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리하고 옛날 파일들을 뒤적거리다가 '창고'에나 들어갈 만한 걸 발견했다. 8년전 조교 시절에 쓴 것인데, 옮겨놓는 것은 (연말을 맞이하여 쓴) 1. '30세의 겨울, 혹은 97년을 보내며'와 (대학 신입생들에게 주는) 2. '98학번, 혹은 이제 막 꽃피는 나무들에게'이다(98학번들? 이젠 대부분 졸업했다!). 격세지감(혹은 만사지탄?)이 좀 있긴 하지만, '서른의 추억'을 한번 더 되새겨본다...   

 

 

 

1.

대학 생활에서 12월은 한가한 계절이 아니다. 분주하다. 그런데 그 분주함은 6월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12월의 분주함은 어딘가로 떠나기 위한 분주함이 아니라 떠나간 것들을 다잡아서 추스리기 위한 분주함이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떠나간 것들이 다시 돌아올 리는 만무하지만, 그런 분주함의 기억이 사소한 위안이 될 수는 있으리라. 혹은 이런저런 궁색한 자기변명을 조금이라도 거들어 줄 수는 있으리라. 그런 분주함의 시간이 이제 두어 주 남았다...

는 식으로 나는 쓰지 않겠다. 이젠 그럴 나이가 아닌 듯싶다. 나는 나날이 분주하고 나날이 한가하다. 12월이라고 예외가 아니며, 97년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하려고 했던 것, 물론 다 못했다. 반도 못했다. 하지만 후회나 반성은 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98년엔 나아질까? 나도 또 익숙한 희망에 마음이 들떠본다. 대충 그런 식이다. 다만, 그런 식에 간혹 감동할 때도 있다는 것만을 말해 두기로 하자. 우리의 생활은 보기 보다 따분한 만큼, 한편으론 감동적이니까.

  

 

 

 

무엇이 감동적인가? “인간들아,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항상 뒤를 쫓아다닌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향기를 맡아보아라.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는 시구를 인용하며 한 영화감독은 이런 말은 한다: “나는 영화 속에서 순간순간의 존엄성을 다루고자 했다.” 나는 이런 문장들에 감동을 받으며 밑줄을 그어둔다. 또 이런 것: “즉 인간은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는 것이며, 이성이란 아무렇게나 살 수 없다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날 한 일간지의 외신란에는 프랑스에서도 스웨덴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신박약 여성들에게 (불법적으로?) 불임수술을 해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약 1만 5천명 가량이 그런 수술을 당했다고, 그래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나는 한편으로 생각한다. “정말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과연 선진국은 다르구나!” 또 무엇이 감동적인가?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비가 내린 다음 수요일이 죽어갔다 나는 그리운
햇볕 한 조각 만나지 못하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죽어갔다
세상의 물빛 머금은 모든 것들은 경건한 자세로
꽃을 피울 태세였지만 꽃의 어깨를 건드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그리고 주말까지 계속해서 비가 내려 습기찬 들판이거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팔짱을 낀 채 들꽃이 죽고 들꽃의 視線이 죽고
자막처럼 빠르게, 자동차들은 거리를, 물방울들을
튕기며 사라져갔다
일주일간의 죽음 끝에 햇살은 輓章처럼 나부낀다 (박정대, '물질적 황홀 6'에서)

이런 시들이 감동적이다. 나는 자기 전에 몇 번이나 읊조리다가 잠이 든다. 그렇다. 내겐 “월요일이 죽고, 화요일이 죽고” 하는 날들이 그 옛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하던 날들보다 몇 배는 더 감동적이다, 기타 등등. 어쨌든 내가 이 자리에서 나열할 수 있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내가 97년에 만난 것들, 그리고 기억하고 있는 것들. 언젠가는 모두 희미한 추억으로만 남을 테지만, 나는 그것들을 사랑하였다...

 

 

 

 

아, 빼먹을 수 없는 한 여자가 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오는 아침 첫차 기찻간에서 도시락을 까먹고는 졸면서 삶은 계란을 먹으며 캔맨주를 마시던 여자. 턱에 살이 조금 붙은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 그리고 아마도 술집 여자. 말 한 마디 붙여보지 못했지만, 한동안 나를 감동시켰던 그 여자를 나는 또한 기억하리라. 97년에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헤어진 사람들 틈에서.

30세의 겨울을 맞으며 또 보내며, 어쨌거나 나는 이런 것들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잘 말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밖에 다른 일들은 비교적 사소해 보인다. 다음 주면 벌써 새 대통령이 결정되어 있을 것이고, 환율은 더 올라가 있겠지. 그리고는 온나라가 한동안은 떠들썩해질 것이다. 또 새해가 밝겠지. 올겨울엔 눈이 많이 내릴 거라고도 한다. 나는 어디 갈 일이 없을 것이다(아니다, 2월엔 이사를 가야 한다). 곧 98학번들이 재잘거리겠지. 삶이 다시금 봄눈처럼 푸석푸석 부드러워질 것이다. 우리들 주변에선 크고 작은 아이들이 계속 자라날 것이고, 햇살은 보기 보다 따뜻해질 것이다. 됐다, 그걸로 충분하다. 그런 생각에 나는 다시금 황홀해진다...

는 식으로 나는 쓰고 말았다. 후배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바가 있겠지만, 내 딴에는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어 쓴 것이다. 게다가 할 일은 얼마나 많은가! 조교 생활에서 12월은 결코 한가한 계절이 아니다. 남들처럼 리포트도 내야 되고, 성적 처리, 연말 정산도 해야 된다. 정말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도 싶지만, 그나마 돈도 없다. 방은 춥고, 나이 서른에 애인도 없다. 그저 하는 일없이 분주하기만 하다. 한심한 일이다. 그런 분주함의 시간이 아직도 두어 주나 남았다니!...

 

 

 

2.

내게 특별히 무슨 할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막 꽃핀다는데, 꽃피겠다는데, 그걸 두고 이렇다저렇다, 이래라저래라 참견할 수야 없는 일이 아닌가. 나이가 되어, 또 마침 볕이 좋아(요즘은 머리도 좋아야 한다고?) 꽃피는 시절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막무가내인 것이어서 우리네 두 팔을 다 벌려봐도 사방팔방이 다 빈틈이요 구멍이다. 그런 일을 두고 중과부적(혹은 오리무중)이라고 한다, 아무려면.

 


 

 

 

  

 

 

일월 송학에 이월 매조에, 칠월은 횡재수, 오월은 술 아니면 떡이라

팔월 공산에 어느 님 만나 이 한시절 삼월에 산보하랴마는

淑아, 물고기같이 동그란 눈뜨고 일하러 같던 누이가 눈맞아 돌아오지 않던 그 길

- 인생은 그 날이 꽃과 같아 (함성호, '고향집, 폐허'에서)


하여간에 다시 생각해보면, 내게도 분명 그런 시절이 있었건만, 새삼스럽게도 분명 이곳은 이제 어제 놀던 꽃그늘이 아니다. 정말 꽃향기에 취해 세월아 네월아 꿈결에 묻혀가던 시간들이었는데(다 지나간 일들인데, ‘좋게’ 말하자. 어느 시인의 말을 빌면, 지나간 일은 일도 아니라니까), 어느덧 나는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말을 해도 농담이 아닌 나이가 되어 버렸다. 그런 내가 굳이 이런 자리에서 몇 마디 거들어야 한다면, 그건 무슨 책임감에서라기보다는 억울함 때문이라는 걸 먼저 분명히 밝혀두어야겠다.

 

그렇다. 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스물 한두 살에 ‘잘가라, 내 청춘…’을 입에 달고 다니긴 했지만, 그런 말이 이젠 겉멋이 아니게 되어 버린 것이다(이젠 내가 그런 소리를 하면, 우리 97학번, 98학번들은 진담으로 알 것이 아닌가!). 울며 겨자먹기로 요즘은 ‘나이 서른에 아직…’이란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그래서 좀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내 스무 살, 푸른 영혼’이라고 떠벌릴 수 있는 그대들이. 아직 여드름이 다 가시지 않은 얼굴에 나보다 밥도 많이 먹는 그대들이. 내친 김에 연애도 많이 할 그대들이(아이도 많이 낳을?). 비록 경제는 거지꼴이지만, 자유를 숨쉴 수 있는 시대에 청춘을 맞이한 그대들이.

 

하여간에 이유를 붙이자면 한정이 없겠지만, 결론은 부럽다는 것이고, 그대들이 잘났다는 것이다(여기 ‘잘났다’에서 ‘잘’은 타이밍을 말한다. 굳이 덧붙이지면, 이 타이밍은 재능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자, 이 정도면 나는 제법 예의를 차린 것이 된다(이제 막 꽃피는 나무들을 기죽이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다). 그래, 내친 김에, 부디 잘 살아다오, 성공을 빈다, 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를 보게 하라, 등등등. 아직 자신의 정서적 발육이 미진하다고, 그래서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는 98학번은 여기까지만 읽어주기 바란다. 안녕!


내게 특별히 무슨 할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죽하면. 개인적인 얘기지만, 언제였던가 87년, 나는 20세(만19세)의 대학 신입생이었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꿈도 없었다. 이른바 5공화국 말기였고, 세상은 개판이었다(무서운 일이지만, 그런 세상도 죽치고 있다보면 정이 든다). 야외수업을 하던 어느 볕좋은 봄날 나는 한 친구에게 “너는 왜 죽지 않니?”라고 쓴 쪽지를 건넸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선 세상이 빨리 끝장나기만을 빌었다. 요컨대 나는 얼치기였고 바보였고 멍텅구리였으며 개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꽃이 피기도 전에 꽃핀 나무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너무 많은 걸 알아버렸고 겉늙어버렸다.

 

성숙한 98학번들에게만 하는 얘기지만, 사실 근본적인 사정은 이제나그제나 다를 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여러분도 얼치기고 바보고 멍텅구리다(‘성숙’이란 건 그런 사정을 요리조리 잘 견뎌낸다는 뜻이다). 한두 가지 정도 개보다 나을까, 그것도 많이 봐줘서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 그런 그대들이 부럽다는 건 말짱 거짓말이다. 그저 겉멋이거나 한때의 기분일 뿐인 것(이런 말이 있다: “내가 너라면 자살한다!”). 사실대로 말하자. 나는 그대들이 딱하고 불쌍하다(그런 생각만 하면 잠도 오지 않는다). 그대들은 앞으로 꼬박 10년을 더 고생하며 늙어야 비로소 30대가 되는 것. 그때까지 그대들의 스무 살, 푸르죽죽한 영혼은 되지도 않는 고민거리들로 바람잘 날이 없을 것이다(그런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조금 걱정이 되지 않는가? 내가 몇 마디 거들려는 부분은 바로 이 대목이다. 

 


 

 

 

 

 

 

나이가 좀 어리기 때문에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아침 저녁으로 만지는 책상, 좀전에 같이 앉아 있었던 별로 말이 없는 고향 친구, 며칠 전에 내 손가락을 물어뜯은 하숙집 개의 이빨의 촉감, 이런 것들 말이다. 늙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 집어 넣어준 돌자갈 같은 관념들을 바닷물 속에 쏟아버린 후로는 늘 멍청해서 거리를 걸어다닌다.(이제하) 


나는 개에게 물려본 적이 없지만, 이 한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비록 요즘은 믿는 구석이 많아졌지만(늙어가는 징조이다). 하여간에 중요한 것은 자기가 믿을 수 있는 것이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세상을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하고, 다시 만들어나가기 바란다. 그래서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만들어나가기 바란다. 우리가 진짜 성숙한다는 것, 그래서 개보다 나은 인간이 된다는 것(내가 보기엔 이것이 인문학의 목표인데)은 오직 그런 ‘다른 삶’ 속에서만 가능하다. 생은 다른 곳에 있다는 어느 시인의 말을 나는 그렇게 새기고 있다. 언젠가 그런 다른 삶 속에서 그대들은 예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전혀 다른, ‘위대함’에 대한 전혀 다른 비전을 가진, 추운, 추운 나라의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어떻게 오는가?

 

 

 

 

 

 

이제는 세상을 떠난 내 아버지에게는 세상을 모두 내버린 자의 무서움이 있었다(主여, 亡者에게 평안함을 주소서). 그는 하해(河海)와 같은 억겁의 술을 마시며 그 괴로운 세월들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겨울의 새벽 4시에 통금해제 사이렌이 울리면 소년인 나는 내 아버지의 쓰라린 위장을 위하여 남비를 들고 시장거리로 가서 가슴에 안고 돌아오곤 했다. 어느 겨울 새벽에 나는 해장국집 문지방에 낀 얼음 위에 자빠져서 끓는 국물을 뒤집어쓰고 허벅지에 화상을 입었다. 나는 선지와 콩나물을 바지에 뒤집어쓰고, 빈 남비를 들고 춥고 어두운 새벽거리에서 울었다. 나는 이 세월들과 내 아버지의 생애를 뛰어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이를 갈면서 울었다(主여, 亡者를 당신의 품 안에).(김훈)


나는 해장국 심부름을 한 적은 없지만, 허벅지에 화상을 입은 적은 있고 또 당연히 이를 갈면서 울어본 적도 있다(한번쯤 이를 갈며 울어보지 않은 98학번이 혹 있더라도 좌절하지 말 것. 기회는 두고두고 온다!). 그래서 이 또다른 한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아버지의 생애를, 선배의 생애를 뛰어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없이 어물쩍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 98학번에게는 달리 할말이 없다(부디 잘 살아다오, 성공을 빈다). 그럼 이제 몇이나 남았는가? 이쯤에서 남아있는 그대들에게 나는 선배로서의 사랑과 기대를 표한다. 물론 이 사랑과 기대는 이제는 운명이 되어버린 한 ‘선배’로서의 책임감에 빚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책임감을 고마움으로 바꿔나가는 것은 그대들의 몫이다.

 

쑥쓰러운 얘기는 그만 줄이도록 하자. 입에 발린 소리지만, 거듭 이 새(배움)터에 오게 된 것을 축하하며 환영한다. 곧 같이 늙어갈 날이 있을 것이다...

 

05. 12. 08.

 

P.S. 작년 모스크바 체류시절 룸메이트가 98학번이었다. 우리는 같이 생활하면서 1년간 이미 같이 늙어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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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12-08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 그 시절의 로쟈님이 더 맘에 들어요. 으하핫.

로쟈 2005-12-08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늙어가는 게 더 맘에 듭니다. 어디 쑤시고 고장나는 거 빼고는...

비로그인 2005-12-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 진창 마시고 하룻밤 샌 다음 초췌한 얼굴로 올라와 과방에 앉았을 때 만난 선배가 해주는 지난 청춘의 이야기 같아요. 쯥. 후후후...

2005-12-09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2-0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간 세월'에 대한 한담에 감회들이 있으신가 보군요.^^ 금요일 마저 죽이시고, 즐거운 주말들이 되시길...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목의 시구는 김수영의 것을 비튼 것이다. 그는 1960년 10월, 4.19의 흥분이 가라앉을 무렵에 '그 방을 생각하며'란 시를 썼다. 주말 3일을 무슨 고아원에 아이들을 갖다 맡기듯이(시원섭섭하다!) 책들을 옮겨놓는 데 쏟아부은 내가 막간에 잠시 떠올린 시가 '그 방을 생각하며'이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그 방의 벽에는 싸우라 싸우라 싸우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어둠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내가 의도했던 건, 내 방을 딸아이의 방으로 만드는 '혁명'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혁명은 안되고 나는 책들만 옮겨놓았다. 지난주에 내내 '책 빼라 책 빼라 책 빼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귓전을 맴돌았고, 다행히 시화공단 내 한 사무실에 여유공간을 얻어서 책을 갖다 쌓아놓게 됐지만, 지난 금요일 막상 책을 빼면서 내가 떠벌인 '혁명'이란 게 얼마나 헛소리였는가를 절감했다(물론 주변의 그 싸늘한 시선이라니!). 2,500권 가량을 빼서도 그 모양이니 애당초 2,000권 정도의 책을 뺀다는 게 턱도 없는 견적이었다(참고로, 몇 군데 분산돼 있긴 하지만, 어림짐작에 나의 장서수는 대략 8,000권 안팎이다). 아이의 방을 만들어주려고 했던 책방은 이런 모양새였다.

짐을 싸던 중간에 집사람이 디카로 찍은 사진인데, 이후에 사진에서 보이는 책의 1/3 정도가 더 끈으로 묶여서 박스로 들어갔지만 옆방 서재의 책들이 다시 대거 이사오는 바람에 결국엔 3면의 책장 9개(5단 3개, 3단 6개)를 그대로 보존하게 되었다. 해서, 내가 들은 건 혁명의 노래가 아니라 구박의 합창이었다.

나는 모든 노래를 그 방에 남기고 왔을 게다
그렇듯 이제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메말랐다
그 방의 벽은 나의 가슴이고 나의 사지일까
일하라 일하라 일하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도 하느라고 해가며 책을 빼왔지만(사진은 3/4쯤 작업이 진행된 모습), 쌓아도 쌓아도 딸아이의 방은 비워지지 않았다(조이스의 <율리시즈>도 베르그송의 <웃음>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졌다). 그리하여 이제 나의 가슴은 충분한 이유로 메말랐다. 책을 싸주러 오신 아버지의 말씀(사진에서 아버지의 손이 보인다. 쌓아올린 책들은 모두 아버지 혼자서 묶으신 거다. 참, 장인 어른도 잠시 다녀가시고. 나는 책 빼오는 일만 했다):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한테 방도 못 만들어주고 네가 아빠냐?" 그리고 조용히 덧붙이시길, "한심하다!" 비록, "책 빼라 책 빼라 책 빼라"라는 말이 헛소리처럼 아직도 나의 가슴을 울리고 있지만, "나는 그 노래도 그 전의 노래도 함께 다 잊어버리고", '겨우 이럴려고 책을 뺐어?"라는 핀잔을 가슴에 묻은 채 사태 수습에나 매진했다. 그게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밤까지였으니...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나는 인제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 -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
이 가벼움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결국 혁명은 안되고 나는 책들만 옮겨놓았다. 나는 인제 아직은 녹슬지 않은 펜과 뼈와 광기(집사람은 정신과에 예약해 놓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망의 가벼움을 재산으로 삼을 줄 안다(비록 아내의 실망은 무거울지 모르나). 혹시나 역사일지도 모르는, 하지만, 나의 이력임에도 분명한 이 가벼움을 나는 나의 재산으로 삼았다. 왜 흔히 하는 말이 있잖은가? 키크고 싱겁지 않은 사람 없다는.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었지만
나의 입속에는 달콤한 의지의 잔재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
방을 잃고 낙서를 잃고 기대를 잃고
노래를 잃고 가벼움마저도 잃어도

해서 다시, 혁명은 안되고 나는 책들만 옮겨놓았지만, 나의 입속에는 딸아이의 달콤한 뽀뽀 대신에 다시 쓰디쓴 냄새만 되살아났지만(도망가는 딸아이!), 방을 얻은 대신에 기대를 저버렸지만... 

이제 나는 무엇인가 모르게 기쁘고
나의 가슴은 이유없이 풍성하다
 

 

 

 

 

딴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차피 결딴난 일에 대해서 굳이 미련한 미련을 남겨두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유없는 기쁨과 풍성함의 비결이 아닐까? 어제 녹초가 되도록 다시 정리해둔 방에서 나는 '고아원'에 간 책들에 대한 안쓰러움보다는 살아남은 책들을 쓰다듬어보는 기쁨을 택하기로 했다. 그 사이에도 딸아이의 꿈은 자라나 이젠 자기 방뿐만 아니라  마당이 넓은 집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빠, 돈 많이 벌어야돼!" 그 당부의 말을 나는 아이의 혼잣말로 간주하여 대답없이 방을 나왔다(나는 마루에서 잔다). '마당 깊은 집'은 알겠는데, '마당 넓은 집'이라?..  

05. 12. 5.

P.S. 책을 빼면서 얻은 교훈 중 하나는 책을 읽고 정리한/소화한 만큼 책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앞으론 좀더 많은 책을 좀더 빨리 읽어치울/먹어치울 작정이다(그러자면, 일년에 책 10권 분량은 써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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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5-12-05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아원'으로 간택되지는 못했지만, 간택을 기다리면서 '책 2500권을 어떻게 쌓지?"라고 상상하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로쟈 2005-12-05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또 깨달은 거지만, 한 사람이 책을 좋아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민폐를 입게 되더군요. '즐거운 악몽'은 아니셨기를.^^

blowup 2005-12-05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귀여운 페이퍼라... 읽으며 웃음이.^.^ 특히 앙증맞은 마지막 사진을 보며... 푸하.

프라즈나 2005-12-05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중국 禪宗의 어느 고승이 깨닫고 난 다음, 수많았던 경전들을 모조리 다
불태워버렸다는 고사가 생각나네요..^^ 정리한 만큼 자유로웠다는 것은 깨달음(?)의 경지이신가요? ^-^..

바람구두 2005-12-06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서 연구실을 장만하시게 되길....

로쟈 2005-12-06 1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u님/ 제 주변 사람들도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라즈나님/ 그 지경에 이른 깨달음이지요. 바람구두님, 의 연구실을 언제 구경하고 싶군요.^^

cawa92 2005-12-14 0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방문했는데,,, 언제나처럼 그냥 나가려다,,, 차마 찢어지는 마음을 가누질 못하고 위로랍시고 한마디 던지려고 폼잡다가,,, "니나 잘 하세요.."란 금자 언니의 일갈이 떠올랐습니다.... 줄기세포 제공원이 난자가 아니라 딸깍발이들의 기형적 뇌세포였다면 어떨까,, 하는 낭설만 뱉고 갑니다... 라훌라~~

로쟈 2005-12-1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wa님/ 어문데 걱정말고 니나 잘하세요(우울증 조심하고).^^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은 8년전 여름에 쓴 것으로 '모스크바 통신'에 옮겨놓은 바 있지만, 이미지-버전으로 다시 옮겨놓는다. 지난번엔 분재했었기 때문에 일목요연하게 보기엔 좀 불편했다. 막 서른에 진입할 무렵에 쓴 것이기에 내게 '서른의 추억'이란 의미를 갖는 글이기도 하다. 회고적인 정서에 잠시 물드는 건 이제 본격적으로 연말이 시작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약간의 첨삭과 함께 군말을 더 집어넣도록 한다. 그럼, 어져, 시작해보도록 하자...

 

 

 

 

1. 어져 내 일이야... Oh, my business!.. (*그러니까, 나의 목소리는 황진이의, 여성의 목소리이다. 나는 여성처럼(like woman), 여성으로서(as woman) 말하고자 한다. 가능하며 불가능한.)

2. 먼저, ‘어져’에 대해서 말하여야 한다. ‘어져’가 전제로 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라는 두 시간적 계기이다. 그런데 이 두 계기는 따로 놓여 있지 않다. 그것들은 겹쳐 놓인다. ‘어져’는 이 겹쳐 놓임의 양태에 대한 평가적 발화의 한 가지이다. 두 음절의 이 발화가 집약하고 있는 것은 과거의 어떤 사건에 대한 현재의 안타까운 회한이다. 이 회한은 세계-내-존재로서의 유한한 인간이 이 세계에 지불하고 있는 자신의 몸값이며, 자기 삶의 무게이다. 현재의 우리는 간혹 목욕탕에 가 체중계에 올라서듯이 과거의 한 시점을 불러내어 닦아세운다. 자백해라, 왜 그랬더냐?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어리석음(=무지) 때문이었다(‘그릴 줄을 모로더냐?’). 이 어리석음이 과거가 저지른 과오이다. 그리고 ‘어져’는 이렇듯 겹쳐 놓인 어리석음과 안타까움에 대한 우리의 평가적 발화이다.

다음, ‘내 일’이란 건 ‘어져’가 포괄하고 있는 사태를 모두 뭉뚱그리는 말이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렇게 뭉뚱그려진 사태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저질러놓고 후회하는 일은 그것이 반복되면서 비로소 제값의 ‘일’(=업)이 된다. 그것은 내가 저질러놓은 일이면서 내가 끊임없이 저지르게 될 일이다(그래서 ‘내’ 일이다). 우리의 회한은 결코 우리의 어리석음을 구제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러니 어이하랴, 결국 어리석게도 나는 또 이런 일을 벌이고 있다. 이것도 비즈니스라고? 빌어먹을!

 

 

 

 
3.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로더냐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나는 중장의 ‘제 구태여’를 ‘제 구태여 가랴마는’이 도치된 것으로 읽는다(혹자는 ‘제 구태여 보내고’로 읽는다. *원래는 고어(古語) 표기로 인용했었는데, 여기서는 현대어 표기로 바꾸었다. 인터넷에 띄우면 곧잘 깨지기 때문에). ‘가랴마는’ 뒤에 (구태여) 덧말로 붙여진 ‘구태여’가 정치된 ‘제 구태여 가랴마는’의 ‘구태여’보다 효과적이다. 말의 기능면에서 그렇다. 여기서 ‘구태여’의 주체는 님이다. 즉 내가 가는 걸 말렸더라면(=그냥 가게 내버려둔 나의 과오) 구태여 님이(=지가) 떠났겠는가(=그리고 뒤늦은 회한), 라는 것이 중장의 내용이다. 종장의 ‘보내고 그리는 정’은 이 과오-회한의 구도를 그대로 집약하고 있다. 그리고 이 구도가 바로 서정(시)의 구도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단순한 서정이라면 흔한 서정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른바 기질지성(氣質之性)의 푸념을 조금 멋을 내어(‘나도 몰라 하노라’) 표현한 것. 나는 조금 더 복잡하게 읽고 싶다. 이른바 ‘복잡한 서정’이란 무엇인가? 다시 중장. 가는 걸 말린다고 해서 못 이기는 체 눌러앉는 작자를 님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님은 적어도 일류의 기녀(=황진이)라면 용납할 수 없을 님이다(품위가 떨어지는 님이기에 그렇다). 우리의 님은 (부여잡고) 말렸더라도 결단코/구태여 떠나갔을 것이다(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며). 그리고 우리에겐 그리움의 몫만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그런 님을 두고 짐짓 내가 가는 걸 말렸더라면 구태여 떠났겠는가, 라고 말하는 것은 이중의 전략이며 복잡한 서정의 결과이다.

어차피 떠나고 말 님을 이시라 하며 말리는 것은 성과가 없는 일일 뿐더러 정나미 떨어뜨리는 일이며 자존심만 구기는 일이다(이류들은 이런 일에 구애 받지 않겠지만). 그러니 그냥 가게 내버려두는 것. 이 사소한 과오 덕분에 나는 잘난 자존심과 님 그리는 정을 모두 지켜낸다. 그래도 이만한 어리석음(=과오)이라면 뒤집어쓰고 남을 만하지 않을까, 라는 계산이 바로 복잡한 서정이고 이중의 전략이다.


 

 

 

나는 이걸 달리 ‘유머’라고 부른다(내가 좋아하는 한 작가(=쿤데라)는 ‘좋은 기분’이라고 부른다). 유머란 우리 내부의 모순들이 우리를 쓰라리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지 못하도록 고양된 의식이다. 나의 자존심은 님을 떠나가게 할 수도 없고 눌러 있게 할 수도 없다. 이것은 모순이다. 이 모순을 쓰라리거나 불행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것(=길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어져 내 일’이다. 이 시(조)에서 ‘내 일’은 ‘돌이킬 수도 있었던 과거’, 그래서 ‘달라질 수도 있었던 현재’라는 어떤 다른 삶의 (희박한) 가능성을 불행한 현실과 대질시킴으로써 완료된다. 이 일로 물론 구제 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나는 지난주의 KAL기 사고를 떠올린다). 다만 어루만져줄 수 있을 따름. 그럼에도 이 어루만짐(=유머)은 소중한 것이며 오직 유한한 인간, 중간쯤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특권적인 라이프 스타일이다. 희랍인 조르바의 경우.

 

 

 



4. 조르바는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눈다. 먹은 음식을 비계와 비료로 만드는 사람, 먹은 음식을 일과 유머에 쓰는 사람, 그리고 먹은 음식을 하느님에게 돌리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고 자신은 가운데 부류에 속한다고 말한다. “저는 셋 가운데 가장 흉측한 녀석은 아닙니다. 주인님, 그렇다고 가장 훌륭한 축에도 못 끼고 그저 어느 중간쯤에나 끼겠지요. 내가 먹은 음식은 일이 되고 좋은 유머가 된다는 거죠. 결국 그만하면 과히 나쁠 건 없어요!”

5. 나쁠 건 없지만, 배는 고프다. 한두 달 전에 문득 ‘어져 내 일이야’란 시구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나는 이것이 새 시집의 머리에 오게 될 것임을 직감했다(그리고 이렇게 몇 시간을 투자한 것이다). 내가 호감을 가진 것은 이 시구의 품위이다. 따지고 보면, ‘아이고 내 팔자야’란 뜻에서 멀지 않지만 ‘어져 내 일이야’에는 그런 팔자를 관조하는 여유가 있다. 그런 여유를 나는 ‘품위’라고 부른다. 품위(品位)에서 품(品)자는 입구(口)자 세 개로 이루어져 있는 바, 품위란 세 식구(혹은 세 여자)를 먹여 살릴 만큼 자신을 세운 사람의 처지를 이른다(*나는 현재 세 식구의 가장이지만, 먹여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나는 당연히 그런 여유로운 처지에 놓여 있지 않다(그래서 조금 쓰라리다). 다만 그런 불운한 처지를 남의 일인 양 지껄일 수 있는 사소한 여유만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분명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었다!

 

 

 



6. 인간의 위대성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그러나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는 비참하다. 왜냐하면 비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단히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나는 <팡세>의 이 단장을 ‘파스칼의 변증법’이라고 부른다.)

7. 그러니 나를 만만하게 보면 안된다. 나는 내가 비참하다는 걸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자신에게 중얼거린다. “너는 물방개야, 아주 형편없는 자식이지!”(아, 나는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내가 요새 읽은 동료 위인전들. (a)“나는 여러 번 연기를 그만두려 했다. 내 안에는 정말 연기를 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 모든 일을 경멸하는 마음이 공존한다. 나는 왜 말론 브랜도가 연기를 그만뒀는지 이해가 간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들은 항상 내가 다른 누군가, 무엇이기를 바란다. 왜 그저 재미없고 뚱뚱하고 늙은 놈이면 안되는 거지?”(게리 올드만) (b)“난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남편과 이혼하려 하지 않았으며 나도 아내와 이혼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춥고, 난 혼자다. 삶 그 자체는 내가 바라는 바에 적합하지 않았다. 난 바라는 것이 많은 이기적이고 멍청하며 개보다 나을 것이 없는 존재이다. 내 운명은 내게 당연하다. 가난은 증오스럽고 광기는 굳건하며 결국 난 끝장이다. 난 끝장이다.”(줄 파스킨)


 

 

 

8. 나의 경력.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어쩌다가 내가(그리고 우리가) ‘죽음에의 존재’(Sein zum Tode)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10년 후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이런 걸 읽었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밖에,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 있는가 어떤가, 이성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 다음의 일이다. 그런 것은 장난이다.”(참고로, 이런 ‘장난의 대가(大家)’에 칸트가 있다.) 나는 더 울지 않았다. 대신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시는 ‘입을 틀어막고 우는 울음’이란 말을 내가 했던가?).


 

 

 

“세계의 두꺼움과 낯설음, 이것이 바로 부조리다”(카뮈) 같은 건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그런 멋있는 시는 쓰지 못하고, 이후 10년을 더 살았다. 몇 권의 시집을 자비로 냈다. 한두 사람이 재미있어 했고, 많은 사람이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그렇다, 진실 혹은 냉담!(*마돈나의 자전적 다큐필름의 제목이 <진실 혹은 대담>이었다. 어젯밤 이곳 MTV에 마돈나 특집이 방송됐다). 바로 그것이 세상이 유지되는 원리이다. 이렇듯 너무 많은 걸 알았는데도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미치지도 않았다(아으, 냉담이여!). 삶은 행복을 위해서는 너무 길다(행복은 지레 지쳐버린다).



 

 

 

9. 아침마다 일어나고 (한)숨을 쉬고 집을 나가고 다시 집에 돌아온다. 많은 책을 사고 많은 영화를 본다(그렇다고 독서광이나 영화광은 아니다). 그리고 느리게 지나가는 삶의 시간을 본다. 이런 것이 변함없는 나의 현실이고 나의 삶이다. 아니 나의 현실-이미지이고, 삶-이미지이다. 우리가 가지는 것은 이미지일 뿐이지 현실이나 삶 자체는 아니다. 현실이나 삶의 리얼리티는 분명 어딘가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n차원(고차원)적인 어떤 것이어서 우리의 개념적 사유로는 도저히 잡아낼 수 없다. 개념적 사유, 즉 우리의 인식이나 이해라는 것은 n차원적(이론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유력한 n의 값은 10이나 26이다) 리얼리티를 3차원적 리얼리티로 변형하고 조작하는 작업에 의해 이루어진다. “보통 크기의 물체가 3차원에서 적당한 속도로 움직이는 세계”가 유일한 현실로 둔갑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아홉 가지건 열두 가지건 우리 이성의 인식범주가 동원된다. 이것이 내가 가진 인식론 그림이다(인식론에 있어서 나는 대략 칸트주의자이다).

이 그림에 의하면, 우리가 말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짜맞추는 것이다. 즉 우리는 현실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생산한다(나는 현실에 대한 일방적인 재현론이나 구성론에 반대한다). 여기서 현실-재현과 현실-생산은 단일한 존재론적 사태에 대한 기술로서 모순 없이 양립한다. 이들은 동의어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침마다 일어나고 (한)숨을 쉬고 집을 나가고 다시 집에 돌아오는 ‘나’는 내가 재현하는 나이면서 내가 생산하는 나이다. n차원적인 나는 거기에 없다. 나-이미지만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나를 대신하여 내 일을 말하고, 파스칼의 ‘이상한 변증법’을 말하고, 나의 경력을 말하고, 또 당신에게 말을 건다. 우리들은 모두 다 아주 외로운 존재들이라고.

Christopher Doyle

10. 난 사람들은 모두가 외롭고,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사람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또 다른 방법이다. 영화를 무슨 예술 같은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는 단지 사람들과의 대화, 일종의 연애편지 같은 것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안녕, 잘 있었니? 난 이렇게 지내고 있어”라고 말하기 위해 거는 전화 같은 것 말이다. 영화는 그런 것이다.(두가풍)(*두가풍은 왕가위의 모든 영화를 찍은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중국 이름이다.)

11. 시집을 만드는 일은 영화를 편집하는 일과 비슷하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러시-필름 속에서 필요한 장면을 끌어내 이렇게 저렇게 배열해 보는 것.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Le Pas Suspendu de la Cigogne)은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가 1991년에 발표한 영화(나는 보지 못했다)의 제목이다. 이 제목에 처음 시선이 닿았을 때 느꼈던 가벼운 흥분을 나는 기억한다. 이걸 새 시집의 제목으로 정한 건 작년 가을이다. 하지만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나로선 시쓰기에 모든 걸 집중할 수 없었다. 정말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나는 형편없는 자식이다). 지난 봄에 겨우 입막음 정도의 것을 썼다. 어떤 거냐고?

장대비가 내린 갈대밭에 먹물 같은 발자국이 찍힌다
버려진 빈 병 속에 모인 몇 알갱이 흙이 애써 기억을 더듬을 무렵
개굴치 한 마리 툭 뒷발질하며 물속으로 자맥질한다
너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모하였던가
뒤따르던 황새의 걸음이 문득 멈추어진다

어느새 먹구름은 저만치 먼데를 지나가고 있다


이건 아주 단순한 시이다. 조금 더 복잡하게 씌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나는 들여다보고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싶다(*그런 때는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시에 내 인생을 걸지 않았으므로, 시로부터 이런 ‘박대’를 받는 건 당연하다). 어쩌겠는가. 이런 시집을 만드는 일의 바보스러움? 내가 좋아하는 폴란드의 영화감독 키에슬로프스키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A Short Film about Love)을 찍던 얘기를 들어보자.



12. 이 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바보스런 일인가를 예민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한 아파트에 사는 소년(=토멕)과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여자(=막다)의 이야기다. 처음 대본을 읽었을 때 우리가 영화를 어떻게 찍으려 했겠는가? 당연히 우리는 아파트 두 층(소년과 여자에게 하나씩)과 계단 일부를 빌렸다. 돈이 들지 않는 영화를 만들자는 게 우리의 의도요 목표였다. 그런데 실제로는 영화를 찍는 동안 장소를 무려 열일곱 번이나 바꿔야 했고, 그 결과 간신히 두 집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었다. 토멕과 막다는 한두 번 거리나 우체국에 나갈 뿐 다른 장면은 거의 없었다. 열일곱 군데의 촬영지 중 하나는(막다의 집 장면이었는데) 바르샤바에서 2,30킬로 떨어진 조립식 빌라였는데, 상상할 수 있는 나쁜 점이란 모두 갖춘 건물이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벽돌 하나를 가져다 휑한 벌판에 떨어뜨려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 빌라가 우리가 로케 때 촬영한 창 모양과 같은 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막다의 집 세트를 설치했다. 따라서 막다의 집은 한 블록 건너가 아니고 바르샤바에서 30킬로 떨어진 곳에 있는 조그만 2층짜리 빌라였다. 거기다 토멕은 막다보다 한두 층 높은 곳에 사는 걸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빌라를 토멕이 바라보는 것처럼 찍자면 촬영팀이 올라갈 수 있는 탑이 필요했다. 작은 건물이었으므로 우리가 가진 롱렌즈로 그것을 토멕이 망원경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찍는 데는 2층짜리 탑이면 충분했다. 밤 장면이었고 잡음이 없어야 했으므로 우리는 그곳에 밤 10시경 도착해 탑 위로 기어오르곤 했다. 다른 스텝들은 제작사가 근처에 빌려둔 집으로 가 잠을 자거나 포르노 비디오를 보았고 나와 비텍(조명감독)은 동이 틀 때까지 한 쌍의 건달처럼 가설탑 꼭대기를 지키고 있었다. 해는 7시나 되야 뜨는데 기온은 영도 이하로 떨어졌다. 탑과 빌라의 거리가 6, 70미터 가량 되었으므로 세트의 자폴롭스카(=막다)와는 마이크로 교신해야 했다. 내가 마이크를 들고, 빌라 안의 자폴롭스카는 스피커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매일 밤, 추위 속에 홀로 남아 있었다(물론 내 조수와 촬영감독의 조수도 있었지만).

추운 밤 한적한 교외에서 창 하나는 휘황하게 불을 밝혀 놓고, 웬 구조물 위에는 두 바보가 앉아 하나는 마이크를 쥐고 ‘왼쪽 다리 위로! 다리 아래로! 테이블로 다가가! 계속! 이제 카드를 집어!’하고 외쳐대는 기가 막힌 상황이었다. 동시녹음이었기 때문에 진짜 촬영할 땐 소리지르지 않았지만. 식사를 하거나, 하느라고 그 자리를 잠시 떠나 있으면 그 상황의 어처구니없음이 더 절실해졌다. 거대한 빌딩으로 보이려고 애쓰는 작은 빌라, 있는 대로 조명이 밝혀진 창(우리가 사용한 망원렌즈는 구경이 낮아서 조명이 많이 필요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주변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밤에, 우스꽝스런 구조물 위에 앉아 마이크로 ‘다리 들어!’하고 외치는 나. 물론 마이크가 말을 안 들을 때도 있었으므로 그냥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하여간 그 한주간 내내 나는 내 직업의 바보스러움을 뼈저리게 느꼈다.

 

 

 

 

13. 작년 12월에 체코의 프라하에서 시집 한 권이 날아왔다. 이바나 그루베로바가 자신이 번역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을 보내온 것이었다(이 번역에 나는 몇 마디 조언을 한 바 있다). 한 대목을 들어볼까(*체코어 번역은 생략한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사실 ‘차마 떨치고’ 떠나버린 님을 두고 이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한편 어수룩하며 바보스런 일이다. 제 곡조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아직 정념의 자기운동(=사랑의 노래)이 ‘나’라는 장소에서 다 소진되지 않았음을 뜻한다. 운동이란 것은 그것 자체의 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어서 현실적인 사태의 종결에 따라 마감되거나 하지 않는다. 때문에 장미의 ‘이름’만 남아 있는 사태가 얼마간 지속되는 것이다. 이 비어 있음의 사태(=님의 침묵)를 휩싸고 도는 사랑노래가 바로 어루만짐의 손길이다. 이 손길이 자신의 어이없음을 깨닫게 될 때, 그것은 일종의 손장난(=유머)으로 변모한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란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내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또 이런 건 어떤가.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14.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 만해는 시집의 ‘군말’에 적어놓는다. 재미있는 것은 ‘기룬’(‘그리운’의 충청도 방언)이란 말이다. 그것의 기본형인 ‘기루다’는 내게 ‘그리다’와 ‘기르다’의 뜻을 합쳐 놓은 말로 들린다(우리말 사전에 ‘기루다’가 등재되어 있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 님은 우리가 그리는 대상이면서 동시에 기르는 대상이다. 님을 ‘기루는’ 행위 속에 과거-현재-미래라는 인과론적 시간질서는 적극적인 의미를 상실한다. 과거와 미래가 현재라는 시간축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접히면서 이 과거-미래는 동일한 시간적 지평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새로운 시간 경험이 아닐까? 왜 아닐 건가. 바로 님에 들린 시간일 텐데 말이다.


 

 

 

 15. 들리는 시간이 있으면 들렸다 놓이는 시간도 있는 법이다. 그럴 때는 이렇게 나직이 중얼거리는 것이 좋다.

하늘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잠과 도연명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하늘이 정말로 그가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이라면 굳이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할까 싶지만, 이런 정도의 믿음(이 또한 유머인데)은 우리에게 허락되어 마땅하다. 무얼 어쩌자는 건 결코 아니니까 말이다(*한국 근대 시인 중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거명하고 있는 시인은,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백석과 윤동주, 두 사람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에,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나오는바, 나는 그 시가 백석의 영향하에 씌어진 거라고 생각하다. 그런 의미에서, <별 헤는 밤>은 가장 백석다운(=윤동주답지 않은) 시이기도 하다. 백석론과 윤동주론을 쓰는 일은 나의 오랜 숙제이다).

16. 다들 자기 할 일은 한다. 하고 본다. (a)“시지프의 신화에 있어서는 다만 거대한 돌을 들어올리기를 수백 번이나 되풀이하느라고 잔뜩 긴장해 있는 육체의 노력이 보일 뿐이다. 경련하는 얼굴, 바위에 밀착한 뺨, 진흙에 덮인 돌덩어리를 떠받치는 어깨와 그것을 고여 버티는 한 쪽 다리, 돌을 되받아 안은 팔 끝, 흙투성이가 된 두 손 등 온통 인간적인 확신이 보인다. 나는 이 사람이 무겁지만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아무리 해도 끝장을 볼 수 없는 고통을 향하여 다시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다. 마치 내쉬는 숨과도 같은 이 시간, 또한 불행처럼 어김없이 되찾아오는 이 시간은 곧 의식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제신의 소굴을 향하여 조금씩 더 깊숙이 내려가는 그 순간순간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더 우월하다. 그는 그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b)“말벌(=나나니벌) 암컷은 먹이를 쏘아서 마취시킨 후 집으로 끌고 온다. 그런 다음 그것을 밖에 놓아둔 채, 집안으로 들어가서 이상이 없는지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나서 먹이를 끌고 들어가려고 다시 나타난다. 땅에 구멍을 파서 만든 집 속에 말벌이 들어가 있는 동안에, 실험자는 먹이를 말벌이 놓아둔 곳에서 몇 센티미터 정도 멀리 떼어놓는다. 말벌이 다시 나타나면 먹이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고 그것을 재빨리 다시 찾는다. 그런 다음 그것을 끌고 와서 자기 집 입구에 다시 갖다 놓는다. 말벌이 집안을 조사한 지 몇 초밖에는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말벌의 행동 프로그램은 초기 단계로 다시 넘어간다. 말벌은 먹이를 굴 입구에 다시 놔두고 집안을 한번 더 조사한다. 실험자는 싫증이 나서 그만둘 때까지 이 짓을 40번이나 되풀이했다. 말벌은 이미 40번이나 빨래를 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프로그램의 초기 단계로 다시 돌아가 자동세탁기처럼 행동했다.”

이 두 가지 사례의 차이? 그것은 프로그램, 즉 자기가 하는 일(=자기 삶)의 바보스러움을 아느냐, 모르느냐 (의식하느냐, 못하느냐) 이다. 비록 하는 일은 같지만, 거기에서 시지프와 나나니벌의 운명은 갈라진다.

17. “사랑하고 소유하는 것, 정복하고 소진하는 것, 이것이 곧 그의 인식하는 방법이다(성서에서는 사랑의 행위를 ‘인식하다(connaitre)’라고 부르고 있는데, 거기에서 자주 보이는 이 말은 뜻이 깊다).” 돈 후안주의에 대해 카뮈가 적고 있는 말이다(*모스크바에 와서 나는 카뮈 작품집을 두 권이나 샀다).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세 우리말에서도 ‘사랑하다’는 ‘사랑하다’와 ‘생각하다’ 두 가지 뜻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이 두 뜻이 결별하게 된 계기가 따로 있었을까? 어쨌든 이 결별의 결과, 우리 주변엔 사랑하는 만큼 생각하지 않거나 생각하는 만큼 사랑하지 않는 새로운 ‘사랑’의 유형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믿거나 말거나.

삶, 그리고 사랑은 우리의 직접적인 행위와 그걸 바라보는 시선, 즉 인식행위의 종합에 의해 완성된다. 이때의 종합은 자신의 행위의 준칙을 보편적 입법의 원리(이것이 바로 책임이다!)로 만드는 것이면서, 이 입법의 원리를 자신의 삶 속에 투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만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고(만인에 대한 사랑을 한 사람에게 투사하는 것이고), 한 개체의 삶을 살면서 인류 전체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인류 전체의 삶을 자신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해서 삶은, 너무도 가벼운 존재인 우리에게 너무도 무겁다! 우리는 저마다 전 인류를 데리고 다니는 것(*지젝이라면, 헤겔의 말을 빌어, ‘구체적 보편성’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18. 사실 우리의 몸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우리의 몸은 어제오늘 뚝딱 만들어진 것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오랜 진화과정에서의 적응(=협력과 사투)의 결과이다. 우리의 개체발생은 바로 이 계통발생을 반복하는 것인바, 우리의 개인사와 가족사는 전체 인류사(그리고 더 나아가 우주사)와 별개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바로 전체로서의 부분, 부분으로서의 전체인 것이기에. 그래서 “우주에 관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우주가 이해 가능하다는 사실”(아인슈타인)이라는 건 따지고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정은 이렇다. “우주가 이해될 수 있는 이유는 우주가 바로 우리 자신인 인간 존재에 의해서 구성되고, 우리가 그런 우주를 알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의 작업은 언제나 우리 자신이 이해할 수 있다.”(*이걸 ‘인간학적 원리’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즉 우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우리가 구성하는 우주의 자기인식이다(이 우주에서의 인간의 지위와 책임은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19.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식과 이해는 개개 사물과 사건의 ‘다름’ 속에서 ‘같음’을 보는 행위이다. 즉 차이 속에서 어떤 반복을 보는 행위이며, 그래서 어떤 타입과 패턴을 파악하는 행위이다. 여기엔 동서양이 따로 없다. 동양의 주자학적 전통에서 공부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말하는데, 이때 ‘격물’은 사물을 격자 속에 놓고 파악하는 걸 뜻한다(패턴에 대한 앎이 바로 공부이다). 이 격자가 바로 서양철학적 전통에서의 기하학적 공간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물고기 그림을 여기에 예시하겠다(D. 톰슨이 한 사각형 좌표격자에 한 종류의 물고기를 그리고 단순한 미분동형이라 불리는 변환을 수행함으로써 세 개의 다른 종류의 물고기를 얻어낸 것이다).(*이정우의 들뢰즈 강의록 중 한 권에도 그림이 인용돼 있으니까 참조하시기 바란다).



이러한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하학적 이성이다. 기하학적 이성이란 자신의 삶이 유일한 삶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삶(=패턴)의 한 양상(=거품)에 불과하다는 걸 꿰뚫어보는 이성이다. 즉 이것은 “자신의 한계를 확인하는 명철한 이성”(카뮈는 이걸 ‘부조리’라 부른다)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조되는 것이 바로 반-기하학적 이성, 섬세한 정신이다(‘기하학적 정신’과 ‘섬세한 정신’의 이분법은 파스칼을 따른 것이다). 그것은 진짜 물에서 헤엄치고 있는 개개의 물고기(혹은 물방개)의 물에 대한 현실적인 앎을 가능하게 하는 이성이다. 즉 우리의 현실을 주무르는 손때 묻은 이성이다. 나는 이걸 달리 아줌마적 이성, 아줌마 정신이라고 부른다(아줌마들은 섬세한 걸 좋아한다).



20. 한 아줌마의 시적 발언 한 대목을 예로 들어보겠다(김상미의 <아줌마>).

한 명의 아줌마 안에 수백 수십 명의 아줌마가 숨어 있다
그 수심의 깊이는 아줌마가 아니면 절대 알지 못한다
아줌마는 현재 우리 집 안에도 있다
아줌마가 생각하는 것은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것이다
아줌마의 생각을 알려면 아줌마들만의 은어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학의 한 페이지, 한 페이지들이다.


이 시의 1행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줌마 나름의 (무시 못할) 내력이다. 이 내력은 기하학적 이성에서의 전체화된 부분, 부분화된 전체에 대응하는 것이고 맞먹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3행이다. ‘아줌마가 생각하는 것은 아줌마들에겐 중요한 것이다’라는 건 뒤집어서 얘기하면, 아줌마들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만을 생각한다는 것. 이 자기-중심적 사고야말로 아줌마적 이성의 모토요, 아줌마 정신의 알토란 같은 핵이다. 이 억척 어멈의 이성(메를로-퐁티의 ‘신체적 이성’)은 삶의 현장 속에서 빛을 발하는 이성이다. 이 이성은 물 밖에서 팔짱끼고 있는 제3자적 이성이 아니라, 물속에서 팔딱이고 있는 주관적 이성이다. 그것은 결코 삶을 멀거니 관조하지 않는다(‘그’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이다). 악착같이 삶에 밀착하여 부대끼고 싸우며 이겨낸다. 그리하여 “육체적 편안함과 안락한 보금자리, 그리고 걱정 없이 자녀를 기를 수 있는 가능성”(이런 것이 아줌마에겐 중요하다)을 확보한다. 아줌마는 동물적인 실존을 선택하는 것이다.

 

 

 

 

아줌마의 이러한 존재론에 비하면, 아줌마의 사회학은 별거 아니다(그런 사회학에 집중하고 있는 이 시의 나머지 부분은 그래서 우리의 주목에 값하지 못한다). 이 아줌마들에게 E=mc2 같은 기하학적 인식은 오직 미학적, 장식적 가치만을 가질 뿐이다(이건 결코 폄하의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아줌마’가 바로 우리 집 안에도 있고, 우리 자신에게도 있다(남성에게 있는 여성성은 ‘아니마’만이 아니다).


 

 

 

‘아줌마성’이란 무엇인가? “라파엘의 그림이 다 없어진다면 야단들이 날 것이다. 그러나 이끼의 한 종류나 식물 한 가지가 없어지는 데는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불균형한 휴머니즘이 현대문명의 이상한 점이다.”(레비-스트로스)라고 한 인류학자가 털어놓을 때, 그가 꼬집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아줌마성이다. 또 “언제나 대중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을 본다. 내가 도스토예프스키와 프루스트에 관해 이야기한다 해도 그들은 내 낮은 목소리만을 듣고, 가슴만 뚫어져라 볼 뿐이다.”(제니퍼 틸리)라고 한 여배우가 털어놓을 때, 그녀가 꼬집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아줌마성이다(아줌마들은 돈을 좋아하고 또 음탕하다).

사실 이 아줌마성은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면서, (생활 속의) 행복의 원천이긴 하다. 또 자기-중심주의와 가족-중심주의, 그리고 종족(민족)-중심주의, 자문화-중심주의에 아줌마성이 기여하는 바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그것에의 편향이다. 무엇에의 편향(=편애)은 인간으로서의 품위에 다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기하학적 이성과 반-기하학적 이성의 균형과 조화에서 인간다움의 품위와 가치가 찾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저마다의 죽음을 죽으면서 동시에 인류 공통의 죽음을 죽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바로 그때 우리는 “수많은 파도 중의 하나처럼 개체이면서 동시에 전체일 수 있는 존재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인간 존재론이다.

 


 

 

 

과연 그러한 인간 존재론이 현실적인 것이냐, 라는 아줌마들의 우악스런 반론이 바로 나의 뒤통수를 때린다. 나는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세속적인 삶의 양립가능성을 예시하는 걸로 답변을 대신하겠다. 저쪽 이디오피아 얘기이다. “이디오피아의 도르제족이 보기에, 표범은 기독교적 동물이라 교회의 금식 행위를 준수하는데, 이는 이디오피아에서 종교의 기본 척도에 해당하는 규율이다. 그렇다고 도르제인이 금식일인 수요일과 금요일에 다른 날에 비하여 자기집 가축 보호에 덜 신경 쓰지는 않는다. 표범이 금식한다는 것과 표범이 매일 식사한다는 것, 도르제 인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진실로 여긴다. ‘표범은 항상 위험하다’는 것을 그는 경험에 의해 알고 있다. 그리고 ‘표범은 신앙적인 동물이다’는 것은 전통이 보장해주는 사실이다.”(폴 벤느, <그리스인들은 신화를 믿었는가> *이 책은 러시아어로도 번역돼 있다)

이 두 가지 진실이 양립 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중요하다(*나는 이 사례가 데리다가 말하는 ‘종교 없는 종교’ ‘메시아 없는 메시아주의’의 탁월한 사례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지젝의 ‘유토피아 없는 유토피아’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말하기로 하겠다). 이디오피아의 도르제족이 우리보다 특별히 우수한 종족이 아닌 이상(이디오피아가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 그것은 우리에게도 가능하다. 즉 ‘나’란 존재는 이 세상에 유일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런 ‘나’가 이 세상에 모래알처럼 널려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말이다. 우리는 유치원에서부터 이런 걸 배워야 한다.


 

 

 

21. 이른바 존재론 교육. 매일같이 ‘우리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우리는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하는 것을 숙지시켜야 한다(제멋대로 키우면 안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러한 ‘있음’의 신비스러움에 눈을 뜨게 될 때(시라도 몇 자 적게 될 때), 그래서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비트겐슈타인)이라는 걸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직업교육을 시켜야 한다(사실, 나는 교육학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리고 의미론 교육. 우리의 젊은 철학자는 명철하게도 세계의 의미에 관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 “세계의 의미는 세계의 밖에 놓여 있어야 한다. 세계 속에서는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있고, 일어나는 그대로 일어난다. 세계 속에 가치는 없다.”(그는 철학을 그만두었다.)

세계의 의미가 세계의 밖에 놓여 있다는 말은 세계-내-존재로서의 우리는 세계의 의미에 관한 ‘아르키메데스의 점’을 가질 수 없다는 뜻이다(이건 아주 당연하다). 이것 또한 숙지시켜야 한다.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 먼저 물리(론)적 불가능성이 의미론적 불가능성을 필함한다(=필연적으로 함축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지구를 들어올리는 계산을 해준다(이것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 주저 없이 몇 대 패준다).



22. 생각해보자. 받침점을 갖다 놓고 우리가 지구를 들어올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길이의 지렛대가 필요한지. 지구의 질량은 6.0×10*24kg이다. 이걸 (무거우니까) 10*-3m(1mm)만 들어올리도록 해보자. 우리의 질량을 편의상 10*2(100)kg으로 한다면, 지레의 원리에 따라 (6.0×10*24)×(10*-3)=(10*2)×(x)의 등식을 만족시키는 x의 값이 바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렛대의 길이가 된다. 계산해보면, x=6.0×10*19m(=6.0×10*16km)이다. 이건 얼마만한 거리일까? 초속 30만(3.0×10*5)km의 빛이 1년간 가는 거리인 1광년을 대략 9.46×10*12km라고 하면, 대략 6.3×10*3광년, 즉 6,300광년 정도의 거리이다. 어쨌든 이만한 길이의 작대기를 지렛대로 구했다고 쳐도(어디서 구했는가를 묻지 말아 달라), 지렛대 저쪽 끄트머리까지 가는데 6,300광년이 걸린다는 얘기다(*지난번 계산이 틀려서, 이번에 다시 했다. 물론 이번에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광속으로 간다면 모를까, 현재로선 불가능하므로 일단 음속(≒초속 330m)의 한 1,000배, 즉 대략적으로 1.04×10*10km/년 정도까지 날아간다고 해보자. 그럼 6,300광년의 거리는 ‘인간적인 거리’로 대략 5.73×10*6년 정도가 된다. 573만 년(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건 200만년쯤 전이다). (편의상)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대략 우리의 19만 세대 후손이 비로소 지렛대를 잡게 된다(이걸 가능하다고 해야 할까, 불가능하다고 해야 할까). 해서, 적어도 광속여행이 가능하지 않은 이상(우리 문명에서는 불가능하다), 현재의 우리가 이 지구를 1밀리라도 들어올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그걸 이론적인 산술에 기대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기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지구의 중력이 끌어당기는 만큼 우리의 떨어지는 사과도 지구를 끌어당기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과 같다(*만유인력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유머이지 진리 주장이 아니다. 유머는 이 세계 안에 놓여 있는 우리가 자신의 처지를 견디는 방식이지 이 세계를 인식하고 기술하는 방식이 아니다(*’세계-내-존재’의 아렌트 버전은 ‘지구-내-존재’이다.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다).

 

 



 

결론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구를 들어올릴 수 없는 이상, 세계의 의미에 대해서 입다물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 닥치고 춤이나 춰!).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하지 않으면 안된다;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uber muss man schweigen;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비트겐슈타인)

23. 그런데, 사실 지구보다도 더 들어올리기 힘든 것이 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이다! 대략 40-100kg 정도 되는 질량을 지레로 들어올리는 것은 별로 힘든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자기 자신이 들어올리면서 들어올려져야 한다는 것이다(이건 손뼘으로 자신의 키를 재는 것과는 정말 다른 문제다). 즉 한 사람이 지렛대의 양쪽 끝에 동시에 올라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 이 또한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유일한 가능성은 양자 효과를 이용하는 것인데, 이것은 존재확률로서의 두 ‘나’가 지렛대의 양쪽에 동시에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다(두 존재확률의 합은 당연히 100%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현재로선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희박하기 때문에 무시해도 좋다(*코끼리가 타자기를 제멋대로 두드려서 <파우스트>나 <정신현상학>을 쳐낼 확률이 이에 견줄 만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의미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말할 수 없다(우리는 자신에게 무의미한 존재이다). ‘나’의 의미를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당신(들)뿐이다(빌어먹을!).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생물학적 요구에서뿐만 아니라 의미론적 필요에서이기도 하다. 적어도 우리가 ‘의미론적 질병’을 앓고 있는 동물이란 걸 전제한다면 말이다. 우리에겐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랑이 (*S. 베이유를 따를 때) 우리의 비참함을 말해주는 표시이다. 아, 사랑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우리의 신은 또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24. 육신은 떠나지만, 사랑은 아니다
육신은 재가 되겠지, 하지만 재가 되어서도 느끼리라
먼지가 되겠지, 하지만 사랑에 빠진 먼지가 되리라
- 케베도, <죽음 너머의 영원한 사랑>

25. 물론 이제까지 내가 말한 세계의 의미와 자신의 의미란 건 기하학적 이성에 의해 따져본 것이다. 즉 기하학적 의미론(혹은 의미의 기하학)이다. 이 의미론에서 고려되지 않은 것은 ‘나’의 생태학이다. 우리는 결코 순수 기하학적 공간에 존재하는 순수 사유체가 아니다. 그건 이론적 가정일 뿐이다(이론물리학적 모델). 현실 속에서 우리는 ‘먼지 일반’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먼지’로서 존재한다. 즉 사랑에 빠지건, 욕조에 빠지건 하여간에 어딘가에 빠져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먼지인 것이다(생물지리학적 모델). 반-기하학적 이성, 즉 아줌마적 이성은 바로 이 ‘빠짐’에 기초하여 모든 의미를 주관한다. 바로 이러한 국지적 구체적 시-공간에서의 의미론이 생태학적 의미론(혹은 의미의 생태학)이다. 이제 자리를 서서히 정리해야 할 시간을 맞이하여, 이 생태학적 의미론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해 기술해보기로 한다.

26. 내가 존재하는 공간은 세계의 아름다운 영혼(SeOUL) 한 구석이다. 나는 동생과 전세방에서 산다(나는 이사하는 게 귀찮아서 빨리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직업도 없고 따라서 대단한 벌이도 없다(그래도 직장인 평균의 빚이 있다). 매일같이 학교에 가고(이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도 학교이다), 일주일에 두세 편의 비디오를 보며 한번 정도 극장에 간다. 매주 5-10권 정도의 책을 산다. 공부도 간혹 한다(학생이니까). 한 달에 두어 번 술을 마시고(맥주 1-2병), 담배는 피지 않으며 바둑 이외의 잡기는 하지 않는다(*요즘은 그마저도 하지 않는다). 학교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만나자는 사람도 거의 없다).

그리고 시를 쓴다. 전력으로 쓰진 않는다(돈벌이가 되지 않아서이다). 일주일에 한편 정도씩 몇 달 쓰다가 몇 달은 자칭 휴가이다. 지난 봄에는 두어 달만 쓰는 바람에 열두어 편을 쓰고 말았다. 아직 시쓰기에 모든 걸 투자할 만큼 잘 쓰진 못한다. 그렇다고 그만두어 버릴 만큼 못쓰는 것도 아니다(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은 우리말의 가능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잘 쓰고 못 쓰는 것이 내 탓만은 아니다. *굳이 위안을 삼자면). 그러니 그냥 재미라고 해야겠지. 특별히 읽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미치고는 별로이지만. 그저 ‘빛 좋은 개살구’나 ‘굴뚝같은 마음’ 같은 흔한 우리말들이 건네주는 울림을 모른 체 지나칠 수 없었을 뿐이다.

나는 우리말을 사랑하는바, 그것은 특별히 우리말이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가장 잘 아는 말이기 때문이다. 또 나를 길러준 말이기 때문이다(사람은 분수와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쓰다 보니 10년이 되었고(반은 휴가였지만), 백여 편 이상의 시를 쓰게 되었다. 그래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렇게 시선집까지 묶는다(*이 글은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이란 ‘시집’의 서론이었다). 그동안 시집을 만드는 일은 ‘내가 무얼 어찌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이면서 ‘내가 당신을 지겹게 하는 몇 안되는 일’이었다. 이걸 종합하자면, 어져 내 일이다. 이 일이 그래도 몇 사람에게는 사소한 즐거움이 되기를 바란다(이건 나의 욕심이다). *어떤 시들인가, 혹 궁금해할 사람들도 있을 듯하여 한 편만 여기에 옮겨놓는다. 제목은 <빈 병 속의 시간>(한 지면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그대를 그리워하다 남는 시간은 빈 병 속에 넣어둔다
시간은 시간의 과욕이며 연적(戀敵)이다
그리움이 막막할수록 부질없는 시간은 빈 병 속에서 묵직해지고
나는 어느덧 텅 빈 세상 하나를 거느리게 되었다
빈 병 속 보이지 않는 자갈이 깔리고 보이지 않는 꽃들이 핀 길
그대가 원한다면 느티나무 두 그루를 마저 심겠다
보이는가, 저 텅 빈 세상의 물살과 바람과 먼지……
그대를 그리워하다 남는 시간이, 아아 더 소중해 보인다
시간은 시간의 변덕이며 불가피한 오용이다
그대를 그리워하던 다락 같은 방도 이젠 저 빈 병 속에 있다

27. “그는 다시 돌아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왕가위(=왕자웨이)의 여섯 번째 영화 <부에노스아이레스>(=해피 투게더)는 그렇게 시작한다. 아주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이 영화를 적어도 올해는 볼 수 없게 되었다(나는 결정적으로 이번 대선에서 야당 후보를 찍기로 했다. *기억에 동성애 장면 때문에 문제가 됐던 것 같다. 오래 전 얘기이다. 장국영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니!). 타르코프스키와 키에슬로프스키의 영화를 좋아하는 만큼 나는 왕가위의 영화를 좋아한다. 나는 이들의 거의 모든 영화를 몇 번씩 봤다. 이들은 영화만의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가 세계와 만나는 세 가지 방식을 내게 보여주었다. 아니 나는 내게 맞는 이들의 영화를 통해서 그런 걸 봤다. 그래서, 다시 말하지만 유감스럽다. 나의 20대에 바쳐지는 이 여섯 번째 시집(합본을 제외하면) 또한 이런 말로 끝을 맺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돌아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우리의 삶은 잘할 때까지 반복될 것이다.)



 

 

 

28. 언제였던가. 87년, 그리고 5월. 나는 20세(만 18년 9개월)의 대학 신입생이었고,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꿈도 없었다. 그때 곽지균이 감독하고 강석우, 안성기, 이미숙이 주연한 영화 <겨울나그네>(결말의 장황함은 불만이지만)를 봤었고, 가사도 모르는 ‘보리수’를 흥얼거리고 다녔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라는 민우(=강석우)의 대사가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이 대사는 이후에 곽지균이 만든 <상처> <그 후로도 오랫동안>에도 나온다. 그가 요새 만드는 <깊은 슬픔>에도 나올까?). 정말 무엇인가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맘때 나는 학생생활연구소에 (심리)상담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상담 선생님에게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들먹이며 자살과 부조리와 세계의 원초적 적의에 대해 떠들었다(카뮈에 대한 ‘경의’가 이 글의 앞부분에 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은 무더웠고, 나는 세상이 빨리 끝장나기를 은근히 빌었다. 나는 그저 20세였던 것이다.

29. 하여간에 나의 30세는 이미 시작되었고, 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이젠 30대도 말년이다!) 여전히 내겐 아무런 꿈이 없다(몇 권의 책을 쓸 계획만을 가지고 있다. *아직도 못 쓰고 있다!). 그런데도 대책 없이 또 10년이 지나갈지 모른다. 그래, 너를 두고 하는 소리다. 여전히 ‘나’라는 장소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을 ‘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안녕, 잘 있었니? 난 이렇게 지내고 있어.” “근데, 너 형편이 좀 나아졌니?”(*“아니!”)

30. 새로운 시작의 나이에서 나의 걸음은 멈추어진다. 많은 분량이 아님에도 6박 7일이 걸렸다. 그리고 하루가 더 걸렸다(이젠 지겨워진다). 반 정도의 분량은 말복인 날에 제대로 먹지도 못하면서 작성한 것이다(*오늘이 말복이다!). 어쨌든 끝났다. 편집과정에서 몇 가지 빠지긴 했지만(주로 ‘확실성’ ‘가능성’에 대한 얘기들이다), 언젠가 다른 자리를 마련하면 되는 것이지. 자, 이제 이걸로 무얼 할 것인가? 일단 읽어주기 바란다. 뭔가 재미있거나 전달되는 것이 있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이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으니까.

30. “시는 이해되기 전에 전달된다”고 한다. 복습하자면, 이때 ‘전달’은 시의 n차원적인 어떤 리얼리티가 (주관적) 직관에 의해 직접적으로 파악되는 걸 말하며, ‘이해’는 이렇게 전달된 것을 다수가 경험할 수 있는 보다 객관적인 형태로 변형함으로써(n차원의 3차원화) 보존과 공유가 가능하게 하는 걸 말한다. 이 ‘이해’를 달리 ‘개념적 사유’라고 한다. 헤겔식으로 말하자면, 시(=예술)는 자신이 발견한 어떤 새로운 사태에 이 개념적 사유(=철학)가 도착하기 전까지 현장을 보존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 개념적 사유 이후에, 자신의 의미를 모두 증발시킨 이후에 시가 직면하는 것이 시의 여생(‘자기 앞의 생’)이다. 나의 시들이 그런 여생의 한 풍경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바람불어 좋은 날의 그런 풍경을 말이다. 끝으로, ‘황새의 멈추어진 걸음’이란 제목과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그리스 영화 <율리시즈의 시선>(Le regard d’Ulysse)에서 인상적이었던 한 택시 운전사의 말로 이번 여정을 마감한다(*그러니까 이 여정은 황진이의 말로 시작해서 택시 운전사의 말로 끝난다).

30. “빌어먹을 자연아, 넌 외로우냐? 나도 외롭다. 여기 비스킷이나 먹어라!”

05.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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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1 2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5-12-01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이성복의 시와 소월문학상 수상 소감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마흔 즈음에는 무얼 읽어야 할까요?^^

2005-12-02 2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2-28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혼을 안해도 일정 나이에 이르면 아줌마인가요?
김상미 시인은 작년까지만 해도 결혼을 안했는데...ㅎㅎ

함성호 시인의 시를 검색하다 보니 이 페이퍼에 이르렀습니다.^^

로쟈 2006-03-01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 자신과 시적 화자가 반드시 일치하는 건 아니니까요.^^

로쟈 2006-03-11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가끔 뒷북치시면서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군요.^^ 유령이시라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2007-01-10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1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덕분에 다운된 이미지들을 수정했네요. 새해 복많이 받아요, 남주지 말고!..
 

클래식에 문외한인 나에게도 모차르트와 쇼스타코비치는 친숙한 이름이다. 이 두 '천재 음악가'에 대한 칼럼을 아침 신문에서 읽었다. 한국일보에 연재되는 '조윤범의 파워클래식'. 특히 초점이 맞춰진 것은 두 사람이 남긴 현악사중주 수작들. 내가 곡의 번호까지 기억할 리는 없지만, 필시 우리 귀에 익은 연주곡들일 터이다. 이들의 선배 음악가인 하이든은 83개의 현악사중주를 남겼다고 하는데, 양적으론 거기에 미치지 못해도, 이 두 후배 또한 상당 수의, 그리고 상당한 수준의 현악사중주를 작곡했다 한다.

 

  

 

 

우리의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경우 전체 23개의 현악사중주를 남기고 있는며, 그 중 '불협화음 사중주' 를 포함하여 그가 하이든에게 헌정한 여섯 곡, 즉 '하이든 현악사중주'가 유명한 듯(<사냥>이란 곡이 특히 유명하다고). 이후의 작품 가운데는 연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음표들이 가득차 있다고 하는데, 특히 마지막 21번과 23번이 압권이라고. 필자가 소개하는 영화 <아마데우스>(1984)의 일화: (황제 왈) "음... 뭐랄까, 다 좋은데 음표가 너무 많아." (모차르트)"전 필요한 만큼만 썼는데요. 그렇다면 정확히 어디가 많았나요?" 이에 황제는 더듬거려지만, 실제로 연주해보면 황제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영화 <아마데우스>의 사운드트랙이 내가 산 몇 안되는 모차르트 음반 같다. 그 영향이겠지만,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모차르트의 음악은 레퀴엠이다.

 

 

 

 

참고로,  모차르트의 천재에 대한 살리에리의 질투라는 테마를 극화한 작품으로 푸슈킨의 소비극 중 <모차르트와 살리에리>가 있다(<아마데우스>의 시나리오 작가는 참조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우리말로는 푸슈킨 전집 중 희곡 파트에 들어 있는데, 가령 <보리스 고두노프>(열린책들, 1999/2001) 같은 책을 참조할 수 있다. 이 짤막한 작품은 러시아에서 TV용 영화로도 만들어져 있으며 나는 그 비디오CD를 소장하고 있다. <아마데우스>와 마찬가지로, 살리에리의 아주 긴 독백으로 시작한다.  

 

 

 

 

모차르트의 또 다른 영화음악으로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5)에서의 클라리넷 연주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싶다. <아마데우스>는 고등학교 때 단체관람을 했던 듯하고, 아이작(이자크) 디네센 원작의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요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학력고사를 보고 난 고3 시절에 종로에 있던 명보아트홀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다(디네센의 책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바베트의 만찬>에 국내에 소개돼 있다. *거기에 <일곱 개의 고딕이야기>가 더 보태졌다). 강수연 주연의 <씨받이>가 예고편이었다.   

모차르트와의 기억할 만한 또 다른 만남은 1990년 여름에 TV에서 본 프랑스 뒤세네 남매(Isabelle & Paul Duchesnay)의 아이스댄싱이었다. 그들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한 대목에 맞추어 춤을 추었는데, 비록 러시아 팀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이들의 춤은 내가 이제껏 기억하는 최고의 아이스댄싱이었다(춤추는 걸 보며 눈물을 흘린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단편적 이미지가 운동으로서의 춤을 전달할 수는 없겠지만, 아쉬운 대로 옮겨본다. 여하튼 그런 게 내가 기억하는 모차르트이다. 아니 '모차르트 이펙트'라는 게 더 있긴 하다. 딸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태교에 좋다고 해서 구입한 건지 어떤 건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하여간에 <모차르트 이펙트>(황금가지, 1999)도 나의 장서 중의 한권이다. 그렇다고 물론 모차르트가 집안에 넘쳐흘렀던 건 전혀 아니고 책은 어디 박스에나 들어가 있는 듯하다.

 

 

 

 

모차르트 관련서로 내가 한번 읽고 싶은 책은 최근에 나온 <모차르트와 함께 한 내 인생>(문학세계사, 2005)이다. 작곡가 모차르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인데, 저자인 프랑스작가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가 자신의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 모차르트의 음악 중 16곡을 직접 선곡하고 각각의 곡에 대한 추억을 들려준다"고. 본문에 소개된 16곡을 한 장의 CD에 담아 부록으로 실었다고 하니까 초심자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 그리고 역시나 프랑스의 작가이나 비평가 필립 솔레르스의 <모차르트 평전>(효형출판, 2002). 책은 필립 솔레르스의 '진정한 모차르트를 찾아 떠난 여행'의 기록이라는데,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아 곳곳을 순례하고 그가 남긴 편지들의 어구를 되새기며 끝없이 그의 음악들을 철학적, 시적으로 해석한다." 전방위 지식인인 저자는 그 유명한 쥴리아 크리스테바의 남편이기도 하다.

다시 칼럼으로 돌아가서 이어지는 대목을 읽어본다:  "현악사중주 역사에 뚜렷한 획을 그은 모차르트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무뚝뚝한 꼬마에게 확실한 바톤을 넘겨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베토벤이 그 위대한 곡들을 남길 수 있었으랴. 그 후에도 많은 작곡가들이 돈벌이도 별로 안 되는 사중주를 쓰며 자신의 숭고한 작품집을 완성시켜나갔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천재는 20세기에 들어서야 그 빛을 드러내었다. 바로 쇼스타코비치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란 이름이 제일 먼저 떠올려주는 이는 몇 해 전 세상을 버린 한 친구이다. 클래식 애호가였던 그가 가장 좋아했던 러시아 작곡가가 쇼스타코비치였고, 덕분에 나는 그의 교향곡이나 협주곡 등에 대해서 귀동냥을 할 수 있었다. 기억에 그는 LP음반으로도 쇼스타코비치 컬렌션을 가지고 있었고, 몇 번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혁명'이란 제목이 붙은 교향곡을 그의 방에서 틀어주기도 했었다.

그 쇼스타코비치는 교향곡을 15개나 쓴 작곡가이지만, 현악사중주도 딱 15개를 남기고 있다(한 연구자에 따르면 이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며 이 두 양식에 대한 쇼스타코비치의 태도를 반영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모차르트를 의식한 듯한 간결한 1번을 쓰자마자 2, 3번부터 교향곡에 버금갈 정도의 웅장한 현악사중주들을 써내려갔다. 그의 초기 현악사중주들은 초기작인지 후기작인지 헷갈릴 정도로 기가 막힌 스타일들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11번부터 14번까지는 그의 작품들을 초연했던 ‘베토벤 사중주단’ 멤버에게 하나하나 헌정했다. 11번은 제2바이올린에게, 12번은 제1바이올린, 13번과 14번은 각각 비올라와 첼로 주자에게. 이토록 현악사중주에 애착을 가진 이가 또 있을까. 다 듣기엔 너무 많으니 한 곡만 추천해 달라고? 역시 제목 없는 2번의 마지막 악장을 들어보라.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저리 가랄 정도로 멋지다." 그 멋진 음악을 나도 한번 구해서 들어봐야겠다.



 

 

 

쇼스타코비치에 대한 두번째 기억은 스탠리 큐브릭의 유작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의 주제가와 관련된다. 오래전 영풍문고 종로점에 들렀을 때 주제가로 쓰인 쇼스타코비치의 재즈모음곡 2번 중 왈츠가 반복해서 들려왔는데, 아마도 음악 담당자가 당시에 좋아했던 곡인 모양이었다(서점에 머물던 시간 내내 반복해서 들려왔다). 당시엔 누구의 음악인지도 몰랐지만, 왠지 러시아 음악 같다는 느낌을 받았었고,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게 쇼스타코비치였다. 나는 영화의 비디오CD와 사운드트랙을 모두 갖고 있기에 수시로 들을 수 있는데, 누구나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곡이 아닌가 싶다. 

 

 

 

 

쇼스타코비치 관련서로 나온 건 두 권인데, 그 중 솔로몬 볼코프의 <증언>(이론과실천사, 2001)은 이 작곡가에 대한 많은 자료와 증언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니 대부분은 신빙성이 없다고 한다. 볼코프는 러시아의 망명 음악가이지만 프리랜서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시인 브로드스키와의 대담집도 갖고 있다), 그의 '증언'에는 각색된 픽션도 가미돼 있어서 러시아  음악학자들이 아주 싫어한다고(볼코프는 페테르부르크 문화사에 대한 책, 차이코프스키에 대한 책 등도 갖고 있으며 러시아어로 다 소개돼 있다).

그럼에도 <증언>은 우리말로 접해볼 수 있는 가장 상세한 문헌이므로 그런 점을 얼마간 감안하고 읽으면 되겠다. 쇼스타코비치는 1928년 약관 22세에 당대 최고시인 마야코프스키의 풍자 드라마 <빈대>의 음악을 맡기도 했었는데, 두 걸출한 예술가가 조우하는 장면도 <증언>에는 기록돼 있기 때문에 전공자들에게도 흥미로운 책이긴 하다. 내년에 좀더 정평있는 전기가 출간되기를 기대한다. 그런 기대를 가질 만한 것이 "내년 2006년은 이 두 천재 작곡가의 해다. 모차르트는 탄생 250주년이며, 쇼스타코비치는 탄생100주년이다." 이것이 사실 내가 굳이 이런 내용의 페이퍼를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 2006년이 이제 한달 남았다!..

05.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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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1-30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차트르 레퀴엠 제가 강추하는 음반이 있습죠.

1996 Digital
HARMONIA MUNDI



Requiem in D minor KV 626
MOZART
Philippe Herreweghe (conductor)
Orchestre des Champs Elysees



 

 

 

 

 

 

함 들어보시면 좋을 듯.


비로그인 2005-11-30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club.nate.com/classicalmusic 네이트 고전음악 동호회
이 사이트에 가면 저작인접권이 말소된 음반 (녹음된지 50년이 넘었거나 연주자가 사망한지 30년이 넘은 음반 등.) 200여 장을 공짜로 다운 받을 수 있더군요. 참 좋습니다.

로쟈 2005-12-01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제가 음악보단 역시 책을 더 좋아하지만, 둘이 안 친할 이유도 없겠죠.^^
 

'나의 고전'이란 제하의 원고를 청탁받고 작성한 글을 옮겨놓는다. 내가 고른 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사르트르'였는데, 문학작품은 가급적 피해달라는 주문이 있었기 때문에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란 강연 팜플릿을 골랐다. 내가 아는 한, 사르트르에 대해서는 올해 <문학과 사회> 여름호와 <현대문학> 10월호에서 특집이 꾸며졌다. 하지만, 이 '과거의 영웅' 철학자에 대한 주목은 소략한 편이다. 말년의 주저 <변증법적 이성비판>이 번역돼 나올 거라는 얘기가 있었지만, 올해 책이 나오는 건지는 의문이다. 하물며 <집안의 백치> 같은 걸 기대하기는 현상황에서라면 더더욱 어려울 듯하다. 그런 게 아무튼 작금의 '상황'인 듯하다. 나는 그냥 나대로 그러한 상황에 편승하거나 거스르면서 내가 치러야 할 빚을 까나가도록 하겠다(연말까지 사르트르에 대해서는 2-3편의 페이퍼를 더 쓸 계획이다). 무슨 빚? 청년시절의 우상에 대한 빚 말이다...

일반적인 고전들과는 달리 ‘나의 고전’에는 ‘이 나’라는 단독성이 새겨져 있다. 그것은 ‘아무나의 고전’이 아닌 ‘나의 고전’이란 의미에서 ‘왜’란 물음 대신에 ‘왜 하필’이란 물음을 수반한다. ‘왜 고전인가?’가 아니라 ‘왜 하필 나에게?’란 물음을 던지게 하는 것이다.

우연찮게도 그 물음은 어떤 고유한 죽음의 정당성에 대한 물음과 상동적이다. 어떤 죽음에 대해서 ‘왜 하필 그가?’라고 묻는. 그러한 물음에 대하여 나는 아직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하필 그때 그가 그렇게 죽었다는 것이고, 그것이 내게 하나의 ‘고전적인’ 생애로 각인되었다는 것이다. 그 죽음은 1980년 4월 15일에 일어났으며, ‘장-폴 사르트르의 죽음’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사진은 사르트르의 장례 행렬).

바로 전해 10월 26일에도 매우 충격적인 죽음이 있었다. 나는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죽음이 몰고 온 충격적인 정황들 때문에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처럼 한 죽음의 간접적인 목격자이자 경험자가 되었다(TV에서는 며칠 동안 장송곡이 흘러나왔다). 분단국의 한 독재자가 연회장에서 부하의 흉탄에 맞아 숨진 것인데, 그 비극적인 죽음은 그러나 성대한 장례식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죽음’으로서의 아우라를 거느리지 못했다. ‘흔한 죽음’이었기에(대개의 독재자들은 그렇게 죽지 않던가?).

해서 어린시절,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까운 사람들 중 아무도 죽어주지 않던 내게 먼 이방인 철학자의 죽음과 성대한 장례행렬에 대한 자세한 보도는 그 죽음을 가장 매혹적인 어떤 것으로 각인시켜주었다(나는 신문의 일면 전체를 장식했던 이 장례식 보도와 사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신문지를!). 정치 대신에 문학을 인생을 걸 만한 일로 간주하면서 내가 작가로의 길을 꿈꾸게 된 건 아마 그 이후였던 듯하다(비록 아무런 작품도 아직 쓰지 않았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작가이면서 철학자, 혹은 철학자이면서 작가. 나는 그런 저자가 되고 싶었다(‘저자의 죽음’이란 유행어가 떠돌 때는 나도 따라 죽고 싶었다). 그 고유한 죽음의 주인이었던 그 사람 사르트르처럼 말이다.

 

 

 

  

장-폴 사르트르(1905-1980). 올해는 그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자 사망 2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흔히 그의 데뷔작 <구토>(1938)나 철학적 주저 <존재와 무>(1943), 혹은 자서전 <말>(1963)이 그가 남긴 ‘고전’으로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러한 ‘일반적인’ 고전들 대신에 ‘나의 고전’으로 꼽을 만한 책은 1945년 10월에 있었던 강연을 책으로 묶어낸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1946)이다(그러니까 이 ‘팸플릿’은 내년에 환갑을 맞는다). 대학 초년생들도 읽을 수 있는 가장 쉽고, 가장 얇은 책!(<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2종의 국역본이 있다. 하지만, 마음놓고 인용하기에는 미덥지 않은 면이 있다. 새 정역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대중강연의 원고였던 만큼 가장 확실하고 일목요연하게 자기 철학의 핵심을 짚어주고 있는 이 저작은, ‘공적인 교수들’과 대비되는 ‘사적인 사상가’로서 사르트르를 자신의 ‘스승’으로 경외했던 들뢰즈 또한 연극 <파리떼>의 초연, <존재와 무>와 함께 ‘사건’으로 간주했던 작품이다: “이들은 오랜 밤들을 지나온 우리가 사유와 자유의 동일성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던 작품들이다.”(Deleuze, "Desert Islands and Other Texts, 1953-1974", 77쪽)

  

참고로, 들뢰즈의 글모음집인 이 책은 불어본이 2002년, 영어본이 2004년에 편집돼 나왔으며, 단행본에 묶이지 않은 들뢰즈의 글 대부분을 카바한다. 1975-1995까지 발표된 글모음집이 될 제 2권은 "Regimes of Madness and other texts"란 제목을 갖고 있으며 근간 예정이다. 국내의 '들뢰즈 열기'를 감안하면 곧 번역/출간되어야 할 책이다. 책에는 1964년 11월 28일, 그러니까 사르트르의 노벨문학상 수상 거부 파문 한달 뒤에 들뢰즈가 'Arts'지에 투고한 글이 실려 있는데, "그는 나의 스승이었다(He Was My Teacher)"란 제목이다. 

 

 

  

 

한편, <문학동네>(2004년 겨울호)에 실린 실린 가라타니 고진의 평문 "근대문학의   종말"은 서두에서 "문학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영구혁명중에 있는 사회의 주체성(주관성)"이라는 사르트르의 정의를 인용하고 있는데, <문학이란 무엇인가>의 결미에 나오는 이 구절을 그는 들뢰즈의 텍스트로부터 재인용하고 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르트르와 들뢰즈 두 철학자간의 연계성을 떠올려볼 수 있다. 사르트르의 철학에 대한 들뢰즈의 평가를 직접 옮겨보면 이렇다.

"그의 철학 전체는 재현이란 관념, 재현이라는 질서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변적 운동이었다. (그에게서) 철학은 그 자신을 '선(先)판단적인', '전(前)-재현적인' 보다 생생한 세계에 정초하기 위해서 판단의 영역을 떠나 그 활동 무대를 바꾸었다."(His whole philosophy was part of a speculative movement that contested the notion of representation, the order itself of representation: philosopy was changing its arena, leaving the sphere of judgment, to establish itself in the more vivid world of 'pre-judgmental,' the 'sub-representational,')(78쪽) 이러한 평가는 들뢰즈 자신의 철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때문에 사르트르와 들뢰즈의 차이보다 더 주목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간의 접점과 연속성이다).  

본론으로 돌아와보자.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경우 나는 2종의 국역본 외에 불어본(신아사, 1973)과 영역본을 갖고 있다. 영역본은 월터 카우프만이 편집한 <도스토예프스키에서 사르트르까지의 실존주의>(1972/1988)에 실려 있다. 니체 번역자이자 전문가로 잘 알려진 카우프만의 책으론 국내에는 <헤겔: 그의 시대와 사상>(한길사, 1995), <인문학의 미래>(미리내, 1998)가 소개돼 있다. 하지만 역시나 그의 주저라 할 <니체: 철학자, 심리학자, 반그리스도>(1975)가 아직 번역되지 않은 것은 유감이다(예전에 니체학도들에게는 필독서였다). 

사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의 내용은 이미 제목에서부터 선언적으로 제시돼 있다. 사르트르는 자신의 ‘실존주의’에 대한 오해와 비난들에 맞서서 실존주의는 무엇이 아닌가, 반대로 실존주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휴머니즘인가를 논변해 간다. 거기에 대전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절대적인 자유이며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란 명제이다(사르트르는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읜바, 그것을 행운으로 간주한 ‘후레자식’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게 자유를 죽었다”고 그는 자서전에서 말했다.)

사르트르가 예로 들고 있는바, 종이칼이나 망치 같은 것을 제작할 경우에는 그 제작에 앞서서 어떤 개념 혹은 디자인이 먼저 요구된다. 머릿속으로 만들고자 하는 물건의 개념(본질)을 떠올리고 그에 따라 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 실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보다 일관성 있는 ‘무신론적 실존주의’에 따를 때(사르트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마르셀과 야스퍼스 등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이다), 신이 부재하는 세계에서 인간에겐 어떠한 본질도 사전에 주어져 있지 않다. 즉 실존은 아무런 사전 개념이나 계획 없이 존재하기에 본질에 앞선다.

따라서 ‘보편적 인간성’이란 없으며 “인간은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바로 이러한 근거에서 인간은 이끼나 토마토나 양배추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기의 삶을 이어나가는 ‘지향적 존재’이다. 요컨대, “나는 내가 만들어!”라는 것이며(“사랑은 내가 해!”란 드라마 대사는 사랑에 대한 사트르르적 태도를 잘 집약해준다), 당연한 말이지만 모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즉 “나는 나 자신과 모든 사람에 대해서 책임이 있다.” 이것이 실존주의의 윤리이며, 이러한 책임으로부터의 도피가 ‘자기기만’이고 ‘불성실’이다. 자유에 처형된 존재로서의 우리는 언제나 자유로우며 따라서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의 실존과 주체성을 우주의 한복판에, 초월적 중심에 갖다놓는 ‘오만한’ 철학이 어찌 휴머니즘이 아닐 수 있겠는가?   

그렇게 큰소리 칠만 했던 것이 대략 <현대>지를 창간하던 1945년부터 10여 년간이 철학자이자 사상가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르트르의 전성기였다. 해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는 <문학이란 무엇인가>(1947)에서와 마찬가지로 거침없이 당당한 한 지적 거인의 목소리가 육성으로 배여 있다. 그리고 그러한 목소리에 매혹되어 나는 청춘의 한 시절을 보냈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은 좀 바뀌었다.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자유로운가란 물음을 던지면서, 사르트르적인 ‘낭만적 합리주의’(아이리스 머독)에 대해 얼마간 거리를 두게 되었고, 이후에 구조주의나 정신분석학 책들을 읽으면서는 이 사팔뜨기 철학자의 ‘영웅주의’ 철학이 갖는 유효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도 됐다(영국의 저명한 여성 작가 아이리스 머독의 'Sartre, romantic rationalist'(1953)은 영어권 최초의 사르트르 연구서이기도 하다. 머독의 평가는 적절해 보이는데, 나는 사르트르와 들뢰즈 모두 '낭만적'이란 수식어를 공유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한 건 그가 나의 ‘영웅’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이때의 영웅성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하더라도.(참고로, <현대>지 창간사는 1966년 <창작과 비평> 창간호에 번역/소개된다. 사르트르의 시대정신은 <창작과 비평>의 창간사도 겸하고 있었던 것.)  

   

가령 사르트르의 전사(前史) 혹은 사르트르 이전의 사르트르. 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로 떠났던 8개월간의 유학생활에서 돌아온 사르트르에게 곧 30세 남자의 위기가 들이닥쳤다. 그는 거울 앞에서 생전 처음으로 대머리가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오랫동안 거울 앞에서 머리를 마사지해야 했다. 1934년 겨울이었고, 그는 르 아브르에서 키가 작고 뚱뚱한, 그저 늙어가는 시골 교사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부풀어오른 코담배갑처럼 혐오감을 일으키는 구제불능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한 친구는 그에게서 비곗살을 빼준다고 스웨터를 입은 그의 배를 두 손 가득히 움켜쥐고서 짓궂게 괴롭히기까지 했다! 이것이 내가 읽은 두툼한 전기에서 가장 감명 깊었던 대목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여 년 만에 그는 자신을 우리가 아는 ‘사르트르’로 만들었다. 그리고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고 당당하게 선언하였다. 그는 실존주의가 ‘행동과 앙가주망의 모럴’이라는 걸 직접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주었던 것. 해서, ‘나의 고전’은 적어도 사르트르의 경우에는 그의 책들이 아니라 그의 생애라고 말해야 온당할 듯싶다. 문학에 대한 사르트르의 언명을 조금 비틀자면, “고전은 그 본질상 영구혁명중에 있는 사회의 주관성”이자 ‘자기-되기(becoming-Self)’의 행동/사건이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05. 11. 28.   

 

 

 

 

P.S. 글의 제목은 (보다 관례적인) '사르트르의 삶과 철학'을 비튼 것이다. 내게서 그의 철학은 그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의 삶이 어머니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되었던 것처럼(2002년판 TV용 <닥터 지바고>는 반대로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시작한다). 데이비드 린의 영화(1965) 시작 장면은 오늘처럼 비바람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던 저녁 무렵으로 기억된다. 집에 가서 두 명의 지바고를 다시 보고 싶은 저녁이다. 러시아어 '지바고'의 어원적 의미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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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르트르를 발가벗기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01 23:45 
    '지식인의 지식인'을 다룬 기사를 옮겨놓고 나니 20세기 원조 지식인이라고 할 사르트르에 관한 평전 소식도 빼놓을 수 없겠다. 사르트르 세대 이후 가장 '대중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인 베르나르 알리 레비가 쓴 <사르트르 평전>(을유문화사, 2009). 역자는 사르트르 전문가인 변광배 교수다. 968쪽에 달하니까 얼추 안니 코헨 솔랄의 세 권짜리 평전 <사르트르>(창, 1993)에 이어서 가장 두툼한 분량을 자랑하는
 
 
이네파벨 2006-01-1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사르트르의 "파리떼"라는 단편을 읽어보셨는지요...
중학교 1학년때 집에있는 세계문학전집에서 그 단편을 읽고..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엘렉트라의 오빠)의 복수를 소재로 한...햄릿과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카뮈의 이방인....등등의 이야기를 한데 섞어놓은 듯 한 그런 이야기......)
망치로 머리를 맞는거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살면서 몇 번 경험하기 힘든 진정한 epiphany의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아마...그 책이 저에게 특히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던건...

절대 도덕, 절대적 사랑, 절대적 힘, 완전하고 단단하게 느껴졌던 어린시절의 알에서 막 깨어나오던 시절이어서 더욱 그랬을 거예요.

그 이후로 사르트르를 저의 우상으로 삼고...저 위에 언급된 그의 많은 저서들을 사놓고 읽어보았으나...까만건 글씨 하얀건 종이.....수준으로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그 이후 사르트르는...
좀 더 approachable한 까뮈나 보봐르로 건너가는 징검다리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파리떼>가 담겨있던 그 책은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렸는데...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하지만 그 감동은 되찾을 수 없을것 같아요. 한번 흘러간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지 못하듯....

로쟈 2006-01-12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문문고본으로 갖고 있었는데 가물가물합니다. 드라마 아니었던가요?.,

이네파벨 2006-01-12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연극 대본 형식이었어요.
사르트르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데...역시 로쟈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