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파우스트> 새 번역본이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는데 무려 ‘전집‘의 첫 두 권으로 출간되었다. 전영애 전 서울대 교수가 옮긴 <파우스트>(길)다. 향후 10년간 20권으로 구성된 ‘괴테 전집‘ 출간계획도 이번에 밝혔다. 과거에 괴테학회 차원에서도 전집을 내다가 흐지부지되고 말았는데(작품 전집이었음에도 그랬다) 이번에 기획된 전집은 훨씬 방대한 규모다. 역자에 따르면 1인 괴테 전집은 전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미 많은 번역본이 나와있는 터라 <파우스트> 번역의 의의는 새삼스러운데 역자는 대부분 운문으로 된 <파우스트>를 가급적 ‘운문처럼‘ 옮기고자 했다. 원작의 운문적 리듬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시도한 것이다. 아마도 <괴테 시전집> 번역의 경험이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 그렇게치면 운문 <파우스트>의 적임자이기도 하다(시인이자 독일시 전공자인 김재혁 교수의 번역본은 펭귄클래식판으로 나와 있다).

좋은 시도기 항상 좋은 결과에 이르는 것은 아니지만(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운문번역 시도를 고려하건대) 이미 다수의 번역본이 나와있는 상황에서는 이번 시도가 충분히 높이 평가할 만하고 본다. 이미 여러 번 읽고 또 강의에서도 자주 다룬 작품이지만 첫 번역 시도이기에 처음 읽는 작품인 것처럼 읽어보려 한다. 더불어 무탈한 전집 완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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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전업강사이자 서평가의 일상인데 거기에 독서가의 욕심까지 보태지면 읽는 책은 수십 권으로 불어난다. 책상과 식탁, 그리고 침대에 쌓여 있는 책이 그렇게 수십 권이다. 물론 책장과 방바닥에 있는 책들도 언제든 눈에 띄는 대로 소환된다. 손택의 일기와 노트를 묶은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이후)는 방바닥에 쌓여 있다가 소환된 책. 지난주엔가 주문했던 원서를 받은 참이라 생각이 나서 펴보았다. 첫 문장에서 깼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는 자서전을 쓸까, 하는 생각을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손택의 말이 아니라 엮은이인 아들 데이비드 리프의 말이다(아들이 상속자이자 편집자이니 작가의 운명으로는 나쁘지 않다). ‘깨작거리기 시작했다‘가 무얼 옮긴 것인지 찾아보니 ‘toyed‘를 옮긴 것이다. ‘열없이 깨작거리기‘는 toyed desultorily‘란 옮긴 것이고. 의미야 다의적이어서 번역에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말 ‘깨작거리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만 갖고 있는데 아들이 어머니에게 쓸 수 있는 말인가.

‘toy‘는 동사로는 ‘만지작거리다‘의 뜻을 갖고 있고 ‘desultorily‘는 ‘산만하게‘‘띄엄띄엄‘ 등이 사전적 의미다. 내가 옮긴다면 그냥 ˝자서전을 써볼까란 생각을 이따금 내비치셨다˝라고 했겠다.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는 너무 강한 문체적 표현이고 뉘앙스도 너무 부정적이다. 이런 번역은 역자를 의식하게 된다. 번역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으면 역자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닌가 원문을 찾아보게 되는 것. 번역자의 존재를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번역론의 유구한 문제지만 나는 필요할 때 드러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물러나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 입장이다. 번역자의 처세술이다.

손택이 깨작거렸다는 문장에 놀라 급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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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9-01-01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깨작거리기‘라는 제목에 놀라 급하게 읽고 생각없이 좋아요 했다가 급하게 좋아요취소 했습니다. 내용은 공감하지만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공개적으로 번역자를 까대시는 것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서재의달인답지 않은 처세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댓글을 남기는 것도 저답지않은 처세입니다만.

로쟈 2019-01-01 20:46   좋아요 3 | URL
네 요즘은 번역에 대해 자주 시비하지 않는데 역자의 선택이 의외여서 다른 의견을 적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아침부터‘는 피했습니다.

카키모카 2019-01-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좋은 지적 같네요. 안지는 별로 안됐지만 서재 잘 보고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9-01-03 22: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분홍돌고래 2019-01-11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번역어 선택에 대한 의견 제시는 번역자를 ‘까대는‘ 것과는 층위가 다른 일이라 봅니다. ‘깨작거리다‘는 보통 부모나 선생 등 연장자의 행위를 묘사하거나 설명할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올해 제59회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들이 발표되었다. 예삼과 본심에 참여했고 번역부문의 심사평을 맡아서 적었다. 올해 번역상은 대작 <카를 마르크스>(아르테)를 옮긴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에게 돌아갔다. 심사평을 옮겨놓는다. 



59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 심사평


올해 번역 부문 심사는 수월하게 합의에 도달했다. 번역자의 역량과 번역서의 의의 양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카를 마르크스’를 수상작으로 지목하는 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번역자의 역량으로는 지속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노승영 번역가가, 번역서의 시의성으로는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가 호평받았다. 하지만 마르크스 평전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저작을, 마르크스 생애와 사상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완역해 낸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노고는 특별한 상찬을 받기에 충분했다.


홍 소장은 일찍부터 주류 경제학의 협소함에 반대해 경제학(이코노미)의 어원적 의미('집안 살림'을 뜻하는 '오이코노미아')에 충실한 새로운 경제학을 탐색해 왔다. ‘거대한 전환’ 등 칼 폴라니의 대표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동시에 ‘살림살이 경제학’의 구상을 담은 저작도 펴냈다. 경제학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번역 작업에 남다른 열정을 쏟아 부은 그의 노고 덕분에 일반 독자도 경제의 근본 문제와 자본주의에 대한 심화된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카를 마르크스’ 번역도 그 연장선상에서 의의를 가늠할 수 있다.


개러스 스테드먼 존스의 ‘카를 마르크스’는 이제까지 나온 마르크스 평전 가운데 가장 방대한 분량이다. 마르크스와 그의 시대를 면밀하게 재구성함으로써 마르크스에 대한 섣부른 우상화, 조야한 비판에 맞설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준다.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이 갖는 의의의 재평가가 가능해진다. 역자는 서문에서 그 의의를 ‘프로메테우스 마르크스’에서 ‘시시포스 마르크스’로의 전환으로 집약한다.


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제우스의 불을 훔쳐다 준 은인이자 해방자다. 반면 시시포스는 제우스의 분노를 사서 무거운 바위를 산정까지 밀어 올리는 천형을 받았으나 거기에 굴하지 않는 의지의 화신이다. 그러한 시시포스의 형상은 비단 마르크스뿐 아니라 번역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무리 많은 문장을 옮겼더라도 다시금 새 문장 앞에 직면하는 존재가 번역자이기 때문이다. 이 방대한 책을 우리말로 옮긴 홍 소장의 번역상 수상을 축하하며 더불어 우리 시대 번역자들께도 경의를 표한다.


18.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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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자 한겨레에 실은 칼럼을 옮겨놓는다. 언젠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판본 문제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문학기행차 독일에 오면서 이 문제를 다시 짚어보았다. 오늘은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하여 괴테하우스(괴테의 생가)를 방문하고 내일은 <베르테르>의 공간적 배경인 베츨라를 찾아볼 참이다. 그리고 모레는 바이마르로 이동하려고 하니 이번 문학기행의 1/3이 괴테와 관련한 일정이다. 독문학에서 괴테의 비중과 위상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일이기도 하다...

한겨레(18. 10. 19) 우린 어떤 베르테르를 읽어왔나

한국에 가장 많이 번역된 독문학 작품이라면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단연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하 베르테르)을 꼽을 수 있다. <젊은 베르터의 고뇌>라는 제목의 번역을 포함해서 과도한 중복 번역의 사례로 지목될 만큼 많은 번역본이 나와 있다. 1774년 괴테 나이 스물 다섯 살에 발표된 <베르테르>는 알려진 대로 대단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괴테 자신의 운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게다가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그러하지만 베르테르 역시 작가보다 더 유명한 주인공의 하나다.

그런 <베르테르>를 어떻게 읽고 이해할 것인가.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은 괴테의 <베르테르>가 두 가지 판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1774년에 나온 초판과 1787년에 나온 개정판이 그것이다. 초판본이 나온 이후에 오·탈자를 교정한 판본들이 더 나왔지만 적극적인 개고 과정을 거쳐서 나온 1787년판을 통상 결정판으로 간주하며, 대부분의 한국어판 <베르테르> 역시 이 1787년판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두 판본 간의 차이가 사소하지 않다면, 그리고 출간과 함께 독일을 포함하여 유럽 독서계에 충격을 던진 작품은 1774년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판본의 문제는 좀 더 세심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두 판본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한 여주인을 사랑한 하인의 에피소드가 초판본에는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베르테르에게 치명적인 사랑의 모델이 되는 인물을 괴테는 개정판에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다. 베르테르는 이 하인을 세 차례 만나는데 그때마다 사랑의 단계에 대해서 알아나간다. 처음 만났을 때 베르테르는 여주인에 대한 하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하여 진정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한다. 베르테르에게 연애 경험이 없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하인은 새로운 경지의 사랑을 그에게 일깨워준 것이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나서 사랑의 감정을 키워나가는 것은 하인과의 만남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마치 사랑의 교사 같은 역할을 하는 하인의 존재는 로테에 대한 베르테르의 감정을 모방적인 것으로 읽게 한다. 하인은 여주인에 대한 연모의 감정이 탄로 나서 여주인의 오빠에게 해고당하고, 이후에 자신을 대신하여 여주인을 모시게 된 다른 하인을 질투심에 살해하고 만다. 베르테르는 살인범으로 체포되어 끌려가는 하인을 보고서 애통해하며 적극적으로 변호하고자 한다. 동병상련을 느끼며 베르테르가 자신의 운명을 하인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장면이다. 더불어 그의 감정이 자발적이거나 직접적이라기보다는 모델에 의해 매개된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이러한 설정이 빠져 있는 것이 1774년판이다.

주인공 베르테르가 세계문학사상 가장 섬세한 감정의 소유자로 등장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가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모델의 행동을 흉내 낼 뿐인지는 중요한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 차이는 괴테도 의식했을 차이다. 개정판을 낼 무렵의 괴테는 이미 30대 후반으로, 1786년부터 1788년 사이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서 고전주의자로 변모해가던 괴테다. 초판본을 내면서 ‘질풍노도‘ 운동의 대표자로 떠오르게 되는 젊은 날의 괴테와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된 괴테이기도 하다. 개정판 <베르테르>가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판본이라면 초판본과는 구별해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여겨진다. 우리가 어떤 <베르테르>를 읽어왔으며 또 읽고 있는 것인지부터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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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온 2018-10-19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침 제가 읽고 있는 책에서 베르테르를 거론하고 있네요.

로쟈 2018-10-19 12:12   좋아요 0 | URL
즐독하시길.~

그렇게혜윰 2018-10-1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3권이 1774년 판본이군요. 개정판을 읽어봤으니 셋 중에 한 권 읽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로쟈 2018-10-19 12:12   좋아요 0 | URL
1774년판 번역은 보물창고판 1종밖에 없어요. 나머지는 모두 개정판 번역입니다.

그렇게혜윰 2018-10-19 15:56   좋아요 0 | URL
혹시몰라 책정보 보니 원작이 1774로 되어 있길래 다 그런 줄 알았는데요?? 그럼 알라딘에서 정보 수정을 해야겠네요!

카알벨루치 2018-10-1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괴테가 초판본을 내고 사회적인 반향이 너무 커서 자신도 놀랬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독자들의 리액션때문에 작품이 달라질수도 있는군요 귀한 정보 감사합니다 그리고 늘 감사합니다~로쟈님

로쟈 2018-10-19 14:13   좋아요 1 | URL
네 케스트너(작품에서 알베르트)도 초판본에서 더 부정적으로 그려지고 개정판은 케스트너와 사를로테 부프(로테) 부부를 고려해서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렇게혜윰 2018-10-19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보니 모두 원제1774로 나오네요. 제목만 1774인가 봅니다^^;;;
 

이디스 워튼에 관한 페이퍼를 몇차례 쓰면서 자연스레 <순수의 시대>도 노출하게 되었는데, 강의에서 주로 쓰는 건 민음사판이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번역에 오류가 많다. 강의를 이미 진행중이라 되물릴 수도 없어서, 그리고 혹시나 이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 적자면, 현재 가장 나은 번역본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열린책들판이다. 문예출판사판이 그 다음이고, 민음사판과 펭귄클래식은 최악을 두고 다툰다. 그래도 골라야 한다면 최악은 펭귄클래식이다(내가 검토한 게 이 네 종이다).

세계문학전집은 작품마다 편차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어느 출판사 전집이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민음사전집과 펭귄클래식에도 좋은 번역본들이 있다. 그렇지만 <순수의 시대>는 평균 이하이고 두 전집에 민폐라고 생각된다. 여하튼 번역자의 경력을 고려하면서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을 보통 교재로 쓰는데 그래도 함정이 있다는 걸 확인한다. <순수의 시대> 번역본 문제는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좀더 자세히 적도록 하겠다(장담은 못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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