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공지다.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 '로쟈의 세계문학클럽' 강의를 부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번 8월과 9월에는 '로쟈의 영국문학클럽'을 강의한다(8월 9일부터 9월 17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이다). 제인 오스틴부터 버지니아 울프까지 대표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읽어보는 강의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로쟈의 영국문학클럽


1강 8월 06일_ 제인 오스틴, <설득>



2강 8월 13일_ 찰스 디킨스, <올리버 트위스트>



3강 8월 20일_ 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4강 8월 27일_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5강 9월 03일_ 윌리엄 워즈워스, <서곡>



6강 9월 10일_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7강 9월 17일_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19. 0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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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3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리시울)에 대해 적었는데, 얇은 책임에도 막상 서평에서는 일부 내용만을 언급할 수 있었다. 한 차례 포스팅한 대로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구픽)도 최근에 나왔는데, 원서도 엊그제 받은 김에 조만간 읽어볼 생각이다(그의 책은 모두 구입했다)...

















주간경향(17. 07. 08) 자본주의, 여전히 강력하지만 구멍 역시 커진다


영국 비평가 마크 피셔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먼저 제목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무엇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인가.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존립 가능한 정치·경제 체계이며 그 대안은 가능하지 않다는 감각이다. ‘대안은 없다’는 과거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독트린이 그대로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슬로건이다. 저자가 대담에서 인용한 말은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자본주의가 싫으면 북한에나 가서 살아라.”

자본주의 이후에 대한 상상이 봉쇄되고 그 대안이 고작 북한이라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전위적인 문화비평가로 활약했던 저자는 비록 자본주의가 강고한 현실을 구축하고 있지만 그 대안의 모색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이 그의 내기다. 사실 필요한 것은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가르는 기준 자체의 변경이다. 지금 현실적이라고 이야기되는 많은 것들이 한때는 불가능한 것이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저자는 라캉 정신분석학의 개념을 빌려서 ‘현실’과 ‘실재’를 구분한다. 현실은 실재에 대한 억압으로 구성되기에 실재는 현실에서 재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의 균열과 비일관성 속에서만 드러나는 어떤 외상적 공백이다. 그러한 실재의 대표 사례가 환경 재앙이다. 가령 원자력 안전신화를 철저하게 무너뜨린 후쿠시마 원전사고만 하더라도 현실로 통합될 수 없는 실재적 사건이다. 그것은 동시에 자본주의의 무한성장 신화에 대한 묵시록적 경고이기도 했다.

환경 재앙에 대한 문제의식은 많이 공유된 상황이라는 판단에서 저자는 두 가지 쟁점을 거기에 추가한다. 하나는 정신건강이고, 관료주의가 다른 하나다. 자본주의는 정신건강을 마치 자연현상인 양 다루고자 하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가 자연적 사실을 넘어서듯이 정신건강은 그 자체가 정치적 범주에 속한다.

광기뿐 아니라 우울증 같은 경우도 영국에서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처리되는데,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스트레스와 그 고통 역시 사회적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신건강 질환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속 증가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유일한 사회체계이기는커녕 내재적으로 고장나 있으며, 그것이 잘 작동하는 듯이 보이도록 만드는 비용이 아주 크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신자유주의의 승리와 관료주의는 한물간 것으로 취급되었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더 비대해졌다. 관료주의가 새로운 형태로 증식한 때문이다. 이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교육현장인데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소비자로 양성된 학생들과 여전히 훈육적 방식의 교육을 고집하는 교사들 사이의 간극은 극복되지 않는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는 비단 영국 사회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소위 학교 붕괴 현상은 현단계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교육이 당면한 일반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여전히 강력하지만 그 구멍 역시 커지고 있다는 것이 명민한 비평가의 진단이고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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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9-07-0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읽으면서 그 구멍을 부작용으로만 생각하고
구멍을 메워야 된다는 생각속에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자본주의의 끝이 세상의 끝이라 여기고.


로쟈 2019-07-07 10:24   좋아요 0 | URL
그게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죠.~
 

강의 공지다. 영종하늘도서관에서 7월 6일과 27일, 두 차례에 걸쳐서 '영화 속의 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원작의 <칠드런 액트>가 7월에 개봉되는 걸 염두에 두고 매큐언 원작과 각색의 영화 두 편을 주제로 골랐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로쟈와 함께 읽는 '영화 속의 문학'


1강 7월 06일_ 이언 매큐언, <체실 비치에서>



2강 7월 27일_ 이언 매큐언, <칠드런 액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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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개포도서관에서 7월 2일부터 30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에 '한여름밤 현대시 산책'이란 강의를 진행한다. 한국의 현대시인 5명의 시세계를 살펴보면서 한국 현대시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한여름밤 현대시 산책


1강 7월 02일_ 김소월, <진달래꽃>



2강 7월 09일_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3강 7월 16일_ 김수영, <풀>



4강 7월 23일_ 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5강 7월 30일_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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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30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최근에 강의에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시 다룬 김에, 마침 발표 70주년이 된 작품이기도 해서 작품의 주제를 다시 생각해본 글이다. 


















주간경향(19. 06. 10) '아메리칸 드림의 죽음' 혹은 '아버지의 죽음'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1949)을 읽기 위하여 특별한 명분이 필요하지는 않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1953)와 함께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온 가장 유명한 극작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도 매년 공연되고 있는 만큼 여전히 현재적이다. 발표 70주년을 맞으면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시 읽으며 그 현재성이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알려진 대로 <세일즈맨의 죽음>은 늙은 세일즈맨 월리 로먼의 애환과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윌리는 아내와 두 아들을 식구로 거느린 가장이다. 과거에 전성기가 없지는 않았지만 예순을 넘긴 현재는 30년을 넘긴 영업직 생활에 지쳤고 수입은 점점 줄어들어 허탕을 치는 날도 잦다. 윌리가 귀가하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그 다음날까지 만 하루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지만 작가는 윌리의 회상과 환상 장면들이 무대에 동시에 제시될 수 있도록 했다. 소설에서는 ‘의식의 흐름’으로 불리는 모더니즘의 기법이 희곡에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가 아닐까. 덕분에 관객은 세일즈맨 윌리의 하루뿐 아니라 그의 전 생애를 압축적으로 보게 된다. 

윌리의 회상과 환상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그의 형 벤이다. 윌리와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벤은 알래스카로 떠난 아버지를 찾으러 나섰다가 엉뚱하게도 아프리카로 가서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하고 부자가 되었다는 인물이다. “나는 열일곱의 나이에 정글 속으로 걸어들어가 스물한 살에 걸어나왔지. 부자가 되어서 말이야”라고 자랑을 늘어놓는 벤은 조카들에게 처세훈도 남긴다. “모르는 사람과는 절대 공정하게 싸우지 마라, 얘야. 그래서는 절대 정글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부자가 되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든 허세이든 벤은 윌리의 모델이 되며 윌리는 그를 닮고자 한다. 그렇지만 정글처럼 비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직 인정에 호소하려는 윌리의 모습은 그가 세일즈맨으로서 왜 낙오하게 되었는가를 시사한다. 아들에게 남겨줄 보험금을 노리고 자동차에 오르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가 의지하는 것은 환각을 통해 불러낸 벤이다. 벤이 소위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면 윌리가 마지막까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그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환상이다. 때문에 한 세일즈맨의 죽음은 아메리칸 드림의 죽음으로도 읽힌다. 한때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가능하지 않은 꿈을 평생 추구한 인물이 윌리 로먼이라고 해도 좋겠다.

윌리의 죽음과 장례식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에서 그렇지만 희망의 단초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 희망은 장남 비프가 보여주는 것인데, 작품에서 다른 식구들과 달리 유일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이 비프다. 아버지의 과도한 기대에 부응하려고 헛되게 부유하며 젊은 시절을 낭비한 비프는 “네 인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라고 독려하는 아버지 윌리에게 맞서며 “아버지! 전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이고 아버지도 그래요!”라고 폭로한다. 그런 비프가 흐느끼는 것을 보고서도 감동하여 “저 애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는 기대를 놓지 않는 게 아버지 월리의 부정이다. 구제불능이라고 할 만한데, <세일즈맨의 죽음>의 또 다른 주제는 그 ‘아버지의 죽음’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19. 06.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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