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오랜만에 국외 저자 3인이다. 먼저,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신간 <헌법의 무의식>(도서출판b, 2017)이 출간되었다. '가라타니 컬렉션'이 계속 나오고 있으므로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 다만 <헌법의 무의식>은 시의성에 주목하게 된다(원저는 작년 봄에 나온 모양이다).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의 전후헌법, 그중에서도 특히 ‘제9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최근 주변 국가들이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면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것이 바로 이것의 개정 여부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일본이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홀로코스트를 저지른 독일마저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데, 왜 일본은 그것을 금지하는 헌법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일본의 평화헌법을 둘러싼 문제가 호헌이냐 개헌이냐의 틀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늘날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호헌과 개헌의 대립은 단순히 평화주의자와 호전주의자의 대립으로 비치고 있다. 그런데 <헌법의 무의식>에서 가라타니 고진은 문제의 핵심요지는 ‘헌법 9조’가 이러한 대립 이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 헌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즈음에 일본의 헌법 문제도 살펴보는 의미가 있겠다.

 

 

참고로 일본 헌법에 관한 책도 몇 권 나와 있다. <헌법의 무의식>을 읽을 때 참고해볼 만하다. 

 

 

두번째는 국내 처음 소개되는 크로아티아의 철학자 스레츠코 호르바트다. <사랑의 급진성>(오월의봄, 2017)이 이번에 나왔는데, 알고 보니 지젝과의 공저 <유럽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펴낸 바 있는 젊은 철학자다.  

"왜 레닌이나 체 게바라 같은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들이 사랑의 급진성을 두려워했을까? 겉보기에 온건한 사랑의 개념에 대해 왜 그렇게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왜 온건하지 않은가? 러시아 10월혁명의 성혁명과 그 이후의 억압, 사랑과 혁명적 헌신 사이에서 갈등한 체 게바라의 딜레마 그리고 68운동의 기간과 그 여파를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저자는 이 질문들에 답한다. 이 짧은 책은 사랑의 문제가 흥미롭고도 놀라울 정도로 실종되어 있는 현재, ‘사랑의 급진성’이 왜 중요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러시아혁명 100주년과 관련하여 읽어볼 만한 책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뜻밖의 타이틀이 제일 먼저 머리를 들이민 셈이 되었다. 지젝의 추천사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

"좌파는 전통적 공산주의의 성 보수주의에서 ‘성혁명’의 우스꽝스러운 사이비 혁명적 과도함을 거쳐 정치적 올바름의 광기에 이르기까지 정치와 성적 사랑의 관계를 종종 혼동하거나 신비화해왔다. 매우 흥미로운 이 책에서 호르바트는 그 점을 분명히 바로잡으려 한다. 우선 그는 오래전에 전복적 효력을 잃어버린 섹스 대신 사랑에 대해 부끄러움 없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자유방임주의의 토대에 대항할 힘으로서 사랑의 급진성을 주장한다. 이 책은 공산주의자들을 연인으로, 연인들을 공산주의자로 만들 것이다!"

 

호르바트의 또 다른 책으론 <탈사회주의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도 번역되면 좋겠다 싶다. 지젝의 <레닌 2017>은 출간 예정일이 올 여름이라 좀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는 흐로바트의 책들을 읽어두어야겠다. <사랑의 급진성>은 조만간 읽어보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길, 2010)과 비교되지 않을까 싶다. 흐로바트는 1983년생이니(올해 34세군) 바디우의 손자뻘이다.

 

 

영국의 작가이자 역사 저술가 톰 홀랜드의 책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카이사르 가문의 영광과 몰락'을 부제로 한 <다이너스티>(책과함께, 2017)는 2015년 신작을 옮긴 것이고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로마 공화국 최후의 날들'을 다룬 <루비콘>(책과함께, 2017)은 <공화국의 몰락>(웅진지식하우스, 2004)이 원제대로 재출간된 것이다. <다이너스티>는 "오늘날에도 제국의 전형으로서 여러 분야에서 벤치마킹되고 있는 로마제국의 원형을 만든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황조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담아낸 책"이고, <루비콘>(2003)은 "로마 공화국이 로마 제국으로 바뀌는 시기의 약 100년 동안 펼쳐진 치열한 권력 쟁탈전을 담아내는 동시에 공화국이 죽어가는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고대사 분야가 전문인 홀랜드의 다른 책으론 <페르시아 전쟁>(책과함께, 2006)와 <이슬람 제국의 탄생>(책과함께, 2015)이 더 소개된 바 있다. 찾아보니 2013년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펭귄) 새 번역판도 내놓았다. 나와는 동갑내기로군. 아무려나 신뢰할 만한 저자다.

 

 

톰 홀랜드의 로마사 책들을 손에 든다면, 더불어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에도 눈길을 줄 만하다. 가장 최근에 나온 건 <카이사르의 여자들>(교유서가, 2016)로 "기원전 68년 6월부터 기원전 58년 3월까지 약 10년간의 시기를 다룬다." 카이사르의 전성기를 다룬 셈.

"이 책에서 카이사르는 고귀한 혈통과 천재적인 두뇌, 불굴의 용기를 과시하며 누구보다도 상황 판단이 빠르고 거침없지만, 동시에 자신과 가족의 사랑을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작가가 본 카이사르는 마음에 드는 여성을 끌어들일 줄 아는 매혹의 남자이자 바람둥이로, 다정다감한 아버지이면서도 아끼는 딸을 약혼 위약금을 물어가며 당장의 정치적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에게 시집보내는 비정한 아버지로도 그려낸다."

17. 0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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