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러시아 최고의 영화감독 중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알렉산더(알렉산드르) 소쿠로프 영화제가 현재 열리고 있다(10월 30일에 시작되었고 11월 4일까지다). 한두 편 정도는 보려는 계획이었지만 역시나 여러 가지 밀린 일들 때문에 관람일정을 불투명해졌다. 씨네21에 이 특별전에 관한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영화에 대한 기사를 읽는 것보다는 물론 직접 관람하는 것이 더 '행복한' 일이겠으나 그런 행복은 골고루 나뉘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이미지들은 내가 따로 덧붙인 것이다.

씨네21(07. 10. 24) 미술, 죽음, 그리고 데카당스의 미학, 소쿠로프 특별전

지금 활동 중인 감독 중 데카당스 미학의 계승자를 꼽으라면 단연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돋보인다. 죽은 비스콘티가 부활한 듯 그는 퇴폐적이고 타락한 질병의 세상에서 아름다움의 정수를 끌어올리고 있다. 몽상과 유령, 질병과 죽음의 검은 세상에서 그의 미학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의 작품들을 모아 상영하는 알렉산더 소쿠로프 특별전이 10월30일부터 11월4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문의: www.cinemathequeseoul.org).

러시아의 무명감독이었던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서방에 이름을 알리게 된 데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향이 컸다. 타르코프스키는 소쿠로프가 70년대에 국립영화학교(VGIK)에 다닐 때 그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소쿠로프라는 젊은 감독이 있다. 거장이 될 재목이다. 정부의 탄압을 받아 정상적인 활동을 못한다. 서방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타르코프스키의 입을 통해 재목으로 지목된 젊은 감독 소쿠로프(1951~)는 서방 영화인들의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며 그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타르코프스키와 소쿠로프

당시 타르코프스키는 서유럽에서 <향수>(1983), <희생>(1986) 등을 연이어 발표하며 러시아영화의 품격을 유감없이 발휘할 때다. 그가 아끼는 제자 소쿠로프도 서방세계로 데려와야 한다는 움직임이 당연히 제기됐다. 그런데 1986년 타르코프스키가 갑자기 죽고, 소쿠로프는 서서히 잊혀져가는 듯했다.

소련 정부가 무너지자 소쿠로프는 다시 기억됐다. 이제 자유의 몸이 됐으니 그도 스승처럼 서구로 옮겨 활발한 작업을 해주길 기대했다. 그런데 소쿠로프는 서구로 이주하는 대신 러시아에 남아 자신의 영화작업을 계속 진행했다. 세기의 역사가 뒤바뀌는 숨막히는 현장을 떠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만든 다큐멘터리가 <러시아 엘레지>(1993)이다. 죽어가는 조국에 대한 감독의 애가(哀歌)다. 그는 에세이풍의 다큐멘터리에 모두 ‘엘레지’라는 제목을 붙여 작업했는데, <러시아 엘레지>는 그중 하나이자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볼 수 있었던 그의 첫 작품이었다.

영화는 시커먼 화면으로 시작하는데, 죽어가는 사람의 고통스러운 숨소리만 들린다. 소쿠로프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은 알겠지만 이는 감독의 클리셰 중 하나다. 그의 영화는 모든 죽어가는 존재에 대한 명상에 다름 아니고, 그래서 죽는 자의 단말마는 그의 영화에서 자주 듣게 되는 소리다. 죽어가는 존재 러시아, 감독은 조국의 광활한 대지에 안타까움의 애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엘레지>가 공개된 뒤 유럽 영화인들 사이에서 일종의 소쿠로프 열풍이 불었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1974)에서 본 듯한 광대한 들판과 바람에 몸을 눕히는 풀밭 등 러시아영화 특유의 풍경화도 매력적이었다. 유럽의 시네마테크들에서 소쿠로프가 그동안 공개하지 못했던 ‘엘레지’들이 속속 소개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 자연과 죽음의 대조

소쿠로프의 명성이 대중화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은 <어머니와 아들>(1997)이다. <러시아 엘레지>에서도 나타났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얼마나 서양미술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으며, 특히 그의 화면이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풍경화와 닮았는지가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좀 과장하자면 영화의 장면은 모두 서양미술의 간접적인 인용들로 가득 차 있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러시아의 바다가 보이는 어느 시골에서 아들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호하고 있다. 이것뿐이다. 이런 간단한 이야기로 비극의 고통을 전달하는 것은 숭고의 경지에 이른 영화의 풍경화 덕분이다. 프리드리히처럼 소쿠로프의 영화에 일관되게 흐르는 테마는 죽음에 대한 명상인데, 그 명상은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에 의해 추동되고 있는 것이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간호하는 아들의 고통을 자연이 대신 묘사한다. 감독 특유의 길고 긴 롱테이크의 화면에서 아들은 깃털처럼 가벼워진 어머니를 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고 싶어 애간장을 태운다. 영국 화가 존 에버릿 밀레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소녀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 <눈 먼 소녀>(1856)처럼 대지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드러내고 있는데, 아들의 가슴에 안긴 어머니는 숨쉬기조차 힘들어하며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연과 죽음의 대조가 비극의 슬픔을 더욱 배가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발표된 뒤 소쿠로프는 타르코프스키의 후계자로, 또는 예술영화의 마지막 거장으로 소개되며 칸영화제의 단골손님이 된다. 20세기 정치가 4인을 선정, 4부작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발표됐고, 히틀러를 대상으로 한 첫 작품 <몰로흐>(1999)가 공개되며 감독의 영화세계는 더욱 폭넓게 소통됐다. 그가 히틀러의 삶을 다룬다고 해서 논란의 대상이 된 <몰로흐>에서 다시 확인됐지만, 감독이 관심을 두는 것은 권력가 히틀러가 아니라 ‘죽음 앞의 인간’ 히틀러였다. 영화는 정치가 아니라, 여전히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후 레닌을 다룬 <황소자리>(2000), 히로히토를 다룬 <더 선>(2004)까지 3부작이 발표됐는데(*<태양> 대신에 영화계에서 <더 선>이라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세 작품 모두 감독의 오래된 주제인 ‘죽음’을 명상하는 에세이들이다.

 

2001년 그는 <여행 엘레지>를 발표하며 자신의 예술창작의 뿌리가 미술에 있었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몽유하는 듯한 어느 여행자가 유럽의 유명 미술관을 돌아다니는 꿈같은 내용이다. 방랑자는 자기가 꿈속에 있는지 현실에 있는지 전혀 분간하지 못하며, 벚꽃이 휘날리는 밤을 배경으로 취한 듯 걷고 있는데,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은 계속 미술관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이 방랑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단지 그의 1인칭 독백만 들을 수 있다. 이러니 방랑자는 영락없는 유령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육신이 없는 목소리는 암스테르담의 미술관에서 어느 풍경화를 뚫어져라 바라보더니,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죽은 공간 미술관에서, 죽은 자의 목소리가, 죽음의 세계인 그림 속으로 들어가겠다니, 이는 바로 소쿠로프 자신의 죽음에 대한 데카당스한 태도에 다름 아니다. 죽음은 실존의 고통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미학의 대상으로만 위치짓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어머니와 아들>은 물론이고, 이의 후속편 격인 <아버지와 아들>(2003)에서도 반복된다.

<러시아 방주>, ‘One Single Tracking Shot’의 놀라운 테크닉

미술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최고치에 이른 작품이 <러시아 방주>(2002)이다. 지금까지 발표된 감독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도 가장 성공했다. 형식은 <여행 엘레지>와 비슷하다. 1인칭 독백이 들리고,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전혀 보지 못한다. 단 한 사람 이 목소리를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18세기 초에 활약했던 프랑스 귀족이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이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이 들어서 있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궁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영화는 이 궁전에 온갖 복장과 가면으로 치장한 화려한 귀족들이 함께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궁전 내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있고, 우리는 당시의 공연예술의 한 단면과 이를 즐기는 러시아 귀족들의 태도를 볼 수 있는 것이다(*유튜브에서 거의 전장면을 차례로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dHG5Zk_EDEg).

여기까지가 대략 15분쯤 되는데, 이 모든 도입부의 시퀀스가 단 하나의 숏으로 구성돼 있다. 소쿠로프의 영화에 워낙 롱테이크가 많아, ‘이 정도는 보통이지’라고 생각할 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러시아 방주>는 99분 전체가 단 하나의 컷으로 구성된, 원숏 원신(One Shot One Scene) 영화다. 덧붙여 끝없이 트래킹 장면이 이어진다. 원숏 트래킹이라는 전무후무한 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가 처음 소개될 때, 이런 기술적인 부분이 대대적으로 알려졌다.

‘One Single Tracking Shot’, 영화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이 떡 벌어지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겨울궁전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귀족과 목소리’는 계속 돌아다니며 그림을 구경하고 품평하는데, 이 모든 액션이 단 한번의 컷도 없이 진행된다. 이들은 무려 33개의 방을 이동하며 그림을 본다. 또 중간에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3번 듣는다. 물론 라이브다. 수천명의 배우들이 주인공들의 주위를 지나친다. 이런 휘황찬란한 기술을 보기에 관객은 그만 넋이 빠지는 것이다.

사실 기술적인 면이 지나치다보니 역설적이게도 <러시아 방주>는 본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감이 있다. 이 영화도 소쿠로프 특유의 ‘죽음에 대한 명상’이다. 그런데 그런 명상에 빠지기 이전에 몽타주없이 굴러가는 필름의 마력에 휘둘리다보니 지금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중심을 놓치고 마는 것이다.

러시아의 예술에 대한 자부심

시간과 공간의 통일을 의도적으로 깨는 것도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이다. 영화는 18세기 말로 시작했지만, 곧바로 현대의 에르미타주와 뒤섞인다. ‘귀족과 목소리’는 시공간을 초월하며 러시아의 역사를 여행한다. 이들이 ‘이탈리아 화가의 방’에서 그림 품평을 할 때면 러시아의 현대인들이 나타나 함께 토론을 벌이는 식이다. 그러고보니 주위는 어느덧 현대의 관광객들이 걸작들 앞에서 그림 구경하기에 바쁘다. 루벤스, 반다이크, 엘 그레코, 렘브란트 등 거장들의 그림들은 물론이고, 카노바의 우윳빛 조각들, 그리고 이름없는 장인들이 만든 가구와 그릇들까지, 겨울궁전의 그 모든 유품들이 감탄의 대상으로 눈앞에 전개된다.

소쿠로프에게 겨울궁전은 노아가 살아가기 위해 만든 방주에 다름 아니다. 인류의 생존을 건 방주, 곧 겨울궁전이 있기에 인류는 영원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역설이다. 그 궁전에는 모든 죽음의 흔적들이 보존돼 있는데, 바로 그런 죽음들을 보존함으로써 인류는 생존해간다는 것이다. 그 복판에 에르미타주가 있다는 러시아의 자부심이 내재돼 있음은 물론이다.(한창호_영화평론가)

07. 1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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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11-02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영화제만큼은 저도 갈려고 마음먹고있습니다 그래봤자 일요일 오전일텐데 말이지요...

로쟈 2007-11-03 10:58   좋아요 0 | URL
생각 같아서는 저도 3-4편 보고 싶지만(제가 전에 본 건 두 편입니다)사정이 여의치가 않네요.--;

섬나무 2007-11-02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이런 부러운 순간들에 중심부에서 밀려나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폐기처분될 위기에 있던 광주영화제가 간신히 숨을 잇게 되었다는 사실에 흔감해하는 중입니다. 처음엔 미비하거나 허술한 점만 눈에 들어오던데 이젠 제발 살아만 있어주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보고 싶은 영화군요.

로쟈 2007-11-03 10:56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제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쿠로프의 회고전이 열린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도 소쿠로프는 대중적인 영화감독은 아닙니다. 유튜브에 그래도 여러 영화의 장면들이 올라와있네요...

섬나무 2007-11-05 11:11   좋아요 0 | URL
전주는 지리적으로 가까와서 전주영화제 2회부터 하루에서 이틀쯤 영화를 보러 가지요.영화제 덕분에 전주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소쿠로프는 대중적인 데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로쟈 2007-11-05 13:11   좋아요 0 | URL
소쿠로프는 러시아에서도 대중적이지 않지만, 열렬한 지지자들(특히 평론과 이론쪽)을 갖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영화비평/이론서 하나도 소쿠로프에게 바쳐지고 있더군요...

테렌티우스 2007-11-03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에 있을 때 아르테에서 영화와 메이킹 오브를 보았는데 정말 한시간 40분을 원테이크로... 정말 놀랍지요. 중간에 카메라 감독이(감독이 30 몇 킬로인가 되는 스테디 캠이던가 여하튼 그 카메라를 들고 1시간 40분을 방에서 방으로 옮겨다니는데 등장 인물도 무도회 장면부터 해서 수백명 수준입니다) 시작하고 한 20분이던가 나오는 무도회 장면 직전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이 아파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았는데 너무도 아름다고 화려한 그 장면에서 정말 거짓말 같이 고통을 잊고 다시 촬영을 했다(사실 다시가 아니라 카메라는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물론 계속 돌아가고 있었고요)는 얘기를 하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그게 두번째 시도일 거예요... 아마 그전 실패한 첫 시도는 시작하자 마자 5분 정도후에 어떤 이유론가 중단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확실치 않지만요...

그런데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고 영화가 너무도 훌륭하고 좋다는 바로 그 점입니다. <러시아 방주>, 정말 아름답고 좋은 영화였어요.

로쟈 2007-11-03 10:54   좋아요 0 | URL
메이킹 필름은 저도 러시아에서 TV로 본 적이 있습니다. 실은 그게 더 재밌더군요.^^ 영화는 링크해놓은 유튜브에서 대부분의 장면을 다시 보실 수 있습니다...

섬나무 2007-11-03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일까지 연장상영 한답니다. 서울에 계신 분들에겐 좀 더 기회가 주어졌네요. 부럽긴 하지만 광주에는 광주극장이 있지요. 자랑을 하자면 좀 길어지는데 자랑을 하고 싶습니다.^^결혼 후 살게 된 광주에서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광주극장 입니다. 아마 전국에서도 얼마 안남은 단일관이구요 1930년대부터 운영된 극장입니다. 현재의 소유주인 젊은 이사님이 영화를 좋아하시다보니 돈이 안되는 영화전용상영관을 운영하게 된 것이지요. 광주에서 명물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광주극장을 꼽습니다.큰 극장에 관객이 평소 댓명을 넘기지 않지만 오늘도 '영화사 걸작선'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로쟈 2007-11-03 11:31   좋아요 0 | URL
광주에도 그런 '자랑거리'가 있었군요.^^
 

최근에 나오는 러시아발 기사들이 다들 좀 '사납다'(그래서 '뉴스'가 되는 거겠지만).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의 공세적 외교도 뉴스거리지만 내부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건 한 '사이코패스', 쉬운말로 한 '살인마'에 관한 이야기인 듯하다. 48건의 살인으로 기소됐다는 이 사내는 실제로는 60명을 넘게 죽였다고도 한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는 자백을 들어보면 '살인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는 게 당연해 보인다. 관련기사를 모아둔다.  

 

 

 

 

 

 

 

 

 

한겨레(07. 10. 26) '러시아판 살인의 추억’ 범인에 ‘유죄’

48명을 살해한 것으로 밝혀진 희대의 러시아 연쇄 살인범에 유죄 평결이 내려졌다. 이번 재판 과정에선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들도 상세하게 드러났다. 모스크바 법원의 배심원단은 25일 92년부터 2006년까지 48건의 살인과 3건의 살인 미수 혐의로 체포된 알렉산더 피추시킨(33·사진)에게 만장일치로 유죄 평결을 내렸다. 러시아는 96년부터 사형 판결·집행을 유예하고 있어, 피추시킨에겐 종신형 선고가 내려질 전망이라고 〈모스크바타임스〉는 전했다.

재판 과정에선 모스크바 경찰당국이 피추시킨의 광란 행각을 막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02년 2월 피추시킨은 남자 친구와 결별 위기로 지하철 근처에서 방황하던 마리아 비리체바(24)를 만났다. 피추시킨은 고급 밀수 카메라 상자들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면 절반을 떼주겠다며 비리체바를 콘크리트 하수관 근처로 끌고 갔다. 목적지에 이르자 그는 “목욕이나 하라”며 비리체바를 8m 아래의 하수관으로 밀어넣었다. 하수에 쓸려 내려가다 맨홀 근처에서 행인의 도움으로 운좋게 살아난 비리체바는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경찰관은 비리체바 자신의 잘못으로 하수관에 떨어졌다는 내용의 진술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피추시킨의 첫 살인 과정도 밝혀졌다. 피추시킨은 18살 때 급우인 오데이추크를 으슥한 숲으로 유인해 목졸라 죽인 뒤 하수구에 버렸다. 그는 법정에서 “첫번째 살인은 첫사랑과 같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등 뻔뻔한 태도를 보였다. 그의 체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은 마지막 피해자이자 피추시킨이 일했던 수퍼마켓의 동료 여직원인 마리나 모스칼레바(36)의 메모였다. 모스칼레바는 아들에게 남긴 메모에서 “피추시킨과 산책을 나간다”며 피추시킨의 휴대전화 번호를 남겨놓았다. 또 피해자의 코트에서 날짜와 시간이 찍힌 지하철표가 발견됐으며, 피추시킨과 걸어가는 장면이 감시카메라에 포착됐다. 피추시킨은 모스칼레바의 주검이 발견된 2006년 6월14일로부터 이틀 만에 붙잡혔다.(이용인 기자) 


 

 

 

 

 

 

 

 

 

 

 

 조선일보(07. 08. 15) 러시아판 살인의 추억?…60여명 죽인 '체스판 킬러'

‘가상의 체스판 64칸을 가득 채우려고 사람을 죽였다.’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범이 되고 싶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나에겐 살인 없는 삶은, 당신들에겐 먹을 것 없는 삶과 같다’

러시아 연쇄살인범 알렉산더 피추시킨(Alexander Pichushkin, 사진)이 지난 13일(현지시각) 마침내 모스크바 법정에 들어섰다. 1992년부터 2006년까지 49명을 죽이고, 3명을 더 살해하려 한 혐의다. 그러나 이날 러시아 당국이 “당초 예상보다 10명 더 많은 62명이 살해됐을지 모른다”고 밝혀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까지 러시아 경찰은 희생자 시신 14구만 발견했을 뿐, 구체적인 추가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혼란 상태다.

그는 모스크바 비체프스키 공원(Bitsevsky Park)서 평범한 슈퍼마켓 종업원으로 일했던 33세 평범한 직원이었다. 그러나 그는 살인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노숙자나 노인들을 꾀어 망치로 뒤통수를 내리쳤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지만,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1992년 18살 때 학교 급우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2000년에 들어서면서 집중적으로 사람이 죽이기 시작했다. 사건을 맡은 검사는 해외 언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안드레이 치카틸로’를 넘어서길 꿈꿨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드레이 치카틸로(Andrei Chikatilo)는 ‘괴물의 심장’이라 불린 전설의 러시아 연쇄살인범이다. 지난 90년대 초반 52명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 인육까지 먹어 구소련의 ‘한니발 렉터’라는 별칭도 있다.

피추시킨은 당초 언론에게 “지금까지 63명을 죽였다”고 자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가상으로 그려 놓은 가로·세로 8칸짜리 체스판에 꼼꼼히 기록했다. 64칸을 모두 채우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마지막 피해자는 지난해 6월 동료점원 마리나 모스칼요바(Marina Moskalyova,36)였다. 그는 희생자 주검 발견 이틀 만인 지난해 6월 16일에 마침내 경찰에 체포당했다. 한편, 그는 법정 최고형이 확실시되지만 사형 판결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러시아는 사형이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1996년 이래 판결·집행이 사실상 정지된 상태다.

07. 10. 26.


 

 

 

P.S. 피추시킨 같은 연쇄살인범의 심리가 궁금하다면 로버트 헤어의 <진단명 사이코패스>(바다출판사, 2005)나 로버트 레슬러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바다출판사, 2004) 등의 책들을 참조해볼 수 있겠다. 특이한 소재의 역사소설이자 추리소설인 노희준의 <킬러리스트>(랜덤하우스코리아, 2006)에 대한 해설을 쓰느라고 작년 이맘땐가 뒤적거렸던 책들이다. 다시 '살인의 계절'이 돌아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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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7-10-26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상.. 정말 싸납네요...

로쟈 2007-10-27 00:50   좋아요 0 | URL
이런 경우는 다른 유전인자가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뜸하던 러시아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최근 러시아발 기사에는 푸틴이 내년 총선 이후 집권당의 총리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포함돼 있다. 내년 대선과 총선의 향방은 아직 불확실하지만 점차 분명해지는 것은 그가 쉽게 권좌에서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 해서 문제는 이 '불곰 파워'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혹은 우리의 '푸틴 대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러시아가 구 소련시절만큼의 초강국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미국과 유럽으로서는 러시아의 이러한 팽창이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독재'와 '반민주'는 그것을 견제하는 '유일한' 명분이자 수단으로 보인다). 우리도 그러한가?..

한국일보(07. 10. 05) '불곰 파워' 유럽 흔든다

발트해에서 발칸까지’ 러시아의 부활로 국제질서가 요동치는 곳이다. 동유럽으로 경계를 확장하려는 서유럽은 구소련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러시아의 야심에 막혀 진땀을 흘리고 있다.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유럽연합(EU)에서는 신구 회원국 간, 진보_보수 세력 간 논쟁을 넘어 분열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발칸의 코소보를 세르비아에서 분리, 독립하는 것은 시간 문제처럼 보였다. 7년여에 걸쳐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돈과 정성을 아끼지 않았던 유엔과 EU 덕분에 세르비아 정부도 ‘독립을 막을 방도가 없다’는 백기투항 직전까지 몰렸다. 중재를 맡은 마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총리는 노벨평화상 유력후보로 거론됐다. 그러나 러시아가 예상외로 강력히 반대하면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이 유엔 바깥에서 코소보의 독립을 승인하는 실력 행사를 강행한다면 친서방 노선을 걷고 있는 그루지야, 몰도바,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권 국가 내 친러시아 세력을 독립시킨다는 강력한 대응책을 천명했다(*친러시아 성향의 동부 우크라이나를 말하겠다). 코소보 독립의 대가로 동유럽이 친서방_친러시아로 찢어지는 것은 서방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코소보 독립문제는 러시아가 일으키고 있는 파장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거침없이 진행되던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은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코카서스에서 급브레이크가 걸렸다. 2005년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EU의 동진과 나토의 동진을 명확히 구분했다. 나토는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지만, 유럽의 확장은 러시아의 경제적 이익과 통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동진도 이제 러시아에는 매력적인 사과가 아니다.

유럽의 경제에 기대기보다는 러시아의 경제력을 주변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국익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매장량이 각각 세계 1, 2위인 천연가스와 원유는 러시아 경제의 파워하우스이다. 미국이 폴란드와 체코에 설치하려는 미사일방어(MB) 기지 설치를 러시아가 완강히 반대하는 것도 유럽은 이해할 수 없다. 안보 위협을 내세우고 있지만 러시아 스스로 이는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리란 것이 유럽의 생각이다.

프랑스의 싱크탱크인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토머스 고마트는 “다음 10년간 러시아가 유럽의 최대 현안이 될 것이 분명하다”며 “러시아를 파트너로 볼 것인지, 위협으로 볼 것인지 대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에스토니아에 대한 사이버 테러, 세계 최대 천연가스 회사인 가즈프럼의 유럽 가스시장 통제 야욕, 영국과의 스파이 논란, 러시아 폭격기의 노르웨이 영공 침범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최근의 유럽과의 갈등은 동유럽을 무대로 벌어질 러시아와 유럽의 다음 전쟁의 예고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3일 “공식적으로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하지만, 내부적으로 내 동료의 절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지지하다”고 말했다. 유럽의 분열을 상징하는 독일의 고민이다.(황유석기자)

뉴시스(07. 10. 05) "푸틴, 스탈린 능가하는 독재자 될 것"…前측근 푸틴 '맹비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전 러시아 고관이 "푸틴 대통령이 소비에트 시대가 무색한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움켜쥐려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푸틴 대통령의 경제 고문으로 활동하다 지난 2005년 가을 해고된 안드레이 일라리오노프는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집권 통합러시아당의 후보로 총선에 출마, 총리로 집권할 의지를 시사한 푸틴 대통령이 막강한 국민 지지도를 이용해 총선을 국민투표로 전환시키는 '기현상'을 야기시킬 것이라며 이같이 경고했다.

일라리오노프는 "이는 결국 한 사람의 손에 절대 권력을 몰아넣는 새로운 정치체제에 법적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라리오노프는 이어 푸틴 대통령이 총선 출마 의지를 밝힌 지난 1일의 통합러시아당 당대회가 지난 1934년 공산당의 집회를 연상시킨다며 "당시 스탈린을 추대한 공산당의 당원들은 후에 하나 둘씩 독재자가 된 그의 숙청 대상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 헌법은 현재 대통령의 삼선 연임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에 푸틴 대통령은 헌법을 개정하면서까지 연임을 추진할 생각이 없음을 거듭 밝혔었다. 푸틴 대통령은 그러나 올해 말 총선 출마와 함께 "자신이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뜻을 표명함으로써 '허수아비 대통령'을 내세운 뒤 총리로 활동하며 실질적 통치를 계속한다는 야심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일라리오노프는 현재의 형태로 총선이 진행될 경우 "푸틴은 소비에트 사상 어떤 공산 지도자보다도 더 많은 권력을 쥐게 될 것"이라며 이는 소비에트 붕괴 이후의 지난 16년뿐 아니라 독재가 최고조에 올랐던 소비에트 연방 시절의 마지막 수십년을 모두 포함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권력 집중은 결국 푸틴 대통령의 폭정으로 이어져 남아 있는 정치경제적 자유마저도 짓밟고 국가의 핵심 경제 자산을 독점하게 된 국영기업들은 부정부패로 나라의 경제를 병들게 할 것이라고 일라리오노프는 경고했다(*푸틴의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그는 또 크렘린 당파 간 내분으로 '궁정 쿠데타'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기하며 "외교적으로는 러시아 인권 문제에 대한 서방 세계의 개입에 대한 푸틴의 반발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크렘린궁은 이같은 전직 대통령 측근의 비판해 즉각적 논평을 내 놓지 않았다.(정진하기자)

서울경제신문(07. 10. 05) 푸틴 대제(월스트리트 저널 10월4일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 이후에 총리로서 러시아 정계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유감스러운 것은 아무도 이 소식에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 이어 권좌에 오른 지 8년째인 푸틴은 러시아에서 발생한 일련의 테러 폭발 사고를 구실로 체첸을 상대해 2번 전쟁을 일으키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다. 하지만 한때 푸틴 정권의 스파이로 활동한 적이 있는 알렉산더 리트비넨코는 러시아에서 폭발 사고는 러시아의 비밀부대에 의해 기획된 것이라고 폭로했다.

하지만 서방 지도자들은 푸틴을 도리어 ‘결점 없는 민주주의자’ 혹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로 칭송했다. 푸틴은 석유 가격 상승과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의 정책에 도움을 받아왔다. 석유로 벌어들인 돈은 러시아의 대외부채를 상환하고 보유 외환을 늘리는 데 원천이 됐다.

푸틴의 지지도가 70%에 이르는 것도 이 덕분이다. 특히 석유 수입은 코카서스 지역에서의 탄압, 독립적인 미디어ㆍ인권단체에 대한 공격 등과 같은 행위를 희석시키고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오랜 벗들을 권력 요직에 앉히는 데도 기여했다. 서방세계로서는 푸틴이 석유와 가스 등 자원의 공급을 조절하며 우크라이나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감시하기도 어렵다.

이런 러시아의 공격적인 외교정책 기조는 종종 미국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다. 일례로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이란 핵 프로그램에 대한 유엔 제재를 무력화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국제 사회에서 러시아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해 푸틴 비판에 미온적이지만 효과는 신통치 않은 실정이다.

푸틴은 커리어에 흠집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헌법의 3연임 금지조항을 피해 계속 권좌에 머물기 위해 애쓰고 있다. 총리에 측근인 빅토르 주브코프를 임명한 것은 푸틴이 의회를 통해 권력을 휘두르거나 헌법의 빈틈을 이용해 다음 번에 대통령직에 도전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서방세계는 ‘체스왕’ 카스파로프 등이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러시아의 내년 대통령 선거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푸틴의 장기집권을 위한 조치들은 러시아의 민주주의가 깨져버렸음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푸틴은 러시아의 권위주의를 회복시켰지만 전세계는 그 결과에 대해 준비해야 한다.

07. 10. 05.

P.S. 가장 최근에 나온 러시아관련서는 연합신문의 모스크바 특파원을 지낸 매일경제 김병호 기자의 <푸틴을 위한 변명>(매일경제신문사, 2007)이다. 러시아 내부에서 들여다본 '푸틴시대'라 할 만하다. 러시아 정국 및 '푸틴 vs 카스파로프'와 관련된 페이퍼로는 '러시아 중산층의 정치 무관심'(http://blog.aladin.co.kr/mramor/1029678),  '러시아에는 얼마만큼의 자유가 필요한가'(http://blog.aladin.co.kr/mramor/814509) 등을 참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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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러시아 푸틴
    from 내가 사귀는 이들, 翰林山房에서 2008-07-31 18:10 
       '러시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 2007-10-05 09:01 로쟈님의 페이퍼 에 달린 로쟈님의  2007-10-05 09:57 댓글    그건 5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명박의 경우도 마찬가지요. 경제적 토대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허상 아닐까요?..
 
 
자꾸때리다 2007-10-05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내 푸틴의 지지도가 높은 건 결국 경제 성장 때문인가요? 전두환 지지자 논리하고 비슷하네요.

로쟈 2007-10-0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50% 이상의 지지를 얻고 있는 이명박의 경우도 마찬가지요. 경제적 토대가 없다면 민주주의는 허상 아닐까요?..

eEe 2007-10-0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은 우스울 정도의 양극화, 빈곤화가 러시아에서 심화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러시아 소외계층의 불만이 푸틴에 대한 막연한 기대-후분배 효과?-로 전도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이러한 굴곡이 언제까지 지속되리라고는 생각은 안듭니다. 러시아 민중의 사회주의적(?) 정치적 자산이 대안세력과 결합되어 급진적 정치가 재출현하리라는 믿음이 별 근거 없이 불어나네요.
희망과 예측의 뒤범벅이라는 오명은 피할 수 없겠지만...

로쟈 2007-10-05 22:44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믿음은 별 근거가 없는 듯합니다. 실상 소련 시절에도 지배계급(특권계급)은 있었고, 그건 제정 러시아때와 마찬가지였으니까요.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러시아에서 별로 대두되지 않는 건 역사상 한번도 그런 걸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qualia 2007-10-0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국민들이 경제, 경제 하는데요, 객관적으로 보자면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 한국 경제의 나쁜 점들이 조금씩 개선된 것이 아닐까요? 최근 노무현 정권 끝에 들어서는 그러한 점진적 개선 효과가 경기 회복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지난 추석 대목 때 재래 시장에 가보았는데요, 노무현 정권 들어서고 나서 맨날 죽는 소리하던 재래 시장이 이번엔 완연하게 살아나 엄청난 활기를 띠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조금도 과장하지 않고 재래 시장이 손님들로 터져나 발 디딜 틈도 없더군요. 상인들은 싱글벙글하고요. 걸핏하면 조중동이 경제 위기니 파탄이니 나라가 거덜났느니 하면서 부화뇌동하는 대중을 들쑤셔대고, 한나라당은 그동안 나라가 금방이라도 거꾸러질 것처럼 얼마나 난리법석을 쳐댔습니까? 그렇게 현실 왜곡을 하고 대중을 오도하던 조중동은 실상은 노무현 정권 들어서 얼마나 세를 확장하고 호황을 구가했느냐 이 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경제나 정치적 실태, 한국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역학 구도 실태는 그 실상이 가려진 채,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이 원하는 왜곡된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되고 있는 측면이 강합니다. 그러한 잘못된 정보와 왜곡된 이미지들이 지금의 남한 땅에 일종의 시대적 분위기처럼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명박 씨는 제가 생각하기에, 완주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는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엔 너무나 많은 결격 사항이 있고, 그 결격 사항들이 자잘한 것들이 아니라 너무나 치명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씨가 당원 투표에서 실질적으로 이겨 놓고, (현실 판단에 얼마쯤은 몽매할 수밖에 없는 대중들의 의사가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에서 간발의 차이로 밀려 대선 후보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나라당 세력이 (일종의) 이명박 씨의 중도 낙마에 대한 공포를 얼마나 심각하게 느끼고 있(었)느냐 하는 점을 잘 보여줍니다. 박근혜 씨는 사실상 합류를 거부한 채 의미심장하게 뭔가를 기다리고 있고, 한나라당 세력은 지금 속으로 엄청 떨고 있는 것이죠.

아무튼 이명박 씨의 50% 이상 지지는 허상에 가까운 것이라 봅니다. 그 허상조차 부풀려지고 왜곡된 노무현 정권의 경제 실정(이는 거의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데요) 이미지에 대한 반대급부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죠. 집요하디 집요한 조중동과 수구세력들의 난리법석이 그런 허상을 키운 측면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2007-10-05 13:25)

로쟈 2007-10-05 22:42   좋아요 0 | URL
두 달쯤 뒤면 다 알게 되겠지요.^^

eEe 2007-10-0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련은 정말 미지의 시간-공간이네요.

똑같이 소련에 체제하다 왔어도 어떤 사람은 러시아인에게서 성숙한 문화적 역량을 느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환멸을 보고...
똑같이 소련을 연구하더라도 어떤 이는 위대했지만 빛바랜 초유의 실험을 보고, 어떤 이는 자본주의, 계급사회를 보고...
누구는 인류 역사 정점의 소비에트 직접 민주주의를 발굴하고, 누구는 최악의 전체주의를 폭로하고...

무엇에 의지해서 판단해야 될지 갈수록 혼란스러워 집니다.

로쟈 2007-10-07 00:12   좋아요 0 | URL
그 정도의 혼란이나 시차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입니다. 당장 현재의 남한 현실에 대한 평가를 질문하더라도 계층이나 세대별로 상당히 상이한 답변들이 나오지 않을까요? 게다가 러시아는 워낙에 덩치가 큰 나라에다가 내내 격변기였던지라...
 

어지간한 독자라면 제목에서 조지 스타이너란 이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요즘은 어지간한 독자들이 드물어졌지만). "영미 비평계에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지 스타이너(1929- )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이 바로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1959, 1996)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만 서른에 발표한 책이니까 20대에 쓴 것이고 거의 반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고전적인 연구'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다(요즘은 저자가 자처하고 있는 '구비평'이라고 무시하는 연구자들도 있지만 이만한 '에세이'를 쓰는 건 드문 열정과 재능의 소산이다). 지난 1996년 예일대출판부에서 2판이 출간된 이 책이 '오늘의 책'이다.

2판의 서문 말미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이 책의 기원은 본문의 첫문장이다: "문학비평은 사랑을 빚진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Literary criticism should arise out of a debt of love.) 어떤 사랑인가? "위대한 예술작품은 폭풍처럼 우리의 마음을 휩쓸어, 지각의 문을 열어젖히고, 그 변형력으로 우리의 신념 체계에 압박을 가한다. 우리는 그 작품의 영향을 기록하고, 우리의 뒤흔들린 정신세계를 새 질서로 정비하려고 한다." 이것이 첫 단계로서 위대한 예술작품의 사랑(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이겠다.

이어지는 두번째 단계는 그러한 영향 혹은 충격을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의사를 전달하려는 본연의 충동에 끌려, 우리는 타인에게 우리 경험의 성질과 힘을 전해주려 한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싶은 것이다. 이 설득하려는 기도에서 비평이 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통찰이 비롯된다."(국역본, 3쪽) 그가 이 '비평적 에세이'에서 전달하고자, 혹은 설득하고자 애쓰는 '가장 진실한 통찰'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위대한 두 소설가"(6쪽)라는 것이다. 이 책에 대한 나의 사랑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하지만 이 사랑은 공유하기 어렵다(젠장, 여기서 두 문단을 날려먹고 다시 쓴다). 일단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의 국역본을 시중에서 구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그의 책으론 <하이데거>(지성의샘)만이 대형서점에 남아있는 정도이다). 해서 도서관에 의존하거나 헌책방을 전전해야 할 터인데, 80년대에 두 종의 번역본이 출간됐던 걸 고려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두 종의 국역본이란 건 윤지관본(종로서적, 1983)과 김석희본(심지, 1983)을 말한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윤지관본이고 1983년 초판이다(역자 또한 20대에 번역한 책이군). 이후에 두 작가에 대한 주목할 만한 연구서가 별로 소개된 바도 없으므로 이 책이라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1996년에 2판이 나온 사실에서도 알 수 있지만 묵혀두기엔 아까운 책이다.  

저자인 스타이너는 영어권 유수의 대학들에서 학위를 했지만 프랑스 태생이고 영어, 불어, 독어 '트리링구얼'이라고 한다. 스위스의 제네바 대학에서 비교문학 교수로 오래 봉직했지만 저술목록을 보면 언어와 번역의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을 알 수 있다. 역자에 따르면 (1983년 시점에서) "스타이너의 비평 작업은 현대 문명의 패러독소 - 이 고도의 문명이 수많은 야만행위들, 예들 들어 강제수용소, 정치적 탄압, 대규모의 전쟁 등을 자행하고 있다는 -를 의식하고 여기에 대결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비평가의 역할을 현대문학이 과연 이러한 시대에 쇠퇴해가는 도덕적 지성의 힘을 고양시켜 나가고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라고 본다."(310쪽) 말 그대로 '고전적인' 비평가의 임무를 상기시켜준다.  

그의 책들 가운데 <비극의 죽음>(1961), <언어와 침묵>(1967), <바벨 이후>(1975) 등이 유명한데 예전에 국내에서 쉽게 원서를 구할 수 있었던 책들이다(나도 소장하고 있다). 물론 그밖에도 최근까지 20여 권 이상의 책이 더 출간됐고, 그 중에서 내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책은 <안티고네들>(1984).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 <비극의 죽음> 등과 함께 1996년에 보급판으로 다시 출간된 이 책은 부제대로 '서구의 문학과 예술, 그리고 사상에 나타난 안티고네 전설'을 다루고 있다. <안티고네>에 대한 강의를 맡는다면 가장 먼저 참조해볼 만한 책이다.

스타이너가 '고전적인 비평가'라고 적었는데, 그 자신의 표현을 빌면 '구식 비평가'이다(2판의 부제 자체가 'An Essay in the Old Criticism'으로 돼 있다). 그가 염두에 둔 것은 3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영미비평을 주도한 신비평(New Criticism)일 터인데, 그가 차지하고 있는 '특이한 위치'라는 건 그의 '시대를 거스르는' 비평관과 무관하지 않겠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현대비평은 조롱조이며 궤변조인 동시에, 철학적 연원과 복잡한 도구를 광범하게 파악하고 있어서, 대개 칭찬하기보다는 매장한다. 사실상, 건강한 언어, 건강한 감수성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매장되어야 할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수많은 작품이 의식을 풍부하게 하거나 생명의 원천이 되지 못하고, 용이하고 천박하며 일시적 위안을 주는 세계로 끌어들이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을 다루는 일은 서평가가 맡아야 하는 기능이지, 명상하고 재창조하는 비평가의 기술이 관여할 바는 아니다."(3-4쪽)

그렇다면, 비평가의 역할을 무엇인가? "서평가나 문학사가와는 달리, 비평가는 걸작에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의 일차적 기능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것과 최상의 것을 구별하는 일이다."(In distinction from both the reviewer and the literary historian, the critic should be concerned with masterpieces. His primary function is to distinguish not between the good and the bad, but between the good and the best.)

"문학비평은 사랑을 빚진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에 이어서 확실한 밑줄긋기가 필요한 대목이다. 내가 마음에 드는 대목은 '좋은 것과 최상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 비평가의 주된 기능이라는 단언. 좋은 작가나 작품을 식별/선별하는 일은 리뷰어(서평가나 서평꾼)에게 맡기고 비평가는 오직 최고의 작품들하고만 씨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겠다(그러고 보면 정작 우리 주변에 '비평가'는 아주 드물다는 걸 알게 된다).  

스타이너 자신이 젊은 날에 쓴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비평관은 아주 확고하다. 걸작의 기준에 있어서도 그렇다. "비평은 우리에게 위대한 계보의 기억과, 호머에서 밀턴까지 이어지는 고서사시(high epic)의 무쌍의 전통과 아테네, 엘리자베드조, 신고전주의 연극의 찬란함과 소설의 대가들을 환기시켜야 한다." '무쌍의 전통'은 'matchless tradition'을 옮긴 것이다. '버금하거나 견줄 만한 것이 없는 전통'이란 뜻이겠다. 특별히 그가 부각시키고 있는 계보/전통은 '서사시'와 '비극'인데, 상식적으로 알아둘 일이지만, 그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이 두 전통의 적통으로 이해하며 평가한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을 호머의 작품에 비교하"는데, "조이스의 <율리시즈>보다 훨씬 엄밀한 의미에서,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는 서사 양식의 부활을 구체화하였고"(8쪽)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 그의 천재는 희곡적 성격으로, 중요한 점에서 셰익스피어 이래 가장 포괄적이고 자연스런 희곡적 기질로 이해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위대한 비극 시인의 한 사람이다." 즉 톨스토이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시대의 호머(호메로스)이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셰익스피어다.

그런 맥락에서도 스타이너가 보기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단순히 '좋은(good)' 작가가 아니다(지적한 대로 '좋은 작가들'은 리뷰어들이 다룬다). 그들은 '최고의(the best)' 작가들이다. 그는 인용하고 있는 영국 작가 E. M. 포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영국 소설가도 톨스토이만큼 위대하지는 않다. 다시 말해, 인간의 삶은 가정적인 면이든 영웅적인 면이든, 그처럼 완벽하게 그린 사람은 없다. 또한 어떤 영국 소설가도 도스토예프스키만큼 인간의 영혼을 깊이 파헤친 사람은 없다." 스타이너는 한술 더 떠서 이러한 판단이 영문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예 소설문학을 통틀어서 그렇다는 것이다(물론 그의 말대로 이러한 판단은 증명 불가능하다. 대신에 그는 '청력'의 문제라고 말한다. 귀 있는 자는 들어보라, 는 것이다). 참고로 포스터의 인용출처는 <소설의 제 양상(Aspects of the Novel)>(1950)이다. <소설의 이해>(문예출판사)라고 번역돼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이제 왜 제목이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Tolstoy or Dostoevsky)"인가를 물을 차례다. 이미 서사시/비극이라는 문학사의 양대 전통에 대한 언급에서 시사된 것인지만, "그것은 대비를 통해 그들의 업적을 살피고 각각의 천재의 성격을 규정하려 하기 때문이다."(9쪽) 러시아 철학자 베르자예프를 인용하자면, "인간 영혼의 두 양식, 즉 톨스토이적인 정신과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정신을 규정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작가와 대면하는 일은 인간 영혼/정신의 두 가지 양식, 더 나아가 두 가지 상이한 세계관과 조우하는 일이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중의 택일은 실존주의자들이 앙가주망이라고 부름 직한 것을 예시하고 있다. 그 선택은 상상력을 인간의 운명, 역사적 미래, 신의 신비에 대한 근본적으로 반대되는 두 해석 중 하나에다 위임해버리는 일이다." 다시 베르자예프의 표현을 빌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두 종류의 가정, 존재의 두 기본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해결 없는 논쟁"의 본보기이다.  

Николай Бердяев Миросозерцание Достоевского

스타이너가 인용하고 있는 베르자예프는 불어판 <도스토예프스키의 정신(L'esprit de Dostoievski)>(1946)인데, 국내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이란 타이틀로 이경식본(현대사상사, 1975), 류준수본(한양대출판부, 1982), 이종진본(범조사, 1987) 등이 나와 있었다(앞의 두 권은 영역본을 중역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이종진 역의 범조사 문고본이다). 물론 요즘은 구하기 힘든 책이 돼버렸지만. 이미지는 가장 저렴한 러시아어 문고본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관>.  

 

 

 

 

자, 이제 해야 할일은 보다 본격적으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읽고,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를 읽는 것이다. 톨스토이를 읽는다면 그의 데뷔작이자 자전 3부작의 첫 작품인 <어린시절>(1852)부터 읽어야겠다. 최근 다시 나오기 시작한 새 톨스토이전집의 1권 <소년시절-청소년시절-청년시절>(작가정신, 2007)을 따르자면 '소년시절'이 될 테지만 관례적으로 '어린시절' 내지는 '유년시절'('유년시대')로 번역된 작품이다(영어로는 'The Childhood'). 그리고 도스토예프스키라면 데뷔작인 <가난한 사람들>(1846)로부터.

 

 

 

 

각각 <부활>과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이르는 긴 여정이다(<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최근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길잡이가 될 만한 책들이 많지는 않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나란히 다루고 있는 책으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평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자연사랑, 2001)을 들 수 있겠다. 츠바이크가 그런 타이틀의 단행본을 쓴 건 아니고 그의 <천재와 광기>(예하, 1993)에서 두 작가에 관한 대목만 따로 묶은 것이다(교열상태는 상당히 불량하다). 러시아 상징주의 작가 D. 메레지코프스키의 책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금문, 1996)로 소개되었었지만 절판됐다. 스타이너의 표현을 빌면 "변덕스럽고 신용이 없지만, 많은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국역본 각주에는 '메레즈프스키'라고 표기돼 있는데 착오이다).

그리고 인디북에서 나온 박형규판 톨스토이 선집의 서론격인 <톨스토이>(인디북, 2004). 두툼한 책이니 사전 정도로 활용할 수 있겠다.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다룬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비전비앤피, 2007)도 읽어둘 만한 고급한 에세이지만 국역본은 교열상태가 좋지 않다(게다가 러시아사와 톨스토이에 대한 무지가 너무 도드라지는 번역이다). 

한편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연구서로 모출스키의 평전과 (절판된) 바흐친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시학> 등을 제외하면 시중에 나와 있는 건 국내 전공자들의 연구서이다. 권철근 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소설 연구>(한국외대출판부, 2006)와 조주관 교수의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연세대출판부, 2007)이 최근에 나온 대표적인 저작들인데, 일반 독자라면 굳이 참조할 필요가 없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한 '대학 강의'가 궁금한 독자라면 읽어볼 만하다. 여타의 많은 참고문헌들은 이런 연구서들의 부록을 참조하시길...

07. 09.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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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9-24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쉬는데 로쟈님만 바쁘시군요. 한가위 잘 보내세요. 안타깝게도 전 어지간한 독자는 못 되는군요.

심술 2007-09-24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도 잘 이해는 안 되지만 인문학이 참 깊고도 어려운 거구나 하는 건 올려 주시는 글 읽으며 깨닫고 있습니다.

로쟈 2007-09-24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페이퍼가 저에겐 '쉰다'는 의미입니다.^^; '어지간한 독자' 같은 얘기는, 아시겠지만, 좀더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죠. '인문학이 참 깊고도 어려운 거'라는 인식을 심어드렸다면 제가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은 인문학의 '대중화'에 한몫한다면서 이러고 있는데 말이죠...

심술 2007-09-24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망과 함께 자극과 관심,흥미도 주시니까 너무 고민하지 마세요.^^
 

러시아 혁명기의 아나키스트 혁명가 보리스 사빈코프(싸빈코프)의 소설 두 권에 대해서 언젠가 페이퍼를 만든 적이 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434756), 보다 자세한 리뷰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6021).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문득 생각이 나게 해주었다. 책은 조만간 구입하든가 대출하든가 해야겠다. 곧 10월이니까...

연세대 대학원신문(제155호) 일기로 기록된 혁명의 ‘현재 시제’

시나 소설을 창작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 해도 만약 그가 늦은 밤 홀로 있는데 마침 그 날 하루 혹은 인생이 밀도 있게 다가온다면, 일기를 쓸 것이다. 하루를 인생의 기본 단위로 인식하며 언어를 조금이라도 부릴 줄 아는 인간에게 허용된 최소한의 미적 행위랄까. 밀도 있게 다가온 일상의 어떤 순간을 망각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조바심과,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더 두꺼워지고 진해질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이 교차하는 일기는, 기억의 형식이라기보다는 기록의 형식이다. 기억의 윤색과 문학적 형상화로 정제된 자서전 혹은 자전소설과 달리, 일기는 사실적 정황이 갖는 날 것의 느낌을 잃지 않는다.



사랑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테러리스트의 일기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 러시아 아나키스트 정당인 사회혁명당의 암살단원으로, 께렌스끼 임시 정부의 국방차관으로, 백군 사령관으로 활동했으며, 롭신이란 필명으로 테러와 혁명에 대한 많은 소설과 회상록을 남긴 보리스 싸빈꼬프의 소설, 『창백한 말』(1909)과 『검은 말』(1923)은 모두 1인칭 시점의 일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자에서 일기를 쓰는 주인공은 1905년 혁명 전후의 테러리스트이고, 후자의 주인공은 1917년 혁명 이후 반(反)볼셰비끼 투쟁을 벌이는 백군 사령관이다.

저자 싸빈꼬프의 전기적인 실제 이력이 투영된 이 두 주인공은 활동하는 시기와 명분은 다르지만, 혁명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번민,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살육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공유한다. 두 작품 공히 가장 많이 언급되는 문구는 ‘살인하지 말라’는 성경의 계명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알지 못했고, 사랑의 이름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것만을 이해하는’ 이 뜨거운 혁명가들에게 살인의 계명은, 지젝이 말하는 자기 지양의 법, 즉 모든 것을 금지하는 동시에 허용하는 법으로 작용한다.

‘살인하지 말라…….’ 이 말이 또다시 나의 뇌리를 스친다. 누가 그런 말을 한 걸까? 왜……? 왜 연약한 영혼에게 그처럼 힘겨운, 실천하기 어려운 계명을 남긴 걸까?(『검은 말』 중에서)

“바냐, 그럼 ‘살인하지 말라’는?”
“없어, 조지. 살인하게.”
“자네가 그런 말을 하나?”
“그래, 내가 그렇게 말하네. 살인하게, 다른 사람들이 살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살인하게,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사랑이 세상을 밝히도록.”
“그건 신성모독이네, 바냐.”
“나도 알아. 그럼 ‘살인하지 말라’는 신성모독이 아닌가?”(『창백한 말』 중에서)



‘열린 국면’, ‘날 것’으로서의 혁명

혁명을 ‘생성 중인’ 역사적 상황, 그 어떤 헤게모니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한 ‘중간적 국면’이 열린 단락으로 이해한다면, 혁명의 시제는 ‘현재’일 것이다, ‘일기’는 바로 그런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버린 순간’을 포착하는 현재 시제의 장르이다. 일기는 과거의 시간을 전유하여 현재의 현존으로 과거를 채움으로써 현재와 과거를 직접적으로 결부시킨다. 이는 혁명가들이 역사를 파악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인민주의, 애국주의, 반볼셰비즘을 넘나들며 당의 강령에 쉽게 매몰되지 않아 동지들에게조차 늘 경계의 대상이 됐던 싸빈꼬프의 궁극적인 투쟁 목표는, 구세력뿐만 아니라 볼셰비끼의 독재에서도 해방된 ‘제 3의 러시아’를 구축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어떤 헤게모니에 의해서도 전유되지 않은 혁명의 ‘열린 국면’, 즉 혁명의 ‘현재 시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이상주의적 열망은, 이 두 소설의 주인공들이 일기로 기록하는 혼돈으로서의 혁명(상징적 기표로 다 설명될 수 없는 ‘날 것’으로서의 혁명)에도 투영돼 있다.

물론 그가 지켜내려던 혁명의 ‘열린 국면’은 실정적인 이데올로기적 기획, 즉 볼셰비끼의 독재에 의해 곧 닫히게 되었고, 싸빈꼬프는 러시아 혁명 역사의 승자가 아닌 패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새롭게 도래한 이 ‘현재’를 경험한 이들의 숭고한 열망은 그것이 결국 실패한 몸짓으로 끝났다 해도, 혁명 이후의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유효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원래부터 주어져 있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토대가, 사실은 인공적이고 우연적인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전유의 결과는 아닌가 라고. 우리가 현실적인 것으로서 조우하는 현재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를 묻는 이 질문은 그저 우연히 한번 만나 단순한 가치판단으로 봉합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의 여러 맥락과 감정의 여러 파고에서 반복적으로 대면해야 하는 근본적 차원의 질문이다.

혁명은 단순히 불합리한 현실의 전복이 아니라, 현실의 토대 자체가 우연적이고 인위적인 봉합에 지나지 않음을 폭로하는 폭력적인 하나의 행위/사건이다. 『창백한 말』과 『검은 말』의 일기 형식을 통해 싸빈꼬프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바로, 모든 이데올로기적인 봉합에 저항하는 날 것으로서의 혁명, 즉 해석이나 통합이 아닌 변혁을 가져오는 행위/사건으로서의 혁명이 아닐까.(김윤하 / 비교문학 박사과정)

07. 0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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