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셰리 터클의 <라캉과 정신분석 혁명>(민음사, 1995)를 읽고 리뷰까지 올려두었는데, 다시 들춰보니까 옮겨놓지 않은 대목들이 눈에 띈다. 내용상 '밑줄긋기'에 해당할 듯도 싶지만, 그냥 페이퍼로 정리해둔다. 내 기억에 터클의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었으며 그녀의 책으론 <스크린 위의 삶>(민음사, 2003)이 더 번역돼 있다.

<라캉과 정신분석혁명>은  라캉 이론의 테두리를 긋는데 도움이 되는 저작이지만, 이론의 내면까지 들어가지는 않는다. 사실 그걸 목적으로 하지도 않은 책이지만. 정신분석의 사회학이면서 일종의 지성사인데, 프랑스에서 프로이트 혁명이 지니는 의의와 그 변모 과정을 잘 개괄하고 있다. 

인상적인 대목: “정신분석의 비전에서 가장 급진적인 것은 우리 내부의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며 라캉은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과 자신 안에서 대면하도록 끊임없이 촉구한다고 많은 분석가들은 믿는다. 이것이 라캉 세미나의 위력이다.”(304쪽) “정신분석의 핵심은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진실, 즉 인간이 자신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과 대면하는 것이다.”(307쪽) 그런 점에서 미국식의 적응주의적, 실용주의적 정신분석은 일종의 ‘자살 행위’이다.

다음. “알튀세르와 라캉에 있어 <과학만이 전복적이다>”(310쪽) 두 이론가가 모두 왜 그렇게 과학(과 수학)에 집착하는지는 이해할 수 있다. 또 “사람들이 정치와 언어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에 미친 라캉의 영향은 프랑스의 새로운 대중적인 철학(신철학)과 알렉산더 솔제니친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평가에서 나타난다.”(311쪽)는 대목.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책세상, 1991)의 저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 등이 신철학의 대표자이다. 그리고 솔제니친의 <수용소 군도>(1973)가 제일 먼저 출간된 곳은 프랑스였다.

터클의 책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그래도 미국에서의 라캉을 다룬 에필로그이다. “라캉의 정신분석의 프로테스탄티즘은 자기를 형성하는 인간을 강조한다. 그것은 개인에 대한 일종의 시작(詩作)이다. 라캉에게 시인과 정신분석가는 언어에 대한 그들의 관게에 의해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332쪽) “<정신병은 엄밀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정신병자라고 말하고 싶다. 항상 엄밀해지고자 노력해 왔다는 이유만으로도 나는 정신병자이다.>”

‘정신병자’ 라캉의 전략은 과학적인 것에서 시적인 것으로 도약하는 것이다. “그는 어렵고 엄밀한 작업을 피하기 위해 시적인 합리화를 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수학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과학적 엄밀함이 시야를 좁게 만들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334쪽) 그리하여 “라캉은 정신분석을 과학으로 재발견하고자 하는 야망을 가진 시인이다.”(336쪽)

06. 0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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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6-09-1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데리다에 '관한' 가장 좋은 책, 혹은 입문서는 그의 대담집들이라는 게 제 지론입니다. '데리다가 말하는 데리다' 쯤 되겠지요. 사실, 순전하게 데리다 자신의 책들만 해도 차고 넘치지요. 초기의 <입장들>만이 국역돼 있는 게 아쉽습니다(그나마 썩 좋은 번역은 아니고). 데리다를 많이 읽으셨다면 제가 굳이 추천해드릴 형편은 못되고 그래도 국역돼 나온 책들 가운데는 크리스토퍼 노리스의 책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원서와 대조해서 보신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