography’s act).4 This creates a material complicity between us and the world since the world is never anything more than a continuous move to action (a continuous acting out).

In photography, we see nothing. Only the lens “sees” things. But the lens is hidden. It is not the Other 5 which catches the photographer’s eye, but rather what’s left of the Other when the photographer is absent (quand lui n’est pas la). We are never in the real presence of the object. Between reality and its image, there is an impossible exchange. At best, one finds a figurative correlation between reality and the image. “Pure” reality — if there can be such a thing — is a question without an answer. Photography also questions “pure reality.” It asks questions to the Other. But it does not expect an answer. Thus, in his short-story “The Adventure of a Photographer,”6 Italo Calvino writes: “To catch Bice in the street when she didn’t not know he was watching her, to keep her in the range of hidden lenses, to photograph her not only without letting himself be seen but without seeing her, to surprise her as if she was in the absence of his gaze, of any gaze…It was an invisible Bice that he wanted to possess, a Bice absolutely alone, a Bice whose presence presupposed the absence of him and everyone else.”7

Later, Calvino’s photographer only takes pictures of the studio walls by which she once stood. But Bice has completely disappeared. And the photographer too has disappeared. We always speak in terms of the disappearance of the object in photography. It once was; it no longer is. There is indeed a symbolic murder that is part of the photographic act. But it is not simply the murder of the object. On the other side of the lens, the subject too is made to disappear. Each snapshot simultaneously ends the real presence of the object and the presence of the subject. In this act of reciprocal disappearance, we also find a transfusion between object and subject. It is not always a successful transfusion. To succeed, one condition must be met. The Other — the object — must survive this disappearance to create a “poetic situation of transfer” or a “transfer of poetic situation.” In such a fatal reciprocity, one perhaps finds the beginning of a solution to the problem of society’s so-called “lack of communicability.” We may find an answer to the fact that people and things tend to no longer mean anything to each other. This is an anxious situation that we generally try to conjure away by forcing more signification.

But there are only a few images that can escape this desire of forced signification. There are only a few images that are not forced to provide meaning, or have to go through the filter of a specific idea, whatever that idea might be (but, in particular, the ideas of information and testimony are salient). A moral anthropology has already intervened. The idea of man has already interfered. This is why contemporary photography (and not only photo-journalism) is used to take pictures of “real victims,” “real dead people,” and “real destitutes” who are thus abandoned to documentary evidence and imaginary compassion.8 Most contemporary photos only reflect the “objective” misery of the human condition. One can no longer find a primitive tribe without the necessary presence of some anthropologist. Similarly, one can no longer find a homeless individual surrounded by garbage without the necessary presence of some photographer who will have to “immortalize” this scene on film. In fact, misery and violence affect us far less when they are readily signified and openly made visible. This is the principle of imaginary experience (la loi de l’imaginaire). The image must touch us directly, impose on us its peculiar illusion, speak to us with its original language in order for us to be affected by its content. To operate a transfer of affect into reality, there has to be a definite (resolu) counter-transfer of the image.

We deplore the disappearance of the real under the weight of too many images. But let’s not forget that the image disappears too because of reality. In fact, the real is far less often sacrificed than the image. The image is robbed of its originality and given away to shameful acts of complicity. Instead of lamenting the relinquishing of the real to superficial images, one would do well to challenge the surrender of the image to the real. The power of the image can only be restored by liberating the image from reality. By giving back to the image its specificity (its “stupidity” according to Rosset),9 the real itself can rediscover its true image.

So-called “realist” photography does not capture the “what is.” Instead, it is preoccupied with what should not be, like the reality of suffering for example. It prefers to take pictures not of what is but of what should not be from a moral or humanitarian perspective. Meanwhile, it still makes good aesthetic, commercial and clearly immoral use of everyday misery. These photos are not the witness of reality. They are the witness of the total denial of the image from now on designed to represent what refuses to be seen. The image is turned into the accomplice of those who choose to rape the real (viol du reel). The desperate search for the image often gives rise to an unfortunate result. Instead of freeing the real from its reality principle, it locks up the real inside this principle. What we are left with is a constant infusion of “realist” images to which only “retro-images” respond. Every time we are being photographed, we spontaneously take a mental position on the photographer’s lens just as his lens takes a position on us. Even the most savage of tribesmen has learned how to spontaneously strike a pose. Everybody knows how to strike a pose within a vast field of imaginary reconciliation.

But the photographic event resides in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 object and the lens (l’objectif), and in the violence that this confrontation provokes. The photographic act is a duel. It is a dare launched at the object and a dare of the object in return. Everything that ignores this confrontation is left to find refuge in the creation of new photographic techniques or in photography’s aesthetics. These are easier solutions.

One may dream of a heroic age of photography when it still was a black box (a camera obscura) and not the transparent and interactive space that it has become. Remember those 1940s farmers from Arkansas whom Mike Disfarmer shot. They were all humble, conscientiously and ceremonially standing in front of the camera. The camera did not try to understand them or even catch them by surprise. There was no desire to capture what’s “natural” about them or “what they look like as photographed.”10 They are what they are. They do not smile. They do not complain. The image does not complain. They are, so to speak, caught in their simplest attire (dans leur plus simple appareil), for a fleeting moment, that of photography. They are absent from their lives and their miseries. They are elevated from their miseries to the tragic, impersonal figuration of their destiny. The image is revealed for what it is: it exalts what it sees as pure evidence, without interference, consensus, and adornment. It reveals what is neither moral nor “objective,” but instead remains unintelligible about us. It exposes what is not up to reality but is, rather, reality’s evil share (malin genie) (whether it is a fortunate one or not). It displays what is inhuman in us and does not signify.

In any case, the object is never anything more than an imaginary line. The world is an object that is both imminent and ungraspable. How far is the world? How does one obtain a clearer focus point? Is photography a mirror which briefly captures this imaginary line of the world? Or is it man who, blinded by the enlarged reflection of his own consciousness, falsifies visual perspectives and blurs the accuracy of the world? Is it like the rearview mirrors of American cars which distort visual perspectives but give you a nice warning
- -”objects in this mirror may be closer than they appear”? 11 But, in fact, aren’t these objects farther than they appear? Does the photographic image bring us closer to a so-called “real world” which is in fact infinitely distant? Or does this image keep the world at a distance by creating an artificial depth perception which protects us from the imminent presence of the objects and from their virtual danger?

What is at stake (at play, en jeu) is the place of reality, the question of its degree. It is perhaps not a surprise that photography developed as a technological medium in the industrial age, when reality started to disappear. It is even perhaps the disappearance of reality that triggered this technical form. Reality found a way to mutate into an image. This puts into question our simplistic explanations about the birth of technology and the advent of the modern world. It is perhaps not technologies and media which have caused our now famous disappearance of reality. On the contrary, it is probable that all our technologies (fatal offsprings that they are) arise from the gradual extinction of reality.

Notes

1. A Translation of Jean Baudrillard, “La Photographie ou l’Ecriture de la Lumiere: Litteralite de l’Image,” in L’Echange Impossible (The Impossible Exchange). Paris: Galilee, 1999: pp. 175-184.
2. There is here a play on the French word “objectif.” “Objectif” means objective (adj.) and visual lens (subs.) at the same time.
3. This term is in English in the original French version.
4. An unsatisfactory translation of “la photo ‘passe a l’acte du monde’ et le monde ‘passe a l’acte photograph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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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3-10 21:57   좋아요 0 | URL
예전에 어떤 분의 강의에서 <시뮬라시옹>에 대한 얘기를 듣고 책만 사두었는데 아직도 읽지 못했어요. 사놓고 읽지 못한 책이 한 둘이 아니지만.. 철학 관련 책은 어려워서 읽다가도 마치질을 못하네요..;;; 암튼 퍼가서 찬찬히 읽어보렵니다. ^^

로쟈 2007-03-10 23:01   좋아요 0 | URL
그 어려움이 부정확한 번역으로 더 가중된다는 게 유감입니다. 다 돈주고 사서 읽는 책들인데도...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어제의 일이다. 기억엔 작년엔가도 방한했던지라 건강이 양호한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던 듯하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지고 비교적 적지 않은 책들이 번역/소개된지라 왠지 '가까운' 저자 한 사람을 잃은 듯한 기분도 든다(얼마전에 <예술의 음모>에 관해 페이퍼를 적기도 했지만, 나는 그의 책들을 열댓 권은 갖고 있는 듯하다).

급하게 검색을 해보니 그의 최신간은 (영역본이긴 하나) <연기된 유토피아(Utopia Deferred)>(2006)이다. 앙리 르페브르가 이끌던 그룹/잡지 '유토피아(Utopie)'에 1967년부터 1978년까지 10여년간 게재한 글들과 인터뷰를 모아 펴낸 책이라 한다. 당연한 말이긴 하나 이 '시뮬라시옹'의 철학자도 자신의 죽음은 연기시킬 수 없었던 모양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울러 내달쯤에는 그의 책도 한 권 정도 읽어봐야겠다. 경향신문의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필자는 국내에서 '보드리야르 전문가'로 통하는 배영달 교수이다(꽤 많은 번역서들을 냈지만 추천할 만한 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경향신문(07. 03. 08) '기호화사회 파헤친 급진 이론가’ 佛 장 보드리야르 별세

프랑스의 저명 철학자이자 사회 이론가인 장 보드리야르가 6일 파리의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7세. ‘시뮬시옹’ 이론으로 유명한 고인은 1929년 서부도시 랭스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뒤 파리 10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며 50권 이상의 저서를 남겼다. 특히 그는 지난 1991년의 걸프전쟁에 대해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했다고 주장했으며 9·11 테러에 대해서는 세계화가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타계한 프랑스 지성계의 거목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현대 사상의 모든 경향과 유파를 벗어나 독자적인 자리를 확보한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사회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죽음과 변형을 중시하는 극단적인 사회학자였으며, 실재가 기호와 이미지에 의해 대체되는 시뮬라시옹 과정 속에서 사라져버린 세계의 잃어버린 의미를 찾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자였다.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신화를 명쾌하게 분석한 롤랑 바르트처럼 그는 현대사회의 모든 현상을 파헤치는 현대성의 분석가였으며,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격화시키고 급진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미래주의적 비전을 확립하기 위하여 그러한 현상들을 파악하는 급진적인 작가였다. 이렇듯 보드리야르는 사상사적 위치를 설정하기 어려운 탁월한 사상가였다.

사회학과 철학의 테두리 밖에 머물면서 어느 한 곳에 구속되기를 거부한 보드리야르는 초기 저작 이후 끊임없는 도전과 도발을 시도한 급진적인 이론가였다. 그는 ‘급진적 사유’를 통해 전통적인 사회문화이론을 배격하는 독특한 글쓰기로 주목을 받았다. 그의 글이 철학·문화·사회 이론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스타일로 인해 다채로우면서도 아이로니컬하고 도발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글쓰기를 통해 프랑스 안에서는 부르디외·들뢰즈·라캉·데리다와 견줄 수 없는 보드리야르이지만, 그의 첫번째 저작인 ‘사물의 체계’ 이후 그는 줄곧 프랑스 밖에서 더 잘 알려진 프랑스 지성들 중의 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의 주요 저작인 ‘소비의 사회’ ‘기호의 정치 경제학 비판’ ‘생산의 거울’ ‘시뮬라시옹’이 잇달아 소개되면서 국내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와 문화예술 분야에 많은 반향과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큰 별’로 불리는 보드리야르 사상은 크게 세 가지 핵심적인 개념들로 구성된다. 이 세 가지 개념들은 소비·기호체계·하이퍼리얼리티(시뮬라크르)인데, 이 개념들에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상관관계가 있다. 단지 텍스트에 따라 이 개념들 중에서 한 개념이 번갈아가며 논의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보드리야르 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이 핵심적인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 보드리야르 사상 전체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세계 유수의 다양한 학술지와 웹진 등에 꾸준히 기고하는 등 글쓰기와 강연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뮬라시옹’이 존재하는 현대사회를 새롭게 조명한 ‘시뮬라시옹’을 분석하는 것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사상가 보드리야르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 ‘시뮬라시옹 이론’이기 때문이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이론은 그의 저작 ‘사물의 체계’ ‘소비의 사회’ ‘상징적 교환과 죽음’ ‘악의 투명성’ ‘완전범죄’ ‘토탈 스크린’ 등에서도 그 흔적과 아우라가 발견된다.

현대사회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그의 이 시뮬라시옹 이론은 ‘현대=시뮬라시옹 시대’로 이해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지녔다(*물론 이 영향력에는 영화 <매트릭스>의 기여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현대 이론에서 시뮬라시옹에 관한 담론들은 흔히 우리가 새로운 현대사회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 살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파토스와 반향을 얻고 있다. 따라서 현대사회에서 시뮬라시옹 이론은 성숙한 현대이론의 핵심요소이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실재가 이미지와 기호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 유명한 명제는 시뮬라시옹 시대에 사물의 내재적 실체성이 증발해 버린다는 점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데, 그 자신도 이제 시뮬라시옹 시대의 이미지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배영달|경성대 프랑스지역학과 교수)

07. 03. 07.

P.S. 보드리야르에 '관한' 책으로 두 권을 꼽아두고 싶다. 그의 죽음을 염두에 두고 꼽은 그 두 권 중의 하나는 폴 헤가티의 <장 보드리야르: 살아있는 이론>(2004)으로 'Live Theory' 시리즈의 한권이고, 다른 하나는 보드리야르 전문가 중 한 사람인 마이크 게인이 편집한 인터뷰집 <보드리야르 라이브>(1993)이다. 완독하지는 않았지만 특히 후자는 입문서로서 적합하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사람은 가도 이론은 살아남는 것인지, 아니면 그 또한 시뮬라시옹에 불과한 것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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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tournelle 2007-03-07 23:52   좋아요 0 | URL
오늘 프랑스의 인터넷 르 몽드지를 통해서 그의 죽음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한 명의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가 우리의 곁을 떠나는 것 같아 아쉽네요.

기인 2007-03-08 07:44   좋아요 0 | URL
견고한 모든 것은 안개 속으로 녹아 사라진다.. 맑스 & 엥겔스
포스트 모던은 정말 '포스트' 모던 한것인지, 역시 의문이네요 ^^;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 필립 라쿠-라바르트(1940-2007)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컬처뉴스에서 한 리뷰를 읽다가 알게 된 것인데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까 지난 1월 28일(영어판에는 27일)에 파리에서 영면한 것으로 돼 있다. 지난달에 페이퍼로 다룬 적이 있는 장-뤽 낭시와 함께 '데리다 사단'으로 분류되던 철학자이지만 낭시의 경우도 그렇듯이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철학자로 평가된다. 개인적으로 그의 저작을 이미 몇 권 갖고 있고 러시아어로 된 그의 대담 한 꼭지를 번역할 일도 있어서 자료들을 더 모으고 있던 참이었는데(그가 남긴 저작은 낭시보다는 많지 않다) 병환중이라는 얘기에 이어서 부음을 듣게 되어 안타깝다. 그의 명복을 빌면서 번역가이자 도서출판 그린비의 편집장인 이재원씨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낭시 등과 함께 쓴 <숭고에 대하여>(문학과지성사, 2005)에 대한 리뷰를 겸하면서 라쿠-라바르트에 대한 애도를 표하고 있는 글이다. 라쿠-라바르트의 주저들이 조만간 소개되기를 기대하면서 '세계의 책' 카테고리로 분류해놓는다.

  

컬처뉴스(07. 02. 23) 정치적 범주로서의 숭고

 내겐 조만간 읽을 계획이 없는데도 책을 사두는 버릇이 있다. 출판 자체가 '사건'이거나 '곧 절판'될 것이 예상되는 책을 이런 식으로 사는데, 『숭고에 대하여』도 그런 책이었다. 이렇듯 당장 읽을 계획이 없던 이 책을 들춰보게 된 건 지난 1월 28일 이 책의 공동 필자 중 하나인 필립 라쿠-라바르트(1940~2007)의 부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그에게 보내는 때늦은 조사(弔詞)이기도 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2대학 철학과 교수"가 공식 직함이었던 라쿠-라바르트는 흔히 자크 데리다의 제자로 소개된다. 1980년 데리다의 제안으로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 장-뤽 낭시와 함께 정치철학연구소를 세웠고, 1983년 데리다가 창립발기인 중 하나였던 국제철학학교의 연구원이 됐으며, 1987년 데리다가 라쿠-라바르트의 박사논문 심사위원 중 하나였다는 등의 개인사적 사실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라쿠-라바르트가 데리다의 제자였다면 스승에게 충실했기에 불충한 제자였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데리다의 핵심 개념인 '차연'(diffrance)의 논리에 충실하게 스승의 말을 끊임없이 거스르고(differ) 유예시키면서(defer) 자신의 독창적 사유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2월 2일 낭시는 라쿠-라바르트의 영결식 추도사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오늘, 무한한 차연이 끝났습니다." 얄궂긴 하지만, 지난 2004년 10월 9일 데리다가 사망했을 때 호들갑떨던 미국 언론(그리고 외신이라면 전적으로 미국언론에 기대는 한국 언론)이 라쿠-라바르트의 사망소식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점("라쿠-라바르트는 데리다가 아니다")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

안타까운 사실은 라쿠-라바르트의 독창적 사유를 음미하기에는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업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의 작업은 「지금 우리에게 낭만주의란 무엇인가?」(『세계의 문학』, 106호, 2002), 그리고 곧 살펴볼 「숭고한 진실」 단 두 개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한편 그에 관한 글은 세 편이 있다. 「데리다 사단과 온고지신의 해체철학」(『세계 지식인 지도』, 산처럼, 2002), 「미메시스와 미메톨로지」(『뷔흐너와 현대문학』, 18권, 2002), 「모델을 소멸시키는 미메시스」(<교수신문>, 2006년 2월 23일자) 등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읽을거리가 별로 없으니 더 많은 관련 자료들이 쏟아지기 전에 라쿠-라바르트를 읽기 시작하기에는 지금이 적당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Du Sublime

「숭고한 진실」이 라쿠-라바르트의 독창적 사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숭고란 무엇인가?"라는 모티프를 통해 롱기누스, 버크, 칸트, 헤겔,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벤야민, 리오타르 등의 '숭고론'을 어지럽게 횡단해 가는 라쿠-라바르트의 여정을 좇다보면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된다. 흔히 예술(혹은 미학)의 범주로 여겨지는 숭고가 정치적 범주로 변모하는 발견을.

흔히 말하는 숭고란 우리가 겪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 요컨대 감히 거역하기 어렵거나 우리를 압도하는 어떤 힘을 가진 무엇이 우리에게 야기하는 감정에 가깝다. 그랜드캐니언이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의 압도적인 크기나 힘 앞에서 감동할 때 우리는 숭고를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의상 숭고는 '재현'(reprsentation)될 수 없다. 다만 그 자체로 '제시'(prsentation)될 뿐. 말 그대로 숭고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느닷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라쿠-라바르트의 표현을 빌면, 숭고는 "스스로의 법칙을 자신이 쥐고 있다".

근대미학이 숭고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이유, 혹은 숭고가 근대미학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숭고는 예술의 진리 역시 개념적 인식의 진리, 즉 재현되는 대상과 재현된 바의 일치로 생각하던 근대미학을 붕괴시킬지 모를 개념이었던 것이다. 라쿠-라바르트는 근대미학의 이런 궁지를 타개함으로써 현대미학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 하이데거라고 본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예술의 진리란 재현된 바가 재현되는 대상의 외관과 일치됐을 때가 아니라, 재현되는 대상의 본질(존재자의 존재)이 예술작품 속에 정립(탈은폐)됐을 때 비로소 얻어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술작품 속에서 탈은폐된 존재자의 존재를 보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존재자를 낯설게 보게 된다. 라쿠-라바르트에 따르면 바로 그때의 "그와 같은 황홀함, 그와 같은 매혹"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숭고이다. 이렇듯 하이데거는 재현되는 대상과 재현된 바의 일치라는 근대미학의 전제를 해체함으로써, 숭고를 외부 대상(요컨대 '대자연')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술작품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무엇으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숭고는 더 이상 미학을 위협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라쿠-라바르트는 하이데거가 존재자의 존재를 '민족으로서의 존재'(un tre-peuple)와 동일시할 때의 위험을 지적한다. 하이데거의 주장대로 존재자의 존재를 정립하지 못하는 예술을 더 이상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예술은 "민족으로서의 존재 가능성을 구성하는 요소나 시조"가 될 때에야 비로소 예술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는 셈이다. 이와 동시에 하이데거가 말하는 숭고의 체험 역시 '민족으로서의 존재'의 도래(요컨대 고대 게르만 신화 속의 위대한 영웅 지그프리트의 도래)를 고대하는 열광, 탄식, 환호성으로 표변할 위험을 늘 안게 된다(라쿠-라바르트는 자신의 1988년 저서 『정치적인 것의 허구』를 통해 이 위험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단지 하이데거와 나치 이데올로기의 이런 공통점 때문에 숭고 개념이 정치적 범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라쿠-라바르트는 「숭고한 진실」의 말미에서 하이데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숭고의 정치성을 포착해낸다. 라쿠-라바르트는 하이데거처럼 숭고를 예술작품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라쿠-라바르트는 숭고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를 비평서가 아니라 '철학적인 저작'으로 읽음으로써 숭고의 정치성을 포착해낸다.

라쿠-라바르트가 롱기누스에게서 주목하는 것은 그의 미메시스론이다. 롱기누스의 미메시스론에 따르면 숭고는 '재현'될 수 없을지언정 '모방'(mimesis)될 수는 있다. 왜냐하면 격정과 고양, 한마디로 숭고에 관한 한 자연은 자신의 법칙을 따르지만, "자연이 우연에 스스로를 방기하거나 아무런 체계 없이 작동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 롱기누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숭고 체험을 다른 종류의 체험으로 환원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자연의 작동체계(푸시스)를 포착하고 다룰 수 있는 테크네(미메시스)를 습득하는 것, 그래서 숭고의 과잉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때 라쿠-라바르트가 말하는 미메시스는 "통상적인 의미의 재생산이나 복제의 의미가 아니며, 베끼기 또는 흉내내기란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푸시스(*퓌시스?)가 있는 모습 그대로 나타나도록 출현시키고 드러내는 기술이다. 요컨대 하이데거가 존재자의 존재를 탈은폐하는 것에서 예술의 진리를 찾았다면, 라쿠-라바르트는 푸시스를 탈은폐하는 것에서 예술의 진리를 찾는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존재자의 존재가 탈은폐될 때 느끼는 감정을 숭고라고 재해석한 하이데거와 달리, 라쿠-라바르트는 우리로 하여금 푸시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정관(靜觀)케 하기 위한 계기로 숭고를 재해석한다.

라쿠-라바르트가 발견한 숭고의 정치성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숭고는 그것이 없었다면 영영 감춰지고 묻힌 채로 남게 됐을 그 어떤 것을 현존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가령 기성의 모든 질서는 늘 완전무결하다고 여기는 현대의 신화를 침범해 교란시키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다. 비유컨대 이때의 숭고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이 "아름다운 것은 발작적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리라"라고 말했을 때의 그 정치성,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깨뜨리는 망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의 그 정치성을 획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말 라쿠-라바르트의 논의를 이런 식으로 읽을 수 있을까? 이것은 과도한 해석이 아닐까? 어쨌거나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등졌고, 우리는 이제야 그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주저, 특히 『철학의 주체』(1979)와 『근대인의 모방』(1985)이 국내에 소개되면 우리는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Adieu, Monsieur Lacoue-Labarthe!(이재원 _ 그린비 편집장)

07. 02. 25.

P.S. 내가 갖고 있는 라쿠-라바르트의 책은 영어본 6권과 러시아어본 2권이다. 그 중 네 권이 낭시와의 공저이다. 그만하면 들뢰즈/가타리에 견줄 만한 듀오이다. 이 듀오에 대한 김상환 교수의 해제를 옮겨놓는다. 중앙일보에 연재된 '세계 지식인 지도'의 한 꼭지였으며 단행본 <세계지식인 지도>에 수록돼 있다.  

중앙일보(01. 05. 10)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의 해체철학  

서양 철학은 끝났다. 이렇게 외친 사람이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1844~1900) 였고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이상 독일의 실존철학자) 였다. 오늘날은 자크 데리다(71.프랑스의 철학자) 가 이 종언의 주제를 다시 한 번 과격하게 밀어붙이고 있으며, 그의 작업은 '해체론' 혹은 '탈구축' 이라 불린다. 해체론은 서양 철학사 전체를 분해해서 탈(脫) 서양적 사유의 지반 위에 재구축하려는 기획이다.

장 뤼크 낭시(Jean-Luc Nancy) 와 필립 라쿠라바르트(Philippe Lacoue-Labarthe) 는 세계적 인맥을 구축한 데리다 군단(軍團) 의 용장으로 이름을 날리다가 점차 독창적인 철학자로 인정받게 된 2세대의 대표적 해체론자다. 특히 정치철학적 측면과 미학적 측면에서 해체론을 발전시킨 공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노자의 『도덕경』을 여는 첫 구절은 도(道) 를 언어적으로 규정할 수 없음을 선언한다. 해체론자가 해체하고자 하는 것도 언어 초월적 사태를 개념적 언어의 테두리 안에서만 이해하려는 태도이다. 이런 작업은 서양 철학사 전체에 대한 전복(顚覆) 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그 태도가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 전체의 기본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서양적 사유에서 개념적 언어에 담기지 않는 것은 미신적이고 신비한 것,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것, 더 나아가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이 위험한 것이 개념적 질서의 뿌리 아닐까□ 해체론자가 되풀이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낭시와 라쿠라바르트가 강조하는 언어 초월적 사태는 무엇보다 정치성(政治性) 이다. 이 정치성은 이론적 차원이나 경험적 차원의 정치와 구분된다. 정치를 있게 하는 정치성, 살아 있는 정치성은 일단 '이것이다' 라고 규정하자마자 사라져 버린다. 대신 거기에는 박제화한 정치성이 남는다. 물론 그렇게 해야 정치적 담론이나 실천이 뒤따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담론과 규칙은 음식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신선한 기운을 포기한 통조림 깡통에 불과하다. 해체론자의 눈에는 서양 사상사를 장식하는 수많은 정치 이론은 이런 통조림만 생산해왔다. 그리고 그런 제조 공정의 기초 시설을 제공하고 보호해 온 것이 필로소피아라는 이름의 철학, 이론적 사유의 종손(宗孫) 인 철학이다.

니체 이래 해체론자들은 이런 철학이 끝났다고 본다. 이는 철학이 자신의 잠재력을 남김없이 실현하는 가운데 완성되었다는 것을, 따라서 더 이상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를 창조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에서 태어난 철학적 사유는 오늘에 이르러 과학과 기술로, 사회 제도로 실현되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낭시와 라쿠라바르트는 다시 말한다. 철학은 정치를 통하여 세상과 일상을 점령했다. 정치적인 것은 생활 속에 일반화되었지만 의미를 결여한 정치, 공허한 정치만이 남았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치를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진단은 철학과 정치의 상호 공속성(共屬性) 에 대한 인식에 근거한다.

낭시와 라쿠라바르트는 완성으로서의 끝에 도달한 정치를 전체주의라 부른다. 전체주의 사회는 초월성이 완벽하게 사라진 사회, 총체적으로 표준화되고 동질화된 사회, 따라서 폐쇄성이 강한 사회이다. 이런 의미의 전체주의는 파시즘이나 스탈린주의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합리주의를 신봉하는 현대 유럽 사회도 역시 이미 일상의 차원에서 혹은 미시적 차원에서 전체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 스트라스부르 철학자들의 진단이다.

낭시와 라쿠라바르트는 박제화하는 동시에 전체주의화하는 정치 안으로 초월적 정치성을 다시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한다. 이들이 예술의 문제를 천착하는 것은 이런 문맥을 배후로 한다. 사실 예술적 전통에는 이론적인 것과 경쟁하는 전혀 다른 정치의 가능성이 꿈틀댄다. 서양사상사의 전통이 플라톤에서 확립됐다면, 그의 철학의 궁극적 목표는 정치에 있었다. 이것을 표현하는 것이 그의 '철인(哲人) 왕' 의 이념이다.

그러나 당시까지 그리스에서 교양세계의 주인이자 정치의 기본 규칙을 제공하던 주역은 시인들이었다. 플라톤의 철학은 시인들이 누리던 권리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후 시적 사유 안에서 정치적 실천이 이루어지던 시대는 이론적 사유가 승승장구하자 그 속에서 망각되었다. 다만 초기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새롭게 구상되었을 뿐이다.

낭시와 라쿠라바르트는 이 낭만주의적 전통을 계승하고자 한다. 물론 이 전통이 대변하는 예술적 정치학도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지닌다. 이것은 나치가 어떤 심미주의적 정치 이데올로기였다는 역사적 사실로부터 반추해 볼 수 있다. 하이데거가 나치에 참여했고 또 실망한 것도 그가 시적 사유의 옹호자였다는 것에서부터 설명해야 할 것이다.

낭시와 라쿠라바르트는 예술적 정치성을 옹호하되 우상제작으로 전락하는 조형적 의지의 위험성을 비판하고 그에 반하는 초월적 사태로부터 출발한다. 이러한 경향은 존재론의 차원에서 '재현(再現) 주의' 혹은 '표상(表象) 주의' 로 귀결된다. 재현주의는 개체의 지위를 절대화한 형상을 모방하고 재현하는 '모상(模像) ' 으로 규정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하나의 형상을 중심으로 총체적으로 해석하려는 버릇은 조형적 의지의 속성이다.

따라서 낭시와 라쿠라바르트의 정치철학과 예술론은 다시 존재론적 탐색으로 이어진다. 조형적 의지를 포괄하되 그것의 위험성을 극복할 수 있는 초월적 사유, 탈표상적이고 탈재현적인 사유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을 때만 그들이 의도한 새로운 정치가 납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김상환 서울대교수.철학)



<공동 약력>
▶1940년 모두 프랑스 출생.
▶젊은 시절부터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 철학과에서 교수로 함께 재직했으며 현재 미 UC버클리 초빙교수로 있음.
▶1980~84년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설치된 정치철학연구소 공동 소장으로 활동.
▶라쿠라바르트는 세계적인 학술잡지 『포에티크』의 편집에 참여.

<관련저작.미번역서>

◇ 공동 저작
▶문학적 절대성(1978) :독일 초기 낭만주의자들의 문학이론과 철학을 다룬 고전적 저서.
▶문자의 지위(73) :라캉에 대한 해체론적 해석.
▶나치의 신화(91) :나치의 출현을 게르만 민족의 정체성을 고안해 내려한 조형적 의지의 산물로 해석.

◇ 공동 편집
▶인간의 종언(81) :80년 데리다 사상을 주제로 프랑스에서 개최된 국제학술대회의 발표 논문집.
▶정치성 재고(81) :정치철학연구소에서 발표한 논문들에 대한 1차 편집서.
▶정치성의 후퇴(83) :정치철학연구소에서 발표된 논문들에 대한 2차 편집서.

◇ 낭시의 저서
▶에고 숨(79) :데카르트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
▶무위의 공동체(83) :동일성의 원리에 기초한 공동체 개념을 비판하고 차이의 정치학을 제시하는 명저.
▶자유의 체험(88) :근대 철학에서 철학과 정치를 동시에 떠받쳐 왔던 자유의 개념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중후한 저서.

◇ 라쿠-라바르트의 저서
▶철학의 주체, 도상적 유형학1(79) :문학과 철학의 대립적 관계 안에서 서양사상사의 흐름을 재구성.
▶근대인의 모방, 도상적 유형학2(86) :근대적 미메시스(모방) 개념이 서양 형이상학에 대한 전복적 효과를 띄어가는 과정을 서술하고 비구상적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
▶정치성의 허구화(87) :하이데거의 나치참여 이유를 그의 심미적 정치학에서 찾고, 철학과 예술의 관계를 성찰.

<용어 해설>
▶해체론과 탈구축〓파괴와 구성을 동시에 함축한다. 해체론은 플라톤이래 확립된 서양사상사의 본질적 유래와 내재적 한계, 그리고 그 한계 안의 공간이 형성되는 역설적 논리를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탈(脫) 서양적 사유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정치성〓정치성(the political) 은 정치(the politics) 와 구분된다. 정치는 개념.이론.제도의 차원에서 성립한다. 반면 정치성은 정치가 있기 위하여 먼저 있어야 하는 사태이되 정치의 개념이나 제도 안에서 망각되는 초월적 사태이다.

▶조형적 의지〓우상적 형상을 만들어 내려는 의지다. 이질적 것들을 하나로 묶고 거기에서 동질성과 정체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포괄하거나 대표할 수 있는 어떤 상징적 도형이나 형상을 고안해 내야한다. 서양사상사는 이런 우상제작의 역사였다.

▶초월성〓우상적 형상이 지배하는 표상을 뛰어넘는 사태다. 이는 곧 이론중심적인 서양적 사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태이고, 정치성은 그런 초월적 사태에 속한다. 정치적 차원에서 이 초월성의 망각은 전체주의로 귀결된다.

▶재현주의와 표상주의〓어떤 인위적인 형상(원본) 을 정해놓고 이를 절대화하며 개체의 지위 또한 그 신화화 원본과 '복사품' 의 관계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플라톤 이래 서양철학사의 중심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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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5 2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니다 2007-02-25 20:11   좋아요 0 | URL
혹시 "숭고에 대하여" 영문판은 없나요? (불어 원서 옆에 없는걸로 봐선...^^)

로쟈 2007-02-25 20:19   좋아요 0 | URL
**님/ 책을 아직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주니다님/ 영역본이 아직 없더군요...

주니다 2007-02-25 20:34   좋아요 0 | URL
번역본을 서점에서 잠깐 들춰봤던 기억으로는 읽기가 만만치 않아 보였습니다. 아쉽네요. 숭고는 저도 관심이 있는 주제인데 말이죠....^^

2007-02-25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25 21:05   좋아요 0 | URL
**님/ 그랬었군요.^^ 예전에 낭시나 라쿠-라바르트로 검색을 했더니 안 뜨더라구요...
주니다님/ 영역본이 있습니다. 'Of the Sublime: Presence in Question'(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3)

2007-02-25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주니다 2007-02-25 22:21   좋아요 0 | URL
Of the Sublime: Presence in Question이 영역본이었군요. 꽤 비싸네요. ㅎㅎ

로쟈 2007-02-25 22:32   좋아요 0 | URL
**님/ 시차와도 관계가 있을까요?^^
주니다님/ 책은 제가 주문해놓았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전쟁(기사에서는 '6.25전쟁'이라고 표현)을 보는 시각은 전쟁의 발발원인이 한반도 내부에 있었느냐, 외부에 있었느냐에 대한 관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1)정통주의: 대리전(국제전), (2)수정주의: 내전 (3)절충주의: 복합전. 이 중 세번째 입장의 시각을 강화시켜주는 논문/책이 출간됐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 놓는다.

문화일보(07. 02. 20) "스탈린 동의 안했다면 6·25 없었다”

6·25전쟁은 내전인가, 아니면 국제전인가. 한국전쟁을 둘러싼 논쟁 중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전쟁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와 관련, 최근 ‘6·25전쟁은 복합전’이라는 내용의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명인문화)에서 수록문 ‘6·25전쟁은 복합전으로 시작되었다-내전설과 남침유도설에 대한 비판적 조망’을 통해 이 같은 주장을 전개했다.

이 교수는 “스탈린이 1950년 1월30일 김일성의 남침에 대해 동의했으므로 전쟁이 일어났다”면서 “만약 동의하지 않았다면 국경충돌에 그쳤을 뿐 대량살상의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내전적 상황은 전면전 발발에 있어 ‘종속 변수’에 불과했으며, 전쟁의 직접적 발발 원인은 소련·중국·북한 등 3국 국제공산주의자들의 공모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보다 직접적으로 “전쟁의 근본적 책임은 미·소에 있다”며 “6·25전쟁은 ‘국제전적 내전’이 아니라 ‘내전적 상황을 이용한 국제전’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했다.

◆6·25전쟁을 둘러싼 논쟁 = 지난해 11월 노무현 대통령은 캄보디아 방문 도중 가진 교민과의 간담회에서 “우리가 옛날에는 식민 지배를 받고 내전도 치르고 시끄럽게 살아왔는데 대통령이 돼서 보니 여러 나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다음날 국내 언론에서 문제가 됐다. 바로 ‘6·25전쟁은 내전’이라는 인식 때문이었다. 문화일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이 같은 노 대통령의 좌파적 역사관을 비판했다.



1980년대 미국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를 비롯한 이른바 수정주의사관이 국내에 소개되면서 6·25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이 속속 제기됐다. 한국전쟁은 내전적 성격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또한 미국이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함으로써 북한의 오판을 유도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른바 ‘남침유도설’이다.

수정주의사관이 등장하기 전엔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의 기습남침’이라는 게 6·25전쟁에 대한 정통 견해였다. 이는 곧 한국전을 미·소간 양대 진영이 맞붙은 국제전으로 파악하는 시각이었다. 한때 수정주의사관에 밀리던 이 같은 견해가 다시 힘을 얻은 것은 1990년 중반 무렵 구 소련 문서가 대거 비밀해제되면서부터다. 한국전쟁 발발 전후 소련과 북한 정권 사이에 오고간 문서자료들은 수정주의사관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얼마전에 소개한 바 있지만, 러시아에서도 한국전쟁에 관한 연구서가 여러 권 나와 있다. 번역/소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6·25전쟁은 복합전’ = 이 교수는 수록문을 통해 “처음에는 내전으로 출발했던 것처럼 보이지만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분단이 그 근본적 배경이었고 스탈린의 승인이라는 외인이 (전쟁) 발발의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복합적인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초기에는 내전과 국제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복합전쟁이었고, 미국과 중국의 개입으로 국제전적인 성격이 강화됐으므로 국제전적 요소는 결코 간과될 수 없다는 것이 이 교수의 논지다. 따라서 종합적으로는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전’이라고 이 교수는 결론내렸다.

그는 또 전쟁 발발 이전 분단 과정에 대해서도 “민족 내부의 좌우대립(내인)과 외적 규정력(외인)은 분단의 필요충분조건이었다”며 “외인이 없었다면 무조건 통일됐을 것이며, 내인이 없었다면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외인이 내인보다 훨씬 압도적이고 중요했다”고 말했다. 만약 내인이 없었고, 미·소가 우리를 강압적으로 분단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 통일이 됐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반도 분단의 성격에 대해서도 ‘국제적 성격이 우세한 복합형 분단’이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결론적으로 “내전적 배경과 국제전적 요인은 6·25전쟁 발발에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다”며 “따라서 이 전쟁은 복합전이었으며, 내전이라거나 국제전이라거나 일방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이 두 요인이 결합된 양상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김영번기자)

07. 02. 20.

 

 

  


 

P.S. 작년 여름에 출간된 정병준 교수의 노작 <한국전쟁>(돌베개, 2006)에서도 저자는 "전쟁은 특정 시점에서 특정 세력에 의해 돌출적으로 창조·결정된 산물이 아니라, 미소·남북·좌우의 대립과 길항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물이었다. 즉 전쟁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햇던 미소라는 세계 패권국가의 대립, 남북한 간의 지역적 분립, 좌우익 간의 이념적 대결 등이 응축되어 폭발한 것이다. 그것은 해방 후 한국의 국내적·국제적 갈등 투쟁을 반영한 작은 우주의 빅뱅이었다."라고 적었다. 이완범 교수는 과연 기존에 나와있는 여러 연구서/연구자들의 입장과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기사에서 언급되고 있지 않아 아쉽다...

영어권의 새로운 연구서로는 윌리엄 스튝의 <한국전쟁 재고>(프린스턴대학출판부, 2002)가 눈에 띈다(태극기는 왜 엉뚱하게 그려져 있나?). 제목에 'Rethinking'이 들어간 것은 저자가 이미 <한국전쟁>(1995)이란 노작을 쓴 바 있기 때문. 커밍스의 시각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최근에 나온 국내 저자들의 <한국전쟁>에도 인용돼 있을 듯하다). 

참고로 스튝의 <한국전쟁>은 러시아판(2002)으로도 나와 있다. 생각난 김에 러시아책들을 인터넷서점에서 둘러봤는데 눈에 띄는 책 서너 권에 대해 몇 자 적어둔다. 먼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전투기 조종사의 경험을 토대로 이고르 세이도프 등이 쓴 <'세이버'의 재난: 한국전쟁의 에이스>(2006). 576쪽 분량이고 같이 나온 책 <미그 대 세이버>(2006)와 함께 한국전쟁 관련서로는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이다(제목의 '에이스'는 적기를 많이 격추한 조종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미그'는 소련/러시아가 자랑하는 전투기 '미그기'를 가리키지만 '세이버'는 무엇인가?

Гроза "Сейбров". Лучший ас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Миги" против "Сейбров"

동아일보(06. 11. 08) 기사에 따르면, "1950년 가을. 6·25전쟁은 유엔 연합군의 참전에 이어 중공군의 도하(渡河)로 혼전일로였다. 연합군으로선 중국의 인해전술도 난감했지만 하늘도 골치였다. 중국이 소련제 제트전투기 미그(MIG)-15 카드를 내놓은 탓이다. 전쟁은 양보가 없다.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중국은 연합군의 화력을 병력으로 눌렀다. 연합군은 지상군의 부족을 B-29의 폭격으로 메웠다. 그러자 ‘폭격기 킬러’로 통하는 미그-15가 전장에 나섰다. 눈에는 눈. 미그기와 ‘쌕쌕이’ F-80의 정면승부만이 남았다." '세이버'란 그 미군의 '쌕쌕이' F-80(나중엔 F-86?)을 가리킨다.

한국전쟁은 세계 최초의 제트전투기간 교전이 이루어진 전쟁으로도 기록될 터인데, 결과는 어떠했을까? "11월 8일 신의주 인근 상공. 미 공군은 폭격기 B-29를 엄호하기 위해 F-80 4대를 띄운다. 이를 저지하려 미그-15 6대가 출격했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제트전투기 간의 교전이자 미국과 소련이 자랑하는 최첨단 무기의 충돌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전투는 싱거웠다. 미그기는 수적 우위를 살리지 못하고 격추(1대)까지 당하는 졸전 끝에 도망쳤다. 전투기의 성능보다는 신참으로 구성된 중국 조종사의 실력이 모자랐다."

"분노한 건 중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군사과학만큼은 미국보다 낫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중국 공군의 재정비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소련군 조종사들이 전투에 참가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미그기는 점차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지상마저 어려워지자 미국은 승부수를 던진다. 시험 운용하던 신예 전투기 F-86 세이버를 긴급 투입했다. 당시 공중전이 ‘도그 파이팅(근접전)’ 위주였던 상황에서 최대 1.3km 밖에서 공격이 가능한 세이버는 한반도 제공권을 연합군의 품에 돌려준 명검이었다."

그러니까 한국전쟁에 대한 (평균적인)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주로 미군의 세이버기와 교전한 미그기와 그 소련군 조종사들에 가 있다는 걸 알겠다.

Загадочная война: Корейский конфликт 1950-1953 гг.Корейская война (1950-1953) и ООН

보다 '정통적인' 연구서는 토르쿠노프의 <수수께끼 같은 전쟁: 한국의 충돌 1950-1953>(2001)이 있다(왼쪽). 표지만 봐도 어떤 성격의 책일지 짐작된다. 오른쪽은 새로운 경향의 책인데, 바닌이 쓴 <한국전쟁과 유엔>(2006)이다. 한국전쟁 연구자들이 두루 참조할 만한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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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시아가 본 한국전쟁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5-22 09:25 
    이달에 구한 한국전쟁 관련서 가운데하나는 아나톨리 토르쿠노프의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에디터, 2003)이다. 저자는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총장으로 재직중인 실력자.러시아 학술원(아카데미) 회원이기도 하며, 작년 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토르쿠노프의 '주저'가 바로<수수께끼 같은 전쟁: 한국전쟁, 1950-1953>(2000)이다(그밖에 한국 현대사에 대한 공저들도 갖고 있다
 
 
기인 2007-02-21 07:3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로쟈 2007-02-21 12:34   좋아요 0 | URL
쌕쌕이 기종에 오타가 있어서 수정했습니다...
 

엊그제인가 운만 떼놓은 일을 해치우기로 한다. 도올 김용옥의 <요한복음강해>(통나무, 2007) '참고문헌목록'을 읽고 느낀 점 몇 가지를 적어놓는 일 말이다. 저자가 <요한복음강해>와 (아직 미출간된) <기독교 성서의 이해>, 두 권을 쓰기 위해 구체적으로 참고한 책들이자 그의 '서재에 꽂혀 있는 개인소장본"들의 목록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목차에서 '자세히 열람하시오'라고 당부해놓을 만큼 은근히 자부심을 갖고 적어놓은 것이면서 몇몇 책들에 대해서는 요긴한 사항들을 밝혀놓은 문헌 해제이기도 하다.

사실 나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많은 책들의 서지사항을 훑고 그 중 많은 책들을 구입하며(적어도 소득수준에 비하면 그렇다) 더러 읽어보지만 저자의 편력에는 미치지 못한다(물론 나도 20년후쯤이면 2만권 이상의 장서를 갖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일차적인 느낌인데, 한편으론 전공과 관심이 전혀 다른지라(나는 한번도 '신학'에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모처럼 좋은 '책구경'을 할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으론 구경 차원이 아닌 보다 실제적인 관심을 촉발시킨 책들도 없지 않았는데, 그런 범주에 속하는 몇 권의 책에 대해서 적어보도록 한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여러 권이어서 이 '책 이야기'는 '세계의 책' 범주에 집어넣는다.

저자가 첫번째 분류 항목인 '사전류'의 책 50권을 나열하면서 제일 처음에 적어놓은 책이자 "이 지구상에서 "현존하고 있는 최고의 성서사전"이라고 격찬하고 있는 책이 옥스포드 컴패니언 시리즈로 나온 <성서사전>(1993)이다. 이 컴패니언 시리즈의 책들은 나도 러시아문학 관련을 중심으로 여러 권 갖고 있지만 이 사전은 '그냥 그 정도'를 훌쩍 넘어서는 모양이다. 932쪽의 분량도 만만찮지만 도올에 따르면 "간략하면서 많은 정보가 압축되어 있고 또 매우 이론적으로 깊이가 있다. 정통신학적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다양한 최근의 학문성과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왜 이런 사전이 우리나라에서 번역 안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영국 옥스포드대학 학문의 수준을 잘 나타내주는 명저 중의 명저이다."

이만한 사전이라면 이해가 안 가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국내의 출판 현황을 고려하면 이해 못한 바는 아니지만 한국의 기독교 교세와 신심을 생각하면 미스테리한 일이다(우리 교계와 신학 수준을 잘 나타내주는 지표가 아니기만을 바란다). 어쨌든 그런 격찬을 접하고 보니 한권 정도는 사두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서 최저가 중고서적을 주문까지 했으나 배송지 제한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허세를 부릴 게 아니라 학교 도서관이나 이용하라는 뜻으로 새겼다).

다음 두번째 책도 역시 사전인데, 저자의 첨언이 아니더라도 사실 "학문을 하는데 좋은 사전을 활용하는 습관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이들을 구비해놓는 데 적잖은 비용과 상당한 공간이 요구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따름. 엘리아데의 <종교학백과사전>(1987)도 같은 경우이다. 무려 16권이 한 질이다. 역시 도올에 따르면 "신학도라면 꼭 봐야할 명저 중의 명저"로서 "이 백과사전은 세계종교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기독교관련 항목도 그 정보의 깊이로 말하면 사전 중의 왕중왕이다." 일당백이란 얘기겠다(물론 이 책은 나의 '실제적인 관심'과 무관하다. 편자의 이름이 친숙한지라 그냥 꼽아보았다).

세번째 책은 보다 직접적으로 '요한복음'과 관련한 '발군의 주석'이다. D. A. 카슨이 쓴 <요한복음주해>(1991)가 그것인데, 715쪽 분량이다. 도올의 설명은 이렇다: "영어원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책을 사서 한줄한줄 나의, 번역과 대조하여 읽어보면 매우 명료하게 요한복음 전체상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고, 지적모험의 한 분수령을 창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책들은 아마존 등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쉽게 구입 가능하다." 확인해보니 책값은 25불 가량이다. 하지만 나는 엊그제인가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바로 옆에 두고 있다.

그리고 네번째 책은 '예수에 관하여'란 카테고리 속에 들어 있는 책인데, 저명한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의 <예수와 말씀>(1958)이다. 도올 자신이 "인생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책"으로 꼽고 있기도 하다. 물론 원저는 독어본(1926)이며 도올이 목록에 올려놓은 것은 그 영역본이다(책의 내용에 대한 소개는 http://www.religion-online.org/showchapter.asp?title=426&C=276 참조). 도올의 평가: "우리나라에서는 불트만신학이 마치 한물 건너간 시대조류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착각이다. 우선 우리나라 신학계는 불트만을 이해하지도 訪柰?수용하지도 않았고 토론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불트만신학은 21세기 최고봉이며, 불트만을 안 거치고 21세기 신학을 운운할 수 없다."

 

 

 

 

검색해보면 불트만 관련서는 10여 권 이상 찾아볼 수 있는데, 아직 제대로 된 평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게 도올의 판단인 듯싶다.

끝으로 예수와 관련한 책을 한권 더 꼽자면 "역사적 예수에 관한 여태까지의 모든 성과를 종합한 사계의 최고봉"이라고 도올이 격찬하고 있는 존 도미닉 크로산의 <예수: 혁명적 전기>(1995). 224쪽에 불과하니까 모처럼(!) 단숨에 읽어볼 수 있을 만한 책이다. 도올의 서지에는 빠져 있지만, 보다 두꺼운 책인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1993)은 <역사적 예수>(한국기독교연구소, 2000)로 번역돼 있다.

07. 02. 18.

 

 

 

 

P.S. "성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희랍미술사의 지식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저자 인상적으로 읽은 책이라 꼽고 있는 것은 존 보드먼의 <그리스 미술>(시공사, 2003)이다. 나이즐 스피비의 <그리스미술>(한길아트, 1998)이나 뒤센의 <트로이>(시공사, 2004)도 목록에 올라와 있다.  

 

 

 

 

 

창해ABC북으로 나온 <알렉산드리아>와 <레바논>도 "성서이해를 위해 반드시 참고해야 할 좋은 서적이다"라는 게 저자의 평이다. 분량이 부담스럽지 않은 책 몇 권 정도는 직접 참고해볼 수 있겠다. <요한복음강해>를 읽기 위하여?..

P.S.2. 본문에서 빠뜨렸는데, 크로산의 <예수 -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한국기독교연구소, 2001)도 번역돼 있다. 한번쯤 일독해 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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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2-19 00:10   좋아요 0 | URL
로쟈님 때문에 자꾸 보고 싶잖아요 ㅋ 그래도 굳이 '영어로 배우는' 타이틀을 넣은 것은 유료강의라는 특성때문에 넣은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인문학적 교양만으로 절대 한국인의 지갑을 열 수는 없지요.(아무리 도올이라도) 어학관련은 출판 업계에서도 알아주는 큰 손이니.ㅎㅎ

마늘빵 2007-02-19 00:09   좋아요 0 | URL
설까지 수고가 많으세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기인 2007-02-19 10:58   좋아요 0 | URL
이런 책들은 아마존 드응이 -> 등의
오타 지적하고 갑니다. 오우~ 로쟈님의 폭이란 정말 대단하십니다. :)

로쟈 2007-02-19 11:00   좋아요 0 | URL
테츠님/ 요즘 나오는 책 치고 그다지 비싼 책도 아닙니다.^^
아프님/ 연휴가 좀 짧지요?^^
기인님/ 수정했습니다.^^ '폭'이 아니라 '제스처'입니다...

길손 2007-02-20 17:21   좋아요 0 | URL
저도 오타 지적합니다. <역사적 예술>은 <역사적 예수>, 한국기독교연구서->한국기독교연구소. 참고로 크로산의 <예수 - 사회적 혁명가의 전기>도 한국기독교연구소에서 번역되어 나와 있습니다.


07. 02. 18.


로쟈 2007-02-20 18:26   좋아요 0 | URL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막판에 오타들이 숨어(?) 있었네요.^^ 크로산의 책은 조만간 구해봐야겠습니다...

yoonta 2007-02-23 23:56   좋아요 0 | URL
오늘에서야 요한복음강해를 손에 쥐었는데..뒤에있는 참고문헌목록이 정말 볼만하더군요. 기독교관련책들은 거의 없는 편이어서 이 목록을 손에들고 이쪽에도 손을 대기 시작하면 최소 몇백권은 돈만있으면 바로 지르고픈 욕망을 불러일으키더군용..ㅋ

로쟈 2007-02-24 00:02   좋아요 0 | URL
저보다 욕심이 많으시네요.^^ 저는 고작 대여섯 권 정도 꼽아보았을 뿐인데...

yoonta 2007-02-24 00:09   좋아요 0 | URL
제가 좀 고대근동지역이나 초기기독교 역사랄지 영지주의등과 관련된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편이어서요. 특히 사전류에 소개된 < A Coptic Dictionary > H.G. Crum 요책 구해보고 싶어지네요. "경이로운 책이다...이집트의 곱틱어를 완벽하게 살려놓은 희대의 명저이다...이사전이 있었기에..나그함마디의 방대한 문헌이 해독될수있었고, 초기 기독교의 역사가 밝혀질수있었고" 라는 식이니..^^

anathema 2008-07-03 11:09   좋아요 0 | URL
김용옥이 칭찬한 존 도미닉 크로산의 책은 신학 전공자의 입장에서 보면 학문적으로 가치 없는 책입니다(도올처럼 이 분야에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책으로 보이겠지만). 그 책은 사도적 기독교에 적대적인 비그리스도인이 쓴 안티 기독교 책에 불과합니다. 크로산이 속한 예수 세미나의 작업은 그들의 주장처럼 진리를 위한 고귀하고도 중립적인 추구가 전혀 아닙니다. 진리가 인도하는 대로 나아가는 중립적 학자들의 결과물이 전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예수 상을 미리 설정한 후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중립적이 아닙니다. 이미 '신학적 헌신'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루크 티모디 존슨(Luke Timothy Johnson)의 [누가 예수를 부인하는가? : 역사적 예수에 대한 잘못된 탐구와 복음서 전승의 진리] (CLC, 2003)를 읽어보시길.

로쟈 2007-02-26 10:02   좋아요 0 | URL
어떤 책에 대한 입장이 동일할 수는 없겠죠. 한데, '학문적으로 가치 없는 책'들을 세 권이나 옮긴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어떤 곳인지 궁금하네요. CLC와는 종파가 다른 곳인가요?..

anathema 2007-02-26 13:07   좋아요 0 | URL
"어떤 책에 대한 입장이 동일할 수는 없겠죠"라고 쓰셨는데, 제 말은 이 책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것은 이 분야에 무지하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 대한 입장은 오직 한가지만 옳은 것입니다. 이 책을 칭찬한다는 것은 크로산의 속임수를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런 사람들에게만 이 책이 뛰어나 보이는 것입니다. 예수 세미나는 '학자'라는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달고, 학문적이지도 신앙적이지도 않은 주장을 펼치는 안티 기독교일 뿐입니다.
그리고 한국기독교연구소는 예수 세미나에 찬사를 바치는 비그리스도인들의 모임입니다. 그리고 제가 소개한 Luke Timothy Johnson의 책이 CLC에서 번역되어 나온 것 뿐이지,제가 CLC에서 발행한 모든 책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쟈 2007-02-26 15:50   좋아요 0 | URL
덕분에 '한국기독교연구소'나 '예수 세미나'에 대해서도 알게 됐네요('예수 세미나'가 고유명사라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개인적으론 이 분야에 관심이 없었던지라(기독교/안티 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구요) '역사적 예수론'이 신학계나 교계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어떻게 정리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신'학'을 표방한 주장이라면 논리적인 근거의 제시와 그에 대한 논박 등을 통해서 해결/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적어도 그것이 '신앙의 충돌'이 아니라면). 말씀대로라면 '황우석 사기극'에 버금가는 '크로산 사기극'이란 것인데 그런 경우에도 제 관심은 어느 것이 '지금으로서 알 수 있는 최선의 것'인가에 놓여 있습니다. '오직 한가지만 옳은 것'은 '신학'을 넘어서는 것이겠지요...

anathema 2007-02-27 09:07   좋아요 0 | URL
"논리적인 근거의 제시와 그에 대한 논박 등을 통해서 해결/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네요"라고 쓰셨는데, 제가 소개한 Luke Timothy Johnson의 책이 예수세미나의 주장을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반박한 책입니다(제가 4월 초에 이 주제로 강의를 합니다).

로쟈 2007-02-27 09:54   좋아요 0 | URL
강의의 요지를 나중에 정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반조 2007-03-18 00:57   좋아요 0 | URL
몇 가지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역사적 예수론은 다비트 슈트라우스David Strauss의 "예수의 생애"가 출발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니체의 "반시대적 고찰" 1권이 그와 연관되어 있지요. 물론 니체의 논쟁은 역사적 예수론과는 무관한 것도 아실테고요.) 쉽게 말해서, 역사적 예수론은 성서에서 신화적 요소를 벗겨내고 또 제자들(특히 바울)이 덧칠한 가르침을 벗겨내는 작업을 통해서 실제의 예수상, 소위 "역사적 예수"를 복원하는 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니체의 "안티크리스트"가 이 역사적 예수론과 어느 정도 맥락이 닿아 있다고 봅니다.

예수교장로회(예장측)와 기독교장로회(기장측)의 대립을 이해하면 한국개신교 종파간 견해차가 쉽게 이해됩니다. 그들은 원래 하나였는데(장로교!) 김재준박사의 "성서에도 오류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갈라지기 시작했죠. 성서오류설은 기장측의 입장으로 한신대로 이어졌고요, 성서무오류설은 예장측의 입장으로 장신대, 총신대로 이어졌습니다. 이제 짐작하시겠지만, '한국기독교연구소'는 기장측 연구소이고 CLC는 예장측 논지의 출판사입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 예장측의 학문적 수준은 거론하기 창피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한기총을 보시면 됩니다.) 이들은 성서의 축자적 영감설을 신봉하는 이들인만큼 "역사적 예수론"을 절대 받아들일 수도 없고 하등의 고민거리도 아니지요. 그래서 도올의 "우리나라 신학계는 불트만을 이해하지도 않았고 수용하지도 않았고 토론하지도 않았다"는 말은 일리가 있습니다. 기장측에서는 한동안 좌파적 신학이론에만 매몰되었고 예장측에서는 학문적 논의가 불가능한 수준이니 불트만은 수용이 될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적어도 불트만은 역사적 예수론을 거친 이후의 성과라고 보시면 될 듯합니다. 역사적 예수론 이후 타격 받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을 내면화시켜준 공로가 있으니까요.

anathema 2007-03-18 09:53   좋아요 0 | URL
한국기독교연구소가 "기장측 연구소"라구요? 설립자인 홍정수와 현 소장인 김준우 모두 감신 소속입니다. 홍정수는 감신대 교수였지요. 김준우도 감신대 겸임교수였고. 뭘 근거로 기장측 연구소라고 한 건가요?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님과 역사적 예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군요. 역사적 예수 연구와 관련해 님의 학문적 수준이 어느 정도이기에 예장측의 학문적 수준 전부를 깔보는지 말입니다(그리고 한기총은 예장의 학문적 신학을 대표하지 않습니다. 오버하지 마시길).

로쟈 2007-03-18 23:52   좋아요 0 | URL
返照님/ 예장/기장 얘기는 오래전 연대 신학과에 다니던 선배가 좀 해주더군요(그 선배는 지금 한의사를 하고 있지만.^^) 지적하신 대로, 국내 신'학' 연구가 불비하다면 이 참에 자극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anathema님/ 저에게 다신 댓글은 아니지만 '내부'의 다른 목소리인지라 흥미롭네요. '예장의 학문적 신학'을 대표할 만한 업적들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널리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반조 2007-03-18 13:01   좋아요 0 | URL
anathema 님, 제가 잠시 착각했군요. 한국신학연구소하고 헷갈렸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님의 학문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의견을 철회할 생각은 없고요. 그저 제 의견을 다른 사람이 아니라 로쟈 님께 가볍게 한 이야기로 넘어가 주시기 바랍니다. 저같은 천학비재하고 논쟁하는 것은 저에게나 님에게가 도움이 될 게 없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