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웅진지식하우스, 2017)가 리커버판으로 다시 나왔다. 리커버판이란 표지와 본문 디자인을 바꾸어서 다시 낸 책을 말한다. 물론 내용은 그대로다. 그러니 새책이면서 이미 읽은 책인 셈. 



초판은 2009년 가을에 나왔고, 그해 봄에 나도 첫 책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9)를 펴낸 터였다. 이제 8년이 지난 셈인데, <로쟈의 인문학 서재>는 이미 절판을 앞두고 있다(장기 품절 상태). 2009년에도 물론 <청춘의 독서>는 베스트셀러였고, 베스트셀러란 어떻게 쓰는 것인가 시범을 보여주는 듯했다. 지금 다시 봐도 젊은 세대에게 그대로 꽂힐 법한 내용과 문체를 갖추고 있다. 다만 '청춘'에 반응할 나이가 아닌 나로선 책에서 다뤄진 러시아문학 작품에만 눈길이 간다.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푸슈킨(푸시킨)의 <대위의 딸>, 그리고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등이다. 



'청춘의 독서'는 20대에 읽은 책을 다시 읽어본 독서록이다. 자연스레 번역본이 달라지는데, <죄와 벌>과 <대위의 딸>은 열린책들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민음사판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가 참고문헌이다. 이 가운데 <죄와 벌>에 대해서 유시민 작가는 '날카로운 첫 키스와 같은 책'이라고 불렀다. 



<청춘의 독서>와 함께 채사장의 <열한 계단>(웨일북, 2016)을 떠올린 건, 채사장판 '청춘의 독서'이면서 똑같이 <죄와 벌> 이야기로 서두를 떼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은 독후감을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삶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존재임을,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결연한 의지와 실천이 따라야 함을 깨달았다." 


세대를 달리하지만 똑같이 젊은 세대 독자에게 강력한 멘토 역할을 하고 있는 두 저자의 독후감을 비교해보는 게 나의 관심사는 아니다. 내가 주목하고픈 것은 <죄와 벌> 정도 분량의 장편소설은 완독한 효과다. 장편소설을 읽어야 하는 필요와 의의에 대해서 요즘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곤 하는데, <청춘의 독서>와 <열한 계단>을 그 실례로 삼아도 좋겠다 싶다. 현재의 중고등학생에게도 똑같이 말할 수 있다. 당신의 인생을 바꿔주는 건 열 권의 문제집이 아니라 한권의 장편소설이라고(우리말에서 소설이 단편과 장편을 가리지 않고 지시하기에 굳이 '장편소설'이라고 부른다). 그걸 읽어내는 경험이라고.


가령 국어교과서에 <무정>이나 <삼대> 같은 근대 장편들이 (일부)수록되어 있(었)지만 실제 그 작품을 완독한 학생은 거의 없다. 원리대로 말하자면 <청춘의 독서>와 <열한 계단>을 읽은 독자가 이제 읽어야 하는 것은 <죄와 벌>이다. 그 독서의 경험은 대체 불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7월은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기도 하므로, 지금 손에 든다면 책에 빠져 들기에도 좋다.  



채사장이 읽은 <죄와 벌>은 민음사판이고, 내가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19세기>편에서 인용한 것은 을유문화사판이다. 어느 쪽이든 무방하다. '청춘의 독서'를 앞두고 있는 젊은이들이 책의 바다에 입수하도록 해준다면...


'이주의 저자'를 적으려고 서재에 들어왔다가 딴소리만 적었다. 일단은 조금 쉬어야겠다...


17. 0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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