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04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주간경향에 싣는 마지막 리뷰다). 최근에 나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 2013)을 서평감으로 골랐는데,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선 신작 영화도 개봉되고 해서 관련 인터뷰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여름에 나온 <미야자기 하야오: 출발점> <반환점>도 가을에 시간을 내어 읽어보려고 한다...

 

 

 

주간경향(13. 09. 10) 책 한 권을 잘 만나면 어린이 인생이 바뀐다

 

오랜만에 어린이 책을 손에 들었다. 전에 읽은 책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책으로 가는 문>(현암사). 애니메이션을 즐겨보는 건 아니어서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특별한 기억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TV만화 <미래소년 코난>을 보고 자란 세대이니만큼 빚이 없는 건 아니다. 게다가 ‘거장’이 고른 어린이 책 목록에 대한 관심도 이 얇은 책에 대한 독서를 부추겼다.

정확하게 말하면, ‘어린이 책에 관한 책’이다. 이와나미 소년문고 400여권 가운데 50권을 골라서 추천사를 쓰고 미야자키 자신의 어린 시절 독서경험 등을 덧붙였다. ‘이와나미 소년문고’는 1950년에 창간됐다고 하는데, 일본의 대표적 아동문학 총서인 듯싶다. 1941년생인 미야자키도 1950년대 언제쯤 이와나미 문고를 읽기 시작했다고. 하지만 책을 아주 많이 읽은 건 아니라고 한다. 어린이문학과의 본격적인 만남은 대학에 가서 이루어진다. 만화연구회에 들고 싶었지만 그런 게 없어서 들어간 동아리가 어린이문학연구회였다. 그는 거기서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오로 책을 읽는다. 당시엔 교양에 대한 강박관념이 아직 남아 있어서 ‘이 정도는 읽어야 한다’는 책 목록이 죽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너무 어렵고 난해한 책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고생하다가 자신의 기질에는 어린이문학이 맞는다는 걸 비로소 발견한다.

미야자키가 생각하는 어린이문학의 의미란 무엇인가. 흥미로운 정의를 내리는데, 그에 따르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이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다”라고 인간에 대해 엄격하고 비판적인 문학과는 달리 어린이문학은 “살아 있어 다행이다. 살아도 된다”는 응원을 보내는 문학이다. 그 밑바탕에 있는 태도는 ‘다시 해볼 수 있다’는 긍정이다. “아이들에게 절망을 말하지 마라”는 뜻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평소에는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일지라도 눈앞에 아이들을 두고서 ‘너희들이 태어난 건 다 쓸데없는 일이야’라는 식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즉 경계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주위에 없으면 그런 마음을 금방 잊어버리지만, 제 경우는 이웃에 보육원이 있으므로 내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거장다운 유머다.

어린이란 어떤 존재인가. 미야자키가 보기에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다. “때가 올 때까지 아이는 제대로 부모의 보호 아래 있어야 합니다”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곧 부모를 불신하고 서둘러 성장하는 것보다는 의존하는 게 더 낫다. 인생수업을 거쳐서 어른으로의 성장과 자립을 중요시하는 독일식 교양소설과 어린이문학은 그래서 다르다. 의존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까지 미야자키는 단언한다. 그가 보기에 아이는 현명해지는 만큼 또 몇 번이고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으며, 아이에게는 거듭 바보 같은 짓을 할 권리가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를 구성하는 세계관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책에 관한 책’이니만큼 저자의 독서론도 눈여겨볼 만한데, 일단 미야자키는 책을 아무리 놓아두어도 아이들은 읽지 않는다고 한다. 책을 주변에 쌓아두면 자연스레 아이의 손이 갈 거라는 기대는 순진하다는 게 그의 경험담이다(많은 부모가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뭔가 거장다운 비책을 기대한 독자라면 좀 맥 빠진 답변이지만 미야자키는 책을 읽는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지 않으냐고 말한다. 무슨 효과 때문에 책을 읽히는 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에 더 없이 중요한 건 ‘역시 이것’이라고 할 만큼 아주 소중한 의미를 갖는 책 한 권을 만나는 일이라고. 그렇게 만난 책 한 권이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게 될 것이다. 그가 추천한 50권의 어린이 책은 그 후보도서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할까. 우리 아이들의 책장에 그런 책이 꽂혀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13. 09.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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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12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의 <모든 것은 빛난다>(사월의책, 2013)를 읽고 적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단테의 <신곡>과 허먼 멜빌의 <모비딕>까지 3000년에 이르는 서양 고전을 새로운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해주는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다. 리뷰에서는 풍부한 책의 내용 가운데 일부만 짚었다...

 

 

 

시사IN(13. 09. 07) 신들을 다시 만나는 방법

 

벌써 오래 전 영화이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의 걸작 <펄프픽션>(1994)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자. 조직원인 줄(새뮤얼 잭슨)과 빈센트(존 트래볼타)는 두목의 가방을 빼돌린 자들을 찾아가 응징하는데, 화장실에 숨어있던 한명을 놓친다. 무방비 상태인 둘에게 그가 은빛 매그넘 권총을 겨누고 여섯 발을 연달아 쏜다. 놀랍게도 줄과 빈센트는 한발도 맞지 않는다. 그를 마저 처치하고 난 줄은 이 사건에 심각한 충격을 받는다. 빈센트는 기막힌 행운이었다고 말하지만 줄이 보기엔 신이 개입한 기적이다. 당신이 보기에는 어떤가. 행운인가, 아니면 기적인가.

 

 

<모든 것은 빛난다>의 공저자인 두 철학교수의 말대로, “이 세속의 시대에는 아마도 빈센트의 태도가 더 표준적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탈형이상학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그런 상황에서 경이나 감사의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다. 기적을 목격했다고 믿은 줄은 조직에서 은퇴하지만 단지 요행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한 빈센트는 이후에도 두목의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타란티노의 블랙유머가 빛을 발하는 이 이야기를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저자들은 정색하고서 진지한 철학적 성찰 거리로 삼는다. 총알이 빗나간 게 신의 개입이라고 보는 줄의 관점을 호메로스의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조명한다.


그리스인들의 인간 이해에서 핵심은 삶에서의 탁월성이었다. 그런데 이 ‘탁월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레테’는 나중에 미덕(virtue)으로 번역됐지만 겸손이나 사랑 같은 기독교적 개념이나 의무의 준수 같은 스토아적 이상과 무관하다. 그것은 신들과의 올바른 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감사와 경외의 느낌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이다. “인간들은 누구나 신들을 필요로 하니까요”라는 게 그들의 세계관이었다. 즉 인간의 탁월한 성취를 그들은 인간의 공이 아니라 신의 특별한 선물이라고 보았다. 심지어 호메로스는 잠든다는 것조차도 우리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성스러운 행위로 간주했다. 한마디로 경이와 감사로 가득 찬 세계다.


하지만 니체의 말대로 “우리 스스로 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늘날은 어떤가. 저자들은 계몽주의가 형이상학적 개인주의를 받아들인 것이 서양사의 가장 극적인 전환이라고 말한다. 결과는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는 자율적인 개인을 이상으로 내세우면서 우리는 우주에서 유일한 행동 주체가 됐다. 인간이 자기 실존의 핵심을 통제하기에 불충분한 존재로 파악한 호메로스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관점이다.


저자들은 칸트의 자율적 인간이란 이념의 자연스런 귀결이 니체의 허무주의라고 본다. 이것은 일종의 막다른 골목이다.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는 모든 놀라운 일들에 대해서 닫혀 있기 때문이다. 가령 1999년 뉴욕 양키스의 2루수 척 노블락은 1루 송구에도 애를 먹으며 관중석으로 공을 던지기까지 했다. 호메로스라면 신들의 간섭이라고 불렀을 일이지만 우리는 개인의 책임으로만 귀속시킨다. 모든 게 그런 식으로 설명되면서 우리는 무거운 선택의 짐만 짊어진 채 경탄할 일이 아무것도 없는 단조롭고 지루한 세계에 살게 됐다. 어떤 출구가 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신들이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을 발로 걷어찬 것”이라는 점. 왜 우리는 신들을 버렸고 어떻게 다시 조우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모든 것은 빛난다>는 우리가 드물게 만날 수 있는 기적을 보여줄 것이다.

 

13. 09.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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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카뮈의 <전락>에 대해 적었는데, 이로써 카뮈의 주요작에 대해서 한번씩 다룬 듯하다. <전락>은 <이방인>이나 <페스트>와 비교해선 번역본이 많지 않다. 내가 읽은 건 창비판, 책세상판, 범우사판, 3종이다. 읽은 순서는 역순이다...

 

 

 

한겨레(13. 09. 02) 고해하는 재판관 클라망스의 회한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가운데 가장 재미있게 읽은 건 고등학생 때 읽은 <이방인>이나 <페스트>가 아니라 대학생 때 읽은 <전락>(1956)이다. 아마도 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당시엔 <지하생활자의 수기>로 나와 있었다)를 읽은 뒤여서 더 흥미로웠는지 모른다. 두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같이 떠올리지 않는다는 게 불가능할 만큼 서로 닮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 화자의 장광설로 채워진 형식을 비교해보더라도 그렇다.

 

도스토옙스키의 영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악령>의 각색가였던 카뮈는 무대에 올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는 이반 카라마조프 역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사상적으로 이반의 대척점에 놓이는 조시마 장로가 죽기 전에 남긴 설교의 한 대목. “당신은 어떤 사람의 심판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심판자 자신이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죄인이며, 아니 자기야말로 다른 누구보다도 그 범죄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까지는 아무도 죄인을 심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을 때 그는 비로소 심판자가 될 수 있다.” 요는 자신이 죄인임을 먼저 인정할 때 심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전락>의 주인공 클라망스가 자처한 형상 아닌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술집에서 자신을 ‘고해(告解) 판사’(범우사), ‘재판관 겸 참회자’(책세상), ‘속죄판사’(창비)라고 소개하는 클라망스는 원래 파리의 유능한 변호사였다. 육체를 향유하도록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그는 항상 정상에 오르고자 하는 성향을 지녔으며 약간은 초인이 된 듯한 기분으로 우쭐대며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우월감은 성격의 기본 옵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센강의 한 다리를 건너던 중에 그는 등 뒤에서 웃음소리를 듣는다. 깜짝 놀라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환청을 들은 것이다. 대개 그렇듯이 그의 환청은 그가 억압한 기억과 관련이 있었다. 그날 저녁보다 2~3년 전에 그는 센강의 또다른 다리를 건너던 중 다리 난간에 허리를 굽히고 있던 젊은 여자를 본다. 외면하고 계속 가지만 아니나 다를까 물에 첨벙하고 뛰어든 소리가 들렸다. 그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는 돌리지 않은 채 비명이 잦아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었어’라고 자위해볼 따름이었다.

 

그렇게 상기하게 된 사건은 그에게 오점, 곧 제거할 수 없는 얼룩이자 상처가 된다. 이 상처는 그의 표식이 돼 사람들이 곧 그를 심판대에 올려세우고 마치 식인어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을지 모를 일이었다. 인간은 모두가 재판관이고 남의 눈에는 죄인이기에 그렇다. 더는 ‘재판관’(판사)의 지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클라망스는 방책을 고안해낸다. 그건 남들보다 먼저 자신을 심판대에 올려 단죄하는 것, 곧 자발적 속죄자, 참회자가 되는 것이었다. 타인의 심판을 벗어나기 위한 교묘한 선택이라고 할까.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었지만 수년 동안 억눌러 왔던 말을 털어놓는다. “오, 아가씨, 이번에는 내가 우리 둘을 모두 다 구원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몸을 내던져주십시오!” 물론 이건 클라망스의 회한이자 유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기회가 종종 주어지는 듯하다. 혹은 억지로 기회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13.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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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350호) 특집 '출판전문지가 사는 길'의 한 꼭지를 청탁받아 쓴 글을 옮겨놓는다. 주제는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잡지를 받아보니 '나는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란 제목이 붙여졌는데, 머리글은 '책에 살고 책에 죽는 서평가'다. 아마 두 가지를 두고 왔다갔다 했던 듯싶다. 나대로는 '서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붙여놓는다. 공식적으론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와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 두 권의 서평집을 냈지만, 특집의 다른 꼭지 글을 보니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0)도 서평도서로 분류돼 있다. '독서에세이'가 더 적당할 듯하다. 아무튼 터울로 봐서는 내년쯤에 세번째 서평집을 내게 될 것 같다...

 

 

 

기획회의(13. 08. 20) 나는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주제의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일단 떠넘기기가 어려웠다. 누구누구가 더 적임자라고 ‘대타’를 내세울 수 있었다면 빠져나가기가 용이했겠지만, 남들이 다 ‘현역’ 서평가로 알고 있는 처지라 둘러댈 수가 없었다. 물론 서평가로 살아가는 건 아니라고 정색할 수는 있었겠다. 엄밀히 말하면 내게 서평쓰기는 생계의 방편이 아니라 책값의 방편이니까. 게다가 ‘시인’처럼 명예를 드높여주는 직함도 아니기에 명함에 ‘서평가’라고 박아놓지도 않았다(그렇다고 명함에 다른 직함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자리에 이렇게 내몰리게 됐다. 하긴 '서평가'란 호명에 구시렁거리는 일도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일부인지 모를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고 책 얘기를 좋아했을 뿐이다. 전공은 러시아문학이었지만, 철학책을 취미로 읽었고 영화비평을 기웃거렸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공간이 열리면서 책에 관한 이런저런 잡담과 촌평이 조금씩 눈길에 올랐다.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알라딘 블로그로 거점을 옮겼고 북매거진 <텍스트>에 서평류의 글을 싣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7년쯤 “인터넷상을 어슬렁거리는 책벌레들”을 가리켜 한겨레 고명섭 기자가 ‘인터넷 서평꾼’이라고 호명했고, ‘로쟈’는 그 대명사가 됐다(특이하게도 '인터넷 서평꾼'이란 호칭은 내게만 붙어 다닌다). 이후에 시사주간지와 일간지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하는 생활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두 권의 서평집까지 출간했고, 서평가란 직함까지 얻게 됐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다보면 어떤 직함이건 얻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해서 오래 하는 게 아니라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 오래 하게 됐다고 가끔 투덜거린다(왜 없는지는 ‘책값의 방편’이란 대목에서 추측해보시길).


그래도 서평가라고 하면 제법 출세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고작해야 자투리 서평을 쓰는 주제에 무슨 서평가 행세를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나로선 언제라도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용의가 있다. 서평가는 내게 어떤 역할이지, 결코 천직이 아니다. 부러워하는 이들은 나보다 열심히 할 사람들이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나보다 잘할 사람들이다. 이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거나 엉덩이의 무거움을 떨쳐낸다면, ‘서평계’의 앞날이 지금보다 훨씬 창창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나는 덕분에 책을 읽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를 한껏 누리면서 ‘서평가 이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게 서평가로서 갖는 꿈이다.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  

 

서평과 비평의 차이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직함으로 활동하는 이상 나름대로의 서평관이 없을 리 없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의식은 갖고 있어야 하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서평은 비평의 한 갈래에 속할 터이지만 언제부턴가 과거와는 다른 위상을 갖게 됐다. 달라진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짚어볼 수 있다. 일단 어느 때보다도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 누구도 더 이상 모든 책의 독자를 자임할 수 없게 됐다. 어떤 책에 대한 독서는 동시에 다른 책에 대한 비독서를 뜻하는 게 오늘의 독서 현실이다. 어떤 타개책이 있는가. 필독할 만한 책을 서로가 걸러주고, 동시에 미처 읽지 못하는 책에 대해선 핵심이라도 챙겨놓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서평의 역할이다.  


서평은 어떤 책이 읽을 만한가를 식별해주는 데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 반면에 비평은 어떤 작품을 재발견하고 재평가한다. 서평은 일독의 권유이지만 비평은 재독의 제안이다. 서평이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염두에 둔다면, 원칙적으로 비평은 한번 읽은 독자를 상대한다. 만약 한번 읽은 독자가 많지 않다면, 즉 독서 경험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비평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바로 오늘의 상황이 그렇다. 독서량이 현저하게 부족한 마당에 독서 경험의 공유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 결과 한국에는 비평 독자보다 비평가 수가 더 많다는 웃지 못 할 얘기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그렇게 비평의 역할이 쇠퇴하는 가운데 서평의 역할은 증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한편 서평의 역할 증대는 온라인서점에 독자 리뷰 공간이 마련된 것에도 힘입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는 활동이 독서활동의 자연스런 일부가 되면서 서평쓰기도 대중화되었다. 아무래도 진입장벽을 가질 수밖에 없는 비평과 달리, 서평은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각자 자기가 선호하거나 일반 독자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에서 책을 읽고 그 정보나 판단을 공유하는 ‘품앗이 서평’이 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서평은 분량 부담에서 자유롭다. 어떤 책이 일독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발 빠르게 일별해주는 것이 서평의 핵심적인 기능이기에, 40자평, 100자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분량의 글을 누구도 비평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만 서평이라 부르는 건 결코 억지가 아니다. 오히려 서평은 너무 길어질 경우 그 의미가 반감된다. 적은 분량을 통해서 책에 대한 평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서평으로선 최적이다.


자격불문, 분량불문이라면, 그래서 누구나 서평을 쓸 수 있다면 굳이 서평가가 필요할까? 그렇다, 온라인에서라면 필요하지 않다. 전문가와 대중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진 지 오래인 게 인터넷이라는 집단지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저 인터넷 서평꾼들의 지치지 않는 활발한 활동만이 기대될 뿐이다. ‘로쟈’는 좀 유명한 인터넷 서평꾼 정도이지 그 대명사일 수 없다. 하지만 오프라인은 사정이 좀 다르다. 그 영향력이 점차 줄어가는 추세라지만, 일간지와 주간지 등의 서평란에는 출판담당 기자 외에도 서평가나 북칼럼리스트, 출판평론가 등 유사 직함의 필진이 아직 필요한 상황이다. 나로선 그러한 수요에 부응하는 활동을 6-7년째 해오고 있는데,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자칫 10년도 넘어갈 기세다.

 

 

서평가, 책만큼 대단하고 책만큼 하찮다
소위 서평가는 어떤 일을 하는가? 현재 내가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등에 쓰고 있는 서평은 대략 원고지 8-12매 정도의 분량이며 보통은 신간으로 나온 책 한권을 다룬다. 그런 서평이나 북칼럼을 평균적으로는 1주일에 한두 편, 마감이 몰릴 때는 서너 편 정도 쓴다(지면에 쓴 글을 옮겨놓는 경우도 많지만, 온라인에서 인터넷 서평꾼으로 활동하는 건 별도의 일이다). 지정된 책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기도 하지만 보통 서평도서는 스스로 선택한다. 서너 권의 후보도서를 미리 골라서 중복여부를 확인한 후에 최종적으로 그중 한권을 골라 쓴다. 1주일에 두 편을 쓴다면 산술적으로는 6-8권 정도를 일단 손에 들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으로는 다 읽을 수 없지만 적어도 책의 실물은 확인하려고 한다.


그렇게 고른 책을 4-5시간 안에 읽고, 3-4시간 안에 원고를 작성한다. 급하게 쓸 경우에는 2시간 안에 원고를 완성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그러면 평균적으로 원고지 매당 1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전체적으로 읽고 쓰는 데 8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원고 노동자로서 서평가의 일당은 10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일당은 통상 도서구입비로 쓰인다. 서평이 ‘책값의 방편’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외국에는 전업 서평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서평가가 직업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적절한 명칭은 ‘서평 알바’다).  


그렇다면 서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명감으로 산다고 적으려다가 어쭙잖아서 자기만족으로 산다고 고친다.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게 소원인 분이라면 서평가는 최적의 소임이다. 좋은 책을 읽고 널리 알리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서평가로서 적격이다. 요컨대 책에 살고 책에 죽고 하는 것이 서평가다. 그게 대단하다면 딱 책이 대단한 만큼이고, 하찮다면 딱 책이 하찮은 만큼이다. 국가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묻는다면 적어도 해를 끼치는 건 아니잖은가, 정도로만 답하겠다. 조금 범위를 좁혀서 출판계에는 얼마만큼 도움이 되느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글쎄’다. 나대로는 ‘독서 전도사’ 역할도 꽤 오랫동안 해왔다고 자임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한국인의 평균독서량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출판시장도 지속적으로 하향세다. 그런 고민을 떠안느니 그래, 그냥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13.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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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040호)에 실을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에 나온 북한 관련서 가운데 황재옥의 답사기 <국경을 걷다>(서해문집, 2013)을 골라서 읽고 적었다. 북한학 전공인 저자의 책으론 번역서로 <북한의 기아>(다할미디어, 2002)와 저서로 <북한 인권 문제, 원인과 해법>(도서출판선인, 2012)가 더 있는데, 기아 문제에 관심이 생겨 <북한의 기아>는 주문해놓은 상태다. 저자는 국제구호기관인 월드비전의 부의장과 미국 평화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낸 나초스로 1995년~1999년에 발생한 북한 기아에 대해 쓴 것이다. 

 

 

 

주간경향(13. 08. 27) 북·중 관계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며칠 전 여름양복 상의의 품질표시를 무심코 꺼내보고 놀랐다. 제조사는 한국 업체인데, 제조연월이 ‘2010년 5월’, 제조국명은 ‘Made in DPRK’로 찍혀 있었다. 개성공단에서 만들어진 ‘북한산’이었던 것이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나라 북한의 존재를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된 놀람이라고 할까. 안 그래도 가동이 중단된 지 넉 달여 만에 개성공단 정상화에 대한 합의가 최근 남북 당국간에 이루어진 터여서 새삼스레 북한을 다룬 책에 눈길이 갔다. 북한 연구자 황재옥의 북한 국경 답사기 <국경을 걷다>(서해문집)이다.

저자는 2012년 8월, 전임 통일부 장관 및 동료 학자들과 함께 8박 9일 동안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 답사를 다녀왔다. 압록강 하류에서 상류를 거쳐 백두산까지, 그리고 백두산 정상에서 두만강 상류를 거쳐 하류까지 전장 1376.5㎞에 이르는 북·중 국경선을 종주하는 여정이었다. 실제 이동거리는 2800㎞, 곧 7000리나 됐다고 한다. 남북관계가 교착된 상황에서 북·중관계가 어떤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변방이긴 하지만 북한 지역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감지해보는 게 답사의 목적이었다. 무엇을 볼 수 있었을까.

세 가지 핵심을 미리 간추리면, 첫째, 중국 변방, 특히 그동안 낙후된 동북 3성에 대한 중국 쪽의 투자가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투자의 목적은 물론 북한과의 교역·교류를 확대하는 것이다. 둘째, 중국의 ‘동북공정’이 학문적 단계를 넘어서 실질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고구려사와 발해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기획이 동북공정인데, 2012년 7월에 지안에서 발견된 ‘제2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조사·연구에 동북공정 참여학자를 대거 투입한 사실에서도 중국의 의도를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셋째, 중국의 경제발전과 맞물려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도 예전보다 나아진 것으로 보였다.

물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만큼 북·중관계는 북한의 대외관계에서 막중한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그렇더라도 최근의 북·중관계는 과거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양상을 보여준다. 그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곳으로 저자는 황금평 특구를 지목한다. 위화도와 함께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섬이 황금평인데, 이 지역이 경제특구로 지정돼 2011년 말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공개된 공동개발 총계획에 따르면 중국은 여의도 면적의 약 1.5배에 달하는 황금평을 북한으로부터 100년간 임차하고 매년 5억 달러의 임대료를 건네기로 했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중국의 대북진출 행보도 가속화하고 있는 양상인데, 이러한 현실이 우리와는 무관한 ‘남의 나라’ 일로만 볼 수 있는지 저자는 우려한다.

북·중간의 이런 긴밀한 교류·협력 분위기 때문에 환기하게 되는 것은 중국의 ‘항미원조’(抗美援朝), 곧 한국전쟁 참전이다. 1950년 10월, 중국은 총사령관 펑더화이의 지휘하에 세 차례에 걸쳐 무려 180만명을 참전시켰다. 특히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이 펑더화이의 비서로 참전했다가 미군 전투기의 폭격으로 전사했는데, 그 유해가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 열사묘에 안장돼 있다고 한다.

 


중국 최고지도자의 장남이 북한을 도우러 왔다가 전사해 북한 땅에 묻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북한은 중국에 크게 빚을 진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상기시키려는 듯 중국은 한국전쟁 참전 60주년을 기념한다며 접경의 단둥에는 펑더화이 동상을 세우고, 허커우에는 마오안잉 동상을 세웠다. 북·중 경제협력을 재개하는 시점에서 중국이 양국의 혈맹관계를 강조하는 것은 고도의 정치적 의도를 품은 것이라 보지 않을 수 없다.

남북관계는 막혀 있는 상황에서 중국인들의 대북사업은 활기를 띠며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저자는 북한 경제가 중국에 점점 예속돼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우려를 표한다. 비단 저자만의 우려는 아닐 듯싶다.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시야가 더 넓어져야 한다는 점을 이 답사기는 깨닫게 해준다.

 

13.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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