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득 생각이 나서 근황을 알아본 저자는 시인이자 평론가로 활동한 이승훈 교수다. 이상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김승희 시인과 함께 이상 시 전문가였다) ‘비대상 시‘를 통해 김춘수의 무의미시를 계승한 바 있다. <라캉으로 시 읽기>(문학동네, 2011)까지가 내가 아는 근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후에도 평론집과 심지어 시전집이 나왔고 그 이전에도 내가 주목하지 않았던 시론집이 몇권 더 있었다.

<이승훈 시전집>(황금알, 2012)은 책값이 부담이 돼 포기하고 비평집 혹은 시론집에 해당하는 책 두 권을 아침에 주문했다.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집문당, 2003)와 <현대시의 종말과 미학>(집문당, 2007)이 그것이다. 제목만으로도 요지는 가늠이 되는 책들이다. 다만 구체적인 논거들을 확인하려는 차원이다. 한국현대시 강의준비도 겸해서. 시 한편을 옮겨놓는다. ‘시적인 것은 없고 시도 없다‘는 시론에 잘 부합하는 시다. ‘망할 놈의 시‘.

용기도 없고 사랑도 없고 기쁨도 없다
눈도 없고 코도 없다
밑빠진 나날 입도 없다 입도 없다
아아 사랑했던 너의 얼굴도 없고 기차도 없고 다리도 없고
건너야 할 다리도 없고 오늘도 없다
오늘도 없는 것들을 위하여 시를 쓴다
시를 어떻게 쓰나
망할 놈의 시를
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없는 얼굴이 나를 감싸면 없는 해가 생기고 없는 풀이 생기고 없는 시가 생길 테니까
없는 내가 마침내 없는 기차를 타고 없는 너를 찾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걸 믿고 살아온 게 말짱 애들 장난 같고
그런 걸 믿고 살아온 게
망할 놈의 시
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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