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과 '분신'

7년 전에 쓴 리뷰다. 때마침 이번에도 두 작품을 강의에서 읽는다(다음주에 <분신>을 다룰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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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41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톨스토이의 <인생에 대하여>(바다출판사)에 대해 적었다. 통상 <인생론>으로 번역돼왔는데('삶에 관하여'란 부제를 붙인 번역본도 있다), 내용상으로는 '인간 생명론'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참회록>과 함께 후기 톨스토이의 문제의식을 엿보게 해주는 대표적인 저작이다(<종교론>과 <교육론> 등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주간경향(21. 03. 15) 인간 생명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길


톨스토이는 일찌감치 한국에 소개돼 가장 널리 읽힌 문호에 속하지만, 특이하게도 작가로서보다는 사상가나 설교자로서 수용됐다. 소설이라 하더라도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같은 전성기 대표작 대신에 설교적인 말년작 <부활>이 애독됐다.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한 뒤 정신적 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예술창작에 대한 과격한 부정으로 나아가는 톨스토이를 보통 ‘후기 톨스토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에서의 톨스토이는 후기 톨스토이에 치우친 면이 있다. <인생에 대하여>도 바로 후기 톨스토이를 대표하는 저작 가운데 하나다.

<인생에 대하여>는 통상 <참회록>과 같이 묶여 <인생론>이라고 번역돼왔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살 것인가란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는 무난하지만, 톨스토이는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부터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다. 때문에 그의 인생론은 내용상 인간생명론에 더 적합하다. 생물학적 이해에 따르면 모든 생명체는 세포들로 구성되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그렇지만 세포를 관찰함으로써 생명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물레방아를 알기 위해 강을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 것과 같다. 좋은 가루를 빻기 위한 것이라는 물레방아의 목적을 망각한다면 물레방아에 대한 탐구는 사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톨스토이는 인간 생명의 이해를 위해서는 그 목적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생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행복이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며 성취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더라도 행복은 불가능하다. 개체적 생명은 숙명적 죽음으로 인해 끝내 행복을 성취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자신만을 위한 행복과 생명을 희구하지만 한 개체로서 그는 결코 어떤 행복도 어떤 생명도 소유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는다.” 톨스토이는 이것을 ‘인간 생명의 근원적인 모순’이라고 부른다.

인생의 모순, 혹은 인간 생명의 모순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가. 톨스토이는 개체적 자기보존과 종족보존만을 목적으로 하는 동물적 삶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이성을 갖고 있는 존재이며 한번 깨어난 이성은 동물적 삶에서는 충족될 수 없는 요구를 품게 한다. 이성적 의식의 탄생과 함께 동물적 생존은 사이비 인생으로 전락한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동물적 생존, 즉 육체적 개체의 생존은 인생이라는 말에 값하지 못한다. 인간의 진실한 생명은 동물적 개체의 행복을 부정하는 순간 비로소 시작된다.

인간에게 이성은 하나의 법칙이고, 인간의 생명은 그 법칙에 따라 완성된다. 그리고 그 법칙이란 동물적 행복을 포기하고 이성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다. 동물은 개체적 행복에 반하는 활동이 생명의 거부가 되지만, 인간은 정반대로 개체의 행복만을 달성하려고 할 때 생명을 거부하는 것이 된다. 인간에게 동물적 개체성은 필멸적이며 진정한 생명의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의 비유에 따르면 동물적 개체성은 이성적 존재에게 주어진 일종의 삽과 같다. 다시 갈아쓸 수 있는 도구이지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이성의 법칙에 복종하는 동물적 개체의 활동이다. 그리고 그 이성의 유일한 활동이 바로 사랑이다. 이러한 결론에 이르러 톨스토이의 목소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겹쳐진다. “가서 행하라,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생명을 얻으리라.”

















P.S. 리뷰에서 <인생론>과 같이 언급한 <참회록>이 새 번역본(<고백>)으로 나왔다. <고백록>까지 포함하여 모두 같은 책의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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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3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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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3 19: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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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11: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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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12: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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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1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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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4 2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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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적으로는 개강일이지만 몇년 전에 대학강의를 그만둔 이후로는 특별한 느낌이 없다. 하지만 아쉽다기보다는 다행스럽다. 출석체크나 과제물과 성적 처리 같은 뒤치다꺼리에서 벗어난 것이 나대로는 강의 연륜에 따른 보상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이번주에 개강을 하지만 봄학기 본격적인 일정은 다음주부터라 여유로워야 하는데 막상 준비할 일이 적진 않다. 러시아문학 강의에 한정하더라도 푸슈킨과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강의를 한꺼번에 진행해야 해서인데, 간판 작가들인 만큼 언제나 참고자료가 차고 넘친다. 연휴에 프린트한 것만 하더라도 책 두권 분량이다. 게다가 단행본들까지 더하면 꼬박 일주일을 투자해도 모자랄 정도다.

예전에 봤던 책들도 다시금 들춰보게 되는데 가령 파이지스의 <나타샤 댄스>나 앤드류 윌슨의 평전 <톨스토이> 등이 그렇다. 러시아문학 번역자인 로버트 챈들러의 <푸슈킨> 같은 책을 푸슈킨 관련으론 새로 구했고, 고전적인 책으로는 어니스트 시먼즈나 빅터 테라스의 러시아문학 연구서들도 다시 챙겼다. 러시아문학 강의야 앞으로도 오랫동안 하게 되겠지만 가능하면 ‘심화편‘을 수년내로 펴냈으면 한다. 올해 목표로 하는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강의에 뒤이은 책이 될 수 있겠다. 러시아문학 강의의 독자가 그 전끼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조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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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러시아 작가의 신작에 대해 적는다. 블라디미르 코롤렌코의 <맹인 악사>(문학과지성사)가 대산세계문학총서의 하나로 출간되었다. 사실 작가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문학사에 나오므로) 나도 작품을 읽어본 적은 없다. 1853년생으로 체호프(1860년생)보다 생년이 조금 앞서고 활동은 비슷한 시기에 한 작가다. 즉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 활동한 작가로 리얼리즘 세대 대표작가들과 그 다음 세대(고리키나 부닌 등)를 이어준 중간 세대쯤 된다. 이제까지는 러시아단편 선집에 한편이 실려 있던 정도.  
















이번 <맹인 악사>에 실린 건 네 편의 중단편으로 그의 대표작이라 소개된다. 동시대인들의 평가는 이렇다. 


"자유와 정의를 사랑하고 지향한 작가는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억압과 부정이 넘쳐나는 당대 현실에 대한 저항과 극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이러한 코롤렌코를 향해 당대 작가들의 찬사 또한 이어졌다. 부닌은 러시아인들 사이에서 문학과 삶을 너무나 풍요롭게 만드는 거인처럼 건강하게 살고 있는 아름답고 순결한 코롤렌코 덕분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고 했고, 고리키는 나는 많은 문학가와 친해졌지만 그들 중의 어느 누구도 내가 블라디미르 갈락티오노비치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존경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이지만 나의 스승이었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것이 자랑스럽다고 고백했으며, 체호프는 맹세컨대 코롤렌코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다. 나란히 걷는 것뿐만 아니라 뒤따라가는 것조차도 기분이 좋다라고 회상했다."


올해도 러시아문학 강의가 계획돼 있지만, 주로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간판 작가들을 다루기에 코롤렌코는 따로 꾸려야 한다. 19세기말 러시아문학이 좀더 소개된다면 같이 다뤄볼 수 있겠다. 읽을 책은 아직 많은데 손은 점점 굳어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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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모스크바의 지젝과 바타유

10년 전 오늘은 모스크바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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